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6년 10월 4일 언약형통교회 주일예배
〈시편 119편 강해 — 말씀을 따라 행하는 자의 복〉
본문: 시119:1-2(119:1-176)
119:1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2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복을 받기 원합니다.
몸이 건강하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이 잘되기를 바랍니다. 가정이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은 자녀들의 형편을 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나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 성도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를 먼저 하여야 할 것입니다(마6:31-33).
그런데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먼저 묻습니다.
“너는 어떤 사람을 복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
돈이 많은 사람입니까?
아픈 곳이 없는 사람입니까?
하는 일마다 잘되는 사람입니까?
우리는 보통 눈에 보이는 형편을 가지고 복을 판단합니다.
그러나 시편 119편 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하나님께서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려고 합니다.
“나는 말씀을 알고 있는가?” 하는 질문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나는 알고 있는 말씀대로 살아가고 있는가?”
성경을 가지고 있는 것과 성경대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설교를 듣는 것과 들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다릅니다.
주일에 정직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월요일에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말한다면, 그 말씀을 생활에 적용하지 못한 것입니다.
용서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서 가족에게 지난 잘못을 다시 꺼내며 상처를 준다면, 그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을 듣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오늘 설교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사랑하는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십시오.
시편 119편은 모두 176절입니다.
이 긴 시편에 계속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율법, 증거, 법도, 율례, 계명, 규례, 말씀입니다.
각각 강조하는 뜻에는 차이가 있지만,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르침과 뜻을 가리킵니다.
시인은 그 말씀을 여러 가지로 고백합니다.
11절에서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말씀을 마음에 두었다”고 합니다.
50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고난 중에 위로가 되었다”고 합니다.
72절에서는 “주님의 말씀이 많은 금과 은보다 좋다”고 합니다.
105절에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성도 여러분, 어두운 길을 걸을 때 빛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어디를 밟아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앞에 구덩이가 있는지, 돌이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도 판단하기 어려운 순간이 있습니다.
이 말을 해도 되는가?
이 돈을 받아도 되는가?
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때 내 감정만 따라가면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한다고 따라가도 잘못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무엇이라고 하시는가?”
말씀이 우리의 발걸음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런데 시편 119편을 읽다 보면 또 하나의 특징을 발견합니다. 시인은 순종을 결단하면서도 계속 기도합니다.
“가르치소서.”
“깨닫게 하소서.”
“붙드소서.”
“살리소서.”
왜 그렇습니까?
‘자기의 힘만으로는 말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도우심이 절실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편 119편의 기자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동시에 말씀대로 살도록 도와 달라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순종하겠습니다.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
이 믿음으로 오늘 말씀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참고적으로 시편은 1편에서 150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편 1편 1절로 6절의 말씀의 토대를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신명기 29장 9절의 말씀의 연결점이 시편 1절로 3절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에스겔 18장 5절로 9절은 ‘의인’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으며, 시편 19장 10절로 13절은 ‘악인’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에스겔 33장 17절로 20절에 보면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과거에 의인이었느냐 아니면 악인이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의인이냐 악인이냐’가 중요한 것입니다(마7:22-23, 벧후3:9-10=요3:16, 잠7:20).
2. “행위가 온전하여” —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가십시오
본문은 “행위가 온전하여”라고 시작합니다.
그러면 온전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한 번도 잘못하지 않은 사람입니까?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사람입니까?(형수계대법과 부활=막12:24).
[막12:24]
12:2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그러므로 온전함이라는 것을 죄를 지을 수 없는 완벽한 상태로만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잠20:7 =벧후3:9-10).
[잠20:7]
20:7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의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
[전7:20]
7: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벧후3:9-10]
3: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나누지 않고,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으며, 잘못했을 때 회개하고 돌아오는 삶입니다.
“하나님, 이 부분은 순종하겠습니다. 그러나 저 부분은 제 마음대로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기 마음을 나누어 놓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넘어졌을 때 죄를 붙잡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창세기 17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여기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내 앞에서 행하라.”
사람 앞에서만 잘 보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창26:5, 눅1:5-6).
[창26:5]
26:5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
[눅1:5-6]
1: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우리는 사람의 눈을 많이 의식합니다.
누가 보고 있으면 조심합니다. 누가 듣고 있으면 말을 가립니다. 누가 평가한다고 하면 더 신경을 씁니다.
그런데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쉽게 풀어집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은 보지 못해도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시편 119편 168절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 있음이니이다.”
