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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슥한 곳에서 제일 무서운 게 사람이라고 하던가요?
하지만 둘이서 기세좋게 어둠을 익혀가며 올랐지요. " <-- 요 대목을 읽다보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
그러니까 내 나이 서른 서,너 살 쯤이니까 한 이십육,칠년전 이야긴가..?
당시 겨울 방학을 맞아(30대에 고교교사를 5년 동안 했음) 낚싯대 하나 가방에
넣고 무작정 집을 나와 제천 의림지인가?에 가서 얼음 낚시(결과는 꽝)해보고 다시
영월로 갔는데.. 눈이 10센티는 왔나보다.. 환상적인 겨울 경치.. 여기저기 산천을 구경하고 시내(당시는 읍내?) 길가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걸치는데..
옆자리에서 마시던 젊은 여성과 이야기가 닿아 어쩌구저쩌구 이바구.. 뭐 하냐니..다방 일 한다나..얼씨구..잘 하면 어찌어찌..ㅋㅋ? 그런데 이 여자 직업여성 답게 눈치는 '빠꼬미'라..대뜸 제 친구를 하나 불러도 괜찮겠느냐? 는 거였다.
나야 뭐 원래 욕심이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라서(?).. 좋다고 했더니.. 과연 하나가 오긴 왔는데.. 이미 술이 많이 되어서..어쩌구저쩌구 또 이야기 좀 하다가.. 나 그만 가 잘라요.. 했더니..같이 가자네.. 얼씨구..거..참..이럴 때는 어째야 하나..여자가 둘인데.. 에라 몰겄다.. 맘대로 하슈.. 그래서 여관에 셋이 들어갔는데.. 이 여자들 보게.. 술을 또 사들고 따라오는 게 아닌가..
하이고 마.. 낸도 모르겠다.. 여관방에 들앉아 두 여자랑 함께 또 마시기 시작했다.
한참을 마시다 나는 여독(?)과 술독이 짬뽕이 됐는지 그마 곯아떨어졌나보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나 혼자 쿨쿨 자다 펄쩍 깼는데.. 아무도 없다.
본능적으로 지갑부터 챙겨 보니 그대로다. 음~ 쩝쩝..크크.. 거, 술 한번 거하게 마셨구먼.. 이 가시내들은 우째 인사도 없이 그냥 가노.. 고얀 ~ .. 혼잣말을 했지만 과히 섭섭하진 않았다. 뭐..흑심은 들어올 때 이미 날려보냈으니까..키키..
아침에 시내 어딘가에 가서 해장국으로 속을 달래고.. 버스 타고 어디론가 물어물어 갔는데.. 바로 '고씨 동굴' 이란 곳이었다. '고수 동굴' 말고 '고씨 동굴'..
강가에서 내리니 물고기 매운탕 집이 두어 군데 있나보다. 어항에 마자를 비롯하여 민물 고기가 몇 가지 보인다. 다시 강으로 내려가니 배가 한 척 매어 있고.. 올라타니 사공이 노를 젓는 게 아니라 이미 허공에 이쪽저쪽으로 매어놓여있는 줄을 잡아당기며 저쪽 강안으로 건너가는 게 아닌가..체, 이런 사공 노릇은 나도 하겠네.. 하는 사이에 이미 다 건너왔다.
배에서 내려 조금 올라가니 고씨동굴이라 써 있는 곳에 도착. 매표소에서 표를 끊어 들어갔는데.. 제길헐 아니 제기랄.. 사람이 나 밖에 아무도 없다. 어라..뭐 이리 썰렁하노.. 할 수 없지.. 저 컴컴한 동굴 속을 혼자 들어간다? 우째 좀 켕기는데..? 근데.. 화살표도 제대로 안보인다. 굴 구멍이 두 갠데..어디로 들어가지? 에라..아무데로나 들어가자.. 해서..한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먼 굴이 이리도 길담.. 올라갔다 내려갔다 넓어졌다 좁아졌다 꼬불꼬불 마냥 가도 끝이 없다. 흐릿한 전등불이 겨우 비칠랑말랑..차가운 물방울이 돌 고드름 끝에서 똑똑 떨어지는데 냉기가 써늘하였다. 한겨울의 동굴속.. 그렇게 춥지는 않았을 텐데.. 혼자서 컴컴한 굴속을 가니 간이 작아지는 건 사실. 원래 모험을 좋아하여 겁은 별로 없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원 이건 좀 으시시..흐흐..아무래도 삭막혀..이렇게 생각하면서 홀로이 외로이 계속 가는데..
