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中世)의 해양대국 포르투갈(Portugal)
포르투갈 전도(全圖) / 포르투갈 국기(國旗) / 파티마 성모발현성지
◆ 포르투갈(Portugal) 개관(槪觀)
이베리아반도(Iberian Peninsula) 서안(西岸) 대서양을 면하고 있는 포르투갈은 태주(Taeju/Tajo)강에 의해 남북으로 양분되는데 스페인에서 흘러들어온 강은 리스본에 이르러 대서양으로 흘러든다.
수도는 리스본(Lisbon)이고 스페인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으며 서쪽과 남쪽은 대서양에 접해 있다.
국토의 중앙에는 2,000m급 에스트렐라 산맥(Serra da Estrela)이 가로놓여 있는데 북쪽에는 스페인의 메세타(Meseta) 고원이, 태주강의 남쪽은 해안 저지대로 기복이 완만한 내륙지대와 어우러져 주로 농촌지대를 이루고 있다. 총면적은 9만 2천㎢ 정도로 우리나라 남한과 비슷하고 인구는 약 1천만이다.
종교는 로마가톨릭이 94%로 가톨릭 국가이고 언어는 포르투갈어,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3천 달러정도.
◆ 포르투갈 약사(略史)
이베리아반도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5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데 BC 140년경 로마인들에게 정복당했다가 5세기가 시작되면서 로마 제국이 기울기 시작하자 다시 게르만족이 많은 지역을 점령한다. 그러나 AD 711년 이슬람(무어인)의 침공으로 그리스도교도들은 포르투갈의 북부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빼앗겼으나 1179년,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엔히크(Henrique O Navegador)의 통치하에 왕국을 이룩했다. 19세기 초에는 나폴레옹의 침공으로 포르투갈 왕실은 1807년 브라질로 망명하는 수모를 당한다.
1821년 브라질에서 돌아온 주앙 1세(Joao I)는 정권을 되찾았으나 정권을 놓고 여야간 갈등이 심화되어 격렬한 내란이 일어나고, 내란은 1834년 끝났지만, 정치적인 불안은 계속되어 결국 1910년, 혁명으로 군주제가 전복되고 공화제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공화제 역시 불안한 정치 상황 속에서 수난을 겪다가 1926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이 다시 교체된다. 그 후 우여곡절 끝에 1976년 제헌의회는 사회주의로의 이양(移讓)을 내용으로 하는 헌법을 승인했으며 총선에 따라 연립정부가 구성되었다.
1986년 마리우 수아레스(Mário Soares)가 60년 만에 최초의 민간인 대통령이 되었으며 1991년 재선에 성공했고, 현 대통령은 2016년에 당선된 사회민주당의 마르셀루 헤벨루 데 소자(Marcelo Rebelo de Sousa)이다.
1. 수도 리스본(Lisbon)
포르투갈의 수도인 리스본(Lisbon)은 포르투갈어로 ‘리스보아(Lisboa)’라고 하는데 포르투갈 최대의 항구도시이다. AD 3세기에는 로마, 8세기에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다가 12세기 들어 알폰소 1세(Alfonso I)에 의하여 마침내 해방되었다고 한다. 리스본은 지중해와 북해를 연결하는 중요한 길목으로, 15세기에 들어 활발한 무역이 이루어지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1755년 대지진, 그로 인한 화재와 쓰나미(海溢)로 도시의 2/3가 파괴되면서 리스본의 전성기는 문을 닫는다. 그러나 폼발(Pomball) 후작에 의해 대대적인 복구 작업이 이루어져 오늘의 리스본이 되었다고 한다.
리스본의 볼거리는 리스본 대성당(Lisbon Sé), 제로니무스(Jeronimos) 수도원, 그리고 항구에 있는 벨렝탑(Torre de Belém)과 발견의 탑(Padrão dos Descobrimentos) 등이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이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Lisbon)은 동쪽과 북쪽으로 스페인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서쪽과 남쪽은 대서양에 접해 있다. 이베리아반도(Iberian Peninsula)에 있는 포르투갈은 태주(Taeju/Tajo) 강에 의해 양분되는데 스페인과의 동쪽 국경선 중간 지점에서 포르투갈로 흘러들어 남서쪽으로 흘러 리스본에 이른다.
국토의 중앙에는 2,000m 급 에스트렐라 산맥(Serra da Estrela)이 가로놓여 있는데 북쪽에는 스페인의 메세타(Meseta) 고원이, 태주강의 남쪽은 해안 저지대로 기복이 완만한 내륙지대와 어우러져 주로 농촌지대를 이루고 있다. 1인당 GNP는 서유럽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해마다 1.6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포르투갈을 방문하고 있다고 하며, 이는 포르투갈의 주요 외화 소득원이라고 한다.
