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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례업체 : 와이와이컴퍼니
아침에 일어나 메시지 함을 열어보니, 밤사이 ‘진상 고객’으로부터 메시지가 7개나 왔다. 깐깐하기로 악명 높은 독일
바이어다. 나(윤영준 대표)는 이상하게 독일 바이어의 클레임을 많이 받는다. 한 시간 간격으로 독촉 메시지가 와 있었다. 내가 한국 셀러인 걸 모르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런 메시지를 접하면 하루가 우울하다. 특히 말도 안 되는
생떼를 쓰며 대문자로 욕을 잔뜩 써 놓은 고객의 메시지를 접할 때에는, 영어로 매를 맞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렇지만 내 감정은 접어두고 친절하게, 최대한 친절하게 답변을 보낸다. 나에게 욕한 게 무안할 정도로, 바이어 말이
다 맞고, 원하는 대로 다 해 준다고. 간밤에 잠을 자느라 답변이 늦었으니 이해해 달라고. 그러면 화가 난 바이어도
조금은 유연(?)해진다.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이렇게 원만하게 해결을 한 후 그 진상 바이어로부터 새로운 주문이
들어오면 정말 큰 보람을 느낀다.
1>인터넷 쇼핑몰 부업에서 보따리상으로
2009년부터 시작된 나의 이베이 판매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당시 나는 직장생활을 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는데,
같은 사무실에 점심시간만 되면 우체국에 가서 소포를 부치고 오는 후배가 있었다. 핀란드, 페루, 푸에르토리코 등 이름도 생소한 나라에 하루에 몇 개씩 소포박스를 부치러 다녔다. 그다지 많다고 할 수 없는 연봉을 받는 후배는, 부업으로
인터넷 쇼핑몰과 해외 이베이 판매를 겸하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받는 급여보다 그로 인한 소득이 더 크다고 했다.
창업을 위해 회사생활을 경험 삼아 하는 중이라는 그 친구의 여유가 부러웠다. 호기심이 발동해 나도 이베이 계정을
하나 만들어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니던 회사가 망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실업급여 80여만원을 받아가며 정식 창업을 했다. 우슈 국가대표 출신으로 쇼핑몰을 운영하던 후배와 함께 전문 인터넷 우슈용품점을 개장한 것이다. 세상에, 황비홍이나 태극권 등
중국 무협영화에나 나오는 우슈용품이라니! 일단은 후배를 믿고 가보기로 했다.
비싸게 사입을 하느니 아예 중국에 가서 직접 물건을 들여오자는 의견이 나오기 무섭게 후배와 함께 북경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후배가 중국에서 유학했던 동네 가까이 제조업자가 있어 비교적 수월하게 일이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러나 거래처에서는 우리가 주문한 물건이 아니라 엉뚱한 물건을 내 주었다. 3일 동안 실랑이를 벌이다가 옆
회사에서 물건을 끌어와 챙겨 들고 돌아왔다.
중국 수입과 관련한 이야기를 책으로 접할 때 상품이 주문한 것과 다르게 온다는 이야기는 마치 중국 사입의 등용문처럼 자주 회자되는 소재였다. 하지만 직접 찾아 가서 내 눈으로 확인하는데도 떡하니 다른 물건을 내어주며 우길 줄은 정말 몰랐다.
큰 물건은 정식 통관절차를 거쳐 부치고, 내가 들고 올 수 있는 물건의 최대한을 비행기에 실어 들여왔는데 그 무게가
대략 120kg 정도였다. 비행기 기내탑승이 허용된 짐은 한 사람당 15kg이었는데(지금은 10kg) 45kg씩 짊어지고 슬쩍
비행기에 올랐다.
중국공항은 커도 엄청 컸다. 걷고 또 걸어도 눈에 뵈지 않는 탑승구. 한국에 도착해서도 버스에 버스를 갈아타고, 걷고
또 걷고. 양 어깨에는 피멍이 들고 그 덕분에 일주일을 앓아누웠지만 비용을 절감한 것으로 위안을 삼은 나의 첫
해외여행, 첫 보따리상의 추억이다.
