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설악산 신흥사 ‘영산회상도’를 친견하고
등록날짜 [ 2019년07월15일 13시59분 ]
이상집 속초시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 이사장
설악산 신흥사의 영산회상도와 시왕도는 한국전쟁 직후 1954년에 자취가 감춰졌다.국외소재문화재단에 따르면 국외 우리나라의 문화재는 현재 21개국에 18만2080점이 소재하고 있다. 신흥사의 영산회상도가 설악의 품에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속초시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팀과 조계종 문화부팀은 환수 협상을 위해 지난 6월 24일 미국LA의 카운티미술관(라크마 LACMA)을 찾았다. 알다시피 대한불교 조계종 3교구 본사인 신흥사는 652년 신라 진덕여왕 6년에 자장율사가 항성사로 창건했다가 의상대사 때 선정사가 되었다. 1642년(조선 인조2년)에 불 탄 것을 1644년 현재의 위치에 중창하면서 신흥사로 현재에 이른다. 신흥사에는 극락보전(1981호), 극락보전 목조 아미타불 삼존불상(1721호), 지장전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1749호)과 성보유물관의 제진언집 목판(2014호), 켄싱턴호텔 앞에 위치하고 있는 항성사지 3층 석탑(443호)이 보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신흥사는 조선 왕실의 원당 사찰로 기도의 효력이 큰 사찰로 선호되었고 법기보살이 상주하는 신령스러운 곳으로 숭앙 받아 왕실의 안위를 위해 불공 도량으로 자주 이용되었다. 그러기에 극락보전 아미타불 삼존불상 뒤에 모셔졌던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의 화기(畵記)를 보면 ‘1755년 영조 31년 6월에 설악산 신흥사에 영산 해회를 마치고 봉안합니다. 주상 전하 이씨(영조)의 수명이 만세에 이르고 왕비 전하 서씨의 수명도 널리 이어지소서. 세자 전하 이씨(정조)의 수명도 천세에 이르기를 기원 합니다’라고 적혀 있다.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묘법 연화경’을 설법하는 장면을 경전에 의기하여 그린 그림이다. 영산회상도는 극락보전 후불 벽화 면에 알맞게 조성된 맞춤형 불화인데, 지금은 이곳에 없고 미국 라크마의 수장고의 보관함에서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1954년 하반기에 모습이 홀연히 사라졌다. 라크마 당국이 6조각으로 훼손된 것을 복원하여 보관 중이다. 영산회상도가 본래 자리에 있을 때 가장 빛이 나고 제 가치를 발휘할 것이라는 하나의 염원 속에 이번 조계종 문화부팀의 결심을 얻어 속초시 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는 문화재청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협조를 받아 라크마측과의 환수 교섭을 위해 현지를 가게 되었다.
우리들이 만든 학술세미나의 영문 책자와 동영상 자료를 전달하면서 3시간 이상의 대담 과정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고집하는 팽팽한 평행선이 이어졌고, 환수를 위한 우리의 노력과 지키려는 라크마측의 고뇌를 읽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폴 뷰 포드 팬쳐(Paul Bupord Fancher)씨가 1954년 5, 6월에, 리차드 브루스 락웰(Richard Bruce Rockwell)씨가 1954년 10월에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그 당시 사회적,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고 평화로 나아가는 시대적 흐름과 분위기에 맞추어 근대사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낸 설악산 신흥사 영산회상도가 환지본처 되기를 간절하게 설명하였다. 그 동안 영산회상도를 발견, 소장, 복원하여 주신 라크마 관계자님들과 미국, LA정부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도 함께하였다. 끝까지 명쾌한 대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교섭 협의가 끝나고 함께 기념사진과 웃음으로 훗날을 기약하면서 긍정적인 검토를 통해 서광의 빛을 느끼면서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희망했다. 다음날 영산회상도의 친견을 약속해 주심에 부처님께 감사함을 고할 수 있었다. 다음날 우리 일행이 문자로 보내 온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거대한 라크마측 수장고였고, 영상회상도와 시왕도(명부전에 모셔졌던 10점 중 6점)가 우리를 위해 벽면에 게시되어 있었다. 한쪽 벽면을 전부 차지한 영산회상도(세로 335.2cm, 가로 406.4cm의 크기)를 친견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동시에 저절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 입 밖으로 나왔다. 스님들과 함께한 몇몇 분들의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맺힘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부처님과 눈을 맞출 때 그 벅찬 감정을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했다. 부처님께서 왜 이제 왔느냐는 질책보다는 내 고향 설악의 품에 갈 날이 멀지 않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안심의 미소를 보내 주시고 계셨다. 향을 피우고 반야심경을 스님의 집전으로 행하고 삼배의 예를 올릴 땐 우리는(LA 현지 사찰의 스님들과 교포, 가이드, 통역 포함) 하나 되어 있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여 3단 연화 대좌 위에 높이 앉아 수많은 대중들에 둘러싸여 설법하는 장면을 보면서 향마촉지인을 짓고 있는 부처님의 엄숙한 모습과 얼굴에서 은근한 미소를 지어 한없는 자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 관음보살과 대제지보살님 등 8대 보살님과 가섭 등 10대 제자가 둘러싸고 있는 모습은 신비스럽고 자비로운 분위기가 전 화면에 가득 차게 했다. 우리들의 친견 모습을 지켜보던 그곳 직원(20여명)들의 행동, 얼굴 표정에서 왜 이들이 이렇게 영산회상도의 환수를 원하는지를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 시간의 친견을 끝내고 라크마측의 실무진과 다시한번 악수를 교환하면서 시왕도(1798년 정조 22년에 조성, 가로 124.4cm 세로 93.9cm) 6점도 함께 영산회상도와 함께 돌아오기를 염원하였다. 우리들은 영산회상도의 부처님을 친견하고 난 뒤에 하나 같이 회상도의 부처님께서 친히 설악산 신흥사로 돌아오실 것이라 믿었다. 그렇게 빌고 빌었다.우리 민족의 큰 슬픔인 한국전쟁의 혼란기 속에서 무단 반출된 것이기에 일전에 돌아온 경판과 같이 원만하게 환수되기를 부처님 전에 기원 드리고 돌아오면서 더욱 더 우리들의 책임이 크다는 무거운 짐을 느끼게 되었다.우리나라 무형 문화재의 80% 이상이 불교 문화재이기에 대한민국 국민과 속초시민을 포함한 설악권 모든 분들, 신흥사 사부대중 모든 사람들이 한마음 되어 원래의 제자리에 있을 때 존재의 의미가 깊다는 사실에 동참해 것을 호소하고 싶다. 영산회상도, 시왕도의 문화적, 종교적, 정신적 가치와 다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대한민국 국민, 속초시민의 염원과 석가모니 부처님의 메시지가 라크마 관계자 모든 분들의 마음에 긍정적으로 전해져 하루 빨리 깨달음의 절정을 이루어 설악산 신흥사 극락보전(보물1981호)의 제자리인 목조 아미타 삼존 여래좌상(보물1721호)과 함께 삼보(三寶)가 화합하는 감격을 맛보게 되길 두 손 모아 합장한다.속초시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팀과 조계종 문화부팀은 영산회상도의 환수 협상을 위해 지난 6월 24일 미국LA의 카운티미술관(라크마 LACMA)을 찾았다. . 이상집 속초시문화재제자리찾기위원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