교회에서의 모습만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서 가족에게 말하는 모습도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돈을 계산하는 모습도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 하는 행동도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교회 문을 나서는 순간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이어져야 합니다. 일터에서 이어져야 합니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 때도 이어져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부드럽게 말하면서 집에서는 가족에게 함부로 한다면, 그 부분을 말씀 앞에서 고쳐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정직을 말하면서 자기 이익이 걸린 일에는 사실을 감춘다면, 그 부분을 회개해야 합니다.
“나는 오래 믿었으니까 괜찮다.”
그렇게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오래 믿었기 때문에 더 깊이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직분이 있기 때문에 더 책임 있게 살아야 합니다.
잠언 20장 7절은 의인이 온전하게 행할 때 그 자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잠20:7]
20:7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의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
부모가 자녀에게 남기는 것은 재산만이 아닙니다.
정직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남습니다. 어려울 때 기도하는 모습이 남습니다. 잘못했을 때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이 남습니다.
자녀에게 “거짓말하지 마라”라고 가르치면서 부모가 거짓말하면, 자녀는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을 보게 됩니다.
반대로 부모가 손해를 보면서도 정직하게 행동하면, 자녀는 그 모습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믿음 때문에 저렇게 하시는구나.”
“우리 어머니는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고 하시는구나.”
물론 부모의 신앙이 자녀의 구원이나 성공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도 하나님 앞에 자기 믿음으로 서야 합니다(겔14:14/ 겔18:19-20>> 겔18:21-24).
[겔14:14]
14:14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겔18:19-20]
18:19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아들이 어찌 아버지의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겠느냐 하는도다 아들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며 내 모든 율례를 지켜 행하였으면 그는 반드시 살려니와
20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 의인의 공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겔18:21-24]
18:21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22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그러나 부모의 의로운 삶은 자녀에게 귀한 본이 됩니다.
에스겔 18장 5절부터 9절에서도 의로운 사람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겔18:5-9).
[겔18:5-9]
18:5 사람이 만일 의로워서 정의와 공의를 따라 행하며
6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 아니하며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며
7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돌려 주며 강탈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8 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를 짓지 아니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하게 판단하며
9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하게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반드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우상을 섬기지 않습니다. 성적인 죄를 피합니다. 이웃을 학대하지 않습니다. 남의 것을 강탈하지 않습니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줍니다. 헐벗은 사람에게 입을 것을 줍니다. 사람 사이에서 공정하게 판단합니다.
이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온전한 삶은 입으로만 하는 고백이 아닙니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납니다. 돈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나타납니다. 자기 몸을 지키는 생활에서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48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말씀 앞에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은 비교적 쉽습니다.
그런데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는 어떻습니까? 나에게 손해를 준 사람에게는 어떻습니까?
그때 우리 마음에 미움과 보복하려는 생각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자리에서도 아버지의 성품을 닮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잘못을 옳다고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필요한 사실을 밝히고, 공정한 해결을 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거짓말하지 않고, 상대를 모욕하지 않고, 복수하려는 마음을 하나님께 내려놓아야 합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믿음이 드러납니다.
고린도후서 7장 1절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이루라고 권면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히12:4).
[히12:4]
12:4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니 내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
이것은 은혜에 합당한 반응이 아닙니다(요14:23-24).
[요14:23-24]
14: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니, 나도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겠습니다.”
이것이 은혜를 받은 사람의 반응입니다.
오늘 우리 마음에 이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사람에게 잘 보이는 신앙에 머물지 않게 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게 하십시오.”
3.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란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중요합니다. 읽는 것도 중요합니다. 외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들은 말씀이 내 생활로 이어져야 합니다(마28:19-20, 빌4:9, 계1:3).
[마28:20(28:19-20)]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빌4:9]
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계1:3]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시편 119편 59절과 60절을 보면, 시인은 자신의 행위를 생각하고 발길을 하나님의 증거로 돌이켰다고 합니다. 그리고 계명을 지키는 일을 지체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말씀을 듣습니다.
자신의 생활을 돌아봅니다.
잘못된 길에서 돌이킵니다.
그리고 순종합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다른 사람만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저 말씀은 우리 남편이 들어야 하는데.”
“우리 아내가 들어야 하는데.”
“저 사람이 꼭 들어야 하는데.”
물론 함께 들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물어야 합니다.
“주님, 제가 고쳐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정직에 관한 말씀을 들었다면, 내가 정직하지 못했던 일을 살펴야 합니다.
용서에 관한 말씀을 들었다면, 내 마음에 품고 있는 미움을 살펴야 합니다.
