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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_아비달마구사론_4. 분별업품(業品), 13-15권
아비달마구사론 제13권
1)
외도들은 만유가 생주(生主, Prajāpati)나 자재천(自在天, Maheśvara)과 같은 초월적 신이나 자성(自性, prakṛti)이나 자아(puruṣa)와 같은 근원적 원리에 의해 전개되었다고 하든지, 혹은 원인이 없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유부에서는 만유차별의 참된 원인을 업으로 파악하고, 이하 이에 대해 분별하고 있다. 여기서 욕각(欲覺)이란 생주신이 ‘내가 다(多)가 되리라’ ‘내가 번식하리라’고 의욕하는 것을 말한다. 『우파니샤드』에 따르면 세계는 바로 이러한 근원적 실재의 의욕으로부터 생겨나게 되었다.
2)
9창문은 두 개의 귀와 눈과 콧구멍과 한 개의 입과 두 배설기관.
3)
여기서 내적 소의신은 이숙인이 초래한 이숙과이며, 외적인 자구는 능작인에 의해 초래된 증상과이다.(본론 권제6, p.314 주153 참조)
4)
순정의 업이란 부잡업(不雜業)인 선업을 말한다. 즉 천중들은 오로지 선업만을 짓기 때문에 그것에 의해 초래된 내적 신체와 외적 자구가 모두 미묘한 것이다,
5)
『중아함경』 권제27 「달범행경(達梵行經)」(대정장1, p.600상).
6)
업의 본질[體]은 심소인 사(思, cetan, 즉 의지적 작용)와 그것에 의해 외적으로 표출[動發]된 이른바 ‘사’의 소작(所作)인데, 전자를 사업(思業, cetanā-karma)이라 하고, 후자를 사이업(思已業, cetayitvā-karma)이라고 한다.
7)
‘소의’란 업 즉 활동의 근거가 되는 신체를 말하고, ‘자성’이란 활동 그 자체를 말하며, ‘등기’란 활동의 원인을 말한다.
8)
즉 신업이나 의업의 경우, 몸이나 뜻이 바로 업은 아니다. 그러나 말은 그 자체가 바로 업이기 때문에 자성업이다.
9)
『대비바사론』 권제113(한글대장경122,p.301). 즉 자성에 근거하여 어업을, 소의에 근거하여 신업을, 등기에 근거하여 의업을 설정하였다.
10)
어업과 신업은 다 같이 외부로 나타나기 때문에 표업(vijñapti-karma)이라고 이름한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외부로 표시하여 다른 이로 하여금 알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업의 본질인 ‘사’에는 그러한 작용이 없기 때문에 표업이라 할 수 없으며, 표업의 성질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무표업(avijñapti-karma)이라고 할 수도 없다. 즉 무표업(혹은 무표색)이라고 하는 것은 신업ㆍ어업과 같은 대종소조로서, 행위할 때와는 다른 마음에 있거나 무심의 상태에 있거나 간에 항상 상속하여 선악의 이숙을 낳는 힘을 말한다.(본론 권제1, p.20 참조)
11)
이상 10구 중 앞의 9구는 신표업의 본질[自性]에 대해, 제10구는 어표업의 본질에 대해 밝히고 있다. 먼저 제1구에서 신표업의 본질이 신체적 형태, 즉 형색(形色)임을 밝힌 다음 이하 5구에서 ‘신표업은 일정한 시간에 걸친 행동을 본질로 한다’는 정량부(正量部)의 잠주설(暫住說)을 비판하고, 다음의 3구에서는 경량부의 입장에서 다시 제1구의 유부의 주장을 비판하고 있다. 즉 논주 세친은 경량부의 형색 비실유론에 근거하여 유부의 신표업설을 예의 ‘인정한다[許, iṣyate]’는 말로서 불신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현은 그의 『현종론』 (권제18,한글대장경200,p.482-483)에서 이를 완전히 개작하며, 경량부의 형색비실유론을 다시 비판하고 있다.
12)
이는 유부의 신표업설로, ‘사’의 심소 즉 의지적 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상하굴신 등의 신체적 형태를 신표업이라고 한다.
13)
여기서 어떤 부파는 칭우에 의하면 독자부(犢子部), 보광에 의하면 정량부(正量部)이다. 보광에 따르면 유위법 중 심ㆍ심소나 소리 빛 등은 찰나멸하기 때문에 일련의 행동이라 할 수 없지만, 불상응행이나 신표업, 색신(色身), 산천초목 등의 색법은 유부에서처럼 생성 내지 소멸을 일찰나에 구유(俱有)한 것이 아니라 생성의 초시(初時)와 소멸의 후시(後時) 그리고 그 사이의 주(住)ㆍ이시(異時) 등에 걸쳐 상당시간 지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색신은 일련의 전체적인 하나의 행동을 조작할 수 있는 것이며, 그것 역시 잠주멸(暫住滅)하기 때문에 상속이 가능하다. 즉 유부의 경우 표업의 본질은 소의신의 형색이며, 그것은 행위된 순간 바로 소멸(찰나멸)하지만 무표색을 인기함으로써 행위의 상속이 가능하였다. 그러나 일련의 행위는 찰나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따라서 그 소멸 또한 찰나멸하지 않고 잠주멸한다고 주장하는 정량부에 있어 표업의 본질은 일련의 행위전체[行動]이며, 그것은 결과를 산출할 때까지 소멸하지 않기 때문에 상속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14)
설일체유부에 있어 유위제법은 찰나적 존재[有刹那, kṣaṇika]로서, 찰나든 겁(劫)이든 시간은 오온상에 가립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찰나’는 ‘법(즉 존재)’과 동의어이다.
15)
모든 존재가 찰나적이라고 한다면 업의 전지(轉至) 상속(相續), 즉 결과를 낳기까지의 상속을 해명할 수 없고, 마침내 업의 상속을 부정하는 단멸론에 떨어지고 만다.
16)
원인에 근거하는 결과란 전찰나 법의 소멸이 아니라 그 같은 소멸에 따라 등기(等起)하는 후찰나의 법이다.
17)
만약 정량부가 주장하듯이 찰나에 소멸하지 않고 지속한다면, 전찰나와 후찰나의 법은 동일한 자성의 법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순간 소멸하지 않으면 후찰나에도 역시 소멸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후찰나에 소멸한다면 양자는 동일한 자성의 법이므로 전찰나에도 역시 소멸할 것이기 때문에 동일한 법이 몇번이고 멸하게 된다. 그리고 만약 전후 찰나의 법이 다르기 때문에 후찰나에 소멸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지속(동일법의 상속)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다.
18)
‘땔감 등은 불과 화합하여 소멸하고, 등불이나 요령소리가 바람이나 손과 화합하여 소멸하는 것은 직접 지각되는 사실이기 때문에, 법의 소멸은 반드시 원인에 근거해야 한다’고 할 경우, 이를테면 요령소리(혹은 등불)가 소멸하는 것은 거기에 손을 대었기(바람이 불었기) 때문인가, 스스로 소멸하였기 때문인가. 만약 전자라고 한다면 일체법의 소멸에는 원인이 있어야 하겠지만, 지각이나 소리 따위처럼 원인없이 저절로 소멸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일체법 중에 원인에 의해 소멸되는 법과 원인에 의하지 않고 저절로 소멸하는 법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요령소리는 손을 대거나 대지 않거나에 관계없이 찰나찰나에 소멸한다. 다만 손을 대지 않았을 경우 소멸하는 순간 후법이 속생(續生)하지만, 손을 대었을 경우 후법이 속생하지 않을 뿐으로, 소멸 자체는 객관적인 원인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19)
여기서 어떤 이는 보광에 의하면 승론(勝論) 이사(異師). 『광기』에서는 ‘뒤의 물이 핍박하기 때문에 앞의 물이 흘러가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들고 있다.
20)
논주 세친의 비판. 즉 어떤 법이 다른 어떤 법을 소멸하는 원인이 되기 위해서는 양자는 동시에 병존해야 한다. 그러나 전찰나의 법이 현재할 때는 후찰나의 법은 미래에 있어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따라서 생겨나지 않은 법이 현재의 법을 소멸할 수 없다. 혹은 후찰나의 법이 현재할 때 전찰나의 법은 이미 과거로 소멸하였으므로 이미 소멸한 법을 다시 소멸할 수는 없는 것이다.
21)
여기서 어떤 이는 보광에 의하면 상좌부와 정량부, 칭우에 의하면 세친상좌 즉 고(古)세친.
22)
법(法, dharma)과 비법(非法, adharma)은 승론철학의 24속성[德] 가운데 하나로 공덕과 악덕의 뜻이다. 『광기』에 의하면 이런 두 가지 힘에 의해 능히 제법을 낳기도 하고, 또한 멸하기도 한다. 예컨대 캄캄한 방에 등불이 생겨날 경우,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는 공덕이므로 법이 생겨난 것이지만 필요로 하지 않는 이(이를테면 절도자)에게는 악덕이기 때문에 비법이 생겨난 것이다. 또한 반대로 등불이 소멸하는 경우, 그것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는 악덕이므로 비법이 소멸한 것이며, 필요로 하지 않는 이에게는 공덕이므로 법이 소멸한 것이다. 곧 “법과 비법에 결부되어 윤회하고, 법과 비법을 떠남으로써 해탈한다.” (『바이세시카 수트라』6. 2. 15)
23)
‘지속함이 없다’는 것은 바로 비존재로서, 그것이 특정 사실의 원인이 될 수 없는 것이며, 또한 법과 비법은 서로 상반되는 원리로서 예컨대 동일한 등불이라도 독서가에게는 공덕이지만 도적에게는 악덕이다. 이러한 상반된 사실이 동시 구유(俱有)하여 생멸의 원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올바른 견해가 아니다.
24)
숙변이란 나무가 불에 타면서 그 색깔이 변하는 것을 말한다, 즉 만약 땔감 따위가 소멸함에 있어 불과의 화합이 바로 그 원인이라고 한다면, 땔감은 타면서 색깔의 변화가 생겨나는 과정에서 하숙(下熟,적은 변화로서, 이를테면 황색), 중숙(中熟,이를테면 갈색), 상숙(上熟,이를테면 검은 색)이 생겨난다고 할 경우, 하숙이 멸하면 중숙이 생겨나고, 상숙이 생겨나면 중숙이 멸하기 때문에 중숙의 생인(生因)이 하숙의 멸인(滅因)이 되고, 또한 상숙의 생인이 중숙의 멸인이 된다. 다시 말해 생의 원인[生因]이 멸의 원인[滅因]이 되어 동일한 원인이 생ㆍ멸의 작용을 갖는다고 하는 모순을 낳게 된다.
25)
두 가지 이유에서 불이 땔감의 소멸에 원인이 될 수 없음을 논의한다. 첫째 하숙을 낳는 원인이 바로 하숙을 멸하고 내지 상숙을 낳는 원인이 상숙을 멸한다고 하는 경우, 생인이 바로 멸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둘째 혹은 생인과 멸인은 다르지만 양자의 불은 상잡(相雜)하여 유사하기 때문에 하숙을 낳는 원인이 하숙을 멸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하는 경우, 그 상(相)이 유사한데 어째서 하나는 소멸의 원인이고, 하나는 생기의 원인이 되는 것인가?
26)
불꽃이 찰나찰나 여러 형태로 타오르는 중에 능히 타오르고 능히 소멸하는 불꽃의 차이는 쉽게 알 수 있을지라도 정량부에 의하는 한 재[灰] 등은 찰나멸이 아니며 생기 은복의 차별상이 없으며, 땔감 등이 이들과 화합하여 숙변하는 경우에도 전후 차별이 없기 때문에 오로지 하ㆍ중의 멸인과 중ㆍ상의 생인이 다르다고 헤아리기 어렵다는 뜻.
27)
불이 땔감의 멸인(滅因)이 아니라면 물을 끓일 때 점차 닳아 없어지는 것은 무슨 까닭에서인가 하는 정량부의 반문.
28)
여기서 화계는 물을 구성하는 지ㆍ수ㆍ화ㆍ풍 4계 중의 화계를 말한다. 즉 솥의 물은 불과 화합함으로써 물 속의 화대(火大)가 증가하고 이에 따라 수취(즉 현상의 물)는 점차 줄어 더 이상 속생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물이 없어지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솥 밑의 불이 아니라 물 자체 내의 화계의 힘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물 자체의 힘의 변동에 의해 없어지게 된 것이다.
29)
앞에서 설한 것처럼 유부에 의하는 한 사업(思業)에 의해 등기된 신표업의 본질은 신체적 형태[身形]이다. 이를테면 표업은 예비적 행위[加行, 즉 사업], 본격적 행위[根本業道], 그리고 그에 따른 부수적 행위[後起] 등으로 구성되어 일정한 시간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에 그 전체를 하나의 행위로 볼 수 없고, 오로지 근본업도가 성취되는 순간(살인의 경우 상대방의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 하나의 행위가 완성되며, 이 때 행위자의 신체적 형태가 바로 신표업의 본질인 것이다.(본론 권제16, p.736 이하에서 상론)
30)
유부에서는 안처소섭색(眼處所攝色) 즉 색처의 본질로서 장ㆍ단ㆍ방ㆍ원 등의 형색(形色)과 청ㆍ황ㆍ적ㆍ백 등의 현색(顯色)을 상정하고 그 실재성을 주장하였지만(본론 권제1, p.15), 경량부에 있어 형색이란 실재하지 않으며 다만 제 현색의 집합 차별에 의해 가설된 개념(prajñapti)일 뿐이다. 따라서 신표업의 본질은 신체적 형태가 아니라 ‘사(思)’ 즉 의지이며, 표업이란 다만 의지가 신체를 매개로 하여 밖으로 표출된 형태 즉 동발승사(動發勝思)에 지나지 않는다. 이하 경량부의 형색 비실재론과 표ㆍ무표업론에 대해 논설한다.
31)
즉 신근이 촉경을 취할 때 그러한 촉경에 의해 의식이 장ㆍ단 등의 상을 취하며, 또한 안근이 현색을 취할 때에도 의식은 장단 등의 상을 취하기 때문에, 장단 등의 형색은 촉과 현색에 의해 일시 설정된 개념에 불과하다는 뜻.
