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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날개
- 김석희
1937년 4월 17일 새벽 네 시경, 일본 동경제대 부속병원 00호실.
서편으로 트인 유리창엔, 아직은 스산하게 느껴지는 봄밤의 달이 노오랗게 걸려 있었다.
- 아아, 레몬 향기가 맡고 싶소,
오랫동안의 궁핍과 고독, 사식 한 그릇 차입해주는 이 없는 이역의 감방 안에서 보낸 29일간의 구류 생활, 그리고 폐의 형체조차 거의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앓아온 폐결핵, 그리하여 이제는 피골이 상접한 몰골에다 얼굴마저 흙빛이 다 된 환자는, 달빛이 넘어드는 창문 쪽으로 간신히 시선을 옮기면서, 마치 자신의 죽음을 손 안에서 만지작거리는 듯한 기분으로 말을 뱉었다. 어쩌면 그의 눈엔, 유리창에 어리는 노오란 달이 레몬처럼 보이고 있는지도 몰랐다. 뿐만 아니라, 창을 넘어온 달빛은 환자를 덮고 있는 하얀 시트 위에 레몬빛 이국의 향기를 흩뿌려놓고 있었다. 환자는 잠깐 동안, ‘흐느적거리는 육신 속에서’ 마치 달빛에 빛나는 ‘은화처럼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이 순간을 틈타서, 자신을 둘러서 있는 얼굴들을 일별했다.
- ‘굿빠이. 이제 테이프가 끊어지면...... 상채기도 머지않아 완치될 줄 믿소, 굿빠이’
문득 창유리를 흔들며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갔다. 창유리에 어리던 레몬빛 달빛이 흐트러졌다. 멀지 않은 숲에서 밤새의 울음소리가 새벽의 다가옴을 알렸다. 그리고 환자는 조용히, 혈흔처럼 말라붙은 마지막 숨을 안으로 삼키고, 남들보다 한두 걸음 앞서서, 아직도 어둠이 희뿌옇게 남아 있는 새벽 속으로 깊이 자맥질해 들어갔다.
임종했던 몇몇 친지들의 손으로,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의 주검은 화장되었고, 같은 해 6월, 한 줌의 재로 남은 그의 유해는 서울로 옮겨져, 미아리 공동묘지의 한 귀퉁이에 안장되었다. 그리고 세월의 덧없음보다 변덕스러운 세상 인심의 무정함 속에서, 지금은 뼈 하나 추스를 봉분은커녕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
(위의 인용부분은 이상의 소설 {날개}에서 발췌하여 약간의 변형을 가한 것임.)
1
서울특별시 도봉구 미아리 33번지 18호.
마당은 제법 너른 편이어서, 한쪽 모퉁이에서는 오이나 상추 따위의 채소라도 철갈이해서 가용을 줄일 정도였다. 그러나 원래 적산가옥이었던 이 집은 워낙에 오랜 세월의 비바람을 겪은데다, 6.25난리 땐 반 토막이나 거덜 났던 것을 다시 이어 붙였고, 그 뒤로 여러 차례 개수를 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더 이상 손써볼 구석이 없을 지경으로 허물어져 있었다. 마루는 발가락만 닿아도 삐걱거렸고, 문이란 문은 아귀가 맞지 않아 덜컹거렸고, 천장은 빗물을 먹어 내려앉았고, 벽은 원래의 두께만큼 땜질을 더했음에도 사방팔방으로 죽죽 금이 가 있었고, 지붕엔 깨진 기와 틈새로 잡풀들이 목을 늘이고 있었다.
더욱이 이 18호 집을 포함은 33번지 일대는 재작년에 재개발지역으로 고지되면서 급격한 탈바꿈을 겪고 있었다. 벌써 솜씨 좋고 눈치 빠른 축들은, 옛날 공동묘지터였던 이 자리가 이제 와서야 혼백의 은덕을 입는가 보다면서, 서둘러 땅을 팔아치우고는, 이왕이면 먼 곳, 귀신조차 따라오지 못할 강 너머로 줄행랑치기에 바빴다. 그리하여, 오죽하면 묘지터에 뿌리를 내리고 살겠느냐는 한을 곱씹던 사람들이 떠나버린 이곳에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땅을 파헤치고 철근을 박고 시멘트를 쏟아 붓는 소리가 그칠 새 없었다. 더군다나 18호 집의 왼쪽 담장을 명하고 있는 2차선 도로를 건너면, 그곳엔 종합상가 건물이 벌써부터 우람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는데, 마치 18호 집을 발아래 깔아뭉개기라도 할 듯 도도하게 어깨를 펴고 있었다. 아마 저 건물이 5층 높이의 키를 세우는 날이면, 이 18호 집에서는 일년내내 햇살 한 줌 만져보기 어려울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 집에서는, 새로운 변화에 맞춰 제 몸 하나 운신할 길을 찾기는커녕, 주저앉은 자리에 군살이 박히고, 그 살이 헐어서 퀴퀴한 고름냄새를 풍기는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복덕방업자를 앞세운 구매자가 들락거렸지만, 집주인은 막무가내였다. 그 까닭인즉, 내 비록 먹고 살기가 수월치 못한 처지이고, 이 집 또한 더 갈 데 없을 지경으로 퇴락하긴 했으되, 내가 이 집에 들어와 살을 붙인 지 어언 30년, 무너지면 다시 쌓고 깨지면 다시 아물리면서 동고동락해 왔으니, 내 몸 혼자 편히 건사하겠다고 이 집을 허물 수는 없는 노릇, 내 죽어 육신이나마 이 집을 뜬 다음이면 모를까, 이 두 눈 뜨고 시퍼렇게 살아 있는 동안은 어림없소- 였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미아리 33번지 18호. 여기에 이상은 살고 있었다. 그는 물론 이 집의 주인은 아니고,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만원짜리 방 한 칸에 세들 어 사는 신세였다.