사랑에 관한 말씀을 들었다면, 내가 외면했던 사람을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데만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나 자신을 비추는 빛으로 받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5절은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행하는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약1:27 << 롬12:1-2).
[약1:27]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롬12:2(12:1-2)]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성도 여러분, 설교를 듣고 “좋은 말씀이다”라고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다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무엇을 하겠는가?”
막연하게 “앞으로 잘하겠습니다”라고만 하면, 며칠 지나서 잊기 쉽습니다.
구체적으로 정해 보십시오.
“오늘 집에 가서 내가 거칠게 말한 것을 사과하겠습니다.”
“미루고 있던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사실과 다르게 전한 말을 바로잡겠습니다.”
“외롭게 지내는 성도에게 전화하겠습니다.”
“잠들기 전에 말씀을 읽고 내 하루를 돌아보겠습니다.”
순종은 이런 실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작은 일이라고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바로 그 자리에서 말씀을 따라 걷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하다 보면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정직하게 했더니 손해를 볼 수도 있습니다. 잘못을 인정했더니 체면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먼저 화해하려 했는데 상대가 받아 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순종을 그만두어야 합니까?
야고보서 1장 2절부터 4절은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낸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권면합니다.
편안할 때는 누구나 좋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어려운 순간에도 말씀을 붙드는 데서 드러납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겠습니까?
억울해도 거짓으로 맞서지 않겠습니까?
기도 응답이 늦어도 하나님을 의지하겠습니까?
시편 119편 67절에서 시인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율례를 지켰다”고 고백합니다.
[시119:67]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이것은 모든 고난이 어떤 특정한 죄 때문에 생겼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르치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평안할 때는 몰랐던 자신의 교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있을 때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이 일을 지나가는 동안에도 말씀을 떠나지 않게 하십시오. 제게 인내를 주십시오. 제가 배워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또 야고보서 1장 27절은 정결한 경건을 설명하면서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보고,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즉 이웃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함께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돌보는 사랑입니다(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의인인 양이 되어 영생에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죄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거룩함입니다(요일2:15-17, 약4:4, 눅21:34-36, 고전15:33-34=딤전4:5).
“나는 나쁜 일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살펴야 합니다.
반대로 이웃을 많이 돕는다고 하면서 자기 생활의 죄를 방치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과 거룩함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여러 연령의 성도님들이 계십니다.
젊은 분들은 바쁜 일터와 가정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어르신들은 건강이 허락하는 만큼 말씀을 붙들고 사랑을 실천하실 수 있습니다.
큰돈이 있어야만 이웃을 돕는 것은 아닙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도 도움이 됩니다. 안부 전화 한 통도 도움이 됩니다. 아픈 성도를 위해 기도하고, 외로운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도 사랑입니다.
자신의 형편 안에서 할 수 있는 순종을 찾아보십시오.
디모데후서 3장 16절과 17절은 성경이 우리를 가르치고, 책망하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아가도록 훈련한다고 말씀합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하여 선한 일을 감당하도록 준비시키는 데 있습니다(엡2:8-10 << 요5:28-29, 롬2:6-11).
[엡2:10(2:8-10)]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5:28-29]
5:28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롬2:6-11]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말씀은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그리고 잘못된 우리를 고치십니다.
어떤 말씀은 듣기에 편안합니다. 어떤 말씀은 내 잘못을 건드리기 때문에 불편합니다.
그러나 그 불편한 말씀도 받아야 합니다.
의사가 아픈 곳을 알려 주었는데 듣기 싫다고 외면하면 치료를 받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주의 종은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선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동시에 선포하여야 하며, 듣는 자들은 그 말씀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며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고후6:1-2).
[고후6:1-2]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2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마찬가지로 말씀이 내 죄를 드러낼 때, 마음을 닫아 버리면 고침을 받기 어렵습니다.
“주님, 이 말씀을 저에게 하시는 것으로 받겠습니다. 제 생각과 행동을 바로잡아 주십시오.”
이렇게 반응해야 합니다.
또 디모데후서 2장 24절부터 26절에서는 사람을 바로잡을 때의 태도를 말씀합니다.
주의 종은 다투기를 좋아하지 않고, 온유하며, 참고, 반대하는 사람도 온유하게 가르쳐야 합니다.
진리를 말한다는 이유로 상대에게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의 내용도 바르게 전해야 하고, 전하는 태도도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을 가르칠 때도 그렇습니다. 성도끼리 서로 권면할 때도 그렇습니다. 목회자가 성도에게 말씀을 전할 때도 그렇습니다.
