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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서 시를 읽다(17)
엑상프로방스(세잔)와 마르세유
김철교(시인, 배재대 교수)
6월 20일(목)
세상의 인정을 받는 예술품은 어떤 것일까? 사람들의 가치평가 기준이 한결같다면, 좋은 작품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인정을 받기 시작할 것이고 그 명성도 오래 갈 것이다. 그러나 가장 변덕스러운 것이 사람이어서, 어떠한 가치평가기준도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경우는 없었고, 그마저 세월이 가면 변하기 마련이었다. 반짝 환호를 받는다고 기뻐할 일도 아니고,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전전긍긍하는 것도 슬픈 일이다. 그저 예술가는 ‘최선의’ 자기만족을 불변의 가치평가 기준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운명의 여신에게 간절히 기도하든지.
여기서 ‘최선의’ 자기만족이라 함은, 대강 그리거나 써놓고 만족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서 만든, 어쩌면 목숨까지 걸 수 있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으니 예술가는 몸도 마음도 영혼도 고단한 사람들이 아닐까.
세잔(Paul Cezanne, 1839-1906)은 오랫동안 엑상프로방스 사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지 못했다. 1925년까지 그라네 미술관장을 역임한 앙리 퐁티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세잔의 그림을 이 미술관에 들여놓지 않겠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엑상 프로방스는 세잔 때문에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잔은 엑상프로방스 오페라 거리(Rue de l’Opera 28번지)에서 태어나 에밀 졸라와 친하게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미술공부를 위해 파리로 갔었으나 잘 적응하지 못하였다. 세잔은 운도 없어 그림도 잘 팔리지 않았고, 살롱 전에는 출품만 하면 번번이 낙선했다. 딱 한번 입선한 것도 심사위원이 추천케이스로 추천되었기 때문이다. 모델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14살이 되어서야 정식결혼을 하는 등 파리생활이 순탄치 않았고, 당시 잘 나가던 친구 에밀 졸라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결국 세잔은 고향인 엑상프로방스로 돌아와 아내, 정물, 자연 등을 그리면서 여생을 보냈으며, 지금은 20세기 모더니즘 회화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다.
엑상프로방스는 세잔 부모님을 비롯하여 많은 일가친척들이 살던 세잔 가문의 숨결이 가득한 곳이다. 세잔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시티 투어가 있는데, 세잔이 즐겨 그림을 그렸던 곳, 세잔의 생가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집, 미술을 배웠던 학교, 평소 즐겨갔던 카페, 결혼식을 올렸던 교회와 장례식이 치러졌던 교회, 세잔의 아버지의 소유였고 한때 그도 근무했었던 은행, 세잔 어머니의 아파트, 세잔 할머니의 집 등 온 도시가 세잔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중에도 가장 의미있는 곳을 들라고 하면, 세잔의 스튜디오(Cezanne’s Studio), 자 드 부팡 저택(Jas De Bouffan House), 비베뮈 채석장(The Bibemus Quarries), 생트 빅투와르산(Sainte-Victoire Mountain), 그라네 미술관(Granet Museum) 등이라고 하겠다.
세잔의 스튜디오는 1902년부터 1906년까지 그가 죽기전 4년동안 수많은 그림을 그리면서 보낸 곳이다. 자 드 부팡 저택은 36점의 유화와 17점의 수채화가 1859년부터 1899년까지 그려진 곳이다. 비베뮈 채석장은 큐비즘(Cubism)이 첫발을 내디딘 곳으로, 1895년부터 1904년까지 <붉은 바위(The Red Rock)>같이 뛰어난 작품을 그린 곳이다. 생트 빅투와르산은 44점의 유화와 43점의 수채화가 그려진 곳으로 화가 세잔의 야외 아틀리에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그라네 미술관은 세잔이 그린 상당수의 수채화와 데생은 물론 9점의 유화를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세잔이 1857년부터 1862년까지 데생을 배운 곳이기도 하다.
<드골 광장에 있는 세잔 동상> <미라보 산책로에 있는 남프랑스 화가 특별전 광고판>
아침 9시 반에 마르세이유-상트르역으로 가서 엑상프로방스 가는 기차를 탔다. 약 45분 후에 엑상프로방스역에서 내려 조금 걸어가면 드골광장에 있는 분수대가 나온다. 여기는 세잔의 동상과 관광안내소가 있으며, 많은 버스들이 거쳐 가는 교통의 중심지다.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얻어 중요지점에 대한 설명을 듣고, 맨 먼저 미라보 산책로(Cours Mirabeau)를 지나 그라네 미술관을 찾았다. 거리에는 많은 노점상들이 있고, 마침 세잔에서 마티스까지 인상파 특별 기획전시회가 열리고 있다는 광고문이 전신주마다 나부끼고 있었다.