페인트가 다 벗겨져 버즘 친 자국처럼 쇳녹이 덕지덕지 드러나 있는 대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ㄷ자의 기둥에 해당하는 곳이 마루이고, 양쪽 날개에 방이 하나씩 들어서 있으며, 마루와 양날개 사이, 그러니까 양쪽 날갯죽지는 각각 안방과 부엌인데, 안방에는 주인 내외가, 안방과 이어진 날개(대문 쪽에서 보면 우익이다) 에는 주인집 아들이, 그리고 그 맞은편, 부엌과 이어진 날개(대문 쪽에서 보면 좌익이다) 에는 이상이 -아내(서로의 형편을 보아가며, 사랑하기도 하고 토닥거리기도 하고 무관심하기도 하면서, 어느새 반년이 넘도록 함께 살아오고 있지만, 그러나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는 아니다) 와 더불어 - 각각 둥지를 틀고 있었다. (그리고 마루엔 십자매 한 쌍이 조롱에서, 또 마당엔 잡종 스피츠 한 마리가 개집에서 살고 있었다)
이 18호 집을 소개해준 복덕방 영감에 따르면, 주인 남자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건강 때문에 그만두었다는데, 5년 남짓 앓아온 심장병으로 그의 얼굴은 누렇게 부어 있었고, 이따금 온몸을 허우적거리며 내뱉는 기침소리를 듣노라면 북망산 정상을 넘어서는 듯한 느낌이었다. 부인은 네거리 시장 안에서 순대며 돼지 머릿고기 따위를 벌여놓고 술과 함께 팔고 있었고,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인데, 여드름꽃이 피기 시작한 녀석의 얼굴은 학력고사 220점 정도의 수준에 어울리게 생겼다.
이상과 주인 남자는 거의 온종일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신세이기 때문에, 이따금 수돗가나 마당 한켠에서, 혹은 변소 안팎에서 마주치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주인 남자는 이상에게 먼저 말을 건네오곤 했다. 병원에서 진단받은 것보다는 오래 살고 있지만 올해는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다느니, 한창 나이인 아내가 장사를 핑계로 이놈 저놈과 손도 잡고 눈길도 나누는 모양이지만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느니, 자기가 죽으면 이 집도 헐리고 말테니 다른 일 제쳐놓고 방부터 구하러 다니라느니, 하는 따위의 사설을 밑도 끝도 없이, 긁힌 레코드판처럼 되뇌곤 했다. 그러면서 언젠가는 이상더러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왔을 때, 이상은 별로 주저함도 없이, 간단명료하게 소설가라고 대답해주었다.
이상이 자신의 직업을 소설가라고 했을 때, 그것은 사실이기도 했고 사실이 아니기도 했다. 그는 누구 못지않게 열심히 소설을 쓰고는 있었지만, 지금껏 발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느는 발표를 목적으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더 정확하게 털어놓자면, 그는 오직 한 사람의 독자를 위해서, 그의 생활을 도맡아 보살피고 있는 아내의 원망을 풀어주기 위해서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고 있었다.
그의 아내는 연홍이라고 불렸다. 이 고운 이름은 물론 본명이 아니었다. 이상 내외가 미아리 방면으로 이사 온 것은 순전히 아내의 직장 때문이었는데, 그의 아내는 주간다실-야간싸롱-19세기에 나가는 여자였고, 연홍이란 이름은 그곳 마담 언니가 지어준 별명이었다.
미아삼거리에서 삼선교 방향으로 빠지다가 길음시장 다음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길 맞은편을 향하면, 1층에 약국과 제과점, 2층에 당구장, 3층에 하나님말씀교회가 들어서 있는 3층 건물이 보이는데, 그 건물의 지하가 바로 그녀의 근무처였다. 혹시 거기에 가본 적이 있는 사람이면 그녀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의 아내는 19세기에서 제법 인기있는 96번 아가씨였다. 비록 눈이 시릴 만큼 미인은 아니지만, 또 굽 높은 구두를 골라 신어도 머리끝이 평균치 한국인의 어깨 아래 놓일 정도로 작은 키지만, 매운 듯 요염한 눈매에다, 나올 곳과 들어갈 곳이 선명하게 굴곡져 내린 선이 오히려 풍만함을 돋보이고 있어서, 그녀를 한층 더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가슴을 반쯤이나 드러낸 V 라인의 스웨터를 입고, 금방이라도 옷 밖으로 터져나올 듯 부푼 엉덩이를 설레설레 흔들며 걸어갈 때면, 사내들은 그녀를 안아보고픈 충동으로 침을 삼키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의 관계도 실은 그 같은 침 삼키는 소리에서 시작되었다)
“어머, 응큼도 하셔라. 아내, 댁에서도 그런 생각을 할 줄 아세요?”
널 한번만 안아보고 싶다, 라고 이상이 목울대를 울렸을 때, 그녀는 한바탕 깔깔거리고 나서 이렇게 대꾸했었다.
