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1943윤구병19같잖은08
<8월 마당> 사회 : 이규성(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 주제 : 중국철학에서 나타난 ‘같잖은 생각(nothos logos)들’
- 유가철학, 도가철학, 선불교철학 -
* 일시 : 2019년 08월 17일(토요일) 오후 2시.
* 함께 이야기 나눌 분들: 이현구, 김성희, 이지, 이병창, 진보성,
[일단 우주발생론이 아니라 우주론 상으로 유가에서 태극 무극을 들여오는 신유학이 있을 것이고 도가에서는 이름 할 수 없다는 무(無)에 대한 논의가 가미할 것이며, 우리 선불교에서는 대승에서 이어온 무(無)와 비(非)의 논의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해 본다. 나로서는 이런 논의가 존재와 무의 서양철학에 대비하여, 동양철학이 더 많은 논의(이야기)를 했다고 여기는 관점을 들여다봐 볼 것이다. (52QMH)]
[오늘 화두는 공에서 무로 넘어갔다. 역시 도가의 이야기보다 유교의 입장에서 이야기 한 것이다. 비보다 무였다. 중국의 제도에서 노자의 도(道)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제도가 없으면 무화된다는 것을 극복하려는 세상의 부정(비, 非)을 택하기보다, 무(無)에서 나온 세상을 구제하는 쪽으로 흐름을 읽는 것 같았다. 살아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세상이 어떤 과정을 겪을 것이라는 고민을 하는 자가 현자이다. - 오늘 달마의 바라를 차지할 것이라는 이들이 우세했다. - 그럼에도 10년을 연구 작업한 이병창의 기념은 어쩌면 강연보다 더 소중할 것이다. 그래도 평생의 철학적 과정을 말하고 싶은 구병형의 이야기는 매우 소중하다. (52SLG)]
**************
<8월 마당> 사회 : 이규성(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 주제 : 중국철학에서 나타난 ‘같잖은 생각(nothos logos)들’
- 유가철학, 도가철학, 선불교철학 -
* 일시 : 2019년 08월 17일(토요일) 오후 2시.
* 함께 이야기 나눌 분들: 이현구, 김성희, 이지, 이병창, 진보성,
<강연 들어가기 전>
정신의학, 건강의학 하시는 분, 영세중립 연구자인 강종일(한반도중립화통일협의회 회장)도 참석해 주신데 감사한다.
여기 모인 분들의 구인류(늙은이)와 신인류(젊은이)가 모였다. 신인류는 인공지능과 겨루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사회: 이규성)
대담자들 소개: 이현구(李賢九, 1957-), 김성희(金省希, 1970-), 이지(李地 1971-), 이병창, 진보성(陳輔成, 1977-), [김교빈 부재]
사회: 지난 이야기 요약 소개
- 존재, ti esti, 그것, 논리적 가정[사고 대상] 이규성
불교: “대상화 거부” 것(거시기), 정해지지 않은 것을 극복하는 것이다.
아드바이타 베단타도 객관성 부정, 즉 ‘것’에 대해 철학이 극복해야 하는 것
- 민주[인민], 대지, 경계[아페이론] - 생성의 철학, 민중[인민]과 함께 하는 고뇌.
<윤> 입만 열면 틀리는 사람이 있다. 대학 교수들이 그러하다.
부처님 말씀은 틀림이 없다. [그런데 선불교에서 스님들이 ‘입만 벙긋하면 틀린다’는 말을 합니다. 개구즉착(開口卽錯), 입만 벌리면 거짓말을 한다는 뜻이죠. (87) - 윤구병, “철학을 다시 쓴다”.]
<강연과 토론>
I.
I-1, 서양은 존재론: 존재와 무 <- 이런 것을 다루는 사람은 구인류일 것이다.
- einai, on, ouk, me on 존재: 무로 번역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있다: 있음-안있음, 이다. 임-아님.
- 아리스토텔레스: 동일율 모순율, 배중률. 같다에서 출발하여 안있음과 대립이다
- 그리스에서 없는 것, 이것은 없다.
인도에서 없는 것이 아니지만 있는 어떤 것이 ‘공(空)’이다. -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이게 아페이론이고, 니체에 의하면 아낙시만드로스 움직이는 아페이론을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다음 움직임을 강조한 이는 헤라클레이토스이다. 그리고 세월이니 이로부터 학설을 세운 이는 벩송이다.]
