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의 노여움 [출전]『한비자(韓非子)』세난편(說難篇) [내용]“용은 상냥한 짐승이다. 가까이 길들이면 탈 수도 있다. 그러나, 턱 밑에는 지름이 한 자나 되는 비늘이 거슬러서 난 것이 하나 있는데, 만일 이것을 건드리게 되면 용은 그 사람을 반드시 죽여 버리고 만다. 군주에게도 또한 이런 역린이 있다.”그러므로, 이 말에 연유하여 군주의 노여움을「역린(逆鱗)」이라 한다.
[참고]중국에는 용에 관한 전설적 이야기가 많다. 용은 물론 가상적 동물이지만 봉(鳳), 인(麟), 귀(龜)와 더불어 사령(四靈)이라 하여 영물로 실재화하여 생각하였다. 용은 특히 비늘 달린 짐승 중 으뜸가는 것으로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몰고 온다고 여겼다. 그리고 군주를 용에 비겨서 용상(龍床)이니 용안(龍顔)이니 하여 그 권위와 존엄성을 높이기도 하였다. 전국 시대에 한비(韓非)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현실주의적인 법가(法家)였다. 그는 군신간의 모해와 온갖 불법 등을 직시하면서 전국 시대의 난국을 이겨낼 국가적 대계를 강구하고 있었다.
☞힘은 산을 뽑을 만 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만 함, 영웅의 기개를 뜻함 [동]발산개세(拔山蓋世)
[출전]『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 [내용]項羽가 劉邦에게 포위되었을 때,「항우가 밤에 일어나서 진중에서 술을 마실 때 옆에 아름다운 부인이 있는데 이름은 우(虞)라. 항상 항우를 따라다녔다.준마(駿馬)의 이름은 추( )라, 항상 이것을 타고 다니니라. 이에 항왕이 이에 슬픈 노래를 불러 탄식하고 스스로 시를 지으니 그 시에 말하되‘힘이 산을 뽑음이여! 기운이 온 누리를 덮을 만하도다. 때가 이롭지 아니함이여! 준마도 달리지 않도다. 준마도 달리지 아니함이여! 어떻게 할까? 우미인이여! 우미인이여! 어찌할꼬!’노래를 몇 차례 부르다가 끝나고 우미인이 화답하니, 항왕이 눈물을 줄줄 흘리니라.옆에 있는 신하들이 다 소리를 내어 우니, 이것을 차마 볼 수 없을 지경이더라.」
[출전]『열자(列子) 』 [내용]주나라에 윤씨 부자가 있었다. 그는 많은 일꾼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한 늙은 일꾼은 새벽같이 일어나 밤늦게까지 힘겹게 일했다. 기력이 다한 나이인데도 쉴 겨를은 조금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밤만 되면 녹초가 되어 잠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늙은 일꾼은 매일 밤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은 자신이 임금이 되는 꿈이었다. 밤만 되면 그는 한 나라의 만백성 위에 군림하는 임금이 되는 것이었다. 나라를 다스리는 한편 궁전에서 주연을 베풀어 마음껏 마시고 산해진미를 즐겼다. 그러다가 잠이 깨면 한낱 일꾼이 되어 고된 일에 시달려야 했다.
어떤 사람이 측은히 여겨 위로의 말을 해주자 늙은 일꾼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일생 중 반은 낮이고 반은 밤입니다. 나는 낮에는 남의 집에 매인 일꾼의 몸이어서 괴롭고 고단한 신세지요. 하지만 밤에는 꿈에서 임금이 된답니다. 그 즐거움은 무엇에도 비길 수 없습니다. 그러니 무엇을 원망하겠습니까?”
반면 주인 윤씨는 떵떵거리며 윤택한 생활을 하면서 지냈지만 많은 재산을 관리하려다보니 마음은 그리 편치 않았다. 밤에 눈을 붙였다 하면 영락없이 꾸는 꿈이 자신이 남의 집 일꾼이 되는 것이었다. 밤새 힘겨운 일에 시달리다가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그제야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 괴로움을 친구에게 털어놓자 친구는 말했다.
“꿈속에서 남의 일꾼이 되어 받는 고통은 낮에 누린 즐거움의 대가가 아니겠는가. 깨어 있을 때와 꿈꿀 때가 같지 않은 것이 운명의 이치라네.”
[출전]『맹자(孟子) 』 이루상(離婁上) [내용]맹자의 제자 공손추가 물었다. 군자가 자기 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입니까? 공손추는 공자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았음이 궁금해 물었다. 맹자가 말하기를 형편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바르게 하라고 가르친다. 바르게 하라고 가르쳐도 그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자연 노여움이 따른다. 그러면 도리어 부자간의 정이 상하게 된다. 이에 자식은 아버지는 나를 바르게 하라고 가르치지만 아버지 역시 바르게 못한다고 느낀다. 그러기에 옛날 사람들은 자식을 서로 바꿔 가르쳤다.
부자간에는 잘못했다고 책하지 않는 법이다. 잘못을 꾸짖으면 서로 정이 난다. 정이 멀어지면 그보다 더 큰 불행이 어디 또 있겠는가? 라고 답했다.스승도 자기 자식은 못 가르친다는 말이다. 즉, 자기 자식을 직접 가르치면 부자지간에 서로 노여움이 생기고 감정이 상하게 되는 등 폐단이 많아지므로 다른 사람과 서로 자식을 바꾸어 가르친다는 뜻으로 쓰인다.
[출전]《맹자(孟子)》 〈이루(離婁)〉 [내용] 중국의 전설적인 성인인 하우(夏禹)와 후직(后稷)은 태평한 세상에 자기 집 문 앞을 세 번씩 지나가도 들어가지 않아서 공자(孔子)가 이들을 매우 훌륭하게 생각하였다.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는 어지러운 세상에 누추한 골목에서 물 한 바가지와 밥 한 그릇으로만 살았는데, 공자는 가난한 생활을 이겨내고 도(道)를 즐긴 안회를 칭찬하였다.
맹자는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같은 뜻을 가졌는데, 하우는 물에 빠진 백성이 있으면 자신이 치수(治水)를 잘못하여 그들을 빠지게 하였다고 여겼으며, 후직은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스스로 일을 잘못하여 백성을 굶주리게 하였다고 생각하였다.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처지를 바꾸어도 모두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禹稷顔子易地則皆然]"라고 하였다. 맹자는 하우와 후직, 안회의 생활방식을 통하여 사람이 가야 할 길을 말하였다. 입장을 바꾸어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헤아려보라는 말이다.<네이버백과>
[예문] ▷ 그러나 없는 사람이 잇는 사람과 어울리면 병정 노릇이나 하는 것 같은 일종의 굴욕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겠고, 또 그렇게 구칙칙하거나 더럽게 굴지 않고 자기의 자존심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 취할 모라고, 아직 경력 없는 덕기건만 돌려 생각도 하는 것이었다. <염상섭, 『三代』> 중에서
▷ 역지사지해서 생각해 본다면, 내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적대관계가 계속되면 한반도 평화가 흔들린다. 정치권부터 적대관계를 넘어서야한다. 야당이 얘기하는 데 대해 여당이 역지사지해 볼 필요가 있다. 야당도 마찬가지로 하면 거리가 좁혀지지 않을까 싶다.<2006 문화일보>
[출전]『蔡邕傳』/『長恨歌』 [내용]후한의 채옹(蔡邕)은 본성이 독실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어머니가 병으로 눕자 3년동안 계절이 바뀌어도 옷한번 벗지 않았으며 잠자리에 들지 않은 것이 70일이나 되는 때도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집옆에 초막을 짓고 모든 행동을 예에 맞도록 하였다. 그 후 채옹의 집 앞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자랐는대, 점점 가지가 서로 붙어니 나중에는 나무 결까지 하나가 되었다한다. 여기서 나온 연리지(連理枝)라는 말은 지극한 효심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후대에는 이말이 부부간의 지극한 사랑을 뜻하는 말로 쓰였는데 백낙천의 장한가에 나온다. 그가 태어났을 때는 대당제국(大唐帝國)의 영화(榮華)가 차츰 기울기 시작했을 때였다그것은 현종(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로맨스 때문이었다. 楊貴妃에 빠진 玄宗이 정치에 뜻을 잃었던 것이다. 둘의 로맨스가 워낙 유명했으므로 그는 詩를 지어 노래했는데 그것이 유명한『장한가(長恨歌)』다.생전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이 언약했다고 한다."7월 7일 장생전에서/깊은 밤 사람들 모르게 한 맹세/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하네/높은 하늘 넓은 땅 다할 때 있는데/이 한 끝없이 계속되네."
