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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5월 3일 화요일, 맑음.
*걷기- 22째 날
*아스토르가(Astorga)에서 라바날 델 카미노(Rabanal del Camino)
*이동거리 : 23.5km.
*누적거리 : 547.5km.
나는 순례자 낯선 나라에 언젠가 집에 돌아가리. 어두운 세상 방황치 않고 예수와 함께 돌아가리. 나는 순례자 방황하지만 예수 내 구주 이끄시네. 영광의 나팔 소리들 릴 때 천사 날 위해 찾아오리. 나는 순례자 피곤한 몸을 하늘나라에 누이시네.
주 볼 때마다 영광나타나 승리를 위해 찬양하리. 나는 순례자 돌아가리. 날 기다리는 밝은 곳에 곧 돌아가리. 기쁨의 나라 예수와 함께 길이 살리. 언제부터인가 혼자 길을 걸어가다 보면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노래가 되었다.
쉽지 않은 하루 길이지만 오늘도 목표를 정해두고 마음을 다지고 숙소를 나선다. 아침 6시 40분이다. 오늘은 레온 산맥을 넘는 여정을 시작하는 날이다. 목적지 해발 1155m, 아스토르가 해발900m,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서 있는 아스토르가는 해발 869m에서 출발하여 해발 1149m 까지 가는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올라가야하는 여정이다. 그러나 아주 완만하게 올라가는 것이라 별로 높이를 실감하지는 못한단다.
메세타(Meseta, 이베리아반도 중앙부에 있는 해발 800~900m의 고원지대)지역의 황무지에서 벗어나, 눈앞에 나타나는 레온 산맥을 넘어가는 것이다. 숙소 앞에 있는 순례자 동상에서 같은 폼으로 사진을 찍고 가는 것이 순례자의 예절이란다.
아직 어둡고 찬 기운이 느껴지는 시간이지만 주먹을 쥐고 폼을 잡아본다. 아스토르가 건물 사이 골목길을 길을 잃지 않도록 카미노 표시를 찾아가며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초코릿 공장 앞에는 순례자 형상을 붙여 놓았다. 아직 어둡다.
산 페드로 데 렉티비아 성당을 지나간다. 현대식 건물 성당이다. 아스토르가 도시 끝에서 고요함과 적막 속에 잠들어 있는 도시와 작별한다. 성벽을 빠져 나오자 또 다른 성당 앞으로 내려간다. 도시를 빠져나와 넓은 평야가 순례자를 맞이한다.
260.5km 표지석이 나타난다. 도로와 함께 가는 시골길이다. 동쪽 숲에서 해가 게으르게 떠오른다. 사물들이 서서히 색을 드러낸다. 농지의 붉은색, 하늘의 파란색, 자라는 초록색 풀들이 너무 예쁘다.
오른쪽 언덕에 자리 잡고 있는 발데비에하스(Valdeviejas) 마을의 아름다운 모습이 보인다. 앞서 가는 순례자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조금 더 걸어서 무리아스 데 레치발도(Murias de Rechivaldo) 마을 표지판을 만났다.
서고트 식 이름을 갖고 있는 이 마을은 작지만 쾌적해 보인다. 이 마을의 기원에 대해서는 1700년경에 홍수가 나서 원래 있던 주거지가 모두 파괴되었고, 헤르가 강변에 현재의 마을이 재건되었다는 것 이외에는 정확히 기록되어있는 것이 없단다.
매년 8월 16일에는 카르네로 축제가 열린다. 축제 날 아침에는 마을사람들이 토르티야, 파스타 등으로 파르바(Parva)라고 부르는 간단한 아침을 먹는다. 그리고 오후에는 모든 마을사람들이 모여 직접 요리한 양고기를 먹으며 마라가테리아 전통의 막대기 놀이를 한다.
도로 변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골목길이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넓다. 마을 광장에서 식수대를 만났다. 17세기에 만들어진 마라가테리아 전통양식의 소박한집이 이어져 있다. 흰색으로 칠한 창문이 커 보인다.
아스토르가는 마라가테리아의 ‘수도’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마라가토인들 스스로는 어느 한 쪽으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한다. 어떤 사람들은 8세기 경 무어인들이 침입해 올 때 함께 스페인으로 와 이 외딴 지역에 ‘실수’로 정착해 버린 베르베르 족의 후손이 마라가토인이라고 추정한다.
마라가토인이 서고트 족과 서고트 족의 왕 마우레가토 와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대부분은 마라가토인이 노새를 끌고 다니고 이 일대 40여개의 마을에 4천여 명이 흩어져 산다는 사실엔 동의하고 있다.
