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성 원불교장유교당 교무
2022년 2월 16일 오전 6:18
<2.16.특별정진기도11일째>
(선진님 이야기)
상산: 박장식 종사
[朴將植, 1911~2011]
주요약력
본명은 천식(天植). 법호는 상산(常山). 법훈은 종사. 1911년 1월 9일에 전북 남원군 수지면 호곡리에서 부친 해창(海昌)과 모친 정형섭(鄭亨燮)의 2남 2녀 중 2남으로 출생.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3년에 경성법학전문학교(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전신)를 졸업했다. 1934년(원기19)에 모친의 연원으로 입교하여 장식이라는 법명을 받았으며, 1941년(원기26)에 전무출신했다. 1946년(원기31)에 수위단원에 피선되었고, 동년 유일학림 초대 학림장을 맡았으며, 이후 총무부장ㆍ공익부장ㆍ원광중고등학교 초대 교장ㆍ교정원장 등을 역임했고, 종교협의회 부회장ㆍ서울출장소장ㆍ미주교구 교령ㆍ소태산대종사탄생100주년성업봉찬회장 등 교단과 한국 종교계에서 중요한 직책을 수행했다.
생애와 활동
어려서부터 총명 민첩하고 침착했던 박장식은 효성(孝誠)ㆍ경애(敬愛)ㆍ근검(勤儉)이라는 가훈을 마음에 새기며 바른 인생길을 찾으려 노력했다. 한문서당에서 천자문과 사서(四書)를 배웠으며, 틈틈이 일어를 공부했다. 부친의 열반으로 일본 유학을 포기하고 귀향하여 한때 인쇄업과 운수업을 경영했다. 1938년(원기23) 소태산대종사를 뵙고 영생의 스승임을 깨달았으며, 바로 남원교당을 창설하여 초대 교도회장이 되었다. 1940년(원기25) 소태산으로부터 학원 설립 준비를 하명받아 이듬해 불교전수학원 허가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인가받지 못했다.
1941년(원기26)에 전무출신했으며, 바로 ‘불법연구회 회규’ 정비, 《정전》 편수 업무를 주관했다. 이후 교단의 여러 가지 요직을 수행했는데, 주요 직책은 다음과 같다. 유일학림 초대 학림장(1946), 원광중학교 초대 교장(1951), 원광고등학교 초대 교장(1953), 교정원장(1962), 원불교청년회 총재(1964), 원광학원 이사장(1967), 원불교신보사 회장(1969), 종교협의회 부회장(1970), 미주교구 교령(1975), 소태산대종사탄생100주년기념성업회 회장(1991) 등. 박장식은 법학을 전공한 지성인으로 원불교 교단에서는 주로 교서 편찬ㆍ법규 정비ㆍ교육기관의 설립과 운영ㆍ교단행정ㆍ언론기관의 설립ㆍ해외 교화 개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대외적으로는 1970년 세계불교지도자회의를 비롯하여 한일종교협의회ㆍ한국7대종교협의회ㆍ한일문화교류협의회ㆍUN 세계종교정상회의 등에 교단 대표 또는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발제 강연과 발표를 하는 등의 활동으로 교단의 위상을 드러내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1970년(원기55)에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으며, 교육계에 끼친 공로로 원광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1978)를 수여했고, 교단에서는 1988(원기73)에 2대말 성업을 결산하면서 종사위 법훈을 수훈했다.
특히 1994년(원기79) 좌산종사가 종법사로 선출되자 박장식이 교단의 최고 원로로서 새 종법사에게 땅에 엎드려 예를 올린 일이 교단과 종교계에 큰 감동을 주었다. 박장식은 1992년(원기77)에 정년 퇴임한 후 원로원에서 수양하다가 2011년(원기96) 5월 4일에 열반했다. 장녀 제현과 장남 제중, 차남 제인이 전무출신했다. 세수는 101세, 법랍 70년, 공부성적 대각여래위, 사업성적 정특등에 해당한다. 박장식의 생애와 활동 및 법문을 모은 《평화의 염원》이라는 문집이 있다.
사상
박장식은 경성법학전문학교 졸업식전에서 교사들이 하나같이 황국신민이 되라고 했는데 유독 한 사람이 “인생을 그저 까닭없이 지내지 말고, 누가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서슴없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다’는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평화의 염원》)고 당부한 말을 잊지 않고 자주 독립의 정신을 간직했다. 소태산을 만나 그 인격과 경륜에 감복한 그는 자력갱생으로 힘을 길러 강자가 되는 것이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깨닫고 공도에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평소 진실과 공심을 강조했다.
진실이 본체가 되었을 때 움직일 수 없는 힘으로 서는 것이요, 거짓이 근거가 되면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또한 공심은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얻게 되는 것이며, 공심을 가지면 무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에 대해 그는 내 종교만 주장하는 국집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하고 실천했다. 사상과 종교의 울을 트고 넘나들면서 세계사적 방향과 연관성을 잃지 않고 하나의 세계라는 공통인자를 찾아야할 책임이 종교인에게 있다고 했다. 그 공통점은 양심을 불러일으켜서 사랑과 봉사로 자기 구원과 사회정화를 이룩하자는 것이다.
그것만이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고 사랑과 협동과 봉사의 실적을 낳아 국가와 민족, 나아가 전 인류가 공존 공영할 것이며, 전 세계가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의 평화사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영구적인 평화를 지향한다. 일시적인 평화협정과 같은 미봉책이 아니라 미래사회까지 이어질 참다운 평화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그는 단지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군사적 긴장 해소를 넘어서서 현대문명이 안고 있는 공해문제ㆍ인구문제ㆍ인종분쟁ㆍ빈곤과 질병문제 등 전 인류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참다운 평화로 나아가는 길임을 역설했다.
또한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인간의 삼독심이라고 보아 삼독을 극복하는 고도의 정신적 기반을 구축하는데 최대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삼독심을 풀어서 인간의 네 가지 기본 욕망으로 정리했다. 첫째 본능적 욕망으로 생리에서 오는 배고픔ㆍ추위ㆍ갈증ㆍ편안함과 같은 신체적 단순 욕망이다. 둘째 남에게 인정받고 싶고 자기를 과시하고 싶은 사회적 욕망이다. 셋째 생활이나 정신에 안정을 얻고 남보다 더 이루고자 하는 정신적 욕망이다. 넷째 가장 차원 높은 욕망으로 부모ㆍ진리ㆍ하느님 등으로부터 도움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다. 이러한 욕망을 조절하여 자유자재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보았으며, 이는 소태산이 주창한 정신개벽과 상통한다.〈朴光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