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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도론 제21권
36. 초품 중 팔념(八念)의 뜻을 풀이함①
【經】 염불(念佛)ㆍ염법(念法)ㆍ염승(念僧)ㆍ염계(念戒)ㆍ염사(念捨)ㆍ염천(念天)ㆍ염입출식(念入出息)ㆍ염사(念死)[를 구족해야 하느니라.]
【論】
[8념임 있는 까닭]
【문】 무엇 때문에 아홉 가지 모양[九相] 다음에 여덟 가지 염[八念]이 있는가?
【답】 부처님의 제자는 아란야 처소[阿蘭若處]에서나 빈집[空舍]에서나 무덤 사이[塜間]에서나 산림(山林)에서나 광야(曠野)에서 아홉 가지 모양과 안팎의 부정관(不淨觀)66)을 잘 닦아 그의 몸을 싫어하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어째서 이런 아주 천하고 청정하지 못한 똥오줌 주머니를 메고 다니면서 놀라고 두려워하며 그리고 악마가 갖가지 악한 일을 짓기 위하여 오면 두려워하면서 그를 물리치려 하는 것인가”라고 한다.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차례로 그들을 위하여 이 여덟 가지 염(念)을 말씀하신 것이다.
마치 경67)에서 말씀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되,
“만일 아란야 처소에서나 빈 집에나 무덤 사이에서나 산림에서나 광야에 있으면서 사유(思惟)할 때에 만일 두려움 때문에 털이 곤두서게 되면 그때에는 마땅히 부처님을 염해야 하느니라. 곧
‘부처님은 바로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68)요 아라하(阿羅呵)69)요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70) 내지 바가바(婆伽婆)71)이시다’라고 하나니,
무서움과 두려움이 곧 소멸되리라.
만일 부처님을 염하지 않는다면 신속히 법을 염하여야[念法] 하나니, 곧
‘부처님의 법은 청정하며 교묘하고 특출(巧出)하며 좋은 말씀[善說]이라 금생에 과보를 얻고 지시(指示)하시고 개발(開發)하시므로 지혜 있는 사람은 마음의 힘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법을 염하면 두려움과 무서움이 곧 소멸되리라.
만일 법을 염하지 않는다면 곧 승가를 염하여야[念僧] 하나니, 곧
‘부처님의 제자들은 바른 도를 닦고 법을 따라 행하며, 승가 중에는 아라한향(阿羅漢向)72)과 아라한 내지 수다원향(須陀洹向)73)과 수다원의 4쌍(雙)74) 8배(輩)75)가 있다.
이 부처님의 제자들은 당연히 공양과 합장과 공경과 예배와 영접과 전송을 받아야 하는 세간의 위없는 복전(福田)이다’고 하느니라.
이와 같이 승가를 염하면 무서움과 두려움이 곧 소멸되리라‘고 하셨다.
또한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석제환인(釋提桓因)이 아수라(阿修羅)와 싸우면서 큰 진(陣) 안에 있을 때에 저 여러 하늘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이 아수라와 싸울 때에 만일 두려움이 있으면 마땅히 나의 7보(寶) 당기[幢]를 염하라. 그러면 두려움이 곧 소멸하리라.
만일 나의 당기를 염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사나천자[伊舍那天子:제석 왼편의 천왕]76)의 보배 당기를 염하라. 그러면 두려움이 곧 제거되리라.
만일 이사나의 보배 당기를 염하지 않으려면 마땅히 바루나천자77)[婆樓那天子:제석 오른편의 천자]의 보배 당기를 염해야 한다. 그러면 두려움이 곧 제거되리라’고 하느니라.”
그러므로 두려움의 인연을 제거하기 위하여 차례로 여덟 가지 염을 말씀하신 줄 알 것이다.
【문】 경78)에서 세 가지 염[三念]의 인연으로 두려움을 제거한다고 말씀하셨다면, 다섯 가지 염[五念]은 어떻게 두려움을 제거하는가?
【답】 비구는 스스로 보시(布施)와 지계(持戒)의 공덕을 염하면서 두려움을 역시 제거시킨다.
그 까닭은 만일 계율을 깨뜨렸다면 마음속으로 지옥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고,
만일 간탐을 부리면 아귀(餓鬼)79)와 빈궁 속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해,
그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나에게는 이런 청정한 계율과 보시가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만일 청정한 계율을 염[念戒]하거나 버림을 염[念捨]하게 되면 곧 마음이 기뻐지므로 말하기를,
“만일 나의 목숨이 다하지 않았으면 다시 더욱 공덕에 정진해야 하며 설령 목숨을 마친다 해도 악도(惡道)80)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 않는다”고 할 것이다.
