7권 - 제 40장
노인의 한
돌연 형편없이 널브러져 있던 사내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동시에 그는 양천광소를 터뜨렸다.
"크핫핫핫핫! 대장가의 후예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죽음으로써 신의를 지키는 대장부다!"
그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내는 느닷없이 그렇게 외치고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심한 고문을 당했으니 쓰러지는거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기
실 내용은 그게 아니었다.
사내의 전신이 급격이 새카맣게 변색되더니 돌연 쭈그러들기
시작하는게 아닌가?뿐만 아니라,
포로들 전부가 동시에 그와같은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독이다!)
동방세기는 내심 헛바람을 들이켰다.
백리유는 고문과정을 계속 지켜보다가 급히 명령을 내렸다.
"당무룡!"
"옛!"
당여궁,
그는 독에 관한한 일인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독공을 성
취한 사람이었다.
당여궁은 명령을 받는 즉시 포로들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빨새에 숨겨놓았던 맹독을 깨물었습니다. 어찌 해볼 사이도 없이........."
당여궁의 보고를 들으며 백리유는 내심 탄식했다.
굳이 당여궁의 설명을 듣지 않아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녀의 독에 대한 지식은 단지 독공을 연마하지 않았을 뿐,
기실 당여궁보다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여궁을 보낸 것은 다만 확인절차에 불과했다.
(고문을 했던 동방세기가 오히려 당한 거야! 그 사내는 일부
러 집단자살을 유도하기 위해 포로들의 심리를 격분시킨 거야!
그런 것도 모르고 동방세기는 그런 방법으로 협박했으니........)
참혹하게 흑수로 변해가는 삼백여 명의 포로들,
그들이 모두 죽고 없으니 이제 놈들의 본거지를 찾을 방도는 없다.
그들 모두는 죽음으로써 본거지에 있는 가족들을 지킨 것이다.
이를 두고 장렬하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참혹하다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본거지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어
안타까운 것일까?
아니, 백리유는 그 모든 감정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회주님!"
동방세기의 그 말을 그저 건성으로 들으며 백리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바로 그때,
한 사람이 그들의 앞에 홀연 나타났다.
그는 바로 다음아닌 백상인이었다.
"아니,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오?"
놀라워하는 백상인에게 여몽청이 달려가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말을 듣고 백상인은 내심 탄식했다.
(내가 한발 늦었구나!)
그는 백리유의 앞에 다가가 말했다.
"이들의 본거지를 알아냈소!"
"정말인가요?"
내심 실의에 빠져 있던 백리유는 크게 놀라 눈을 둥그랗게 떴다.
정신이 번쩍 들기는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소."
백상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미 완전히 흑수로 변해버린 포
로들의 자취를 바라보며 재차 탄식했다.
그는 사실 포탄은 막고난 후 적들의 자취를 역으로 추적하여
그들의 본거지를 찾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가 육식통령의 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며,
이토록 늦은 것은 추적하는 거리가 워낙 멀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도적들은 일부러 본거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 와서
일을 벌여왔던 것이다.
본거지는 어디 있죠?"
백리유의 묻는 말에 백상인은 장강의 하류쪽을 가리켰다.
"한참동안 내려가야 하오!"
화를륵.........!
적들의 선던은 모두 강상에서 불태워졌다.
그리고, 열 척의 화물선은 다시 강하류로 내려가기 시작했
다.
그들이 도적들의 본거지에 닿은 것은 무려 백여 리의 거리를
지나서였다.
그때는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
× × ×
그곳은 겉으로 보기엔 아주 평범하게만 보이는 절벽이었다.
그런데 백상인은 그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저곳이 그들의 출입구이오!"
그말을 들은 호중산은 이광리가 장력을 퍼부을려고 동시에
신형을 날렸지만, 백상인은 고개를 저으며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저 절벽은 특수하게 제조된 것이라 웬만해선 부수기 어려운
것이오! 그것보다는 좀더 쉬운 방법이 있지요."
백상인은 말이 끝나자마자 거대한 절벽이 돌연 통째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물론 백상인이 기관장치를 이용해서 문을 연 것이다.
쿠쿠쿸쿠............!
거대한 절벽이 밀려나자, 그 자리는 제법 널찍한 운하가 나타났다.
그 통로는 거대한 백가 무려 세 대는 나란히 지날 수 있을
만큼 넓었다.
이어 그들은 볼수 있었다.
통로 안쪽에 거대한 호수가 자리잡고, 호수가 주변으로는 무
수한 집들이 늘어서 있는 것을,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그 모든 정경이 엄연한 지
하세계라는 사실이었다.
(그동안 발각되지 않고 버텨온 것은 정말 당연한 일이군요!)
백상인은 내심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백리유의 명령에 따라 잠룡회의 모든 인원들은 배를 탄 채로
안으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가끔 주위에서 도적의 무리들이 달려들기는 했으나, 그야말
로 추풍낙엽이었다.
이곳 본채에 남은 자들은 거의 대개가 노약자나 여인들 뿐이었다.
백리유는 가급적 살상은 피할 것을 명령했고, 잠룡회의 인원
들은 그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다.
불과 한시진이 못되어 잠룡회는 완전히 그들의 본거지를 손
아귀에 넣을 수 있었다.
마침 식사시간이 되었으므로, 모든 인원들은 포롣르을 점검
하고 그곳에서 가장 큰 건물로 모였다.
식사시간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다.
특히, 오랫동안 골치거리던 도적떼의 소굴을 완전 소탕한 오
늘 아침의 식사는 모두들 유쾌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회주인 백리유등도 오늘 아침만큼은 모든 인원들과 함께 대
청에서 식사를 들었다.
헌데, 식시시간이 마악 무르익어갈 즈음, 잠룡회의 한 인원
이 돌연 노인 하나를 데리고 나타났다.
"이 노인이 자꾸만 책임자를 뵙고 싶다기에 데리고 왔습니다."
그 인원은 포로들을 감시하던 인원 중의 하나였다.
그 말을 듣고, 백리유는 노인을 앞으로 불렀다.
"무슨 일입니까."
