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보우경 제9권
[깨끗한 믿음을 능히 얻음]
또 선남자야, 보살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여 깨끗한 믿음을 능히 얻으니,
어떤 것들이 열 가지가 되는가?
첫째는 숙세부터 심은 선근으로 인연을 갖추었으므로 복덕을 내고,
둘째는 스승의 가르침을 말미암지 않고도 정견(正見)을 얻고,
셋째는 허망하고 속이고 아첨하고 비꼬인 행을 버리고 뜻의 즐거움[意樂]을 얻고,
넷째는 삿되고 비꼬인 성품이 없으므로 곧은 마음을 얻고,
다섯째는 이근(利根)으로 말미암은 까닭에 지혜를 갖추고,
여섯째는 청정한 마음이 항상 흘러넘치므로 잠이 오는 장애를 능히 버리고,
일곱째는 악지식을 버려 여의고 선지식을 의지하며,
여덟째는 선법을 희구하므로 아만을 일으키지 않고,
아홉째는 바른 법을 연설하여 그르치는 일이 없고,
열째는 넓고 큰 믿음으로써 여래의 넓고 큰 위덕을 능히 아느니라.
선남자야, 보살이 이 열 가지 법을 성취하면 깨끗한 신심을 얻느니라.”
지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여래의 넓고 큰 위덕에서 적은 부분의 뜻이라도 듣고자 원하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그대는 살펴 듣고 잘 생각하여라. 나는 이제 그대를 위하여 여래의 넓고 큰 위덕의 적은 부분의 뜻을 설명하리라.”
지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좋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즐겨 듣고자 원하옵나이다.”
“선남자야, 여래께서 대자(大慈)를 성취하심이 평등하여, 모든 중생들을 널리 위하시니,
여래가 한 중생에게 대자를 일으키심은 모든 중생들에게 베푸심과 다름이 없느니라.
여래의 대자가 중생계에 두루하고 허공계를 다하지만 큰 사랑의 끝은 실로 알 수 없느니라.
선남자야, 여래께서 대비(大悲)를 성취하신 것은 온갖 성문ㆍ연각, 모든 보살과는 같지 않으니, 여래께서 한 중생에게 대비를 일으키실 때에는 온갖 중생들에게 베푸심과 다름이 없느니라.
선남자야, 여래께서는 법 설함의 다함없음을 성취하셨다.
한량없는 겁ㆍ한량없는 아승기 동안에 이름과 말이 각각 다르고 도리가 같지 않지만, 온갖 중생들을 위해서는 순식간에 연설할 수 있느니라. 그러나 부처님이 설하시는 법은 다함이 없느니라.
선남자야, 여래는 한량없는 물음과 논란함을 성취하였나니 능히 답하시고 능히 풀어 주시느니라.
선남자야, 가령 온갖 중생이나 중생의 수에 들어간 이들이 동시에 부처님께 묻는데, 이름과 말과 몸의 종류가 각각 다르지만,
여래께서는 한 찰나, 혹은 한 납박(臘縛), 한 모호율다(牟呼栗多) 동안에 능히 답하시고 능히 풀이하시어 다함이 없느니라.
선남자야, 여래께서는 정려를 성취하시어, 행하시는바 경계에 걸리고 막힘없음을 얻으셨느니라.
선남자야, 가령 온갖 중생이 다 십지(十地) 보살의 위(位)에 모두 머물러 있다 하자.
이와 같은 보살들이 다 한 때에 한량없는 백천의 모든 삼마자에 함께 들어갔다 하면,
이와 같이 들어갈 때에 한량없는 백천 겁을 지나고, 들어간 정려도 각각 같지 않으며,
부처님의 삼마지와 행한 바 경계도 그 한계는 얻지만 실로 능히 알 수는 없느니라.
선남자야, 여래께서 한량없는 색신(色身)을 성취하셨으니,
만일 여러 중생이 마땅히 여래의 색신으로써 교화 받으려는 이가 있으면,
여래께서는 곧 능히 한 찰나 또는 한 납박, 모호율다에 각각 저 중생의 처소에서 여래의 색신상을 나타내 보이시느니라.