32)
이는 ‘일색이근소취(一色二根所取)’의 허물에 대한 유부 비바사사(毘婆沙師)의 해명이다. 즉 촉(觸)과 형(形)은 실유로서 하나의 색취 중에 구기하기 때문에 신근이 촉경을 취할 때 일어난 의식이 그곳으로 나아가 장단 등의 형색을 기억하는 것이지 촉경 중에서 신근이 직접 형색을 취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 같은 과실은 없다는 것이다. 나아가 중현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명하고 있다:‘장단의 형색은 견고성[堅,地의 자성]이나 습윤성[濕,水의 자성] 등이 신근에 의해 알려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는 알려지지 않는다. 즉 어둠 속에서도 견고성이나 습윤성 등은 알려지지만, 장단은 그렇지 않기 때문으로, 요컨대 먼저 견고함 등의 상을 분별하고 난 다음에 길이 등 비량에 의한 지식[比智]이 비로소 생겨나기 때문에 길이 등의 형색은 신근의 경계가 아니다. 이를테면 다수의 촉이 생겨나는 어떤 일 면을 신근으로써 그 같은 촉을 분별하고 나서 비로소 능히 유추하고 헤아리는 것[比度]이니, 곧 촉과 함께 작용하는 안식에 의해 견인된 의식이 이와 같은 여러 형상으로 차별되는 형색을 향수하여 알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불의 색을 보거나 꽃의 향기를 맡으면서 능히 이와 함께 작용하는 불의 감촉과 꽃의 색을 기억하는 것과 같다.’(『현종론』 권제18, 앞의 책,p.491)
33)
촉경과 형색이 구생하지 않을지라도 촉경을 취하면 형색을 기억해 낼 수 있다고 한다면, 현색도 역시 그러해야 할 것이며, 혹은 현색과 촉경은 구생하지 않기 때문에 촉경을 취할 때 청 황 등의 색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면, 형색도 역시 촉경과 구생하지 않기 때문에 촉경을 취하더라도 장단 등의 길이를 알지 못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경량부의 재난(再難).
34)
하늘거리는 비단을 좌측에서 보면 말의 형색처럼, 우측에서 보면 소의 형색처럼, 정면에서 보면 사람의 형색처럼 보일 경우, 만약 형색이 실재한다면 한 곳에 다수의 실체가 존재해야 하지만, 그러나 만약 형색이 실체라면 그와 같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보이지 않아야 한다.
35)
현색은 유대이기 때문에 다수의 현색극미가 한 곳에 모일 수가 없다.
36)
이는 극미설에 근거한 형색실유설의 비판이다. 유대색은 극미소성(極微所成)이지만 극미에 장단이 있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예컨대 지팡이는 긴[長] 형색을 지녔을지라도 절단하면 짧은[短] 형색이 되기 때문에, 각각의 형색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푸른색의 지팡이를 짤라도 누런 색이 되지 않는다. 곧 장 단 등의 형색은 그 자체 극미의 자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현색극미가 배열되어 다른 것과 차별될 때, 그것을 일시 장단 등으로 언표한 데 지나지 않는다. 즉 현색이 적집체는 어떠한 부분도 그 같은 현색의 상을 갖기 때문에 청색 등의 자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세간의 상식[極成]이지만, 형색의 적집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37)
즉 장단 등의 형색극미가 모여 ‘긴 것[長色]' 등이 된다고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는 것으로, 이는 실체와 속성, 형색과 현색의 개별적 실재성을 주장하는 승론(勝論)에 동조하는 것일 뿐이라는 뜻. 승론의 경우 ‘긴 것[長體]’이라 함은 24속성 중의 하나인 양(量)의 일종이다. 즉 ‘긴 것이란 다수의 존재가 적집 차별되어 생겨난 것 중 세 개의 극미로 이루어진 미세한 것과 화합한 것으로서, 어떤 하나의 실체에 대해 길다는 관념을 불러일으키는 근거가 되는 것을 긴 것이라 이름한다.’ 『승론십구의론(勝論十句義論)』 (한글대장경250,p.589)
38)
다 같이 흰색의 항아리라 할지라도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는 것은 지금 바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현색과는 별도로 형색이 존재한다는 주장.
39)
개미의 형상은 동일하지만 그것이 늘어선 형태의 차별에 따라 길다 둥글다고 하듯이 현색이 어떻게 배열되었는가에 따라 긴 항아리, 둥근 항아리 등으로 불린다는 뜻.
40)
즉 어두운 곳이나 먼 곳의 사물은 그 현색이 분명하지가 않기 때문에 다만 의식이 ‘길다’는 등의 분별을 일으켜 앞에 뭔가 긴 물체 등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현색을 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보지 못하였을 뿐이라는 뜻.
41)
전체적인 집합체는 현색과 형색이라는 개별적 존재에 근거한 가상(假相)으로, 곧 가상의 형색의 보았다고 하여 그것으로써 현색을 떠나 형색은 실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
42)
경량부에서는 업의 본질을 사(思) 즉 의지로 보기 때문에 신표업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내적인 의지가 신체상에 나타난 것에 지나지 않는다.
43)
본권 주5) 참조.
44)
논주 세친의 또 다른 저술 『대승성업론(大乘成業論)』 (대정장31p.785하)에서는 뭔가 행위하려는 의식작용을 심려사(審慮思, gati-cetanā)라고 하였으며, ‘이와 같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심찰(審察)하는 의식작용을 결정사(決定思, niścayā-cetanā)라고 하였는데, 이 두 가지는 바로 본론에서의 ‘사유사’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것들에 의해 비로소 구체적 외적 행위 즉 표업인 동발승사(動發勝思, vidhavana-cetan)가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작사사’에 해당한다.
45)
유부에서는 표업의 본질을 근본업도가 성취된 순간의 신체적 형태(즉 身形과 言聲)에서 구하며, 그 때 그것은 바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無表色]로 잔재 수전(隨轉)하다가 득(得) 비득(非得) 등의 제 원리에 의해, 혹은 다양한 제연(諸緣)에 의해 마음과 결합함으로써 당래 새로운 결과를 낳는다고 하였다. 그래서 유부에서는 행위의 인과상속의 근거로서 ‘득’과 ‘무표’ 등을 설정하고 그 모두의 실재성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에 반해 경량부에서는 표업의 본질을 ‘사’로 보아 그러한 사의 힘[思種子]이 전이 상속하여 행위가 진행되기 때문에 가행 근본 후기라고 하는 다찰나에 걸친 행위의 연속과 성취에 관한 난점(이러한 난점으로 인해 정량부에서는 소위 ‘행동설’을 주장하게 되었던 것이다)이 해소될 뿐더러 행위와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 역시 무표를 대신하여 ‘사’의 상속으로써 능히 설명될 수 있다. 이것은 이른바 ‘종자상속의 전변과 차별’의 이론으로 이어지는 경량부 특유의 교설로서, 유부 법유론 비판에 따른 필연적 귀결이었다.(권오민, 『유부 아비달마와 경량부철학의 연구』 제2부 제3장 참조)
46)
경량부에 의하면 수심전의 무표는 말하자면 현행의 사(思) 심소 상에 가립된 것으로 입정 시에만 나타나는 것이지만, 현행의 업종자[思種]는 심려ㆍ결정사를 원인(遠因)으로 하고 동발승사를 근인(近因)으로 하여 등기하는 것으로, 무심의 상태에서도 항상 상속하기 때문에 양자는 엄격히 구분된다.
47)
즉 표업의 실유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성질이 맹리(猛利)하지 않기 때문에 ‘사’의 힘에 의하지 않고서는 무표업을 낳을 수 없다. 즉 그래야만 우연히 일어난 표업은 무표업을 낳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48)
즉 별해탈율의를 수지하고 목숨을 다할 때까지 살생 등을 짓지 않는 것은, 서원이라는 어표업에 근거한 무표업 때문이 아니라 그 순간의 의식작용인 사(思)와 그것의 잠재력 즉 사종자(思種子)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유부의 무표색은 과거 대종에 근거하여 설정된 것이지만 과거제법은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모든 무표색은 색법의 특상, 이를테면 공간적 점유성[礙性]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49)
『잡아함경』 권제13 제322경(대정장2, p.91하). 여기서 무견무대색은 바로 무표색이다. 즉 경 후반에서 제6의식의 대상이 되는 무견무대의 법을 의식처럼 비물질[非色]이라 하지 않았으니(意內入處者 若心意識非色 不可見無對), 이는 바로 법처에 포섭되는 색 즉 무표색을 뜻한다는 것이다.
50)
같은 경 권제2 제56경(동,p.13).
51)
『중아함경』 권제2 「세간복경」(대정장1,p.427). 여기서 유의(有依, aupadhika) 즉 물자를 시여하는 세간의 일곱 가지 복업이란, 비구중에게 방사(房舍)나 전각을 시여하는 일, 방사 중에 좌상(座床) 내지 와구를 시여하는 일, 방사 중에 새로 지은 청정한 묘의(妙衣)를 시여하는 일, 방사의 대중에게 아침의 죽과 중식을 시여하는 일, 인민들로 하여금 공급하게 하는 일, 일기가 불순할 때에는 스스로 승원으로 나아가 공양하는 일, 비구들로 하여금 풍우한설(風雨寒雪)에 옷이 젖을까 근심하지 않게 하여 밤낮으로 편안히 선정사유하게 하는 일이다. 그리고 무의(無依, niraupadhika) 즉 시물 없이 짓는 출세간의 일곱 가지 복업이란, 여래, 또는 여래의 제자가 모처로 유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환희 용약심을 품는 일, 이곳에 오고자 한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환희 용약심을 품는 일, 이곳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듣고 환희 용약심을 품는 일, 청정심을 갖고 스스로 가 친견하는 일, 예경하고 공양하는 일, 삼귀의하는 일, 금계(禁戒)를 받는 일 등이다.
52)
즉 다른 사람에 시킨 것(어표업)은 그(살인자)가 한 행위에 포함되지 않으며, 또한 그것이 살인을 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다만 예비적 행위(加行)이지 본격적인 행위[근본업도]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교사자가 살인의 업을 성취하게 되는 것은 바로 무표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53)
『잡아함경』 권제13 제322경, 앞서 인용한 경문의 후반부.
54)
무루도 즉 무루정려에서는 말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지도 않으며, 세속의 현실생활로부터 벗어나기 때문에 8성도 중의 정어ㆍ정업ㆍ정명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겠지만 그러한 상태에서도 그것의 무표가 여전히 존속하기 때문에 8성도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뜻.
55)
즉 이 경문으로 볼 때 정어(正語) 등의 뒤의 세 지(支)는 선정 중의 무루의 무표가 아니다. 그것이 만약 무루의 무표라면 견도위에 이르러 비로소 성취되기 때문이다.
56)
이는 즉 견도 이전 범부위에서 유루6행관으로써 욕계의 번뇌를 떠날 때 욕계불선의 사업(邪業) 등의 세 가지를 떠난 행자에 대해 설한 경문으로, 무루정 중에서는 반드시 무루의 8성도를 획득하기 때문에 앞의 주장과 상위하지 않는다는 뜻.
57)
만약 무표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수계의식을 행하여도 그 힘이 상속될 수 없으며, 따라서 염오심이나 무기심을 일으킬지라도 이미 계를 받은 이상 비구라고 일컬어야 한다. 다시 말해 별해탈율의를 수지하고서 일생 범계(犯戒)하지 않는 것은 율의의 무표색이 계체(戒體)가 되어 소의신 중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58)
유가사(Yogācāra) 즉 관행자(觀行者)가 색계 제4정려를 닦을 때, 정력(定力)에 의해 나타나는 경계가 무견무대색으로, 그것은 이를테면 청황적백의 4현색과 지수화풍의 4대가 세계 중에 충만하다고 하는 8변처(遍處)의 색과 같은 것이다. 변처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9에서 논설한다.
59)
『잡아함경』 권제8 제229경(대정장2,p.56상), “云何有漏法? 謂眼色 眼識 眼觸 眼觸因緣生受 內覺 若苦 若樂 若不苦不樂…….”
60)
그렇다면 반대로 번뇌를 능히 대치하는 것은 ‘무루’이다. 앞에서는 번뇌의 근거가 되지 않는 것을 무루라고 하였다.
61)
만약 이러한 [‘누 즉 번뇌의 근거가 되지 않기 때문에 무루이다’는] 이치에 의거하여 무루라고 설하였다면 일찍이 이러한 이치에 의거하여 유루라고 설하지 않았을 것이다.
62)
『잡아함경』 권제13 제332경(대정장2,p.92중), “世尊告諸比丘 有六覆. 云何爲六? 謂色有漏 是取 心覆藏…….” 즉 만약 유부처럼 앞의 15계를 한결같이 유루라고 한다면 이 경에서 구태어 색을 유루 유취의 온갖 색이라고 차별하여 말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뜻.
63)
여기서 공덕(guṇa)과 섭익(anugraha)은 예컨대 시여받은 음식 등에 의해 4무량 등의 공덕을 닦고 자신의 몸을 이익되게 하거나, 혹은 4무애해를 닦아 다른 이를 이익되게 하는 것. 즉 그것에 의해 시여자의 상속에 복업이 증장한다.
64)
상속의 전변과 차별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4 주115)를 참조 바람.
65)
세간의 복이나 출세간의 복이 단절되지 않고 상속 증장되는 것은 선행된 의지[思]와 그것이 훈습된 종자가 미세하게 상속하여 전변ㆍ차별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선행을 하고자 생각[思]하여 그렇게 하였을 때 그러한 생각의 힘[思種子]이 잠재되어 그 후 그가 다른 연의 마음(즉 악심이나 무기심)을 일으킨다 할지라도 이전에 훈습된 사종자가 찰나찰나에 걸쳐 미세하게 상속 전변하여 차별됨으로써 세간의 복은 증장되는 것이다. 본론에서는 이러한 종자의 힘을 자연적이고도 본래적인 힘 즉 ‘법이력’이라 부르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무표와 동일한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유부처럼 무표를 주장할 경우, 출세간의 복업[無依]에는 마땅히 표업이 부재하기 때문에 무표색 또한 있을 수 없게 되는 논리적 난점에 봉착하게 되는 것이다.(후술)
66)
이는 경부(經部) 이사(異師)의 설로서, 앞의 무의의 복업에 대한 해석처럼 유의의 복업도 단순히 향수자의 공덕과 섭익에 의해 상속 증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주 시여를 생각하는 뛰어난 사(思) 심소에 의해 복업이 증장한다는 뜻.
67)
남을 시켜 살인을 행하게 하였을 경우, 그 때 이미 교사자의 몸 속에는 그러한 예비적 행위(가행)의 의지력(思種子)이 훈습되어 상속하며, 나아가 청부자가 살인(근본업도)을 성취하는 순간 그 행위의 원인인 가행의 종자는 상속의 특수한 변화(전변과 차별)를 일으키기 때문에 살인행위의 과보를 초래하게 된다는 뜻.