산 에스떼반 교구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San Esteban)이 있다. 18세기에 세워진 아름다운 성당으로 마라가테리아 특유의 불그스름한 돌로 지어졌다. 황새의 둥지가 있는 종탑에는 계단이 붙어 있다. 바 크리스(Bar Cris) 카페가 작지만 예쁘게 우리를 맞이한다.
산티아고 256.4km표지석이 있다. 마을 끝에서부터는 흰색의 작은 자갈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 걷는다. 전봇대와 함께 걷는다. 앞에 가는 커플 팀의 배낭이 빵빵하다. 덩치도 빵빵한데, 매고 가는 짐도 뚱뚱해 보인다. 오솔길이 도로와 함께 가니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오르막 언덕이다. Santa Catalina 1.5, El Ganso 5, Rabanal de Camino 11 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오솔길을 넘어가니 멀리 마을이 보인다. 마을 중앙에 우뚝 솟은 성당의 형체가 선명하다. 시골길 끝에는 성당이 있다. 옆 도로에는 자전거 순례자가 달린다.
Santa Catalina de Somoza 마을 표시판이 나타난다. 순례자 휴게소(Area de Descanso Para Peregrinos)가 있다. 쉬어갈 수 있는 벤치와 탁자가 있고 주사위 모형을 얹고 있는 커다란 바위가 편안함을 준다.
산타 카탈리나 데 소모사(Santa Catalina de Somoza)는 마을 초입부터 제주도를 연상케 하는 돌담이 레알 거리를 통하여 순례자를 마을로 인도한다. 덤불과 키 작은 떡갈나무, 목장으로 둘러싸여 있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소모사(Somoza)는 라틴어로 ‘산 밑’이라는 뜻이란다. 마을 끝에는 순례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이라고 산이 있다. 이 마을도 마라가테리아 전통 건축물이 있고, 종탑이 있는 성당도 있다.
마요르 광장에는 마라가테리아 지방의 유명한 탐보릴레로(Tamborilero;작은 북) 연주자인 아킬리노 파스토르의 흉상이 있다. 달팽이도 힘겹게 이동하고 있다. 알베르게 엘 카미난테를 만났다. 바를 겸하고 있는 곳인데 특이하게 우리나라 태극기가 걸려있다.
들어가서 아침 식사를 한다. 카페 안 분위기가 약간 어둡고 훈훈하다. 베이컨 치즈 샌드위치를 커피와 함께 주문해서 먹는다. 6.1유로다. 카페 라테라는 말이 통하지 않아 우유라는 말을 스페인어로 배웠다. 레체(Leche)다.
잠시 쉬면서 에너지를 보충한 후에 다시 가던 길을 간다. 성당을 지난다. 자전거 둘이 역방향으로 온다. 카페를 겸한 알베르게가 또 있다. 작은 정원에는 농기계가 지키고 있다. 긴 처마가 있는 전통 가옥 앞이다.
Fuente라는 글이 수도꼭지와 함께 검은 돌 판에 그려져 있다. 푸엔테(Fuente)는 스페인어로 샘(泉)이란 뜻이란다. 마을 끝에서 십자가 조형물(Cruz de Piedra)이 있다. 깨끗한 잔디밭에 자리잡고 있다.
돌로지어진 전통가옥에는 흰색 조가비가 들어가 있어 보석같이 빛이난다. 코발트 빛 파란색을 칠한 대문이 인상적인 오래된 전통가옥에는 76이라는 숫자가 돋보인다. 도로와 함께 걷는 오솔길에는 풀들이 많이 자라있다. 돌무더기도 보인다.
돌담 경계를 뒤로 잡목 숲이 펼쳐지고 그 뒤로 멀리 설산이 보인다. 낙서된 표지석들이 나타난다. 오솔길은 예쁘다. 곡선으로 이어져가고 노란 유채꽃 밭이 등장한다. 자전거 순레자들이 또 가는데 혼자가는 자전거 순례자는 없다. 꼭 두 명 이상이다.
바위에 앉아서 쉬고 있는 노부부 순례자가 편안해 보인다. 나무 십자가가 버티고 있다. 산티아고 250.7km 표지석을 따라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자전거 팀 10여명이 앞서 간다. 전통 가옥들이 보이고 성당도 보인다.
멀리 캐나다에서 보았던 인디언 텐트도 보인다. 엘 간소(El Ganso)마을이다. 스페인어로 간소는 거위 혹은 조금 모자라는 사람을 의미한다. 어떻게 이런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ek.
엘 간소는 텔레노 산과 이라고 산 사이에 있는 마라가테리아의 작은 마을이다. 마을에는 테이타다식 집(짚을 넣어 빚은 벽돌로 만든 집)이 몇 채 남아 있다.