노인은 백리유를 향해 구부리고 예의를 올리더니 말했다.
"이곳에서 백가성을 가진 분을 뵙고 싶습니다."
"............."
모든 사람은 한결같이 의아하게 생각했다.
세상에 성씨는 많아도 이곳에서 백가성을 가진 사람은 오직
백상인 하나뿐이었다.
그들은 백상인이 이노인과 안면이 있지 않나 의심할 정도엿다.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만, 무슨 일이십니까?"
"..........."
노인은 흠칫 놀라 백상인을 바라보더니, 돌연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백상인을 향해 자리에서 큰 절을 올리는
게 아닌가?
(...............?)
백상인은 더욱 의아해하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로 소생께 절을 하십니까? 저는 노인장을 처음
뵙는 것 같은데?"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늙은이도 귀인을 뵈온 것은 오늘 처음입니다."
"귀인이라니요?"
노인은 미소하며 말했다.
"당신은 장차 위대한 성자가 되실 분입니다. 그러니 제가 처
음 뵙었지만 절을 하는 것은 실로 당연한 일이지요."
"............."
백상인은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을 보고 느닷없이 성자가 될 사람이라니,
(이분은 그럼...............)
노인은 미소하며 말을 이었다.
"짐작하셨겠지만 저는 점장이입니다. 그러나 아주 용하다고
소문난 점장이지요. 그리고 사실 저의 예측은 단 한 번도 틀려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리로 끌려와 군사가 됐지
요."
백상인은 눈을 크게 떴다.
"당신이 이곳의 군사란 말입니까?"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백상인은 눈빛을 빛냈다.
"그럼 특별히 저들 찾아오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가지 부탁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부탁이라니요?"
백상인이 의아해하자, 노인은 미소하며 설명을 시작했다.
"저는 본래 이곳에서 남쪽으로 오십리 쯤 떨어진 손가구란
촌락의 촌장이었습니다. 그곳에선 손노인으로 통하지요. 헌데,
저의 예지능력이 남달리 뛰어나다는 소문이 나서 어느날 이곳
에 붙잡혀왔고, 군사노릇을 하게 된 것입니다."
".............."
"물론 저는 군사가 되고 싶지 않았지만, 그들이 마을사람들
을 인질로 삼는 바람에.......... 현재 마을사람들은 하나같이
만성지독에 중독되어 매달 주는 해약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들은 내가 말을 듣지 않으면 해약을 주지 않겠
다고 협박을 했지요. 그래서 저는 할수 없이 이곳의 군사가 됐던 겁니다."
"그럼............."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이곳이 발각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버틴 것도 모두
저의 예지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마을사람들을 살려야 하
기 때문에 위협이 닥치면 그들에게 미리 알려주곤 했지요. 그
래서 수십번에 걸쳐 토벌대가 왔지만 이곳을 알아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
모두들 노인의 얘기를 듣노라니 어떤 기이하고 신비로운 느
낌이 들었다.
노인은 말을 계속했다.
"물론 당신들이 오늘 이것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뜻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백상인은 더욱 놀랐다.
"노인장의 뜻이었다고요?"
노인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았더라면 당신들은 켤코 여기엘
들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일부러 그들에게 거짓예언을
해주었거든요."
이어 노인은 백상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굳이 긇게 한 이유는 바로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를요?"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오직 당신만이 우리만을 사람들의 만성
지독을 완전히 제거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렇지!)
백상인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만성지독이란 것은 사실 완전히 해약이 없는 것이다.
그 독은 인간의 체내에 오랫동안 침투하여, 육신과 거의 융
합이 되기 때문에 가끔씩 중화제 역할의 해약만이 중독자의 목
숨을 연명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천하의 어떠한 독의 대행가도 그 독을 완전히 해독시키지는 어렵다.
그러나 단 백상인만은 다른 것이다.
그는 선천지독과 의미가 같은 금단선공을 연성한 상태이므로
능히 만성지독을 완전히 해독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백상인은 내심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이 노인이 정말 예지능력이 있단 말인가?)
생전 처음보는 노인이 자신을 알고 기다렸다는 것은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백상인은 의식적으로 노인의 용모를 자세히 훑어 보았다.
그저 평범한 눈빛이 다소 깊다는 것 외엔 달리 특이함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특별히 느껴지는 특징이 있기는 하나 있었다.
본래, 백상인은 육식통령이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
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신비로운 능력으로,
그 때문에 백상인은 모든 일들을 아주 쉽게 처리해올 수 있었다.
그런데, 유독 이 노인에게만 마음을 읽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마치 마음이 텅 비어 있는 상태라고 할까?
(기이한 일이로군!)
백상인은 내심 중얼거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한달 안에 그곳으로 가보지요."
"고맙습니다."
노인은 연신 사례하더니, 다시 한 번 큰절을 했다.
백상인이 만류했으나 그는 막무가내였다.
"장차 저의 손자와 손녀가 당신께 크나큰 도움을 입을텐데,
이 정도의 절을 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저는 부탁을 하고도 드
릴 대가도 없습니다."
백상인은 미소하며 말했다.
"저는 대가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차후 노인장을 또
뵙게 될텐데 이렇게 너무 예의를 차리시면 제가 불편하지 않습니까?"
헌데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은 틀린 말입니다. 저는 잠시 후면 죽을 테니까요."
"예?"
백상인이 눈을 크게 뜨자,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인생은 빈손으로 왔다 가는 것인만큼 미련둘 것은 없지요.
저는 여기를 나가면 죽을 것이고 귀인도 그걸 보게 될 것입니다."
노인은 미소하더니 신형을 돌렸다.
그의 얘기가 너무도 신비하여 누구도 그가 나가는걸 말리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노인이군!)
백상인은 내심 중얼거리며 중단했던 식사를 마저 하려고 손
을 움직였다.
헌데, 바로 그때였다.
돌연 대청밖에서 짧은 단말마의 비명성이 일었다.
"으악!"
(...........!)
그 소리에 번뜪 스치는 생각이 있어서 백상인은 그 즉시 신
형을 날렸다.
단말마의 비명은 다시 일었다.