[예문2]그때 소학·통감·논어·맹자·중용·대학 그리고 시경(詩經)·서경(書經)·주역(周易) 등 경서들을 두루 섭렵하셨다. 그러나 신학문이 대두되는 시대의 흐름에 밀려 아깝게도 연마장양(硏磨長養)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타고난 성품의 청징(淸澄)함 그대로 담담하게 세상을 사셨다<나의 아버지라는 글 中에서>
☞나무에 인연하여 물고기를 구한다. 목적이나 수단이 일치하지 않아 성공이 불가능하다. 또는 허술한 계책으로 큰 일을 도모한다. [동]上山求魚(상산구어) : 산 꼭대기에서 물고기를 구하려하다. /射魚指天(사어지천) : 물고기를 쏘려는데 하늘에다 겨눔,모처럼의 수고가 수포로 돌아감,구하는 방법이 잘못됨[출전]<說怨> /乾木水生(건목수생) : 마른 나무에서 물을 짜내려함. [속담] 썩은 새끼로 범 잡기. /거북이 잔 등의 털을 긁는다.
[출전]『孟子』 梁惠王章句上篇 [내용]:제나라 선왕은 맹자에게 이렇게 청했다. "춘추 시대의 패자(覇者)였던 제나라 환공(桓公)과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패업( 業)에 대해 듣고 싶소." "전하께서는 패도에 따른 전쟁으로 백성이 목숨을 잃고, 또 이웃 나라 제후들과 원수가 되기를 원하시옵니까?" "원하지 않소. 그러나 과인에겐 대망(大望)이 있소." "전하의 대망이란 무엇이오니까?" 선왕은 웃기만 할 뿐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맹자 앞에서 패도를 논하기가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짐짓 이런 질문을 던져 선왕의 대답을 유도했다. "전하,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옷이, 아니면 아름다운 색이 부족하시기 때문이오니까?" "과인에겐 그런 사소한 욕망은 없소." 선왕이 맹자의 교묘한 화술에 끌려들자 맹자는 다그치듯 말했다." 그러시다면 '영토를 넓혀서 진나라나 초나라를 굴복시키고 중국에 군림하여 사방의 오랑캐를 진압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것으로써 이와 같은 원하는 것을 구하려 한다면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잘못된 방법으론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말을 듣자 선왕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토록 무리한 일이오?" "오히려 그보다 더 심하나이다.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일은 물고기만 구하지 못할 뿐 후난(後難)은 없나이다. 하오나 패도를 쫓다가 실패하는 날에는 나라가 멸망하는 재난을 면치 못할 것이옵니다." 선왕은 맹자의 왕도정치론을 진지하게 경청했다고 한다.
[예문] ▷큰 정부를 지향하면서 그 정부가 효율적으로 일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와도 같다. 파킨슨의 법칙이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데다 미국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지적대로 ‘정부의 활동이 커지면 국민과 기업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2006 대전일보>
▷ 스웨덴 선거 결과를 “성장주의의 승리다. 복지를 깎아야 한다”는 것은 참여정부를 흠집내려는 연목구어(緣木求魚) 억지춘향에 불과하다. 김기식=“보수는 부패하지만 유능하다”는 주장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2006 경향신문>
☞솔개(鳶)가 날고(飛) 물고기(魚)가 뜀(躍)-하늘에 솔개가 날고 물 속에 고기가 뛰노는 것과 같은 천지조화의 오묘한 작용
[출전]『시경(詩經)』 대아(大雅) 한록편(旱麓篇)
[내용]" 산뜻한 구슬 잔엔/황금 잎이 가운데 붙었네/점잖은 군자님께/복과 녹이 내리네/솔개는 하늘 위를 날고/고기는 연못에서 뛰고 있네/점잖은 군자님께서/어찌 인재를 잘 쓰지 않으리오"
솔개가 하늘에서 날고 고기가 연못속에서 뛰고 있다는 것은 성군(聖君)의 다스림으로 정도(正道)에 맞게 움직여지는 세상을 표현한 것이다. 새는 하늘에서 날아야 자연스러운 것이며, 물고기는 물에서 놀아야 자연스럽다. 이는 천지의 조화 바로 그 자체인 것이다.
퇴계(退溪) 선생은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에서 천지만물의 자연스런 운행을 이렇게 노래했다. "春風(춘풍)에 花滿山(화만산)하고 秋夜(추야)에 月滿臺(월만대)로다. 四時佳興(사시가흥)이 사람과 한가지라 하물며 魚躍鳶飛(어약연비) 雲影天光(운영천광)이야."
봄바람이 산 가득 꽃을 피우고, 가을 밤 달빛이 환히 비추는 것은 어긋남이 없는 우주의 질서이고, 사계절의 아름다운 흥취와 함께 함은 자연과 합일된 인간의 모습이다. 게다가 솔개가 하늘을 날고 물고기가 못에서 뛰노니 이는 우주의 이치가 잘 발현된 상태다. 연비어약(鳶飛魚躍)은 만물이 우주의 이치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모습들을 집약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 무책임한 일을 저질러 직장을 잃은 그는 전공인 불어를 살려 어학원인 ‘씨에 프랑스’에 다시 입사했다. 그러고도 마치 연하고질(煙霞痼疾)과도 같이 여행을 못 잊은 그는 씨에 프랑스에서도 여행사업을 맡아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유럽여행 패키지를 개발, 성공을 거두면서 여행업계에서 승승장구했다. <2006 세계일보>
☞뜨겁고 차가운 세태. 권세가 있을 때에는 아첨하여 쫓고 권세가 떨어지면 푸대접하는 세속의 형편. [속담]달면 삼키고」쓰면 뱉는다--자기에게 이로우면 따라붙고 불리하면 배척하는 이기적인 사람을 두고 하는 속담이다. 배가 고프면 붙고 배 부르면 떠나며 따뜻하면 모여들고 추우면 버리는 것이 세상인정의 공통된 병폐이다『채근담』
[예문] ▷ 평민이었을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다가 높은 벼슬에 오르니까 온갖 아첨과 문안 인사가 들어오니 염량세태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 공경대부 이하로 만조백관은 모두 다 염량세태를 따르고 이욕에 붙좇는 무리들이다.≪박종화, 다정불심≫
▷ 특별검사제를 둘러싼 논란만큼 정치권의 무원칙과 염량세태 (炎凉世態) 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도 별로 없을 것이다. 야당시절에는 특검제를 도입하자고 그렇게도 조르다가 여당이 되면 그야말로 얼굴에 철판 깔고 반대로 돌아선다. 그 역 (逆) 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앙일보>
▷ 지난 5년간 참여정부 핵심부에 있었던 인사들이 학교로 돌아갑네, 총선에 출마합네, 하나 둘 보따리를 싸고 있다. 그에 비해 당초 180명으로 시작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는 열흘도 채 안돼 총원 500명을 넘어설 정도로 사람이 넘쳐난다고 한다. 권세있는 곳에 사람이 몰려들고 권세가 떨어지면 떠나는 염량(炎凉)세태의 모습이다.<2008.1 경향신문>
[내용]석가모니가 가섭(迦葉)에게 세 곳에서 불교의 진수(眞髓)를 전했다[三處傳心].불교 선종(禪宗)의 근본적인 선지(禪旨)인데, 이는 다자탑전분반좌(多子塔前分半座), 영산회상거염화(靈山會上擧拈花), 사라쌍수곽시쌍부(沙羅雙樹槨示雙趺)라는 용어로 표현되고 있다.
① 다자탑전분반좌:다자탑은 중인도 비사리성(毘舍離城) 북서쪽에 있다. 이 탑은 어떤 장자(長者)가 산에 들어가서 도를 닦아 깨달은 뒤에, 그의 아들딸 60명이 아버지가 공부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라고 한다. 석가가 그 곳에서 설법하고 있을 때 가섭이 누더기를 입고 뒤늦게 오자 여러 제자들이 그를 얕보았다고 한다. 그러자 석가는 자기가 앉아 있던 자리 절반을 가섭에게 양보하여 거기 함께 앉도록 하였다. 이것이 첫 번째로 마음을 전한 것이다.
