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모할아버지
학교 가는 길목에 고모네가 있었습니다.
우리 고모할아버지는 연세가 팔순이 넘었는데 귀가 좀 어둡고, 허리가 굽어서 늘 지팡이를 짚고 다니셨습니다.
그렇지만 정정하신 편이어서 밭일도 하시고 마당도 쓸고 하셨습니다.
장난꾸러기 형들은 학교 갈 때나 올 때면 고모할아버지의 귀가 어둡다고 놀리곤 했습니다.
‘할아버지 개떡 잡수시우.’
하고 허리를 구부리면 할아버지는 인사하는 줄 알고
‘오~냐, 핵교 가냐?’ 하십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는 웃지도 못하고 참느라 이를 악물며 한참 와서는 땅바닥에 뒹굴며 웃곤 했습니다.
나는 그것이 싫었지만 그냥 같이 따라 웃어주곤 했습니다.
고모네 사립문 바깥에 큰 살구나무가 있었습니다. 거의 고목이 되어 밑 둥 부분은 썩어서 돌을 눌러 놓기도 했지만 매년 살구가 엄청나게 많이 열렸습니다. 더구나 찰 살구여서 얼마나 달고 맛이 있던지....
아이들은 그 살구나무 밑을 지날 때 마다 군침을 삼키곤 했습니다. 그런데 행여 살구나무에 눈독 들였다간 큰코를 다칩니다.
이따금 형들이 아무도 안보여서 살구나무에 돌팔매라도 할라치면 고모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운데도 어떻게 그 소리는 잘 듣는지 벼락처럼 문을 박차고 나와서 쫓아옵니다.
한 손으로는 무명바지의 괴이 춤을 싸쥐고 한 손에는 막대기를 들고
‘요놈의 자식들, 고 못된 손모가지(손목)를...’
하면서 휘여휘여 비척거리며 쫓아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어마뜨거라 꽁지가 빠지게 도망을 치면서도
‘에이 더러워, 먹초(귀머거리) 영감이 그럴 땐 귀도 밝아......’
하면서도 낄낄거립니다.
그날은 남이와 옥이와 셋이서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옥이는 ‘송도깨비 딸’이라고 놀리지만 않으면 우리와 곧잘 어울렸습니다. 좀 왈가닥이어서 우리랑 딱지도 잘 치고, 말뚝박기도 잘합니다. 그런데 ‘송도깨비 딸’이라고 놀리기만 하면 아무에게나 함부로 발길질을 해대고, 며칠씩 말을 하지 않기도 합니다.
셋이 웃고 떠들며 우리 고모집 앞을 지나려는데 마침 고모할아버지가 몽당 싸리비를 들고 한 손은 지팡이에 의지한 채 사립문 앞을 쓸고 계셨습니다.
“할아버지, 안녕하시우...”
우리 셋이 동시에 큰 소리로 인사를 하였습니다.
“오~냐, 핵교 갔다 오냐? 아참 훈이야 가만있거라. 내가 살구를 좀 따 줄 테니 너희들도 먹고 어머니한테 좀 갖다 드려라.”
우리 셋은 살구를 따 준다는 말에 귀가 번쩍 띄었습니다. 나무를 쳐다보니 정말 잘 익은 살구가 금방 쏟아질 듯이 탐스럽게 매달렸고, 얼마나 잘 익었는지 불그스름하고 노란 빛깔은 보기만 해도 입속에 군침이 돌았습니다.
‘가만히 있거라, 장대가 어디 있더라....’
고모할아버지는 빗자루를 내려놓고 굽은 허리를 두드리며 장대를 들고나오셨습니다. 한 손으로는 무명바지의 괴이 춤을 잡고 한 손으로 따려고 하니 힘에 부쳐서 자꾸 엉뚱한 하늘만 휘젓습니다.
‘가만있거라. 요놈의 살구가 잘 익었나.....’
하는데 도무지 제대로 겨냥이 안되니 괴이 춤을 잡았던 손을 놓고 두 손으로 장대를 잡고 휘젓습니다.
