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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영락경 제8권
24. 유행무행품(有行無行品)[1]
[행 았음ㆍ행 없음]
그때에 무정상(無頂相)보살이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꿇고 합창한 채 앞에 나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감히 부처님 앞에서 한번 유행(有行)ㆍ무행(無行)을 설해보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도다, 족성자여. 만일 능히 설할 수 있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
무정상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어떤 보살마하살이 본래 없음[本無]을 이해해 요달하면, 이것을 행이 있다고 이르고,
본래 없음은 자연히 비고 고요하여 형상이 없으니, 이것을 행이 없다고 이르나이다.”
광진(廣進)보살이 아뢰었다.
“저 부처님 국토에 나타나서 신족(神足)으로 교화하는 것을 행이 있음이라 이르고,
국토를 보지 않고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소위 행이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지생(知生)보살이 아뢰었다.
“열반은 고요하고 조용해서 일어나고 멸함이 없는데, 이것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열
반과 열반의 모습을 보지 않음을 소위 행 없음이라고 이르나이다.”
법보(法寶)보살이 아뢰었다.
“도(道)와 도 아닌 것을 설함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도가 있음도 아니요 도가 없음도 아님을 행 없음이라고 이르나이다.”
정묘(淨妙)보살이 아뢰었다.
“청정한 법관(法觀)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청정한 법관을 보지 않음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취도(趣道)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의 신력(神力)을 보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부처님도 보지 않고 신력도 또한 없음을 소위 행 없음이라고 이르나이다.”
보시(普施)보살이 아뢰었다.
“현재 정(定)에 들어 있음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닦아 행함도 보지 않고 또한 정에 들어 있음도 보지 않음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월광조(月光照)보살이 아뢰었다.
“불신(佛身)의 모습이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가득 찬 것을 봄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부처님 및 상호(相好)를 보지 않음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애세(哀世)보살이 아뢰었다.
“나[吾我]와 목숨[壽命]이 있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목숨도 보지 않고 또한 나도 보지 않음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무외(無畏)보살이 아뢰었다.
“법을 설하되 법의 상념[法想]이 없음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법을 보지 않으면서도 법이 없지 않음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이렇게 보살마하살이 행 있음과 행 없음에서 문득 보살영락을 갖추게 되었다.
무량(無量)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의 양(量)을 지나감으로써 한정할 수없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양을 보지 않고 또한 양 아님[非量]도 보지 않음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심념(心念)보살이 아뢰었다.
“6신통(神通)으로써 온갖 부처님 나라에 노닐면서도 스스로 신통의 도[神通道]를 기리고 찬탄하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국토를 보지 않고 제접하여 건네주는 바가 있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현호(賢護)보살이 아뢰었다.
“일체를 능히 변화하여 모두 부처의 형상이 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변화도 보지 않고 부처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무변제(無邊際)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 세계의 한량없음을 총지(摠持)하여 잊지 않음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본래 총지(總持)도 없고 삼보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상비(常悲)보살이 아뢰었다.
“온갖 중생을 두고 대승의 마음[大乘心]을 발함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대승도 없고 다시 도(道)도 있지 않은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부사의(不思議)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은 부사의하시고 바른 법도 또한 그러하며 법도 부사의하고 받는 과보[受報]도 또한 그러함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사의(思議)도 보지 않고 부사의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주선(周旋)보살이 아뢰었다.
“공의 지혜[空慧]는 하나로서 지혜가 없지 않은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지혜는 또한 비고 고요해서 지혜가 있지도 않고 지혜가 없지도 않은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법조(法造)보살이 아뢰었다.
“여래는 하나이시고 진제(眞際)도 또한 그러하다고 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여래를 보지도 않고 진제도 보지 않으며 하나도 없고 하나 아님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선권(善權)보살이 아뢰었다.
“혜관(慧觀)으로 일체 모든 법을 분별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혜관도 없고 다시 온갖 법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무여등(無與等)보살이 아뢰었다.
“한 모습[一相]이어서 무상(無相)이라 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상(相)도 보지 않고 무상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이와 같이 보살마하살이 행 있음과 행 없음에서 문득 능히 보살영락을 갖추었다.
공훈(功勳)보살이 아뢰었다.
“또한 남[生]을 보지 않고 나지 않음[不生]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남 또한 남이 없고 다시 남 없음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각오(覺悟)보살이 아뢰었다.
“항상함이 있고 항상함이 없는 것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항상도 보지 않고 항상 아님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성취(成就)보살이 아뢰었다.
“몸의 행[身行]을 짓지 않고 또한 집착한 바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반면 짓는 것도 보지 않고 또한 짓지 않는 것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원락(願樂)보살이 아뢰었다.
“입의 행[口行]을 짓지 않고 또한 집착한 바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짓는 것도 보지 않고 짓지 않는 것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무처소(無處所)보살이 아뢰었다.
“뜻의 행[意行]을 짓지 않고 또한 집착한 바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짓는 것도 보지 않고 짓지 않는 것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무애지(無碍智)보살이 아뢰었다.