I-1-2. 중국 사상에서 무(無) [나로서는 노자의 논리적 비(非)와 존재적 무(無)]
- 문헌 상으로 노자(老子)에서 무위(無爲), 그리고 현빈(玄牝): 검은 암소 [윤구병의 해석인데, 검은 암소는 들뢰즈의 왕관 쓴 아나키스트와 닮았고, 니체의 크레타 섬의 미노타우르스에 비유될 수 있다. - 디오니소스 신앙의 기원에는 황소가 있다. 왜 암소가 아닐까? ]
- 금강경에서 번역에서 처음에는 무(無)였다. 공(空)이 아니다.
- 도덕경 1장 一.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 名天地之始, 有, 名萬物之母, (일.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무, 명천지지시, 유, 명만물지모母): 도를 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참 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참 이름이 아니다. 무명은 천지의 시작이요, 유명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존재론의 시작은 무(無)이고 현상론(표면론)은 유(有)이다.] - 이로서 있다 없다로 번역이 아니다.
= 제주도말 있수다 어수다. 이시다 어시다. [남방계에서 온 언어일 수도 있다]
이시(이제), 어시(어제)
= 고려 도경에서는 하(夏)제(아제) - 중국계에서 온 표기법
= 고려 시가 ... (윤은 제목과 구절을 설명했는데..)
여기서 어 이 아가 다르다. 과거, 이제, 미래 ...
고로: 있다 없다고 번역될 있는가?
I-2.
서양존재론: 존재 대 비-존재 | 인도존재론: 공(空)
- 플라톤의 티마이오스 -데미우르고스의 작업 )
타우톤과 헤테론을 감싸고(포함하고 있는) 것이 지구이다. 즉
지구는 [우주에서] 가장 먼 곳(중심에서 가장 먼 곳)에 있다.
결국 지구는 합리적인 것과 먼 것이다. [불합리가 상존하는 곳이다]
오르토스 로고스(orthos logos)를 따르지 않고 다른 생각(nothos logismus)가 생성되는 곳이다.
- 데카르트의 좌표 : 중심에 0이 있다.
바깥은 원[원주]이고, 중심은 공(空, 0)이다.
대수학에서 보면, 과학적(수학적)으로 [중심에는] 흔적을 남긴다. [중심(0)은 없는 것[(무無)]이 아니다.]
대수로서 0과1은 분할에서 나온다. [이진법은 둘이라는 단위의 설정이다.]
그리고 0과1, 다음으로 0도 아니고 1도 아닌 것이 있다.
인도에서 [무]란, 공(空)이며 기호로서 0이다.
이것은 [의미상으로] 한편으로 공이 풍부한 것이고 다른 한편 경계가 지워진다.
[플라톤의 기호로서 중심에서 먼 것이 아페이론이다. 그리고 인도에서 중심은 공이지만 풍요로운 것이다. 그런데 대수학을 수용하는 데카르트의 0은 흔적이며 경계이라. = 0은 마치 점과 같은 것이 되었다. 점과 다음 점 사이가 1이다. 즉 선이 1이 된다. 다음 점에서 그 다음 점으로 이어지는 선은 또다른 단위이다. 이 단위를 들을 이으면 운동이 나온다. ]
I-3
윤) 중국의 신유학
- 무극 => (태극) 양의(兩儀) => 오행
[무극=태극, 그리고 양의 사상 팔괘로 나가는 이진법은 천문(손가락)의 5행과는 별개이다. 하늘 행성의 다섯을 손가락에 대입하는 것은 의미론이지 기호론이 아니다 전자의 5행은 천문에서 영원성을 어기는 경험치이고 손가락의 다섯(5) 이진법을 확장하는 경험에서 나오는 두 손의 손가락을 합하는 10진법이다. 5의 비의가 문제인 것은 10진법의 반인데(10진법의 분할), 60진법의 3, 6, 9, 12의 분할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피타고라스는 톨의 수의 분할과 선분의 분할이 다르다고 하였지만, 페르샤의 천문의 60진법과 어떻게 조화되어야 하는 지를 나중의 일이다. - 중국은 이진법과 십진법에다가 천문 12진법(12달)을 조합하기 위해 10간 12지로 60진법을 쓰면서 인간사에 설명을 틀로 삼았다. 그런데 2진법의 완성체는 64괘인데 4승체를 설명할 수 없어서 3승체를 둘로 겹쳐서 64괘가 이루어진다. 인간은 3의 생성은 0와1(두 단위) 다음으로 3[3승체]을 성립시키지만 4승체의 단위를 기호로 표시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사고의 한계[경계]로 보인다. - 인도(초기 불교)는 사고의 한계를 넘어서 사유를 확장시키면서 수의 단위 설정이 4승체를 염두에 둔 듯이 보인다. 예로서 1052항하사(恒河沙), 1056아승기(阿僧祇), 1060나유타(那由他), 1068무량대수(無量大數), 1064불가사의(不可思議) 수 단위 개념들을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이 사유가 상상을 넘어서는 것이다. 들뢰즈의 흄의 이야기를 보면 상상을 넘어서 공상, 망상, 착란으로 이른다고 하더라도, 삶에서 교정하고 수정하면서 살아갈 때, 상상이 경험의 영역을 기준으로 한다고 한다. 삶이 기준이다.]