아, 저쪽 맞은편 쪽에서 두런두런 얘기 소리에 인기척이 나면서 점점 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는 게 아닌가.. 흠~ 한 서,너 놈(+녀)은 되겠군.. 근데 이걸 어쩐다..?
나는 혼자이니 일부러 인기척을 낸다고 미친놈처럼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에라..모르겠다.. 그냥 전진하자.. 조용히..
드디어 저들이랑 나랑 돌연 굴 모퉁이에서 정면으로 마주쳤다.
어마얏! 우앗! 억! 허걱! (저들 놀라는 모양 - 그야말로 '혼비백산'이였슴)
흐흐흐~ 하하하~ (나의 즐기는 웃음소리 - 속으로 ^^)
나는 그냥 외면하고 못본 척 내 갈길을 갈 뿐이었지.
근데..저들이 놀랄만도 하다. 왜냐하면 갑자기 컴컴한 데서 사람 하나가 툭 튀어나왔으니 그럴만도 하겠지만.. 게다가 나는 허연 백바가지를 머리에 쓰고 있었으니 마치 해골단(데모 막는 전투경찰)이 쓰는 해골바가지 한가지였지 않았겠나.. 그러니 저렇게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크크..나는 엽기변태인가봐..사디스트야..암..^^
저들과 나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들어온 거였다. 내가 실수한 건지 저들이 실수한 건지..아니면 화살표가 없었던 건지.. 아무튼 그런 일이 있었다. 한겨울의 동굴속 해프닝이었는데.. 저들은 아마도 자기네들 밖에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그런데 흰 바가지 쓴.. 사람인지 괴물인지가 눈앞에 불쑥 나타났으니 얼마나 놀랐으랴.. 게다가 인기척도 없이..괘씸하게 말이야.. (낸들 어쩌누..혼자인 걸.. 동행이라도 있어야 두런두런 소리를 내지..크크~) !
나는 이어서 기차 타고 정선, 태백, 등등 들려서 눈 구경하고.. (정선에서는 민박집에서 알콜 램프로 라면 끓여 먹으려다 거의 90프로 불 낼 뻔하였는데 가까스로 진화..허이구~ 지금 생각해도 식은땀이..ㅋㅋ).. 북평을 지나 묵호까지 갔다. 낚시방에 들려 쳐박기 낚시를 몇 개 사가지고 방파제로 가 던져 넣었다. 조금 있으니 초릿대가 덜커덩 하고 움직여 냅다 채서 감아올려 보니 놀(노?)래미였다. 다시 또 한마리 올렸는데.. 이번엔 우럭이었다. 손맛들이 제법 있었던 편이었다. 동해 깊은 물이라서 그런가..
낚시를 끝내고(어두워지자 서치라이트를 딥다 비추는 통에 거의 도망치다시피..) 묵호 읍내 시장통에서 군대 후배를 만나 잡은 물고기 두 마리를 건네주니 고맙다고 받는다. 그러면서 나를 시장통 아구탕집으로 데려가 아구탕을 시켜 먹는데.. 웬 탕이 이리도 맛이 좋다냐..? 머리털 나고 처음 먹어보는 아구탕이었다. 대가리 아가리가 과연 크긴 큰 생선인데..흐흐..나 같은 도시 촌놈이 처음 보는 괴기로 호강하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 때의 낚시가 나의 최초의 바다낚시였던 셈이니 지금 생각해보아도 감개가 무량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