이 때문에 보시를 염하면 역시 두려움이 생기지 않게 된다.
위의 모든 하늘들을 생각해 보면 이는 모두가 보시와 지계의 과보이다.
이 모든 하늘들은 복덕의 인연 때문에 그곳에 태어난 것이다.
우리에게도 역시 이러한 복덕이 있으니, 이 때문에 하늘을 염[念天]하면 역시 두려움이 생기지 않게 된다.
16행(行)으로 안나반나(安那般那)를 염할 때에는 세밀한 생각[細覺]81)조차도 오히려 소멸되거늘 하물며 두려워하는 거친 생각[麁覺]이겠는가.82)
죽음을 염한다[念死] 함은, 5음(陰)으로 된 몸은 생각마다 나고 멸하는 것을 염하는 것이니,
태어나서부터 언제나 죽음과 함께하고 있는데 이제 무엇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할 것인가.
이 다섯 가지의 염은 부처님께서 비록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역시 두려움을 제거하는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다른 공덕을 염해 그로써 두려움을 제거하기란 어렵거니와 스스로 자기의 일을 염해 두려움을 제거하기란 쉽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부처님을 기억하다]
【문】 어떻게 함이 바로 부처님을 염하는[念佛] 것인가?
【답】 수행하는 이가 일심(一心)으로 부처님을 염하면 여실(如實)한 지혜를 얻고 대자대비(大慈大悲)가 성취된다. 그러므로 말에 착오가 없으며 거칠거나 세밀하거나 많거나 적거나 깊거나 얕거나 간에 모두 진실하지 않음이 없고, 모두 진실하기 때문에 다타아가도(多陀阿伽度)라 한다.
또한 마치 과거 미래 현재의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서 중생들에 대하여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일으켜 6바라밀을 행하고 모든 법의 모양[法相]을 얻어 삼먁삼보리에 이르시는[來至] 것처럼,
이 부처님도 역시 그와 같나니, 이를 다타아가도라 한다.
마치 3세(世)와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큰 광명을 놓아 시방을 두루 비추어 모든 어두움을 깨뜨리고,
마음으로 지혜의 광명을 내시어 중생의 무명(無明)의 어두움을 깨뜨리시므로,
공덕과 명문(名聞) 또한 시방에 두루 차면서 열반에 이르시는[去至] 것처럼,
이 부처님도 역시 그처럼 가시나니,
이 때문에 또한 다타아가도라 한다.
이와 같은 공덕이 있기 때문에 당연히 모든 하늘과 세간 사람들에게 최상의 공양을 받아야 하나니,
이 때문에 아라하(阿羅呵)라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왜냐하면 부처님만이 여실하게 말씀하시며, 여래(如來)이고 여거(如去)이기 때문에 마땅히 최상의 공양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부처님은 바르고 두루한 지혜를 얻기 때문이니,
바르다[正] 함은 모든 법이 움직이지도 않고 파괴되지도 않는 모양을 말하고,
두루 하다[遍] 함은 하나의 법이나 두 가지 법만이 아닌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온갖 법을 모두 알면서 그 밖의 것도 다하지 않음이 없기 때문이니,
이를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라 한다.
이 바르고 두루한 지혜는 인(因)이 없이 얻는 것도 아니요 또한 연(緣)이 없이 얻는 것도 아니다.
이 안에서는 지혜와 지계(持戒)가 구족된 것을 의지하기 때문에 바르고 두루한 지혜를 얻는 것이다.
지혜라 함은 보살이 처음 뜻을 내서부터 금강삼매(金剛三昧)에 이르는 동안에 상응하는 지혜를 말한다.
지계라 함은 보살이 처음 뜻을 내서부터 금강삼매에 이르기까지의 신업(身業)과 구업(口業)이 청정하고 뜻대로 행하는 것을 말하다.
이 때문에 비사차라나삼반나야(婢闍遮羅那三般那若)83)라 한다.
이 두 가지 행을 행하시어 잘 감[善去]을 얻음은 마치 수레에 두 개의 바퀴가 있어서 잘 가는 것과 같으며,
마치 먼저 부처님께서 가신 것과 같이 부처님도 역시 이와 같이 가시기 때문에,
수가타(修伽陀)84)라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부처님 스스로 그 법을 닦으면서 나[我] 등의 일을 모르신다”고 했다.
