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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골목길 압사 사고
2022년 10월 29일 저녁 10시 50분 경 이태원의 어느 좁은 골목길(해밀턴 호텔 뒷골목)에서 155명이 소중한 목숨이 모여든 군중들에 의해 압사를 당했습니다(11.2. 정오 기준). 압사자의 대다수가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쳤습니다. 귀한 목숨을 잃은 자들을 애도하며, 가족들에게는 슬픔을 함께 하며 이 글을 올립니다.
원인은 당국이 조사 중이라서 기다려보면 알겠지만, 추정컨데 폭이 3~4m로 비좁은 골목길을 서로 자기 쪽으로 가려고 밀어부치다보니 순간적으로 균형을 잃어서 발생한 사고로 보입니다.
물론 이런 군중이 대거 운집한 거리에 사전에 일방 통행이나 안전 대책을 세우지 못한 당국이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아마도 경찰은 군중이 몰리니 큰 도로에서 교통 혼잡에 대한 질서유지, 성폭력 예방 등에 집중하고, 호텔 뒷골목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골목이 50m 채 안되고, 폭마저 좁아서 눈여겨보지 않았다고 해야 하겠지요. 이곳은 전철 역으로 오가는 지름길이라서 군중이 몰리면 큰 혼잡이 일어날 수 있는 골목이었음에도...
이런 사고를 당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 왔는가? 생각을 좀 해보고 있습니다. 물론 사고의 원인과 책임 규명, 그리고 이후의 이런 사태에 대한 방지대책도 면밀히 세워야 합니다. 지금 정부가 그렇게 하고 있고, 또 그렇게 할 것으로 봅니다.
이태원 참사를 사회 갈등의 도구로 사용하지 맙시다.
그러나 이러한 참사를 보면서 우리는 과거의 잘못된 관행들은 반복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태원 압사 사고는 정치적 사회적 잇슈 거리가 장기간 계속되었던 세월호 침몰 사고처럼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라가 슬픔에 빠진 지금, 이번 사고가 앞으로 또 어떻게 마무리 될지가 우려되어 용기를 내어 필을 들어 봅니다.
좁은 골목길에 사람이 몰리면 감당하기 어려운데, 서로 자기가 가는 길을 가려고만 하면, 사고가 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정치도 이와 비슷합니다. 여와 야가 정치라는 한정된 틀에서 이 사태를 보게되면, 세월호 사건처럼 또 논쟁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논쟁으로 인해 피해는 백성들이 봅니다.
이태원 참사를 보고 있는 국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 나누어져 대립하기 시작하고, 여기에 다시 격한 감정까지 집어넣으면 사건을 침소봉대하게 됩니다. 여기에 혹자는 가짜뉴스를 생산하여 세상을 미혹합니다. SNS에서 개인 매체를 운영하는 자들 중에 수익을 내기 위해, 조회수를 늘리려고 자극적 표현까지 쓰며, 가짜성 뉴스를 만들어 냅니다.
더구나 이런 슬픔을 당하거나 나라가 어려운 때에는 이를 중재하고, 국민 여론을 주도해야 할 종교 집단은 어떻습니까? 평소에 일부 종교 집단을 보면 나라가 어려울 때 종교적 편협성을 보이며, 강한 주장을 내세워 편가르기를 합니다. 스스로 정치적 편견에 빠져있는 줄은 모르고 종교라는 색채로 그 생각이 절대적 진리처럼 주장하며, 사회적 갈등을 부추깁니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귀한 생명들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아들과 딸, 손자 같은 청년들을 잃었습니다. 그러면 청년들이 왜 이태원으로 몰려들었는지? 이태원은 무엇이며, 거기서 무엇을 하려고 갔었는지? 핼로윈은 무엇인지?
이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보고, 앞으로 이태원의 역사와 문화를 주도해 가야 할 청년들에게 새로운 미래상을 심어주고, 삶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합니다.
