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새해엔 좋은 계획들 세우셨나요..
새해엔 탁본방에도 변화가 생겼읍니다.
찰라님께서 여러 한국의 비갈들을 소개해 주시어 너무 고맙구요.. 저도 몇 개의 큰 탁본의 사진을 오늘 찍어 두었읍니다. 정리가 되는대로 올려 드리겠읍니다.
앞전에 이벽묘지를 다루면서 장맹룡비를 언급하였읍니다. 그래서 오늘은 북위글씨 가운데 빼 놓을 수 없는 장맹룡비..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장맹룡비를 올려볼까 합니다.
시기적으로 장맹룡비는 북위 즉, 장강을 사이에 놓고 남동쪽의 동진이 망할 무렵 여러 민족과 나라들이 명멸해 가던 오호 십육국의 강북에 선비족이 점차 그 세력을 쌓아가면서 북조로 이어지는 첫 나라 북위를 건설합니다. 장맹룡비는 수많은 비갈을 남긴 북위가 남긴 대표적인 비갈중의 하나입니다.
북위의 유명한 비갈로는 중악숭고령묘비(456), 휘복사비(488), 용문조상기, 석문명(509), 정희하비(511), 사마?처맹경훈묘지(514), 조준묘지(517), 가사백비(519), 이벽비(522), 마명사비(523), 고정비(523), 고경비(508), 장흑녀묘지(531) 등이 있읍니다.
전장본인데 제목이 씌여져 있질 않읍니다. 비문도 비액이 어디가고 없어서 할 수 없이 도판을 하나 긁어 왔읍니다.
이걸 좀 좁게 잘라서 두개를 나란히 붙이는 기술이 아직 없읍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오른쪽 막대를 죽죽 내려가면서 보세요..
언제 보아도 장맹룡비의 비액은 멋있읍니다. 방필의 기술은 순전히 붓의 작용이라기 보다 새진자의 칼끝에서 어느정도 다듬어져 있다고 보고싶으나 결구에 있어서는 너무나 상상밖의..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적어도 저는 아니다라는 생각이 마구 들었죠.
魯자와 淸자가 빚어내는 비균형의 이끌림.. 頌자와 之자 등 뜻밖의 공간포치.. 오직 한 글자 魏자만이 제 상식의 범용안에 있다고 생각했읍니다. 이래서도 저는 아닌거죠..ㅎㅎ
장맹룡비는 위의 비액에 적힌 대로 노군태수 장맹룡의 덕행을 칭송하기 위해 북위 정광正光삼년 즉, 서기 522년에 세워진 것이며 비음에는 비를 세운 사람들과 관련있는 사람들의 명단과 관직이 새겨져 있읍니다.
명, 청년간에 탁본된 것은 대체로 비음과 비액을 같이 탁본하지 않았고 완전하게 모두 탁본되어져 있는 것은 비교적 늦은 탁본들이라 합니다. 양선비楊宣碑와 가사백賈思伯가 이와 비슷하게 세워져 글씨 또한 매우 유사하여 어떤 사람은 이 세개의 비문을 한 사람이 썻다고도 추측하고 있읍니다.
원 비석은 지금 산동의 곡부曲阜 공묘孔廟에 보관되어 있으니 역시 꼭 기억하셨다가 기회되시면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장맹룡비는 필법이 강건하고 날카로워 용문조상기 중 <시평공>의 풍격을 그대로 계승 발전해 왔으며 횡, 수획이 모두 방필로 운필하고 있으며 전절(轉折)부분에도 붓이 꺾인 흔적이 삼각형의 각을 지우고 있는 것 등 시평공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필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방필 속에서도 더러 원필이 운용되어 시평공보다는 많은 변화를 구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모든 획이 방필로 운용되던 조기 위비의 조악한 풍격에서 많은 섬세해진 진전을 살필 수 있읍니다.
그러나 이 비가 용문의 북비 정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글자의 오른어깨가 위로 많이 치우쳐 올라간 점, 결구의 긴밀함, 전절하는 부분에서의 예리함 등이 그대로 살아있어 북위시대의 대표적인 걸작이라 보는데는 크게 이견이 없읍니다.