이 때문에 세간을 아시고 세간의 인(因)을 아시며, 세간의 다함[盡]을 아시고 세간의 다한 도[盡道]를 아신다.
그러므로 로가비(路伽憊)라 한다.
세간을 아신 뒤에는 중생을 다스려 조복시켜 여러 스승 가운데서 가장 높아 위가 없다. 이 때문에 아뇩다라부루사담먁바라제(阿耨多羅富樓沙曇藐婆羅提)85)라 한다.
세 가지의 도(道)로써 능히 3독(毒)을 멸하여 중생들로 하여금 3승(乘)의 도를 행하게 하나니,
이 때문에 세다제바마누사남(貰多提婆魔㝹舍喃)86)라 한다.
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무슨 일 때문에 자신을 이익되게 함이 한량이 없고, 다시 능히 남을 이익되게 함이 한량이 없는가. 곧 부처님은 온갖 지혜[一切智慧]를 성취하셨기 때문이다”고 했다.
과거ㆍ미래ㆍ현재의 다하고 다하지 않으며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는 온갖 세간을 똑똑히 모두 아신다.
이 때문에 불타(佛陀)87)라 한다.
이 아홉 가지의 명호를 얻어서 큰 명칭이 시방에 두루 하나니,
이 때문에 바가바(婆加派)88)라 한다.
부처님은 경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되,
“이와 같은 명호로써 부처님을 염하여야 한다”고 하셨다.
또 갖가지의 공덕은 모두 부처님에게 있다.
부처님은 바로 겁초(劫初)의 전륜성왕 마하삼마타(摩訶三摩陀)89) 등의 종성(種姓)이요 염부제 안에서 지혜와 위덕이 있는 모든 석자(釋子)90) 가운데 귀한 성바지인 교담씨(憍曇氏)91)로서 태어나셨다.
그때에 광명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비추었고 범천왕(梵天王)92)이 보배 일산으로 받쳤으며,
석제환인(釋提桓因)은 하늘의 보배 옷으로 받들었고,
아나바답다(阿那婆蹋多)용왕93)과 바가다(婆伽多)94)용왕은 묘한 향탕(香湯)으로 목욕을 시켰다.
태어나실 때에 땅은 여섯 가지로 진동했고 일곱 걸음을 걸어가셨으니,
찬찬하고 자세함은 마치 코끼리 왕과 같으면서 사방을 살펴보며 사자처럼 외치시기를,
“나는 바로 맨 마지막의 몸이며 온갖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하셨다.
아사타(阿私陀)95) 선인(仙人)은 그의 상(相)을 보고 정반왕(淨飯王)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이 사람의 발아래는 천 개의 바퀴살 몸매[千輻輪相]와 손가락에는 무늬 없는 그물[縵網]이 있으므로 장차 스스로의 법 가운데서 평안히 설 것이며 움직이거나 무너뜨릴 수 있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손안의 덕자(德字)96)는 무늬 없는 그물로 장엄하였으므로 이 손으로는 중생을 편히 위로하면서 두려움이 없게 해 줄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나아가 살 뼈로 된 상투[肉骨髻相]는 마치 청주산(靑珠山)의 꼭대기와 같고,
청색의 광명은 네 면으로부터 나와서 머릿속의 정수리 모양을 쳐다볼 수 있는 이가 없으며,
하늘이나 사람으로서는 그보다 나을 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흰 터럭[白毫]은 눈썹 사이에 있어서 그 흰 광명은 파리(頗梨)보다 뛰어나고,
깨끗한 눈은 길고 넓어서 그 빛은 감청색(紺靑色)이며,
코는 높고 우뚝하며 심히 사랑할 만합니다.
입 속의 마흔 개의 치아는 희고 깨끗하고 날카롭고 좋으며, 네 개의 어금니는 몹시 희고 그 광명은 가장 훌륭합니다.
입술은 위와 아래가 똑같아서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혀는 얇고 대단히 부드러워 연한 붉은빛이 마치 하늘 연꽃과 같으며,
맑은 소리[梵聲]는 깊고 멀어서 듣는 이마다 좋아해 싫증내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몸의 빛깔은 아름답고 묘하여서는 염부단금(閻浮檀金)97)보다 훌륭하며,
큰 광명이 몸을 둘러싸고 있으면서 갖가지 빛의 묘하고 아름다움은 견줄 데 없습니다.