특별전 주제는 ‘남프랑스의 위대한 아틀리에(Le Grand Ateier du Midi)’로 ‘세잔에서 마티스까지’는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그라네 미술관에서, ‘반 고흐에서 보나르까지’는 마르세유에 있는 롱샹 궁전 미술관(Musee des Beaux-Arts, Palais Longchamp, Marseille)에서 6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열렸다.
특별기획전을 통해 여러 나라에 있는 미술관을 직접 찾아보지 않아도, 제시된 주제 아래 모인 세계 각처에 산재한 그림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고, 또한 개인소장 작품들도 볼 수 있어서 놓치기 아까운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이번 미술관 순례에서도, 찾아간 미술관에서는 보고 싶은 그림들이 보이지 않고 다른 곳에 ‘대여 중’인 경우가 종종 있어 아쉬웠다. 이번 여행에서 런던과 파리의 미술관에서 볼 수 없었던 적지 않은 그림들을 여기서 만날 수 있어 반가웠다. 또한 미국이나 러시아 등에서야 만날 수 있는 그림들도 이 기회에 직접 대면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세잔의 동네인 엑상프로방스에는 사실상 세잔의 그림 원본이 별로 없다. 대부분 세계 유명 미술관으로 흩어져 있다.
이번 전시회는 1880년부터 1960년까지 있었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야수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그리고 추상주의 등의 여러 가지 미술운동을, 남프랑스에서 활동한 화가들 중심으로, 약200여점이 마르세이유와 액상프로방스에서 동시에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남프랑스는 많은 미술가들이 한번쯤은 찾는 곳이다. 안내서에 따르면 르느와르와 시냑이 처음 여행한 이후 남프랑스는 화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진원지로 여겨졌다. 다시 말하면 훌륭한 야외 스튜디오인 셈이다. 1880년대 남프랑스의 햇빛 풍성한 해변은 야외에서 작업하는 화가들의 천국이었다. 온화한 지중해 기후와 오염되지 않은 순정한 아름다움은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강렬한 유혹이었다. 이들은 복잡한 파리로부터 멀리 떨어져 저렴하게 숙식을 해결할 수도 있었다.
1. 그라네 미술관(Granet Museum)
<발크로스에서 본 생트 빅투와르 산 <에스타크에서 본 마르세유 만
(Mount Sainte-Victoire seen from (The Gulf of Marsielles seen from
Valcros Road, 1878-79, Oil on Canvas, L’Estaque, 1878-79, Oil on Cavas,
58X72Cm, Pushkim Museum, Moscow)> 58X72Cm, Musee d’Orsay, Paris)>
1838년 설립된 그라네 미술관은 중세시대부터 프로방스 지방의 상업, 예술, 교육의 중심지 역할을 해온 도시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미술관으로, 태피스트리 박물관(Musée des Tapisseries d'Aix-en-Provence)과 함께 이 지역의 주요 예술 전시관이다. 세잔의 생가도 이 미술관 근처에 있으며, 2006년에는 세잔 사후 100년을 기념해 다른 곳에 소장된 세잔의 작품들을 모아 대대적인 전시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명칭은 이 지역 출신 화가 그라네(Francois Marius Granet, 1777-1849)에게서 따온 것이다. 그라네뿐만 아니라 14세기부터 19세기까지 활약한 서양 예술가들의 그림, 조각 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2. 아버지의 별장, 자 드 부팡(Jas de Bouffan)
<세잔 아버지 별장, 자 드 부팡>
그라네 미술관에서 ‘세잔에서 마티스까지’의 특별전을 관람한 후, 엑상 프로방스의 교통 요지인 분수대까지 다시 돌아와 택시를 타고 세잔아버지 별장 자 드 부팡을 방문하였다. 세잔은 이곳에서 아버지의 초상화와 저택, 정원을 주제로 많은 풍경화를 그렸다. 마침 영어 해설사가 세잔이 이곳에서 그린 그림 복사본을 들고 여기저기 화폭 속에 담았던 장소를 설명해 주었다. 방문객을 위해 영어 해설사와 불어 해설사가 안내하는 시간에만 개방되고 있는데, 마침 우리가 도착했을 때 영어 해설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3. 세잔의 아틀리에(Musee Atelier de Paul Cezanne)
<세잔 아틀리에 내부> <사과바구니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Basket
of Apples, 1890-94, 79X62,
