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는 끝나고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갔다.
내가 일어나기도 전에 사모님은 벌써 고추밭에 나가 물을 주고 나서, 상을 차려 놓고 있었다.
오전엔 모판에 볍씨를 뿌리는 작업을 도왔다. 미리 흙을 담아놓은 모판에 물을 뿌린 후 물에 며칠간 불린 볍씨를 고르고 촘촘하게 뿌린 후 다시 흙을 체로 거르며 가볍게 덮는다. 모판을 옮겨 한 층 쌓고 비닐 덮고, 또 한 층 쌓는 형태로 켜켜이 쌓아나간다. 그렇게 해서 싹을 틔운 후 5월이 되면 모심기를 하는 것이다. 볍씨 중엔 싹이 하얗게 튼 것도 있었다.
이웃 아주머니 두 분이 품앗이로 오셨는데, 이곳은 어딜 가나 나이찬 아가씨를 보면 며느리 삼는다고 난리다. 자식들은 다 타향으로 나가 있는데 농촌에서 농사를 짓는 노총각들이 아닌 이상 무엇이 걱정이라고. 그냥 인사치레로 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결혼 얘기가 나오면 으레 질겁을 한다.
마지막 날이어서 아침에 청소도 깨끗이 하고 입었던 옷도 깨끗하게 빨아서 널어놓고 나오려고 했는데 아침 작업을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되었다. 하루 더 묵고 가라는 걸 뿌리치고 정신없이 챙겨서 나왔다. 제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그동안 보고싶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더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진도 흑미를 싸서 챙겨주시는 사모님. 터미널까지 타고 갈 택시를 부르고 택시비까지 챙겨주시는 선생님. 제주에 돌아가서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마침 도착한 택시를 타고 보니 그 기사가 아는 체를 한다. 대한민국국악제 때 난,수석전시회장에서 안내를 해주었던 분이다. 진도의 수석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던. 겨우 며칠 살았는데도 가는 곳마다 한번쯤 보았던 사람들이니 좁기는 좁은 동네다.
그동안 제주와 연관된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광양 어머니빵집의 어머니, 남원읍 의귀리에 딸을 시집보냈다는 어머니, 제주에 관광 왔었던 사람들, 제주에 잠시 살았던 사람들. 모두 자기 딸을 만난 듯 반가워했었다.
진도읍에서 해남 가는 버스를 타고 해남에서 완도로 간 후 완도에서 카페리호를 타기로 했다. 해남행, 완도행 버스가 각각 한 시간씩 걸린다고 하니 3시 배는 못타겠고 4시에 출발하는 카페리1호를 타게 될 것 같다.
수보에게 전화를 했다. 후배인 듯 싶은 여자분이 전화를 받고 바꿔준다. 어젯밤도 후배들과 밤새워 술을 마셨나보다. 서울에 들르라고 하는데 오늘은 이미 마음이 제주로 가 있어서...
해남 가는 직행버스에 올랐다. 승차감이 참 좋다. 의자를 아주 뒤로 제껴놓고 비스듬히 누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 본다.
종이가방 속에는 사모님이 가는 길에 먹으라며 기어이 챙겨주신 생과자 한 봉지가 들어있다.
버스가 고군을 지난다. 고군농악의 고장. 이제 낯설지만은 않은 진도의 마을 이름들. 힘들 때마다 찾아오면 고향처럼 따뜻하게 품어줄 것 같은 동네, 사람들.... 너무나 좋은 추억 만들고 떠나간다.
모든 것이 깨끗하게 단장돼 있는 깨끗한 고장 진도.
무엇보다 진도 사람들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해남에서 버스를 갈아타고 또다시 섬으로 들어간다. 남창을 지나 완도군 군외면으로. 바다를 보니 가슴이 탁 트이는 듯 하다. 벌써 제주에 온 것처럼. 바다는 아직도 안개주의보다. 완도대교를 지난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 뻘에 양식을 하는지 통나무 기둥이 줄줄이 꽂혀있고, 그 사이 거룻배 몇 척. 첩첩 산을 배경으로 한 바다풍경이 안개로 하여 하나의 완벽한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기사아저씨가 라디오를 켠다. 아, 그동안 세상의 일과 너무나 먼 곳에서 살아왔구나.
비로소 선경에서 세상 속으로 나온 듯 하다. '펑!' 소리에 놀라 꿈을 깬 듯.
왜 전엔 못 봤을까. 이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진도가 한 폭의 산수화라면 이곳은 소박한 수채화다. 다도해의 수많은 섬들이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산과 물의 조화. 4월의 신랑신부가 여행을 한다면 4월의 완도로 오라. 부드러운 섬의 품 속에서 소박한 미래의 꿈을 설계할 수 있으리라.
밭도 아기자기하다. 농토가 많지 않은 듯 이곳에서도 제주처럼 산을 일구어 만든 계단식 논과 밭들이 길 아래로 보인다. 넘칠 듯 물이 출렁이는 조그마한 논들이 앙증맞다. 길가엔 사람사는 동네처럼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바다가 있어 외롭지만도 않다. 아, 그러고보니 제주의 풍경과 너무나 닮았다.