이와 같이 32상(相)98)을 두루 갖추었으니 이런 사람은 오래지 않아 출가하면 일체지(一切智)를 얻어서 부처님이 되실 것입니다.”
부처님 몸의 공덕이 이와 같으니 마땅히 부처님을 염해야 하는 것이다.
또 부처님 몸의 공덕과 몸의 힘은 10만의 흰 향상 보배[香象寶]보다 더 뛰어나시니, 이것은 부모에게서 받은 체력(體力)이다. 만일 신통의 공덕에서 나는 힘이라면 한량없고 한이 없다.
부처님 몸은 32상과 80수형호(隨形好)99)로써 장엄하여 안으로 한량없는 불법의 공덕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아 부처님 몸을 뵙는 이는 세간의 5욕을 잊고 만사를 생각하지 않는다.
또 부처님 몸을 뵙게 되면 한 곳만을 좋아하여 싫증냄이 없으므로 다른 곳을 볼 수조차 없다.
부처님 몸의 공덕이 이와 같으므로 마땅히 부처님을 염해야 하는 것이다.
또 부처님은 지계를 구족하시고 청정하시다.
처음 발심해서부터 계율을 닦아 쌓음이 한량없고 가엾이 여기는 마음과 함께하면서도 그 과보를 구하지도 않고, 성문이나 벽지불(辟支佛)의 도에 향하지도 않으며, 모든 결사(結使)에 섞이지도 않으신다.
다만 자기 마음만을 청정하게 하면서 중생들을 괴롭히지 않기 위하여 세상마다 계율을 지니신다.
이 때문에 불도를 얻으실 때에 계율을 구족하시게 되었으니 이와 같이 부처님의 계율을 염하여야 한다.
또 부처님은 선정[定]을 구족하신다.
【문】 지니는 계율은 몸과 입의 업이 청정하기 때문에 알 수 있고,
지혜는 분별하고 설법하여 중생들의 의심을 없애주기 때문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선정이란 다른 사람이 선정을 수행하는 것조차도 오히려 알 수 없거늘 하물며 부처님에 대하여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답】 큰 지혜를 구족하셨기 때문에 선정도 반드시 갖추셨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비유하건대 마치 연꽃이 큰 것을 보면 틀림없이 그 못도 깊고 크리라는 것을 아는 것과 같으며,
또한 등불의 광명이 크면 틀림없이 소유(蘇油)100) 또한 많으리라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
또한 부처님의 신통 변화의 힘은 한량없고 견줄 데가 없기 때문에 선정의 힘도 역시 구족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고,
또한 과보가 크기 때문에 원인 또한 틀림없이 크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
또 어느 때에 부처님은 스스로 사람들을 위하여 말씀하시되,
“나의 선정의 모양은 심히 깊느니라”고 하셨다.
마치 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 아두마국(阿頭摩國)101)의 나무 숲 아래 앉아 선정에 드셨는데 이때 큰 비가 쏟아지면서 우레와 함께 벼락이 쳤으므로 네 마리의 수소와 두 사람의 농부가 이 소리에 놀라 죽었다.
그리고 잠시 후 날이 훤히 개었으므로 부처님은 일어나서 경행하고 계셨는데, 마침 한 거사(居士)가 부처님의 발에 예배한 뒤에 부처님의 뒤를 따르면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아까 뇌성과 벼락을 칠 때에 네 마리 수소와 농부 두 사람이 그 소리에 놀라 죽었나이다. 세존께서는 들으셨나이까?”
부처님께서는 “듣지 못했느니라”고 말씀하시자,
거사는 다시 여쭈었다.
“부처님은 그때에 주무셨나이까?”
부처님께서 “자지 않았느니라”고 말씀하시자,
거사는 다시 여쭈었다.
“무심상정(無心想定)102)에 들어 계셨나이까?”
이에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니니라. 나는 심상(心想)이 있으면서 다만 선정에 들었을 뿐이니라”고 하시자,
거사는 말씀드렸다.
“전에 없던 일입니다. 모든 부처님의 선정은 심히 깊고 큽니다. 심상이 있으면서도 선정에 드셨기 때문에 이러한 큰 소리를 깨어 있으면서도 듣지 않으셨습니다.”
마치 다른 경전에서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부처님이 들고 나는 모든 선정은 사리불이나 목건련조차도 오히려 그 이름을 듣지 못했거늘 하물며 누가 그것을 알겠느냐.