죄는 죄라고 분명히 말해야 합니다(요일3:7-10). 그러나 사람을 모욕해서는 안 됩니다.
[요일3:7-10]
3:7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8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9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10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회개할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하면서, 진리를 온유하게 전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이면서,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행동과 태도가 함께 말씀을 따르기를 바랍니다.
4. “복이 있음이여” — 사람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판단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본문의 마지막 말씀을 보겠습니다.
“복이 있음이여.”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이 있다고 선언하십니다(히10:36-39, 벧전1:5-9).
[히10:36-39]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벧전1:5-9]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믿음의 결국에는 영혼의 구원함을 받는 것이 복중에 복인 것입니다(마10:32-33 << 마10:28/ 고전9:23-27).
[마10:32-33]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마10:28]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고전9:25-27]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6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며
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그런데 시편 119편의 시인은 어려움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기도 하였습니다(왕상15:5 >>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자기의 아내로 삼고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은폐하기 위하여 우리아를 살인교사하여 죽였습니다).
비방을 받았습니다. 박해를 겪었습니다. 괴로움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을 바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고난이 있다고 해서 곧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은 아닙니다. 재산이 많다고 해서 곧 하나님께 인정받은 것도 아닙니다(계3:17-19~빌라델비아 교회).
[계3:17-19]
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는가가 중요합니다.
사무엘상 2장 6절부터 10절의 한나의 찬송을 보면, 낮추시고 높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사람은 자기 힘만으로 승리하지 못하며, 하나님께서 땅끝까지 판단하신다고 찬송합니다.
지금 당장 누가 더 잘사는지만 보고 결론을 내리지 마십시오.
말씀에 순종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성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불의를 행하면서도 형편이 좋아 보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눈에 보이는 모습이 마지막 판결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십니다.
로마서 2장 6절부터 11절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며,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신다고 말씀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받아야 할 말씀입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는 이유로 불의한 생활을 계속해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직분이 있다는 이유로 회개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목사도 말씀 아래에 있습니다.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말씀 아래에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선행을 쌓아서 구원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지합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불순종의 핑계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의지한다면,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나는 믿으니까 내 행동은 상관없다.”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을 보면,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신도 절제하며 살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인 것입니다(벧전1:17, 마7:22-23, 고전9:23-27, 롬3:9-18).
[벧전1:17]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롬3:9-18]
3: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신1:35-38]
1:35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
36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께 순종하였은즉 그는 그것을 볼 것이요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주리라 하시고
37 여호와께서 너희 때문에 내게도 진노하사 이르시되 너도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38 네 앞에 서 있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리로 들어갈 것이니 너는 그를 담대하게 하라 그가 이스라엘에게 그 땅을 기업으로 차지하게 하리라
우리도 물어야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말한 말씀대로 나도 살고 있는가?”
저부터 이 말씀 앞에 서야 합니다.
강단에서 정직을 전하면서 제 생활이 정직하지 못하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사랑을 전하면서 사람을 함부로 대한다면 고쳐야 합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도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7절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면, 나그네로 살아가는 동안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일을 아뢸 수 있습니다. 잘못했을 때도 회개하며 돌아올 수 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아버지이시니까 함부로 살아도 된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이시니, 아버지를 슬프게 하는 죄에서 떠나겠습니다.”
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12절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고 말씀합니다.
[빌2:12]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그리고 13절은 우리 안에서 뜻을 세우고 행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합니다.
두 말씀을 함께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순종합니다.
기도하면서도 순종을 미루지 마십시오. 순종하면서도 자기 힘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주님, 제가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제 안에서 역사해 주십시오.”
이것이 성도의 자세입니다.
우리는 결국 하나님 앞에 설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칭찬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잠깐의 이익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리스도 예수만을 섬기는 자가 되어 타인이 칭찬을 하게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롬14:17-18 >> 히11:6, 고후5:8-10, 눅13:24).
[롬14:17-18]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히11:6]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고후5:8-9]
5:8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9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눅13:23-24]
13:23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지금의 체면보다 회개하고 바르게 사는 것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회개하는 의인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잃어버린 양, 시7:12).
[시7:12]
7:12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하나님께서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길을 걸어가시기 바랍니다(팔복=회개하는 의인).
5. 넘어졌다면 회개하고 말씀의 길로 돌아오십시오
여기까지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이 무거운 성도님이 계실 수 있습니다.
“나는 부족한 것이 너무 많습니다.”
“말씀대로 살겠다고 했는데 또 넘어졌습니다.”
“내가 어떻게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했다면 하나님께 가지고 나오십시오.