2>우슈용품은 잘못된 품목 선정
후배는 중국에서 7년 동안 무술유학을 했는데, 그 때 쓴 외화를 회수하자는 생각으로 해외 판매를 시작했다고 한다.
결국 후배는 사업을 정식으로 시작한 지 2년 만에 무술유학 때 쓴 돈을 전부 회수했고, 지금은 그 몇 배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겸업으로 시작한 쇼핑몰 사업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적으로 매달리면 매출이 쑥쑥 올라 주리라 예상했지만 생각만큼 매출이 단숨에 뛰어주지는 않았다. 두 사람의 3개월 실업급여가 고스란히 사무실 월세와 운영비로 빠져 나갔고, 얼떨결에 사장이 된 나는 뚜렷한 방향을 잡지 못해 방황하고 있었다. 우슈를 하는 인물이라고는 내 평생 아는 이가 후배 딱
한 명뿐이었는데, 후배 말만 믿고 덜컥 일을 벌이다니…. 아무리 틈새시장이라 해도 국내 우슈용품 수요자는 한정되어
있고, 세계 시장에 내놓아도 봤지만 매출은 크게 오르지 않았다. “종목을 잘못 선정한 것 아닐까.”
저녁마다 소주를 마시며 어떻게 해야 더 많이 팔릴 수 있을까를 상의했다. 그러다 찾은 종목이 국내에는 이미 포화상태라 경쟁에 합류할 생각을 해 보지 못한 태권도용품 시장이었다. 당시 생각에 태권도용품이라면 국내 판매는 힘들어도 해외 판매는 가능해 보였다. 사실 중국 무술용품은 저가의 중국 셀러들과 경쟁해야 하므로 힘들다. 중국 무술용품을 파는 우리를 중국 사람이라 착각하고 니하오, 쎼쎼하며 중국어로 친밀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도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물건을 팔기 위해 중국인인 양 응대한 적도 있기는 하다). 해외 시장에서는 ‘메이드 인 코리아’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게다가 태권도는 우슈와 달리 올림픽 정식 종목이기도 하지 않은가!
3>태권도에서 답을 찾다.
코리안이 추천하는 토종 태권도 용품을 시작해 보자고 결정한 그 날 밤, 공급업체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 삼아 태권도 도복을 이베이 스토어에 올렸더니 곧바로 상품문의가 들어왔다. 신기했다. 결국 우슈샵에서 종합무술용품점
케이짱으로 타이틀을 바꾸고, 검도 복싱용품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게 되었다.
구색이 늘어나자 매출은 우슈 전문점의 세 배 가량 올랐다. 드디어 우리에게 “Kamsahamnida”라는 메시지가 날아오기도 하고, 대한태권도협회 물품을 공급해 달라는 요청도 왔다. 한국어로 된 태권도 교재도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브라질 태권도 체육관의 첫 단체구매! 단체구매 금액은 580달러였는데, 당시는 이 돈이 너무 엄청나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국내 체육관을 상대로 한 영업으로만 대량구매를 유도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베이를 통해 유입된 고객 중 체육관을 운영하거나 단체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도매가격을 보내서 몇 백에서 몇 천 달러짜리의 큰 구매주문을 받아냈다.
해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단체 공연을 하기도 하며, 학교에 물품을 납품하는 업자도 있고, 체육관 용품으로
한꺼번에 구입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몇 만 달러 이상의 정식 수출은 아니었지만 복잡한 수출절차 없이 간단하게 자주
굵직한 손님들을 확보해 갔던 것이다.