마치 삼매왕삼매(三昧王三昧)103)와 사자유희삼매(獅子遊戱三昧)104) 등과 같아서 부처님이 그 안에 들면 능히 시방세계를 여섯 가지로 진동하게 하고 큰 광명을 놓으며 변화로 한량없는 모든 부처님이 시방에 가득 차게 하느니라”고 하신 것과 같다.
아난이 어느 때 마음에 생각하기를,
“과거 연등불(然燈佛) 때에는 그 세상이 좋고 사람의 수명이 길어서 교화하기가 쉬웠다.
지금의 석가모니부처님 때는 세상이 악하고 사람의 수명이 짧아서 교화하기가 어려우므로 부처님은 일을 다 마치기도 전에 열반에 드실 것인가”라고 했다.
다음날 맑은 새벽에 이 일에 대하여 부처님께 아뢰려고 하였는데 벌써 해가 돋은지라 부처님은 그때 일출삼매(日出三昧)105)에 들어계셨다.
마치 해가 돋아 광명이 염부제를 비추는 것처럼 부처님의 몸도 그와 같아서 털구멍에서 광명을 두루 내어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를 비추셨다.
그 낱낱 광명 속에서는 7보로 된 천 개의 잎사귀가 있는 연꽃을 내시고 그 낱낱 꽃 위에는 모두 부처님이 앉아 계셨다.
다시 그 낱낱 모든 부처님께서는 모두 한량없는 광명을 놓으시고, 하나하나의 광명에서는 모두 7보로 된 천 개의 잎사귀가 달린 연꽃을 내시고, 하나하나의 연꽃 위에는 모두 부처님이 앉아 계셨다.
이 모든 부처님들은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 두루 차서 중생을 교화하고 계셨는데 혹 설법을 하시기도 하고 혹 잠자코 계시기도 하며 혹 경행을 하시기도 하고 혹 신통 변화로 몸에서 물과 불을 내기도 하셨다.
이와 같은 갖가지 방편으로 시방의 5도(道) 중생들을 제도하셨다.
아난은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들어서 이 일들을 모두 보았는데 부처님은 신족(神足)106)을 거두시고 삼매에서 일어나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일을 보았으며, 이 일을 들었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부처님의 위신력을 받자와 이미 보았고 이미 들었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에게는 이와 같은 힘이 있는데 능히 불사(佛事)를 마칠 수 없겠느냐?”
아난은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설령 중생들이 시방의 항하의 모래수같이 많은 세계에 가득히 차 있고 부처님께서 하루 동안만 살아계시면서 이러한 힘을 쓰신다 해도 반드시 부처님 일을 마칠 수 있으리이다”고 하고는,
다시 감탄하면서
“전에 없던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모든 부처님 법은 한량없고 불가사의하나이다”고 했다.
이 때문에 부처님의 선정은 구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부처님의 지혜[慧]는 구족되어 있다.
처음 발심해서부터 아승기겁(阿僧祗劫) 동안 법마다 행하지 않음이 없고 세상마다 모든 공덕을 쌓았으며 일심으로 오로지 힘쓰며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지혜를 구하신 것이 마치 살타파륜(薩陀波崙)107)보살과 같다.
또 대비(大悲)와 지혜를 잘 닦았기 때문에 지혜를 구족하셨다.
그 밖의 사람은 이런 대비가 없고, 비록 지혜가 있다 하더라도 대비를 두루 갖출 수가 없다.
중생을 제도하시려고 갖가지 지혜를 구하셨기 때문에 나아가 법애(法愛)108)를 끊고 예순두 가지의 삿된 소견[邪見]을 없애버렸으며 두 가지 치우침[二邊]에 떨어지니 않았으니,
곧 5욕의 즐거움을 받는다거나 몸을 괴롭히는 도를 닦는다거나 아주 없다거나[斷] 항상 하다고 헤아리거나 있다거나[有] 없다거나[無] 하는 등 모든 법의 치우침이 그것이다.
또 부처님의 지혜가 위없이 투철히 비춤이 견줄 데 없는 것은 심히 깊은 선정 중에서 생기기 때문이고 모든 거칠고 세밀한 번뇌로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며,
37품(品)ㆍ4선(禪)ㆍ4무량심(無量心)ㆍ4무색정(無色定)ㆍ8배사(背捨)ㆍ9차제정(次第定) 등 모든 공덕을 잘 닦았기 때문이고,
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4무애지(無礙智)ㆍ18불공법(不共法)이 있으면서 걸림없고 불가사의한 해탈을 얻었기 때문에 부처님의 지혜는 구족되어 있다.
