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교육열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정작 진로 교육은 어디에도 없다. 스펙을 쌓기 위한 취업 사교육이 빈자리를 채운 까닭이다. 현장의 진로 교사 및 진로 전문가들을 만나 진로 교육의 올바른 방향을 알아봤다.
PART 1 진로 교육 없는 아이들, 안녕하십니까?
진로 교육 없는 현실
한국고용정보원이 2010년 전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 조사 결과 30.2%가 ‘취업 희망 직종이 없다’고 답했고, 그 이유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잘 몰라서’라는 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힘들게 대학에 입학한 후 전공과목을 바꾸거나 편입을 하고, 아예 수능을 다시 치러 재입학을 하는 대학생들이 적지 않다. 취업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바늘구멍을 뚫고 취직을 해도 금방 그만두거나 직업을 바꾼다.
방황하고 흔들리는 청춘들이 꿈을 찾는 사이,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든다. 비싼 등록금과 각종 스펙을 쌓기 위한 과외 비용은 경우에 따라 연간 수천만 원에 달한다. 학교교육에서 배우지 못하는 지식과 기술을 학원에서 습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희망 직업과 전공이 일치하면 학점 관리와 자격증 취득의 방법으로 취업을 준비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제2외국어 공부, 해외 유학 등 비용이 더 많이 드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부모가 생각을 바꿔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조사 결과 진로나 직업을 선택할 때 아이들의 80% 이상이 부모의 영향을 받는다. 반대로 적성을 찾는 과정에서 부모의 영향을 받는 아이들은 극히 일부분이다. 부모의 조바심이나 간섭은 진로를 탐색하는 과정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
아이가 내 뜻대로 움직여야 한다거나 아이의 진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자녀가 관심을 갖는 분야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알아가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마음 편하게 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가 되어주는 것만으로 진로 교육의 첫 단추는 끼운 셈이다.
무엇보다 꿈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부모 시대의 잣대로 아이의 직업을 결정하면 몇 가지 정답을 강요하게 된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정보를 습득해야 자녀에게 직업과 진로를 조언할 수 있다. 순천향대학교 청소년교육상담학과 송병국 교수는 부모의 역할을 강조한다.
“10년 전 장래가 유망해 보였던 직종도 지금은 치열한 경쟁 속에 안정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재 인기 직종이 10년 후에 존재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결국 어떤 직업을 갖느냐가 아니라 어떤 일을 잘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한 가지 유념해야 할 부분은 특정 직업을 어린 시절부터 결정짓는 방식의 진로 교육은 좋지 않다는 겁니다. 아이의 특성을 파악하고 커다란 가이드라인을 잡아나가야 합니다.”
편견을 버리고 자립을 도와주자
부모가 하는 진로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편견을 버리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자녀가 사회의 주역이 되는 시기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 뒤이다. 부모 시대의 잣대로 현재 직업 세계를 바라봐도 편견을 벗기 힘든데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더더욱 쉽지 않다. 결국 아이의 특성을 파악하고 아이의 꿈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는 지능검사보다 발달 평가, 정서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종합 심리 평가를 받으면 정서, 인지, 사회성은 물론 부모와 자녀 관계 등도 알 수 있다. 자아 개념이 형성되고 흥미가 분명해지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기에는 진로 검사를 추천한다. 진로 검사를 맹신하면 안 되지만 꿈을 찾는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다. 중학교 진학 후에는 자녀 소질과 관심사를 바탕으로 탐색해야 한다. 고등학교 진학 이후에는 세부적인 계획을 짜고 실행한다. 아이의 꿈은 언제나 바뀔 수 있지만 어린 시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온 아이라면 진짜 원하는 일을 찾는 훈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의 흐름에 맞춰 꿈을 수정할 수 있다.
“세상은 계속 바뀌고 직업도 바뀌기 마련입니다. 중요한 것은 자립력이에요.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 진로 교육의 목적입니다. 자립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맡아도 잘 수행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 점을 유념한다면 아이 진로 교육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 진로 상담 및 진로 검사 기관 사이트
1 워크넷(www.work.go.kr) 취업 및 직업 선택과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으며 원격 직업 상담 및 직업 심리검사를 받을 수 있다. 해외 구인·구직 신청도 가능하다.