4>해외 마케팅의 보석, 페이스북
사업을 시작한 지 일 년이 좀 지날 무렵, 때 이른 슬럼프가 찾아 왔다. 열심히 고민하고 밤새 상품 등록하던 처음의
열정은 사라지고, 상품이 팔려도 별로 기쁘지 않고 안 팔리면 짜증이 났다. 하릴없이 주문확인 창만 거푸 ‘새로고침’
클릭하다가 하루를 마감한 적도 있었다. 이 때 나의 열정을 다시 불 지펴 준 것이 바로 페이스북이었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나는 세상 돌아가는 일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엔화가 오르거나 달러가 떨어져도 내 월급과는 무관하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해외토픽에 자연스럽게 눈이 가게 되었는데, 전 세계 친구들이 네트워크로 연결된다는 강력한 툴 페이스북을 접한 순간, 내가 지금 싸이월드에 내 일상이나 올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이스북에 가입하자마자 친구들을 추가해 나갔다. 페이스북은 친구의 친구를 추천하여 네트워크를 만드는 공간이기 때문에, 내 친구를 첫 친구로 등록하면 동창회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내 이름을 영어로 등록하고 태권도복 입은 사진을 올린 다음에 태권도, 무술, 쿵푸 등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여 무술을 좋아할 것 같은 사람을 찾아 친구로 등록했다.
그리고 친구의 친구를 추가로 등록했다. 그동안 판매해 왔던 바이어의 이메일 주소를 이용하여 기존 고객을 친구로
추가 등록했음은 물론이다.
내가 판매하는 상품을 친구들에게 소개하고, 관련 한국 뉴스도 보냈다. 나의 일상생활 이야기도, 우리 회사의 사무실
이야기도, 가령 어떻게 제품을 관리하고 얼마나 정성스럽게 포장해 우체국으로 보내지는지도 생중계했다.
그랬더니 “좋아요” 클릭수와 댓글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그 중 닭발에 소주 한 잔이 한국인의 큰 기쁨이라고 소개한
사진은 4,000명이 넘는 친구들에게 공감을 얻어냈으며, 우리나라 국민노래인 ‘아리랑’이 “나를 버리고 가는 사람아,
발이나 부러져 버려라”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는 설명에 외국인들이 경악하기도 했다.
친구가 1,000명을 넘게 되자 이제는 내가 가만히 있어도 나를 친구로 맺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생겨났다. 무술을 좋아하는 세계 친구들이 나의 페이스북 친구가 된 것이다. 보통은 페이스북을 시작할 때 기업 페이지를 만들어 팬이 되어 달라고 요청하는데, 나는 개인 유저로 등록한 다음 친구들과 서로 친구 관계를 맺고, 서로의 담벼락에 ‘좋아요’를 날려 준 것이
단기간 친구를 모자람 없이 확보한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나의 페이스북 친구는 최대 수용인원인 5,000명이 꽌 찬 상태이다. 이 때문에 친구로 등록할 수 없게 되어 팔로어로 내 소식을 구독하는 친구가 4,000여명이나 된다. 새로운 이벤트, 매월 바뀌는 사은품, 이달의 할인, 지도자 고객 관리 등 모든 마케팅과 안내를 페이스북에서 진행한다. 페이스북 쪽지를 통해 제품 문의나 구매 문의를 하는 바이어도 많고
나의 새로운 소식에 즉각들 반응한다. 이 9,000여명의 친구들이 내가 사업하는 동안 성취한 제일 소중한 자산이다.
해외 마케팅이라는 것도 사실 그리 거창하기만 한 게 아니었다.
5>코리아, 사랑하면 할수록
사업을 하며 돈을 버는 보람도 있지만 그 밖의 보람이 나를 더욱 지탱해 줄 때가 있다. 내 경우는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칭찬을 해 줄 때나, 내가 우리나라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고 생각할 때이다.
그래서 나는 유독 태극마크를 이용한 디자인을 즐겨한다. 이 작은 나라에 사는 내가 세계 시장을 상대로 주문을 받아
내다니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 더욱이 태권도의 높아진 위상 덕분에 코리아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자
나는 판매실적과 상관없이 일이 즐거워졌다.