68)
즉 유부에서 무표를 역시 신ㆍ어업의 업도라고 하듯이, 사종자를 업도라고 할 수 있다는 뜻. 왜냐 하면 사종자는 심려ㆍ결정사와 동발승사를 원인으로 하여 생겨난 것으로, 다만 원인(즉 ‘사’)의 차별일 뿐이기 때문이다, 본권 주 45), 46)참조.
69)
여기서 대덕은 보광에 의하면 법구(法救)로서, 『대비바사론』 권제118(한글대장경122,p.431)에 언급되고 있다. 즉 무표나 사종자를 따로이 설정할 필요없이 다만 과거ㆍ현재ㆍ미래 3세에 걸쳐 일어나는 사(思)의 차별이 바로 업도의 본질이라는 뜻이다.
70)
삼시에 걸친 의사[思]만으로는 업도가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 밖에도 목적에 부합하는 신체적 행위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논주의 비평.
71)
즉 업도는 마음으로 계기(繼起) 상속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어떤 이에게 살인을 교사하고서(가행) 살인행위가 성취되는 순간 교사자의 몸 속에 심신과는 다른 별도의 존재인 무표색이 생겨나 그것에 의해 상속한다고 주장할 경우, 교사자는 직접 살인이라고 하는 표업을 성취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것의 무표업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경량부에서는 심신과는 다른 개별적 실체로서의 무표색을 부정하며, 만약 그러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다만 마음의 종류(즉 사종자)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72)
즉 무의의 복에는 표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그에 따른 무표업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 것처럼, 교사자에게는 근본업도로서의 표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역시 무표업이 없어야 한다는 힐난.
73)
무루정에 들어서는 정어ㆍ정업ㆍ정명을 직접 일으키지 않지만, 일찍이 획득하였던 그것의 무표가 존재하기 때문에 무루정 중에서도 8정도가 존재한다고 설할 수 있다. 즉 무루정 중에서의 무표를 원인(因)으로 삼아 출정 후 3사(邪)가 아니라 3정(正)을 일으키는 것(果)으로, 무루정에서는 다만 원인 상에 결과의 명칭을 설정하여 3정이 있다고 한 것이지 실제로 그러한 3정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74)
경량부에 의하면 무루정에 들 때 의요(āśaya, 어떠한 목적을 성취하려는 의식으로, 열 가지 심대지법 중 思cetanā와 欲chanda를 본질로 함)와 수승한 소의신(āśraya)을 획득하기 때문에 그러한 세력에 의해 출정 후에도 능히 3정을 일으킬 수 있다. 즉 출정 후의 3정(果)은 입정(因)에서 얻어지기 때문에, 다시 말해 앞서 유부의 무표(因)와 3정(果)의 경우에서처럼 원인으로써 결과의 명칭을 설정할 수 있기 때문에 무루정에서도 8성도지는 모두 성립할 수 있다.
75)
여기서 유여사는 경부이사. 그는 정어(正語) 등을 소극적으로 해석하여 ‘사어(邪語) 등을 짓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무루정에서도 당연히 8정도가 성취될 수 있다.
76)
8세법이란 세간의 유정이 따르는 법으로, 여기서의 뜻은 획득하지 않은 상태를 ‘불획득’이라고 이름할 뿐 거기에 대응하는 개별적 실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8세법에 대해서는 『대비바사론』 권제173,앞의 책124,p.533을 참조)
77)
별해탈율의의 효능(즉 防非止惡의 힘) 역시 사(思)에 의해 지속한다. 예컨대 수계의식을 행할 때, 마음을 일으켜 구족계를 수지할 것을 결정[思願]하고, 그 힘에 따라 평생토록 살생 등을 하지 않겠다고 서원하며, 이후 이것에 의해 살생 등의 악업을 막는 것이다. 곧 수계의식의 효능은 사종자(思種子)의 상속에 의한 것이지 무표에 의한 것이 아니다.
78)
즉 실체인 무표색에 의해 마치 강물을 막는 방죽처럼 범계를 막는다고 한다면, 마땅히 실념하여 파계하는 자가 없어야 할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올바른 논의가 아니다는 뜻.
79)
이 게송은 범본이나 『구사석론』에는 부재하는 것으로, 현장 역본인 『구사론』 『순정리론』 『현종론』에서만 설해지고 있다.
80)
무표색은 무견무대이기 때문에 미세한 대종의 소조이며, 표색은 유견유대이기 때문에 거친 대종의 소조로서, 그 화합이 동일하지 않다.
81)
소의(āśraya)와 의지(saṃniśraya)의 관계는 친소(親疎) 정도의 차이로서, 전자가 생모라면 후자는 유모 정도의 의미이다.
82)
여기서 ‘전인’이란 무표의 전기인(轉起因)이 되는 과거의 대종으로서, 수레를 끄는 손에 비유된다. 즉 여기서 ‘전(轉)’이란 일으킨다는 뜻으로 무표를 직접 낳는 원인[能生因]을 말한다. 그리고 ‘수전인’은 무표의 의지(依止)가 되는 현재의 대종으로, 수레가 가는 땅에 비유된다. 즉 무표는 바로 이 같은 현재 대종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이다.
83)
이상 무루의 무표는 ‘무루의 대종소조’가 아니라 그것이 생겨나는 지에 따른다는 이유를 밝힌 것으로, 첫째 몸은 욕계에 있으면서 초정려에 들어 일어난 무표는 초정려의 대종소조이니, 무루는 3계에 계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무루의 대종소조가 아닌 까닭은 무루의 대종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셋째 무루의 무표는 소의신에 의해서만 일어나기 때문에, 소의신이 태어나는 지의 대종소조이다.
84)
무표는 비록 색법이지만 비집적의 존재이기 때문에 심ㆍ심소의 소의가 되지 않는다. 즉 무표색은 안(眼)ㆍ이(耳)와는 달리 감각을 갖지 않은 대종소조이다.
85)
환언하면 무표는 선ㆍ불선의 성질을 갖기 때문에 이숙생이 아니며, 극미의 집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장양이 아니며, 동류인을 갖기 때문에 바로 등류성의 존재라고 한 것이다.
86)
즉 첫 번째 무루법(즉 苦法智忍)과 구생하는 무표업은 유찰나로서, 게송에서 ‘역시 또한’이라고 말한 것은 그것이 등류성인 동시에 찰나성의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해서였다는 뜻.
87)
신ㆍ어표업의 일곱 가지란, 불살생ㆍ불투도ㆍ불사음의 세 가지 신업과 불악구ㆍ불망어ㆍ불양설ㆍ불기어의 네 가지 어업을 말한다.
88)
정려 중에서는 마음이 단일하여 차별이 없을 뿐더러 소의가 되는 대종에도 차별이 없기 때문에 세 가지 신업과 네 가지 어업의 무표는 동일한 대종소조이다.
89)
말하자면 유정수이고, 아울러 소의가 되는 대종은 등류성이고 유집수로서 각기 다른 4대종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90)
여기서 몸의 형량이란 우리들 이숙신의 형태와 크기를 말한다. 이는, 이를테면 손으로서 표업을 일으킬 경우 손에는 새로이 생겨난 대종이 증가하였기 때문에 본래의 손보다 커야 할 것이고(그럴 때 본래의 손은 파괴됨), 온몸으로 표업을 일으켰을 경우 새로 생겨난 대종이 온몸에 증익하였기 때문에 본래의 몸보다 커야 할 것인데, 사실은 어떠한가 하는 물음이다.
91)
이숙색은 일단 단절되면 다시 속기(續起)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바사(婆沙)의 종의이다.
92)
이숙신은 꽉 막힌 것이 아니라 틈이 있어 마치 모래에 물을 부어도 그 부피가 증가하지 않듯이, 유표업을 일으키더라도 신체의 크기가 증가하는 일은 없다는 뜻.
93)
두 가지의 차별은 사업(思業)과 사이업(思已業). 세 가지 차별은 신업(身業)과 어업(語業)과 의업(意業). 다섯 가지의 차별은 신업과 어업의 표ㆍ무표업과 의업(즉 사업).
94)
무표업은 바로 선이나 악의 강력한 마음에 의해 등기(等起)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95)
탐ㆍ진ㆍ치의 세 가지 불선근과 무참ㆍ무괴는 욕계에만 존재한다. 즉 색계ㆍ무색계에는 그것을 끊어야 비로소 태어나기 때문에 상 2계에는 불선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96)
이러한 이유에서 무표업은 욕계ㆍ색계에 두루 존재하는 것으로, 제2정려 이상에서도 하지의 설식(舌識)을 빌려 말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색계 중에서는 신ㆍ어의 표업이 낳아지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곳에는 신ㆍ어의 율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97)
무색계에 4대종이 존재하지 않을지라도 욕계ㆍ색계에 태어나 무루정에 들 때 생처(生處)의 대종으로 무색의 무표를 지어야 한다는 힐난.
98)
무색계에 무표색이 없는 첫 번째 이유. 무루의 무표는 더 이상 3계에 계박되지 않기 때문에, 바꾸어 말하면 유루의 무표는 3계에 계박되기 때문에 다른 세계 즉 생처(生處)인 욕계ㆍ색계의 대종을 근거로 하여 조작될 수 없는 것이다.
99)
이러한 네 종류의 원(遠)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7 주55)를 참조할 것.
100)
그 이유에 대해서는 후술함.
101)
즉 마승(Aśvajit, 또는 Assaji, 최초의 불제자로서 5비구 중의 1인)이 대범왕에게 ‘4대종은 어떠한 상태에서 멸진하여 없어지는가’라고 묻자 대범왕은 이를 알지 못하고 교란(矯亂)되어 말하기를, “나는 범천의 무리 가운데 대범으로, 자재신으로서 기세간의 작자이며, 유정의 화작자이며, 낳은 자이며 기르는 자로서, 바로 모든 존재의 아버지이다”고 대답하였다. 그런 후 마승을 대중들 밖으로 불러내어 첨언(諂言)을 부끄러워하며 사과한 후 다시 부처님께 가 물었다고 한다.(『장아함경』 권제16 『견고경(堅固經)』) 이 이야기는 본론 권제4(p.179)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102)
즉 유여사는, 위의 세 정려에서는 선심은 저열하고 염심은 끊었기 때문에 선ㆍ염오의 표업이 일어나지 않지만 초정려의 마음을 빌려 무부무기의 표업을 일으키기 때문에 무부무기의 표업은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는데, 이는 소의신의 계계(界繫)에 의해 표업의 유무를 논의한 것이다. 그러나 유부에서는 능히 표업을 일으키는 마음의 계계에 의해 표업의 유무를 논의하기 때문에, 다시 말해 발표심(發表心, 표업을 발동시키는 마음)은 표업의 직접적 원인으로서 소의이지만, 신체는 오로지 간접원인으로서 의지(依止)일 뿐이며, 또한 표업의 성질은 표업 자체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 아니라(자체는 무기임) 발표심에 의해 판단되기 때문에, 초정려에만 표업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선설(善說)로 평취한 것이다.
103)
유부무기 가운데 표업을 일으키는 것은 외면에서 일어나는[外門轉] 정의적 번뇌인 수소단의 번뇌로서, 욕계 유부무기에는 유신견ㆍ변집견과 이와 상응하는 무명이 있지만(본론 권제19, p.893 이하를 참조할 것), 이것들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견소단이기 때문에 표업을 일으킬 수 없다.
104)
여기서 불상응행은 생(生) 등의 4상(相)과 아울러 득(得)과 두 가지 무심정(無心定) 즉 무상정과 멸진정을 말한다.
105)
궁극적으로 말한다면 유루법으로서 선 혹은 무기는 아무것도 없으며 모두 불선이라 할 수 있다.
106)
심소법으로서 그 자체 무기성인 것과, 무기심과 두루 상응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등기한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성ㆍ상응ㆍ등기무기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무기에는 유위법으로서 무기인 자성무기와 무위법으로서 무기인 승의무기 두 가지가 있다.
107)
예컨대 탐 등에 의해 등기된 신ㆍ어업을 불선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탐 등의 마음에 의해 인기한 대종도 신ㆍ어업과 동일 찰나에 등기되기 때문에 불선이라고 해야 할 것인데, 그렇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 하는 힐난.
108)
만약 작자의 마음은 애당초 업을 일으키고자 한 것이기 때문에 4대종이 선 불선을 성취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면, 입정할 때에 자연적으로 획득되는 무표 또한 입정 전의 가행위(加行位)의 산심(散心)에서 인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시 말해 애당초 그것(선)을 목적으로 입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하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며, 혹은 반대로 색계선심에서 인기된 천안ㆍ천이도 역시 무기가 아니라 선이라고 해야 한다는 뜻.
109)
견소단의 번뇌는 나쁜 스승이나 사설(邪說)ㆍ사교(邪敎)에 유도되어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지적인 번뇌[迷理惑]이다. 따라서 견소단의 식(識)은 오로지 전인(轉因)이 될 뿐이다.(후술)
110)
인등기(hetu-samutthāna)란 표업ㆍ무표업을 인기하는 심ㆍ심소를 말하는데, 업을 짓고자 할 때 현재의 인등기심은 미래의 업을 인기하기 때문에 ‘전인’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곧 여기서 ‘전’이란 일으킨다[起]는 말이다. 그리고 찰나등기(tatkṣaṇa-samutthāna)란 업과 동시병존하면서 업의 생기에 충족조건이 되는 것을 말하는데, 업이 현재하는 찰나에 그것과 불상리의 관계로서 따라 일어나기 때문에 ‘수전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111)
예컨대 내일 소풍을 가겠다고 인등기의 마음을 일으켰을지라도 그 직후 죽을 경우 실제의 업이 일어날 수 없는 것은 실제의 업과 동일찰나에 수전하는 마음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전인에는 표업을 일으키는 공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112)
보광에 의하면 이는 경부사에 의해 제기된 힐난이다. 즉 표업의 본질을 형색이 아니라 인등기의 심소(즉 思)로 이해한 경량부로서는 신ㆍ어표업도 당연히 견소단이다. 그러나 유부에서는 아비달마본론에서 ‘색은 견소단이 아니다’고 설하였기 때문에, 표색은 명(明)ㆍ무명과 서로 모순되지 않기 때문에, 다시 말해 색은 견도 즉 명에 의해 끊어지지 않고 함께하며, 무명과도 불상리의 관계로서 함께하기 때문에 견소단이 아니라고 하였다.(후술)
113)
이는 유부의 반난(反難)으로, 만약 표색을 견소단으로 인정할 경우, 그것을 조작하는 대종도 역시 견소단이라 해야 할 것이니, 견소단인 사견(邪見) 등에 의해 인기된 것이기 때문이다.
114)
신ㆍ어의 표색은 인등기(因等起)의 마음에서 의욕하여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그것과 동성(同性)이지만, 다시 말해 인등기의 마음이 불선이면 표색도 불선이며, 따라서 견소단이지만, 대종은 그렇지 않고 항상 무기이기 때문에 견소단이 아니다.