백상인은 한 인원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그 인원은 백상인을 내심 존경하고 있었던 터라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는 땅바닥에 쓰러져 누운 장한을 가리키며 말했다.
"글세 대청문을 지키다보니, 저녀석이 기웃거리길래 붙잡으
려는데 갑자기 저 노인을 찌르고 달아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저녀석을 쫓아가니 놈은 극약을 삼키고 자결을 하는게 아니겠
습니까? 정말 어이없는 일이죠. 한편끼리 상잔하다니."
백상인은 쓰러져 누운 장한을 바라보았다.
장한의 몸은 벌써 시커멓게 변색된 채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백상인은 내심 탄식했다.
그리고는 손노인에게 걸어갔다.
손노인의 가슴에는 예리한 비수 하나가 심장에 정통으로 박혀 있었다.
의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심장이 터져나간 사람을 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노인은 아직 죽지 않고 있었다.
그는 백상인이 다가오자 웃으며 말했다.
"내 말이 맞지 않습니까? 그는 배신한 내게 자기 동료들의
원수를 갚고 죽어간 거지요. 아무리 사마의 집단이라고 해도
최소한 의리는 있으니까요."
"............."
"부디 자중하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필시 성자가 되실 운명
이니........ 그리고 내 손자와 손녀를 거두어....... 귀인의
뜻대로 해주십시오! 그것이 그들의 복입니다........"
그 말을 남기고 노인은 죽었다.
백상인은 한참동안 그의 앞에서 발길을 옮길줄을 몰랐다.
마치 화석처럼............
노인의 죽음은 그에겐 작은 충격이었다.
그날 점심부터,
잠룡회의 전 인원은 배를 버리고 육지로 올랐다.
물론 백상인도 그들과 합류했다.
장강묵풍의 후예를 포로로 묶어 무맹으로 압송한 것은 두말
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육지에 올라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친후, 그들은 육로로 달려
가기 시작했다.
그곳부터 항주까지는 대략 이천여 리.
그들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산길이나 인적이 드문 길을
행로로 삼았다.
전 인원의 내공은 일류고수 수준에다가 신법은 최고경지의
것을 연마한 상태였다.
그들은 장강의 도적떼들은 토벌한 여세를 몰아 밤낮을 도와
강행군을 실시했으며, 마침내 이튿날 저녁무렵에는 항주성내가
내령다 보이는 야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그 자리에 은밀한 호를 구축하
고 기지를 만들었다.
거대한 기지 몇 개쯤 만드는 일은 그들에겐 그야말로 손쉬운 일이었다.
순식간에 기지와 숙소가 만ㄷㄹ어지자 그들은 대충 인원을
정검하고 휴식에 들어갔다.
그들이 굳이 객점을 빌지 않고 이런 야산을 기지로 정한 것
은 매사를 좀더 완벽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자칫 일천 명이안 되는 인원이 한꺼번에 항주성내로 들어닥
친다면, 일반사람들이 놀랄뿐 아니라, 적에게 타초경사의 우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결정을 내린 사람은 백리유였다.
그녀는 아직 나이는 어릴지라도 이 최고통솔자로서의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또한 그녀의 곁에는 최고로 지혜로운 여자인 제갈청하가 있
지 아니한가?
백리유는 그녀의 의견을 수렴하여 미리 화화장으로 정탐조를
착출하여 보내는 행사의 치밀성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백상인은 물론 그들과 더 이상 행동의 보조를 같이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는 헤어지기 아쉬워하는 여몽청과 이광리 호중산등과 작별
한 뒤 홀로 항주성내로 들어섰다.
이제 그에게 혼자만의 볼일이 남은 것이다.
× × ×
항주성,
이곳은 매우 번화한 성시였다.
특히 이곳엔 주루가 많고, 주루보다도 기루가 더 많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따위에는 소항이 있다고 하는 말처럼,
이곳은 소주와 함께 천하에서 손꼽히는 향락의 도시인 것이다.
따라서 천하에서 아름다운 기녀들은 모두 이곳에 몰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항주는 동해바다와 인접해 있으며, 그 항주만에 유람선을 띄
워놓고, 아름다운 기녀들과 한판 즐기는데도 누구라도 호아금
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 한 예로 현재 천하제일의 미기는 이곳 항주에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옥류향이다.
백상인은 항주성내로 들어서는 즉시 번화가인 대로를 왔다갔
다 하다가 근처의 객점을 하나 잡았다.
객점의 이름은 광명객점,
항주내에서도 시설이 훌륭하고 고급객점으로 소문난 곳이었다.
그는 우선 객점의 상방에 들어 여장을 풀고 목욕을 한 뒤,
식사를 주문하며 앞으로 해야 일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가 이곳 항주에서 해야할 일은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
는데, 그 중 하나는 화화장의 일이고, 다른 하나는바로 의문의
양피지에 대한 것이다.
허나, 화화장의 이릉ㄴ 이미 잠룡회 쪽에서 전적으로 맡고
있으므로, 그는 일단 양피지의 외문부터 차근히 풀어보기로 했다.
물론 그러다가 한달안에는 그 손노인의 부탁대로 손가구에
한 번 다녀와야 한다.
허나, 그 거리는 백상인에겐 한나절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으
므로, 일단 그 일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이 객점에선 주루를 따로 두지 앟고 손님들에게 주문형식으
로 식사를 공급한다.
물론 이 음식갑은 대단히 비싼편이지만, 이런 호화객점에 드
는 사람이면 그런 음식값에 대해 불평을 하지 않는다.
게다가 온갖 친절도 만점이니............. 광명객점의 이런
류의 영업방식은 근래 많은 객점가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장사
수단 중 하나이다.
백상인은 식사를 마친뒤, 객점을 나와 번화를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그의 뇌리엔 오직 한가지 의문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맏손자의 달이라........ 그게 대체 뭘까?)
백상인은 우선 어중이 떠중이들이 많이 모여드는 값싼 주루
들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들이 술먹고 떠들어대는 애기속에 어쩌면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가 나타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맏손자는 아무래도 어떤 인물을 말하는 것일테고, 달은 그
인물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물건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의문은 생각보다 쉽게 풀렸다.