그 맥락에서, “이 사람들이 한국을 정말로 좋아한다면 한국의 전통적인 것들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해서 판매를
시작한 종목이 바로 한복이다. 특히 어린이 한복은 돌복이나 학교 준비물 등으로 인기가 많았는데, 한국을 좋아하는
태권도용품 고객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입힐 한복을 주문하는 경우도 많았다(해외에 사는 한국 교민들 손님이 절반
이상이라 놀랬다). 외국에 있는 한인 유치원의 한복 단체주문도 큰 몫을 했다. 특히 한복 판매가 시작되자, 모리셔스,
사이프러스, 레위니옹과 같은 이름도 생소한 나라에서도 많은 주문이 들어왔다.
그 후 의류, 완구류 등 판매 종목을 넓혀 나갔다. 그 역시 한국산 제품의 인기가 좋았다. 전 세계적으로 손님을 접하다
보니 국내에서는 인기 없는 악성 재고 의류도 처리가 되었고, 국내시장에서 반품으로 들어온 상태가 좋지 않은 제품도
사진을 찍어 올리면 손해 보지 않는 가격으로 팔려 나갔다. 직원들에게 우스갯소리로 “이러다 나도 가져다 파는 거
아닌가” 했다.
6>서양인에게도 ‘정(情)’은 통한다.
미국 바이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일주일 후 서울에 갈 계획인데, 사무실에 들러 직접 제품을 구매하고 싶다고.
통상 해외 판매를 하면 통화를 하지 않고 메일을 주고받는 편인데, 처음으로 바이어를 직접 응대하려니 긴장되었다.
우리는 첫 해외 방문 손님이니 인증샷이라도 찍어야겠다며 들뜬 마음으로 단장된 사무실에서 바이어를 기다렸다.
키가 족히 2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 거대한 흑인 남성 두 명이 들어오자 좁은 사무실이 꽉 찬 듯 했다. 당황한 우리는
영어도 제대로 되지 않아서 착한 모범학생처럼 묻는 말에 대답만 할 따름이었다. 대체 어떻게 물건을 팔았는지 기억도
가물하다.
두 번째 방문 고객은 단체로 서울 국기원에 연수를 받으러 온 캐나다 태권도팀이었다. 그들은 일 년이 넘게 꾸준히
우리에게 태권도용품을 많이 사 가던 단골고객이었다. 13명이 우글우글 몰려 와서는 도복, 신발, 헤드기어, 팔보호대,
다리보호대, 낭심보호도, 가슴보호대, 발보호대를 일일이 다 착용해본 후 13세트씩 구매해 갔다. 문자만 주고받던
사람을 직접 만나니 우리도 신기했고, 그들도 사무실 여기저기를 돌아보며 재미있어 했다.
우리는 유난히 메시지를 많이 받고 방문 손님도 종종 받는데 그것은 친절한 응대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업무적인
응대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안부를 묻는 메시지도 많이 주고받는다. 고객에서 친구가 된 사람이 몇 명인지 모르겠다.
친절한 걸 좋아하는 것 만국공통이다. 똑같은 영어를 쓰더라도, 감정을 담아서 한마디라도 더 살갑게 대하고 상냥하게
말을 건네면, 모든 것이 인지상정이어서 내가 잘못 보내거나 제품에 하자가 좀 있어도 문제 삼지 않는다. 서양인은
그런 것에 똑 부러지게 대응할 것으로 짐작했는데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지 않는가! 마치 존댓말을 써서 예우하는 느낌으로 격식 있게 쓴 메시지가
구매율을 높이고 클레임을 줄인 비결이 아닌가 한다. 더욱이 잘 사귄 친구 한 명은 큰 고객을 소개시켜 주기도 한다.
인터넷 사업에서도 입소문은 정말 중요하다.
7>오픈마켓 탑셀러로 등극하다.