죄를 숨기지 마십시오(시32:5, 잠28:13).
[시32:5]
32:5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 (셀라)
[잠28:13-14]
28:13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14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그렇다고 절망하며 하나님을 떠나지도 마십시오.
시편 119편의 시인도 마지막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도 주님의 붙드심이 필요합니다.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길을 벗어났습니다. 저를 찾아 주십시오. 다시 말씀의 길로 이끌어 주십시오.”
베드로후서 3장 9절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원하시며 오래 참으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10절은 주의 날이 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신다고 해서 죄가 괜찮아진 것은 아닙니다.
돌아오라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를 미루지 마십시오.
“나중에 고치겠습니다.”
“형편이 좋아지면 순종하겠습니다.”
“이 문제만 끝나면 바르게 살겠습니다.”
그렇게 계속 미루다 보면, 미루는 것이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들었다면 오늘 하나님께 반응하십시오.
요한일서 1장 9절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죄를 자백한다는 것은 내 잘못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그렇게 했으니 저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런 말로 내 죄를 덮지 마십시오.
상대방의 잘못은 상대방이 하나님 앞에서 책임질 일입니다. 내가 지은 죄는 내가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거짓말했습니다.”
“주님, 제가 미움을 품었습니다.”
“주님, 제가 욕심 때문에 잘못 행동했습니다.”
“주님, 제가 말씀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정직하게 고백하십시오.
그리고 돌이키십시오.
사과해야 할 일이 있으면 사과하십시오. 바로잡아야 할 일이 있으면 바로잡으십시오. 끊어야 할 죄의 습관이 있으면, 끊을 수 있도록 도움을 구하며 행동하십시오.
회개는 입으로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한 뒤 그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의지하며 삶의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 133절의 기도를 우리의 기도로 삼읍시다.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성도 여러분, 죄가 우리를 끌고 가도록 내버려 두지 마십시오.
습관이라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오래되었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나이가 많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말씀으로 부르십니다.
젊은 성도도 말씀 앞에서 바뀌어야 합니다. 연세 드신 성도도 말씀 앞에서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오늘 남은 삶의 방향을 다시 정하십시오.
“주님, 제 발걸음을 말씀 위에 세워 주십시오.”
맺음말 — 오늘 한 가지 순종을 시작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다시 읽겠습니다.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하나님께서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살아가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힘만 자랑하지 않습니다.
“주님,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 깨닫게 해 주십시오.”
“주님,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며 순종합니다.
오늘 우리 자신에게 세 가지를 물어봅시다.
첫째, 말씀을 알면서도 미루고 있는 순종이 있습니까?
둘째, 회개해야 하는데 숨기고 있는 죄가 있습니까?
셋째,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모습을 떠올리기 전에, 나 자신을 돌아봅시다.
그리고 오늘 한 가지 순종을 시작합시다.
사과해야 할 사람에게 사과하십시오. 지켜야 할 약속을 지키십시오.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인정해야 할 죄를 고백하십시오.
우리 언약형통교회가 붙들고 있는 신명기 29장 9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이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리라.”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교회 이름을 부를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형통을 구하면서 순종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는 것만을 복이라고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걷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끝까지 말씀을 붙드는 삶을 귀하게 여깁시다.
가정에서 말씀을 따라 사십시오. 이웃을 대할 때 말씀을 따라 사십시오. 돈을 사용할 때 말씀을 따라 사십시오. 억울한 일을 만났을 때도 말씀을 따라 사십시오.
넘어졌다면 회개하고 돌아오십시오. 힘이 부족하면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우리 모두가 이렇게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주님, 말씀을 사랑합니다. 배운 말씀대로 살겠습니다.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가며, 말씀을 따라 행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침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님의 말씀 앞에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았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다른 사람의 잘못은 쉽게 보면서, 자신의 죄는 숨기고 합리화했던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람이 보는 자리에서뿐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말과 행동을 바로잡아 주옵소서. 가정에서 가족을 대하는 태도와 이웃을 대하는 마음과 돈을 사용하는 방식까지 말씀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어려움이 있을 때 말씀을 떠나지 않게 하시고,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하게 행할 믿음과 인내를 주옵소서.
넘어진 성도는 회개하고 다시 일어나게 하시며, 죄를 붙잡고 있는 성도는 오늘 돌이키게 하옵소서.
우리 힘만으로 할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우리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옵소서.
우리 언약형통교회가 언약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교회가 되게 하시고, 모든 성도가 말씀을 사랑하며 끝까지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