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사론 제12권
38) 십일체입처(十一切入處)
10일체입이란 무엇이 비구의 4대와 4색과 무량공처(無量空處)ㆍ무량식처(無量識處)의 모든 입을 말하는 것이다.
즉 지일체입(地一切入)ㆍ수일체입(水一切入)ㆍ화일체입(火一切入)ㆍ풍일체입(風一切入)ㆍ
청일체입(靑一切入)ㆍ황일체입(黃一切入)ㆍ적일체입(赤一切入)ㆍ백일체입(白一切入)ㆍ
무량공처일체입(無量空處一切入)과 무량식처일체입(無量識處一切入) 등 열 가지 일체입이 그것이다.
아래위와 모든 방향을 깊이 생각하면 두 가지로 다른 것이 없으면서 그 가장자리도 없고 한량도 없는 것이다.
[문] 10일체입에 어떤 성품이 있는가?
[답] 처음 여덟 가지 일체입은 탐욕이 없는 선근의 성품이 있고 무량공처와 무량식처의 일체입은 4음[愛ㆍ想ㆍ行ㆍ識]의 성품을 지니고 있다.
그 경계를 말한다면, 처음 여덟 가지의 일체입은 색계에 속하고, 무량공처와 무량식처의 일체입은 무색계에 속한다.
그 경지를 말한다면, 처음 여덟 가지의 일체입은 근본4선의 제4선의 경지에 속한다. 왜냐 하면 정해탈(淨解脫)에서 여덟 가지 일체입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무량공처의 일체입은 무량공저의 경지에 손하고, 무량식처의 일체입은 무량식처의 경지에 속한다.
그 근거를 말한다면, 모든 일체입은 욕계에 근거하고,
그 행(行)을 말한다면, 여덟 가지의 일체입은 청정행(淸淨行)에 속하고, 무량공처와 무량식처의 일체입에는 행을 건립하지 아니한다.
그 연(緣)을 말한다면, 처음 여덟 가지의 일체입은 욕계와 연하고, 무량공처와 무량식처의 일체입은 무색계와 연한다.
내용이 멈추는[意止] 측면을 말한다면, 처음 여덟 가지의 일체입은 바탕의 생각에 멈추게 되고, 무량공처와 무량식처의 일체입은 세 가지 내응에서 멈추게 된다.
그 지혜[智]를 말한다면, 처음 여덟 가지의 일체입은 비록 본질적으로 지혜는 아니라 하더라도 오직 등지와는 서로 호응한다. 무량공처와 무량식처의 일체입은 등지(等智)이다.
정(定)의 측면에서 말한다면, 일체입은 정이 아니다.
그 받는 감자[愛]의 측면을 말한다면, 모든 것이 호근(護根)과 서로 호응한다.
[문] 일체입은 과거에 속하는 일이라 해야 하는가, 미래에 속하는 일이라 해야 하는가, 현재에 속하는 일이라 해야 하는가?
[답] 과거에 속하는 일이라 해야 하고, 미래에 속하는 일이라 해야 하고, 현재에 속하는 일이라 해야 한다.
[문] 과거와 연하는 것인가, 미래에 연하는 것인가, 현재와 연하는 것인가?
[답] 과거와도 연하고 미래와도 연하고 현재와도 연하는 것이라 해야 한다.
[문] 이름[名]과 연하는 것인가, 이치[義]와 연하는 것인가?
[답] 이름과도 연하고 이치와도 연하는 것이라 해야 한다.
[문] 자기 생각[己意]과 연하는 것인가, 타인의 생각[他意]과 연하는 것인가?
[답] 자기 생각과도 연하고 타인의 생각과포 연하는 것이라 해야 한다.
이것이 11체입의 성품이다. 이미 그 종류와 모습과 바탕이 갖고 있는 본래 성품을 말하였으니 마땅히 그 행도 말해야겠다.
[문] 무슨 이유로 일체입이라 하며 일체입에 어떤 이치가 있는가?
[답] 두루 모든 곳에 연하는 까닭에 일체입이라 부른다. 10일체입 이것은 비구의 지일체입(地一切入)이라 함은 두루 모든 것에 연하는 까닭에 첫 번째로 사유하는 일을 말한다.
첫 번째라 하는 것은, 순서의 수로 보아 문득 첫 번째 순서이며 작용도 문득 첫 번째 작용이며 순서에 따라 일어나는 정수(正受)에 있어서도 곧 첫 번째 정수이기 때문이다.
다음 상하라 한 것에서 상(上)은 윗 방향을 말한 것이고 하(下)는 아래 방향을 말한 것이다.
다음 모든 방향이라 한 것은, 사방(四方)과 사유(四維)를 말한 것이다.