이상이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을 무렵이었다. 도서 출판 天地. 그는 거기에서 원고정리하는 일을 보고 있었다. 일이래야, 뜻이나 대충 이어질 정도로 일어에서 옮긴 값싼 원고를 받아와서 우리말로 기름지게 다듬어내는 작업이었다. 소설을 쓴답시고 한 때 다듬어둔 글 솜씨가 그나마 밑천인 이상으로서는 별 어려움 없이 지낼만한 일터였는데다, 한 달이면 하숙비를 내고도 몇 차례 술이라도 마실 만큼의 돈이 손에 쥐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신림동 네거리 근방에 있는 스탠드바-아마존에 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하숙집이 그 근처였던 이상을 가끔 퇴근길에 들러 맥주라도 한 두병 사마시곤 했었다. 언제나, 혼자서, 우두커니.
“그래, 한번만.”
“좋아요”
그 뒤로 몇 차례 더 만나면서, 두 사람은 자신의 삶을 가장 뛰어난 실패작으로 여기고 있는 상대방을 보았고, 서로에 대한 동정으로 자신의 위안을 삼을 수 있으리라는 데서 비교적 손쉬운 타협의 실마리를 발견했다.
그녀는 이상의 작업을 위하여 그녀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었다. 원고지, 플러스펜, 담배, 커피, 땅콩, 입맞춤까지. 그녀는 이런 것들을 밤마다 한아름씩 안아들고 왔다. 심지어 이상은 아내가 넣어준 용돈으로 창녀를 사기까지 했다.
그녀의 꿈은, 그가 쓰는 글의 어느 구석에선가 자신의 삶이 축복받은 모습으로 그려지는 일이었다. 그를 만나기 전에 두 번 연애에 실패했고, 그리고 영원히 잉태할 수 없게 된 그녀는, 가고의 세계 속에서나마 3남 4녀를 거느린 사장 사모님쯤으로 출세하고 싶은 것이었다.
2
이상.
현명한 당신은 벌써 눈치를 챘겠지만 이상은 사실 자신의 이름 덕분에 곧잘 엉뚱한 대접을 ‘겪곤’ 했다. 가령 누구를 처음 만나 소개되는 경우에, “아니, 그 위대한 천재, 그러나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이상 말인가요?” 하는 인사는 예사로 받는 터이고, “한 번 만나고 싶었는데, 이렇게 뵙게 되니 참 반갑습니다. 그래, 요즘도 그 알쏭달쏭한 글을 쓰고 계신가요?” 하고 치받아올 때면, 그 말이 진정인지 거짓인지 분별은커녕 무어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이상은 그만 오줌부터 마려워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상은 마음이 너그러운 사람이다. 그는 언제나, 왼쪽 눈 아래 근육 한 가닥을 실죽거려 히죽 웃어 보이거나, 아니면 빗질도 필요없는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빗어 올리고는, “우리말로는 같은데 한자로는 다릅니다. 내 이름의 상자는 상서로울 상이거든요” 또는 “그 이상은 별명이지만 내 이상은 본명입니다”하고, 자상한 설명을 잊지 않았다. 사실, 그의 너그러움으로 말하자면, 사흘을 연이어 외박한 아내가 나흘 째 되던 날 새벽에야 그이 것이 아닌 체취를 온몸으로 바르고 돌아왔을 때에도, “바쁜 모양이지, 요새?” 하는 한 마디를 입술 사이에서 지그시 깨무는 것으로 넘겼을 정도다.
그는 언제나 혼자였다. 어쩌다 아내가 요구해 올 때를 제외하고는 자는 것도 혼자였고, 식사도 저 혼자서 챙겨 먹었으며, 말을 나누는 일조차 저 혼자 중얼거리는 것밖에 없었다. 이따금 마당에서 주인 남자를 만나는 경우가 있었지만, 둘 사이엔 긴 이야기가 오갈 까닭이 없었다. 주인은 늘 했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게 고작이었고, 이상으로선 스스로 꺼내 보일 화젯거리가 없었으므로. (가령 그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녹음했다면, 다음과 같은 내용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오늘 며칠이요?”
“글쎄요”
“아무 날이면 어떻겠소”
“그럼요”
“몇 시쯤이나 됐소?”
“글쎄요”
“좀 전에 점심을 먹었으니까 두 시쯤 됐겠군”
“그렇겠군요”
“점심은 했소?”
“점심요? 아, 점심요. 네 했습니다. 저한텐 아침입니다만”
“난 라면 하나 끓여 먹었소만, 거긴 뭘 드셨소?”
“라면에 계란 하나 풀어서 먹었습니다”
“세든 사람이 주인보다 식사가 더 좋구려”
“미안합니다”
“미안하긴. 나야 이리 먹으나 저리 먹으나 금방 갈 몸, 댁처럼 오래 살 사람이나 열심히 먹어두슈. 그래야 덜 후회하니까”
“고맙습니다”
“많이 쓰셨소?”
“별루요”
“힘드시겠어”
“별루요”
“하여간 언제 한번 보여주슈”
그의 생활은 거의 방 한쪽 모서리를 커튼으로 가려 마련한 반 평 크기의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글을 썼고, 꿈을 꾸었고, 무료했고, 그 무료함을 달래려고 손톱을 씹었고, 커튼 밖에서 잠자는 아내의 숨소리를 엿들었다. 그렇게 밤을 지샌 뒤, 새벽이 문풍지를 흔들며 내려 설 무렵이면, 이상은 앉은 자리에서 아무렇게나 몸을 누이고 잠을 잤다. 잠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리하여 중천에 떠오른 해가 눈시울을 간지럽힐 때면 부스스 일어나, 아내가 출근하면서 보아둔 밥상머리에 앉아, 아내가 메모해 놓은 쪽지를 읽는 것이다.
