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 24일, 토요일, Puerto Natales, Residencia Rosita (오늘의 경비 US $18: 칠레 peso, 숙박료 7,000, 식료품 3,000; 아르헨티나 peso, 택시 3, 환율 US $1 = 2.85 아르헨티나 peso, 600 칠레 peso) 오늘 세 번째로 칠레에 입국했다. 첫 번째는 페루에서 칠레 최북단 도시 Arica로, 두 번째는 아르헨티나 Mendoza에서 칠레 수도 Santiago로, 이번에는 아르헨티나 남부 El Calafate에서 칠레 최남단 도시 Puerto Natales로 입국했다.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한 나라였더라면 외국 여행객에게는 편리했을 텐데 인종, 언어, 종교, 풍습이 한국의 경상도와 전라도의 차이보다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두 나라로 갈라져서 외국 여행자들은 좀 불편하다. 남미 독립의 영웅 Simon Bolivar 생각이 난다. 그는 1810-1820년대의 남미 독립의 영웅으로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해서 “북미 합중국”을 이룩한 것처럼 남미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해서 “남미 합중국”이 되기를 바랐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Puerto Natales는 별로 볼 것이 없는 도시다. 주위 경치 역시 그렇다. 그런데 멀지 않은 곳에 남미에서 산 경치는 최고로 치는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이 있다. Puerto Natales는 항구 도시인데 칠레 중부에 있는 Puerto Montt 사이를 오가는 3박 4일의 유람선 관광이 있는데 좋다는 사람도 있고 별로 라는 사람도 있는데 아마 날씨에 달린 모양이다. 날씨가 좋으면 볼 것이 많지만 날씨가 나쁘면 볼 것이 없어지는 모양이다. 중간에 내가 갔던 Laguna San Rafael 빙하에도 들리는 것 같다. 이곳에서 숙소를 잘 잡은 것 같다. 시내 중심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민박집인데 2층 코너에 있는 우리 방은 밝고 조용하다. 방안에 TV도 있고 아래층에 있는 부엌도 사용할 수가 있다. 3대의 대가족이 살면서 민박집을 경영하는데 60대의 뚱보 할머니 Rosita가 제일 어른이다. 짐을 푼 다음에 Casa Cecilia라는 호스텔에 가서 독일인 주인으로부터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 트레킹에 필요한 정보를 얻었다. 이 호스텔은 배낭 여행객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인데 Torres del Paine 트레킹 정보를 제일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이란다. 숙소 주인도 배낭여행을 하다가 이곳이 좋아서 정착해서 외국 여행객을 상대로 호스텔을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사업가 기질은 좀 부족한 친구다.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 트레킹 정보를 얻으려 왔다고 하니 대답이 "Yes?"가 전부였다. 구체적인 질문을 하라는 뜻 같은데 좀 무뚝뚝하게 들렸다. 그런 식으로 어떻게 호스텔 주인노릇을 할 수 있을까. 머쓱해진 내가 구체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하니 그때서야 대답을 하는데 대답은 자상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이것이 독일 사람의 국민성인가 싶었다. 버스 교통편, 트레킹 코스와 일정, 캠핑도구 대여, 캠핑에 필요한 음식에 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이 친구에게서 두 가지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첫째는 트레킹 방향인데 대부분 사람들이 하는 대로 동-서 방향으로 하지 말고 그 반대인 서-동 방향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이맘때는 서풍이 불기 때문에 바람을 등지고 하는 것이 훨씬 쉽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날짜를 정해서 떠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날씨가 바뀌니 일기예보에 의지하지 말고 아무 날이나 떠나라는 것이다. 