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나1:7)
The LORD is good, a refuge in times of trouble. He cares for those who trust in him. NAHUM 1:7
아론 테이보(Aron Tabor)의 Jesus Daily 중 한 구절이다. 규장에서 2017년 번역 출간했다.
이 본문의 역사적 배경은 앗수르가 유다를 침공했을 때 벅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그때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 "내가 알고 있다" 였다.
'아신다'로 번역된 동사는 영어 'NRSV 는 'protects' 를, NIV 는 'cares for' 를 사용한다. 그 외에도 'know', 'notice' 등이 사용된다.
공동번역은 아래와 같다.
나훔 1:7–8 (NCTB): 당신을 바라는 사람이 곤경에 빠졌을 때,
잘 보살펴 주시고
당신께 몸을 숨기는 사람이 물결에 휩쓸렸을 때,
돌보아주시지만,
당신께 맞서는 자는 없애버리신다.
당신을 대적하는 자는 빛 없는 곳으로 몰아내신다.
예수님도 동일한 맥락의 말씀을 요한복음에서 하신다.
요한복음 10:27 (KRV):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 ...... .....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 그것도 내가 곤경에 빠진 것을. 예수님은 이 상황을 양과 목자의 개념으로 설명하신다. 양이 빠질 곤경은 다양하다. 무리 지어 다니다가 다른 양에게 밟히거나 떠밀릴 수 있다. 무리에서 낙오되어 길을 잃고 헤맬 수도 있다. 늑대를 만나 묵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과 처지를 목자는 알고(know) 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 처한 양을 돌(care for)본다. 늑대로부터 보호(protect)한다. 그래서 주님은 선한 목자(good shepherd)이시다.
구약의 특정한 역사적 상황을 배경으로 기록된 나훔서의 기록을 예수님은 당시의 정황에 맞게 재해석하고 적용하신다. 피난처 되시는 여호와의 이미지가 선한 목자의 이미지로 변화한다. 하지만 본질은 그대로다. 어려움에 빠진 것을 즉각 인지하고(notice) 조치를 취(protect, care for)하신다. 그래서 여호와는 선(good)하시다. 선한 목자가 되신다. 주님은 그래서 우리의 목자장이 되신다. 여기서 우리는 성육신과 삼위일체의 신비를 맛본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을 고백한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
'외아들'은 사실 '독생하신'으로 바꾸어야 맞지만 우리는 '외아들' 이라고 쓰고 읽지만 '독생하신' 으로 받아들인다.
아론 테이보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인다.
"마음이 힘들 때 당신이 느끼는 감정을 모두 알아채기는 어렵다. 더구나 그 감정들을 처리하는 방법을 아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물론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 감정을 쏟아놓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속으로 억누를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이 그 감정을 묻어두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감정을 묻어두면 거기에서부터 당신의 삶에 비통함과 질투와 시기가 싹튼다."
"When your heart is troubled, it can be hard to sort out all that you’re feeling. And it can be harder still to know what to do with those emotions. You don’t want to unleash them on those around you, the people you care about. But you know you can’t keep them bottled up inside. And God doesn’t want you to bury them — that’s how bitterness, jealousy, and envy sprout into your life."
앗수르의 침공이 '곤경'이라는 일반화된 말로 바뀌었다. 이 곤경은 개인에게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며 국가의 존망이 달린 문제이다.
전쟁의 상황이 아닌 곳에서 이 곤경은 재산이나 건강, 사회적 지위 혹은 명예의 문제로 비쳐진다. 여러 형태의 삶의 어려움이다. 친척이나 친구들 같은 주변 사람들은 이 상황을 알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돕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선한 목자는 양을 돌보는 일이 곧 자신의 일이다. 다읫의 말처럼 목숨을 걸고라도 사자와 맞서 싸운다. 그리고 사자의 입을 벌려 양을 구한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는 오직 하나님 뿐이다. 성도들에게 주님은 목숨을 버려 자신을 구하는 선한 목자다.
현대인은 감정과 정서적 심리의 문제가 심각하다. 스트레스가 큰 적이다. 이것을 잘 해결하지 못하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따뜻한 위로의 말 한 마디가 절실하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동일하다. 사회적 지위나 명성도 이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 유명하면 유명할수록 중압감과 강박감은 더 심하다. 이 모든 문제들이 안으로 쌓인다. 그리고 폭발의 순간까지 팽팽한 긴장을 야기한다. 그렇다고 폭발이 해결책도 아니다. 서서히 순리대로 감정과 스트레스를 내보내야 한다. 우리 안에 앗수르의 군대가 꽉 차있는 셈이다.
이렇게 아론 테이보도 이 말씀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적용한다. 우리는 나훔서를 읽든 요한복음을 읽든 테이보의 글을 읽든 동일한 위로와 은혜를 받는다.
그리고 말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나의 산성과 요새시요 선한 목자십니다. 나의 모든 고통과 번민을 다 아십니다. 나를 돌보시고 환난에서 건지십니다. 위로와 평강이 오직 그분한테서만 나옵니다. 나의 주님이십니다."
https://youtu.be/gk5fEWkX8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