‘요즘 당신 피곤한가봐요. 코를 몹시 골았거든요. 장어 한 마리 구워놨으니, 뼈까지 꼭꼭 씹어서 잡수세요. 당신의 아내’
또는,
‘아영이가 너무 불쌍해요. 자꾸만 눈물이 나오는 바람에 눈썹을 달수가 없었어요. 이젠 그만 괴롭히세요. 당신의 애독자’
또는,
‘어쩜 당신은 그렇게 잘 알아요? 나하고도 그렇게 느끼세요? 난 전혀 몰랐는데. 오늘밤 나를 그렇게 해주실래요? 뽀뽀’
....... 등등.
이상은 마치 신문연재소설을 쓰듯, 그것도 두 편의 소설을 날마다 200자 원고지로 각각 일곱 매씩 써서, 아내의 읽을거리로 바치고 있었다. 아내의 보살핌이 아무리 극진하다손 치더라도, 하루 열다섯 매의 작업량은 중노동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그는 소설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 다만 남의 소설을 원고지에 옮겨 적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나는 몇 년 전에 번역되어 나온 일본 소설이었고, 다른 하나는 저녁마다 배달되는 일간지의 연재소설이었다. 인명과 지명들, 그리고 몇몇 상황들이 이상의 손끝에서 다른 이름과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원고지 위에 새롭게 태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들킬 염려는 없었다. 그의 아내는 신문은커녕 길거리에 다닥다닥 늘어서 있는 간판에조차 눈을 주는 일이 없는 여자이므로. 그의 아내는 남편 되는 사람의 소설 쓰는 능력을 믿고 있으므로. 아니면 하루 14시간 근무 중 절반 이상을 서 있어야 하는 자신의 노동에 비해 소설 쓰는 일이란 얼마나 손쉬운 일인가, 마음만 먹으면 그 정도는 나도 써낼 수 있다라는 식의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의 손끝에서 나오는 글자의 생산량에 대해 조금도 의혹을 품고 있지 않으므로.
아내는 오전 10시경에 출근하여 자정이 지나서야 퇴근하므로, 이상은 하루에 14시간 이상을 자유롭게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일정한 일과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그로서는, 그 시간들을 자유롭게 느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이따금 얼굴에 물기를 바르고 외출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마음에 둔 행선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찾아가 만날 사람이 약속된 것도 아니었다.
비록 서울이 객지이긴 하나, 이 서울에서 대학물을 먹었고, 또 한동안은 직장이란 곳에 몇 차례 들락거려 본 일도 있고 해서, 아는 얼굴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의 아내를 만나 책꽂이를 찬장으로 대신한 살림을 트고, 방 한 모퉁이에 몸을 들여앉힌 뒤로는, 사람 만나는 일조차 어색하고 버겁게만 느껴지던 것이었다. 어쩌다 대학동창이라도 만나면, 6,7년 가까운 세월이 어느새 둘 사이에 깊은 고랑을 파놓고 있어서, 한두 마디 인사말이 오간 다음엔 더불어 추스를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는 것이고, 멀뚱한 눈으로 상대방의 실룩거리는 콧볼이나 바라보고 있노라면 간밤에 먹은 라면가닥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의 외출은 달팽이마냥 집 부근을 벗어나지 못한 채, 시간 언저리에 있는 선술집에 들어가 술이나 몇 잔 빨다가 나오든가 변두리 극장에 들어가 연속 상영되는 영화 두 편이 직직 빗줄기를 뿌리며 돌려질 때까지 줄곧 하품만 하다가 어둠에 그림자를 저기며 귀가하는 정도였고, 마음을 크게 먹고 멀리 행차한다는 게, 무작정 아무 버스에나 몸을 싣고 온종일 서울 바닥을 빙빙 헤매 돌다가, 끝내는 출발했던 정류장에 내려, 직장에라도 나갔다가 곧장 퇴근하는 충실한 가장처럼 터벅터벅 집 안으로 들어서는 게 고작이었다. 게다가 식사조차 잊은 채 온종일 잠자는 즐거움도, 길 건너에 상가건물이 세워지면서부터는, 거기에서 날아오는 소음 때문에 여간해서는 누리기 힘들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그에게 신나는 소일거리를 마련해 준 것은, 기이하게도, 그의 낮잠을 앗아가버린 공사장이었다.
처음엔 무심코 향한 발걸음이었다. 늦여름의 햇살이 아직도 뜨겁게 감돌던 한낮에, 그는, 공사가 한창인 건물 옆, 손바닥만한 그늘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무엇이 그를 그곳으로 데려갔는지는 알 수도, 알 필요도 없었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중장비들이 들락거리고, 철근을 토막내는 산소불이 파란 혓바닥을 날름거리고, 골조를 떠받쳤던 목재들이 와르르와르르 허물어져 내리고, 구리빛 어깨를 번뜩이는 인부들이 혹은 분주하게 혹은 한가롭게 지나다니는 광경을, 대리를 뒤덮은 흙먼지 사이로 바라보면서, 이상은 왠지 신선한 기쁨을 느꼈다. 그는 매일처럼 길 건너 공사장으로 찾아가, 하루의 작업량만큼 모습을 바꾸는 건축물의 이모저모를 관찰했다. 처음엔 건설하는 것인지 파괴하는 것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던 건물이 날이 갈수록 계획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5층 높이의 골조가 완성되자, 휑한 눈처럼 뚫려 있던 곳마다 창틀이 만들어지고, 거기에 유리가 박혔다. 그리고 벽마다 사람들이 줄을 타고 내려와 타일을 바르고, 색을 칠했다.
