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공책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등장하는 메모들에서, 노르위지언 우드를 읽는 필적들에서, 내가 거기서 악역들에 의문을 품는―나가사와 선배와 돌격대, 무명씨에 관한―관념들, 그것들에 남겨진 독서의 흔적들을 곱씹지만, 그런것이 이후 특정 형태의 결과물로 이어질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고, 그러하다가 들어오는 생각이 문장을 직접 써보는 것이었고 거기에서 또 나오는 것이 번역을 직접 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본어를 자유자재 구사하며 살 만한 곳에서 생활한 산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일본어 단어는 꽤 암기하고 있었다(87년 나는 그간 일본 유학을 대비해서 일어공부를 열심히 한 결과, 지바현의 한 대학교―현재 디자인업계에서 매우 유명한 예대―로부터 면접 초청서한을 받은 이력이 있다). 그런 연고로 나는 과문하지만 무라카미 씨의 소설을 영어책으로 시작하게 됐다(류 무라카미의 소설들도 마찬가지). 어쨌거나, 내게 그의 첫 책이었던 상실의 시대 이후, 그때에는 내가 근미래에 그의 소설을 그렇게나 많이 읽게 될 줄 전혀 몰랐다. 나는 양을 쫓는 모험 을 반을 넘기지 못하고 몇 장 읽다 말았고, 그래서 최초로 다 읽은 그의 첫 소설은 상실의 시대 에게 돌아간다.
이천오년, 그리고 다음 책으로 카프카 온 더 쇼오, 해변의 카프카 를 인상 깊게 읽게 된다. 곧바로 노르위지언 우드 를 다시 읽었고, 이후 어느 때엔가 와일드 쉽 체이스 를 다시 읽었을 것이다 확실한 시기가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과 왠지 비슷한 인상을 내게 심어준 스트레인지 라이브러리, 이상한 도서관에 더 큰 관심을 두게 되는 걸 기억한다, 중편이다).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영역본 카프카 온 더 쇼오와 국역본 해변의 카프카 사이에는 명백한 오역이 분명한 곳이 있다. 국본이 옳은 번역어가 사용된 책이라고 나는 판단하지만, 두 가지 도착어 사이에서 나의 갈등을 휘발시킨 사실은 그들이 구문 혹은 의미 상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점이다 어떤 걸 넣어도 완전한 문장을 구성했다―두 가지 말이 원문장 하나를 발원하여 파생하고 있었다. 필립 가브리엘이 번역한 영역본에서, 그것의 일본어 출발어는 도마뱀이었는데,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그것이 말이에요, 한밤 교교히 내리는 달빛을 등에 망토처럼 업은 도마뱀, 어둠 속에 명백한 희미하게 윤기 도는 도마뱀을 그려 넣은 화상을 상상하는 독자의 시상에는 그 생명체가 가지는 눈부신 존재감이 꽤 평온한 기분의 기호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