더구나 그 의미도 전혀 다른 어이없는 것이었다.
백상인이 항주성내 곳곳의 허름한 주루들을 거치고, 자정이
가까운 시각에 마지막 골목 구석진 주루에 찾아들었을 때였다.
돌연 몇몇 안남은 술꾼들의 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흘러나
왔던 것이다.
"이봐! 장손영감의 아들이 집단자살한지도 벌써 십년두 넘었지?"
"응, 맞아! 아마 열 두해가 되었을거야, 오늘밤이 바로 그들
의 제삿날이니까."
"나아 참! 헌데 그 영감은 왜 여태 그리고 사는지 모르겠어!
난 영 그 집엔 얼씬거리기도 싫다니까."
"이것 봐! 그래서 사람이 한이 많으면 무섭다는게 아닌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백상인은 내심 어이가 없었다.
(알고보니 장손은 그냥 사람의 성이었잖아! 하긴 천하의 무
수한 성씨들 중에 그런 것이 없으리란 법이 없지. 그렇다면.....)
백상인은 즉시 그들에게 다가갔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술꾼은 바야흐로 음담패설에 한창 열을 올리려고 하다가, 웬
방해자가 나타나자 눈을 크게 떴다.
게다가 그 방해자가 천하에 다시볼 수 없는 절세미장부이자
그들은 아연 술이 깨는 듯한 표정이었다.
"웬일이슈?"
맨앞의 사람이 다소 존경어로 그렇게 물었다.
그는 백상인의 눈부신 기도와 깨끗한 옷차림에 흡사 귀한댁
자제로 여기는 듯 했다.
백상인은 정중히 예의를 갖추며 그들에게 말했다.
"소생은 여러분들게 한 가지 물어볼 말이 있는지라, 만일 여
러분들이 옳게 대답해 주시면 재가 술한잔을 크게 사겠습니다."
"아, 그래요?"
술꾼들에겐 무엇보다도 술갌대주는 사람이 반가운 법이다.
그들은 백상인이 행여 말을 취소할새라 얼른 말했다.
"물어보기나 하슈! 알고 있는 것은 모두 답해드릴테니."
백상인은 미소하며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아까 말씀하신 장손노인은 이름이 외자로 월이겠지요?"
술꾼들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만........ 그 장손노인이 어떻게 됐소?"
"그런게 아니라, 그분이 살고 있는 집을 가르쳐 주시면 고맙
겠습니다."
"그거야 뭐 어려울 것 없겠소?"
술꾼들은 아주 친절히 그 집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
"고맙습니다."
백상인은 정중히 말한 뒤 전표 한 잔을 그들에게 던져주었다.
"엉? 우리 이러구 있을게 아니라 이돈으로 멋진 기루에 한 번 가보세!"
"그러세! 기왕 시작한거 완전히 뿌리를 뽑아보세. 허! 어쩐
지 그 친구 귀공자답게 씀씀이가 커."
백상인은 그런 소리들을 들으며 주루를 나섰다.
그는 그 술꾼들이 그것을 하룻밤에 모두다 날리 것이란 사실
을 알았다.
여기는 항주이니까.
× × ×
장손월,
이제 그 의문의 비밀은 풀었다.
그것이 사람이름이라고 쉽게 생각못한 이유는, 글의 내용이
전혀 다르게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미치 그글에 대해 의문을 느끼고 누군가 찾아오기를 바란 것
같았다.
백상인은 이제 하나의 의문은 풀었지만, 그래서 궁금증은 더 깊어만갔다.
오래된 장원,
아니,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장원은 워낙 가꾸고 돌보지 않아 마치 폐장처럼 보였다.
그 장원은 항주성내에서 조금 떨어진 야산의 정상에 웅크린
채 자리하고 있었다.
멀리서 보자니, 그 모습은 마치 한 마리 검은 괴물이 웅크리
고 앉아있는 것 같았다.
이미 한밤중이라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제법 넓은 규모의 장원내부에는 불빛 한점 보이지 않았다.
(벌써 자는가? 그들의 말로는 오늘은 제삿날이라고 했는데..........)
백상인은 우선 잠행을 해볼까 하다가 예의상 대문을 두드렸다.
쾅쾅쾅..........
"주인 계십니까?"
"............"
처음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백상인은 문득 기이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하나도 없단 말인가?)
그의 육식통령에 달한 청력으로 사람이 있다면 그 기척을 알
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헌데, 잠시 후 분명한 기척이 들리기 시작했다.
(지하실?)
기관장치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
졌기 때문이다.
이윽고,
한 사람이 바끙로 나와 대문을 열었다.
삐이이걱.............!
대문은 이미 오랫동안 사용을 안했는지 움직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대문이 열리자, 거기엔 아주 쭈글쭈글 늙어보이는 흑의 노인
하나가 서 있었다.
노인의 머리도 이미 백발인데, 두 눈은 시퍼렇게 살아서 움
직이는 것 같았다.
"............"
노인은 문을 열고 잠시 아무도 없이 서 있기만 했다.
백상인은 오히려 괴이쩍은 기분이 들어서 그에게 정중히 포
권하며 말했다.
"노인장의 함자가 장손월 되십니까?"
"............."
흑의 노인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
시퍼런 귀화가 이는 듯한 시선으로 백상인을 맹렬히 쏘아보
고 있을 뿐이다.
백상인은 그 침묵을 긍정이라 생각하고 품속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내주었다.
이어 백상인이 양피지를 내밀자, 그것을 받아든 흑의 노인은
문득 두 눈에 기광을 발했다.
이어 백상인의 전신을 한차례 찬찬히 흝어보더니, 불쑥 말했다.
"따라 오시오."
말을 끝내자, 노인은 즉시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
백상인은 내심 기이한 느낌이 들었으나, 노인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노인은 행동거지 그대로 한이 많은 사람인 것이다.
백상인은 즉시 그의 뒤를 따랐다.
노인이 들어가는 곳은 역시 지하석실이었다.
어두침침한 지하로 계단은 곧장 뻗어 있었는데, 그 계단을
내려가자 위쪽의 문은 기관장치에 의해 자동적으로 닫혔다.