"남의 말을 좋게 합시다."라는 계도용 플래카드가 걸려있어 절로 웃음이 나온다. 근래들어 피서의 경유지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 많이 변했을 듯 한데도 아직까지 남아있는 소박함이 기분 좋다.
역시 섬사람들은 바다를 보아야 살 수 있나 보다. 진도의 내륙으로만 이어진 길을 오가면서 뭔가 막힌 듯 하던 답답한 느낌의 정체가 이제야 실체로 드러난다.
제주완 너무나 많은 점에서 닮은 완도.
벌써 제주에 온 것 같았다. 부두로 가는 시내 풍경이며 암벽, 산의 모습, 항구의 풍경까지도. 아, 빨리 제주에 가서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대학생들이 단체여행을 가나보다. 왁자지껄하니 올라타는 사람들 뒤를 따라 카페리1호에 올라서니 생각보다 선실이 깔끔하다. 단체여행객을 빼면 개인 승객은 많지 않은 듯 하다. IMF 영향인가.
진도 강강술래를 들으며 또 하나의 섬을 떠난다. 떠나는 건 늘 가슴아림을 동반하는 법인가. 또 떠나온 섬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사방 섬에 둘러싸이니 오히려 섬이 바다고, 내가 떠있는 바다가 섬인 것만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 섬은 점점 넓어지고 저 섬은 점점 멀어진다.
바다 한가운데로 나오니 하늘이 뻥 뚫리며 따뜻한 햇살이.
갑판 한가운데 서서 배의 흔들림에 몸을 맡긴다. 내 몸도 내 마음도 바다 위를 둥실 떠간다. 바다 위에 떠 풍물가락을 듣고 있으니 배의 흔들림 자체가 풍물의 흐름인 양 함께 둥근 곡선을 그리며 하나가 되고 있었다. 이런 신비함.
가까이서 보는 바다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내 곁에서 출렁이는 심연의 바다. 바다를 응시하고 있으니 마음이 시려온다.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
객실로 돌아왔다. 진도의 과자를 꺼내어 커피와 함께 먹는다. 김선생님과 사모님의 마음이 입속에서 함께 씹힌다. 고마운 분들. 마치 제 자식을 대하듯, 외지에 나간 제 자식이 행여 굶을세라 때 찾아 챙겨주셨었다.
아예 선실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바다에서 수영하는 기분으로, 기관의 통통거림과 바다의 흔들거림을 함께 음미하며. 그런데 그렇게 오래 있으니 울렁거림이 생긴다. 이래서 사람들이 뱃멀미를 하는 것이로구나.
선실에 드러누워 천차만별의 사람들 삶을 엿보는 것, 갑판에서 오며가며 바다와 섬을 볼 수 있는 것, 이런 것이 쾌속선과는 또 다른 여객선 2등객실의 매력이 아니던가.
오늘도 단체 외에 일반 승객은 거의 없나 보다. 한 칸은 아예 학생들이 전세내서 쓰고 이쪽 칸은 스무나문 명이 여유있게 누워 거의 잠을 자고 있다. 중년 아저씨 두 분이 앉아서 잡담을 하고 있고, 한 켠에선 사관학교 학생들인 듯한 네 명이 무료함을 이기려는 듯 화투를 치고 있다. 저쪽 학생칸에서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진행하는 듯 노랫소리가 낭자하다. 이쪽칸에선 단체객들 중에서 빠져나와 잠을 자던 중인듯 갑자기 부산해진 소리에 놀라 깨서는 제주에 도착했는줄 알고 일행들을 깨운다. 유난히 둔한 사람이 꼼짝도 안하자 발로 차며 난리다.
배의 도착이 30분쯤 지연될 예정이란다.
시간을 보니 7시30분. 짐을 대충 정리하고 갑판으로 나갔다. 다가올 내 삶의 터전을 자세히 보기 위해. 잔 별빛처럼 하얗게 빛나는 제주, 내고향 제주는 그렇게 반짝이는 별빛으로 나를 맞이했다.
이젠 정말로 현실이다. 내가 걸어들어가야 할 치열한 삶의 한가운데로.
다시 두려워진다. 내가 만나야 할 사람들, 해야 할 일들,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것들.
부산하게 사람들이 내리고 공중전화 순서를 기다려 진도 선생님에게 잘 도착했노라는 전화를 마치고 나서니 어느새 제주항도 썰렁하니 비어 있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인파.
제주는 어느새 낯선 곳이 되어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쓰는 사투리도 낯설고, 어느새 건축폐기물들이 깨끗이 치워진 산지천도 낯설고, 늘 보던 그 상가, 그 불빛, 지나가는 사람들조차도 낯설어보인다.
그러나 곧 적응이 될 것이다. 나의 것이니까.
가자, 현실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