판매한 지 4년 째 되는 무렵 제1회 이베이 인증강사 시험에 합격하게 되었는데, 이베이코리아에서 주어지는 스페셜 리스트 타이틀을 얻으면서 우리 회사는 좀 더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대외적으로 대학 강의를 포함한 해외 수출에 대한 강의를 정기적으로 나가게 되었고, 보다 다양한 제품들을 판매하게 되었으며, 기존에 판매하고 있는 제품에 대해서는 경쟁업체가 진입하지 못하게끔 하는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우슈용품점, 케이짱, 와이와이컴퍼니로 진화한 우리 회사는 전자상거래에 대한 전반적인 강의, 컨설팅, 판매대행을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가 되었다. 물론 해외 판매는 더욱 탄력을 받아 매월 신기록을 갱신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베이의 체육용품 카테고리에서 한국 셀러 중 ‘탑 셀러(Top Seller)’라는 TSAM 셀러가 되어 이베이코리아의 전담 매니저에게 특별 관리를 받게 되었다. 3억 6천만 회원수를 가진 이베이라는 해외 오픈마켓 시장에서 한국인 셀러 중 체육용품으로 1위가 되었다는 것. 전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일이었지만 기분 좋은 사건이었다.
8>해외 배송 전쟁 "1g을 줄여라"
해외 판매 하는 분들 간에 공통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1~2g의 무게 차이에 목숨 거는 이야기다.
무게별로 배송금액이 측정되는데, 1g만 초과되어도 5,000원 이상의 배송비 차이가 난다. 한 끼 식사 값.
그래서 이 1g을 줄이려 갖은 방법이 다 동원된다. 먼저 배송상자의 날개 부분을 자른다. 그러면 큰 박스의 경우 50g이
넘는 무게차이가 난다. 그래도 무게가 초과될 것 같으면 박스포장 대신 에어캡을 싸서 봉지포장으로 보낸다.
국내 배송도 비용절감을 위해서 박스포장보다는 봉지포장을 선호하는데, 무게에 따른 배송료 할증을 생각한다면
해외배송은 이 비용절감 부분이 절대적이다. 그래도 여의치 않으면 제품의 포장지를 최대한 가볍게 만든다.
태권도복 안에 들어가 있는 빳빳한 종이나 군더더기 포장을 뺀다.
작은 물건은 우체국 등기로 보낸다. 하지만 큰 물건은? 길이 6미터의 체육 매트리스를 보내거나, 50kg가 넘는 샌드백을 보낼 때는 배송대행 업체 TNT로 보냈다. 이런 큰 제품을 보내야 하는 날이면 포장이나 제품 상태에 신경이 쓰여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해외 배송이다 보니 통관에서 걸려 문제가 되거나 ‘실종’되는 사건도 잦다. 특히 처음에는 각 나라별
금지물품 여부나 관세를 일일이 다 파악할 수도 없고 실종된 물건에 대해서 행방조사 청구도 할 줄 몰라 손해를 많이
봤다. 지금이야 처음보다 많이 익숙해 졌지만 배송비와 배송시간, 배송사고는 늘 해외배송에서 걸림돌이다.
좀 더 나은 효율적인 방안을 찾기 위해 사설업체도 이용하고 특급배송 할인업체도 이용해 봤지만 역시 오랜 역사를 가진 우체국 배송(EMS)이 최고다. 이베이, 쿠텐(Qoo10) 판매는 국내 쇼핑몰과 마찬가지로 하루라도 제품을 빨리 보내 줘야 고객만족도가 높아지는데, 오후 6시 마감하는 우체국 시간 전에 최대한 많은 제품을 보내려면 그 날 들어온 제품도 당일 포장해서 보내야 한다. 따라서 오후 4시~5시는 전 직원이 함께 전쟁을 치르는 가장 바쁜 시간이다.