Oil on Canvas,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8번 버스를 타고 분수대로 돌아와 다시 5번 버스를 타고 세잔 아틀리에로 갔다. 1901년 세잔은 엑상프로방스 외곽에 땅을 사서 정원을 가꾸고 직접 설계도를 그려 건물을 짓고 그 건물 2층에 지금의 아틀리에를 만들었다. 세잔이 생을 마감하기 직전 4년동안 그림을 그렸던 곳이다. 2층 아틀리에는 세잔의 생전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테이블 위에 과일을 비롯한 주전자, 해골 등 정물들을 비롯하여 야외에서 사용했던 화구가방 등도 전시되어 있다. 특히, 적지 않은 사과가 눈에 띄었는데, 세잔은 정확한 묘사를 위해 사과 하나를 두고 그것이 썩을 때까지 그렸다고 한다. 역사 속에 가장 유명한 사과라고 한다면,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와 함께 세잔의 사과라고 하지 않을까. 아틀리에만큼이나 그는 많은 시간을 정원에서 보냈다고 한다. 아틀리에 바로 옆에 있는 정원의 좁다란 산책로와 벤치가 곳곳에 아직 남아 세잔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사과바구니가 있는 정물>에서 사과 바구니는 상자 위에 놓여 있고, 쿠키는 책 위에 놓인 접시에 정렬되어 있으며, 사과들은 아무렇게나 구겨진 흰색 천 위에 배치되어 있다. 이 모든 정물들은 테이블 위에 위치하고 있다. 테이블은 좌측과 우측이 일직선으로 처리되어있지 않으며 의도적으로 왜곡되어 있다. 사과들은 다양한 색채가 혼합되어 표현되어 있다. 테이블에 수평을 이루고 있는 사과들과 바구니에 담긴 기울어진 사과들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그려져 있으며, 이 둘이 하나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전면에 배치된 구겨진 테이블보와 정돈된 형태의 쿠키는 서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작품에서 사용된 색채는 전체적으로 빛을 머금고 있으며, 명료한 색감을 담고 있다. 세잔은 역동적인 터치를 통해 채색을 하는데, 매끈한 유리의 느낌이 나는 병을 제외한 나머지 정물들에서는 질감이 드러나지 않는다. 중립적인 색채의 질감과 함께 테이블의 왜곡된 형태는 구조적으로도 추상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대비를 통해 균형적인 구성을 이루고 있는 이 작품은 각 부분에서 의도적으로 균형을 깨트리고 있다. 즉 작품 내의 정물들은 안정과 불안정이 양립하며 하나의 평형을 이루고 있다. 중앙에 배치된 왜곡된 병의 형태는 작품의 정 중앙에 위치하면서도 그것 스스로 불안정한 형태를 취하고 있어 이러한 평형상태를 보여준다.“(네이버 지식백과)
4. 대 수욕도(大 水浴圖)
<대 수욕도 (Les Grandes Baigneuses, 196X127Cm, 1898-1905, 런던 내셔널갤러리)>
“모든 자연현상은 원기둥, 구, 원뿔로 함축된다”는 이론을 제시해 20세기 초 야수파와 입체파를 낳게 한 세잔은, 그의 말년을 아틀리에에서 목욕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한 일련의 작품을 그렸다. 이 주제는 1870년대 중반부터 세잔의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한 것이다. 특히, 그는 생트 빅투아르산과 목욕하는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그렸다.
<대 수욕도>는 야외를 배경으로 목욕하는 여인들을 그린 그림이지만 실제 모델을 써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다. 자신의 상상력으로 누드화를 그린 결과 정물화처럼 정적이고 추상적인 인물들이 되었다. 또한, 인물들과 주위의 나무줄기들이 피라미드 형상을 이룸으로써 운동감과 리듬감을 부여하였다. 이처럼 세잔은 형태와 색채에 추상성을 부여함으로써 입체주의 회화 발전에 영향을 미쳤다.
몽실몽실한 원을 따라가면
세잔, <대 수욕도>
나무와 구름과 나신들이 모두
크고 작은 원으로 흐르며
세상을 완성해간다
예전엔 미로의 비너스가
아름다운 율동으로 다가왔지
숨겨진 샘에서 심각(心覺)으로나마
아편 한 방울 길어 올릴 수 있었지
오늘날 캔버스에 차려진 비너스의 제사상에는
술집 마담 비계 덩어리도
창녀들의 바짝 마른 몸 가죽도
제기(祭器)에 한자리씩 차고 앉아
아름다움과 추함을 헷갈리게 하지만
세잔의 가볍고 무거운 붓질은
화폭 속에 깊은 동굴을 파고
잦아들고 있는 호르몬의 맥을 찾아낸다
침침한 눈으로 보는 누드에도
새파란 싹이 돋기 시작한다
세상만물을 시작도 끝도 없는
원으로 바꾸어, 늙음도 죽음도
회오리로 날려 버린다
5. 에밀 졸라(Emile Zola, 1840-1902)와 세잔
세탁업이 공장화가 된 파리에서 살아가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그린 <목로주점(L' Assommoir, 1877)>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 주자였던 에밀 졸라와 세잔은 1852년 엑상프로방스의 부르봉 중학교에서 만난 고향 친구였다. 졸라는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서 가난했으며 파리 출신이라 학창시절에 자주 따돌림을 당했는데, 부유한 은행가 아들인 세잔이 형처럼 졸라를 보호해주었다고 한다.
