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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리난다이아몬드 Cullinan Diamond 3106.75 carat (621.2 g )
(컬리넌 다이아몬드 큘리넌 다이아몬드 쿨리난 다이아몬드 )
1905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프레미어 광산에서 발견된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이다.
발견된 프레미아광산 창립자 토마스 컬리난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그 후 3106.75캐럿carat (621.2 g )을 트란스발 정부가 75만 달러로 사들여 영국왕 에드워드 7세에게 바치고, 네덜란드의 아셔가1908년 대형의
돌 9개와 소형의 브릴리언트 brilliant형 96개로 컷하였다. 현재 9개의 돌은 영국왕실 재보(財寶), 왕실의 개인 소유로 되어 있다.
원석에서 쪼개어져 나온 것 중에 '아프리카의 별’(Star of Africa)이라는 유명한 다이아몬드가 있다 최대인 530.2캐럿짜리는 컬리난 또는 아프리카
의 거성(巨星)이라 불리며, 영국 왕실의 왕홀(王笏)에 부착되었고, 두 번째의 317.4캐럿의 것은 컬리난 2세라고 불리며, 영국 왕실의 왕관 중앙에
장식되어 있다. 모두 대관식용이다. 그 밖에 컬리난 3~9세까지 이름이 붙어 있다.
*브릴리언트brilliant : 브라일리언트(X) 약 3.5포인트 크기의 영문 활자 1포인트는 1인치의 약 72분의 1에 해당
* 토마스 컬리난 (Sir Thomas Cullinan)은 아일랜드계 후손으로 1862년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프레미어 광산의 설립자이다
*3106.75캐럿carat (621.2 g )은 거의 사람 머리만한 크기이다

컬리난다이아몬드 story
1905년 1월 26일 목요일에 발견 되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프레미어 다이아몬드 premierDiamond" 광산 에서 근로자들이 그 날 채굴작업을 끝마쳤을 때 광산 감독관인 프레드릭 웰즈
(Frederick Wells)는 마지막 작업 순시를 하고 있었다 작업을 하고 있던 광부 한명이 감독관 프레드릭 웰즈(Frederick Wells)에게 상기된 얼굴로
뛰어와 앞뒤가 맞지 않게 떠듬거리면서 뭐라고 말을 하였다 그는 웰즈Wells를 데리고 구멍 끝으로 가서 손으로 가르켰다 노천 채굴광산의
한 측면에 거대한 덩어리의 다이아몬드가 석양에 반사되어 희미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웰즈Wells가 광산 사무소로 되돌아와
그 덩어리를 동료들에게 보였을때 스탭들 중 한명은 "이것이 다이아몬드라구?"하면서 창 밖으로 집어 던졌다
웰즈도 아마도 유리조각 일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던지고는 말없이 그 덩어리를 주어 들어 저울에 달아 보았더니 무려 3,106캐럿의 이제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크기와 불루 화이트 칼라의 훌륭한 순도의 다이아몬드임을 알 수 있었다.
다이아몬드는 그 날 그곳을 방문했던 프레미어 광산 (Premier mine)회장이었던 “토마스 컬리난”이름을 따서 컬리난(CULLINAN)이라 이름 붙여져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1905년 possibly Frederick Wells 프레미어 다이아몬드 광산
웰즈Wells와 그의 동료들은 거대한 다이아몬드를 발결하게 된 기쁨과 동시에 과연 누가 이것을 살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의심을 풀어준 인물은 남아프리카의 군인 『루이즈 보더』장군이었다. 『루이즈 보더』 장군은 15만 폰드(9억)를 지불하여 남아프리카의
트란스발Transvaal 정부로부터 당시의 영국 국왕이었던『에드워드7세 EdwardVII 』의 탄생 축하연에 헌상되어질 것을 요구하였다.
한편, 세계의 이름난 대도적大盜들이 이 소식을 듣고 흥분하게 되어 남아프리카로부터 런던까지 운반하는데 있어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결국 거대한 다이아몬드 컬리난Cullinan Diamond의 운반 책임을 영국의 한 보험회사가 위임, 50만 폰드에 상당하는 보험료가 지불되었는데
보험회사는 세계의 대도大盜들로부터 다이이몬드를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심하게 되었다
많은 연구와 논란의 결과 , 아주 재미있는 방법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컬리난Cullinan을 보통의 소포처럼 위장하여 담배케이스에 넣은
뒤 우체국 창구에 접수시킨 후, 세계적인 대도大盜들을 속이기 위하여 쓸모없는 돌멩이 한 개를 단단히 포장하여 엄중한 경비속에 영국까지
운반하도록 꾸민 것이다. 당연한 예상의 결과로 포장된 돌맹이가 든 소포뭉치는 물셀틈 없는 완벽한 경비에도 불구하고 운반도중 도둑맞아
버리고, 보통의 소포로 꾸며진 담배케이스 속의 컬리난Cullinan은 세계의 유명한 도둑들을 조롱하면서 무사히 런던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를 연마하는 중대한 작업을 위해 에드워드 7세 (Edward VII)는 995캐럿 엑셀시어 (Excelsior diamond컬리난이
발견되기전 역사상 가장 큰 원석 다이아몬드로 기록)를 컷트했던 암스테르담의 유명한 애셔Asher가를 선택하였다.
영국 왕실에서는 유명한 다이아몬드를 영국왕실로부터 암스텔담까지 또 한번 운반하는 문제에 부딪혔고, 세계의 도둑들은 다시 흥분과 열광에
휩싸였다 두 번째 운반은 처음보다 더욱 어려울 것이 예상되었다. 치밀한 작전의 결과 아주 극비리에 컬리난Cullinan을 광산에서 올려온 방법으로
보통 소포로 위장하여 운반하도록 하였다는 소문을 흘려 도둑들을 교란시킨 후 컬리난Cullinan은 보석사 "애셔의 주머니에 넣어져 호휘하는 사람도
없이 간단히 암스텔담까지 옮겨 졌다.
우여곡절 끝에 1908년 2월 6일 컬리난Cullinan의 역사적인 크리빙(crib·bing 벽개劈開)을 위한 ''크리빙나이프''가 장치되어 졌다 당대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보석사 애셔Asher 가 의 전문가들은 8개월에 걸쳐 결정을 연구하고 작업을 계획하고 설비기구를 준비하고 연장과 기구를 알맞게 고쳐
유리와 왁스 모델로 실험하는데 보냈다.
1908년 2월 10일 오후 2시 45분 .역사적인 헤머의 일격이 컬리난Cullinan에 가해졌다.
조셉 애셔는 거대한 다이아몬드에 낸 0.5인치 홈에 특별히 만든 강철 칼날을 대고 강철봉으로 칼날을 세게 쳤다. 그러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애셔Asher 는 다시 한번 세게 쳤다. 그러자 컬리난 다이아몬드는 계획한대로 벽개되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결코 추호의 실수도 용납되어 질 수 없는 긴장의 순간이 지난 후 보석계의 베테랑이었던 "애셔Asher "도 그만 기절해 버렸다고는 소문이 있었다.
어떤 소문은 애셔Asher 가 2주간이나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애셔Asher 가문의 한 사람은 “애셔Asher 가문 사람중 어느 누구도 다이아몬드
작업중 기절하지 않는다" 라고 말했다.