만일 중생이 마땅히 갖가지 다른 종류의 중생의 색신상을 보겠다는 이가 있으면,
여래는 곧 한 찰나, 한 납박, 한 모호율다 사이에 각각 중생 앞에서 능히 다른 종류의 중생의 색신상을 나타내 보이시느니라.
선남자야, 여래께서는 눈으로 취하는 바 경계가 한량없는 종류가 있는데, 모든 중생들로써 천안(天眼)으로 보거나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이와 같은 종류의 중생은 산수(算數)나 사량(思量)을 뛰어넘어 지나간 세계 가운데 가득 찼지만,
부처님께서는 중생들을 여실히 보시기를 마치 손바닥 가운데의 아마라과(阿摩羅果)와 같이 보시느니라.
선남자야, 여래께서 귀로 취하시는바 경계도 한량없는 종류가 있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고, 그 한량없고 끝없는 여러 세계 가운데 중생이 가득차 있느니라. 그
러나 저 세계의 온갖 중생들은 한 찰나, 한 납박, 한 모호율다 동안에 동시에 소리가 난다.
그런데 저 여러 소리는 음운(音韻)의 굴곡과 언사(言詞)의 크고 적음과 설(說)하는 것이 다르지만,
여래께서는 그 음성을 듣고 각각 다른 것을 모두 능히 판별하여 아시느니라.
선남자야, 여래께서 성현의 지혜를 성취하시어 다함이 없고 한량없음이 마치 허공과 같으니라.
선남자야, 중생계가 다 하도록 그곳에 있는 중생들이 각기 행동을 하고 따로따로 생각하고 갖가지 업을 짓지만,
여래께서는 한 찰나, 한 납박, 한 모호율다 동안에 이 모든 중생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업을 지어 이와 같은 과(果)를 받았는지 모조리 깨달아 아시고,
여래께서는 걸림 없는 지혜로써 저 모든 중생들의 3세의 업과를 모조리 능히 깨달아 아시느니라.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삼마사다에 늘 계시기 때문이니라.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생각을 잃지 않으신 까닭이며,
온갖 근(根)이 흩어지지 않으신 까닭이며, 마음이 급하게 흐르지 않으시는 까닭이니라.
왜냐하면 여래께서는 조용하고 고요한 데 머무신 까닭이며,
매우 조용하고 고요하며, 가장 조용하고 고요한 까닭에, 온갖 여러 번뇌를 능히 끊으셨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만일 저 중생이 여러 가지 번뇌가 어떤 마음이 달리고 흩어져서 여러 가지 삼마지를 능히 얻을 수 없으면,
여래께서는 저들의 번뇌와 티끌과 때를 없애주고, 새어나오는 것이 없는 지혜를 일으키게 하고,
온갖 모든 법의 자성이 평등한 이치의 성품을 증득하게 하여,
온갖 모든 삼마지와 삼마발저의 행하는 경계를 통달하게 하느니라.
선남자야, 여래의 지니신 네 가지 위의는 낱낱이 삼마지에 머물며, 나아가 여래께서 열반 드시기에 이르기까지 그 시간을 지나도록 삼마지에 머물러 계시거늘, 어찌 하물며 적은 시간이라도 정(定)에 아니 계실 때가 있겠는가?
선남자야, 여래께서는 한량없는 겁 동안에 자량을 쌓아 모으셨으니, 이로 말미암아 여래께서는 삼마사다에 늘 머물러 계시느니라.
선남자야, 여래는 측량할 수 없고, 생각할 수 없고, 지혜로 헤아릴 수 없느니라.”
지개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아니옵니다. 부처님이시여, 여래께서는 3아승기 겁 동안에 자량을 쌓아 모으시어 증득하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내가 한량없는 겁 동안에 자량을 쌓아 모아서 여래의 생각할 수 없는 경계를 증득한 것이지, 오직 저 3아승기겁에서 증득한 것이 아니니라.