건설은 위대했다. 더불어 여름은 끝나고 있었다. 이상은 깊은 서글픔이 온몸으로 번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여름이 지나고 공사마저 끝나고 나면, 그는 또다시, 무의미한 중노동이 기다리고 있는 생활 곳으로 되돌아가야 할 것이었다. 그 속에서 그는, 덧없는 기다림과 함께 자신의 삶을 한 겹씩 깍아내며 밤을 지새고, 그이 일상이다시피한 라면가닥처럼 가공된 시간들을 주체하지 못한 채, 짓눌린 숨결로 헉헉거릴 것이었다.
그는 잠시 짧고 선명한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에겐 갈 곳이 없었다.
3
이상이 자기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아차린 것은 그들 내외가 미아리 33번지 18호로 이사 온지 어언 5개월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동안 계절이 바뀌어 초가을의 날씨가 드높아진 하늘에 가득했고, 길 건너 상가건물도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어서, 분양 안내를 알리는 현수막이 벌써 바람에 펄럭이며 내걸렸다.
그날 밤에도 이상은, 할 일없는 시간을 죽이느라 집 근처를 이곳저곳 서성이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는 문득 새로 지은 상가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요 며칠 전, 그 건물 옥상에서 인부 하나가 실족사한 일이 불현듯 떠오른 다음이었다. 우연히 집을 나서다 목격한 현장이었다. 한 마리 새처럼 비상하듯 추락하던 모습과, 땅바닥에 피를 튀기며 처참하게 널브러진 시체의 모습은, 이상의 뇌리 속에, 전혀 맞닿을 수 없는 거리를 두고 따로 새겨져 있었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상가건물은, 컴컴한 어둠 속에 또 하나의 어둠 덩어리로 서 있었다. 그는 경비원의 눈을 피해, 밖에서 흘러드는 희미한 불빛을 밟으며 옥상으로 향한 비상계단을 올라갔다. 옥상엔 공사의 잔해들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채 널려 있었다.
옥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고요했다. 컴컴한 밤하늘, 그 아래, 깊은 잠을 준비하는 도시가 몸을 길게 누이고 있었다. 이따금 가을이 깊어감을 알리는 바람결이 선뜩하게 목 언저리를 훑으며 지나갔다. 먼 곳에 어둠을 가르는 자동차의 불빛이 희미하게 보였고, 여태 귀가하지 못한 밤늦은 술꾼들의 발자국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발바닥에 닿은 옥상의 감촉만 아니라면, 마치 허공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날개가 있다면 날아오르고 싶구나. 이상은 가장 초보적인 가정법 문장을 중얼거리며, 문득 자기와 같은 이름을 가졌던 50년 전의 한 인물을 생각했다. 폐렴과 아스피린과 정오의 사이렌 소리와 날개. 날개야 돋아라, 한번 날자꾸나. 그때였다. 그는 자신의 몸이 무척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까닭을 확인했을 때, 그는 하마터면 기절할 뻔했다. 몸이, 마치 풍선처럼, 허공에 둥실 떠올라 있었던 것이다.
처음엔 아예 놀랍지도 않았다. 꿈이려니 했다. 이런 일이 어떻게 현실 속에서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는 양팔을 날갯짓처럼 허우적거려보았다. 몸이 더욱 높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밤하늘의 대기가 상쾌했다. 어둠으로 뒤덮인 풍경이 발아래 아득했다. 이런 꿈이라면 영원히 계속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잠시 날갯짓을 멈추고 팔을 내리자, 그의 몸은 건물 옥상 위에 사뿐히 내려와 닿았다. 그때 발바닥에 와닿는 감촉은 꿈이 아니었다. 순간 등줄기에 뜨거운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꿈속에서인 듯 겪은 체험은 현실이었다. 그는 좀 전에 중얼거린 말이 주문이 되어 실제로 비행능력을 갖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혹시나 하고 겨드랑이에 손을 가져가 보았다. 전에 없던 돌기가 손끝에 만져졌다. 엄지손가락만 했다. 그것은 날개였다. 퇴화의 흔적이 아니라 재생의 기미였다.
그날 이후 이상의 밤은 항상 허공에 떠올라 있었다. 모두가 잠든 시간이면 그는 슬며시 방을 빠져나와, 마당 한복판에 서서 주문을 외웠다. 날개야 돋아라, 한번 날자꾸나. 그러면 그이 몸은 깃털처럼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는 양팔을 휘저어, 어둠과 깊은 잠에 잠겨 있는 도시의 하늘을 날아다녔다. 그는 몸놀림을 조절하여 방향과 높낮이와 속도에 변화를 줄줄도 알게 되었다. 그는 공중에 멈춘 채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고, 어떤 때는 사추리를 열고 오줌을 내깔기기도 했다. 그러면 지상에서는, 술이 거나하게 오른 한 낭만주의자가 깊은 밤길을 걷다가, 온갖 소음이 가라앉은 도시의 하늘에서 은은하게 울리는 노랫가락을 듣고는, 아아 가을바람이 비올롱을 켜는구나 하고 시심을 일으키거나, 맑은 하늘에서 느닷없이 쏟아지는 빗줄기에, 때늦은 장마가 오려나보다 하고 화들짝 놀라 걸음을 재촉했을 것이다.