여행지도 Puerto Natales 가는 길,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이다 2004년 1월 25일, 일요일, Puerto Natales, Residencia Rosita (오늘의 경비 US $99: 숙박료 7,000, 식료품 23,400,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 버스표 11,000,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 당일 관광 요금 15,000, 인터넷 3,000, 환율 US $1 = 600 peso) 아침에 나가서 내일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에 다녀오는 왕복 버스표를 샀다. Puerto Natales부터 트레킹을 시작하는 곳까지 데려다 주고 트레킹이 끝나는 곳에서 태워서 Puerto Natales까지 데려다 주는 버스다. 트레킹은 나 혼자 하고 집사람은 국립공원 당일 관광만 하기로 했다. 다음에는 어제 봐둔 인터넷 카페에 가서 사진 CD를 만들었다. 보통 CD를 "굽는다"고 한다. El Calafate에서보다 비용도 반값이고 사진 메모리 카드를 카페 직원에게 맡기지 않고 내가 직접 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 동안 찍은 사진을 CD로 옮기니 카메라 메모리 카드는 다 지워서 새로 쓸 수 있게 되었다. CD를 두 장 만들었다. 한 장은 내가 가지고 다니고 한 장은 미국 딸네 집으로 보낼 것이다. 참 편한 세상이다. 필름 카메라를 쓰다가 이번 여행에 처음으로 디지털 카메라를 쓰는 것도 편하고 웬만한 곳에서는 인터넷을 할 수 있는 것도 편하고 여행 중에도 사진을 CD에 다운로드 할 수 있는 것도 편하다. 수퍼마켓에 가서 5박 6일 트레킹 하는 동안 먹을 음식을 샀다. 식단을 짜서 아침은 커피와 오트밀 죽 (oatmeal), 점심은 불 안 피우고 먹을 수 있는 마른 음식, 저녁은 스파게티 등 주로 지고 다니기 가볍고 요리하기 쉬운 것으로 샀다. 트레킹을 하는 동안 간단한 음식점과 매점이 있다하니 가끔 사먹을 수도 있고 음식이 부족하면 더 살수도 있을 것 같다. 어제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 트레킹 정보를 얻었던 Casa Cecilia 호스텔로 캠핑도구를 빌리러 갔다. 문 앞에 어제 본 강아지가 앉아 있다가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한다. 벨을 누르니 독일인 주인이 문을 열고 얼굴만 내민다. 캠핑도구를 빌리려 왔다하니 지금은 너무 바쁘니 오후에 와 달라며 문을 닫을 자세다. 오후 몇 시쯤 오는 게 좋겠느냐고 물으니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잠깐 생각하더니 3시 이후에 오란다. 어제도 그랬는데 문을 여니 문 앞에 앉아있던 강아지가 문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주인은 발로 밀어 내친다. 강아지가 그래도 들어오려고 하니 화난 표정으로 거의 발로 차내는 식으로 밀어낸다. 내가 보기에는 강아지가 외로워서 사람이 있는 문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 같았다. 호스텔 안에는 아침 식사를 하는 손님으로 꽉 차 있다. 나도 강아지처럼 밀어 내침을 당한 기분이다. 못된 친구다. 조그만 강아지에게 그렇게 거칠게 굴다니. 기르기는 왜 기르나. 어제도 인상이 안 좋았는데 오늘도 안 좋다. 그래도 오후에 다시 갔다. 빌려주는 곳이 다른 데도 있지만 스페인어로 말이 잘 안 통해서 자세한 얘기를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오후에는 딴 사람처럼 사근사근하게 대해준다. 텐트, 침낭, 매트리스, 스토브, 식기 등을 빌렸다. 호스텔 밖 잔디 위에서 텐트를 치는 법과 텐트를 헐어서 접는 법을 직접 시범을 해보이면서 찬찬히 설명을 해준다. 이 고장은 바람이 세게 불 때가 많은데 그럴 때는 텐트 치기가 힘들단다. 매트리스와 스토브 사용방법 역시 찬찬히 설명해준다. 스토브는 알코올을 때는데 바람이 강한 이 지방에 적당하게 바람막이가 붙어 있었다. 나중에 약방에 들려서 1주일 쓸 알코올을 샀다. 슬며시 문밖에 있는 강아지에 관해서 물어보니 자기 개가 아니란다. 2주전부터 문 밖을 차지하고 떠날질 않는단다. 이 도시에는 이 강아지처럼 주인 없는 개들이 수백 마리가 된다한다. 오늘 길거리에서 10여 마리의 개들이 모여 있는 것을 봤는데 그들도 주인 없는 개들이었나 보다. 올 봄 과테말라에서도 주인 없는 개들을 많이 봤는데 남미에서는 선진국이라는 칠레에도 주인 없는 개들이 이렇게 많다. 이제 트레킹 준비는 다 되었다. 그런데 날씨는 계속 나쁘다.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는 두 여행객이 오늘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 당일 관광을 다녀왔는데 비를 맞아서 물에 빠진 생쥐같이 되어서 돌아왔다. 날씨가 나빠서 아무 것도 안 보였고 음식도 비싸서 졸졸 굶으면서 고생만 했단다. 