이태원의 과거와 외래 문화
컴퓨터 검색을 하여보면 이태원 지명은 이렇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태원'은 한자로 '梨泰院'이라 씁니다. 이태원의 이름은 한자만 3번 변했습니다. 조선 초에는 오얏나무 李를 써서 李泰院, 임진왜란 이후에 異胎院, 효종 이후에는 梨泰院'으로 글자와 의미가 변합니다. 원래 이태원은 서울을 벗어나 처음 만나는 원(院)이었습니다. ]]
컴 검색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태원은 외국인이 들어오고 외국이 먼저 정착하여 거주한 지역입니다. 중국이 득세를 하면 중국군이 진을 치고, 일본이 힘이 셀 때는 일본군이 쳐들어와서 주둔한 곳이 이태원입니다. 그리고 한국전 이후 미군 부대와 미군들이 자리를 잡았고, 지금은 평택으로 이전했으나 아직 그 문화는 남아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우리의 얼과 문화보다 외래 문화가 들어와서 많이 퍼진 곳입니다. 그래서 이태원은 한자로 지명이 세번이나 바뀌는 시대적 아픔을 겪습니다.
이곳은 보름 전(10월 15, 16일)에 "이태원지구촌축제"가 열려서 100만명이 모인 적도 있습니다. 외래 문화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중국과 일본에게도 배울 것이 있고, 미국과 서양문화에서도 많는 것을 배웁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 미국의 문화도 우리 정서와 맞지 않거나 나쁜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음란, 퇴폐, 마약, 총기 소지 등은 우리가 받아드릴 수 없는 문화입니다. 제국주의 정서를 가진 중국의 황제(천자), 일본의 야스꾸니 신사와 천황제도 등은 "홍익인간"을 건국이념(또는 교육이념)으로 하는 한국의 전통과는 격부터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래 문화를 수용할 때 이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안목을 가진 분들이 있어서 아직 문화적 훈련이 부족하고, 분별력이 약한 청년들을 바로 잡아주고, 도와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태원은 우리의 고유의 역사나 전통 문화가 자생적으로 자라기보다 힘을 가진 외세에 의해 외래 문화가 무분별하게 들어와서 퍼져나간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핼로윈이란
이번 이태원 압사 사고는 핼로윈(Halloween) 축제 행사와 관련된 사고입니다. 그러면 핼로윈이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다음 백과사전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데 그 일부를 옮겨 보면 [[ ]] 안의 내용과 같습니다.
[[핼로윈은기독교 신앙이 세상의 중심이었던 시기에도 할로윈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기독교 역시 할로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서기 601년 교황 그레고리오 1세는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그들이 믿고 따르는 토착신앙과 관습에 관한 칙령을 반포했다. 교황은 선교사들에게 토착신앙을 말살하기 보다는 이용할 것을 권했다. 결국 9세기가 되자 미신적인 요소가 강렬하게 남아 있었던 삼하인 축제는 크리스마스로, 그리고 11월 1일은 ‘모든 성인(聖人) 대축일’로 바뀌었다. 그리고 몇 세기 뒤에는 11월 2일을 '위령의 날’로 삼아야 했는데, 이날은 죽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켈트족이 섬기고 있는 ‘신’의 영향력과 중요성을 경감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진행된 것들이다. 하지만 새롭게 바뀐 축일은 기존의 축제를 대신해서 또 다른 축제를 만드는 역할도 하게 되었다. 이를 테면, ‘모든 성인 대축일’ 전날 밤에 벌어지는 성인의 날 전야제, 즉 할로윈 축제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된 것이다.
할로윈 축제가 미국에 전해진 시기는 1800년대로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로부터 온 이민자들에 의해서였다. 결국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할로윈 축제는 오래전 이교도들에 의해 행해졌던 정령 축제가 ‘못된 장난’을 치며 즐기는 밤으로 부활하게 된 것이다.]]
다음 백과사전은 핼로윈 축제를 '못된 장난'을 치며 즐기는 밤으로 부활을 했다고 합니다. 켈트족에서 유래한 처음 행사도 "악령"이나 "귀신"을 만들어 즐기는(귀신이 귀신을 쫒아내는) 놀이 문화이었습니다.