② 영산회상거염화:석가가 중인도 왕사성(王舍城) 북동쪽 10리 지점에 있는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을 하고 있을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 석가가 그 꽃송이 하나를 들어 보이자, 제자들이 모두 무슨 뜻인지를 몰라 어리둥절해 하는데 가섭만은 빙그레 웃었다. 이에 스승은 “바른 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포하였다.
③ 사라쌍수곽시쌍부:석가가 북인도 쿠시나가라성[拘尸羅城] 북서쪽의 사라수(沙羅樹) 여덟 그루가 둘씩 마주서 있는 사이에 침대를 놓게 하고 열반(涅槃)하자, 그 숲이 하얗게 변하였다. 가섭이 스승의 관 주위를 세 번 돌고 세 번 절하자, 관 속으로부터 두 발을 밖으로 내밀어 보였다는 것이다. 선종에서는 이를 교외별전(敎外別傳)의 유일한 근거라고 하여 매우 중요시한다.
☞영화롭고 마르고 성하고 쇠함. 개인이나 사회의 성하고 쇠함이 서로 뒤바뀌는 현상.=흥망성쇠 興亡盛衰
[예문] ▷ 영고성쇠를 거듭하다
▷ 이 고장 백성들은 유달리 영고성쇠의 무상함을 깊이 느껴 종교에 귀의하려는 마음들을 지니게 됐대요.≪유재용, 성역≫
▷ 국가경제의 영고성쇠 (榮枯盛衰) 는 세계사의 굽이굽이에 펼쳐져 있는 일이라 하나도 낯선 일이 아니다.그리고 이러한 영고성쇠를 결정짓는 요인도 대내외 환경변화라는 도전에 응전하는 한 사회의 시대정신, 지도자의 비전, 개혁의지 등이었다는 것도 낯선 일이 아니다.<중앙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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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포 한 자락
임자, 나는 도포자라기 펄렁펄렁 바람에 날려 하늘가로 떠도는 누가 꿈인 줄 알았을라꼬. 임자는 포란 물감. 내 도포자라기의 포란 물감. 바람은 불고 정처없이 떠도는 도포자라기. 우얄꼬, 물감은 바래지는데 우얄꼬, 도포자라기는 헐어지는데 바람은 불고 지향 없는 인연의 사람 세상 임자, 나는 도포자라기. 임자는 포란 물감. 아직도 펄럭거리는 저 도포자라기. 누가 꿈인 줄 알았을라꼬.
[내용]춘추전국시대에 초(楚)나라의 도성인 영 사람이 연(燕)나라의 재상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다.
해질 무렵이라 눈앞을 밝게 하려고 옆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이에게 일렀다. “촛불을 높이 들어라.” 그런데 붓을 든 채 얘기하다가 그만 무심결에 그 말도 편지에 써 넣고서는 아무 생각없이 그대로 편지를 띄우고 말았다.
편지를 받은 연나라 재상은 문장 가운데 촛불을 들라는 문구가 있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다. 잠시 생각하다가 연의 재상은 이윽고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
“이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요체이다. ‘촛불을 들라’는 것은 밝음을 존중하라는 것으로 바로 현자를 천거하여 임용하라는 말이구나.” 연의 재상은 곧바로 왕에게 이 뜻을 진언했고 왕도 기꺼이 이 말에 찬성하여 실행에 옮기었다. 잘못 쓰여진 문구 덕분에 나라가 잘 다스려지게 된 것이다. 이 고사로 말미암아 ‘등불을 들어라’는 현인을 천거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두산백과>
☞꼬리를 진흙 속에 끌고 다닌다. 부귀를 누리면서 구속된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비록 가난하더라도 자유로운 생활을 누리는 것이 낫다.
[출전]『장자(莊子)』 추수편(秋水篇) [내용]초(楚)나라 왕이 어느 날 사람을 보내어 낚시를 즐기고 있는 장자를 청하였다. 그러나 장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음과 같이 물었다.
"초나라에는 3천년 묵은 죽은 거북을 계단으로 싼 상자 안에 넣어 묘당(廟堂) 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고 듣고 있소. 거북이의 생전에 자신이 그렇게 죽어서 소중히 간직되길 바라겠소? 아니면 살아 꼬리를 진흙 속에 넣고 끌고 다니기를 바라겠소(曳尾塗中)?"
"물론 진흙 속에 꼬리를 넣고 끌고 다니길 바랐겠지요." 이렇게 대신이 대답하자 장자는 말했다. "그렇다면 이제 얘기가 된 것 같소. 나 역시 진흙 속에 꼬리를 넣고 다니는 길을 택하겠소."
■오리무중五里霧中 [다섯 오/마을 리/안개 무/가운데 중]
☞5리가 온통 안개 속이다. 찾을 길이 막연하거나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출전]『後漢書』 [내용]후한(後漢) 순제(順帝) 때, 학문이 뛰어난 장해(張楷)라는 선비가 있었다. 순제가 여러 번 등용하려 했지만 그는 병을 핑계 대고 끝내 출사(出仕)치 않았다.
장해(張楷)는 '춘추(春秋)' '고문상서(古文尙書)'에 통달한 학자로서 평소 거느리고 있는 문하생만 해도 100명을 웃돌았다. 게다가 전국 각처의 숙유(夙儒)들을 비롯하여 귀족, 고관대작, 환관(宦官)들까지 다투어 그의 문을 두드렸으나 그는 이를 싫어하여 화음산(華陰山) 기슭에 자리한 고향으로 낙향하고 말았다.
그러자 장해(張楷)를 따라온 문하생과 학자들로 인해 그의 집은 저자를 이루다시피 붐볐다. 나중에는 화음산 남쪽 기슭에 장해(張楷)의 자(字)를 딴 공초(公超)라는 저잣거리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장해(張楷)는 학문뿐만 아니라 도술(道術)에도 능하여 쉽사리 '오리무(五里霧)'를 만들었다고 한다. 즉 방술(方術)로써 사방 5리에 안개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장해(張楷)는 성격이 도술을 좋아하여, 능히 5里 안의 안개를 지을 수가 있었다. 그때에 관서(關西) 사람인 배우(裵優)가 또한 능히 3里의 안개를 일으킬 수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장해(張楷)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제자로 들어가 배우기를 바랬지만 장해(張楷)는 모습을 숨겨서 그를 보려고 하지 않았다.
오리무중이란 말은 본래 장해가 일으킨 5리의 안개에서 나온 말인데, 그 뜻이 확대되어 방향이나 갈피를 잡지 못하거나 일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경우를 뜻하게 되었다.
[원문]張楷 性好道術 能作五里霧 時關書人裵優亦能爲三里霧 自以不如楷從學之 楷避不肯見
[예문] ▷ 살인 사건이 여전히 오리무중 상태이다.
▷ 범인의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 심찬수는 거기서부터 추리가 막히고 오리무중에 빠져 드는 느낌이었다.≪김원일, 불의 제전≫
▷ 80년 8월 17일 비상계엄 확대 과정과 5.18 광주에서 발포명령 허가 등과 관련해 최 전대통령의 행적도 오리무중입니다. 80년 8월 대통령직 하야를 결정하면서 누구로부터 어떤 압력과 회유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진실은 가려져 있습니다. <2006 MBC 뉴스>
▷ 문동환은 이미 플레이오프를 통해 기용법이 공개된 터지만 팔꿈치 통증을 호소한 류현진과 송진우가 앞으로 몇 차전. 어느 시점에 등판할지는 오리무중이다.<2006 스포츠서울>
[예문] ▷ 초생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한등(客窓寒燈)에 정든 임 그리워 잠 못 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 잡은 무슨 한(恨)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은 보아 주는 이가 별로이 없을 것이다.--나도향 수필 <그믐달>
▷ 젊은 계집이 그렇게 된 연유가 따지고 보면 조성준 자신의 팔자 소관이 아니겠는가. 계집과 옹기그릇은 혼자 두거나 바깥으로 내돌리지 말라지 않았던가.최가와 일행이 되어 오매불망(寤寐不忘)으로 계집을 찾아 나선 지 3년. 이제 그 여한을 푸는 마당에 생각보다는 몸이 따라 주지 않는 것이 무엇에 연유하는 지 막연하고 슬펐다.--김주영 소설 <객주>
▷ 김창완(84.대구시 달서구 본리동)옹은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그러나 김옹은 오매불망 그리워했던 동생 창욱(81)씨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믿을 수가 없어요'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인터넷연합뉴스>.
