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타이주(茅台酒, Maotai Jiu)
세계적으로 너무나 유명한 마오타이는 귀주성 모태(茅台, Maotai)에서 생산되는 증류주이다.
수수를 주원료로 하는 마오타이는 알콜도수가 53%로 높으며 모향(茅香), 또는 장향(醬香, 간장냄새)라고 하는 독특한 향이 진하므로 익숙치 않은 사람들은 쉽게 마시기 어렵지만 중국에서 나라의 큰 손님들을 맞이할때면 자신있게 내놓는 술이 바로 이것으로 우리나라에도 꽤나 잘 알려졌다.
그러나 이같은 명성에도 불구하고 양조 역사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아 200여년에 지나지 않으며 다른 지역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모택동의 홍군이 장정을 진행중에 귀주서 각오를 새롭게 다지며 마시고 부터이다.
모택동이 홍군을 이끌고 장정을 시작하여 평야지대를 벗어나 貴州(꿰이저우)에 도착한 것은 1935년 초였다.
이 귀주란 곳이 어떤 곳인가.
중국사람들에게 있어 귀주는 "하늘에는 맑은 하늘이 3일도 맑지 않고 땅에는 평야가 삼리(三里)도 없으며 사람에게는 세푼의 돈도 없다(天無三日晴 地無三里平 人無三分銀)"고 할 정도로 오지인 곳이다.
그나마 귀주를 지나 예정하고 있는 코스는 히말라야 산맥과 티베트 고원지대로서 그 앞날에 어떤 고생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 홍군들은 여기서 모처럼 이곳의 향토주인 마오타이를 흠뻑 마시며 혁명 의지를 가다듬었던 것이다.
고생을 할때 겪은 추억과 입맛은 누구도 쉽게 잊지 못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마오타이는 산골의 시골 토속주 신세에서 뛰어 올라 국가 공식 만찬 석상에 오르는 명주로 격상이 되었고 미국과 수교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술꾼 닉슨대통령이 맛을 보고서 국제적으로 유명해지더니 레이건이 북경의 만찬회 석상에서 독한 맛에 얼굴을 찌푸리는 모습이 TV 뉴스로 보도되고 부터는 세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그러면 이 마오타이가 중국의 변두리에서 그것도 200여년전에 비로소 등장하게된 사연을 알아 보자.
마오타이는 산서(山西)의 분주(汾酒)에 뿌리를 두고 있다.
18세기 초 청나라 강희(康熙) 임금때 분주의 고향 분양(汾陽)에는 가부(賈富)라는 상인이 살았다. 그는 하루 세끼 식사에 분주를 반주로 빠뜨리는 법이 없었고 먼 길을 떠날 때도 반드시 술통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 애주가였다.
그가 언젠가 멀리 귀주(貴州)의 회인(懷仁, 화이르언)으로 장삿길을 떠난 때의 일이다.
이번에도 예외없이 술을 충분히 준비한다고는 하였지만 워낙 먼길이고보니 회인에 도착할 즈음에는 그만 술이 떨어지고 말았다. 하는수 없이 주막에 들러 식사를 하면서 그는 주인을 불러 좋은 술을 내오도록 부탁하였다.
그러나 한 모금 입에 머금자 그 맛에 실망하여 경치는 아름다운데 좋은 술은 없구나 하고 탄식을 하며 자신의 술이 떨어진 것을 아쉬워 하였다. 이를 들은 주인이 아끼던 비장의 술통을 몇개 가지고 나와 가부에게 시음을 해보도록 청하였다.
가부는 먼저 항아리의 뚜껑을 열고 대충 살피더니 하나씩 내음을 맡고서는 사발로 퍼서 혀끝에 굴리며 맛을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부의 실망은 여전하였다. 비록 오래 묵었으나 뒷맛이 좋지 못하다는 가부의 종합 평가를 들은 주인이 가부에게 좋은 술을 빚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간곡히 요청하자 가부는 이를 허락하였다.