§1. 이현구
주염계의 태극도설은 도가 + 불가 사유에다가 주역의 중용을 보탠 것으로 보인다.
주역: 무극이 없었다. 무는 도가에 글에서 온 것이다.
주역은 태극, 음양, 사상 8괘 .. [사고의 한계 때문인지 16에 대한 논의가 없다.]
노자: 무위(無爲)는 무용을 표현하는 것인데, 천자의 책이다.
- 다른 천자의 책은 맹자이다. 대도와 왕도(성군)를 구분한다.
- 이 두 책은 분명한 대상이 있는 책이다.
윤) 태극 도설 ---> 무극 태극 양의(음양)
양(陽) 동(動), 음(陰) 정(靜) [벩송식으로 동태적 대 정태적이다]
- 플라톤은 동과 정 두 개의 원리를 두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 벩송은 동.
공간(정지) 측면도 한 측면이다.
운동중심의 철학이 있을 수 있다. 일관성이 있다.
[벩송의 경우는 운동이 있고 운동을 자르는 측면에 따라 공간이 다르다. 사유공간은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상징적 공간일 뿐이다. 물리학은 물체라는 잘라진 측면의 공간이다.]
- 원자론:
파르메니데스 존재를 잘게 짜른 것이 원자이다. 그리고 원자는 공간과 더불어 있다. 따라서 둘(원자와 빈 것)다 존재이다.
- [갈릴레이 물리학 두 존재의 상대성을 인정한다.
운동(움직이는 것)도 부동(움직이지 않는 것)도 상대적으로 둘 다 성립한다.
그래야 운동의 부정을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운동의 부정으로서 미분치에 대해, 연속성(운동)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
- 현대 물리학
음과 양 => 전자와 핵(핵자), 핵에는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중성자가 있다.
그리고 에너지는 세 가지로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으로 나타난다.
닐스 보어(Niels Bohr, 1885-1962)의 양자화이론으로 우주론을 사유했다.
- 선(禪)불교
[여기서 불교를 끌어들인 것은 우주의 가(경계), 사물의 가(경계)에 대한 사유 문제 일 것이다. 한 번 더 나아가, 우리 사유의 대상의 가(끝, 경계)가 무엇일까? ]
5조 홍인의 제자 두 계열: 신수와 혜능
신수의 오도송에 대한 혜능의 반론 : 무(無)가 두 번 들어간다.
무(無)는 단순히 없다가 아니고 가를 정할 없다는 것이리라.
무(無)란 숲의 나무들이 가득한 것이다. 어원상 윤곽이나 가가 없다.
[아페이론과 같은 의미로 들린다. 그리고 잘린 측면도 없고 뭉쳐진 부분(단편)도 없다]
II-1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서]
이규성) 태극 -> 음양, 그리고 만물
형이상 리(理) 이를 각각 불교에서 공(空)
형이하 기(氣) 사(事 ou 思)
[이원론적 구별은 있음 없음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물질의 두 측면, 또는 물체의 안과밖에 닮았다. 그런데 두 측면 또는 안팎은 다르다. 전자는 차이이고 후자는 차히일 것이다.]
[니체는 단위를 둘로 구분하는 것이 주지주의 사고이다. 둘다 아닌 것(부정)이 그 자체로서 긍정인 권능의지가 있다. 이 부정의 긍정의 차원은 다양한 창발이다.]
윤) 0와 1 사이에 공(空)이 있다. 둘을 구분하는 기준이 있다.
[논의의 진행을 바꾸어서]
유가 – 통치계급(또는 통치질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 (도교, 불교 보다) 세상사에서 통치이념으로 [잘] 작동하고 있다.