사람이 어떤 비상한 능력을 가지게 되면, 처음엔 그 능력을 시험해 보고 싶다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하지만, 그런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호기심 채우는 일마저 어느 정도 시들해지고 나면, 거기에 어떤 목적을 부여하게 되고, 그래서 그 능력은 일종의 수단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이상의 경우도 그러했다. 말하자면 그는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나자, 그 능력을 이용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의 첫 시도는 가까운 곳에서 벌어졌다. 가을이 깊어가던 아침, 미아리 33번지 일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출근하거나 등교하거나 산책하러 나왔다가, 막 준공을 본 보람상가 건물에 내걸린 현수막이 왠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고, 그들 중 그나마 눈치 빠르고 두리번거리기 좋아하는 사람들부터 알아차리고는, 그 소문이 한 입 두 입 건너면서 급기야는 건물 관리인에게까지 알려진 다음, 한 차례 법석이 벌어졌는데, 그 내용인즉, ‘축 준공! 분양개시!’ 라고 적힌 현수막이 밤사이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고개를 위아래로 꺾고 좌우로 비틀며 한참 목운동을 거친 다음에야 암호문자를 풀어 읽을 수 있었다. 누군가 밤늦게 장난이라도 친 모양이라고, 야간경비원만 애꿎게 야단을 맞는 것으로 일은 끝났는데, 사실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튿날 아침에 ‘분양개시’의 시자(子)가 씨자로 덧칠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느 못된 놈의 짓이냐고 인원을 늘리면서까지 야간경비를 강화했건만, 다음날 아침엔 씨가 밑에 ㅂ자가 불알을 단 것을 보고서, 미아리 33번지 일대의 주민들은 오랜만에 놀라움과 함께 배꼽이 빠져나올 만큼 웃음을 만끽했다.
보다 놀랍고 흥미진진한 사건은, 미아리에서 서울의 반대편 끝에 있는 봉천동 너머의 S대학교에서 일어났다.
학생들은 집에서 쉬도록 선처하고, 몇몇 교직원과 명사급 동문들만 모여서 개교기념식 행사를 치른 다음날이었다. 아침에 등교하여 학생회관 앞을 지나던 학생들은 그 건물의 이마를 띠로 두르듯 내걸린 현수막이 어제와는 아무래도 달리 읽히고 있다는데 주목했다. ‘犬學은 犬學人에가 맡겨라!’ 그뿐이 아니었다. 도서관 출입구 위에 내걸린 현수막은 ‘책 속에 칼이 있다’로 가필되어 있었고, 본관건물 옥상에서 나부끼는 교기에는 교훈이 ‘진리는 나의 빚’이라고 정정되어 있었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밤이 지나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포스터와 대자보들이 이곳저곳 나붙기 시작했는데, 전지 한 장 크기의 종이 위에는 공중변소에서나 볼 수 있는 낙서가 그려져 있기도 했고, 항간에 나도는 민주주의 밀반출 사건의 진상을 밝힌다는 제목 하에, 정부의 발표와는 정반대의 상상력이 동원되어 있기도 했다. 특히 학생들의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은 걸작은 도서관 입구 벽면에 나붙은, 물음표 하나만 덜렁 그려진 포스터였는데, 교직원들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떼어내 본즉, 그 물음표는 깨알같은 잔글씨로 씌어진, 오럴 섹스에 관한 상세한 소개였다. 그러한 포스터들은 사람의 힘으로는 쉽게 가 닿을 수 없는 위치에 나붙어 있었기 때문에, 교직원들은 날마다 소방서에다 전화를 걸어 고가사다리를 긴급 요청하기에 바빴다.
날이 갈수록 일은 더욱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었다. 호기심으로 불타오른 젊은 학생들은 물론, 곁눈질 한번 하는 일없이 평생을 외길로 살아오신 교수님들조차 밤사이에 새롭게 등장한 포스터들을 쫓아다니며 구경하느라 체면이 말이 아니었는데, 어떤 노교수 한분은 뒤로 젖혀진 목뼈를 교정하기 위해 정형회과에 입원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사실이 각종 언론매체를 통하여 보도되자, 시민들은 귀신이 곡할 현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려고 꾸역꾸역 떼지어 몰려들었다. S대학교 앞 광장은, 서울특별시민은 물론 제주도에서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 사람들로 큰 혼잡을 이루었고, 관할경찰서에서는 2개 중대의 병력을 파견하여 인파의 교내 출입을 통제함으로써, 대학의 학문과 자유와 존엄을 보호하는 데 전력하였다.
그러나 S대학교에서 도깨비장난 같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한 지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시민들은 애써 S대학교까지 쳐들어가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그들은 바로 자기 집, 혹은 이웃 동네에서 그 가공할 현상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래 전부터 일상적으로 내걸려 있던 플랜카드나 현수막 따위가 전혀 다른 내용으로 둔갑하였고, 어젯밤까지만 해도 볼 수 없었던 포스터들이 병원 건물 벽에, 교회 십자가에. 목욕탕 굴뚝에, 국기게양대에, 전깃줄에, 유리창에, 나뭇가지에, 전신주에 나붙었다.
