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직은 자가 인지(人之)다. 그는 힘이 세고 우직했으며 김종후에게 글을 배웠다.
김종후의 아우 김종수가 정승으로 일을 맡아 볼 때 김치직을 거두어 군교에 보임했다.
그가 묵묵히 특별한 예를 갖추지 않으니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대답하기를
“저들이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접을 하는데 내가 어찌 남다르게 보답을 하겠습니까?”라고 했다.
상공이 이 말을 듣고 더욱 예의를 갖추어 대접했다. 이때 김치직이 날마다 잘못을 지적하는 말을 하면 김종수는 그대로 따랐다.
김정승이 엄한 견책을 받아 영해(嶺海) 땅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는데, 그때에 김치직의 아내는 중병이 들어 있었다. 김정승이 말하기를
“네가 나를 따라갈 수 있겠느냐.” 하니 김치직이 승낙하고 말하기를
“졸지에 행장을 꾸리자니 하루 뒤에 떠나겠습니다. 하루에 수백리를 달리면 삼일내에 중간에서 만날 수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김정승이 중간에 이르러 김치직이 따라오지 못함을 한탄하니 종자 두 사람이 다 말하기를
“죽을 죄인을 누가 따라오려고 하겠습니까.”라고 했다. 김정승이 말하기를
“김치직은 의리가 있는 자이니 반드시 올 것입니다.”하고 자기의 예비로 끌고 가는 말을 남겨두게 하고는
“치직은 가난한 사람이니 반드시 형편없는 말을 끌고 올 것이다. 우리가 말을 몰아 두 역참도 지나기 전에 필시 이 말을 만날 것이다.”라고 말했다.
두 역참을 달렸을 무렵에 치직은 말이 있는 역참에 과연 도착했다. 치직은
“밤이 이미 깊었으나 잠을 자지 않고 가면 귀양지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하고 밤을 재촉하여 길을 떠나려 했다. 객점 사람들이 힘써 만류하기를
“이곳은 강원도 깊은 산골짜기입니다. 호랑이와 승냥이도 날이 밝아야 사람을 피하는데 당신은 어쩌자고 몸을 아끼지 않소.”라고 했으나 그는 말하기를
“나는 의리상 대감을 저버릴 수 없어 죽더라도 무엇을 꺼리겠소.” 하고 옷을 떨치고 나왔다.
그 객점에 수염이 뻗치고 머리가 덥수룩한 총각 아이가 함께 가자고 나서면서 말하기를
“당신의 모습을 보니 건장하고 나 또한 건장한 사람이니 둘이 가면 맹수라도 물리칠 수 있을 것이요.”라고 했다.
둘이 같이 떠나 새벽에 상공이 머무는 처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김치직이 말에서 내려 총각에게 말하기를
“일이 급하여 자네가 누구인지 알 겨를이 없었다. 이제 이야기해 보세”라고 하니 총각은 비로소 서로 한참 쳐다보다가 말하기를
“나는 한양 숭례문 밖에 사는 아무요. 당신은 김아무 아니요.”라고 했다.
김치직 또한 그 총각이 한양서 씨름할 때 같이 놀던 친구임을 깨달았다. 이에 이렇게 길을 나서게 된 경위를 자세히 이야기하니 총각은 말하기를
“어허! 이야말로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겠소. 나는 대감을 모르니 이제 떠나겠소.”라고 했다. 김치직이 전대의 돈을 기울여 그에게 주니 총각은 다만 100냥만 받고 말하기를
“내가 노자도 보태 주지 못하면서 도리어 길을 떠나는 사람의 돈을 받는군요. 어찌 많이 받겠습니까?” 하고 즉시 그 돈으로 술을 사서 서로 마시고 나머지는 객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돌아갔다.
김치직이 들어가 대감을 뵈니 아침 식사를 마치고 거마를 차리다가 말하기를
“이제야 같이 가게 되었구나”라고 했다.