또 능히 외도의 대논의사(大論議師)들을 항복 받으셨기 때문이니,
이른바 우루빈라가섭(憂樓頻螺迦葉)109)과 마하가섭(摩訶迦葉)과 사리불(舍利弗)과 목건련(目健蓮)과 살차니건자(薩遮尼健子)110)와 바차수라(婆磋首羅)와 장조(長爪)111)등의 대논의사들이 모두 항복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지혜가 구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부처님은 3장(藏)ㆍ12부경(部經)112)ㆍ8만 4천의 법문에 이런 말씀이 많은 것을 보아도 지혜가 역시 큰 것임을 알 수 있다.
비유하건대 마치 어느 한 거사가 맑은 아침에 큰 비가 왔던 곳을 보고서 뭇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어젯밤에 비를 내린 용은 그 힘이 아주 대단했소이다”라고 하자,
사람들이 물었다.
“당신은 무엇으로 그런 일을 압니까?”
그러자 대답하기를,
“나는 땅이 축축하고 진흙이 많으며 산이 무너지고 나무가 꺾였으며 모든 날짐승ㆍ길짐승이 죽은 것을 보았소. 이 때문에 용의 힘이 큰 줄을 아는 것이오”라고 했다.
부처님도 역시 그와 같아서,
심히 깊은 지혜는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큰 법의 비를 내리어 여러 대논의사들과 제석ㆍ대범천왕을 모두 항복 받으셨으니,
이것으로서도 부처님의 지혜가 많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부처님은 걸림 없는 해탈[無礙解脫]을 얻었기 때문에 온갖 법 가운데에서 지혜에 걸림이 없다.
또 부처님의 이 지혜는 모두가 청정하여 모든 관(觀)에 뛰어났으므로 모든 법의 영원한 모양[常相]ㆍ덧없는 모양[無常相], 끝이 있는 모양[有邊相]113)ㆍ끝이 없는 모양[無邊相]114), 감이 있는 모양[有去相]ㆍ감이 없는 모양[無去相], 존재하는 모양[有相]ㆍ존재하지 않는 모양[無相], 유루의 모양[有漏相]ㆍ무루의 모양[無漏相], 유위의 모양[有爲相]ㆍ무위의 모양[無爲相], 생멸하는 모양[生滅相]ㆍ생멸하지 않는 모양[不生滅相], 공한 모양[空相]ㆍ공하지 않은 모양[不空相]을 관하지 않나니,
항상 청정하여 한량이 없음이 마치 허공과도 같다. 이 때문에 걸림이 없다.
만일 생멸(生滅)을 관한다면 생멸하지 않음을 관하는 것은 얻지 못하고,
생멸하지 않음을 관한다면 생멸을 관하는 것은 얻지 못한다.
만일 생멸하지 않음이 진실이라면 생멸은 진실하지 않고,
생멸이 진실이라면 생멸하지 않음이 진실하지 않으니, 이와 같은 모든 관이 다 그러하다.
걸림 없는 지혜를 얻었기 때문에 부처님의 지혜는 두루 갖추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 부처님은 해탈(解脫)이 구족되어 있음을 염할 것이다.
부처님은 모든 번뇌와 습기(習氣)115)에서 해탈하여 그 근본을 뽑아내었기 때문에 그 해탈은 진실이어서 무너뜨릴 수 없다.
온갖 지혜를 성취했기 때문에 걸림 없는 해탈[無礙解脫]이라 하며,
8해탈을 성취하여 심히 깊고 두루 얻었으므로 두루 갖춘 해탈[具足解脫]이라 한다.
또 시해탈(時解脫)116)과 혜해탈(慧解脫)117)을 여의었기 때문에 공해탈(共解脫)118)을 두루 갖추어 성취했나니,
이러한 해탈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두루 갖춘 해탈이라 한다.
또 악마의 군대를 깨뜨렸기 때문에 해탈을 얻었고,
번뇌를 여의었기 때문에 해탈을 얻었으며,
모든 선정을 막는 법을 여의었기 때문에 해탈을 얻었나니,
모든 선정에 들고 남이 자재하여 장애가 없기 때문이다.
또 보살은 견제도(見諦道)119) 중에서 깊은 16해탈(解脫)을 얻었다.