컬리난Cullinan은 9개의 큰 보석과 96개의 좀 더 작은 돌 그리고 19.5캐럿의 연마가 안 된 돌들로 나누어졌다 그 중 가장 큰 2개의 보석은 영국의
왕보로 보관이 되었다 나머지는 애셔Asher 에 수고의 댓가로 지불되었다 에드워드왕king edward은 그의 부인인 알렉산드라 왕비Queen Alexandra
를 위해 2개의 큰 보석중 하나를 수입했다 트랜스발Transvaal 정부도 남은 돌들을 사서 나머지 6개 보석을 메리 여왕 (QueenMary영국의 다음왕인
조지 5세의 왕비) 에게 1910년 선사했다 더 작은 돌 중 2개는 루이스 보사에게 선사되었는데 그는 그 중 하나를 그의 딸이 17세가 되었을때 주었고
나머지 작은 돌들은 아무도 지금 어디 있는지 모른다
최초의 원석 덩어리는 1,977.5캐럿과 1,041.5캐럿으로 나뉘어져 1,977. 5 캐럿으로부터는 530.22캐럿의 페어 쉐잎(물방울형)으로 연마된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인『컬리난 I』이 탄생되었고, 1,041.5 캐럿으로부터는 317.40 캐럿의 『컬리난 II』가 연마 되어졌다.
이 외에도 모두 7개의 대석과 96개의 소석이 연마되었는데 모두 영국왕위를 상징하는 보물로써 자랑스럽게 사용되어 왔다.
오늘날에 와서는 정식 헌관식에 사용되는 한편 평상시에는 런던 탑 보물실에 진열되어 다른 왕실 보물들과 함께 런던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있다
토마스 컬리난 (Sir Thomas Cullinan)

*트란스발 식민지 http://kchwoo9.blog.me/5012503418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