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원에 나와 삽을 들면 아낸 남새밭에 앉아 호미질이고,
내가 갤러리 안을 골똘히 살피면 아낸 발효실에 푹 들어앉습니다.
내가 몰탈을 반죽하면 이 친군 산야초를 주무르고, 내가 자갈을 고르면 이 동문 씨앗을 고릅니다.
팥
마당에 내 연못이 고이고 요리조리 길이 놓이자 그녀의 남새밭에선 골이 지고 어느새 두둑이 올라옵니다.
몇몇 나무를 옮기고 몇몇은 사다 꽂으니 뒤뜰에선 수수꽃도 잇꽃도 솟아오릅니다.
결명자
남녀가 이렇게 다른 것을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내가 열어놓으면 아낸 꼭꼭 걸어잠그고, 내가 포도시 고쳐놓으면 아낸 픽 고장 냅니다.
내가 일할 땐 거들떠보지 않아도 내가 사라지면 어느새 감독관처럼 다녀갑니다.
기초니 복토니 물매니 방수니 수로니 하는 큰 공책으로 편지를 쓰면
흙고르기니 물주기니 모종이니 넝쿨올리기니 하는 작은 수첩으로 답장이 옵니다.
녹두
아침에 연못 물을 조금 틀어놓고 모터를 돌려 힘차게 물줄기를 뿜어놓으면
출근 뒤엔 수도꼭지를 잠그고 슬쩍 모터전기를 꺼버립니다.^^
그리고 어느덧 가을입니다.
몇 톨도 안 되는 곡식들이 거실을 침범하면 나는 뚤레뚤레하며 뒷 데크로 채반 머리채를 질질 끌고 나갑니다.
그러면 또 아내는 졸면서 수수를 까고 나는 모른 척 툭툭 건들어 졸음을 쫓아줍니다.^^!
돌동부
콩이고 팥이고 거두고 말리느라 아내가 난리부르스를 출 때
나는 심지도 않은 야생 돌동부를 털어와 고 옆자리로 엉덩이를 들이댑니다.
수수
遠視人이 돋보기안경을 끼고 한 알씩 까는 수수를 보며
내년에는 고놈 절대 심지 말라며 둔눠서 호박에 말뚝을 박습니다.
그러면 시부렁시부렁거리며 바구니귀에다 수수모가지를 탁탁탁 뚜드립니다.
들깨
출근길에 현관문 앞에서 신을 신다 저 잔 들깻가루들을 밟을뻔하였습니다.
기우뚱거리다 멈춰서 망정이지 죽다 살아났습니다.
나는 고시랑고시랑거리면서 신발코를 탁탁탁 쥐어박습니다.
소름이 들깨처럼 돋아났습니다.
땅콩
작년에도 말리다가 반은 까치와 산비둘기와 꿩과 물까치들에게 보시하더니
올해는 캐기도 전에 이것들이 스스로 알아서 다 쪼아가버렸답니다.
땅콩을 보면 꼭 제 아내와 날 보는 것 같습니다.
한 요에 두 이불을 덮으며 한 대문 안에서 따로따로 놀고
전에는 살갑더니 껍질이 둘이나 생겨가지고 요새는 '사랑 보다는 우정'이 싹틉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농부 아내와 노가다 남편은 땅콩껍질 속의 연가를 부르며
오늘도 발가락이 아프다 모가지가 아프다며
물파스를 바르고 그 길로 떨어져 드르르 코를 골아댑니다...
첫댓글 알콩달콩한 사랑의 변주곡이 부부의 우정인가 봅니다~~^^ 저도 배우렵니당~~~^♥^
알콩달콩 땅콩?^^ 30년 동안 싸움질이 없었지만 요새는 조금 불안해요. 아낸 음 중에 양이 나올 나이고 난 양중에 음으로 들어가는 타이밍이오니... 내 양이 아직도 드성하거나 그의 양이 돌연 편성하게 되면 두 양은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죠. 이름하여 부부싸움.^^ 그러나 내가 질 놈이 아니며 그가 이길 뇬이 못 되니 토굴의 묵은 지처럼 년년이 푹푹 삭겠지요뭐~~^^
선생님 부부의 평화로운 일상을 보며 가슴이 뭉클함을 느낍니다.
마치 고흐의 그림 ‘아침, 일 나가는 부부’를 보는 것처럼,
산행 중에 마주친 산꽃, 들꽃을 보는 것처럼요.