우리도 같이 장대 끝만 쳐다보며 안타까워하는데 갑자기,
‘아이쿠... ’ 하더니 할아버지가 황급히 한 손을 아래로 내립니다. 무명바지를 허리띠가 없이 그냥 접어서 허리에 찔러 놓았던 것인데 손을 놓고 허리를 펴는 바람에 괴이 춤이 끌러져서 바지가 발목까지 흘러내려가 걸린 것입니다.
옛날에 무슨 속옷이 있었겠습니까? 옆에서 하늘만 쳐다보던 옥이가 갑자기,
“와하핫... ” 하면서 돌아서서 냅다 도망을 갑니다.
남이와 나는 영문을 모르고 멍청히 섰다가 사정을 알아채고는 돌아서자마자 덩달아 내달렸습니다.
한참을 뛰다 보니 산모퉁이 뒤편 양지 녘에 옥이가 대굴대굴 구르면서 웃고 있었습니다.
“난 봤다, 난 다 봤다...... ”
하고는 또 대굴대굴 구르며 웃습니다. 남이와 나는 하도 기가 막혀 멍청히 서서 그 꼴을 한참 보다가 그 망측한 장면을 떠올리고는 같이 땅을 두드리며 웃었습니다.
그해 가을에 그렇게 정정하시던 고모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평소에 별로 말이 없으시던 고모부께서도
‘그렇게 야단도 잘 치시고, 정정하시던 어른이 어쩌면 이렇게도 쉽게 가시는고.... ’
하면서 눈시울을 붉히시는 것을 보니 코허리가 찡했습니다.
채알(차일, 천막)을 치고, 곡을 하고, 먼데 사는 친척들도 모여왔습니다.
우리 어머니도 물론 고모네 부엌에서 밤을 밝히셨습니다.
동네 청년들이 우리 사랑방에 모여서 상여 멜 이야기들을 합니다.
‘이번에 또 송 도깨비 영감님의 구성진 선소리를 들어 보겠구나...’
상여(喪輿) / 봇도랑을 건너가는 상여 행렬
송 도깨비 영감은 그렇게 무섭고, 평소에는 말 하는 걸 잘 들어보지도 못했지만 타고난 선소리꾼이라고들 합니다.
동네 청년들이 상여를 메면 맨 앞에 선소리꾼이 상여 머리를 잡고 소리를 메깁니다.
선소리꾼인 송 도깨비 영감이 요령(쇠방울)을 박자에 맞춰 흔들며 구성지게 소리를 메기면 상여꾼들은 목소리를 맞추어 받습니다. 송 도깨비 영감은 목소리가 구성지고, 또 사설이 얼마나 슬픈지 동네 아낙네들은 그 소리를 듣고 눈물을 찍어내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상여를 메고 갈 때뿐만이 아닙니다.
구덩이에 관을 넣고 회를 뿌린 다음 다지며 부르는 ‘회 다지기 노래’라든지 봉분을 쌓으면서 흙을 다지는 ‘봉분 다지기 노래’ 등은 빠르기도 다르고, 사설(내용)도 매우 다릅니다. 송 도깨비 영감은 그 모든 사설을 어떻게 다 외는지, 또 어쩌면 그렇게 구성진 목소리로 사람들을 울리는지 사람들은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그날 둘째 시간은 산수시간이었습니다.
연습문제를 푸느라 장난도 못치고 공책과 씨름하고 있는데 멀리서 아련히 상여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교실 창밖으로 눈을 돌리니 가을걷이가 끝난 텅 빈 들판으로 고모할아버지 상여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여남은 개나 되는 만장(輓章)을 앞세우고 길게 줄을 지으며 쓸쓸히 가고 있었습니다.
<선소리> ‘이제 가면 언제 오나.’
<받는 소리> ‘어~이 호, 어~이 호, 어~이 가나 어~이 호.’
<선소리> ‘우리 인생 한번 가면.’
<받는 소리> ‘어~이 호, 어~이 호, 어~이 가나 어~이 호.’
<선소리> ‘다시 오기 어려 워라.’
<받는 소리> ‘어~이 호, 어~이 호, 어~이 가나 어~이 호.’
귀는 좀 어두웠어도, 그렇게 짜랑짜랑 호령하시던 우리 고모할아버지도 송 도깨비 영감의 그 구성진 선소리를 들으며 우리 곁에서 영원히 떠나버리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