▷ “남원서 올라간 후 사또가 낙사(落仕)하셔 다른 곳을 못하시고, 봉적(逢賊)하고 실화(失火)하야 가세는 탕패하고 나는 아무 경황 업서 춘향 생각이라. 책 펴도 춘향 생각, 붓 잡아도 춘향 생각, 밥 먹어도 춘향 생각, 잠잘 제도 춘향 생각, 할 수 없어 폐공하고……. (중략)
☞사람의 다섯가지 행실. 즉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또는 「서경」에 나오는 五典說 ( 父義, 母慈, 兄友, 弟恭, 子孝), 또는 「맹자」에서 말하는 五倫 [참고1]四大門
(北)
弘智門(王)
│
(西) 敦義門 ─ 普信閣─ 興仁門 (東)
│
崇禮門
(南)
[참고2]: 제야(除夜)의 종소리 : 한 해의 마지막 날 밤에 온 세상에 울려퍼지는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 고유의 행사이다. 보신각의 종을 33번 타종하는 것은, 저승에서 사는 악마로부터 이승의 모든 사람 그리고 부처님에 이르기까지 그 모두가 33체라는 불교 관념에 기인한다. 고려 때부터 시작된 과거에서 33인을 뽑는 것이나, 기우제 때 동자 33명으로 하여금 빌게 하는 것도 모든 백성의 마음을 대표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아침에 33번을 치는 것은 4×8방위에 절대자 1을 의미하고, 저녁에 28번을 타종하는 것은 저녁 하늘에 뜨는 별자리수를 의미한다.
☞오십보 도망한 자가 백보 도망한 자를 비웃는다. 조금 낫고 못한 차이는 있지만 본질은 같은 것. [유]五十笑百(오십소백) /大同小異(대동소이) : 거의 같고 조금만 다르다. 본질적으로 같다. /彼此一般(피차일반) : 저것이나 이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다같다. /走逐一般(주축일반) [속담] 누렁이나 검둥이나 그 놈이 그 놈이다.
[출전]『孟子』, 梁惠王上篇 [내용] : 孟子가 어느 날 유세(遊說)차 魏나라에 가니 양혜왕(梁惠王)이“심혈(心血)을 기울여 정치를 했으나 어찌 이웃나라 백성은 줄지 않고 나의 백성은 많아지니 않습니까?”하고 물었다.
맹자가「“왕께서 싸움을 좋아하시니 전쟁에 비유하겠습니다.
북이 둥둥 울려 병사들의 칼날이 부딪쳤을 때 갑옷과 무기를 버리고 어떤 자는 100보를 도망하다가 멈추고 어떤 자는 50보를 도망하다가 멈췄습니다.
만일 50보 도망한 자가 100보 도망한 자를 보고 비웃는다면 어떻습니까?”하고 되물으니 혜왕이“100보를 도망한 것은 아니지만 이것 또한 도망한 것이니 도망한 것은 마찬가지지요”라고 대답하였다.
"그걸 아셨다면 전하, 백성들 구호하시는 전하의 목적은 인의의 정치와 상관없이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지향하는 이웃 나라와 무엇이 다르옵니까?" 혜왕은 대답을 못 했다. 이웃 나라와 똑같은 목적을 가지고 백성을 구호한 것을 진정으로 백성을 생각해서 구호한 양 자랑한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예문] ▷ 국내의 경제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마치 도산 직전에서 철종에 이어 대권을 쥔 대원군의 조선 내정이나 오십보백보이다.≪유현종, 들불≫
▷ 환경보전주의자들 중에는 적정 환경 오염의 개념에 대하여 아주 언짢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마치 많이 훔쳤든 적게 훔쳤든 도둑질은 다 나쁜 짓이지 적당히 훔치는 도둑질이라고 괜찮을 수 없듯이, 환경을 오염시키는 행위는 그 자체가 나쁜 짓인데 무슨 적정한 환경 오염이 있느냐는 것이다. - 이정전, <녹색 경제학>
▷ '강압적인' 검찰이나,'거짓말'만 일삼는 변호사나,뿌리깊은 '전관예우'의 그릇된 관행에 빠져 있는 법원이 잘해봤자 오십보 백보차이로 비쳐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2006 한국경제>
▷ 김지수의 말처럼,여성스러움을 벗기 위해 현재 아끼고 아껴온 긴 생머리를 싹둑 자를까 고민중이다. 단발머리 정도로는 어차피 오십보백보. 그래서 짧은 커트머리를 구상중이란다.--<스포츠투데이>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한 배에 타고 있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원수라도 협력하게 된다. 전혀 뜻이 다른 사람들이 한자리에 있게 됨. [동]오월지쟁(吳越之爭) 오월지사(吳越之思) [유]同舟濟江(동주제강) : 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즉 원수라도 한가지 일을 위해서는 돕게 된다. /同舟相救(동주상구) : 이해관계에 얽혀 있으면 자연히 돕게 된다 [속담] 원수도 한 배에 타면 서로 돕게 된다.
[출전]『손자孫子』 [내용]: 吳의 합려(闔閭)와 越의 윤상(允常)이 서로 원한이 있었고 윤상이 죽자 그의 아들 구천(句踐)이 오나라를 침략하여 합려를 죽이고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에게 구천이 회계산에서 항복당하여 서로 물리고 무는 관계로 오나라와 월나라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었다. 손자(孫子)가 말하기를“병(兵)을 쓰는 법에는 아홉 가지의 지(地)가 있다. 그 구지(九地) 중 최후의 것을 사지(死地)라 한다. 주저 없이 일어서 싸우면 살길이 있고, 기가 꺾이어 망설이면 패망하고 마는 필사(必死)의 지(地)이다. 그러므로 사지에 있을 때는 싸워야 활로(活路)가 열린다.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필사(必死)의 장(場)에서는 병사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필사적으로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유능한 장수의 용병술(用兵術)은 예컨대 상산(常山)에 서식하는 솔연(率然)이란 큰 뱀의 몸놀림과 같아야 한다. 머리를 치면 꼬리가 날아오고 꼬리를 치면 머리가 덤벼든다. 또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벼든다.
이처럼 세력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 옛부터 서로 적대시해 온 '오(吳)나라 사람과 월(越)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타고[吳越同舟]' 강을 건넌다고 하자.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큰 바람이 불어 배가 뒤집히려 한다면 오나라 사람이나 월나라 사람이나 다 같이 평소의 적개심(敵愾心)을 잊고 서로 왼손, 오른손이 되어 필사적으로 도울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전차(戰車)의 말[馬]들을 서로 단단히 붙들어 매고 바퀴를 땅에 묻고서 적에게 그 방비를 파괴 당하지 않으려 해봤자 최후에 의지(依支)가 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의지(依支)가 되는 것은 오로지 필사적으로 하나로 뭉친 병사들의 마음이다."
[원문]夫吳人與越人은 相惡也나 當其同舟而濟라가 遇風이면 其相救也는 如左右手니라
[예문] ▷ 표현의 방식은 다르지만 영남을 근거지로 하는 한나라당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설령 `오월동주'가 되더라도 17대 대선 승리의 주역들이 다시 한 지붕 아래로 모여야 한다는 점에 일정부분 공유된 인식의 틀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2006 연합뉴스>
▷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서울 방문 가능성에 대한 국내외의 관심이 지대하다.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위원장은 오월동주(吳越同舟) 관계에 들어갔다. 김대통령은 지금까지의 노선을 계속 달릴 수밖에 없는 처지다. 반면 김위원장은 한국 측의 약속위반, 배신등을 이유로 정책노선의 수정 변경이 가능하다.[동아일보]
☞까마귀가 모인 것 같은 무리. 질서없이 어중이 떠중이가 모인 군중을 뜻한다. 또는 제각기 보잘 것 없는 수 많은 사람. 임시로 모여들어서 규율이 없고 무질서한 병졸 또는 군중 [동]烏合之衆(오합지중) [속담]어중이 떠중이
[출전]『후한서(後漢書)』 경감전(耿龕傳) [내용]전한(前漢) 말, 대사마(大司馬)인 왕망(王莽)은 평제(平帝)를 시해(弑害)하고 나이 어린 영(孀)을 세워 새 황제로 삼았으나 3년 후 영(孀)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국호를 신(新)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잦은 정변과 실정(失政)으로 말미암아 각지에 도둑떼가 들끓었다.이처럼 천하가 혼란에 빠지자 유수(劉秀) 는 즉시 군사를 일으켜 왕망(王莽) 일당을 주 벌(誅伐)하고 경제(景帝)의 후손인 유현(劉玄)을 황제로 옹립(擁立)했다.
