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관측하는 건축물중 천사백여년전 경주의 밤하늘을 관찰하던 천문대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첨성대가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조명에 반사된 석조건축물의 자태는 밤하늘의 신비한 우주를 관측하던 그시절의 영광을 발현하는듯 황금빛
영롱한 자태로 신비롭게 빛나면서 우리들을 우주의 신비로 빠져들게 할것만 같다.
안압지, 경주월성, 첨성대, 계림, 나물왕릉 등 외에도 수십기에 달하는 신라 무덤이 완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고 이들 유적 사이사이에도 무수히 많은 지하유적과 유물이 계속 출토되고 있는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지역
으로 사적 제161호로 지정된 경주동부사적지대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경주 첨성대이다.
국보 31호로 지정된 첨성대는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신라시대의 선덕여왕시절에 건축된 천문관측대로,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基壇部)위에 호로병 형태의 원통부(圓筒部)를 올리고 맨 위에 2단의 정(井)자형
정상부(頂上部)를 얹은 모습이다.
지대석(地臺石)과 기단은 4각형으로 8석과 12석으로 되어 있고, 그 위에 27단의 아래가 넓은 원통형 주체부
(主體部)가 있는데, 여기에 쓰여진 돌은 362개이고, 1단의 높이는 약 30㎝이고 전체 높이는 9.17m이다.
제13단에서 제15단에 걸쳐 남쪽으로 면한 곳에 조그마한 출입구가 나 있는데, 그 아랫부분 양쪽에 사다리를
걸었으리라고 추정되는 흔적이 있다.
내부는 제12단까지 흙이 차 있고, 제19, 20단과 제25, 26단 두 곳에 정자형(井字形)으로 길고 큰 돌이 걸쳐져
있는데, 그 양쪽 끝이 바깥으로 내밀고 있으며, 꼭대기에도 정자석(井字石) 2단이 놓여 있다. 제27단 내부의
반원(半圓)에는 판석(板石)이 있고, 그 반대쪽에는 판목(板木)을 놓았을 것으로 보여지는 자리가 있다.
꼭대기의 정자석 위에도 관측에 필요한 어떤 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보여진다. 현재 동북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으나 석조부분만은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데, 매우 희귀한 유적(遺蹟)이라고 할 수 있다.
첨성대에 관한 기록으로는 〈삼국유사〉 선덕왕지기삼사조(善德王知幾三事條) 끝에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는 것이 처음이다. 이어 〈고려사〉에도 그에 관한 기록이 있다. 보다 자세한 기록은 〈세종실록〉
권150 지리지 경상도 경주부 첨성대조에 "첨성대는 경주부의 남쪽 월남성에 있는데, 당태종(唐太宗) 정관
(貞觀) 7년 계사년(癸巳年:633)에 신라 선덕여왕이 쌓은 것이다.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위는 네모지고
아래는 원형이다. 높이가 19.5척, 위의 둘레가 21.6척, 아래 둘레가 35.7척이다. 가운데를 통하게 해서
사람이 올라가게 되어 있다"는 설명이 있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첨성대 안을 통해 사람이
오르내리면서 천문을 관측했다는 기사가 있다. 첨성대가 천문대의 역할을 했다는 기록은 그밖에도
〈서운관지 書雲觀志〉나 〈문헌비고 文獻備考〉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천문학은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시기를 결정지었던 24절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었기에
농업과 깊은 관계가 있으며, 당골네와 정치적 수장이 일치했던 고대사회 이래로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점성술(占星術)이 중요시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면 국가운영과 정치와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기에
현존하는 첨성대의 존재는 우리의 천문학의 수준과 우리조상들의 뛰어난 과학적 수준을 알려주는 바로
미터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료참조]
http://www.cha.go.kr/
http://enc.daum.net/dic100/
첫댓글 역사적인 면이나 과학적인 가치로는 엄청난 유적입니다만... 보존하는 모습이나 그걸 입장료 받는 모습은 그닥 아름답지 않더군요..ㅋ 한국사람들의 문화유적을 대하는 인식이 정말 많이 바뀌기를 기원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저 잇속으만 셈법을 계산해서는 안될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