핼로윈은 기독교 국가에서 받아들여 미국으로 옮겨갔고, 미국에서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미국은 기독교 국가이므로 귀신 놀이는 처음에 장난처럼 가볍게 하고, 서로 과자를 나누며, 이웃과 즐기는 놀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변질되어 한국으로 들어오고, 우리 한국 젊은이들은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부정적 요소를 키워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벼운 장난과 과자를 나누며 이웃끼리 모이는 행사가 우리는 음주가무, 길거리의 특이한 변장(코스프레)과 광란성 행위(?) 등으로 말입니다. 상점과 기업은 자기들 이익을 위하여 이런 외래 문화를 상업적으로 이용했고, 청년들은 그들의 마케팅 전략에 분별없이 빨려들고 있습니다. 상점에 세워둔 해골과 거리에 나타난 귀신의 분장들은 보기에도 끔찍합니다.
이런 반성경적, 비기독교적인 문화가 어떻게 기독교 국가를 통하여 퍼지고 더 변질된 모습으로 커져왔는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외래 문화와 청년들의 미래
청년들은 이런 문화를 분별 없이 받아드렸다면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청년들은 넓은 안목을 가지고 세계를 내다보며 지구촌이 함께 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외국의 문화도 알아야 하고, 그들과 문화적 교류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 교류의 필요성에도 외래 문화를 부문별하게 받아드리기보다 우리 문화부터 먼저 알고, 지키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치즈나 버터, 햄버거를 즐겨 먹어도 김치와 된장의 맛을 알아야 하고, 높은 빌딩을 짓고 살아도 한국 초가집 지붕과 처마가 보여주는 곡선의 아름다움에 자부심도 가져야 합니다. 한자보다 한글은 월등하게 우수합니다. 한글은 쉬우면서도 다양한 소리와 모양을 표현할 수 있어서 세계의 공용어도 한국어를 쓰면 지구촌 사람들이 더 큰 유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음악을 너무 모르지만, 서양 째즈나 엉덩이 춤도 각자의 기호에 따라 즐길 수 있지만, 덩실덩실 추는 우리의 춤도 멋이 있고, 사물놀이, 난타 등은 서양 악기 드럼보다 더 신명이 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청년층이 선호하는 개인주의, 독신생활, 동물을 안방에서 키우는 풍조는 원래 우리 문화가 아닙니다.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양과 개는 가축으로 함께 살며, 병약자들의 건강을 회복시키는 소중한 약재로 쓰였습니다.
서양에서 시작한 주식과 성전에서 시작한 환전은 실물 투자 없는 금전 거래이며, 선물과 가상화폐의 거래는 생산물 없는 '가격 따먹기'입니다. 거래 자체가 생산 없는 '머니게임'이고, 소비 사용도 못하는 '제로섬게임'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지식과 기술, 인생을 배우고, 실물(실제 사업) 투자를 배워야 할 청년들은, 이런 투기 거래나 제로섬 게임은 발도 딛지 말아야 합니다. 이 가격물 구입은 100명 중 한 두명, 잘해야 10여명 외 나머지는 모두 손해를 보아 '쪽박 차는 노름판'입니다.
그리고 매매차익이 나오는 가격물은 갖고만 있으면, 소유로는 돈이자가 나오지 않아서 적자를 계속 봅니다. 이 놈은 청년들이 여기에 들어가는 순간, 사람을 미혹하여 혼을 빼앗고, 시간을 훔치는 요물입니다. 그러므로 서양의 문물 중에 실물투자가 아닌 금융거래에는 영구 허구라는 것을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청년의 총기로 토지와 주식 등, 금융거래에서 제로섬 게임이 주는 피해를 과학적으로 식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와 한국인의 정체성을 갖고,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것이 있고, 지구촌은 세계의 것이 있습니다. 나를 알아야 남을 알며, 나라를 지켜내야 세상을 섬길 수도 있습니다. 하여 외래 문화는 먼저 우리 것부터 찾고, 지키고, 가꾸면서 받아드려야 하겠습니다.