이에 천하는 다시 한나라로 돌아갔다. 대사마가 된 유수가 이듬해 성제(成帝)의 아들 유자여(劉子輿)를 자처 하며 황제를 참칭(僭稱)하는 왕랑(王郞)을 토벌하러 나서자, 상곡(上谷) 태수 경황(耿況)은 즉시 아들인 경감(耿龕)에게 군사를 주어 평소부터 흠모하던 유수의 토벌군에 들어 갔다. 그때 손창(孫倉)과 위포(衛包)가 갑자기 행군을 거부하는 바람에 잠시 동요가 있었 다. "유자여는 한왕조(漢王朝)의 정통인 성제의 아들이라고 하오. 그 런 사람을 두고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이오?" 격노한 경감(耿龕)은 두 사람을 끌어낸 뒤 칼을 빼들고 말했다. "왕랑은 도둑일 뿐이다. 그런 놈이 황자(皇子)를 사칭하며 난을 일으키고 있지만,내가 장안(長安:陝西省 西安)의 정예군과 합세해서 들이치면 그까짓 '오합 지졸(烏合之卒)'은 마른 나뭇가지보다 쉽게 꺾일 것이다. 지금 너희가 사리(事理)를 모르고 도둑과 한패가 됐다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면치 못하리라."
그날 밤, 그들은 왕랑에게로 도망치고 말았지만 경감(耿龕)은 뒤쫓지 않았다. 서둘러 유수의 토벌군에 합류한 경감(耿龕)은 많은 무공을 세우고 마침내 건위대장군(建威大將軍)이 되었다. 우리가 돌격 기병대를 일으켜 써 오합지중(烏合之衆)을 치는 것은 썩 은 고목을 꺾고 썩은 것을 깎음과 같을 뿐이다.
[원문]發突騎以徊烏合之衆 如 枯腐耳
[예문] ▷ 역시 짐작한 대로 민당은 수만 많았지 기율이 없는 오합지졸에 불과했다.≪현기영, 변방에 우짖는 새≫
▷ 한 치라도 어긋나갔다는 자칫 오합지졸이 되기 십상인 이 교향곡에서 오케스트라의 각 파트들은 서로 오랜 호흡을 바탕으로 완벽하게 앙상블을 이루어 나가면서도 각자의 독자적인 소리를 당당하게 내세웠다.<2006 연합뉴스--공연리뷰>
▷ 구심점이 견실하지 않은 열린우리당 의원들로서는 덜컥 탈당했다가 자칫 오합지졸이 되는 상황을 걱정해 쉽게 움직이지 못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2006 동아일보>
[동]玉石同碎(옥석동쇄)./ 玉石同櫃(옥석동궤) /玉石俱焚(옥석구분) : 옥과 돌이 함께 탐. [속담]냉이에 씀바귀 섞이듯 했다. /죄 지은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
[출전]『포박자(抱朴子)』 [내용]: 晉나라 사람 갈홍(葛洪)의 저서 『포박자(抱朴子)』는 내편(신선의 도를 기술)과 외편(정치와 도덕)으로 되어 있다. 외편 상박(尙博)에“세상 사람들이 천박한 시부(詩賦)를 즐기는가 하면 제자백가(諸子百家)의 글을 가볍게 여기며 이로운 말을 어리석은 말로 여기고 헛되고 달콤한 말에는 기뻐한다. 그러므로「참과 거짓이 바뀌고 옥과 돌이 한 데 뒤섞여 있으며 상동을 광악과 마찬가지로 여기고 풀로 엮은 옷을 용무늬의 옷과 같은 것으로 여긴다. 」모두가 태연한 것은 진실로 한탄할 일이다.”라고 하였다.
☞독창성 없이 전 시대인의 것을 모방만 함을 경계.불필요하게 일을 거듭함 [동]옥상가옥 屋上架屋
[출전]『世說』 [내용]魏는 蜀과 吳를 멸하여 천하를 통일한 후 국호를 晉이라 고치고 낙양에 도읍을 정하였다. 낙양에 유중(庾仲)이라는 시인이 양도(揚都-南京)의 아름다운 풍경과 융성함을 노래한 시를 지었다.
양도는 오 나라의 도읍지였는데 이미 멸망한 후 이지만 양자강을 앞에 두고 뒤로는 우람한 산이 있어 풍광이 매우 아름답고 번화한 도시로서 강남의 중심지였다. 이러한 도시를 노래한 것으로 양도부(揚都賦)를 지었는데 그 표현이 특히 절묘하다는 평판을 들었다. 사람들은 앞을 다투어 이 시를 베끼어가는 바람에 낙양의 종이 값이 껑충 뛰었다.
그런데, 사태부(謝太傅)라는 고관이 있어 그 시를 보더니,“무얼 그런 따위 시를 가지고 떠드는가. 그런 시는 마치 지붕 밑에다 또 지붕을 만들어 놓은 것같이 같은 것을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라며 비웃었다.
[참고]낙양지가귀 [洛陽紙價貴] : 책이 호평을 받아 잘 팔리는 것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예문] ▷ 공청회 과정에서 정부는 행정으로 가능한 일을 굳이 법제정을 해 오히려 옥상가옥을 만든다고 비난했다.<2006 전자신문>
▷ 산별노조는 재계의 지적처럼 노동귀족을 위한 놀이터일까. 교섭비용만 증가시키는 옥상옥(屋上屋)일까. 세계적인 추세에 역행한다는 경영계와 세계 추세를 따르는 것이라는 노동계의 주장 중 누가 맞는 것일까.<2006 서울신문>
▷ 기존의 정보기관이나 경찰 조직도 관료적인데 여기에 다시 옥상옥을 만들었으니 최대의 관료주의가 탄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2006 한국경제>
[예문]송순 <면앙정가> ▷ 草木(초목) 다 진 후의 江山(강산)이 매몰커날 造物(조물)이 헌사하야 氷雪(빙설)로 꾸며내니 瓊宮瑤臺(경궁요대)와 옥해은산이 眼底(안저)의 버러세라.乾坤(건곤)도 가암열사 간 대마다 경이로다." →초목이 다 진 후에 강산이 묻혔거늘 조물주가 야단스러워 빙설(氷雪)로 꾸며 내니, 경궁요대와 옥해은산이 눈 아래 펼쳤구나. 자연도 풍성하구나.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경치로다
☞옛 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안다. 옛 것을 익혀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지식과 도리를 발견하다 [유]博古知今(박고지금) :옛 것을 널리 알면 오늘날의 일도 알게 된다./以古爲鑑(이고위감) : 옛 것을 거울로 삼는다. 즉 옛 성현의 말씀을 거울로 삼아 행동하다. /學于古訓(학우고훈) : 옛 성왕들의 가르침을 공부하다. / 鑑古감고 : 과거에 비추어 오늘의 본보기로 삼음. [참고]記問之學 不足以爲人師(기문지학 부족이위인사)--피상적인 학문은 이로써 남의 스승이 되기에는 부족하다(『禮記』 學記篇) / 法古創新 :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創造)한다는 뜻으로, 옛것에 토대(土臺)를 두되 그것을 변화(變化)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어 가되 근본(根本)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
[출전]『論語』 [내용]「공자게서 말씀하시기를“옛 것을 복습하여 새 것을 아는 이라면 남의 스승이 될 만하다.” 주(注)에 보면 온(溫)은 심(尋)이라 하였다. 곧 찾는다는 말이다. 무엇을 찾았는가? 다시 주를 보면 심(尋)은 석고(釋故)라 하여 옛 것을 읽고 풀이하는 것이라 하였다. 다시 말하면 온고지신이란 옛 학문을 되풀이하여 연구하고, 현실을 처리할 수 있는 새로운 학문을 이해하여야 비로소 남의 스승이 될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원문]子曰 溫故而知新이면 可以爲師矣니라
[예문] ▷ 과거에서 이어 온 것을 객관화(客觀化)하고, 이를 비판하는 입장에 서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 비판을 통해서 현재(現在)의 문화(文化) 창조(創造)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만을 우리는 전통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 양말을 기워 신고,보릿고개를 넘으며 제삿날에나 고깃국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생존'에 급급했던 세상이 이제 '삶의 질'을 따지는 쪽으로 변했지만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은 잊지 말자고 지은이는 당부한다. <2006 부산일보--책세상>
▷ 논배미의 웅덩이, 생울타리와 토담, 마을과 나무, 숲 등을 살피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조상들의 지혜를 확인한다. 그리고 우리 시대의 최고의 화두인 환경 살리기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의미있는 교훈을 전한다.<2006 매일경제--채널돋보기>
☞달팽이의 뿔 위에서 하는 싸움. 매우 사소한 일로 다툼. 작은 나라끼리 싸움. [원]蝸牛角上之爭(와우각상지쟁)[동]와우각상蝸牛角上/와우지쟁蝸牛之爭/와우상쟁蝸牛相爭/[유]蠻觸之爭(만촉지쟁)
[출전]『莊子』 [내용]전국시대 양나라 혜왕은 중신들과 맹약을 깬 제나라 위왕에 대한 응징을 논의했으나 의견이 분분했다.혜왕은道家者流(도교를 믿고 닦는 사람)인 戴晉人(대진인)에게 물었다.대진인은 이렇게 말했다."달팽이라는 미물의 왼쪽 촉각위에는 觸씨라는 자가 오른 쪽 촉각위에는 蠻씨라는 자가 각각 나라를 세우고 영토를 다투어 죽은자가 수만이고 도망가는 적을 추격한지 15일만에 전쟁을 멈추었습니다.