- 통치계급이 질서를 세우고 유지하는 방식으로 예악사상이 있다.
예(禮)와 악(樂)이다. [예는 규범(노모스)이고 악은 결(노마드)일까?]
예는 다름을 가르고 (하나로) 아우르는 것이 악이다.
예는 [현실에서, 현존에서] 판과 같다. 악은 통(統)을 이루는 동(動)이다.
이헌구) 동양철학에서 시를 예로, 악은 통합으로 본다.
제도와 질서를 표현하고 악(樂)으로 통합하는 것이 종합이다.
이규성) 예는 신분 질서를 위계적으로 나누어저 있는 것을 갈등 조정하는 데 쓰인다.
예는 분(分)의 원리를 의미하며, 직분에 맞게 살아라고 한다.
- 갈라져 있는[(分)] 것을 화합시키려는 화(和)원리가 악(樂)이다.
그래서 악은 제사에 쓰였으며, 신과 모시는 자의 합일이다.
[세상사에서 천자와 제후와 인민들이 화합하는 데 악(樂)이 쓰인다]
윤)
o 군신, 부자, 부부, 장유, 붕우 중에서
[삼강(三綱) 중에서 군위신강(君爲臣綱), 오륜(五倫) 중에서 君臣有義(군신유의)]
군신이 어우러져 논. 춤추고 논다 (악樂) [망한다. 일하지 않고...]
로마, 유베날리스(Iuvenalis, 55-140)의 “빵과 서커스(Le Pain et le cirque)”
일반 민중을 지배하는 원리, 먹을 것을 해결하고 서커스로 놀게 한다.
그리고 베는 작업을 한다. (통치술)
현대: 스포츠, 영화, 섹스
빵은 10년 안 썩는 쌀이 나온다. [놀고먹는 시민을 만든다고 생각하나?]
알뛰세: 이념적 국가지배가 이루어지자 이데올로기 공부도 지배방식이다.
-먹고 사는 일보다, 이데올로기 공부를 더 많이 한다. 그래도 먹고 사는 게 용하다]
* 우리나라도 손, 발 안 놀리고 입만 놀려도, 뱉어내도 먹고 사는구나!
o 심통: 가슴, 즉 심장이 머리보다 중요하다.
- 아마도 20년 후에는 간이 사이보그(인조인간, AI)와 싸워야 할 것이다.
- 신인류는 로봇(인공지능은 잠도 안자고,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싸워야 할 것이다
현생인간이 그들의 주인이 될지 노예가 될지. - 나는 그 시대 안 산다.
당신들의 과제일 것이다.
II-2 신인간의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젊은 두 학생(김재문, 양진석).
이병창) 칸트의 구성적(순비)와 반성적(판비)
헤겔 구성적 – 반성적 – 통일적으로 변증법적으로 이행
[니체의 변증법 구성적도 반성적도 페기하고 창발적(발명적)으로
[벩송의 지속, 생명(자연)의 자기에 의한 자기 생성]
[들뢰즈 자연의 자기 발현, 신체의 불연속적 탈영토화]
윤) <메온(me on), 공(空), 무(無)에 대해 [존재하지만 경계가 없이 있는 것이다]
있다- 안있다. (존재와 무), 이다-아니다. [현존에 대한 관심]
[벩송은 이다 안있다. 또는 이다 아니다를 있다-없다로 착각한다고 한다.]
[프로이트의 fort-da(깍꿍) 놀이는 관심(애정관심)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헤겔의 있다 안있다(없다)는 존재와 무의 모순으로 보고
이다 아니다는 관계로 본다.
[C’est... (이뭣꼬에 대해) .. 이다(être 동사). 대상에 대해서이다.
[Il y a ... 있다(가지다는 avoir동사), 현존의 상태(사실, 사건)을 지칭한다]
[존재는 순수 사고(논리)의 내용이고, 현존은 (경험적, 실재적) 사실이다.]
о우리나라 사람
조선사람도 한국인도 아니다. [그러면 이 땅의 이 시점의 현존하는 사람이다]
영국인 기자: 일본을 우습게 본다. “힘센 자를 ‘놈’이라 부른다“ 24가지 ...
땅의 정기 [이 개념을 들으면서 들뢰즈의 ‘풍경의 얼굴’을 생각했다. 토지, 강]
우리나라사람, 유태인, 베트남인 – 3대 특이성
세종의 훈민정음
우리말 글이 특이한 민족 전통이 있다.