강유위도 이 비를 일러 '정체(해서)로 형태가 변해오는 것 가운데 가장 모범이다.' 하여 '정품상'에다 배열하고 있고 그 서법을 비유하여 '주공이 예악을 만든 것 처럼 하나하나가 아름답지 않는게 없다.'고 하였읍니다.
조함도 '...이미 구양순, 우세남의 문경을 열고 있다.'라 하여 멀리 당해唐楷의 조짐을 점치고 있읍니다.
특히 양수경은 비의 음측에 대해 '流宕奇特', 자유로움이 흘러 기이하고 특이하다라고 했는데...
과연 어떠한지는 저도 아직 잘 모르겠군요..
저는 이 비를 과연 어떻게 임서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많은 의문점이 들었읍니다. 무엇보다는 방필이 어려운 까닭입니다. 저도 양호필로 십팔밀리 이십밀리 등을 썼는데 이것으로 방필을 만들어 내자면 거의 그려야 하는 지경이며 숙달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북위 사람들이 운필하였던 방필이었을까...
어릴때 엿장수가 엿칼과 가위로 엿을 떼어내던 그 삼엄하고 예리한 칼 맛이 어떻게해서 연약한 붓끝에서 생길 수 있단 말인가...
언젠가 사생해란 근대 서가가 쓴 문장중에서 각수刻手문제에 대해서 쓴 것을 떠 올려 봅니다.
계공이란 사람과 당시 돌에다 글씨를 새기는 각수 얘기를 하다가 어디서 발견한 미완성 묘지명을 발견하게 되는데 거기는 붉은 먹으로 서단을 올린 아직 새기지 않은 글씨와 이미 새겨진 글씨가 반반정도 있었는데 새겨진 글씨와 서단의 글씨가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는 내용이었읍니다.
서단으로 올린 글씨 즉 각수의 손길을 기다리는 글씨는 흔히 잔지殘紙에서 보니는 육필肉筆과 다름없었으나 새겨진 글씨는 방절方折이 깔끔하게 되어 있었더라는 것입니다.
물론 위에 올린 사맹해의 말이 장맹룡비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장맹룡비를 놓고 방절이 많이 보이시는 분들은 방절을 더 염두에 두면서 공부를 하시는게 맞겠고 원필이 더러 보인다시는 분들은 아무래도 섞어서 운필하시는게 맞지 않을까 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말로 맺어야겠군요..
감사합니다....^^
첫댓글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글씨...라고만 막연히 느끼고 있습니다...어휘력...기타등등이 무쟈게 딸리는관계로...
음...멋지다. 나도 장맹룡비 쓰고 싶은데....아직은 딸려서 미루고 있는중~구경 잘하고 갑니다.
천만경님 건강하세요. 오늘은 장맹룡비가 올라왔네요. 수고많으셨어요. 잘 읽었네요~~~
자료 보여 주시고 설명까지 해 주시어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전 초보인데 이제 장맹룡비임서할려구하는데 뜻밖의 좋은 설명과 자료 고마웠습니다.
다시 한번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요. 볼 때마다 감탄하는 보석입니다. 천만경님 수고하십시요...
千卍景님:안녕 하세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장맹룡비갈에 대하여 자세히 설몀을 곁드려 올려 주시는 님의 수고 하심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교재를 통하여 보고 있는 것 보다는 비갈의 실제 필의와 필세를 볼수 있어서 참고가 되고 있습니다. 감사 하구요.건강 하시고 늘 행복 하세요. *^^*
많은 공부 되었읍니다.저도 공부해서 장맹룡비의 힘을 느끼고 싶습니다.감사합니다.
운필에 있어서 방필과 원필을 확실히 구별해서 쓸줄 안다면 육조의 필법이 잘 보일꺼에요 근데 붓만 잡으면 왜이리 안 되는지...정말 좋은자료 구경했어요 감사합니다^^
저도 지금 장맹룡비임서 공부하고 있는데 방필이 정말 어렵군요. 자주 보고 글씨쓰는데 참고하겠습니다. 책은 있는데 이렇게 좋은 평과 더불어 이해하니 많은 도움이 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