이 집은 옛날 사람들 특히 켈트인들이 거주하거나 추수한 곡식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오두막에서 유래한 것이란다. 이러한 전통 건축은 대중 건축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카르레라 거리에서 만난 오래된 펌프도 반갑다. 포장된 마을길이다.
벗꽃이 활작 피어있다. 돌로 지어진 집들이 견고해 보인다. 카우보이 식당(Cowboy Bar)이 나타난다. 검게 그을은 순례자들이 쉬고 있다. 산티아고 교구 성당(Iglesia Pparroquial de Santiago)이 나타난다. 입구 문이 오래되 보인다.
투박한 나무 십자가도 있다. 마라가테리아 특유의 불그스름한 돌로 지은 성당으로 전통적인 종탑이 있다. 순례자를 위한 그리스도의 소성당을 향한 작은 길이 나 있다. 성당 뒤로 돌아간다. 돌담과 어우러진 꽃나무가 화사하다.
폐허 같은 집이 여러 채 보인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순례자들만 거리에 보인다. LE-6304도로 옆으로 마라가테리아 전통 양식의 소박한 집들이 보인다. 마을을 빠져나오니 십자가 조형물들이 순례자를 배웅한다.
붉은색 레온 십자가가 견고해 보인다. 자전거 팀들이 자전거를 뉘어놓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간식타임인가 보다. 농로길이 예쁘다. 십자가 모형이 나타나고 쉼터도 보인다. 언덕을 올라간다. 차길과 함께 간다.
멀리 설산이 보이고 그 앞에 풍력발전기가 몇 개 보인다. 오른쪽에 소나무 숲을 끼고 걷는다. 바람이 제법 불어온다. 캐나다 벤쿠버에서 오셨다는 중년 부부를 만났다. 아내가 힘이 없는지 끌려간다. 송도에서 왔다는 사장님도 만났다.
붉은 배낭을 메고 간다. 배낭 뒤에 양말 속내의 등을 가지런히 매달고 간다. 깔끔해 보인다. 오래된 자동차를 끌고와 노천 가게를 펼친 노점상이 보인다. 귀여운 악세사리 수공 인형이다. 순례자들이 배낭 뒤에 조가비와 함께 매달고 다니는 인형이다.
잡목 숲 산길이 좀 험하다. 커다란 저택이 오른쪽에 나타난다. 숙소인 것 같다. 아치형태로 만들어진 돌 대문이 멋지다. 사성급 호텔(Apartamentos Rurales Las Carballedas)이다. 듬성 듬성 집들이 나타난다. 도로 양 옆에 교회와 주택들이 있다.
펜디토 크리스토 데 라 베라 크루스 성당(Ermita del Bendito Cristo de la Curz)이다. 18세기에 만들어진 성당으로, 마을을 향한 성당 입구와 공동묘지, 순례자들에게 휴식을 주는 떡갈나무가 인상적이다.
길가에 있는 성당.도로를 벗어나 오른쪽 길로 간다. 오늘의 목적지 Rabanal del Camino 표지판이 나타난다. 라바날 델 카미노는, 펠리페 2세가 지나가다가 밤을 지냈다는 방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는 마을이다.
라바날 델 카미노는 수많은 전설과 역사가 존재한다. 또한 마을의 이름에서부터 쉽게 알 수 있듯, 중세부터 순례자들이 찾아오는 마을로 오늘날 까지도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는다. 마을 밖의 떡갈나무 숲은 순례자들에게 근사한 그늘과 휴식을 제공한다.
작은 마을인데 돌 집이 대부분이고 오래된 느낌이다. 숙소(Albergue Nuestra Señora del Pilar)는 금방 찾았다. 넓은 광장을 갖고 있는 커다란 대문 앞에는 순례자 모형이 세워져 있다. 견고한 나무 대문을 밀고 들어가면 아늑한 마당이 이어진다.
오후 12시 20분 경에 도착했다. 숙박비는 10유로다.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한 공간에 남녀 구분 없이 40여명이 묵을 수 있는 커다란 공간에 2층침대가 가득하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배낭을 올려놓았다. 하얀 시트가 깔끔하게 제공되어 있다.
숙소 입구에 공동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다. 오래된 알베르게다. 식당에는 메뉴판이 한국어로 만들진 것도 있다. 라면과 김치 그리고 밥을 팔고 있다. 마드리드에서 김치를 공수해 온단다. 여러사람이 김치와 밥 그리고 라면을 주문해서 먹는다.
