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벽
류삼희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공공기관에
설치된 유리벽
깨끗하게 닦아 투명하였다
옆에는 ‘유리벽 주의’라는 팻말을 붙여 놓았다
안이 환히 보이는데
벽은 벽이었다
햇빛이 검열할 때에는
눈부시게 반짝이며 외벽이 되었지만
해가 지나면 투명한 빈 공간이었다
입구를 찾는 사람들은
투명을 지나다가
장애물에 곧잘 부딪쳤다
거기에 무언가 있는 것이었다
매일 그 곳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가끔은 피해 가기 어려웠다
바쁘거나 부지런한 사람들이 더 많이 부딪쳤다
조심하면 될 일이지만
잊고 또 부딪치곤 하였다
보기 좋고
깨끗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함정들
우리는
매일 부딪치고
다치면서 세상을 산다
소의 뿔
류삼희
순응하며 살아왔던
순한 소
코뚜레에 길들여져
억울함도 잊고
힘든 것도 참아내고
언제나 되새김하는 인내
일 할 때에는
머리
땅을 향하지만
뿔은 꼿꼿이 하늘을 향한다
세워진 갈색 뿔
하늘을 떠받치면서
힘을 모으고
본래의 자기 모습
푸르른
당당함을 지키고 있다
초원 위의 갈색
뿔
멀리서도 보이는
풀밭의
자유를 그리워한다
퇴역한 전사
류삼희
중절모를 쓴 노인
비탈에 서 있는 나무 찾아 와
나무둥치 쓰다듬는다
벌집이 된 상처
삭아 내린 피부
살점이 뜯기는 줄도 모르고
위로 위로 꿈을 늘였던,
한때 나비와 벌을 모으던 파릇한 손이
손가락 바싹 마르고
등허리엔 퍼석퍼석한 버섯들
텅 빈 벌판처럼
텅 빈 바람처럼
벌레와 지렁이와 공생하면서도
새순을 내며
퇴역을 거부하고 있다
복지사
류삼희
산 밑 빌라 5층
외부로 난 추운 계단을
휠체어 접어 한 손에 들고
독거 할머니 등에 업은 채
내려오면서
노인의 냄새를 맡고 있다
오직 하나
가족들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
입 다물고 있는 눈
자녀들로 가득하여
할머니 무겁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데이케어 센터 송영(送迎) 위해
미끄러운 계단 오르내리며
허방을 짚지 않으려고
나뒹굴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한다
할머니 마음 다치지 않게
흔들려서 눈물 흐르지 않게
해질녘까지
가끔씩
숨도 가쁘지만
누군가 가슴 문을 여는 소리
60이 넘은 봉고차 모는 남자
목사 사회복지사
임 계신 곳
류삼희
두 발로 어둠을 조심스레 밀고
양 손으로 어둠 상상하여 잡으며
거친 장애물
검은 벽 피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몸으로 길을 찾아
마음
부딪치며 가는 방향 바꾸고
빛이 있는 곳
허공을 더듬어
없는 듯 숨어 있는
문
가만히 연다
먼저 와 있는 달빛
밖에서 기웃거리는 별
어둠 밀 듯
달빛 별빛 온 몸으로 밀어내고
임 계신 곳
눈으로 빛에 다가간다
카페 게시글
신인상 소개 및 작품
유리벽 외 4편 / 류삼희
이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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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0
23.04.0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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