전하 이 우주에 사방 상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마음을 그 무궁한 세계에서 노닐게 하는 자에게는 사람이 왕래하는 지상의 나라 따위는 있는 것도 같고 없는 것도 같은 하찮은 것입니다. 그 들 나라 가운데 위나라가 있고 위나라 안에 대량 개봉이라는 도읍이 있고 그 도읍의 궁궐안에 전하가 계시옵니다.이렇듯 우주의 무궁에 비한다면 지금 제나라와이 전쟁을 시작하려는 전하와 달팽이 촉각위에서 촉씨,만씨가 싸웅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대진인이 물러가자 싸울 마음이 싹 가신 혜왕은 이렇게 말했다"그 사람은 성인도 미치지 못할 대단한 인물이오"
[예문] ▷ “蝸牛角上爭何事 (달팽이 뿔 위에서 무슨 일을 다투리요)石火光中寄此身 (석화 빛 속으로 이 몸을 기대노라)”<백거이>
▷ 밖에 나가게 되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우리의 현주소는 어딘지,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를 보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신들이 지금 국내에서 사생결단하는 일들이 달팽이 뿔 위의 싸움(蝸角之爭 와각지쟁)만큼이나 하찮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다.<2004 국민일보 칼럼>
▷ 그나마 쟁점으로 떠오른 서청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 번복과 ‘내각 참여론’ 논란도 와각지쟁(蝸角之爭)의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2003 한국일보>
☞섶에 누워 자고 쓸개를 맛본다. 원수를 갚기 위해 괴롭고 어려운 일을 참고 견디다. [유]漆身呑炭(칠신탄탄) : 몸에 옻칠을 하고 숯불을 삼키다. 복수를 위해 자기 몸을 괴롭히다./ 회계지치(會稽之恥),/ 절치액완(切齒扼腕)이를 갈고 팔을 걷어붙이며 벼름/절치부심 (切齒腐心)이를 갈며 속을 썩임[속담]송곳니가 방석니 된다.
[출전]『史記』 [내용]춘추 시대, 월왕(越王) 구천(勾踐)과 취리[절강성 가흥(浙江省嘉興)]에서 싸워 크게 패한 오왕(吳王) 합려(闔閭)는 적의 화살에 부상한 손가락의 상처가 악화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B.C. 496). 임종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夫差)에게 반드시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갚으라고 유명(遺命)했다.
오왕이 된 부차는 부왕(父王)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섶 위에서 잠을 자고[臥薪]'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부왕의 유명을 외치게 했다.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때마다 부차는 임종 때 부왕에게 한 그대로 대답했다. "예, 결코 잊지 않고 3년 안에 꼭 원수를 갚겠나이다." 이처럼 밤낮 없이 복수를 맹세한 부차는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안 월왕 구천은 참모인 범려(范 )가 간(諫)했으나 듣지 않고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월나라 군사는 복수심에 불타는 오나라 군사에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가 포위하자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범려의 헌책(獻策)에 따라 우선 오나라의 재상 백비(伯 )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청원했다. 이때 오나라의 중신 오자서(伍子胥)가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구천을 쳐야 한다'고 간했으나 부차는 백비의 진언에 따라 구천의 청원을 받아들이고 귀국까지 허락했다.
구천은 오나라의 속령(屬領)이 된 고국으로 돌아오자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嘗膽] 회계의 치욕[會稽之恥]을 상기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밭 갈고 길쌈하는 농군이 되어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회계의 치욕의 날로부터 12년이 지난 그 해(B.C. 482) 봄, 부차가 천하에 패권(覇權)을 일컫기 위해 기(杞) 땅의 황지[黃地:하남성 기현(河南省杞縣)]에서 제후들과 회맹(會盟)하고 있는 사이에 구천은 군사를 이끌고 오나라로 쳐들어갔다. 그로부터 역전(歷戰) 7년만에 오나라의 도읍 고소[姑蘇:소주(蘇州)]에 육박한 구천은 오와 부차를 굴복시키고 마침내 회계의 치욕을 씻었다. 부차는 용동[甬東:절강성 정하(定河)]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의 호의를 사양하고 자결했다. 그 후 구천은 부차를 대신하여 천하의 패자(覇者)가 되었다.
[참고1]嘗糞--항복 후 勾踐이 겪어야 했던 수모는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때 그림자처럼 따르면서 극진히 모셨던 이가 또 다른 충신 범려였다. 그는 미인계와 뇌물로 吳의 대부 백비와 내통했다.
3년 째 되던 어느 날, 백비의 설득으로 夫差는 勾踐을 귀국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충신 伍子胥(오자서)의 간언을 듣고 난 뒤 갑자기 뜻을 바꿔 勾踐을 죽이기로 하고 불렀다. 마침 夫差는 병으로 몸져누워 있었는데 이때 범려의 기지가 번뜩였다. 그는 점쟁이였다. 쾌유일을 정확히 예견한 다음 勾踐에게 말했다.
“夫差는 壬申(임신)일이면 쾌차하리다. 따라서 문병 때 夫差의 대변을맛보고 안색을 살피는 척하면서 그 날 완쾌하신다고 하면 크게 감동할 것입니다.”
勾踐은 기가 막혔다. 아무리 패했기로서니 일국의 제후였던 신분에 어찌 그 짓을….
“대사를 위해 순간의 굴욕은 참아야 합니다. 대왕은 먼 훗날을 위해 항복한 몸이 아닙니까. 옛날 文王은 폭군 紂(주)가 자신의 아들을 삶은 국을 내렸을 때 뻔히 알면서도 받아 마셨습니다.” 勾踐이 夫差를 문병하고 보니 아뿔싸! 그는 이질로 심한 설사를 하고 있었다.
“신이 듣기에 泄便(설변·설사한 변)으로 병의 차도를 안다고 했습니다.”하고는 요강에 손가락을 푹 넣고서 부차의 변을 듬뿍 찍어 맛을 보는 것이 아닌가. 순간 좌우 신하들은 일제히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구천은 태연했다.
“삼가 경하하나이다. 대왕의 병환은 壬申일에 완쾌하오리다.”
과연 병은 그 날 완쾌되었고, 夫差는 감동한 나머지 伍子胥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를 귀국시키고 말았다.<문화가 흐르는 한자에서>
[참고2]섶--섶나무의 준말, 잎나무, 물거리(땔나무), 풋나무 등의 총칭
[예문] ▷ 한편 자기의 심중을 고깃간 같은 천한 곳에 숨겨서 다른 사람들 모르게 딴 마음을 키워나가며 사상사를 눈여겨 보고 있다가, 한번 일 터지면 자기가 바라던 것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은 '호민(豪民)이다. 호민은 매우 두려운 대상이다. -[허균, '호민론(豪民論)' ]
▷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개막전인 오피스데포대회와 24일 끝난 네이플스메모리얼에서 부진한 성적으로 실망을 안긴 박세리, 김미현, 박지은이 `와신상담'(臥薪嘗膽)하고 있다고 이들의 측근이 알려왔다.-<골프코리아>
▷ 매미는 17년간이나 굼벵이로 지낸다. 그러나 탈바꿈해 겨우 2주 정도 살다 죽는다. 그토록 긴 세월을 와신상담했음에도 얼마 안돼 떠날 자신의 운명이 가엾어 매미는 아마도 그렇게 서럽게 우는지도 모른다<2006 강원일보>
[출전]『書經』 旅獒(여오)[원문]完人喪德玩物喪志 [내용]은(殷)나라의 마지막 왕 주(紂)는 잔인한 성격의 군주로 권력을 가지고 민간의 재화나 진기(珍器)를 거두어들여 대궁전을 세우고 밤낮으로 유흥에 탐닉하고 있었다.