포르투갈의 관광자원은 오랜 역사로 인한 문화유적도 많지만 1917년 리스본 북쪽, 파티마(Patima) 인근의 이레네(Irene) 골짜기에서 시골 농부의 자녀들에게 성모님이 발현하신 ‘성모발현성지’로 유명한데 로마교황청에서 공식 인정한 뒤 매년 수십만 명의 순례자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1917년 리스본 북쪽, 버스로 1시간 30분 거리의 농촌마을 파티마(Fatima) 인근의 이레네(Irene) 골짜기에서 시골 농부의 자녀들인 7살 히야신타(여), 9살 프란치스코(남), 10살 루치아(여) 앞에 성모님이 5번이나 나타나서 3가지의 비밀을 일러주신다.
<1> 제로니무스 수도원과 리스본 대성당
리스본 도시풍경 / 제로니무스 수도원 / 리스본 대성당
유네스코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1498년 ‘바스쿠다가마(Vasco da Gama)’가 인도항로를 개척하여 비단과 향신료가 포르투갈에 쏟아 들어오게 되자 ‘마누엘 1세(Manuel I)’가 그의 부(富)를 과시하기 위해 지었다는 수도원인데 1502년에 착공하여 1672년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수도원 안의 성당에는 바스쿠다가마와 시인 카몽스(Luís de Camões)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리스본 대성당은 1147년, 이슬람으로부터 리스본을 되찾은 알폰소(Alfonso) 왕이 세웠는데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때에도 무너지지 않고 견뎌냈다고 하는 유서 깊은 성당이다.
포르투갈은 지금은 비록 선진국 대열에 끼지 못하고 국민소득이 우리나라만도 못하지만, 중세의 해양대국으로 전 세계에 군림하던 국가였다는 사실을 건물들을 보면 바로 느낄 수 있다.
<2> 발견의 탑(대항해 기념탑)과 벨렝탑(Torre de Belém)
태주강 하구, 대서양이 펼쳐지는 리스본 항구는 바스쿠다가마와 콜럼버스가 대 항해를 떠난 장소로 유명한데 이곳에 세워져 있는 ‘발견의 탑’ 일명 ‘대항해 기념탑’은 범선을 본떠 만든 약 52m의 기념비다.
웅장하게 강변에 서 있는 이 대항해 기념탑은 항해왕자로 불렸던 엔히크 왕자(Infante Dom Henrique de Avis)가 세상을 떠난 지 500년이 되던 해인 1960년에 세운 기념비라고 한다.
발견의 탑 / 맨 앞이 항해왕자 엔히크 / 벨렝탑(Torre de Belém)
엔히크 왕자는 포르투갈 아비스(Avis)가의 왕자였는데 포르투갈 제국 초창기, 대항해시대의 막을 열었던 바스쿠다가마(Vasco da Gama), 콜럼버스(Columbus) 등을 적극 지원하여 ‘항해왕자(航海王子)’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리스본 포구 앞에 강 하구에 세워진 발견의 탑은 뱃머리의 맨 앞에 모형범선을 들고 있는 사람이 엔히크 왕자이고 그의 뒤를 따라 바스쿠다가마, 마젤란, 대항해시대의 왕이었던 마누엘 1세, 천문학자, 지리학자 등 총 30명 인물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너무나 멋진 조형물이다.
또, 발견의 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벨렝탑(Torre de Belém)이 있다. 이 탑은 마누엘 1세에 의해 1515년에 세워진 탑으로, 원래는 외국 선박의 출입을 감시하는 요새였다는데 이후,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 때에는 이곳에서 선원들이 왕을 알현하는 장소가 되었고 나중에는 정치범과 독립 운동가들을 가두던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정교하게 조각된 외부 모습은 흡사 작은 궁전을 보는 느낌인데 흐르는 강물 위에 떠있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입장료를 내면 다리를 건너가 탑 위로 올라갈 수도 있고 지하의 감옥으로 쓰이던 방도 볼 수 있다는데 우리는 그냥 외관만 감상하고 돌아섰다.
시내에서 이곳으로 오려면 전철을 타야 하는데 역에서 내리니 그다지 먼 것 같지도 않고 해변을 걷는 것도 멋있을 것 같아서 그냥 걸어갔는데 생각 외로 멀어서 나중엔 짜증이 난다. 날씨도 덥고, 다리도 아프고.... 거의 40분 정도나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