“깨달으면서도 깨닫는 바가 없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깨달음도 보지 않고 또한 다시 중생의 상념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향적(香積)보살이 아뢰었다.
“도(道)의 본래 없음이 법의 성품[法性]과 다르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도를 보지 않고 다시 법의 성품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전법륜(轉法輪)보살이 아뢰었다.
“보리수[樹王]아래에 있어서 네 가지 도[四道]의 과증(果證)을 선포해서 연설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법을 설하되 법의 상념[法想]이 없고 또한 네 가지 도를 보지 않는 것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자관(自觀)보살이 아뢰었다.
“색(色)ㆍ통(痛)ㆍ상(想)ㆍ행(行)ㆍ식(識)의 공함을 설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5음(陰)의 성패(成敗)를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나이다.”
중지(衆智)보살이 아뢰었다.
“그 4의지(意止)를 관하여 안팎이 공한 줄 아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뜻의 그침이 본래 좇아온 바가 없고 가도 또한 이르는 바가 없음을 분별하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다문(多聞)보살이 아뢰었다.
“온갖 법과 37품(品)까지 타오르게 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타오르는 것과 일체 모든 법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법신(法身)보살이 아뢰었다.
“일체 모든 법에서 움직여 옮기는 것과 움직여 옮기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움직여 옮기지 않거나 움직여 옮기지 않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무노(無怒)보살이 아뢰었다.
“온갖 법은 스스로 그러하니 법관(法觀)도 또한 그러하고, 법관이 스스로 그러하니 온갖 법도 또한 그러한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본래 온갖 법이 없고 또한 법관도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상수(上首)보살이 아뢰었다.
“부처님의 슬기를 분별해서 그것의 비고 고요함[虛寂]을 아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부처님의 깊은 지혜는 본래의 성품이 스스로 그러해서 또한 명호도 없음을 관하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도의(道議)보살이 아뢰었다.
“5분법신(分法身)을 요달해서 멀리 여읨이 없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성품은 스스로 형상이 없고 또한 일어나고 멸함이 없다고 낱낱이 관찰하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본조(本祚)보살이 아뢰었다.
“일체 모든 법은 또한 의지하는 바가 없어서 안의 공[內空]에도 의지하지 않고 또한 밖의 공[外空]에도 의지하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안팎의 공 및 일체 모든 법을 요달하여 생겨나는 것도 보지 않고 멸하는 것도 보지 않아서 모조리 집착한 바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권현(權現)보살이 아뢰었다.
“주선(周旋)하고 오고 가면서 여러 부처님께 절하고 섬기면서 부처님 국토의 깨끗하거나 깨끗지 않음과 중생의 좋고 나쁨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자기의 몸 및 여러 부처님 나라의 좋고 나쁘고 맑고 탁함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무상착(無想着)보살이 아뢰었다.
“온갖 법이 어지럽지 않아서 담연하여 옮기지 않으므로 괴로움과 즐거움, 항상함과 항상하지 않음, 좋다거나 추하다는 것을 계교하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한량없는 지혜는 모조리 공으로 돌아가서 산란과 혼침, 괴로움과 즐거움, 좋음과 추함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대자(大慈)보살이 아뢰었다.
“온갖 법의 취(趣)가 있고 취가 없음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영원히 취가 있지 않아서 또한 취를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인행(忍行)보살이 아뢰었다.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 및 허공식계(虛空識界)의 진여일성(眞如一性)을 아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공ㆍ무상ㆍ무원도 공이고, 공도 또한 이 공ㆍ무상ㆍ무원으로서 다시 보응(報應)이 없는 것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보장(寶掌)보살이 아뢰었다.
“하나의 정의(定意)에 들어가서 여러 부처님의 위의(威儀)로 행하시는 법칙(法則)의 도를 모조리 아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비록 선정(禪定)에 들었으나 영원히 법의 상(法相)이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희경(喜慶)보살이 아뢰었다.
“3독(毒)의 근본은 자연히 일어났다 멸하는데, 생겨나되 생겨나는 까닭을 알지 못하고 멸하되 멸하는 까닭을 알지 못하니, 이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3독(毒)의 근본이 스스로 형상의 조짐이 없어서 영원히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없다고 관하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고 이르나이다.”
관진(觀進)보살이 아뢰었다.
“계율[律]을 받들어서 지켜 범하는 바가 없고 또한 범함이 있음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본래 율이 있지 않고 또한 범함도 있지 않아서 본래의 성품이 스스로 그러한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상희(常喜)보살이 아뢰었다.
“열두 가지 법문(法門)을 분별해서 해탈하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또한 해탈 및 여러 법보(法寶)의 일어남과 멸함이 있음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선창(宣暢)보살이 아뢰었다.
“법이 생겨나고 괴로움이 생겨나도 본래 처소가 없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괴로움의 본제(本際)를 알아도 가히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수도(修道)보살이 아뢰었다.