이 기관장치에는 몹시 정교한 솜시가 엿보였다.
그그그긍...........
계단 끝에 석문들을 열자, 그 안에 널찍한 지하석실이 나타
났다.
그런데 이 석실의 사방과 천정, 바닥은 온통 검은 천으로 휘
감아놓은 것이었다.
가뜩이나 으스스한 장원분위기인데 그런식으로 내부를 꾸며
놓자, 눅눅한 즉음의 습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석실의 중앙엔 하나의 계단이 마련되어 있고, 재단위엔 일곱
개의 위패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계단 양쪽을 밝히는 희미한 촛불 두 개,
그것이 석실을 다소 밝게 유지하는 유일한 것이었다.
석실안에 들어오자, 노인의 표정은 많이 누구러져 있었다.
"앉으시게!"
노인은 바닥에 너브러져 있는 방석들 중 하나라를 가리키며
말했다.
"예, 그럼........."
백상인은 자리에서 앉자, 노인은 그의 맞은편에 앉더니 문득
얘기를 시작했다.
"자넨ㄴ 당연히 의문이 많겠지. 허나 내 곧 그 의문을 모두
풀어주겠네. 내가 바로 그 검속에 양피지를 넣고 무맹으로 보
낸 장본인일세. 물론 그런데에는 그 양피지에 좀더 훌륭한 사
람이 의문을 갖고 찾아오길 바랬기 때문이지."
여기까지 말한 후, 노인은 백상인을 향해 물었다.
"자네는 무림인인가?"
백상인은 미소하며 말했다.
"특별히 무인이라고 할 것은 못되지만 어느 정도의 무공은
알고 있습니다."
"현 무림맹주에 비하면 어떤가?"
"글세요........"
노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솔직히 나는 그 검이 무맹주의 손에 들어가기리를 바랬었
네. 허나 기왕 인연이 그렇게 됐으니 하는 수 없지."
"..........."
이어 노인은 촛불 시선을 두며 설명을 계속했다.
"우리 장손가문은 대대로 대장장이의 가문이었네. 우리는 늘
풀무질을 평생의 업으로 살아왔고, 그로인해 나의 대에 이르러
서는 이렇게 번창할 수도 있었는데, 그놈만 아니었더라면 우리
가문은 대대로 번창했겠지."
"그놈이라 함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노인의 음성이 문득 거세졌다.
"내 자식을 한꺼번에 일곱이나 죽여버린 그놈을 말하는 거지."
그렇게 말하는 노인의 어조엔 한이 맺혀 있었다.
백상인은 눈을 크게 떴다.
"일곱이나요? 그럼 원수가 되겠군요?"
"그렇다 뿐인가? 그놈은 양의 탈을 쓴 악마라네."
"..........."
노인은 백상인을 바라보며 말을 계속했다.
"이미 십이년 전의 일이네. 당시 우리 가문은 번창하여 각곳
에서 주문이 들어오고, 나만해도 쇠를 다루는 솜씨는 신의 경
지에 달했다고 했거든, 게다가 나의 일곱 명의 아들들이 받쳐
주니 정말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네. 헌데 마가 끼인게야.
그놈이 항주에 나타난 것은..............."
"............."
"그놈은 한 마디로 희대의 색마라네. 당시 나의 일곱 아들들
은 모두 장가를 간뒤였지. 모두 어여쁜 아기들로 내 아들들이
끔찍히도 위했다네. 허허, 나도 그랬지. 그건 아마도 부전자전
이라고 할만했지........ 그런데 어느날 그 색마가 그 아기들
을 유혹해서는 끌고 가 버리고 말았다네."
"일곱 명 전부가 다 말입니까?"
백상인의 물음에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물론 내 아들들은 당장 달려가 며늘아기들을 내놓
으라고 따졌지. 목숨을 걸구 말이야! 헌데 그놈에겐 무공이 강
한 고수들이 많았다네. 결국 내 아들들은 놈들을 당하지 못하고.........."
여기에서 노인은 감정이 복받치는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긴
한숨과 함께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아들들은 거의 초죽음이 되어서 돌아왔네. 그리고 그날
로 자결하고 말았지."
"모두 자결했단 말입니까?"
백상인은 그렇게 몯자, 노인은 눈을 무릅뜨며 말했다.
"아니, 죽도록 사랑하는 아내가 모두 그지경이 됐는데, 자네
라면 자결하지 않겠나? 힘이 있다면 다르겠지만.........."
"무맹에 연락하면 되지 않습니까?"
백상인의 말에 노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의 힘은 너무도 무서운 것이었고, 그들에게 둘러싸여
우린 어디로 갈 수도 없었네. 내가 검속에 양피지를 넣어 흘러
보낸 것도 그때문이었지."
"..........."
백상인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대체로 그때의 상황을 알 것 같았다.
백상인은 제단위의 위패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저 위패들은 아드님들의........"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내가 어찌 복수를 안할 수가 있겠나?"
이어 그는 한쪽 벽면으로 걸어가더니 검은 휘장을 크게 젖혔다.
그러자 그자링넨 하나의 작은 석문이 드러났다.
그가 그 문을 열자, 거기에는 무수한 병기들이 쌓여 있는작은 석실이 보였다.
노인은 그 석실의 안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비록 말한대로 천하제일보검은 안되지만, 조상대대로 만들
어온 병기들이 거의 이 안에 있네. 자네가 원한다면 이것들을
다 가져도 좋아! 하지만 그 대가로 나를 도와주겠는가?"
백상인은 석실안을 슬쩍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허나 그것들을 제게 주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 백상인은 이미 병기가 필요없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가?"
노인은 잠시 백상인을 빤히 바라보더니, 돌연 달려와서 그의
앞에 큰절을 했다.
"도와준다니 고맙네!"
백상인은 급히 그 행동을 말렸으나 노인은 막무가내였다.
백상인은 노인이 자신에게 절을 함으로써 심리적인 족쇄를
채우려고 한다는걸 알았다.
병기가 필요없었다니까 대뜸 그런 꾀를 생각해낸 것이다.