한국인의 세계관은 중국의 음양론, 서양의 이원론과는 좀 다른 고유문화가 있습니다. 바로 나라의 백성들이 함께한 종교, 유일하신 하늘신을 섬기는 제천의식을 말합니다. 제천의식은 기원전 2333년 경 제사장(壇君)인 밝달임금(檀君)이 처음 나라를 개국하며 행하였던 국가의식이고, 종교 행사입니다. 제천의식은 고조선의 뒤를 이어서도 계속되는데 부여는 영고, 고구려는 동맹, 예맥은 무천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의 제천의식에서 유래한 우리 문화의 뿌리는 하늘(天), 땅(地), 사람(人)이 천지조화를 이루며, 하나로 화합하는 삼일신론(三一神論)과 삼재론(三才論)입니다. 이 제천의식과 관련된 놀이 문화로는 서양 사람들이 흉내 내기 어려운 "신바람"과 "풍류"가 있습니다. 이런 제천의식은 외래 문화인 불교와 유교, 중국과 일본, 그리고 서양과 미국의 문화가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우리의 고유문화입니다.
그런데 핼로윈 문화를 수용한 미국의 종교는 기독교입니다. 기독교는 성경이 말하는 천지창조의 역사와 구속사로 하나님(天), 땅(地), 사람(人)의 삼수일체로 시작하고, 그 세상을 삼수의 조화로 운영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생명과 영혼, 그리고 종교와 세계관은 삼수조화(三數調和)로 구성되기 때문에 이수양립(二數兩立)으로 설명하는 중국의 음양론과 서양의 이원론으로는 해석이 어렵습니다.
음양론과 이원론은 세상과 사물의 관점을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 영과 육으로만 분리하여 다룹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생명을 대표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가정을 이루는 자녀와 가족이 있어야 하며, 영과 육 사이에는 혼(정신)과 생명이 살아있습니다.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한 것이 아니라 각각에 선과 악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음양론과 이원론은 사물이나 세상을 서로 대립 비교시켜 풀기 때문에 스스로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가 되어가는 삼수 관계를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일본의 일장기와 욱일기는 해를 숭배하는 1원론(태양신론)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태극기와 태극기의 원조인 삼태극 문양은 셋이 하나가 되는 세계관이 담겨 있습니다. 위로는 하늘에 계신 유일신 하나님이 있고, 생명이 있으며, 피조 세계는 해는 물론 천지만물과 우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을 섬기는 종교 경전을 가졌어도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단일신론 종교관을 가져서 일방적, 배타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그러나 성경과 한국의 제천의식은 유일신을 섬겨도 삼일신론(삼위일체론) 세계관을 가지므로, 단일신론이 가진 종교적 편협성에 빠져들지 않고, 경전과 세상을 통전적으로 보는 안목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셋(三)이 융합하여 하나(一)가 되는 삼위일체 종교관과 한국의 삼재론 세계관이 이를 쉽게 풀어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최고의 가치는 위로 하나님(天)의 존재를 인정하여 높여 드리고, 이웃(人,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땅(地)이 내고 부양하는 뭇 생명들을 귀히 여겨서 서로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국인의 심성에 깊이 들어있는 영성이고, 겸손이며, 지혜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의 청년들은 이러한 우리 고유문화에 대한 이해부터 하고서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서양과 외국의 사물을 받아드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늘을 높이며, 사람을 사랑하며, 땅이 가진 천지만물들과 함께하며 살아가는 天地人 사상이 한국적인 것입니다. 또 이것이 세상에 알려지고,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청년들은 세계 열방의 청년들과 함께 하며, 그들이 즐기는 건전 문화를 서로 교류하면서 세상을 섬기며 살아야 합니다.
나라가 약할 때, 어려운 때에 외세를 따라 외래 문화가 무분별하게 들어와서, 지금도 우리 것을 밀어내고 있는데, 그런 곳에 청년들이 나서서 우리 것을 살려내었으면 합니다.
이태원은 이제 이번 사고를 계기로 시대적 아픔과 어려움을 걷어내고, 그곳에도 우리 땅, 우리 문화가 뿌리를 내렸으면 합니다. 그래서 한국문화와 세계문화가 함께 어우러져 꽃을 피우는 이태원이 되길 바랍니다. 문화가 사람들이 만든 도로와 차, 건물과 상품으로 둘러쌓인 폐쇄적 공간 놀이를 벗어나서 창조주 하나님과 자연, 그리고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풍류 문화로 신바람나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귀하디 귀한 생명, 소중한 청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청년들의 문화와 이태원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칩니다.
*** 이 글을 쓰는 중 북한은 미사일을 쏘아 울릉도 주민은 대피령이 내렸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