"이름은 잘 모르지만
누가 봐주지 않아도
저만치 홀로 피어있는 작은 들꽃
화려하지 않아도
외로운 산행길에 잘못하면 밟힐 것 같은
수줍어도 그리움은 그대로 간직한 채
네가 나를 닮고 내가 너를 닮아
문득 발길 멈추고 함께 있고 싶었던
그냥 지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내 들꽃처럼 살다가도
봐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후회는 없으리"/ 고흐
고흐나 밀레도 좋고 고갱이나 루소도 다 좋아하는 전원에서 너무 고단하지 말자고 누누이 멱살을 잡았거늘 고갱이가 꺾이도록 곡식나부랭이의 고갱이를 꺾고, 우아하게 늙기를 얼마나 붙들고 기술을 걸었는데 아직도 탭을 안 치고 손가락이 꺾이든지 눈테가 째지든지 발목이 붓든지 버티는 고곳이 문제에요. 백화점이니 시장이니 슈퍼니를 나가지 않고 딸에게다 심부름으로 다 떼워요. 아, 뭉클 배고픈 평화로운 일상이여!
이쁜 사랑이 뚝 뚝...
뒷터에서 아까운 깨, 팥, 동부 씨 떨어지는 소리가 직장에까지 달려와요. 뚝 뚝...
제 귀에도 들려요. 뚝 뚝 뚝...
어제는 고구마도 몇개 수확했답니다. 그 잡초더미에서 용케도 잘 살아서 우리에게 선물을 안겨주네요
집 터 한 귀에서 우와~ 만나는 고구마는 금구마구마...! 닭고기도 안 먹는 동생이 강화에서 맨사댕이 토종닭을 보내왔는데 함께 넣은 녹두는 우리집 뒷터가 만든 작품. 젓가락으로 집어 먹고 남은 거 긁어서 '여실히' 먹었어요. 뭔가 맘도 맛도 다르더라구요...
한 요에 두 이불을 덮으며 한 대문 안에서 따로따로 놀고
전에는 살갑더니 껍질이 둘이나 생겨가지고 요새는 '사랑 보다는 우정'이 싹틉니다.^^
ㅎㅎ 중년의 부부들이 그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네요..
갱년기를 모질게 겪으면서 더웠다 추웠다 변덕을 부리면 한요에 두이불은 기본입니다..
정갈한 살림솜씨가 깨틀고 녹두껍질 까서 담아놓은 소쿠리에서 소담스레 다가오네요
진한 들기름처럼 고소하고 행복해 보여서 덩달아 기분좋아 지는 전원의 풍경입니다~~^^
ㅎ.. 해빈과 난 가끔 같은 시각에 딱 마주치는 깍꿍우연이 많아요. ㅋ 방가워요~~! 종일 일을 하고 들어와 맥이 빠지자 토종닭백숙에 맥주 한잔 하고 앉았다가 오늘 같은 토요일에도 카페를 찾아준 회원이 있을 게다 싶어 들어왔어요. 원래 제가 '잠뜻'이 심해서 뒹굴고 다니는데 신혼 때 아기를 키우면서 얌전해졌죠. 시골학교 근방 단칸방에 세들어 살다보니...! 아낸 차고 자는데 난 덮고 자고, 속열은 내가 많지만 피부는 아내가 더 두꺼우니 서로 이불 갖고 노는 짓이 다를 수밖에.^^ 해빈 11월 2일에 내려오나요? 진맥 차 서방님도 오시면 좋을텐데...
여수 출장가서 화양면에 식물원을 운영하는 40대 아줌마를 보고 왔습니다.. 참.. 그 분도 공부 열심히 하고...
그 많은 열대식물들이 꽉 들어찬..식물원을 보니..기가 차더군요.
그것을 하나하나 다 보살피다니...
저야 식물원에서 킁킁거리며 향기 맡음시롱 허브차 마시고 냉큼 돌아왔지만...
가만 생각하니 그 분을 이곳 카페에 모시면 재밌기도 하겠다 생각드네요.
담신 젯트기류를 타고 그 길로 별자리에 드는 초월을 꿈꾸는 피디야.^^ 그런가하면 손오공처럼 구름을 잡아타고 내려와 도술을 부리고 싶어하는 장난꾸러기거나. 난, 가끔 붕붕 떠서 허공을 날다가도 피씩 바람이 빠지곤 하는 풍선이거나 제 풍신을 못 이겨 걸린 돌부리에 자꾸 차여 넘어지는 고장난 장난감이거나 해... 공연히 분수를 모르고 들뜨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 난 담시께 감사하겠네. 인연은 절로 닿는 것이니깨 신경 끄드라고~^^
그렇죠ㅡ 인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