예를 들면, 서울 도심의 한 백화점에는 ‘칼을맞아다죽자’ 라는 현수막이 밤사이에 나붙는 바람에 손님들이 벌벌 떨었는데, 그것은 원래 ‘가을맞이대축제’였다. 또 을지로 입구에 위치한, 온통 유리벽으로 지어진 18층까지 건물에는 전지 한 장마다 한 자씩 적힌 종이가 일곱장 나란히 나붙었는데, 그 내용은 ‘天天地地人不人’ 이었다. 그날 사람들은 그 말의 뜻을 풀기 위해 골몰하느라 업무를 내팽겨친 것은 물론이고, 점심식사를 마다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시민들은 자기 집 현관에 나붙은 포스터를 고이 접어, 자손 대대로 물려줄 가보라도 챙기듯 장롱 깊숙이 간직했다. 이러한 포스터들은 매우 고가로 암거래된다는 소문이 나돌았으며, 그 바람에 높다란 굴뚝, 위험천만한 전신주에까지 기어 올라가려고 암벽등반용 장비를 들고 다니는 사람까지 생겼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은, 그들이 늘 걸어 다니는 길가 건물의 간판들이 마구잡이로 뒤바뀐 것을 보았다. 행복장의사 간판이 장수산부인과 간판과 맞바뀌어 있었고, 세탁소 간판이 복덕방 앞에 옮겨져 있었으며, 목욕탕 앞에는 영화관 간판이 내걸려 있었다. 그래서 시민들 중에 좀 모자라거나 방향감각이 무딘 사람들은 가던 길을 되돌아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후속현상이지만, 사회 곳곳에는 각종의 유언비어가 유포되어, 사람들은 사건의 진상을 다각도로 유추 해석하고 그 장본인의 정체를 추적하는데 열을 올렸다. 길거리에서, 사무실에서, 전철 안에서, 엘리베이터 속에서, 육교 위에서, 술집에서, 시장바닥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상상하고, 설명하고, 반박하고, 토론하고, 결론짓고, 박수쳤다.
종교인들은 말세를 경고하는 하나님의 나타남이라 하여 회개와 구원을 간청하는 철야기도회를 가졌고, 과학자들은 외계인의 침략을 알리는 징후라고 주장하면서 공상과학소설의 판매량 증가에 협력하였으며, 또 정부 당국에서는 국가의 변란을 노리는 적국 첩자들의 소행이라는 추정 하에 비상사태 선포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이상으로서도 겉으로는 조금도 달라진 게 없었다. 전보다 낮잠 자는 시간이 많아졌고, 평소보다 말수가 적어졌지만, 워낙에 과묵한 그인지라 아내조차도 그의 변화를 눈치 챌 까닭이 없었다.
“수퍼맨이 나타난 게 아닐까요?”
아내는, 수퍼맨이 정말로 나타나 자기를 품에 안아들고 거 광활한 우주 공간으로 훨훨 날아주기를 바라는 목소리로, 꿈에 취한 듯 눈을 슬며시 감으며 말했다. 덕분에 예전 같지 못한 그의 밤작업에 대해서도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쩌면 이상이 쓰는 소설쯤은 이제 그녀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지도 몰랐다.
주인 남자는 요즘 들면서 삶에 대한 의욕이 새롭게 돋아오르는 모양이었다.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이상 선생. 내 벌써 죽었더라면 어찌 이 같은 기적을 볼 수가 있었겠소? 안 그렇소?”
건강 때문에 바깥 나들이가 불편한 전직 초등학교 선생님은, 신문이란 신문은 죄다 구독 신청하여, 수퍼맨인지 외계인인지 하느님인지 알 수 없는 괴이한 존재의 출현과 활약상에 관한 보도기사를 스크랩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 바람에 피해를 입는 것은 십자매와 잡종개였다. 먹이를 주는 일이 담당인 전직 선생님의 근무태만 때문에, 십자매는 퍼덕거렸고 잡종개는 낑낑거렸다. 이상은 그 동물들에게 미안했다.
4
소설의 막판에는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지 말라는 것이, 소설의 역사가 증명라고 있고, 또 우리가 통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소설미학상의 한 원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기서 이 원칙을 잠시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꿔 말하면, 이 소설을 마무리 짓는 데에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내 개인적으로는 그 인물을 여기에 끌어들일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자의식이 남다르게 강하고, 원칙이라든가 규범 따위의 인습적 통념을 쉽사리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게다가 이 소설이 만들어지는 데 하나의 동기를 제공해준 바 있는 그에게 다소의 부채감을 느끼고 있는 나로서는, 이 소설의 막판에서나마 잠시 얼굴을 내비치고 싶다는 그의 요청을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그는 이 소설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호시탐탐 그런 기회를 노려왔던 게 분명하다. 어쩌면 이 소설은 그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기 위한 작업이었는지 모른다. 아니, 그는 전혀 새로운 등장인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현명한 독자라면 벌써 눈치를 챘겠지만, 그는 이미 이 소설 곳곳에서 자신의 모습을 내보였었는지 모른다. 이상이 미아리 시장바닥에서 마주쳤던 사람들 중에, 혹은 그가 내다붙인 포스터를 구경하려고 몰려든 군중 속에 섞여 있었는지도 모르며, 이상이 날개를 달고 날아올라간 밤하늘에서 사추리를 열고 오줌을 내갈겼을 때, 아 가을비가 오는군 하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나간 지상의 한 낭만주의자가 바로 그였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풍작을 이룬 무와 배추가 되려 농부들의 이마를 짓누르는 바람에 김장 열 포기 더 담그기 운동이라는 기상천외한 발상이 현실적으로 강요되고 있을 무렵, 이상은 김장을 준비하는 소금기와 고춧가루 냄새가 물씬한 서울의 하늘을 밤새 날아다니다가, 새벽이슬이 목 언저리를 적실 때쯤, 미아리 33번지 18호 집 마당에 사뿐히 내려섰다.