115)
즉 앞에서 인용한 ‘사견으로 말미암아 사사유ㆍ사어 등을 일으키게 된다’는 경설은 사견이 인등기가 되어 사어(邪語) 등의 표업을 발동시키려는 마음을 돕는다는 뜻으로 설해진 것이지 찰나등기가 되어 바로 사견이 직접 사업을 낳는다는 뜻이 아니다. 따라서 그것은, 견소단의 혹은 내문전의 번뇌이기 때문에 찰나등기가 되어 능히 표업을 발동시킬 수 없다는 설과 상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16)
즉 무분별이기 때문에 전인이 되지 않으며, 외면에서 일어나는 식이기 때문에 수전인이 된다.
117)
즉 무루의 마음은 오로지 선정 중에 존재하는 내문전이기 때문에 외문전인 신ㆍ어업을 일으키는 전ㆍ수전인이 되지 않는 것이며, 이숙의 마음은 전생의 업에 의해 인기되는 것으로 그 성질이 저열하기 때문에 고의적인 의지[故思]에 의해 일어나는 신ㆍ어업의 전ㆍ수전인이 되지 않는 것이다.
118)
『중아함경』 『용상경(龍象經)』 (대정장1,p.608중). 여기서 ‘나가(nāga)’는 용(龍) 즉 세존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대중부에서는 유부와는 달리 부처님의 행(行)ㆍ주(住)ㆍ좌(坐)ㆍ와(臥)는 항상 선정 중에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은 항상 선일 뿐으로 무기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119)
부처님은 뭔가 만드는 기술 즉 공교처의 마음을 일으키는 일이 없기 때문에 4종의 무부무기 가운데 세 가지만을 논설한 것이다.
120)
유신견(有身見)과 변집견(邊執見)은 견소단의 혹으로서 유부무기이기 때문이다.
121)
예컨대 별해탈계를 받는 최초의 순간은 비록 선심일지라도 제3갈마 시에 악이나 무기심이 일어날 경우, 이 같은 마음과 동시에 별해탈의 계체(戒體)를 획득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22)
예컨대 나의 존재를 남에게 알리기 위해서 먼저 그 같이 생각하고서 외문전(外門轉)의 수소단인 유심유사(有尋有伺)의 마음으로써 ‘나는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처럼, 견소단인 전인과 무간에 수소단인 선ㆍ악ㆍ무기 등의 전인이 일어나기 때문에 견소단이 아닌 수소단의 전인에 의해 표업의 성질이 결정된다는 뜻.
아비달마구사론 제14권
1)
별해탈율의(prātimokṣa saṃvara, 혹은 波羅提木叉로도 음사함)란 구족계를 받을 때 각각의 계법(戒法)에 대해 획득하는 무표로서, 각각의 계법에 따라 각기 별도의 해탈을 얻기 때문에 ‘별해탈’이라고 이름하였다. 예컨대 불살생계는 살생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며, 불투도계는 도둑질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2)
정려생율의(dhyāna saṃvara, 定共戒라고도 함)는 색계의 정려를 닦을 때, 혹은 정려에 의해 생겨나는 방비지악(防非止惡)의 힘을 말함.
3)
도생율의(anāsrava saṃvara, 道共戒 혹은 無漏律儀라고도 함)는 무루성도를 획득할 때 생겨나는 방비지악의 힘을 말함.
4)
필추율의(bhikṣu saṃvara, 혹은 比丘戒)란 출가남성이 수계할 때 획득하는 무표를 말함. 필추니율의(bhikṣuṇī-saṃvara, 혹은 比丘尼戒)는 출가여성의 계. 정학율의(śikṣamāṇā-saṃvara, 혹은 式叉摩那戒)는 비구니가 되기 위한 1년간의 시험기간 동안 배우는 불음(不婬)ㆍ부도(不盜)ㆍ불살생ㆍ불허광어ㆍ불음주ㆍ불비시식(不非時食)의 6계. 근책율의(śrāmaṇera-saṃvara, 혹은 沙彌戒)는 20세의 비구가 되기 전까지의 10계. 근책녀율의(śrāmaṇerika-saṃvara, 혹은 沙彌尼戒)는 비구니가 되기 전까지의 10계. 근사율의(upasāka-saṃvara, 혹은 優婆塞戒)는 재가남성의 5계. 근사녀율의(upāsikā-saṃvara, 혹은 優婆夷戒)는 재가여성의 5계. 근주율의(upavāsa-saṃvara, 혹은 鄔波婆沙戒)는 근사ㆍ근사녀로서 하루 낮밤을 기한으로 수지하는 8계이다. 이 중의 앞의 다섯 가지 율의는 이악행(離惡行)과 이욕행(離欲行)을 닦는 보특가라의 율의이며, 근사와 근사녀율의는 이악행은 닦을 수 있지만 이욕행은 닦을 수 없는 보특가라의 율의이다. 즉 그들은 욕사행(欲邪行)은 떠났으나 비범행은 떠나지 않은 자들이다. 그리고 근주율의는 악행과 욕행을 완전히 떠날 수 없는 자들의 율의이다.
5)
필추니ㆍ근책녀와 정학ㆍ근사녀의 율의는 필추ㆍ근책과 근사의 율의를 본질로 하는 것으로, 이는 다만 그것을 수지하는 이의 형색(즉 여근)에 따라 그 이름만이 바뀐 것이다.
6)
이는 금전 한 푼에 한 푼을 더하면 두 푼이 되고, 다섯 푼에 다섯 푼을 더하면 열 푼이 되듯이 근사의 5계에 5계를 더하여 근책의 10계가 되고, 근책의 10계에 240계을 더하여 필추의 250계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같은 불살생계라도 다른 율의의 그것과는 그 성질이 다른 것을 구족하여 근책이나 필추율의를 성취하는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7)
즉 필추ㆍ근책ㆍ근사의 율의는 각기 다른 5계를 구족하며, 그 밖의 비시식(非時食) 등의 경우 필추와 근책에는 존재하지만 근사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5계 이외의 그 밖의 것은 각기 상응하는 바에 따라 분별하라는 뜻이다.
8)
이를테면 필추의 불살생율의의 무표와 근책ㆍ근주의 불살생율의의 무표는 다 같이 동류인데, 거기에 무슨 차별이 있는 것인가? 하는 난문.
9)
5계(근사계)ㆍ10계(근책계)ㆍ구족계(필추계) 등의 계를 받으려는 의요 즉 희망이 율의의 인(因)이라면, 수계의식에 따른 제반 절차가 율의의 외적인 연(緣)이다. 이를테면 5계의 근사는 한 명의 화상(和尙, upādhyāna, 즉 授戒師)이 필요한 반면, 근책은 화상과 아사리(阿闍梨, ācārya, 軌範師 또는 敎授師)가, 필추는 3사(師) 7증(證)의 10명을 필요로 한다. 즉 근사ㆍ근책ㆍ필추율의에 모두 이살생(離殺生)ㆍ이음주(離飮酒) 등의 율의가 갖추어져 있지만, 그것은 이러저러한 율의를 받고자 하는 마음(즉 內因)과 율의를 주는 계사(戒師)의 수(즉 外緣) 등이 다르기 때문에 설사 동일한 계목(戒目)이라 하더라도 그 체(體)는 다르다는 것이다.
10)
『현종론』 (권제19,한글대장경200,p.518)에 의하면 여기서 인(因)은 어떤 종류의 학처를 받고자 하는 마음이고, 연(緣)은 이를테면 교만과 방일을 떠나는 것이다.
11)
즉 이전에 근사율의를 받고 그 뒤에 근책율의 내지 필추율의를 받더라도 앞의 근사 내지 근책을 버리는 것이 아니며, 또한 반대로 필추율의를 버렸다고 해서 반드시 근책ㆍ근사율의마저 버리는 것은 아니다. 왜냐 하면 이 세 가지 율의는 각기 개별적인 것이지만 동일한 소의신에 동시에 구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12)
그렇다면 근주율의의 8계에서는 왜 두 가지를 합하여 1계로 삼은 것인가? 『현종론』 권제19(한글대장경200, p.520)에 의하면 많은 학처를 두려워하는 재가의 유정들을 이끌어 쉽게 수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서로서, 마치 불율씨자(佛栗氏子)를 위하여 학처에 다만 세 가지가 있다고 설한 것과 같다. 즉 불율씨자(즉 跋耆子, Vrijipūtra, Vajjiputta)는 250가지나 되는 많은 학처를 두려워하여 속퇴하고자 하였는데, 부처님께서는 그를 달래기 위해 증상의 계ㆍ정ㆍ혜의 세 가지 학처를 설하였다.(『대비바사론』 권제46,한글대장경119, p.489 참조)
13)
부파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는 있지만 비구의 별해탈율의는 바라이법(波羅夷法, 네 가지)ㆍ승잔법(僧殘法, 열세 가지)ㆍ부정법(不定法, 두 가지)ㆍ사타법(捨墮法, 서른 가지)ㆍ파일제법(波逸提法, 아흔 가지 정도)ㆍ회과법(悔過法, 네 가지)ㆍ중학법(衆學法, 백 가지 정도)ㆍ멸쟁법(滅諍法, 일곱 가지)의 여덟 가지 조항, 대략 250계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서 ‘승잔’이란 성적인 악습이나 승가를 분열시키려는 행위 따위를 말하며, ‘부정’이란 여성과의 관계가 의심스러운 행위를, ‘사타’란 의복이나 그 밖의 물품의 소유에 대한 위법을, ‘파일제’는 여러 가지 소재(小罪)를, ‘회과법’은 식사에 관한 비위를, 중학법은 식사나 탁발, 설법 등 그 밖의 제반 예의에 관한 세칙을, 그리고 ‘멸쟁법’이란 승단 내의 싸움을 진정시키는 방법에 관한 규정이다.
14)
이는 시라(īla, 戒)를 어원 √sī(시원하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간주하여 śīta 즉 ‘청량’의 뜻으로 이해한 해석이다.
15)
무표업은 신ㆍ어표업에 의해, 표업은 사(思)심소에 의해 지어진 것이기 때문에 소작(所作)이라고도 이름한다. 따라서 별해탈율의는 이러한 소작을 본질로 삼기 때문에 ‘업’이라고도 이름한다는 것이다.
16)
즉 무표업에는 방비지악의 공능이 있기 때문에 선업을 짓는 원인이 되며, 또한 이전의 지은 표업과 사업에 의해 생겨난 결과이기도 하다.
17)
최초의 찰나에 닦아야 할 바가 완전히 닦아졌을 경우, 이전에 수계하기를 희구하였던 사(思)심소는 그러한 최초찰나의 표업ㆍ무표업을 연으로 하여 상속하기 때문에 최초 찰나의 별해탈율의를 ‘업도’라고 이름한 것이다. 즉 여기서 업도란 사심소[思業]가 노니는 길[所遊路, 즉 道]이라는 뜻이다.
18)
서울의 외곽도 서울이라 할 수 있으며, 그래서 ‘그곳(즉 서울)에 벼논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정려의 가장자리인 근분정도 정려라 할 수 있고, 거기서 생겨난 율의를 역시 또한 정려생율의라고 할 수 있다는 뜻.
19)
제1구(무루율의이면서 단율의가 아닌 것)는 미지정의 9무간도를 제외한 그 밖의 무루율의이다. 제2구(단율의이면서 무루율의가 아닌 것)는 미지정의 9무간도에 근거한 유루율의이다. 제3구(무루율의이면서 단율의인 것)는 미지정의 9무간도에 근거한 무루율의이다. 제4구(무루율의도 아니고 단율의도 아닌 것)는 미지정의 9무간도를 제외한 그 밖의 일체의 유루율의이다.
20)
『증일아함경』 권제12(대정장2,p.604중), “身行爲善哉, 口行亦復然, 意行爲善哉, 一切亦如是.”
21)
『잡아함경』 권제11 제277경(대정장2,p.75하); 동 권제43 제1170경(동, p.313상) 참조.
22)
의ㆍ근율의는 무표색을 자성으로 하는 예의 율의가 아니라 정지ㆍ정념을 본질로 하는 의식작용이다. 이는 즉 혜(慧)심소에 의해 의ㆍ근을 잘 억념하므로서 악을 방지하기 때문에 ‘율의’라고 하는 명칭을 일시 설정한 것일 뿐이다.
23)
본송에서 정지와 정념이라는 각각의 개념을 열거하고 나서 다시 거듭하여 ‘화합한 것’이라는 말을 설한 것은, 이러한 두 가지 율의가 순서대로 각기 정지와 정념을 본질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말해 의율의는 정념을 떠나 정지와 화합하고, 근율의는 정지를 떠나 정념과 화합한다는 말이 아니라 각기 두 가지 모두를 본질로 한다는 뜻이다. 즉 게송에서 ‘화합한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의율의는 정지를, 근율의는 정념을 자성으로 한다는 주장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24)
별해탈율의에 머물면서 그것을 버리지 않는 한 그러한 율의의 무표는 항상 법구득(法俱得)에 의해 현재의 것이 성취되며, 제2찰나 이후에는 법후득(法後得)에 의해 과거의 무표도 역시 성취되지만, 법전득(法前得)에 의해 미래의 무표가 성취되는 일은 없다.
25)
즉 후찰나에도 아직 별해탈율의를 버리지 않았다면 바로 그 때 후찰나의 무표를 성취한다.
26)
정려생이나 도생이 아닌 산심에서의 율의 즉 별해탈율의는 미래의 무표를 낳지 못한다. 즉 아직 마음의 소연이 되지 않는 불수심전의 색은 미약하여 법전득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27)
정려율의는 수심전으로서 그 세력이 강하기 때문에 법전득(法前得)에 의해 미래의 무표를 성취하는 것이다.