흑백 사진부터 칼라사진까지 많은 사진이 벽에 붙어있고, 세계 각국의 지페도 잔뜩 붙여놨다. 한국 돈 1000원짜리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동네 한 바퀴를 하러 나왔다. 원형 돌담을 찍은 사진이 있다. Gátova라는 글씨와 함께 있다.
첨성대 잘라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골목길을 들어서니 아주 작은 편의점(Tienda La Despensa)이 있다. 물건이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서 들어가 봤다. 신라면이 눈에 띈다. 2.6유로다. 물과 소량의 식품들도 팔고 있다.
소박해 보이는 주인 아주머니의 미소가 좋다. 성당(Iglesia de Nuestra Señora de la Asunción)을 만났다. 성모 승천 성당 (Iglesia Parroquial de la Asuncion)은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다.
성당의 전면에는 앞으로 구부러진 형태의 로마네스크 창문 세 개가 보존되어 있다. 베네딕토회에서 운영하는 소성당이다. 그레고리안 성가로 미사와 순례자 축복기도를 해준다. 베네딕토 수도원과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도 갖고 있다.
왜관 베네딕토회 인영균 클레멘스 신부님 머물렀던 곳이다. ' 까미노 위에 살면서' 글을 쓰신 신부님이란다.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한국어로 된 순례 안내 글도 보인다.
최근 독일에서 조직된 베네딕토회 소속 사제단이 입주해 12세기 지은 성당을 복원해 그레고리안 성가로 미사와 저녁기도회를 인도한다. 이 수도원은 독일 바바리아 주에 있는 성 오틸리엔 포교 베네딕토 수도원에 소속되어 있단다.
베네딕도 성인이 나그네를 돌보고 손님들에게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라고 했단다. 카미노는 정직한 길이다. 나라 나이 성별 등 신분의 구별없이 모두 페레그리노라(순례자)는 호칭을 사용한다고 한다. 무슨 이유로 왔건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순례자라 불린다.
목적지가 있고 자기 짐을 지고 자기발로 걸을 수 있을 만큼, 한 발 한 발 미지의 세계로 정직하게 걷는 것이 중요하단다. 이 성모 승천 성당의 기적을 일러주었다. 마을의 성모 승천 성당은 기적을 일으킨다고 한다.
폭풍우가 마을로 다가오면 성당에서는 신도들이 모여 성 바르바라에게 도움을 청하며 성당의 종을 친다. 그러면 폭풍우가 마을을 비켜가 해를 입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마라가테리아의 정직한 마부 이야기도 있다.
어느 날 이름을 알 수 없는 시장 상인이 마라가테리아의 마부 호세 카스트로에게 커다란 상자 하나를 맡긴 후, 자신이 그의 집으로 직접 찾으러 가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한 날이 한참을 지나도 아무도 짐을 찾으러 오지 않자 마부는 상자를 열어 그 상자의 주인을 찾을 수 있는 기록을 찾으려 했다. 상자 안에는 값나가는 보물들이 가득했으나 누구의 것인지에 대한 단서는 하나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죽을 날이 다가온 마부는 그때까지 고이 보관하고 있던 상자를 열어 산 호세 소성당을 짓는데 봉헌했다는 이야기다. 성당 앞에는 홀리안 캄포(Julian Campo) 흉상이 있다. 수염이 인상적이다. 대만에서 보았던 신부의 흉상과 비슷하다.
타이페이의 해안 도시 단수이에서 본 멕케이 목사님의 흉상과 비슷하다. 성당 알베르게에 들어가 카미노 도장을 받았다. 골목길 하나에 이루어진 작은 마을이다. 성당과 돌집들 그리고 폐허가 그대로다.
약간만 벗어나면 시골 농장이 나타나고 잔디밭이 넓은 목초지가 나타난다. 돌담에 꽃 그리고 나무 대문들이 예쁘다. 돌담 위에 고양이가 모델겸 친구가 되어 한참을 같이 놀았다. 보라빛 이름모를 꽃들이 싱싱하다.
편의점에서 물 1.5리터 1유로, 오렌지 주스 0.75유로를 샀다. 숙소 주방에서 여성들이 만들어준 숭늉과 부침개를 먹었다. 마을을 벗어나 내일 걸어야 할 길을 조금 걸어 보았다. 아스팔트의 언덕으로 오르는 시원한 길이다. 제법 많이 올라온 것 같다.
고목나무들이 많다. 산책을 하고 숙소 앞 광장에 앉아서 휴식을 취한다. 조용하다. 날이 저물어 동네가 조용하다. 샤워를 헐레벌떡 끝내고 편안히 누워 하루를 정리한다. 산티아고 가이드 북을 읽으며 내일을 준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