졸라와 세잔의 30년 우정에 금이 간 이유는 졸라가 출간한 소설 <작품(L'Oeuvre, 1886)>때문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클로드 랑티에는 자신의 예술적 이상을 실현할 수 없음을 깨닫고 좌절하여 자살하고 만다. 이 소설에 나오는 ‘실패한 천재의 무기력’이라는 말이 자신과 자신의 작품을 지칭 한다고 생각한 세잔은 두 번 다시 졸라를 만나지 않았다.
6. 마르세유
생트 빅투아르 산(Montagne Ste-Vic-toire)은 시간이 충분치가 않아서 직접 올라보지는 못했지만, 멀리에서 열심히 바라보았다. 기원전 102년 게르만족의 침략을 로마의 장군 마리우스가 여기에서 격퇴했다고 붙여진 ‘성스러운 승리의 산’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쉬운 발걸음으로 엑상 프로방스를 떠나 마르세유에 기차로 도착하니 저녁 9시였다. 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타고 구항구(Vieux Port)에 내려 이곳저곳 기웃대다 마르세유 대표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생선 수프 부야베스(Bouillabaissse)를 먹을 수 있었다. 생선에 토마토와 화이트 와인을 넣어 끓인 것으로, 가격이 식당마다 달라 중간정도인 1인당 15유로 짜리를 먹었더니 맛이 별로라고 집사람이 투덜댔다.
<부야베스로 저녁식사 중인 아내>
마르세유 커피는 프로방스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수입해 마시기 시작한 곳이 마르세유다. 1644년 아프리카 이슬람 지역과 활발하게 교역을 하던 마르세유는 이집트에서 커피를 수입했으나 당시에는 약재로 약국에서만 팔았다. 음료로 마시기 시작한 것은 1650년경에 마르세유의 거상 피에르 드 로크(Pierre de la Roque)가 콘스탄티노플에서 커피를 가져와 음료로서 마시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로크는 1671년에 마르세유에 카페를 열어 성공하면서 커피가 대중화 되었다. 파리에서는 1686년 카페 프로코프(Cafe Procope)가 처음으로 커피를 팔기 시작하여 시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활발한 아랍지역과의 교역 덕분에 마르세유에는 아랍인들의 수도라고 할 정도로 아랍인들이 많다고 한다. 서울을 떠나올 때 여행사에서, 마르세유는 프로방스 지역 중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이기 때문에 밤에 돌아다니지 말라는 주의를 들어서, 다른 데는 들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지하철을 타고 일찍 호텔로 돌아왔다.
마르세유에서 유명한 곳으로 구 항구에서 언덕길을 30여분 걸어 올라가면 로마 비잔틴 양식의 성당 느트르담 드 라 가르드 바실리크 성당(Basillque Notre Dame de la Garde)이 있고, 동쪽 고지대에 1868년에 지어진 롱샹궁(Palais Longchamp)이 마르세유 전성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마르세유 항구에서 뱃길로 3Km 거리에 있는 이프(Ild c’If) 성이 있는데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주인공 당테스가 갇혀 있던 곳이다. 원래 마르세유 항을 지키기 위해 요새로 지었으나 절벽과 파도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져 주로 반역죄인을 가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1801년 설립된 마르세유 미술관(Musée des beaux-arts de Marseille)은 마르세유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관이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지에서 유행했던 미술 양식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많이 전시하고 있다. 지중해 고고학 박물관(Musée d'archéologie Méditerranéenne), 캉티니 미술관(Musée Cantini) 등과 함께 지역의 주요 전시관이다. 1869년부터 롱샹 궁(Palais Longchamp)의 왼쪽 건물 일부를 전시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롱샹궁은 19세기 중반 마르세유 운하(Canal de Marseille) 건립을 기념하여 지어진 화려한 건축물로 곳곳에 분수, 연못, 인공 폭포 등 물과 관련된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1999년에는 문화재로도 지정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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