28)
그러나 순결택분에 포섭되는 정려율의는 현재 최초찰나 중에 과거의 무표를 성취하지 않는다. 왜냐 하면 다른 생에서 획득한 것은 목숨을 마칠 때 버리고 금생에 다시 그러한 법을 획득하는 일이 없기 때문으로, 그러한 법과 구별하여 이해하기 위해 앞에서 ‘대개’라고 하는 말을 설한 것이다.(『현종론』, 앞의 책,p.525)
29)
정려와 무루도의 무표는 수심전이기 때문에 산심(散心)이 현전할 때에는 필시 그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30)
율의와 불율의는, 일정기간 이러이러한 일을 하겠다고 맹서함으로써 생겨난 힘으로서 악계의 상속을 막는 것을 율의라 하고 선계의 상속을 막는 것을 불율의라고 하는데 반해,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어떤 때에는 악을, 어떤 때에는 선을 행하는 이를 처중(處中)에 머무는 이라고 한다. 예컨대 비하라나 솔도파 승가라마를 조성하거나 제다(提多, 사당)에 예배하고 향을 사르고 꽃을 뿌리는 등은 처중의 무표를 낳는다.(『입아비달마론』 권상, 한글대장경176,p.520)
31)
미래의 색은 마음에 따라 일어나는 이른바 수심전(隨心轉)의 색이 아니어서 그 세력이 약하고 저열하기 때문이다. 즉 정려와 무루도에 들어가는 자는 정려와 도생율의의 현재의 무표를 성취하지만, 정려와 무루도의 무표는 수심전이기 때문에 출관(出觀)하여 산심(散心)이 현전할 때에는 성취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산심의 표업은 그 세력이 미약 저열하여 법전득을 일으키는 일이 없기 때문에 미래의 표업을 성취하지 않는 것이다.
32)
『보소(寶疏)』에 의하면 ‘거슬러 획득하는 것’은 미래의 무표를 획득하는 것이고, ‘쫓아 획득하는 것’은 과거의 무표를 획득하는 것. 즉 유부무기와 무부무기의 표업은 ‘자류(自類)의 상속을 인기한 후 그 같은 본법이 이미 멸하였을 때 그것을 쫓아 획득[追得]하여 성취한다고는 능히 말할 수 없으며, 또한 역시 아직 생기하지 않은 미래의 법[當法]을 거슬러 획득[逆得]하는 공능도 없다.’(『현종론』 권제19, 앞의 책,p.527)
33)
생기한 것은 능히 그것을 일어나게 하는 마음보다 저열하기 때문에 유부무기의 마음 등이 과거ㆍ미래세의 그것을 성취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왜냐 하면, 그것은 마치 무기의 마음은 능히 표업을 낳을 수 있어도 그것에 의해 낳아진 표업은 무표업을 낳지 못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생기한 표업은 능히 그것을 일어나게 하는 마음보다 저열하며, 그래서 그러한 무기는 과거ㆍ미래의 무표를 성취하지 못하는 것이다.
34)
즉 불율의 역시 사(思)심소에 의해 조작되고 능히 사업(思業)을 창달하여 업이 노니는 길[所遊路]이 되기 때문에 ‘업도’로서, 이 점에 있어 율의와 그 명칭이 동일하다.
35)
유의의 7복(본론 권제13 주51 참조)은 아무리 저열한 의지[思]에 의해 일어났을지라도 무표가 있으며, 또한 아무리 저열한 의지라고 할지라도 유정의 목숨을 끊는 업도를 성취하면 무표을 성취한다.
36)
역생성자란 번뇌는 끊기 어렵고 성도는 익히기 어렵기 때문에 몇 번이고 생을 바꾸어 수행하는 경생(經生)의 성자를 말한다. 즉 그는 욕계ㆍ색계에 태어날 때에는 도구계(道俱戒)ㆍ정구계(定俱戒)의 무표를 성취하며, 무색계에 태어날 때는 오로지 도구계의 무표만을 성취한다. 욕계에 태어나면서 모태에 처해 있을 때(표업을 아직 낳지 않았을 때)와, 의요의 종식으로 말미암아, 가행을 버렸기 때문에 기한[限勢]을 넘겨버렸다는 세 가지 인연에 의해 이전에 생겨난 표업이 사기(捨棄)된 때에는 오로지 과거ㆍ미래의 정구계와 도구계만을 성취할 뿐이다.
37)
이를테면 율의ㆍ불율의에 머물면서 선업ㆍ불선업을 지을 때에는 표업ㆍ무표업을 모두 성취하며(제3구), 태장(胎藏) 중에 머물 때는 두 가지 모두를 성취하지 않는다.(제4구)
38)
미지ㆍ중간ㆍ4근본의 여섯 가지 정려지를 6무루지라고 하며, 성자는 반드시 이 중 어딘가에 들어 도공계(道共戒), 즉 도생율의를 획득한다.
39)
즉 비구ㆍ비구니ㆍ정학의 율의는 반드시 승가(saṁgha) 즉 교단의 승인에 의해 획득되며, 그 밖의 사미ㆍ사미니ㆍ우바새ㆍ우바이ㆍ근주의 율의는 각기 개별적인 스승[阿闍梨]의 가르침에 의해 획득된다.
40)
『십송률(十誦律)』 권제56(대정장23,p.410상) 참조.
41)
즉 깨달은 자는 스승으로부터가 아니라 그 같은 지혜를 증득할 때 바로 구족계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42)
즉 견도를 증득함에 따라 구족계를 획득하는 것으로, 불타와 함께 고행하였던 교진여(憍陳女, Kauṇḍinya)ㆍ마하남(摩訶南, Mahānāman)ㆍ발제(跋提, Bhadrika)ㆍ바사파(婆沙波, Vāṣpa)ㆍ아설시(阿說示, Aśvajit, 馬勝으로 번역됨) 등이 그러하였다.
43)
이 같은 방식은 초기교단에서의 전형적인 츌가양식으로, 자신의 본원력(本願力)과 부처님의 위덕과 가피력에 의해 구족계를 획득하는 것이다. 야사(Yaśas,名聞ㆍ善稱으로 번역됨)는 불타성도 직후 친구 50명과 함께 출가하였으며, 그의 부모는 최초의 우바새, 우바리가 되었다. 이 기사는 『사분율』 권제32와 『오분율』 권제15에 나온다.
44)
소타이(Sodāyin, 善施로 번역됨)는 총명하여 7살에 부처님의 질문에 답하여 20세가 되지 않고 구족계를 받았다. 즉 부처님께서 일찍이 그에게 ‘너의 집은 어디 있느냐’라고 묻자 ‘3계에 집이 없다’고 대답하였다고 한다.(『구사론기』 권제14,대정장41,p.221하)
45)
대생주, 즉 마하파사파제(摩訶波闍波提, Mahāprajāpatī)는 불타의 이모로서 최초의 비구니. 부처님은 아난다를 그녀에게 보내 8존중법(또는 敬戒)을 설하게 하였다. 첫째, 백세의 비구니라도 새로이 수계한 비구에게 예경할 것. 둘째, 비구를 흉보거나 꾸짖지 말 것. 셋째, 비구의 과실을 열거하여 설하지 말 것. 넷째, 비구중으로부터 계를 받을 것. 다섯째, 승잔죄(僧殘罪, 성적 악습 등)를 지었을 때는 반달 동안 대중에게 참회할 것. 여섯째, 반달마다 비구중에게 가르침을 청할 것. 일곱째, 비구중에 따라 안거할 것. 여덟째, 안거 후 비구중에게로 가서 자자(自恣)할 것.
46)
법수니(Dharmadinnā)는 매우 아름다운 부인으로, 승가에 가 수계하려고 하였으나 도중에 난리가 일어나 이르지 못하자 승가에서 한 명의 비구니를 보내 수계하게 하였다.
47)
수계시 승가의 대중은 원칙적으로 10인 이상이 되어야 하나 변방의 나라에는 비구의 수가 적기 때문에 5인으로도 가능하다. 여기서 지율자(vinaya dhara)란 율의 봉지자로서, 수계시 계율의 작법을 담당하는 이를 말하는데, 5명 중에는 반드시 한 명의 지율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지율자를 다섯 번째 사람으로 삼는다’고 말한 것이다.
48)
‘60(『석론』에서는 16)의 현부’는 미상. 혹설에 의하면 야사의 친구 60인, 혹은 화지부(化地部)의 대중. 『구사논기』에서는 ‘현화중부(賢和衆部)가 모여있는 곳에 부처님이 아라한을 보내 삼귀의를 설하게 하였다’고 해설하고 있다.
49)
반달 동안 근주계를 수지한다고 해도 매일 아침 8계를 거듭 받아야 하는 것으로, 매일의 낮밤이 거듭되어 반달이 된다는 뜻.
50)
증어(adhivacana)란 ‘명(名)’ 즉 개념의 다른 명칭(본론 권제10 주29 참조). 즉 시간이란 그 자체 개별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유위제법의 변이상, 곧 제행(諸行)을 말한다.(본론 권제12 주20 참조)
51)
『광기』나 『보소』에 따르면 이는 경부의 난문이다. 즉 비구 등 7중(衆)의 율의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를 기한으로 하여 수지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겠으나, 근주율의가 하루 낮밤을 기한으로 수지되어야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유부에 의하면 이 같은 시간은 계경에 설해진 것으로 결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경량부에 따르면 시간이란 결정된 것이 아니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틀 혹은 열흘 낮밤을 수지한다 할지라도 아무런 허물이 되지 않는다. 즉 경량부에서는 교화하기 어려운 자는 율의를 하루 이상 수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경에서 그렇게 말한 것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다.(후술) 이는 경설을 세간상식에 위배되지 않게 해석하려는 경량부 특유의 논의형식이다.
52)
즉 불율의는 지자(智者)가 혐오하는 바이기 때문에 하루 낮밤 동안 악행을 저지른다고 하는 맹서를 받을 스승은 없다는 뜻.
53)
즉 율의무표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경량부의 경우(본론 권제13 참조) 불율의 역시 개별적인 실체로서 상속되는 것이 아니라 악행을 지어야겠다고 하는 의지작용(思심소)이 색심상에 종자적 형태로 훈습되어 부단히 상속하는 것을 가설(假說)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54)
여기서 8일 등이란, 백월(白月)과 흑월(黑月)의 8일ㆍ14일ㆍ15일, 즉 6재일로서, 흑월의 그것은 23일ㆍ29일ㆍ30일에 해당한다.(『기세인본경(起世因本經)』 권제7, 대정장1,p.402상)
55)
즉 계사가 먼저 계문(戒文)을 설하면, 수계자는 비록 그것을 알고 있더라도 반드시 그 이후에 외워야 한다.
56)
8지의 근주계는 살아있는 것을 죽이는 것, 주지 않는 것을 취하는 것, 비범행(非梵行), 거짓말하는 것, 음주, 향을 바르고 꽃다발로 몸을 장식하거나 춤추고 노래하며 그것을 보고 듣는 것[塗飾香鬘舞歌觀聽], 높고 넓으며 아름다운 평상이나 의자에 앉거나 눕는 것[座臥高廣嚴麗牀座], 먹을 때가 아닌데 먹는 것[食非時食]에서 떠나는 것이다.(전술)
57)
왜냐 하면 모든 원리지(遠離支)는 서로가 서로에게 계속(繫屬)되기 때문으로, 이 같은 8지 구족(具足)의 이유에 대해서는 다음 게송에서 설한다.
58)
장양(長養)의 원어는 upavāsatha(혹은 uposatha, 팔리어로는 posatha, 布薩ㆍ布沙陀 등으로 음사). 즉 이것의 변화어인 poṣadha는 poṣa(기르다)와 dhā(사역의 의미)가 합성되어 ‘장양’의 뜻이 되었다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근주(upavāsa)의 뜻이라는 설.
59)
이비시식계(離非時食戒)를 근주 8재계(齋戒)의 본질이라고 한 이유는 분명하지 않으나 포살과 감식(減食)을 밀접하게 관련시킨 바라문의 풍습이 고려되었든지, 아니면 서방(카슈미르의 서쪽)의 풍습에서 단식을 재계라고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구사론기』)
60)
『중아함경』 『지재경(持齋經)』(대정장1,p.770중); 『불설재경(佛說齋經)』(동,p.910) 참조. 즉 경에서 이를 제8지라고 하였으므로 그것을 독립시켜 다른 8지의 본질이라 할 수 없다는 뜻.
61)
보광에 의하면 이는 경부(經部)의 답이다. 즉 마치 수레를 구성하는 개별적인 갖가지 부품을 배제하고 별도의 전체자로서의 수레가 존재하지 않으며, 상(象)ㆍ마(馬)ㆍ차(車)ㆍ보군(步軍)을 떠나 4지군(支軍)이 없으며, 다섯 가지 가루를 배제하고서 5지산(支散)이라고 하는 약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각각의 지(支)를 배제하고 8재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
62)
즉 정견(正見)이 8정도의 도체(道體)이자(즉 도의 본질은 혜이고, 정견은 바로 혜를 본질로 하기 때문에) 도지(道支)이듯이, 7각지의 택법각지가 각체(覺體)이자 각지(覺支)이듯이, 4정려지(支)의 하나인 삼마지(혹은 等持)가 정려의 본질이자 정려지 중의 하나이듯이(이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8, p.1282 주48 참조), 이비시식(離非時食) 역시 재계(齋戒)의 본질이자 한 갈래[支]라는 뜻.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앞에서 이 율의의 공능에 대해 ‘항시식을 막음으로써 근주율의를 스스로 지닐 것을 억념하고 세간에 대한 염리심을 낳아 마음을 방종 방일하지 않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63)
삼보에 귀의하고 나서 율의를 받는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혹은 스승이 삼귀의를 설하는 것을 잊고 율의를 줄 경우에도 근주율의를 획득한다. 그러나 이 경우 스승이 죄를 획득하게 된다.
64)
『잡아함경』 권제33 제927경(대정장2,p.236중). 이는 바로 삼귀의를 통해 오파색가(upasāka, 즉 근사, 優婆塞)가 된다는 것을 논증하는 경증이다.
65)
즉 외국사(『광기』에 의하면 간다라논사)는 삼귀의를 외우는 찰나에 근사가 된다고 주장한 반면 카슈미르의 논사들은 삼귀의를 근거로하여 근사계 즉 5계를 수지하여야 비로소 근사를 성취한다고 주장한다.
66)
즉 앞에서 인용한 대명(大名)에 대한 설법에서 삼귀의에 의해 우바새가 된다고 함은, 삼귀의와 동시에 5계를 낳았기 때문이라는 뜻.
67)
『중아함경』 권제3 『화파경(惒破經)』(대정장1,p.435상), “세존이시여, 나는 이제 세 번째로 불ㆍ법ㆍ비구중께 스스로 귀의하옵나니, 원컨대 세존이시여, 저를 받아 우바새가 되어 오늘부터 몸이 다하도록 스스로 귀의하고 목숨이 다하게 하소서(世尊, 我今三自歸佛法及比丘衆, 唯願世尊, 受我爲優婆塞, 從今日始終身自歸命盡).” 참조.
68)
그러나 앞의 계경의 의미로 본다면 ‘사생(捨生)’은 이 같은 ‘사(捨)살생’의 뜻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생을 마친다’ ‘몸을 버린다’는 뜻으로, 이는 바로 경량부의 해석으로 논설된다.(후술) 참고로 『대비바사론』 (권제124,한글대장경122,p.561)나 『현종론』 (권제20, 앞의 책,p.539)에서는 ‘호생(護生)’으로 전하고 있으며, ‘사생(捨生)’은 이설이다.