“큰 도는 일상(一相)이고 열반은 형상이 없어서 위없는 도를 뜻으로 구함을 보지 않는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연설한 도(道)라도 정미(精微)함이 없고 법계는 스스로 그러해서 능히 돌고 도는 것이 없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강법(講法)보살이 아뢰었다.
“건립한 도(道)가 불가사의해서 비록 더럽고 탁한 데에 처해 있지만 처한 바가 없는 듯한 것을 소위 행 있음이라 이르고,
다섯 가지 깨끗함[五淨] 및 다섯 가지 탁함[五濁]의 성질은 본래 허망하여 참되지 않고 또한 있는 바도 아님을 완전히 아는 것을 소위 행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이때에 시방의 무앙수 항하 모래 수효의 여러 보살들이 각각 스스로 ‘행 있음ㆍ행 없음’을 아뢰고 나서 각기 돌아가 제자리에 앉았다.
그때 대가섭이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바로 여미고 꿇어앉아 합장한 채 앞에 나와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저도 또한 행 있음ㆍ행 없음을 감히 말해보겠나이다.
만일 허락해 주시오면 감히 품고 있는 생각을 아뢰겠나이다.”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대중이 모여서 목마르게 바란 지 오래되었느니라. 만일 감당하여 말할 수 있으면 지금이 바로 그때이니라.”
그때에 대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바른 율법[正律]인 열두 가지 두타행의 얻기 어려운 법[十二頭陀難得法]을 받들어 지니면서 누실(漏失)되는 바가 터럭만치도 없게 하고,
또한 상념을 일으켜서 옳다 그르다 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제일가는 행의 있음이라 하나이다.”
그리고 대가섭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다시 선남자나 선여인이 한뜻으로 생각하는 바를 오로지 정밀하게 하여 잊지 않고,
도의 가르침을 능히 연설하여 각각 지취(志趣)를 채우고, 나아가 성불에 이르기까지 큰 서원을 고치지 않는다면,
이것도 또한 이름하여 제일가는 행의 있음이라 하나이다.”
그리고 대가섭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다시 선남자와 선여인이 배움에 나아가 선관법문(禪觀法門)을 닦아 익히고,
갖가지 통혜(通慧)에 물들어 집착한 바가 없고,
도에 뜻을 두고 구하는 이를 각각 즐겁게 하며,
다시 능히 달래고 인도하여 도의 길을 가져다 보여주고,
앞 사람의 마음을 따르면서 그 원하는 바를 성취하게 하고,
대승(大乘)을 구하는 이는 끝내 뜻을 성취하여 중간의 장애에 떨어지지 않게 하며,
만일 다시 벽지불을 얻고자 하는 이는 또한 다시 수호하여 무위(無爲)를 얻게 하니,
이것도 또한 이름하여 제일가는 행의 있음이라 하나이다.”
그리고 대가섭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무행법(無行法)을 닦아 익히고자 한다면, 온갖 중생의 죄의 뿌리는 깊고 단단하여 뽑기가 어렵나이다.
그렇지만 이 죄인은 저와 더불어 인연이 없으므로 제도를 얻게 할 수 없나이다.
그런데 우리 세존께서는 권교점사방편(權巧漸伺方便)을 은밀히 베풀어서 저들의 거취(去就)를 알아 인연을 만들어서 덮개[覆蓋]를 입게 하시니,
이것을 소위 행의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그리고 대가섭이 다시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선남자나 선여인이 본래 도의 마음이 없어 범부의 경지에 있다면,
곧 능히 가르쳐 주어서 도의 뜻을 발하여 마지막까지 성취하도록 해서 끝내 중간에 타락하여 2지(地) 가운데 있지 않사오니,
이것을 소위 행의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다시 부처님이시여. 만일 어떤 선남자나 선여인이 수없는 겁으로부터 공과 덕을 쌓아서 큰 서원을 발하기를
‘만일 내가 도를 이루어서 아무 나라에 태어나면 아무 성현의 제자로 만날 터인데, 좌우로 따르는 사람[翼從]들도 또한 각각 이와 같이 하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 선남자와 선여인은 본래의 소원과는 어긋나게 중간에 현성(賢聖)을 만나서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심이 있으면 곧 저 부처님을 좇아 멸도를 취하니,
이것을 행의 없음이라 이르나이다.”
그때에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게 그만두어, 늙은 사람아, 자네는 지금 혼탁하고 편협한 마음으로 능히 헤아리려고 하는 것일세.
왜냐하면 근(根)을 세우고 힘을 얻은 보살마하살도 오히려 행의 있음과 행의 없음을 다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자네 적은 도량[小節]으로 다 얻고자 하는가?
이것은 그렇지 않으니, 도로 자네의 자리로 가서 평소의 위의(威儀)대로 하라.”
그러자 대가섭은 얼굴빛이 변하고 크게 부끄러워하면서 부처님 발아래 절하고 도로 본 자리로 물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