첫째는 고법지(苦法智)120)와 상응하는 유위(有爲)의 해탈이고,
둘째는 고제(苦諦)로 10결(結)을 끊고 다하여 무위(無爲)의 해탈을 얻은 것이니,
이와 같이 하여 도비지(道比智)121)까지에 이른다.
사유도(思惟道)에서는 18해탈(解脫)을 얻었다.
첫째는 비지(比智)122) 또는 법지(法智)123)와 상응하는 유위의 해탈이고,
둘째는 무색계(無色界)의 3사유결(思惟結)을 끊었기 때문에 무위의 해탈을 얻은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 제18까지 이르고 진지(盡智)와 상응하는 유위의 해탈과 온갖 번뇌[結使]가 다한 무위의 해탈을 얻었다.
이처럼 모든 해탈이 화합함을 일컬어 해탈이 구족되었다 한다.
또 부처님은 해탈지견(解脫知見)124)이 구족되어 있음을 염해야 한다.
해탈지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부처님은 모든 번뇌를 해탈한 가운데서 진지(盡智)로써 스스로 깨달아 아시었다.
이미 괴로움을 아시고, 그 괴로움의 쌓임[集]을 끊으시고, 그 괴로움의 다함[盡]을 증득하시고, 도(道)를 닦아 마치는 이것이 진지의 해탈지견이다.
괴로움을 안 뒤에는 다시는 알지 않고 나아가 도를 닦은 뒤에는 다시는 닦지 않는 것이 곧 무생지(無生智)의 해탈지견125)이다.
둘째, 부처님은,
“이 사람은 공의 문[空門]에 들어가서 해탈을 얻겠다,
이 사람은 모양 없는 문[無相門]126)에서 해탈을 얻겠다,
이 사람은 지음이 없는 문[無作門]127)에서 해탈을 얻겠다,
이 사람은 방편 없이도 해탈할 수 있겠다,
이 사람은 오래오래 있어야 해탈할 수 있겠다,
이 사람은 오래지 않아 해탈할 수 있겠다,
이 사람은 즉시 해탈할 수 있겠다,
이 사람은 부드러운 말로 하면 해탈을 얻겠다,
이 사람은 간절히 가르치면 해탈을 얻겠다,
이 사람은 여러 가지 말로 하면 해탈을 얻겠다.
이 사람은 신통력을 보면 해탈을 얻겠다,
이 사람은 설법을 하면 해탈을 얻겠다,
이 사람은 음욕이 많으므로 음욕을 더욱더 내다가 해탈을 얻겠다,
이 사람은 성을 냄이 많으므로 성을 더욱 내다가 해탈을 얻겠다”고 함을 아신다.
이는 마치 난타(難陀)128)와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129)의 용과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갖가지 인연으로 해탈을 얻는 것은 법안(法眼) 중에서 말하는 것과 같다.
이 모든 해탈에 대해 분명하게 알고 보시나니,
이것을 해탈지견이 구족되었다 한다.
또 부처님의 일체지(一切智)ㆍ일체지견(一切智見)130)ㆍ대자대비(大慈大悲)ㆍ10력(力)ㆍ4무소외(無所畏)ㆍ4무애지(無礙智)ㆍ18불공법(不共法) 등을 염해야 한다.
마치 부처님께서 아시는 바와 같은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공덕을 염하는 것을 바로 부처님을 염한다[念佛] 한다.
이 염(念)은 7지(地) 안에 있나니, 혹 유루(有漏)이기도 하고 혹 무루(無漏)이기도 하다.
유루라 함은 과보가 있는 것이요 무루라 함은 과보가 없는 것이다.
세 가지 근(根)과 상응하는 낙근(樂根)과 희근(喜根)과 사근(捨根)은 행으로 얻고[行得] 또한 과보로 얻는다[果報得],
행으로 얻는다 함은 마치 이 세간의 나라 안에서 염불삼매(念佛三昧)131)를 배우는 것과 같은 것이요,
과보로 얻는다 함은 마치 무량수부처님[無量壽佛]132)의 나라에 가 나면 그 사람은 나자마자 저절로 부처님을 염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것들은 아비담(阿毘曇) 가운데에서 자세히 분별한 것과 같다.
66)
범어로는 adhyātmabahirdhāśubhabhāvanā.
67)
범어로는 Dhvajāgrasūtra.
68)
범어 Tahāgata 의 음역어.
69)
범어 Arhat 의 음역어.