69)
즉 구족계를 받은 비구는 학처를 배우지 않더라도 비구율의를 성취하지만 그것을 견고하게 수지하도록 하기 위해 학처를 설하는 것처럼, 근사의 경우도 삼귀의를 수지하고 ‘나는 근사이다’고 말할 때 근사율의가 생겨나지만 그것을 보다 견고히 하기 위해 다시 5계를 설한다는 것이다.
70)
다시 말해 삼귀의를 수지하는 것으로 바로 근사가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71)
『증일아함경』 권제20(대정장2,p.649하).“夫淸信士之法, 限戒有五, 其中能持一戒二戒三戒四戒乃至五戒, 皆當持之……”. 구역에서는 ‘배우는 자[學]’를 ‘지니는 자[持]’로 번역하고 있다.
72)
즉 비록 5지의 율의를 모두 받았을지라도 그 후에 어떤 인연에 의해 그것을 허물거나 결여하여 혹 어떤 경우 그 일부분만을 지니기도 하고, 혹 어떤 경우 5계 모두를 지니기도 하기 때문에 그렇게 설하였다는 것이다.
73)
즉 ‘지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에 근거할 경우, 근사는 모두 5계를 받기 때문에 앞에서와 같은 네 종류의 차별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74)
『잡아함경』 권제1 제30경(대정장2,p.6하), "我今已度. 我從今日歸依佛歸依法歸依僧爲優婆塞, 我從今日已盡壽命淸淨歸依三寶."
75)
4증정이란 무루지를 일으켜 4제의 이치를 증득한 성자가 불ㆍ법ㆍ승의 삼보를 믿고 성계(聖戒)를 엄수하는 것.
76)
만약 5계를 모두 받았더라도 그것을 능히 지니고 지니지 않음에 따라 근사에 다섯 종류가 있다고 한다면, 5계의 뜻을 이미 아는 이는 부처님께 그 종류를 묻지도 않았을 것이며, 부처님 역시 그에 대해 답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 즉 유부에서는 앞의 경설을 ‘능히 지니거나 배운다고 함은 이전에 받은 바를 지니고 배우는 것’이므로 최초의 수계시에는 5계를 모두 받지만[五戒定具說] 다만 수지 수학하는 단계에서 어떤 연에 의해 일부분의 율의만을 지니고 그 밖의 다른 율의는 지니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는 데 반해, 경량부에서는 경설에 따라 오계분수설(五戒分受說)을 주장한다.
77)
그러나 이 경우 죄는 율의를 주는 스승이 획득한다. 주63) 참조.
78)
즉 부처를 성취하는 무학법은 진지(盡智)와 무생지(無生智), 그리고 그것과 상응구기하는 무루의 오온이다. 진ㆍ무생지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6(p.1178)에서 논설함.
79)
즉 학법ㆍ무학법을 성취함으로 말미암아 4향(向) 4과(果), 즉 예류향ㆍ예류과, 일래향ㆍ일래과, 불환향ㆍ불환과, 아라한향ㆍ아라한과가 성취되기 때문에 귀의승의 본질은 학ㆍ무학법이라고 한 것이다. 참고로 승가에는 무치승(無耻僧)ㆍ아양승(瘂羊僧)ㆍ붕당승(朋黨僧)ㆍ세속승(世俗僧)ㆍ승의승(勝義僧)의 다섯 가지가 있다. 여기서 무치승이란 금계(禁戒)를 훼손하면서 법복을 입은 자이며, 아양승이란 삼장에 대해 이해하거나 달통함이 없는 자로서, 벙어리 양처럼 변설(辯說)이 공용이 없는 자, 붕당승이란 이를테면 흩어져 놀거나[遊散] 업무를 경영하고 투쟁함에 있어 뛰어난 방편으로 붕당을 결성하는 자를 말하는데, 이 세 가지 승은 다분히 비법(非法)의 업을 짓는 자들이다. 그리고 세속승이란 선한 이생으로서, 작법(作法)과 비작법의 업에 능통한 이들이다. 승의승이란 바로 학ㆍ무학의 법과 아울러 그 소의로서의 그릇이 될 만한 자를 말하는데, 이들은 결정코 비법의 업을 짓는 일이 없기 때문에 다섯 가지 승가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80)
『불설태자서응본기경(佛說太子瑞應本起經)』 권하(대정장3,p.479중). 부처님께서는 성도 후 최초로 제위(提謂, Trapusa)와 파리(波利, Bhallika)등 5백 명의 상인에게 삼귀계를 주었지만 당시는 아직 승가가 성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같이 말한 것이다.
81)
자신의 수많은 번뇌와 고과(苦果), 그리고 타인의 수많은 번뇌와 고과가 적정 소멸하여 동일상이 되는 경지가 바로 열반이다. 따라서 열반에는 수많은 열반이 있지만 그 상은 적멸로서 동일하다.
82)
참고로 『대비바사론』 (권제116,한글대장경122,p.363)상에서 유부는 ‘출불신혈(出佛身血)’과 ‘파화합승(破和合僧)’의 죄의 경중을 비교하여, 전자는 다만 불타의 색신을 파괴하는 것일 뿐이지만 후자는 법신을 파괴하는 것이어서 그 죄가 더 무겁다고 논의하고 있다.
83)
즉 경에서 부처의 색신을 부처 자체(법신)에 포섭되지 않는다고 특별히 설한 일이 없기 때문에 색신을 역시 부처라 이름해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뜻.
84)
여래의 18불공법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27(p.1223 이하)을 참조할 것.
85)
여기서 비범행(구역은 婬欲)이란 일체의 음행으로 출가자의 금계이며, 욕사행(구역은 邪婬)이란 다른 이의 처를 범하는 등의 불의의 음행으로 재가자의 금계이다.
86)
경생의 성자란 몇 번의 생을 거쳐 깨달음을 획득하는 성자의 뜻으로, 예류나 일래를 말한다. 즉 그들은 욕사행은 떠났지만 취처(娶妻)하여 비범행을 행하기 때문에, 만약 근사율의에 ‘이(離)비범행’을 설정하게 되면 그러한 성자 또한 근사율의를 범하게 된다.
87)
즉 이전에 처첩을 취하지 않은 상태에서 근사율의를 받았다가 그 후 처첩을 취하였을 경우에 욕사행의 계를 범하는 것이 아니지만 욕사행을 떠나겠다는 율의에 미래의 처첩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욕사행을 행하지 않겠다는 맹세는 일부분(미래 처첩을 제외한)에만 적용된 것에 불과하다는 뜻. 율의를 받는 자는 반드시 율의를 특정의 유정ㆍ갈래[支]ㆍ처소[處]ㆍ시간[時]ㆍ조건[緣]에 한정시키지 않아야 비로소 획득할 수 있다.(본론 권제15 참조)
88)
네 가지 어업도 즉 이간어(離間語, 즉 兩舌)ㆍ허광어(虛誑語, 즉 妄語)ㆍ추악어(麤惡語, 즉 惡口)ㆍ잡예어(雜穢語, 즉 綺語) 가운데 허광어를 떠나는 계만을 근사율의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상 4업도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16 참조.
89)
5계 중 불음주를 제외한 살생 등의 네 가지는 그 자체로서 죄악이기 때문에 성죄(性罪)라 하며, 음주는 그 자체로서는 죄가 아니지만 실념하여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을 망각하게 하는 죄이기 때문에 차죄(遮罪)라고 한다. 본 단에서는 차죄에는 음주나 도식향만(塗飾香鬘), 좌와고광엄려상좌(坐臥高廣嚴麗床座) 등이 있지만, 음주만을 근사율의로 설정하게 된 이유에 대해 밝히고 있다.
90)
솔라주는 곡주(穀酒) 혹은 미주(米酒)라고도 하며, 미려야주는 목주(木酒)라고도 한다. (『십송율』 권제17,대정장23,p.121중)
아비달마구사론 제15권
1)
이 단에서는 세 가지 율의의 획득방법에 대해 논설하고 있다. 즉 별해탈율의를 획득하는 방식으로 다른 두 가지 율의도 획득되는가 하는 물음이다.
2)
별해탈율의는 악업의 근본업도(본격적인 행위)와 그 앞뒤의 가행(예비적 행위)과 후기(근본에 따르는 부수적 행위)를 떠나는 등의 일체 조건에 따라 일어난다. 다시 말해 별해탈율의란 바로 이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하여 이를 떠날 때 비로소 획득되기 때문에, 본송에서 ‘일체에 따라 획득된다’고 한 것이다.
3)
유정에 대한 성죄란 이를테면 살생 등의 업을 말하며, 유정에 대한 차죄란 이를테면 여인과 같은 방에서 잠을 자는 것 따위를 말한다. 비유정에 대한 성죄란 이를테면 다른 이의 재물을 훔치는 것을 말하며, 비유정에 대한 차죄란 이를테면 땅을 파헤쳐 살아 있는 풀 등을 끊어버리는 것 따위를 말한다. 따라서 별해탈율의는 바로 이러한 두 가지 유형의 악업처를 떠날 때 획득된다.
4)
여기서 유정은 유정 자신을 말하며, 유정처란 유정의 의지처(依止處)가 되는 것을 말하는데, 현재의 온ㆍ처ㆍ계로서 내적인 것은 바로 유정의 소의(所依)이며, 외적인 것을 일컬어 유정의 소지(所止)라고 한다. 그러나 과거ㆍ미래의 그것은 유정의 의지처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에 따라서는 별해탈율의가 획득되지 않는 것이다.
5)
정려생과 무루 즉 도생율의는 선정의 상태에서만 획득되며, 나아가 선정의 상태에서는 근본업도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가행과 후기는 산심(散心)의 상태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6)
즉 정려생과 무루율의는 오로지 성죄(性罪, 즉 차죄에 대한 근본업도)를 대상으로 하여, 다시 말해 성죄를 떠남으로서 획득될 뿐, 가행인 차죄를 대상으로 하여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7)
두 가지 율의는 심수전법(心隨轉法)으로 마음과 구유(俱有)하기 때문에, 마음이 과거ㆍ현재ㆍ미래를 연으로 한다면 그러한 마음과 구유하는 계(戒) 역시 3세에 대한 방비지악의 작용이 있는 것이다.
8)
제1구는 별해탈율의는 획득되지만 그 밖의 두 가지 율의는 획득되지 않는 경우. 제2구는 정려ㆍ무루율의는 획득되지만 별해탈율의는 획득되지 않는 경우. 제3구는 별해탈율의도 획득되고 그 밖의 두 가지 율의도 획득되는 경우. 제4구는 별해탈율의도 획득되지 않고 그 밖의 두 가지 율의도 획득되지 않는 경우.
9)
이는 앞의 4구분별에 대한 논주 세친의 비평이다. 즉 제1ㆍ3구의 경우, 현재 바로 선한 율의를 수지한다면 현세에 악업도 등이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행위를 근거로 하여 율의의 획득을 논의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마땅히 현세의 업도처(處)로 정정해야 한다. 왜냐 하면 선한 율의를 수지할 때 악업도는 없을지라도 악업을 일으키는 처소는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는 이미 멸하였고, 현재는 이미 생겨났기 때문에 율의는 미래의 악업을 대상으로 하여 획득되는 것, 다시 말해 미래의 악업을 방호하는 것이라고 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중현은 다음과 같이 해명하고 있다. ‘업도 등의 소의처[處]에 대해 업도 등이라고 말한 것이니, 업도 등이라고 하는 말로서 그것의 소의처를 설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만약 이것(앞의 4구분별)과 다르다면 마땅히 미래의 악업만을 방호하는 율의라고 설해야 할 것이지만, 단지 미래의 죄만을 능히 방호하여 일어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그렇게 설하지 않은 것이며], 과거ㆍ현재의 악업은 이미 멸하였고 이미 생겨나 그것을 방호할 수 없으니, 율의는 그것에 대해 방호하는 작용이 없기 때문이다.’(『현종론』 권제20, 한글대장경200,p.554)
10)
율의의 갈래란 근본업도 즉 살생ㆍ투도ㆍ사음 등의 세 가지 신업과 양설ㆍ망어ㆍ악구ㆍ기어 등의 네 가지 어업을 말하며, 율의의 근거는 무탐ㆍ무진ㆍ무치 등의 3선근과 상ㆍ중ㆍ하의 등기심을 말한다.
11)
예컨대 불살생율의라고 할 때 그것은 인간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동물을 비롯한 살아있는 일체의 유정을 대상으로 하여 획득된다. 다시 말해 율의를 획득한 자에게는 어떤 일부의 유정에 대해서도 악의 의요(意樂), 즉 악심이 존재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12)
율의의 갈래[支]란 근본업도를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는 살생ㆍ투도ㆍ사음의 세 가지 신업과 양설ㆍ망어ㆍ악구ㆍ기어의 네 가지 어업이 있는데(탐ㆍ진ㆍ치의 의업은 가행이기 때문에 제외됨), 필추율의는 이러한 일곱 가지 모두에서 떠날 때 획득되고, 그 밖의 율의는 신업의 세 가지와 망어(즉 거짓말)에서 떠날 때 획득된다.
13)
즉 율의를 획득하게 되는 근거[因]에는 무탐ㆍ무진ㆍ무치와 상ㆍ중ㆍ하의 마음이 있지만, 전자는 한 찰나의 마음에 구기하기 때문에 일체의 율의는 동일한 근거에 따라 획득된다. 그러나 상ㆍ중ㆍ하의 마음은 동시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율의에는 하심에 의해, 중ㆍ상 심에 의해 획득된 것이 있으며, 그래서 본송에서 수계의 근거는 일정하지 않다고 설한 것이다.
14)
이를테면 어떤 이가 하심으로써 근사계를 받고, 중심으로써 근책계를, 그리고 마침내 상심으로써 필추계를 받았을 경우, 이 때 필추계는 일체의 갈래와 일체의 근거에 의해 획득된 것이다. 그러나 필추계를 제외한 다른 계는 일체의 갈래에 의해 획득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15)
여기서 비소능경(非所能境)이란 과거ㆍ미래의 온ㆍ처ㆍ계와, 이를테면 상계의 유정처럼 능력이 미치지 못하여 해코지할 수 없는 유정을 말하며, 이하 논설의 소능경(所能境)이란 현재의 온ㆍ처ㆍ계 중에서 우리들의 능력이 미치는, 다시 말해 해코지할 수 있는 범위의 유정을 말한다. 본 단은, 앞서 논의한 것처럼 유정의 한정을 짓지 않아야 율의를 획득하는 것이라면 바로 ‘이 같은 비소능경을 대상으로 하여 어떻게 율의를 획득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이다. 여기에는 고래로 두 가지 해석이 있는데, 일체의 유정을 대상으로 하여 동일한 7지(支)의 율의를 획득한다는 총발설(總發說)과 일체의 유정 각각에 대해 각각의 7지를 일으키므로 유정의 수만큼 계체(戒體)가 존재한다는 별발설(別發說)이 그것이다. 전자가 논주의 설이라면 후자는 유부 비바사사(毘婆沙師)가 채택한 설이다.