그는 이듬해에 분주를 빚는 기술자를 데리고 오면서 분주의 원료용 누룩이며 여러가지 도구들을 갖추고 돌아와 방초촌(芳草村, 후에 茅台鎭으로 바뀜)에 양조장을 차렸다.
이곳 마오타이에서 생산된 분주는 처음에는 화모주(華茅酒, 후아마오지우)로 불리었는데 고대 한자에서 화(華)는 화(花)와 통하여 화모주(華茅酒)는 화모주(花茅酒)와 마찬가지이므로 이것은 행화촌방식의 마오타이주(杏花茅酒)라는 뜻이다.
그런가 하면 마오타이주가 오랜 역사를 가졌다는 주장도 있다.
언젠가 마오타이진(茅台鎭)에 큰 눈이 내리고 강추위가 몰아쳐 사람들은 모두 문을 걸어 잠그고 추위가 지나가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이때 백발의 노파가 어느 젊은 청년의 집을 찾아 문을 두드렸는데 그 젊은이는 조금도 성가시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노파를 안으로 모셨을 뿐만 아니라 얼른 불을 크게 피워 추위에 떠는 노파를 따뜻하게 해드리고 뜨거운 밥과 함께 집에서 담근 술을 데워서 드시도록 권하였다. 그는 식사가 끝나자 자기의 침대를 노파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난로가의 땅에 누워 잠이 들었다.
깜박 잠이 들었는데 꿈에 어디선가 거문고 소리가 들리면서 아름다운 선녀가 나타나 손에 든 빛나는 술잔을 기울여 술을 부으니까 술향기가 주위를 진동하였다. 선녀는 말하기를 "참으로 좋은 마음씨를 가졌오. 내가 이제 어떤 물웅덩이를 가르쳐 줄 것인즉 이 물로서 술을 빚어 마시면 좋은 술을 마시면서 오래도록 건강하고 장수할 것입니다." 하고서는 사라지는 것이었다.
잠이 깬 젊은이가 문을 열고 내다보니 눈도 그치고 바람도 잠잠해졌는데 집앞 어디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졸졸 들린다. 이 젊은이는 물흐르는 소리를 따라 샘을 찾아내어 이 물을 사용하여 술을 빚기 시작하였다.
마오타이주의 병에 그려져 있는 하늘을 나르는 선녀(飛仙)의 도안은 바로 이 선녀를 모델로 한 것이라 한다.
이같이 유명한 마오타이주는 값이 비싼 것이 흠이다.
중국의 보통사람들이 월급으로 받는 돈을 모두 털어야 한 병을 살 수 있으니 어찌 대중적인 술이라 할 수 있으랴. 그래서 중국인들도 윗사람에게 뇌물을 바쳐야 할 경우에 사게 되는데 뇌물로 받은 술을 그냥 마시기가 아까워 다시 더 높은 이에게 선물하다 보면 결국 마오타이주는 고급 간부들에게 집중되기 마련이라 한다.
양조기술이 복잡하고 생산기간도 긴 마오타이주는 생산을 늘렸다고는 해도 년간 2천톤 정도밖에 생산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본토에서도 가짜가 마구 돌아다녀 심심치 않게 가짜 마오타이주의 적발 사건이 보도되고 있다.
비단 마오타이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1985년부터 1992년사이에 가짜술 때문에 병을 얻은 자가 5천명에 40여명이 눈이 멀었고 200명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메칠 알콜로 만들어 향료만 적당히 섞은 탓이리라. 조심, 조심을 요한다.
또 한가지 약점은 비록 전세계에 수출하고 있으나 도수가 높아 웬만한 주당이 아니고서는 가볍게 마실 수가 없다. 그래서 중국에서도 이 술의 도수를 낮추어 대중형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독특한 향과 어울어지는 독한 술의 맛이 줄어들면 마오타이의 성가가 전처럼 유지될까 하는 의아심도 든다
중국의 8대 명주(195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