며칠이 걸려 큰 고개 아래 다다랐다.
눈이 쌓이고 얼음이 꽁꽁 얼었는데 김정승이 어떻게 할 줄을 몰랐다.
김치직이 시골 사람의 지게를 대령하여 김정승이 지게 위에 앉고 김치직은 그것을 짊어지고 두 종자가 그를 부축하였는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수어청(守禦廳) 서리(書吏) 박지번(朴之蕃)이다.
박지번은 김정승의 겸인으로 서리에 보임되었으나 김정승을 위하여 스스로 사임하고 수행하였다.
박지번은 한양에서 성장한 사람이라 본래 험악한 생활을 알지 못하여 험난한 길을 가장 견디지 못했다.
큰 고개를 넘어 평해(平海)① 유배지에 당도했다. 양식이 떨어져 곤란한 형편이었는데 누군가 사립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김치직이 나아가 대답하니 그 사람이
“나는 영해부 이방 아무게요. 나는 전번 원님 임(任)모씨의 이방으로 있었는데, 임사또는 원래 선물을 받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혹 선물을 보내오면 곧 사천(沙川) 김대감에게 보냈는데, 관속들이 돌아와 전하기를 대감님 댁이 꼭 야인의 집과 같다고 하여 제가 마음으로 흠모하였습니다. 그런데 김대감께서 멀지 않은 곳으로 귀양 오셨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한번 뵙기를 원합니다”라고 했다.
김치직이 들어가 김정승에게 아뢰니 김정승이 말하기를
“바야흐로 극형(極刑)에 처한 몸이니 감히 이방을 만날 수 없다”라고 했다. 이방이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를
“제가 돈을 가지고 왔으니 정성을 표시하고자 합니다.” 하니 김치직이 말하기를
“만나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데 돈을 받으시겠소” 하니 이 방이 낙심하여 돌아갔다.
때마침 김정승 집안의 하인이 와서 끼니를 거르지 않게 되었다.
하루는 관아의 아전이 급히 전하기를
“금오영의 말이 달려와서 온 고을에 후명(後命)②이 내려왔다는 말이 들끓습니다”고 했다.
김치직이 박지번과 함께 들어가 김정승에게 후사를 조치할 것을 청하였다.
금오영의 말이 고을에 들어온지 반나절이 지났는데도 적소의 집에 도착하지 않았다.
김치직이 김정승에게 후사를 조치할 것을 청하였다.
김치직이 김정승에게 아뢰기를
“이는 후명을 내린 것이 아니라 귀양지를 옮기라는 것 같습니다. 만약에 후명을 가지고 온 사람이라면, 금오영 아전들은 모두 대감을 일찍이 섬기던 사람이니 필시 미리 나와서 영접을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오래도록 오지 않으니, 아마도 말을 달려온 나머지 지쳐서 쉬는 것일 겁니다”라고 했다. 김정승이 웃으며 말하기를
“그럴까? 그럴 리가 있겠나”라고 하였다.
날이 저물자 금오영 사람이 왔는데 과연 귀양지를 거제도로 옮기라는 명이 내린 것이었다 김정승이 듣고 즉시 밤에 발행하니, 금오영에서 온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들이 본디 대감에게 과단성이 있는 줄 알기 때문에 잠깐 쉬느냐고 적소에 바로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가 머뭇거릴 수 있었겠습니까”라고 했다.
거제도로 가는 사이의 관문 길은 얼음과 눈이 덮인 큰 고갯길보다 험하였다.
김치직과 박지번은 말을 타고, 걷고 하여, 김정승을 돌보았으니 매우 괴롭고 힘들었다.
오래지 않아 김정승은 용서를 받고 돌아왔다.
『영세제언록 이규상』
【주】
① 평해(平海) 지금의 경상북도 울릉군에 속해진 고을 이름
② 후명(後命) 귀향가 있는 사람에게 사약을 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