주(周)나라의 서백(西伯:서방 여러 민족의 우두머리) 창(昌)은 겉으로는 주(紂) 왕에게 복종하는 채 했으나, 내심으로는 은나라를 쓰러뜨릴 것을 생각하고 착착 실력을 쌓아 나갔다.
창이 죽고 발(發:후에 주나라의 무왕)이 뒤를 이었다. 기원전 1051년, 그는 은나라 타도를 위해 군사를 일으켜 황하를 건너 은나라의 수도로 진격했다.
이 보고를 받은 주(紂)는 서둘러 죄인을 석방하고 70만 대군을 편성해 주(周)나라의 군사를 목야(牧野)에서 맞아 치기로 했다. 그러나 계속 학대를 받아 온 죄수나 노예에게 주왕에 대한 충성심이 있을 턱이 없었다. 은나라 군사는 순식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리고 주왕은 궁전에 불을 지르고 죽었다.
주나라를 세운 무왕은 건국 공신과 제후를 각지에 봉함과 동시에 먼나라에도 사자를 보내어 자기의 문덕(文德)과 무공(武功)을 전하고 신하로서 복종할 것을 촉구했다.
하루는 서방 저 먼 곳에 있는 여(旅)나라의 사자가 와서 큰 개 한 마리를 헌상했다. 무왕은 기꺼이 이 진귀한 헌상품을 수령하고 사자에게 많은 상을 내렸다. 그걸 본 태보(太保) 소공(召公)이 글을 올려 무왕에게 간언했다.
"사람을 가지고 놀면 덕을 상하고, 사물을 가지고 놀면 뜻을 잃습니다. (完人喪德玩物喪志 완인상덕 완물상지)"
그것을 읽은 무왕은 은나라가 멸망한 것을 교훈 삼아 그 개는 물론 헌상품을 하나도 남김없이 제후와 공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흠이 없는 구슬. 결점이 없이 훌륭함. [원] 完璧歸趙(완벽귀조--구슬을 온전히 가지고 조나라로 돌아오다) [유]화씨지벽和氏之璧/연성지벽連城之璧
[출전]『史記』藺相如傳 [내용]: 趙의 혜문왕(惠文王)은 세상에도 드문「화씨의 벽(和氏之璧)」이라는 고귀한 구슬을 가지고 있었다. 원래 신하 목현(木賢)의 애장품이었는데 강제로 빼앗은 것이다. 그런데, 강대국 秦의 소양왕(昭襄王)이 이 소문을 듣고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조에 사신을 보내어 15성(城)과 화씨지벽과 바꾸자고 청하였다. 혜문왕은 걱정이 생겼다. 내주자니 소양왕이 받고도 15성의 약속을 모르는 척할지도 모르고, 거절하자니 이를 구실삼아 진이 쳐들어올지도 모르고...... 왕은 중신 회의를 열었다. 이 때, 목현이 나와서 식객 중 인상여라는 자가 지모와 용기가 있으니 그를 사자로 보내면 능히 난국을 타개할 수 있으리라 하고 천거하였다.
인상여(藺相如)는 즉시 진으로 가 지니고 갔던 화씨지벽을 일단 소왕에게 바쳤다. 구슬을 받아 쥔 왕은 "과연 훌륭하구나!" 하면서 감탄하면서 좋아할 뿐 15성 이야기는 조금도 비치지 않는 것이다. 이를 예기했던 인상여는, "그 구슬에 한 군데 조그만 흠집이 있어 가르쳐 드리겠습니다."고 속여 말하니 무심코 내주었다. 인상여는 즉시, "우리는 신의를 지키느라 구슬을 지참하였으나 왕은 15성의 약속을 지킬 듯 싶지 않으니 이 구슬은 일단 소생이 지니겠습니다. 불연이면 소생의 머리와 더불어 이 구슬을 부숴 버리겠습니다." 하고는 구슬을 빼내어 조국에 돌려 보냈다. 호담한 소양왕은 할 수 없이 인상여를 정중하게 놓아 보냈다.
전국 시대, 초(楚)나라에 변화씨(卞和氏)란 사람이 형산(荊山)에서 봉황이 돌 위에 깃들이는 걸 보고 그 옥(玉)의 원석을 발견하자 곧바로 여왕에게 바쳤다. 여왕이 보석 세공인(細工人)에게 감정시켜 보니 보통 돌이라고 한다. 화가 난 여왕은 변화씨를 월형( 刑: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에 처했다. 여왕이 죽은 뒤 변화씨는 그 옥돌을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왼쪽 발뒤꿈치를 잘리고 말았다.
무왕에 이어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씨는 그 옥돌을 끌어안고 초산 기슭에서 사흘 낮 사흘 밤 동안 피눈물을 흘렸다. 문왕이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그 까닭을 물었다. "세상에 발 뒤꿈치를 잘리는 형을 받은 사람은 적지 않다. 그대만이 그처럼 슬퍼하며 통곡하는 이유가 뭔가?" 그러자 화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발 뒤꿈치가 잘렸다고 운 건 아닙니다. 천하의 보옥인데도 돌덩이로 단정하고 그것을 바친 정직한 저를 사기꾼으로 몬 것이 슬퍼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 문왕은 즉시 옥돌을 세공인에게 맡겨 갈고 닦아 본 결과 천하에 둘도 없는 명옥이 영롱한 모습을 드러냈다. 문왕은 곧 변화씨에게 많은 상을 내리고 그의 이름을 따서 이 명옥을 '和氏之璧'이라 명명했다.
그 후 화씨지벽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손에 들어갔으나 이를 탐내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이 15개의 성(城)과 교환하자는 바람에 한때 양국간에는 긴장이 조성되기도 했다. 이에 연유하여 화씨지벽은 '연성지벽(連城之壁)'이라고도 불린다. 그래서 화씨지벽을 가지고 진나라에 갔던 인상여(藺相如)가 천하의 보옥을 그냥 뺏길뻔 한 것을 기지(機智)로 흠집 하나 없이 온전히 가지고 돌아왔다고 해서 완벽(完璧)이라는 성어가 생겨났다.
진(秦) 26년 초(楚)를 멸망시키고 이 옥을 얻은 시황제(始皇帝)는 옥공(玉工)으로 하여금 도장을 깎게 하고 재상 이사(李斯)에게 여덟 자를 전서(篆書)로 쓰게 해서 처음 옥새로 사용하게 되었다.
受命於天(수명어천) 명을 하늘로부터 받았으니 旣壽永昌(기수영창) 오래 가고 크게 뻗으리라
※일종의 야광주(夜光珠) 화씨벽이 그토록 유명했던 것은 구슬이 있는 백보 안에는 파리와 벌레가 들어오지 못하고 여름엔 부채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예문] ▷ 완벽에 가까운 묘기 / 완벽한 솜씨 / 완벽한 문장
▷ 계획을 완벽히 짜다 / 행사 준비에 완벽을 기하다.
▷ 상대 팀을 거세게 밀어붙인 끝에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 동네 사람들은 마을 축제를 위해 세밀한 부분까지 완벽히 준비했다.