포장하기 전에 무게를 재야하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함께 써야 하는 전자저울이 가장 바쁜 때이기도 하다. 지금이야
직원들이 전담하지만, 나는 지금도 틈이 나면 직접 포장을 하려고 노력한다. 사업 초창기 하나씩 포장하던 때가
생각나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직접 손으로 포장하고 주소 붙인 제품을 고객이 받아볼 거라고 생각하면,
마치 연애편지를 부칠 때와 같은 설렘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8>파는 즐거움, 구매하는 즐거움
10달러 20달러 제품을 판매하던 우리 회사가 최근에는 잠비아에 태권도 도복 400벌에 추가주문 500벌, 총 900벌을 판매했다. 해외 잠재 바이어 명단을 모으고 홍보자료를 뿌리고, 구글(google)에 노출 시키고 응대를 잘 해 준 결과였다.
드디어 수출하는 모양이 좀 나온 셈이다. 패킹리스트도 작성하고, 인보이스도 보내주며 정식 수출을 하자니, 내 자신이 이렇게 성장한 것에 대해 감개가 무량하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던 창업 지망생이었는데…. 성장한 다른 회사들도
나처럼 이렇게 한 계단 한 계단 딛고 올라 일가를 이루었으리라 생각하니 특별한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제조제품만
가지고 수출 강국이라는 명성을 얻었다는 사실이 무척 대견하게 여겨진다.
한 발 더 나가 이제는 드디어 우리도 미루고 미뤘던 자체 제작을 겸하게 되었다. 다른 수출기업과는 정반대로 가는 셈이다. 제품이 없는데 일단은 남의 것 가져다 팔았다가, 시장 성향을 다년간 파악한 후 거꾸로 이제야 잘 팔릴만한 제품을
선별하여 제작하는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이 인정해 준 케이짱이라는 브랜드를 달아, 내 손으로 만든 제품으로 세계
구석구석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구매를 하게 해 주고 싶다.
9>해외판매는 블루오션
나는 82년생으로 대표적인 인터넷 1세대다. 나와 같은 세대는 천리안 나우누리로 시작하여, 세이클럽, 싸이월드로 이어진 인터넷 채팅, 카페활동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다음, 네이버가 없으면 불편해서 못 산다. 나와 같은 세대의 사람들이, 클릭 한 번이면 손쉽게 해외로 무언가를 팔아 수출에 일조할 수 있는데, 너무 모르고 사는 것 같아 안타깝다.
나도 자주 이용하는 네이버 중고카페에 초간격으로 쉼 없이 무언가 사고파는 사람들의 글이 올라오는 걸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 적극적으로 전자상거래에 참여한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인터넷 쇼핑몰 최강국이라는 타이틀답게 개인이 올린 중고제품의 사진이나 상세설명이 전문가 못지않아 놀랄 때가 많다. 하지만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온 것과 같이, 미국인들은 이베이를 통해 국경을 넘어선 개인간의 거래를 자연스럽게 한다. 하나 둘 파는 걸로 시작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취미삼아 팔다가, 용돈벌이에서 부업으로, 부업에서 본업으로 나아간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를 일찍 깨달아 개인 해외수출을 하는 우리나라 셀러의 수가 이베이코리아 집계로 약 5,000여명 되고, 그 중 고정적으로 월매출을 꾸준히 올리는 셀러가 약 500여명 정도 된다고 한다. 네이버 블로그 사용자수가 1,600만명이 넘는다고
하는데, 해외판매는 가히 블루오션 아닌가!
수출이라니까 어렵다고 생각해서 귀를 막는데, 눈을 한 번 돌려보자. 이베이와 쿠텐은 너무나 쉽게 일반인들이 진입해서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고, 타오바오, 라쿠텐, 아마존 등 해외 셀러들을 유치하려고 불을 켜고 있는 오픈마켓이 널려있다. 고등학교 졸업 했는가? 그 정도 영어면 충분하다. 영어시험 준비를 하는가? 해외마켓에서 실전 영어에 한 번 부딪혀보자. 공부가 절로 된다. 갈고 닦은 일본어 중국어 실력이 있는가? 쿠텐에서 그 능력 좀 발휘해 보자. 당신이 인내하며 갈고
닦은 외국어 실력에 대한 보상을 해외 오픈마켓 시장에서 두둑하게 받을 수도 있다.
