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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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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타 소사이어티 스크랩 봉정사
香象 동선 추천 0 조회 21 14.03.19 10:4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이 있는 봉정사

(2013. 6. 3)

 

한 십여년 만에 안동 봉정사를 다시 찾았다.

그 때는 극락전을 해체하는 공사가 한창 진행되던 때라 우라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돌아섰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 했던가?

극락전 내외에 철구조물을 설치해 놓아서 문화재를 해체하여 보수, 복원하는

과정을 잠깐이나마 볼 수 있었고 극락전의 속살을 엿 볼 수 있는 계기도 됐었다.

 

 

 

봉정사는 안동에서는 가장 큰 고찰로 천등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데

천등산하면 오래된 유행가 "울고넘는 박달재"가 생각나는데 박달재의 천등산은

충북 제천에 있으니 안동에도 같은 이름의 천등산이 있는가 보다.

 

암튼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년)에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봉을 날렸는데

이 곳에 내려앉아 절을 창건했다는 설화가 있으며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대덕이

창건한 후 조선시대까지 여러차례 중수하였다고 한다.

 

 

 

고찰 답사에서의 즐거움 중 하나로 절집에 이르는 울창한 숲길을 걷는 것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만세루로 올라서는 길가에는 180년이나 살아서 보호수로 지정된 높이 15m의 소나무가

노구를 지탱하기 힘들다는 듯이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었지만 푸르름과 기상만은 여전하다.

 

 

만세루

숙종 6년인 1680년에 건립했으며 대웅전 앞에 있는

2층 누각형태의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이며

 앞면은 2층이나 뒷면은 단층으로 봉정사의 입구 역할을 한다.

 

 

만세루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

 

 

대웅전 옆에서 바라본 만세루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화엄강당, 우측에는 무량해회가 있다.

 

 

봉정사 대웅전(국보 제 311호)

봉정사의 중심건물로 조선초기 건물로 추정되며

정면 3칸, 측면 3칸 겹치마 팔작지붕에 다포양식의 단층건물이다.

 

 

 

 

 

 

화엄강당(보물 제 448호)

승려들이 공부하는 강당건물

 

 

극락전(국보 제 15호)

1972년 해체,보수 때 발견된 상량문에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중수하였다는 기록을 찾아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인증되었다.

 

 

 

 

 

 

극락전의 옆 모습

정면은 3칸, 측면은 4칸인데 기둥들이 촘촘하고 맞배지붕으로

고려시대 건물이지만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내포하고 있다.

 

 

삼층석탑

고려시대 극락전과 함께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는데

높이는 3.18m이며 뛰어난 작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탑이다.

 

 

안정사 석조여래좌상

안동군 월곡면 미질리에서 발굴된 것으로 안정사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그 뒤 안동댐 건설로

안정사가 폐사되면서 1973년 봉정사로 옮겨졌으며 제작시기는 통일신라 하대의 9세기 경으로 추정한다.

 

 

범종각

 

위 좌 : 운판(雲版), 우 : 법고(法鼓), 아래  목어(木魚)

 범종과 목어, 운판, 법고는 우리나라 사물(장, 꽹과리, 장구, 북)의 원조격이다.

 

운판은 조석예불과 법의식때 치며 모양이 구름무늬 같아서 날아다니는

조류와 죽은 영혼을 천도하여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뜻이 담겨 있다.

 

법고 역시 조석예불과 법의식때 치며 축생과 땅 위의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는 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중생들에게 고통(四苦:생노병사)에서 벗어나 해탈케하며 북소리가 마치 중생의 번뇌를

대군이 북치듯 진군하여 쳐부수는 것과 같아서 부처님의 설법을 법고에 비유한다고다.

 

목어는 목고(木鼓) 또는 목판이라고하며 조석예불과 법의식때 두드리며

경전을 외울때나 사찰내의 대중스님들을 운집할 때도 사용된다.

 

목어는 수중 중생을 제도하는 의미가 있지만 물고기가 항상 눈을 뜨고 있듯이

수행자들도 항상 눈을 뜨고 열심히 수행하라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고금당(보물 제 449호)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원래는 선방이었으나 현재는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다.

 

 

삼성각

삼성신앙은 불교가 이 땅에 토착화하면서 고유의 토속신앙이 불교와 합쳐져 생긴 신앙형태로

삼성각은 우리의 토착신인 산신을 초기불교에서 포교를 위해 흡수하여 모신 곳이기에 보통 사찰의

뒤나 후미진 곳에 지어져 있는데 봉정사의 삼성각은 현판의 글씨마저 지워져 조금 괴기스러움을 느꼈다.

 

 

삼성각에서 네려다 본 극락전과 고금당 등 봉정사 경내 모습

 

 

 

 

영산암 우화루

봉정사의 부속암자로 19세기 말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며

응진전, 염화실, 송암당, 삼성각, 우화루, 관심당 등 6개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화루

영산암 입구에 해당하는 우화루 현판은 원래 극락전 앞에 있는 누각의 현판이었다고 하며,

우화(雨花)는 석가모니께서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처음 설법하실 때 하늘에서 꽃비가 내렸다고 한 것에서 유래한 말이다.

 

 

 

영산암의 입구인 우화루의 문 아래가 독특한데 큰 통나무가 놓여 있어서

다리를 높이 들어 넘어가야 하는데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런지?

 

 

 

영산암은 규모도 작고 오밀조밀한 가람배치에 꽃을 잘 가꾸고

조경도 잘 꾸며 놓어서 혹시 비구니들의 수행공간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응진전

 

 

 

 

 

 

 

우화루의 2층 누각으로 바라다 보이는 바깥풍경이 좁은 공간의 단점을 보완하고 눈을 시원하게 해준다.

 

 

 

 

 

 

 

송암당

 

 

석등도 절의 규모답게 아담하다.

 

 

 

 

세 개의 화분이 앙증맞다.

 

 

 

 

 

 

 

 

명옥대

명옥대는 퇴계 이황 선생이 학문을 가르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조선 현종 6년(1665)에 사림들이

건립한 누각형태의 정자로 봉정사 가는 길의 입구에 있는데 봉정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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