허나 백상인은 미소했다.
무려 십이년가이나 기다리며 키워온 노인의 한이 얼마나 큰
가를 그는 내심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노인은 절을 마치자, 백상인에게 다시 말했다.
"원수를 갚으러 가는 것은 내일 할 일이네. 자네는 지금 내
게 무예를 한 번 보여주지 않겠는가?"
"그러지요."
백상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은아들들의 위패가 있는 곳이니, 우리 밖으로 나가면
어떻겠나?"
"좋습니다."
백상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은 앞장을 섰다.
지하석실의 위는 넓은 후원이었다.
한쪽에는 비록 다 썩어가는 물이지만 연못도 있었고, 무성한
잡초들 속에 모양이 형편없이 자란 정원수를,
그리고 그 옆에는 제법 괜찮아 보이는 가산도 자리잡고 있었다.
백상인은 그 가산앞에 서자, 커다란 바위를 찾았다.
이 노인을 안심시키려면 집채만한 바위 하나쯤 들어보이면
간단하리라 생각한 것이다.
헌데, 그러는 그의 시선에 문득 기이한 물체 하나가 보였다.
그것은 모양이 아주 넓으면서도 표면이 매끈한 것이 은은하
황금색을 띠고 있었던 것이다.
얼핏 보기에 그것은 크기가 매운 큰 듯, 가산 밑부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 전체모양이 확실하지 않은 것은 대부분이 가산 흙속에 파
묻혀 있기 때문이었다.
백상인은 매우 기잉하게 생각했다.
(저것은 재질은 황금도 아니고, 쇠도 아니다, 그러나 그 강
도는 능히 만년강모보다 더 강해보이는데.........)
은은하 광택까지 도는 그 재질은 백상인이 전혀 알지 못하던 것이었다.
백상인은 내심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중얼거렸다.
(저 위의 흙과 바윗돌들을 우선 치워볼까?)
일단,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그것을 즉시 실행해 옮겼다.
마음을 일으키자 진기가 일고, 그 진기는 무형의 거대한 힘
으로 화해 가산으로 덮쳐갔다.
고오오오오오............
단지 느낌이었을 뿐, 아무런 소리도 일지 않았다.
거대한 진기가 가산 전체를 휩싸고 돌자, 가산이 그대로 허
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우웅웅웅웅웅...............!
그 힘에 대한 여파도 주위의 공기가 떨리며, 강렬한 파공음이 일어났다.
흑의노인은 뒤쪽에 있다가, 희미하지만 그 광경을 보고는 눈
을 딱 부릅떴다.
"저, 저럴 수가..........!"
이어 백상인은 가산의 흙을 다른곳에 옮겨놓고 진기를 거두
자, 노인은 달려와서 백상인의 손을 잡았다.
"저, 정말 지금 펼친 것이 자네의 능력인가?"
"그렇습니다."
백상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노인은 문득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됐다, 됐어! 놈들은 이제 천벌을 받을거야. 암 받고말
고........."
노인은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면서 연신 그렇게 중얼거렸다.
백상인은 노인의 손을 가볍게 놓은 뒤, 앞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
백상인은 순간 눈빛을 깊게 빛냈다.
가산이 사라지고 난 그곳에는 전혀 엉뚱한 모양의 물체가 자
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황금빛의 둥근 원형이라고나 할까?
아니 그것은 밑으로도 뿌리가 깊게 박힌 것 같으니, 거대한
원구라고 해야할 것이다.
재질도 기이하면서도 형상을 갖추고 있는 이것은 대체 뭘까?
백상인은 매우 기이하게 여기고 있는데, 노인이 어느새 격정
을 거두고 입을 열었다.
"자네는 그돌에 매우 관심이 많은가 보군?"
"............"
백상인은 묵묵히 노인에게 시선을 던졌다.
"저건 사실 하늘에게 내려온 걸세."
"하늘이라고?"
백상인이 의아해 묻자, 노인은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하늘에서 가끔씩 떨어지는 운석과 같은 거지. 본
래는 아주 커다란 돌덩어리였는데, 그것이 개지면서 저 둥근
것이 드러난걸세."
"............"
노인은 말을 계속했다.
그 내용은 자못 신비했다.
"그 거대한 돌덩이가 떨어진 것은 아주 오래전이었다고 하
네. 나의 선조께서는 그 돌더이 속에 아주 좋은 쇠가 섞여 있
음을 알고, 이곳에 거대한 대장간을 차리고 안주했던거네. 사
실 우리 가문이 번창했던 이유는 그 돌덩이에 섞인 질좋은 쇠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 허나 이제 그 돌더이를 다써
버리고 저 둥근 돌만 나았지."
"저게 돌이라 말입니까?"
백상인이 묻자, 노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세........ 허나 쇠가 아닌 것은 분명할걸세. 사실 저것
이 드러난 것은 내대에 와서인데, 나는 저것을 부수고 녹이려
고 갖은 방법을 다 써보았네. 그런데도 전혀 흡집조차 낼수가
없었네. 그래서 나는 지것을 쇠보다 더 단단한 돌이라고 생각
한 걸세."
"그 크기는 어느 정도입니까?"
노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모르겠네."
백상인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제가 저걸 들어봐도 되겠습니까?"
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어차피 ........ 자넨 내게 받은 것이 없으니 아예
그걸 갖도록 하는게 어떻겠나?"
노인은 아까 백상인의 놀라운 무예를 본터라 어떡하든 마음
의 족새를 채우려는 의도였다.
허나, 백상인은 그에게 정중히 허리를 굽혀 사례했다.
"고맙습니다."
"고맙긴. 내일 나와 같이 가서 나를 도와주면 되네."
노인은 손을 휘휘 내젓더니 한쪽으로 멀찌감치 물러났다.
백상인은 다시 그 둥근 물체에 시선을 보냈다.
그가 노인에게 그토록 정중히 사례한 것을 깊은 호기심 때문
이었고, 그 보다는 어딘가 그 물체에 끌리는 마음이 있었기 때
문이었다.