가끔 이렇게 해외 판매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나를 보며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는다. “해외마켓에 대한 홍보를
왜 하세요?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괜히 홍보했다가 경쟁자만 늘어나는 것 아닌가요?”
틀렸다. 우리나라에 아직 팔지 못한 제품이 얼마나 많은데, 이걸 나 혼자 다 못 팔아서 안달인데 어찌 편협한 생각을
하겠는가. 메이드 인 코리아는 아직 세계적으로 좀 더 알려져야 한다. 어머니들이 고집하는 주방세제, 소녀들이 좋아하는 아기자기한 사무용품, 아이들이 환장하는 국민 장난감 등. 너무나 많은 제품이 해외 소비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해외 바이어와 큰 거래를 성사시키고 복잡한 계약서를 작성해야 우리 제품을 외국 시장에 퍼뜨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유통비 대폭 절감하고 저렴한 우체국 배송으로 하나라도 필요한 사람에게 판매할 수 있다.
소비자도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구매하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누가 필요한가? 개인 수출업자가 누구보다 절실히
필요하다.
10>“취미로 해외판매 해요”
부업은 하고 싶은데 여력이 되지 않는 직장인들,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대학생, 집에서 아이 보느라 답답한 마음에 세상과 소통하려 카카오스토리에 집착하는 주부님들. 수입이 좀 더 나아졌으면 생각은 하지만, 현실은 지하철에 앉아 애꿎은
스마트폰 게임만 하고 있지 않는가? 기왕이면 같은 시간에 클릭 한 번으로 상품을 판매할 수도 있고 페이스북을 통해
고객관리에 집중할 수도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시대. 어떤 사람은 이를 이용하여 기회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시간을 무한정 잡아먹는 기계로 쓴다.
대한민국을 일컫는 말 중에, 전체 인구대비 해외 오픈마켓 판매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 국민 1인당 달러 벌어들이는
확률이 가장 큰 나라, 이런 별명이 생겼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라면 할 수 있다. 인터넷 보급과 사용인이 세계 최고이며
전자상거래 발달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거기에 길들어져 있는 한국인의 인터넷 쇼핑몰에 대한 요구와 수준도 으뜸.
게다가 한국제품은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고, 서비스정신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 해봐도 경쟁력 있다.
더 이상 취업난, 부업 문제를 우리나라에서만 고민하지 말고 인터넷을 통해 세계를 무대로 해결 방법을 찾았으면 한다. 더 이상 수출을 기업에게만 미루지 말자. 수출액이 감소했다면, 국민이 나서 보는 거다. “나 취미로 해외판매해요”,
“부업으로 해외 수출해요” 멋지지 않은가.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한 청년이 인터넷을 통해 한 번도 가보지도 못하고 만나 보지도 못한 사람들과 메시지 몇 번으로
대금을 입금 받고 물건을 발송한다. 인터넷 쇼핑몰 포화상태라 열에 일곱은 망한다는 요즈음, 다행히 그 일곱에 들지
않고 해외 판매로 살아남았다. 너무 특이한 종목을 선택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몇 개 못 팔 거라고 생각하여
해외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일은 생각지도 못하게 확장되어 나가게 되었다. 첫 단추가 중요하다고, 처음부터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에 다양한 일을 하고 여러 경험을 해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든 이렇게 미약하게라도 시작할 용기만 있다면, 당장 나와 같이 해외 판매에 동참해 보시길 바란다. 생각지도 못한 큰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 수출에 일조하는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이 되는 일. 당신이 어디에 클릭 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