о 잘라내는 방식 – 공간들이 나온다. 땅도 마찬가지다.
되풀이 되면서 시간이 나온다. [이 두 가지를 천문 지리라고 한다]
류)차이 반복: 분할과 분리의 방식이 반복된다. 동일율이 나온다. (orthos logos)
차히 반복: 동일성은 드물게 나타날 뿐이고 예외적이다. (유클리트 기하학)
달리나타난다. 이질적 반복을 하다. - 다양체(비유클리트 기하학)
- 능엄경과 금강경 번역에서 주목할 것이 있다.
사(思)의 번역이 사랑이다. (앞으로, 아제)의 영역이 사랑이다. [니체와 같다]
그런데 기억은 유전적이고 [과거 전통으로부터] 생각이라 한다. [반성적 사고]
따라서 사랑: 미래, 생각: 과거이다.
사람들은 생각을 잘하고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존을 기준으로 과거를 잘 반성하고 현재에서 미래의 행위를 잘하는 것이 사랑이다. 이제 어제를 잘 돌아보고, 아제에 행함이다. 인식은 어제에 행위는 아제에 연관있다. 가치의 평가는 아제의 행위이지 과거의 자료들이 아니다. ]
III-1 윤) 지나가는 이야기로 심장 멎음에 대해, 그날 옆사람들이 보니 편안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대로 두었으면 됐을 것인데, 살려서 이제 나도 사이보그가 되었다. - 사랑에 이어서
- 무지란 모롬, 모른다. 이에 대립은 앎(지식) 아롬이다.
- 모음이 양성이다. 그리고 모음 조화가 있다.
- 아롬은 이어지는(어제와 아제) 것이다.
- 그런데 아제(미래)는 모른다. 아롬의 영역이 아니다. 즉 무지의 영역이다.
[벩송: 과거(과정)를 인식하는 만큼이나 미래에 투사 회로를 그린다. 미래의 예상참여부분을 행한다. 그러나 미래 전부를 그리는 것이 아니기에, 요즘 표현으로 전미래를 표현할 뿐이다. 먼미래 또는 죽음 이후는 모른다. 지금까지의 경향으로 생명(영혼)은 먼미래까지 존속할 것이지만, 영원하다 또는 불멸이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말에서 상상을 넘어 공상은 할 수 있으나 영원과 불멸을 이야기하는 것은 망상이고, 죽음 후에 부활을 말하는 것은 착란에 속한다. (52TMC)]
III-2 윤) 지금까지 이야기는 ..
2월: “이 뭣꼬”에서 “이” 다루었다. 그 심층에는 끝, 가, 갓(경계가 필요하다)
[그래서 경계를 점으로 대체해서 다루었다. 존재의 끝인 점이 아닌 부분은 무이다.]
4월 “이 뭣꼬”에서 “뭣”의 ‘것’을 다루었다. 것이라는 겉 같(음)처럼 표면이고 현상이다.
[‘것’에서 ‘ㅁ’을 보태면 ‘뭣’인데, 이는 대상을 다루는 것이다. 대상은 사고의 대상(정지)일 수도 있고, 사유의 흐름(운동)일 수도 있다. 데이터가 있어야 한다.]
[표면의 겉 현상을 대상으로 다루고 있다. 대상의 안은 다른 차원이다,]
6월 “이 뭣꼬”에서 “뭣”의 ‘것’에서 대상이 톨일 수도 있고 결일 수도 있다.
포이융(함, 제작) 과 파스케인(됨, 수동)
[톨의 고정성에 비해 결의 운동성(에너지)은 힘이다.]
8월 힘 (돈다 돌아온다) 결의 반복
톨 (본다, 원자[대상]) 잘라내기에 따라서 형태의 모습을 반복
[10월 톨과 결의 기원(원인, 원질)로서 자연?
[12월 빛(열)의 생산 또는 생성 – 내재성의 발현
* 질문: 생각과 사랑
하나는 어제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이다.
전자에서는 덕후(오타쿠)에 닮았다면 후자는 새로운 창안[다양체]
지식독재 대 이질성(타자성) 인데, 어느 것이 더 위험한가?