내일은 제발 날씨가 좋아졌으면 좋겠다. 2004년 1월 26일, 월요일, Puerto Natales, Residencia Rosita (오늘의 경비 US $57: 숙박료 7,000,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 버스표 11,000,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 입장료 16,000, 환율 US $1 = 600 peso) 아침에 일어나니 기적같이 날씨가 좋다. 햇빛도 비치고 먼 산에는 어제 밤에 내린 눈인지 흰 눈이 보였다. 정말 다행이다. 나와 집사람은 다른 버스를 타고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정말 얼마나 Torres del Paine 산이 아름다운지 마음이 설렌다. 집사람은 1일 관광이고 나는 5박 6일 혼자 가는 트레킹이다. 등산 코스에 사람이 많다니 위험할 것은 없겠다. 두 시간 정도 달린 후 5분간 휴식한다고 버스가 멈춘다. 어제 밤에 새로 내린 눈경치가 너무나 좋아서 사진을 찍으려 하니 아뿔싸 카메라 안에 메모리 카드가 없다. 어제 사진 CD를 만드느라고 메모리 카드를 뺐다가 다시 끼는 걸 잊어버린 것이다. 이 무슨 바보 같은 실수인가. 눈앞이 캄캄해진다. 사진 없는 Torres del Paine 산 트레킹은 생각할 수 없는 것, 공원 안에서 1회용 카메라라도 살 수 있을까, 사진 안 찍고 트레킹을 끝내고 사진 우편엽서를 사서 사진을 찍을까, 별 궁리를 다하다가 오늘은 그냥 당일 관광을 하는 셈치고 국립공원 구경이나 하고 내일 트레킹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루 날자와 버스 값 11,000 peso를 손해 보는 것인데 그리 큰 손해는 아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속이 편해진다.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해서 입장료 8,000 peso를 내면서 직원에게 내 문제를 설명했더니 고맙게도 내일 다시 들어 올 때 또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되도록 해준다. 버스 창밖으로 Torres del Paine, Cuernos del Paine, Paine Grande 세 봉우리가 나란히 보인다. 정말 장엄하다. 어제 왔다 간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못 보았다는데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았다. 이렇게 장엄한 경치를 눈앞에 두고도 못보고 간다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1999년 중국 여행을 할 때 날씨가 나빠서 황산에 가서도 황산을 못보고 떠난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됐었다. 그래도 황산은 가까우니 다시 가 볼 수 있지만 이곳은 다시 오기도 힘드니 못보고 가면 보통 낭패가 아니다. 내일 다시 올 때 날씨가 나빠져서 못 보드라도 오늘 세 봉우리를 봤으니 크게 낙담할 것은 없다. 사진을 못 찍더라도 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가는 길에는 남미에만 서식하는 guanacos 떼가 많이 보인다. 새끼는 한 살이 되기 전에 40%가 puma에게 잡혀 먹힌다니 평화스럽게만 보이는 풍경이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버스 종점인 관광안내소 앞에서 숙소가 있는 Puerto Natales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두 시간 동안 준비해간 점심을 먹고 전시물을 보면서 보냈다. 지난 10년 동안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을 방문한 사람들을 나라별로 통계를 내놨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의 숫자가 돋보였다. 미국 5만, 독일 4만 8천, 영국 2만 2천, 프랑스 2만 2천, 스페인 2만, 이스라엘 1만 9천, 이탈리아 1만 5천, 스위스 1만 5천, 일본 9천 등이다. 인구 6백만인 이스라엘이 인구가 10배인 영국이나 프랑스와 거의 맛 먹고 20배가 넘는 일본의 배가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과 독일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하는 것은 틀림없다. 반면에 위 숫자에서 보듯이 일본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한다는 말은 별로 맞지 않는 말이다. 오늘은 앞서 말한 듯이 카메라 메모리 카드를 안 가지고 와서 Torres del Paine 국립공원의 장엄한 경치를 앞에 놓고도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