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루카 11,29
표징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어떤 사건이나 사물, 현상이나 행동들을 통해 심오한 의미를 전달하고자 할 때 그를 위해 사용된 그것. 본질적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식.”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을 계시하는 방법으로 표징을 사용하신다. 우리의 지성을 뛰어넘는 하느님을 우리는 있는 그대로 알 수 없기에 표징을 이용하신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 나라가 왔음을 드러내는 표징으로 기적을 사용하셨다. 표징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표징 자체가 아니라 표징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비판을 받는 사람들은 표징이 전하는 의미는 보지 않으면서 표징 자체만 추구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거부하시며 그들을 악한 세대라고까지 말씀하신다. 표징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자신들이 원하는 하느님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표징은 외면한 채, 자신들이 원하는 표징만을 추구한다.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요나 예언자의 표징을 말씀하신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지냈던 예언자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통해 당신의 죽음을 예고하신다. 요나가 전한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해 니네베 사람들이 회개하였듯이 당신의 십자가 죽음이 회개의 표징이 되기를 바라신다. 당신의 십자가 죽음이 하느님 사랑, 인간 구원을 위한 처절한 사랑의 가장 큰 표징임을 말씀하신다. 사람들은 화려한 표징, 승리의 표징을 요구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좌절과 패배의 표징을 보여주신다. 죽음 자체가 인간에겐 표징이다. 죽음은 처절한 단절, 인간의 숙명, 완전한 종말의 표징이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피하고픈 표징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죽음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실패와 좌절과 고난 속에 하느님의 사랑이 있음을, 죽음이 부활의 표징임을 십자가를 통해 드러낸다.
미사를 비롯한 교회의 성사는 표징이다. 하느님 사랑의 가장 확실한 표징이다. 미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징이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 안에서 드러나는 표징은 보지 않으면서 이상한 기적만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역시 악한 세대이리라.
사순 시기! 십자가를 통해, 십자가 죽음의 희생제사인 미사를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더 깊이 누릴 수 있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