70)
범어 Saṁyaksaṁbuddha 의 음역어.
71)
범어 Bhagava 의 음역어.
72)
범어로는 arhatphalapratipannaka.
73)
범어로는 srotāpannaphalapratipannaka.
74)
범어로는 catvāri puruṣayugāni.
75)
범어로는 aṣṭau puruṣapudgalāḥ.
76)
범어로는 īśāna.
77)
범어로는 Varuṇa.
78)
Dhvajāgra-sūtra를 가리킨다.
79)
범어로는 preta.
80)
범어로는 durgati. 지옥ㆍ아귀ㆍ축생의 길을 말한다.
81)
범어로는 sūkṣmavitarka.
82)
범어로는 audārikavitarka.
83)
범어 Vidyācaraṇasaṁpanna의 음역어. 명행족(明行足)을 말한다.
84)
범어 Sugata의 음역어. 선서(善逝)를 말한다.
85)
범어 Anuttara-puruṣadamyasārathiḥ의 음역어. 조어장부(調御丈夫)ㆍ무상사(無上士)를 말한다.
86)
범어 śāstā-devamanuṣyāṇāṁ의 음역어. 천인사(天人師)를 말한다.
87)
범어 Buddha의 음역어. 각자(覺者)를 말한다.
88)
범어 Bhagava의 음역어. 세존(世尊)을 말한다.
89)
범어 Mahāsaṁmata의 음역어.
90)
석가족(śākya)의 자손이라는 뜻이다.
91)
범어 Gautama의 음역어.
92)
범어로는 Brahmā Devarāja.
93)
범어로는 Anavatapta-nāgarāja.
94)
범어 Sāgara의 음역어.
95)
범어로는 Asita.
96)
덕자(德字, śrīvtsa)란 만(卍)자를 말한다.
97)
범어로는 jambūnada-kanaka. 염부금(閻浮金)이라고도 한다. 염부제에서 나는 금이라는 뜻이다.
98)
범어로는 dvatriṃśa-lakṣaṇa. 32상이란 부처님과 같은 위대한 인간이 지니는 상서로운 서른두 가지 신체적 특징을 말한다.
99)
범어로는 aśītyanuvyañjanāni. 80종호(種好)라고도 한다.
100)
범어로는 taila.
101)
범어로는 Ādumā. 팔리어로는 ātumā.
102)
범어로는 asaṁjñisamāpatti.
103)
범어로는 samādhirājasamādhi. 모든 삼매 가운데 최상의 삼매를 말한다.
104)
범어로는 siṁhavikrīḍitasamādhi. 여덟 가지 삼매[八三昧] 가운데 하나이다. 마치 사자가 사슴을 잡아 유희하는 듯한 삼매라는 뜻이다.
105)
범어로는 sūryodayasamādhi.
106)
범어로는 ṛddhipāda.
107)
범어로는 Sadāprarudita. 팔천송반야에서 등장하는 보살이다.
108)
범어로는 dharmasaṅga. 곧 법에 대한 애착이다.
109)
범어로는 Urubilvākāśyapa.
110)
범어로는 Satyaka Nirgranthīputra.
111)
범어로는 Dīrghanakha.
112)
범어로는 dvādaśāńga-dharmapravacana. 부처님의 가르침을 내용과 형식에 따라 분류한 것으로 12분교(分敎) 혹은 12분성교(分聖敎)라고도 한다. 전승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다.
113)
범어로는 antavat
114)
범어로는 anantavat.
115)
범어로는 vāsanā. 훈습(bhāvanā)으로 남겨진 업의 잠재적 인상(印象). 종자(種子)와 같은 의미이다.
116)
범어로는 samayavimukta.
117)
범어로는 prajñāvimukta.
118)
범어로는 ubhayatobhāgavimukti.
119)
범어로는 satyadarśanamārga.
120)
범어로는 duḥkhe darmajñāna.
121)
범어로는 bhāvanāmārga.
122)
범어로는 anvayajñāna.
123)
범어로는 dharmajñāna.
124)
범어로는 vimuktijñānadarśana.
125)
범어로는 anutpādajñāna-vimuktijñānadarśana.
126)
범어로는 ānimitta-dvāra.
127)
범어로는 apraṇihita-dvāra.
128)
범어로는 Nanda.
129)
범어로는 Urubilva.
130)
범어로는 darvadarśin.
131)
범어로는 buddhānusmṛtisamādhi.
132)
범어로는 Amitāyus-budd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