16)
만약 살생 등의 업도가 불가능한 유정에 대해서는 율의를 획득하지 못한다고 한다면, 인간계에서 불살생율의의 대상이 되었던 자가 천상계에 태어날 경우, 그 사람에 대해서는 지율자(持律者)의 의사(의요)와는 관계없이 율의를 버려야 하며, 따라서 율의는 그만큼 감소되었다고 할 수 있다. 율의의 획득의 연에 대해서는 앞에서 논설하였고, 사기(捨棄)의 연에 대해서는 후술함.
17)
즉 유정은 죽어 다른 곳에 태어나더라도 업의 상속으로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지만 풀 등은 일찍이 멸한 것과 뒤에 생겨난 것 사이에 자기 동일성의 관계가 없기 때문에 동류의 예증이 되지 않는다는 힐난.
18)
이는 논주 세친, 혹은 경부사에 의해 제기된 난문이다. 즉 유부에서는 앞에서 언급한대로 율의와 불율의는 일체의 유정을 대상으로 하고, 세 가지 신업과 네 가지 어업의 7지(불율의의 경우 일체의 악업)를 갖추어야 비로소 획득되는 것이라고 논의하지만, 경부에 의하는 한 일부의 유정을 대상으로 한 일부의 악업에 의해서도 불율의는 획득된다. 이하 문답은 경부사와 유부 비바사사 사이에 이루어진 것임.
19)
이는 윤회를 전제로 한 답이다. 즉 절친한 이는 물론 타인에 대해 해코지할 마음이 없다할지라도 끝없이 윤회하는 동안 일체중생은 언젠가는 양이 될 것이고, 그 때는 도양자(屠羊者)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사실상 도양자는 양 뿐만 아니라 일체중생에 대해 해코지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뜻.
20)
간단히 말하자면, 현재 절친한 이가 미래 양이 될 경우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도 불율의를 획득하는 것이라면, 반대로 현재의 양에 대해서도 그것이 미래 절친한 이나 성자 등이 될 것임을 관찰하여 해치려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21)
말하자면 그에게는 선한 의요가 없고 악한 의요만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성자나 절친한 이를 미래의 양을 관찰하여 그들에 대해서도 역시 악계를 낳을 수는 있어도, 현재의 양의 몸을 미래의 성자나 절친한 이로 관찰하여 그것에 대해 악계를 낳지 않는 일은 없다.(『현종론』 권제20, 앞의 책, p.562)
22)
실제로는 신(身)3 어(語)4의 악업을 모두 짓지 않는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 선심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그 결과로서 7지 전체의 불율의를 획득한다는 뜻.
23)
이는 이를테면 이전에 불살생ㆍ불투도ㆍ불사음의 계를 받았던 이가 어떤 사정에서 도살자가 되었지만 불투도 등에 대한 의요가 아직 손상되지 않은 경우임.
24)
즉 율의는 불율의에 반대되는 것이고, 불율의는 율의에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의 수량이 어떠하든, 다시 말해 모든 갈래를 대상으로 삼든 일부의 갈래를 대상으로 삼든 율의와 불율의를 성취할 수 있다는 뜻.
25)
근주의 8재계(齋戒)는 다만 하루 낮밤을 기한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신3 어1(허광어)를 모두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26)
여기서 전(kṣetra)이란 복전(福田)을 말하며, 수(dna)란 집지(執持)ㆍ섭수(攝受)의 뜻이다. 그리고 중행(ādarehana)이란 중대하게 고려되어 행해진 것이라는 뜻이다.
27)
본론 권제13 주1)의 본문 참조.
28)
더 이상 계를 지킬 뜻이 없어 지금까지의 작법(作法)을 버리려는 의사(의요)를 일으켜 능히 그러한 뜻을 알아 주는 이에게 말(어표업)함으로써 계를 버리게 된다. 즉 별해탈율의가 반드시 맹서의 발설에 따라 일어나듯이 그것의 기사(棄捨) 역시 버리려는 마음에 의해서만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29)
즉 별해탈율의는 중동분인 소의신에 근거하여 획득 상속되기 때문에 목숨이 다하여 소의신을 버릴 때 율의도 버리게 된다.
30)
소의신이 변화하여 남근ㆍ여근이 동시에 발생하는 경우 마음도 따라 변이하기 때문이다.
31)
이는 경부(經部)의 주장이다. 그들은 ‘네 가지 극중죄를 범한 자는 비구의 근본을 깨트리고 사문의 덕성을 해친 타승(他勝, 즉 波羅夷)으로 비구 사문이라고 할 수 없다’는 불설을 들어 그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불설에 대해 유부 비바사사는 ‘4바라이를 범한 이는 사계(捨戒)하지는 않지만 견도를 획득하는 승의의 비구는 될 수 없다고 하는 뜻을 은밀히 그렇게 말한 것이다’고 해석하고 있다.(후술) 여기서 네 가지 극중죄란 살인ㆍ불여취ㆍ비범행ㆍ망설승인법(妄說勝人法, 깨닫지 않고 깨달았다고 거짓말하는 것)을 말한다.
32)
이는 달마구다부(達磨毬多部, Dharmaguptaka, 法藏部 혹은 法密部라고도 함)의 주장으로, 여기서 결계(sīmabandha, 구역에서는 戒壇)란 율의자들이 머무는 지역을 말하며, 갈마(karma)란 수계 혹은 참회의 의식작법을 말한다.
33)
『대비바사론』 권제119(한글대장경122,p.458), ‘가습미라국의 모든 논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가 율의를 범할 때 율의를 버리지 않으며 비율의비불율의를 획득하니, 그래서 그 때를 일컬어 비율의비불율의에 머무는 자라고 하고 역시 율의에 머무는 자라고도 한다. 그러나 만약 그 때 숨기는 마음없이 드러내어 법대로 참회하고 제거하면 비율의비불율의를 버리고 다만 율의에 머무는 자라고 이름할 뿐이다. 마치 어떤 부자가 남에게 빚지고 있을 때에는 부채자라고도 하고 부자라고도 하다가 빚을 갚고 나면 다만 부자라고 하는 것과 같다.’
34)
『십송율(十誦律)』 권제21(대정장23,157상). 여기서 ‘타승’이란 바라이(波羅夷, pārājik)의 역어로서, 『광기』에 따르면 선법을 ‘자(自)’라 하고 악법을 ‘타(他)’라고 하였을 때, 선법이 악법보다 수승할 경우 ‘자승’이라 하고 악법이 선법보다 수승할 경우 ‘타승’이라 한다. 그래서 4중죄를 타승이라 한 것이다.
35)
여기서 승의의 필추(구역에서는 眞實比丘)란 견도이상의 성자를 말한다(이에 반해 세속의 필추는 바로 이생 범부를 말한다). 즉 네 가지 극중죄(바라이법)을 범한 이는 비록 율의를 버리지는 않지만 견도 이상의 성자는 될 수 없다는 뜻을 은밀히 그렇게 말하였다는 뜻.
36)
‘흉발(凶勃)’을 구역에서는 불계명대과사(不計命大過事) 즉 ‘목숨을 헤아리지 못하는 커다란 허물’이라 번역하고 있다.
37)
네 가지 중죄를 지으면 비구가 아니라는 말 그대로의 사실을 왜곡하여 다만 견도의 성자가 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할 경우, 이는 번뇌가 많은 이로 하여금 중죄를 지어도 괜찮다는 근거[緣]를 마련해 주는 것과 같다.
38)
『십송율』 권제1(대정장23,p.2상), ‘비구에는 네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명자(名字)비구이며, 둘째는 자언(自言)비구이며, 셋째는 위걸(爲乞)비구이며, 넷째는 파번뇌(破煩惱)비구이다.’
39)
앞서 ‘극중죄를 지은 자는 필추라 이름하지 않는다’고 하였을 때의 비구는 지금 여기서 인용한 네 종류 이외의 비구가 아니지만, 수계작법(白四羯磨, 한번 묻고 세 번 가부를 물어 결정하는 의식)을 통해 구족계를 받은 비구도 아니다. 즉 견도 이상의 성자로서 4중죄를 범하는 이는 없으며, 따라서 그에 대해 ‘비구가 아니다’고 하였을 리도 없다. 그러므로 율에서 ‘필추라 이름하지 않는 이’는 적어도 성자가 아니며, 따라서 이것은 승의비구에 의거하여 설한 것이 아니다.
40)
『중아함경』 권제29 『첨파경(瞻波經)』(대정장1,p.610하)에 이와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41)
『장아함경』 권제3 『유행경』(대정장1,p.18중). 여기서는 도를 행함이 수승한 사문[行道殊勝], 도의 뜻을 잘 설명하는 사문[善說道義], 도에 의지하여 생활하는 사문[依道生活], 도를 위해 악을 짓는 사문[爲道作穢]으로 설명된다. 『대비바사론』(권제66,한글대장경120,p.362)의 설명에 따르면 첫 번째 ‘행도수승’ 즉 승도(mārgajina)사문은 부처 독각과 같은 무사독오(無師獨悟)의 사문, 두 번째 ‘선설도의’ 즉 시도(mārgadaiśika)사문은 존자 사리자와 같이 견줄 만한 이가 없는 대장군으로 항상 부처를 따라 법륜을 굴리는 일체 무학의 성문, 세 번째 ‘의도생활’ 즉 명도(mārgajīvin)사문은 아난다처럼 유학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무학과 같이 많이 듣고 청정한 계를 수지한 일체의 유학, 네 번째 ‘위도작예’ 즉 오도(mārgadūṣin)사문은 막락가(莫落迦)비구처럼 남의 물건을 좋아하는 악비구이다. 본 논설은 즉 율의를 범한 오도사문 또한 사문의 일종이기 때문에 범계하여도 비구의 체성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는 경증이다.
42)
만약 중죄를 범한 이는 율의를 모두 상실하여 비구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에게 다시는 학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난제(難提)비구는 4중죄를 범하였지만 숨김없이 고백하고 참회하였기 때문에 세존께서는 다시 계를 주어 배우게 하였다고 한다.
43)
이는 앞(주32)서 언급한 달마구부다 즉 법장부의 주장을 비판한 논설이다.
44)
이를테면 하지에서 몰하여 상지에 태어날 때 하지의 선법을 버리게 되며, 또한 역시 상지에서 몰하여 하지에 태어날 때 상지의 선법을 버리게 된다.
45)
내범위(內凡位)의 성자가 난(煖)ㆍ정(頂)ㆍ인(忍)ㆍ세제일법(世第一法)의 4선근 중의 상인(上忍)과 세제일법을 제외한(여기서는 반드시 견도로 나아가기 때문에 명종하지 않음) 난ㆍ정ㆍ하인ㆍ중인의 상태에서 목숨을 마칠 때에는 정려생율의를 버리게 되는데, 이 경우 지(地)를 바꾸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게송에서 ‘등’이라고 말한 것이다.
46)
무색계에는 신(身)ㆍ어(語)가 없기 때문에 7지(支)의 율의도 없다.
47)
어떠한 이가 네 가지 사문과(沙門果) 중의 하나를 획득할 경우, 획득하는 과의 향도(向道)와 그 이전의 과도(果道)를 모두 버리게 된다. 예컨대 아라한과를 획득할 경우 아라한향과 불환과를 버리게 된다.
48)
중현은 이 같은 연은 다음의 퇴실(退失)의 연에 포함시켜 논설하고 있다.(『현종론』 권제21,한글대장경201,p.4)
49)
여기서 과도(phala mārga)란 성자의 과위(果位)에 속한 무루도로서, ‘과 중의 도’라는 뜻이며, 승과도(phala viśisṭamārga)란 과를 획득하기 이전에 뛰어난 과위로 나아가는 무루도를 말함. 예컨대 불환의 성자가 불환과로부터 일래과로 퇴실(退失)하였을 경우, 그는 불환과의 도[果道]와 그것으로 나아가는 불환향의 도[勝果道]를 함께 버리게 된다.
50)
즉 율의나 불율의는 바로 소의신의 중동분(衆同分)의 세력에 의해 획득되기 때문이다.
51)
여기서 인연의 힘은 율의를 획득하게 되는 조건. 본권 첫머리를 참조할 것.
52)
목숨이 다할 때까지 불율의를 버린다고 맹서하지 않고 하루 낮밤 동안만 버리겠다고 맹서하였기 때문에 악한 의요가 영원히 사기(捨棄)되지 않았다는 뜻. 즉 뜨거운 쇳덩이가 푸른 색이 되었다고 해서 뜨거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53)
이 양설에 대해 중현(衆賢)은 앞의 설이 이치에 맞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일찍이 계를 받을 때 악한 아세야를 영원히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전의 표업에 의해 다시 악계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이다.(『현종론』 권제21,앞의 책,p.5)
54)
예컨대 어떤 이가 ‘항상 제다(制多, caitya, 塔廟를 말함)에 예경하고 찬송 등을 하리라’고 맹서하고 그것을 수지하였지만, ‘지금부터는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말할 때 본래의 의요를 버렸기 때문에 제다에 예배하려는 의요는 이로부터 바로 종식된다. 혹은 그 같은 생각은 이전의 맹서와 모순되고 강성하기 때문에 본래 의요가 종식되고 무표는 바로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55)
이를테면 ‘나는 지금부터 부처님이나 승가에게 공양하기 이전에는 결코 식사하지 않겠다’고 하는 맹서를 하고서 그러한 선한 의요를 버리지 않았을지라도 이전의 작업(즉 어표업)을 폐하여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을 때 그 결과인 처중의 무표도 버려진다.
56)
즉 본래 그 같은 사물로 말미암아 처중(處中)의 무표가 인기되어 낳아졌기 때문에 그러한 사물이 허물어질 때 처중의 무표는 바로 사기(捨棄)되는 것이다.
57)
여기서 욕계의 비색(非色)이란 표ㆍ무표색이 아닌 욕계의 선법(生得善과 聞ㆍ思所成慧의 加行善)과 3계의 일체 번뇌 등의 염법을 말한다.