▷ 언제부터인가 항상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도표와 보고서 작성에 싫증이 났다.≪김민숙, 이민선≫
[유] 고빙叩氷(알을을 두드림), 孟宗哭竹, 剖氷得鯉 [내용]東晉(동진)때 王祥은 효성이 지극하더니 어머니가 병환에 고기를 원하시자 한 겨울에 옷을 벗고 얼음 위에 누워서 하늘에 기원하니 큰 잉어 두 마리가 스스로 얼음을 깨고 튀어 나와서 이를 어머니께 공양하여 병이 나았다는 고사
<고빙(叩氷)>
<맹종곡죽孟宗哭竹> 맹종이 역시 한겨울에 병든 노모가 죽순 요리를 먹고 싶다고 하니까 꽁꽁 언 대나무 밭에 가서기도하며 울었더니 눈물이 땅을 녹이고 죽순이 솟아났다
[예문] ▷ 왕상의 리어(鯉魚) 낙고 맹종의 죽순 것거 : 박인로 시조
왕상의 리어(鯉魚) 낙고 맹종의 죽순 것거 감든 말이 희도록 노래자(老萊子)의 옷슬 닙고 일생에 양지성효(養志成孝)를 증자 같이 하리라.
* 리어(鯉魚) : 잉어 * 노래자 : 초나라의 현인으로, 중국의 24효자의 하나. 칠십에 어린애 옷을 입고 어린애 같은 장난을 하여 부로를 즐겁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 벼슬하지는 않고 <노래자> 15편을 지었다.
▷ "아버지 그 말 마오. 옛 일을 생각하니 왕상(王詳)은 고빙(# 氷-얼음을 두드려 깸)하야 얼음구멍에서 잉어를 얻었고, 맹종(孟宗)은 읍죽(泣竹)하야 눈 가운데 죽순(竹筍) 나니 그런 일을 생각하오면 출천대효(出天大孝-타고 난효성) 사친지절(事親之節)이 옛사람만 못하여도 지성이면 감천이니, 아모 걱정마옵소서." --- <심청전> 중
■ 외유내강 外柔內剛 [바깥 외/부드러울 유/안 내/굳셀 강]
☞겉은 부드러우나 속은 굳셈.
[예문] ▷ 물음이 있을 때나 답하는 그의 어조는 입을 다물고 있는 만큼이나 신중해 보여 외유내강을 지닌 군자의 자세였다.≪이영치, 흐린 날 황야에서≫
▷ 아아, 노촌 선생님! 이제 저희들 곁을 정말 떠나시는 겁니까. 외유내강의 강인한 의지로 그동안 병마와의 싸움에서도 몇 번이나 기적적으로 회생하신 선생님이셨기에... <2006 프레시안--노촌 이구영 선생의 영전에 통곡하며>
☞'요동의 돼지'라는 뜻 ,견문이 좁고 오만한 탓에 하찮은 공을 득의 양양하여 자랑함의 비유.
[유]촉견폐일(蜀犬吠日)--촉나라의 개가 해를 보고 짖는다 월견폐설(越犬吠雪)--월나라의 개가 눈을 보고 짖는다(월나라에는 눈이 거의 오지 않음). 尺澤之예(척택지예)-- 작은 못 속의 암고래. 식견이 매우 좁은 사람 以管窺天(이관규천)--대롱으로 하늘보기. 정저지와 井底之蛙--우물안의 개구리[좌정관천(坐井觀天)-정중지와(井重之蛙)]
[출전]『文選』,『後漢書』 [내용] 후한(後漢) 건국 직후, 어양태수(漁陽太守) 팽총(彭寵)이 논공 행상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꾀하자 대장군(大將軍) 주부(朱浮)는 그의 비리를 꾸짖는 글을 보냈다. "그대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옛날에 요동 사람이 그의 돼지가 대가리가 흰[白頭] 새끼를 낳자 이를 진귀하게 여겨 왕에게 바치려고 하동(河東)까지 가 보니 그곳 돼지는 모두 대가리가 희므로 크게 부끄러워 얼른 돌아갔다.'
지금 조정에서 그대의 공을 논한다면 폐하[光武帝]의 개국에 공이 큰 군신 가운데 저 요동의 돼지에 불과함을 알 것이다." 팽총은 처음에 후한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반군(叛軍)을 토벌하기 위해 하북(河北)에 포진(布陣)하고 있을 때에 3000여 보병을 이끌고 달려와 가세했다. 또 광무제가 옛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을 포위 공격했을 때에는 군량 보급의 중책(重責)을 맡아 차질 없이 완수하는 등 여러 번 큰공을 세워 좌명지신(佐命之臣:천자를 도와 천하 평정의 대업을 이루게 한 공신)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오만 불손한 팽총은 스스로 연왕(燕王)이라 일컫고 조정에 반기를 들었다가 2년 후 토벌 당하고 말았다.
[내용] 기원전 2세기 한(漢)나라 무제 때 일이다. 한은 당시 중국을 통일하였지만 만리장성의 바깥은 세력권 밖이었다. 특히 서북쪽의 흉노족(匈奴族)은 항상 불안의 대상이었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 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왕실에서는 흉노에게 근거지를 잃고 중앙아시아 사막 서쪽 밖으로 옮겨간 월지(月氏:大月氏)와 손잡고 흉노를 협공할 계획을 세웠다. 그 임무를 수행할 사신을 공모한 결과 장건이라는 관리가 뽑혔다. 건원(建元) 3년(기원전 138) 장건은 100여 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대원정에 나섰다.
그러나 그들은 농서(현재의 감숙성)를 벗어나자마자 흉노에게 잡히고 말았다. 이때부터 장건은 흉노와 10년을 살게 되었다. 그는 거기서 장가를 들고 아들까지 낳았으나 사신으로서의 임무는 하루도 잊지 않았다. 포로로 잡힌 지 10년이 지난 장건은 처자를 데리고 서방으로 탈출하여 톈산산맥 너머 대완국(大宛國)·강거국(康居國)을 거쳐 아무르강 북쪽에 있는 월지의 궁전에 도착했다.
장건은 월지의 왕을 찾아가 한 무제의 뜻을 전했으나 의외로 왕의 대답은 부정적이었다. “우리는 서쪽으로 옮겨온 이후 기름진 땅에서 평화롭게 살아왔소. 백성들은 이제 묵은 원한을 씻기 위한 전쟁은 원하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장건은 이에 단념하지 않고 당시 월지의 속국이었던 대하국(大夏國)까지 찾아가 월지를 움직이고자 하였다. 그러나 아무 성과도 얻지 못했다.
이 일을 《사기》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끝내 사명으로 하는 월지의 요령을 얻지 못하고(要領不得), 체류한 지 1년이 지나 귀국길에 올랐다.’ 장건은 귀국 도중에 또 흉노에게 잡혀 1년이 넘게 억류되었으나. 탈출하여 13년 만에 장안으로 돌아왔다(기원전 126). 그로부터 3년 후 장건은 박망후(博望侯)에 봉해져 서역사업에 힘쓰게 되었다. 그의 대장정은 중국 역사에 귀중한 기록이 남겨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서 서역과의 교역이 싹트게 되었다. 중앙아시아의 명마와 보석, 비파와 수박, 석류, 포도 등이 들어오고 중국의 비단과 금이 수출되는 실크로드가 열린 것이다
[예문] ▷ 처음에는 양어장의 위급을 알리는 그 전화 보고가 그로서는 도무지 요령부득이었다. ≪윤흥길, 완장≫
▷ 김소영의 얘기를 간추려 설명하였다. 간추리다가 보니 요령부득한 말이 되어 버렸다.≪이병주, 행복어 사전≫
[내용]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자는 움직이고, 어진 자는 고요하다. 지혜로운 자는 즐기고, 어진 자는 오래산다. 공자의 말은, 지혜로운 사람의 부류에 속하는 이들과 어진 사람의 부류에 속하는 이들의 일반적인 성격과 행동 경향을 설명한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식별력이 높다. 자신과 맺어지는 인간 관계에 관심이 많아 항상 겸허한 자세를 가지려 노력한다. 두루 흘러 맺힘이 없는 것이 물과 같기 때문에 물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항상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즐기기를 좋아한다.
반면에 어진 사람은 의리를 편안히 하고 중후하여 옮기지 않는 것이 산과 같다. 그래서 산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늘 자신과 하늘의 관계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 모든 가치를 위에다 두고 있다. 그리고 호기심이 적어 한 곳에 가만 있기를 좋아하여 고요한 성격이 많다. 또한 마음을 가다듬고 물질적 욕구에 집착하지 않으니 오래 산다. 즉, 지혜있는 사람의 마음은 밝고 깨끗하기 때문에 이해심이 깊고 넓다. 그래서 흐르는 물처럼 시대와 환경에 따라 항상 새롭게 산다는 뜻이다. 반면에 어진 사람이 산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것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으며 고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는 지혜있는 사람은 물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산처럼 조용하기 때문에 장수한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