답): 이질성이 더 위험하다. 윤): 그래요
[왕관 쓴 아니키스트가 더 위험해 보인다. 사회를 혼란으로 빠트릴 것 같으니까. 그런데 위협과 강제는 전자에서 이고, 후자에서는 생성과 창안의 투쟁 또는 전투이다. 이 후자에서 새로운 삶이 나온다. 후자에서 투쟁과 전투는 인민이 단련되고 성장하는 데 비해 전자에서 전쟁은 피폐와 불신, 비참과 야만이 남는다. (52TMC)]
윤)
* 집착은 톨의 사고에서 머리로 하는 것이다. [불교에서 아집을 버려라]
여기에는 방하책(放下策, 마음을 내려놓음)이 필요하다. 머리에서 내려 놓으면 손, 발, 몸이 움직인다. 결의 확장이다.
- 사람들 사이에 연관(=사랑)과 함께 풀어나가는 것(사랑)이 중요하다. [소수가 먼저가고 다수를 이끈다는 생각은 톨의 사고이다. 다수가 서서히 나아간다는 것은 결의 사유이다.]
[[[마) * 정상(normal)과 비정상(abnormal)
[또 하나가 더 있다. 별종(anomalie)이다]
정상의 소유(수조대)에 대해 평범한 이는 거의 없다(구걸하지 않는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연결고리가 있다. 그들은 마름(양아치)이다.
니체의 표현으로
- 우월한자: 선하다(bon). 우월하지 못한자 악하다가 아니고 서툴다(mauvais)
- 인민: 선하다(bon) 우월ㅎ다는 자는 고약하다(méchant) 여기서 우월한자는 절대자를 믿고 인민을 개돼지 취급하려는 나쁘다고 말하는 양아치들이다.
- 별종은 야금기술자(특수자)를 찾는다. / 인민에서는 보살행이 나온다. 보살행은 포틀래치(Potlach)처럼 내주는 자(celui qui donne)이다. 달리 사는 방식이다. (52TMC)]]]
(9:03, 52TMC)
** ** ** **
1123 《고려도경(高麗圖經)》원명《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은 송나라의 사신 서긍(徐兢, 1091년 ~ 1153년)이 1123년에 고려를 방문하여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한 보고서다
1788 이규경(李圭景, 1788-1863) 18세기 후반 박지원(朴趾源), 박제가(朴齊家) 등의 북학파(北學派)들이 주장한 [[서학] 수용과 대외 개방에 대한 주장을 이어받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강한 국가를 위해 이규경은 도교나 불교, 자연과학 같은 모든 학문과 사상을 흡수하고 응용하고자 했고, 광산 개발이나 화기 개발 같은 실용적인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1952 이규성(李圭成 1952) 전 이화여자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인문과학부 철학전공 교수
1954 이병창(李秉昌 1954) 전 동아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인문학부 철학전공 교수
1957 이현구(李賢九, 1957-) 성균관대, 한철연, <최한기 기학의 성립과 체계에 관한 연구, 1993, 성균관대, 안병주.>
1970 김성희(金省希, 1970-) 이화여대 <공자의 정치사상, 2006, 이화여대, 이규성>
1971 김선희(金宣姬, 1971-)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연구교수, <중세 기독교적 세계관의 유교적 변용에 관한 연구, 2008, 이화여대, 이규성)
1971 이지(李地 1971-)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 초빙교수. <최한기의 기학(氣學): 유가 형이상학의 실용론, 2012, 이화여대, 이규성>
1977 진보성(陳輔成, 1977-) 대진대 석사 <南冥 曺植의 수양과 실천 연구, 2018, 대진대, 권인호.>
(9:24 52TMC)
# Canopus@southerncanopu2·15시간 09 10 03 01:34.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불확정성 원리에 대해 불만을 표하며
"신은 (우주를 가지고)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God does not play dice)."
라고 말하자, 닐스 보어는 이렇게 답했다.
"아인슈타인 씨, 신에게 그만 좀 이래라저래라 하시오(Einstein, stop telling God what to do)."
[닐스 보어는 유머가 넘친다. 고착되고 뻣뻣한 자에게 교정하는 데는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다(벩송). / 아인슈타인은 폴리스적 사고라면, 닐스 보어는 노마드적 사유이다. 세상에는 법칙을 발견하면 신이 만든 것이라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그것이 중동의 전설따라 삼천리에 쓰인 구약에 있을 것이라고 남은 생애를 보냈다는 설이 있다. 자연이 자기 생성한다는 것을 억지로 무시하는 자들의 사고는 제국의 전제군주의 편이 될 수 밖에 없다. 윤석열이나 새한당이나 조둥동은 그런 사고를 하는 자들이다. 다시 태어나야 바뀔까? (52TKC)
(10:03, 52U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