2 에듀넷(www.edunet4u.net) 진학 상담, 청소년 고민 상담, 교직·교권 상담에 유용하다. 진로 성숙도 검사를 받고 그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3 커리어넷(www.careernet.co.kr) 진학과 취업을 포함한 각종 진로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진로 설계를 위한 검사 서비스를 제공한다.
4 ㈜어세스타(mbti.career4u.net) 심리검사 및 평가 센터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전문 기관으로 MBTI, 스트롱 등의 검사를 해준다. 전국에 청소년 상담 기관을 두고 있다.
5 노동부(www.moel.go.kr) 구인, 구직 정보와 취업·채용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직업 사전, 직업 선택 가이드, 유망 직업 안내 등의 유용한 메뉴도 활용 가능하다. ‘직업 흥미검사’를 받으면 곧바로 검사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선진국의 진로 교육, 뭐가 있나?
덴마크 9년 담임제
평생 교육 체제를 실시하고 있는 덴마크는 대부분 9년제 기초학교를 의무적으로 다닌다. 이후 일반 고등학교인 김나지움이나 기술직업학교 등을 선택해 진학한다. 기초학교 9년 동안 한 명의 담임교사가 아이들을 담당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아이를 지켜봐온 만큼 담임교사의 진로 지도가 효과적이다.
학생들은 6학년부터 9학년이 되면 자신의 교육, 진로와 관련한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을 포트폴리오 형태로 작성한다. 이 포트폴리오는 법적 의무 사항이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 청소년진로지도센터 관계자들이 함께 참여해 포트폴리오를 끊임없이 수정해나간다.
재능 확장은 ‘웅돔스쿨’이 담당한다. 음악, 미술, 스포츠공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된 웅돔스쿨은 기초학교 반경 10㎞ 이내에 개설되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고, 덴마크 청소년은 무상으로 다닐 수 있다. 엄청난 사교육비가 들어가는 과정을 학교에서 대신해주기 때문에 자유롭게 미래를 꿈꿀 수 있다.
기초학교에서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학생에게는 1년간 진로 탐색 기간을 제공한다. 김나지움이나 기술직업학교 진학 전, 1년 동안 집을 떠나 합숙 생활을 하면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아일랜드 전환 학년제
한때 우리나라 못지않게 입시 경쟁이 치열했던 아일랜드는 1974년 ‘전환학년제’를 도입했다. 전환학년제의 핵심은 원하는 학생들이 1년간 진로를 고민하고 직업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중등 과정에서 고등 과정으로 진학하기 전 1년간 전환학년제를 통해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다. 교과 구성은 학생과 학부모의 수요를 반영해 영화, 예술, 무술, 사진, 요리 등 다양한 과목을 넣는다. 영어, 수학 등 필수과목은 토론이나 에세이, 보고서 등 색다른 방식으로 배운다.
전환학년제의 과목 구성은 크게 실기 과목, 필수과목, 현장 실습, 선택과목으로 나뉜다. 이 중 선택과목이 진로 탐색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상담교사가 학교에 상주해 아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미국 빅픽처 스쿨
‘빅픽처 프로그램’은 1996년 로드아일랜드 주 프로비던스 고등학교에서 처음 시작된 학생별 맞춤 수업이다. 학생들이 학교 밖 현실 세계에서 학문적인 능력과 기술을 익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졌다. 개인별로 작성된 학습 계획에 따라 이론 공부와 인턴십 체험을 하고 딱딱한 수업 대신 흥미를 유발하는 프로젝트 수업으로 진행된다. 정규 과목도 가르치지만 정해진 교과는 없다. 한 반에 14명 소수 정예로 운영되기 때문에 학생 맞춤형 눈높이 교육이 가능하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미국 60개 주와 세계 각국 40여 개 학교에서 적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