58)
선체(ṣaṃdha, 無根으로 번역됨)는 생식기가 없는 자, 반택가(paṇḍaka, 不男, 또는 黃門. 중국에서 황색의 궁궐문을 지키는 이가 내시이기 때문에 ‘황문’임)는 남근불구자를 말함. 보통 반택가라고 하면 성불구자로서, 여기에는 나면서부터 없는 이[扇搋], 잘라버린 이[留拏], 다른 이의 음행을 보고야 정욕을 일으키는 이[伊利沙], 음행할 때 상실되는 이[般吒], 한 달에 반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博叉] 등 다섯 가지가 있다.
59)
『잡아함경』 권제33 제927경(대정장2,p.236중) 참조.
60)
『십송율』 권제21,「수구족계법(受具足戒法)」 제1(대정장23,p.153하)에서는 생(生)ㆍ반월(半月)ㆍ투(妬)ㆍ정(精)ㆍ병(病) 등의 5종 불능남(不能男)에게는 구족계를 줄 수 없다고 설하고 있다.
61)
이들에게 불율의가 없는 것은 악의 의요가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며, 율의와 불율의는 동일한 소의신에서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인데 그들에게는 율의가 없기 때문에 불율의도 역시 없는 것이다.
62)
악취인 용이 비록 근주의 8재계를 수지하더라도 그것은 다만 처중(處中)의 묘행(妙行)일 뿐 율의는 아니다는 뜻.
63)
왜냐 하면 중간정과 무상천은 이생ㆍ외도만이 태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64)
이 같은 3업설은 현존 4아함 상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아마도 경에서 뜻을 취하였거나 다만 3성으로 분별하여 이같이 논설하였을 것이다.
65)
여기서 ‘안온한 업(kṣema karma)’이란 안온한 과보를 초래하여 향수하게 하는 업이라는 뜻으로, 이는 결과를 원인의 명칭으로 삼은 경우이다. 참고로 『대비바사론』(권제25,한글대장경118,p.557)에서는 손해행(損害行)을 불선업이라 하고, 불손해행을 선업이라 하였다.
66)
『중아함경』 권제27 『달범행경(達梵行經)』(대정장1,p.600상) 참조.
67)
『중아함경』 권제50 「가루오타이경(加樓鄔陀夷經)」(대정장2,p.743상)에서는 ‘초정려에는 심(尋)ㆍ사(伺)가, 제2정려에는 희(喜)가, 제3정려에는 낙(樂)이 있기 때문에 아래 세 정려를 유동(有動), 즉 이동이 있는 것’이라고 설하고 있는데, 상 2계의 선을 ‘부동업’이라고 하면 이 같은 경설과 모순되지 않는가 하는 난문.
68)
심ㆍ사 등의 재환에 대해서는 본론 권제12(p.586)와 권제28(p.1292)을 참조하라.
69)
『중아함경』 권제18 제75경 『정부동도경(淨不動道經)』 (대정장1,p.542중:한글대장경 『중아함경』1,p.204).
70)
욕계의 업은, 축생ㆍ인간ㆍ천취 등의 보편적 과보[總報]를 초래 인기하는 인업(引業)과 남녀ㆍ빈부ㆍ귀천 등의 차별적 과보[別報]를 초래하여 유정의 일생을 다양하게 원만 장엄시키는 만업(滿業)이 대체로 정해져 있지만(본론 권제17, p.797 참조), 산지(散地)이기 때문에 강력한 선심ㆍ악심이 일어나면 그 힘에 의해 취처(趣處)가 바뀔 수 있다. 다시 말해 인취의 업이 천취의 이숙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상계의 업, 이를테면 초정려의 업은 초정려의 이숙을 초래하는 등 자지(自地)의 이숙과만을 초래하며 결코 다른 지의 이숙과를 초래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부동업’이라고 하는 것이다.
71)
여기서 ‘수(受)의 자량’이란 수가 생겨나게 되는 근거로서, 수 이외의 4온(普光의 해석), 혹은 근ㆍ경과 소의(稱友의 해석), 혹은 구유법과 온갖 근ㆍ경(安慧의 해석) 등을 말한다.
72)
정려중간에는 이미 고수와 낙수가 없다고 하였으므로 마땅히 그것을 초래하는 업도 없어야 하겠지만, 그러나 정려중간에서도 이숙은 초래되며, 따라서 그것은 사수(捨受)의 이숙이기 때문에 거기서의 이숙의 업은 순불고불락업이라는 것이다.
73)
중간정과 초정려는 동일한 단계이기 때문에 중간정의 무심유사(無尋唯伺)의 업은 근본 초정려 지 중의 안(眼)ㆍ이(耳)ㆍ신식(身識)과 상응하는 낙근의 이숙을 초래한다는 뜻.
74)
중간정의 무심유사의 업은 이숙성의 수과(受果)를 초래하는 일없이 오로지 등류성의 동일한 수만을 초래한다는 뜻.
75)
여기서 본론은 『발지론』 권제11(대정장226,p.973상; 한글대장경176,p.239).
76)
같은 논(한글대장경176,p.246). 순락수업은 안(眼) 등의 색의 이숙과를 초래하고, 순고수업은 욕계 고수와 상응법(5식과 상응하는 법)을 초래하며, 이와 동시에 순불고불락수업은 명근 등을 초래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이로써 순불고불락수업, 즉 순사수업(順捨受業)이 욕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뜻. 즉 여기서 순고수업은 오로지 욕계의 과보만을 초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77)
제3정려 이하의 수승한 선업은 모두 낙수를 초래하기 때문에, 선업으로서 사수를 초래하였다면 그것은 뛰어난 것이 아니다.
78)
그렇기 때문에 선업으로서 사수(捨受)를 초래하는 것은 없다는 힐난.
79)
제3정려에 이르기까지의 선업을 ‘순락수업’이라 이름하고, 참으로 애호할 만한 과보를 획득하는 것을 ‘선업’이라고 한 것은 전체적으로 말해 그렇다는 것이기 때문에, 제3정려 이하의 사수업(捨受業)을 선업이라 해도 이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뜻.
80)
다시 말해 업은 낙수를 낳는 자량이 된다.
81)
낙은 감수되는 것이고 업은 감수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업과 수는 그 체성(體性)이 다른데, 어떻게 업을 순락수 등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가루비누[散=洗粉]는 목욕하는 데 반드시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순욕산(順浴散, snānīya kaṣāya)이라고 하듯이 낙수 등은 업에 수순하기 때문에 ‘순락수’라고 이름하였다는 것이다.
82)
『잡아함경』 권제12, 제290경(대정장2,p.82상). 자성순수란 영납(領納)을 자성하는 ‘수’ 그 자체를 말한다.
83)
『잡아함경』 권제13, 제313경(동p.90하).
84)
『중아함경』 권제15, 「사경(思經)」(대정장1,p.437).
85)
『중아함경』 권제24, 「대인경(大因經)」(대정장1,p.580상).
86)
순현법수업(또는 順現業)은 현생에 지은 업의 과보가 현생에 이숙하여 나타나는 업이며, 순차생수업(또는 順生業)은 다음 생에 이숙하여 나타나는 업이며, 순후차수업(또는 順後業)은 다음 생 이후에 이숙하여 나타나는 업이다.(후술)
87)
과보를 초래하는 시기는 결정적이지 않으나 이숙이 결정적인 업[時不定異熟定業]과 과보를 초래하는 시기와 이숙이 모두 결정적이지 않은 업[時異熟俱不定業].
88)
보광에 의하면 이는 경부사(經部師)의 논설이다. 즉 업의 상속에 의한 ‘일업인다생설(一業引多生說)’(본론 권제17 주102 참조)을 주장하는 경량부에 의하면 순현법수업의 경우 수보(受報)의 시작은 현생이지만 그 업력이 강성하여 다음 생까지 계속될 수 있으며, 또한 순차생수업이나 순후차수업의 경우 역시 그 수보의 시작은 다음 생, 혹은 그 다음의 생이지만 그것이 미진할 경우에는 계속하여 이숙의 과보를 초래한다. 따라서 삼시업(三時業)은 유부에서처럼 초래되는 과보의 결정적인 시기에 따라 설정된 것이 아니라 다만 ‘수보의 시작’을 기준으로 하여 설정된 것으로서, 결과산출의 시기가 현생에 가까울수록 업력이 강성하며, 멀수록 경열(輕劣)하다는 것이다.
89)
이 같은 비유자(칭우에 의하면 경부 비유자, Darṣtāntikāḥ sautrāntikāḥ)의 8업설은 『대비바사론』(권제114, 한글대장경122, p.328)에서는 유여사의 설이기 때문에 본송에서도 그렇게 설한 것이다. 이는 바로 유부의 4업설을 과보를 받는 시기와 이숙과의 정ㆍ부정에 따라 4구분별하여 8업설로 확장시킨 것으로, 이상의 2업ㆍ4업ㆍ5업ㆍ8업의 관계를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90)
세 명의 사자를 보내 한 명에게는 살생을, 한 명에게는 도둑질을, 다른 한 명에게는 거짓말을 하게 하고, 자신은 욕사행, 즉 사음을 행할 경우, 그 중의 한 가지는 순현법수의 과보를 받고, 다른 한 가지는 순차생수 등의 과보를 받게 된다.
91)
욕계의 염오를 떠난 불환과의 성자와 유정처의 염오를 떠난 아라한은 설사 그러한 과위로부터 물러나는 일이 있을지라도 명종하지 않고 도중에 다시 회복하기 때문에(본론 권제25, p.1141 참조) 순차생수업과 순후차수업을 짓지 않는 것이다.
92)
욕계에 계속(繫屬)되는 중유는 이치상 중유위와 태내(胎內) 5위와 출태(出胎) 이후의 5위의 과보를 초래하는 정업과 부정업 등 도합 스물두 가지 업을 지을 수 있다.
93)
갈랄람(kalalam)은 입태후 첫 7일간, 알부담(arbudam)은 두 번째 7일간, 폐시(peśi)는 세 번째 7일간, 건남(ghanam)은 네 번째 7일간, 발라사가(praśākha)는 다섯 번째 7일로부터 이후 서른네 번째의 7일간이다. 또한 영해는 해산 후 6세까지이며, 동자는 7세부터 15세까지, 소년은 16세부터 30세까지, 중년은 31세부터 40세까지, 노년은 41세 이후의 시기이다.
94)
말하자면 중유와 태내ㆍ태외 각 5위는 한번의 동일한 생 중에 포섭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95)
여기서 ‘등’이라 함은 순차생수업을 비롯한 순후차수업과 순부정수업 등을 의미한다. 즉 현재의 중유는 전생 이전의 업에 의한 것이고, 중유에 의한 업은 중유에서 사유(死有)에 이르는 동일한 동분을 인기하는 순현법수업이다.
96)
뛰어난 과위[勝果]란 견소단(見所斷)의 번뇌를 끊은 예류과와 수소단(修所斷)의 번뇌를 끊은 아라한과를 말하며, 뛰어난 선정[勝定]이란 멸진정이나 자ㆍ비ㆍ희ㆍ사 등의 등지(等至)를 말한다.
97)
본 송은 이상의 정업 중 현생에 그 과보를 받는 업에 대해 분별한 것으로, 이를테면 수승한 복전에 대해 행해진 업, 뛰어난 의지력[意樂]에 의해 지어진 업, 이숙이 결정되었더라도 시기가 결정되지 않은 업으로서 그 업이 계속(繫屬)된 지의 번뇌를 영원히 떠나 다시는 그 지에 생겨나는 일이 없을 때의 업 등이 순현보수업(順現報受業)이다.
98)
옛날 간다라국의 카니시카왕에게 내사(內事)를 감독하는 한 내시[黃門]가 있었는데, 하루는 성밖에서 5백 마리도 넘는 소 떼를 보았다. 그는 소몰이꾼에게서 그 소들은 곧 종자가 거세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숙세의 악업으로 인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여 소들을 사 그들의 고난을 구하였는데, 이 같은 선업력으로 말미암아 남근을 다시 획복하게 되었고 왕으로부터도 후한 재물과 외사(外事)의 고관으로 제수받게 되었다고 한다.(『대비바사론』 권제114, 한글대장경122,p.325)
99)
즉 이러한 지의 번뇌를 영리(永離)하였으므로 이러한 지에 거듭하여 태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아라한과 불환과와 같은 이가 바로 그러한 이로서, 그들이 아직 염오를 떠나지 않았을 때 지었던 업은 지금 현법에 그 과보를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100)
만약 아라한과 불환과 이외의 상태에서 순정수업을 짓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들은 결정코 염오를 영원히 떠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다른 상태 즉 현생 이후에 이숙과를 받게 된다.
101)
무쟁(araṇā)이란 성자와 공유하는 부처의 공덕 중의 하나로, 세속지에 의한 번뇌의 투쟁이 종식된 상태.(본론 권제27, p.1238 참조)
102)
전의(āśraya-parivṛtti)란 저열한 소의신을 수승한 소의신으로 바꾸는 것.
103)
여기서 그 밖의 다른 선정이란 앞에서 언급한 멸진ㆍ무쟁ㆍ자비정 이외 선정을 말하며, 그 밖의 다른 과위란 예류ㆍ아라한을 제외한 일래ㆍ불환과를 말한다.
104)
이숙과는 여러 가지 요소로 이루어지지만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고ㆍ락의 감정, 즉 수(受)이기 때문에 ‘가장 수승하다’고 말한 것으로, 본 단에서는 심수와 신수를 초래하는 업에 대해 분별하고 있다.
105)
본론 권제3(p.133 이하)을 참조할 것.
106)
이를테면 어떤 큰 나무에 아귀 등이 머물러 있을 때 그 나무를 베어낼 경우 아귀는 괴로워 해코지하게 된다.
107)
바사, 즉 바사슬체(婆私瑟搋, 또는 婆斯搋, Vāsiṣṭhī)는 바라문의 여인으로 여섯 아들을 잃고 마음에 광란을 일으켜 벌거벗고 사방을 헤매다 암라숲에서 부처를 만나 제도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바사(婆沙)』 권제83(한글대장경121, p.179):권제126(동123, p.19)에 나온다.
108)
만약 심광이 의식에만 존재하고, 또한 업의 이숙이라고 한다면 제6의식 상응의 우근을 비이숙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인데, 어째서 앞 논설에서 우근은 이숙이 아니라고 한 것인가 하는 난문.
109)
‘심광’이 마음의 발광이라면, ‘심란’은 마음의 뇌란, 즉 염오(불선과 유부무기)의 번뇌심이다.
110)
지옥에서는 너무나 괴로움에 핍박되어 시시비비를 가릴 만한 정신이 없으며, 따라서 거기서는 항상 미쳐있다.
111)
왜냐 하면 그들에게는 이숙의 대종을 초래하는 정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112)
여기서 법성은 무상(無常)ㆍ고(苦)ㆍ공(空)ㆍ비아(非我) 등의 진실의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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