그곳에 한 사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의 어스름 속에서 사내는 짧은 미소를 보냈다.
“기다리고 있었소”
“날? 이 밤중에?”
“그렇소. 당신을 밤새 기다렸소”
“뭣 때문에? 아니, 당신은 누구요?”
“나요. 날 모르겠소?”
이상은 상대방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다 낡아빠진 코르덴 양복 차림에 깡마른 체구, 부스스 일어선 까치머리, 며칠 째 다듬지 않은 수염이 창대같이 꺼칠했다. 나이는 20대 후반으로 보이지만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다.
“그 동안 활약이 대단하시던데, 그래 많이 즐기셨소?”
이상은 자신의 몸이 발가벗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부끄러움보다 두려움이 먼저 떠올랐다. 누구일까? 어떻게 알았을까? 한 달 남짓 지나온 삶의 자취가 몇몇 정지화면을 남기며 스쳐갔다.
“이젠 그 날개를 돌려줄 때가 된 것 같소”
“도대체 당신은 누구요?”
“나요, 날 모르겠소?”
이상은 사내의 얼굴을 기억의 화판 위에 몽타주시켰다. 전혀 낯설지는 않았으나, 단번에 붙잡히는 얼굴은 아니었다. 잠시 망설이는 동안 사내가 껄껄 웃었다.
“나요, 이상”
순간 기억의 실타래가 풀리고, 한 얼굴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50년 전에 죽은 한 인물의 얼굴이었고, 동시에 이제는 언제였는지조차 모를 만큼 오래 전 거울 속에 파묻어버렸던 이상 자신의 얼굴이었다.
“아, 알겠소. 이제 기억이 나는군요. 그런데 어떻게 여길?”
“당신을 만나러.”
“하지만 난 당신이 50년 전에 죽은 걸로 아는데.......”
“그렇소. 당신 살고 있는 곳, 미아리 33번지 18호, 당신이 밤마다 눈을 밝히고 앉아 있는 곳, 그곳이 바로 내가 50년 전에 한 줌의 유골로 묻힌 곳이요”
개집에 박혀 있던 잡종개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어슬렁 기어나와, 보랏빛 어스름 속에 마주 서 있는 그림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당신이 밤마다 날개를 불러내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바람에 난 잠조차 제대로 이룰 수가 없다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이렇게 찾아온 거요. 날개를 돌려주시오”
사내는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날개? 나에겐 날개가 없소. 난 주문을 욀 뿐이오”
“그렇소. 그 주문이 바로 날개요. 말이 상상력을 끌어내듯 주문이 날개를 만들어낸 거요. 그 주문을 돌려주시오”
사내의 목소리엔 매듭이 져 있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오?”
“그렇지는 않소. 당신의 삶은 현실이오. 당신이 숨쉬고 있는 새벽공기, 당신이 하고 있는 말, 당신이 서 있는 마당, 이 모두가 현실이오. 그러나 날개는 현실이 아니오. 아니, 현실이 되어선 안 되오. 내가 현실이 되어서는 안 되듯이.”
이상은 뒷골에 박혀 있던 혼란스러움이 걷히는 것을 느꼈다. 첫 운행을 배차 받은 시내버스의 엔진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해가 뜨기 전에 난 돌아가야 하오. 자, 날개를 돌려주시오”
“난 차라리 지금 꿈을 꾸고 있다면 좋겠소”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무방하지 않겠소? 어느 누구도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일을 현실이라고 믿어주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날개가 다시 그리워지면......?”
“앞으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요. 두 번 다시 날개가 현실 속에 나타나도록 하지는 않을 테니까”
어디선가 새벽 출근을 서두르는 세숫물소리가 들려왔다. 길가의 가로등 불빛에 비친 사내의 얼굴이 창백하게 보였다. 이상은 문득 사내의 등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자신의 등 뒤가 몹시 허전하게 느껴졌다.
“알겠소. 그럼, 방법을 알려주시오”
”고맙소. 어려운 일은 아니오. 우선, 내가 이곳을 떠나거든 당신이 맨 처음 날개를 불러냈던 곳, 저기 상가건물 옥상으로 가시오. 그런 다음, 그곳에서 날개가 달렸을 때처럼 허공으로 뛰어오르시오. 그러나 주문을 외서는 안 되오. 그냥 맨몸으로 뛰어내려야 하오. 용기가 필요할 거요. 하지만 두려워할 건 없소. 그때 당신은 꿈과 현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거요. 인연이 닿으면, 당신이 내려선 곳에서 우린 다시 만날지도 모르오“
말을 끝낸 사내가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상은 사내의 손을 마주잡았다. 손바닥에 감기는 느낌이 서늘했다.
“고맙소. 당신을 잊지 않겠소”
“잘 가시오”
이상은 뒷말을 잇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자, 굿빠이”
사내는 이 작별의 목소리와 함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상은 어스름이 걷히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희뿌옇게 번지는 햇살을 배경으로 서 있는 상가건물이 아득한 높이로 눈앞에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