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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2013년3월2일~3일
※ 코스; 해남땅끝항~노화도산양진항~보길도~세연정~동천석실~무민당~낙서제~곡수당~격자산~동천항~완도화흥항
※ 인원; 92명
※ 날씨; 바람 많고 추운날씨
노화도 (蘆花島)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읍에 속하는 섬
완도에서 남서쪽으로 14.5km해상에있다
보길도(甫吉島). 소안도(所安島) . 횡간도등과 함께 소안군도(所安群島)를 이룬다
연안일대의 수산업 중심지로 굴. 김의 양식과 수산 가공업이 성하다
면적은 25제곱킬로미터이다
보 길 도 (甫 吉 島)
완도읍에서 서남쪽으로 12km쯤 떨어진 보길도는 상록수가 우거지고 물이 맑아 자연경관만으로도 아름다운곳이지만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유적으로 더욱 알려진 곳이다
고산 윤선도 그의 나이 51세때인 조선 인조 15년(1637)에 왕이 남한산성에서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듣고 다시는 세상을 보지 않으리라 하고 제주도로 향해 가던중
상록수가 우거진 섬 하나를 발견하고는 그 섬에 터 를 잡았는데
그곳이 바로 보길도이다
섬의 산세가 피어나는 연꽃을 닮았다고 하여 부용동이라 이름짓고 섬의 주봉인 격자봉 밑에 낙서제를 지어 거처를 마련한다
그 후 두 차례의 귀양을 가고 벼슬을 하여 서울로 가거나 해남의 금쇄동 등 다른 곳에서
지내기도 했으나 결국85세로 삶을 마치기까지 섬 여기저기에 세연정. 무민당. 곡수당 등
건물을 짓고 바위등 자연의 경승에 대(臺)의 명칭을 붙였는데 이 정자와 대가 모두 25여개소에 이르며 오유가. 산중신곡 등 많은 가사와 유명한 어부사시사를 비롯하여
자연을 노래한 많은 시를 남겼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의 숨결이 살아있는 섬이다
▲ 해남 땅끝 전망대
▲ 세 연 정 보길면 부황리 명승 제34호(2008년01월08일 지정)
세연이란 주변경관이 물에 씻은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 지는 곳 이란 뜻으로
(고산연보)에서는 1637년 고산이 보길도에 들어와 부용동을 발견 했을때 지은 정자라 하고있다 정자의 중앙에 세연정. 동쪽에 호광루. 서쪽에 동하각. 남쪽에 낙가란 이란 편액을
걸었으며 또 서쪽에는 칠암헌이라는 편액을 따로 걸었다
세연정 지역은 3천여평의 계원으로 부용동 입구에 있다 세연정을 중심으로 조우에 연못(205평)과 계담(600여평)과 판석재방과 동대. 서대. 옥소대. 칠암. 비홍교와 동백나무. 대나무.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으거져서 아름답다
용이 승천하는 승용대. 연정이 있었던 조산과 여름에도 한기를 느낀다는 하한대. 고향을 그리워하며 임금이 계신 궁궐을 바라보던 혁희대. 석전 미산등 경승의 산봉우리마다
고산은 상징적 이름을 붙였다
부용동 유적은 고산의 기발한 착상과 절묘한 자연과의 조화성으로 구성된
한국 최대의 별서조경 유적이다
▲ 동 천 석 실
동천석실은 낙서재 건너편 바위산 험한 경승지에 한칸짜리 목조건물을 말한다
천여평 공간에 석담. 석천. 석폭. 석대 및 희황교와 한칸짜리 목조건물인 동천석실이있다
이곳은 고산이 책읽고 사색하며 신선처럼 소요하던 은자의 처소였다
▲ 낙 서 재
시문을 창작하고 강론하던 곳으로 무민당등 모두 소실 되었으나 복원 하였다
고산의 아들들과 제자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 병풍바위
▲ 곡 수 당
고산이 거처 하던 곳
▲ 점심 간제미 매운탕
▲ 격자산 을 향하여
▲ 수리봉 에서 한컷 찍고 시간이 촉박하여 하산
▲ 완도 화흥포항 도착
첫댓글 만복형님도 수고하셧습니다
역시 만복대시여 살아있는 작품 넘좋습니다 화질좋고 구도좋고 띵호와 입니다 수백장의사진
아무나 찍는것 아니지요 수고하고 감사합니다.........
형님들 고생덕에 저희는추억많이 남겼습니다.고맙습니다. 형님
만복대님 딸랑 딸랑 하셨겠어요. 세세히 담아 주시어 새롬 새롬 잘 구경하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