그러나 보살은 평등한 여러 법의 성품을 깨쳐 알고 나서 바야흐로 저 3아승기 수에 들어가는 것이요, 처음 발심한 것은 아니니라.”
지개보살이 아뢰었다.
“만일 여러 중생이 여래의 큰 위덕을 얻어들은 이는 깨끗한 믿음을 능히 일으켜 환희하고 즐겨합니다.
부처님이시여, 저 모든 중생들은 곧 이 복덕이 있는 사람이며, 여러 선을 지은 사람이며, 업장을 끊은 사람이라는 것을 마땅히 압니다.
만일 믿고 아는 마음을 일으키면 곧 보리에 친근하거늘, 어찌 하물며 듣고 나서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우고, 마침내 통달하여 남을 위하여 널리 설해줌이오리까.
부처님이시여, 이와 같은 중생은 머지않아 여래의 위덕을 이루기에 합당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하니라. 선남자야, 이 모든 중생은 마땅히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께서 거두어 주심이 될 것이며, 마땅히 한량없는 여러 부처님을 받들어 섬기어, 여러 가지 선근을 심을 것이니라.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여래의 넓고 큰 위덕을 얻어 듣고 끝내 의심을 일으키지 않아서 여래의 위덕에서 능히 뜻으로 즐거워하고 생각하여 마음이 깨끗하고 훌륭하게 이해한다.
그리고 깨끗한 새 옷을 입고 여법하게 공양하되 능히 7일 낮과 7일 밤에 생각을 전념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으면, 7일 낮과 7일 밤을 채우고 나면 곧 그 밤 안으로 여래를 뵙게 되리라.
만일 이러한 작법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목숨이 다할 때가 되어서야 마음이 산란치 않으면, 마땅히 부처님께서 그의 앞에 나타나 머무시리라.”
지개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여러 중생이 여래의 큰 위덕을 들을 때에 믿지 않음을 냅니까, 내지 않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있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중생이 여래의 큰 위덕을 설함을 들을 때에 의요(意樂)가 맹렬하거나 추악하고 표독하여 마음을 상하여 설하는 법사에게 악지식의 생각을 일으키는 이가 있으면,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몸이 허물어진 뒤에 나락가(捺洛迦:지옥)에 태어나느니라.
선남자야, 만일 중생이 여래의 넓고 큰 위덕을 들어 마음에 깨끗한 믿음을 내거나, 설하는 법사에게 선지식의 생각과 인도하는 스승의 생각을 일으키면,
선남자야, 결정코 꼭 알라.
이 모든 중생들은 태어나는 곳마다 일찍부터 여래의 넓고 큰 위덕을 듣거나 혹은 모든 중생들이 생각하기를,
‘나는 응당 오랜 옛적 여러 부처님 회중에서 이 법문을 들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들이 여래의 넓고 큰 위덕을 듣고 마음에 깨끗한 믿음을 내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로 이제 여래의 넓고 큰 위덕을 듣고 깨끗한 믿음을 낸 이는 옛적에 일찍이 들은 까닭이다’라고 하리라.”
그때에 세존께서는 곧 설상(舌相)을 나타내시어 얼굴[面輪]을 덮으시고, 다음에 몸과 사자좌(獅子座)와 아울러 여러 보살, 성문의 무리와 제석ㆍ범천ㆍ호세(護世)를 덮으시고 내지는 온갖 큰 모임을 덮으셨다.
그때에 세존께서 설상을 도로 거두어들이시고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와 같은 설상은 여래께서 거짓말을 아니 함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너희들은 응당 깨끗한 믿음을 깊이 내어서 능히 긴 밤 동안에 이익하고 안락하여라.”
이 법문을 설하실 때에 팔만사천 보살들이 생사가 없는 법인(法忍)을 얻었으며,
한량없는 백천 중생들은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고 법의 눈이 깨끗해졌으며,
그 나머지 한량없는 중생들 가운데 일찍이 보리의 마음을 발하지 못했던 이들은 모두 발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