다르지 않다라고 한 것은, 함께 있지도 아니하고 흩어지지도 아니하는 것을 말한 것이며,
무량(無量)이라 한 것은, 한량이 없어 헤아릴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다음 수일체입ㆍ화일체입ㆍ풍일제입ㆍ청일체입ㆍ황일체입ㆍ적일체입ㆍ백일체입ㆍ무량공처와 무량식처의 일체입 등 일체입이란 한량이 없다.
일체입이란 두루 모든 곳에 연하기 때문이다.
열 가지 사유라 하는 것은, 순서의 수에 문득 열 번의 순서가 있고 작용에도 문득 열 가지 작용이 있으며 또한 차례로 일어나는 삼매의 수에도 문득 열 가지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상하라 한 것에서 상은 위 방향이고 하는 아래 방향이며,
모든 방향이라 하는 것은, 사방과 사유를 말한 것이며,
다르지 않다라 한 것은, 함께 있지도 아니하고 흩어지지도 아니하는 것을 말한 것이며,
무량이라 한 것은, 한량없어 헤아릴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문] 무소유처(無所有處)와 비상비불상처(非想非不想處)는 왜 일체입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는가?
[답] 부처님께서 이루신 법의 진리에 대해서 어느 진리도 이를 넘어서지 못한다.
부처님은 제법의 상(相)을 모두 아시고 그 행을 모두 아신다. 그리하여 일체입의 모습이 있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일체입을 내세우나 일체입이 없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일체입을 건립하지 아니하신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무량한 행이 있기 때문에 무량공처와 무량식처에는 일체입을 건립하지만,
무소유처와 비상비불상처에는 무량한 행이 없다.
그런 까닭에 그곳에는 일체입을 건립하지 아니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문] 이 가운데서 말하는 상하와 모든 방향이라 하는 것은, 여덟 가지의 일체입의 경우에는 응당 그렇게 상하와 모든 방향을 말하게 되지만, 무량공처와 무량식처의 일체입의 경우는 바탕이 되는 지(地)가 없는데, 무슨 이유로 상하와 모든 방향을 말하는가?
[답] 그곳에는 비록 상하의 방향이 없지만 정수 때문에 상하의 위치를 얻을 수 있다.
정수를 수행하는 사람은 혹 높은 경지에 이를 수도 있고 혹 낮은 경지에 이를 수도 있고 혹 중간 경지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런 까닭에 상하를 말하게 되는 것이다.
경전의 설명에 따르면 모든 현인(賢人)들이 수행하는 경지에서의 모든 정수라 하는 것은,
‘경지가 곧 나 자신이며 내가 곧 경지다’라고 생각하여,
경지와 나 사이가 하나로 같고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라고 하였다.
[문] 이것은 어찌하여 행하는 경지에서의 모든 정수에 든 사람들이 경지가 나라고 헤아린다고 말하는가?
[답] 정수를 행하는 사람이 일찍이 정수를 행하였기 때문에 본래 경지의 위지와 같이 말하게 되는 것이다.
즉 일찍이 사문(沙門)이 되었기에 사문이라 하고,
아란야처(阿練耶處)에 있었기에 아란야처라 하고,
일찍이 계율을 지켰기에 계율(戒律)이라 하고,
일찍이 법사(法師)로 있었기에 법사라 부르는 것이다.
이와 같이 징수를 행하는 사람도 일찍이 정수를 행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문] 3선의 경시에서는 왜 해탈이나 제입(除入)이나 일체입(一切入)을 내세우지 않는가?
[답] 3선의 즐거움은 모든 생사윤회의 세계 가운데서 가장 묘한 즐거움이다.
행하는 사람이 그 즐거움에 집착하게 되면 이 선한 근기를 찾지 아니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문] 만약 그렇다면 왜 3선의 경지 가운데서도 신통력(神通力)에 인한 변화가 있는가?
[답] 그와 같이 혹 그 가운데서도 선근이 있는 경우도 있고 허는 경우도 있으니 그 경지의 선근을 공허한 것으로 만들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이 신통력에 의한 변화는 오래도록 즐거움을 길러준다. 이는 즐거움을 줄이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해탈과 입을 제거하는 일과 일체입은 즐거움에 있어서는 줄어드는 일이며, 이는 오래 즐거움을 길러내는 일이 아니다.
그런 까닭에 3선의 경지에서는 해탈이나 제입이나 일체입을 내세우지 아니한다”라고 하였다.
[문] 해탈과 입을 제거하는 일과 일체입에 어떤 차별이 있는가?
[답] 해탈이라 하는 것은 행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향해 가지 않게 하는 일이고 입을 제거한다는 것[除入]은 인연을 허무는 일이며,
일체입이라 하는 것은 두루 모든 곳에 인연하는 일이다.
해탈과 입을 제거한다는 것과 일체입의 사이에는 이것이 차별이 되는 것이다.
11체입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