백상인은 잠시 그 물체를 주시한뒤 다시 진기를 일으켰다.
웅웅웅웅웅웅-----------...............!
진기와 지면과의 마찰이 일어나면서 시작했다.
(아아........!~)
둥근 물체의 크기는 거의 작은 집채만했다.
그정도 크기면 바위는 십만근 정도의 무게가 나가겠지만, 백
상인은 그 무게가 족히 백만근은 된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노랬다.
그리고, 그 모양은 애초 예상했던 완전히 둥근 원구형은 아니었다.
그것은 계란형처럼 타원형을 생긴 겉표면이 아주 매끈한 물
체였던 것이다.
그것은 허공중에 떠오르자, 맑고 은은한 금빛 광태을 발했는
데 마치 거대한 황금알 같았다.
백상인은 그것을 한쪽에 내려놓고, 진기를 거둔 후, 그것에
가까이 다가갔다.
기이하게도 그토록 오래 흙속에 묻혀 있었을텐데도 표면엔
흙한점 묻어있지 않고 깨끗했다.
백상인은 그것은 손가락을 가볍게 퉁겨보았다.
쨍------................!
진기의 힘이 무의식중에 가해지자 맑은 쇠소리가 났다.
(분명히 쇠의 일종인 것 같은데...........)
백상인은 본래 천하에서 가장 호기심이 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호기심은 구도에의 본초적인 욕구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는 일단 호기심이 일었다 하면 다장 침식을 전패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그는 본래의 근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거대한 황금빛알이 정면에 정좌하고 앉은 채, 육식통령과,
온갖 능력을 동원하여 그 신비를 캐기 시작했다.
자신이 일단 짐작하면 못 푸는 신비가 없노라고........
처음 황금알이 완전한 형체를 드러냈을 때 노인은 그리 놀라
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하긴 그는 그것과 늘 붙어살다시피 해왔던 것이다.
노인은 오히려 그 황금알을 손도 안쓰고 들어올리는 백상인
의 신비무예에 더 놀라워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백상인이 황금알을 마주보고만 있자 그는 다시 지하석실로
내려가 버렸다.
× × ×
백상인은 처음엔 진기를 이용하여 황금알의 강도나 특성을
시험해 보았다.
쨍-------..............!
이 황금알의 표면의 강도는 실로 대단했다.
그는 진기를 최대한 가늘게하여 구멍을 뚫어보려 했으나, 진
혀 아무런 흠집도 낼수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것이다.
쉬중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만년강모도 그의 십갑자 내공이면
벌써 최소한 작은 구멍이라도 생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만해 이 황금알의 재질은 엄청나게 뛰
어난 강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특성은 그 재질구서잉 매우 순순하다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진기로 충격을 가했을 때 생겨나는 맑은 소리로써 알수 있는데,
그 맑은 음향은 옥이 굴러가는 소리보다 더 맑았다.
물론 웬만한 센 힘이 아니면 아무런 소리도 일으킬 수도 없지만..........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이 황금알의 재질은 이 세상에 다시
없을 만큼 우수하다는 결론인데, 그런데 이렇게 큰 것을 어디
에다 쓴다? 내힘으로도 안된는데 세상의 무엇으로 이형채를 파
괴시킨단 말인가?)
백상인은 내심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이 황금알은 전혀 쓸모가 없는 물건인 것이다.
백상인은 이 황금알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려다가 문득 한 가
지 생각을 떠올렸다.
(이것의 형태가 마치 알과 같으니, 정말로 한르에서 떨어진
진짜 알이 아닐까? 만일 이안에 생명체가 있다면.......)
그것은 전혀 가능성이 없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기도 했다.
허나 백상인은 웬지 황금알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했던 탓
에,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한 심정으로 그 생각에 매달렸다.
그는 즉시 진기를 거두고 마음의 눈을 떴다.
그것은 영규타통 이후 생겨난 육식통령 가운데 의통령이란 것이로,
백상인은 이것으로 인해 가끔씩 다른 사람의 심리상태를 들
여다 볼수가 있었던 것이다.
마음의 눈을 뜬다는 것은, 바로 그 의통령에 마음을 집중한다는 말이었다.
그는 의통령으로 황금알의 내부를 투시하기 시작했다.
황금알에 생명체가 있다면 능히 그 느낌을 읽을 수가 있을 것이다.
헌데, 결과는 정녕 엉뚱했다.
정말 예상치도 않은 결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어이없게도 그는 한 번 생각해본 그의 시도가 거의 맞아떨어졌다.
정말로 황금알 내부, 아니 전체에는 어떤 영적인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영은 완전한 것이 아니라 거의 반쪽만 해당하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완전한 정령이 깃들지는 않았으며, 황금알 전체가
반쯤은 생명이 있다고나 할까?
그러한 이치는 상상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분명한 것은, 이 황금알은 진짜 알처럼 내부에 생명이 있는
것이 아니고,
황금알 전체가 소가지 동일한 재질의 완전한 쇠라는 사실이었다.
(정말 신비로운 일이다! 살아있는 쇠라, 살아있는 쇠......)
백상인은 내심 중얼거리다가 문득 한 가지 충동을 느꼈다.
반쯤에 불과하더라도 정말 생명이 있는 쇠라면 스스로 활동
하는 어떤 능력이 있을 것이다.
그는 그 능력을 한 번 깨워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잠자고 있는 생명력에 힘을 준다는 말이지?)
힘에 대한 생각까지 일자, 백상인은 한 가지 결정에 도달했
다.
그것은 자신의 십갑자에 해당하는 내공을 저 황금알속에 주
입시켜 보자는 생각이었다.
일단 마음이 결정이 내려지자, 그는 곧 그것을 실해에 옮겼다.
번쩍-------.................
일순간 그의 전신이 황금빛 서광속에 둘러싸였다.
그것은 금단선공의 내공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모습,
그는 그 황금빛 진기를 황금알을 향해 뻗었다.
지러러러러렁............--------------!
최초엔 한차례 맑은 진동음을 일었다.
흡사 생명력이 잠에서 깨는 순간의 당황함이라고나 할까?
허나, 반발은 곧 사라졌다.
황금알이 그 순간 무서운 기세로 진기를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서 백상인은 문득 깯라아지는 사실이 있었다.
(이놈은 오직 금단선공에 의한 진기, 즉 완전한 선천의 진기
만을 선호하는구나! 만일 내가 연성한 신공이 천지양극귀원공
이었더라면, 이놈은 그 기운을 되퉁겨냈을 것이다.)
정말 쇠에게 그러한 영성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면,
백상인은 진기를 주입시키는 순간, 정신적인 느낌으로 그 사실
을 확실히 알아차렸다.
황금알이 진기를 흡수하는 속도는 매우 빨랐다.
마치 오랫동안 굶주렸던 생명체가 그 공복감과 기갈을 한꺼
번에 채우려고 서두르듯이.........
백상인은 다소 당황할 정도였다.
그러나 백상인은 무한히 진기가 이는 체질이라 아무런 불안
감이나 걱정도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황금알이 흡수하는대로 진기를 주입시켰다.
언젠가 결말이 있으리란 생각으로.........
헌데 그러한 추측은 옳았다.
황금알은 진기를 받으면서 점점 광채를 강하게 뿌리기 시작했으며,
신기가 황금빛 곳곳에 점차로 채워져가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진기의 흡수속도가 점차 줄어들더니,
돌연 어느 한순간 그 흐름이 뚝 끊겼다.
그것은 마치 황금알 전체가 이젠 진기로 완전히 충만되어 더
이상의 진기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
그때였다.
돌연 황금알 전체가 눈부신 황금빛을 찬란하게 토하기 시작
했다.
번--------쩍-----------!
백상인은 그 순간 황금알속에 열려 있는 생명력과 어떤 영적
인 교감을 느꼈다.
뭐라고 설명하기 곤란한.........
굳이 말하자면, 황금알의 생명력은 백상인의 존재를 인정하
고 그를 주인으로 섬기려는 태도가 역력하다고나 할까?
게다가 그 순간 황금알은 자신의 신비한 능력에 대해 영적으
로 백상인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이렇소 하는.........
백상인으로서는 그런 영적교류가 처음이었으면서도 정말 신
비롭게 여겨지는 일이었다.
드디어,
충분한 영적교류가 끝났을 때, 백상인은 눈을 떴다.
그리고는 그는 진기를 거두었다.
따라서 그의 모습은 다시 평법해진데 반하여, 황금알은 여전
히 찬란한 광채를 뿌리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생명력이 눈을 크게 뜨고 만개한 것 같았다.
백상인은 그 모습을 보고 미소했다.
미소하면서 그는 나직하게 말했다.
"네가 나를 주인으로 택한 것은 인연이다. 너는 쇠로 태어났
으니 나를 위해 무엇이 되어야 할지..........? 아! 나는 내게
달리 병기가 필요없을줄 알았었다. 그런데 너를 보니 너는 꼭
나의 병기같구나! 그중에서도 검, 너는 검이 되어라."
백상인은 말을 하는 동시에 그 영감을 황금알속에 강렬하게 보냈다.
그 순간, 그야말로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찌러러렁----------!
황금알이 한차례 맑은 울음을 토하더니, 동글던 형태가 길쭉
하게 변모하는게 아닌가?
백상인은 진기로 아무리 공격해도 흠집하나 일지 않던 것에
비하면, 그러한 변화는 마치 환상처럼 여겨졌다.
황금알의 변환느 서서히 이루어졌다.
길쭉하게 되어가더니, 그것은 점차 검의 형상을 닮아갔다.
그 변화는 물론 백상인의 영적인 지시에 의한 것으로, 마치
거짓말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윽고, 검의 형상은 완전하게 이루어졌다.
양쪽 날이 투명하고 예리한 검신과 검봉, 그리고 동일한 재
질의 검자루까지...........
다만 그 크기가 너무도 컸다.
검봉에 검자루의 끝까지는 무려 길이가 십장이나 됐으니...
백사인은 다시 영력을 보냈다.
(작아져라!)
순간, 황금검은 놀라운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슈슈슈슈슈슈..........
십장에서 일장, 일장에서 다시 일척, 그리고 마침내는 한치
정도의 아주 작은 크기가 되었다.
한치 정도의 크기라면 고작 세끼손가락만한 길이이다.
그토록 거대하던 황금알이 그렇게 작아졌다는 사실은 믿을
수가 없는 일이나, 그 믿을 수 없는 일은 지금 현실화 되고 있
는 것이다.
사실, 크기가 한치 정도에서 멈춘 것도 백상인이 내심 그만
하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백상인은 아주 작게 변한 황금검을 집어들었다.
비록 작게 변했지만, 그 무게는 여전히 백만근이었다.
무게는 백만근이나 되면서도 아주 작게 변한 그것은 마치 장
난감처럼 보였다.
헌데 황금검은 여전히 눈부신 광채를 토하고 있었다.
이에 백상인은 내심 말했다.
(광채를 숨기자!)
그러자 역시 거짓말처럼 황금검은 빛을 완전히 거두고 은은
한 광택만을 발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렇게 해서 한치 정도 크기의 완전한 황금검이 되어버린 황금알,
백상인은 그것을 바라보며 내심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훌륭한 병기를 얻게 됐어! 이것은 이름을 그냥 금검이라고
하자............!)
이제 필요할 때 다만 크기만 조종하면 되는 것이다.
백상인은 그 금검을 품속에 잘 갈무리하고, 진기를 움직여
가산의 패인 부분을 메웠다.
그리고 지하석실을 향해 신형을 옮기기 시작했다.
흑의 노인을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 × ×
흑의 노인은 아들드의 위패앞에 구부리고 앉아서 혼자 묵상하고 있었다.
그는 진심으로 아들들의 영혼의 극락왕생을 빌며 복수심을
재다짐하는 것이었다.
백상인은 그 복수심이 너무 외골수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가 없었으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자신도 그런 적이 있다면 분노심부터 끓어오를게 뻔한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제삼자의 입장인 지금도 은근히 분노심을 느끼고 있었기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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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봅니다..^^
즐감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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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즐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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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