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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1·26 ‘SGI의 날’ 기념 제언 - 평화의 문화 대화의 대륜(大輪)
1월 26일, 제25회 ‘SGI(창가학회인터내셔널)의 날’을 기념하여 이케다 SGI회장은 <평화의 문화 대화의 대륜>이라는 제목 아래 제언을 발표했다.
제언에서는 우선 인간사회에 끼쳐 온 문화의 영향을 분석한 다음, ‘외적인 차이의 절대화(絶對化)’가 초래한 20세기 비극의 역사를 총괄. 소극적 관용(寬容)의 한계를 타파하고 적극적인 공존사회(共存社會)를 구축하려면 민중이 주체가 되는 ‘문화민제주의(文化民際主義)’의 시대조류를 고조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호소하고 있다.
또 불법(佛法)의 ‘선악무기론(善惡無記論)’을 통하여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선(善)의 가치를 자타 함께 창조하는 ‘열린 대화’야말로 지구문명을 구축하는 황금률이라는 것을 강조. SGI가 ‘문명간 대화’ ‘종교간 대화’를 솔선하여 추진해 온 경위를 소개하면서 인간혁명(人間革命)이라는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엠파워먼트(empowerment) 운동’이야말로 다름 아닌 ‘평화의 문화’를 건설하는 직도(直道)라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어서 21세기 인류공투(人類共鬪)의 중핵인 유엔의 역할에 착안하여 구체적인 개혁과 강화안(强化案)을 제시. (1)‘분쟁예방위원회(紛爭豫防委員會)’의 설치, (2)빈곤퇴치를 위한 ‘글로벌 마셜플랜’의 실시, (3)인간개발을 촉진하는 각국의 ‘유엔하우스’ 확충, (4)총회에 자문기능을 하는 ‘지구민중평의회(地球民衆評議會)’ 창설 등을 제안하고 있다.
또 ‘핵무기 없는 세계’를 지향하여 민중이 주도하는 ‘새로운 외교’ 방식으로 CTBT(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의 비준을 촉구하고, ‘핵무기금지조약’을 제정하는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시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 나아가 마키구치(牧口) 초대회장과 도다(戶田) 제2대회장의 선견적(先見的) 사상을 언급하면서, 패권경쟁에서 ‘신뢰를 얻는’ 경쟁력으로 국가관을 전환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호소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의 미래를 전망하며, 한국전쟁 발발(勃發)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이야말로 냉전상태에서 벗어나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지적하고, ‘동북아시아평화대학’을 설치하여 청년·교육교류를 추진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전쟁과 증오의 인류사’ 전환하여
민중과 민중의 강한 연대로
‘희망의 천년’의 대도(大道)를
‘제3의 천년’의 출발에 즈음하여 저의 소감 일부분을 밝혀 발족 25주년인 ‘SGI의 날’을 기념하고자 합니다.
20세기 최후의 10년은 실로 어지러운 격동의 10년이었습니다.
냉전구조가 종결되어 인류사의 미래에 밝은 전망이 열릴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것도 순간의 일, 크고 작은 여러 지역분쟁은 흡사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처럼 전 세계로 비화(飛火)하여 쟁란(爭亂)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냉전이 종결된 1989년부터 작년까지 10년 동안, 분쟁이나 분리독립 등의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 국가의 수는 약 50개 국에 이르며, 분쟁으로 사망한 자는 4백만 명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분쟁에서 희생되는 비전투원(민간인)의 비율이 90%에 이르고, 그 절반이 어린이라는 점은 실로 우려할 만한 실정입니다.
또 분쟁에서 살아남은 다수의 사람들도 난민생활을 강요당하여 UNHCR(유엔난민고등판무관사무소)에서는 국제적인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의 수를 약 2천3백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유엔은 ‘전쟁과 폭력의 세기’로 불리는 20세기의 ‘부(負:그늘, 마이너스)의 유산(遺産)’을 극복해야 한다며 새로운 밀레니엄(새 천년)의 개막인 올해를 ‘세계 평화의 문화의 해’로 정했습니다.
아울러 21세기의 최초 10년에 해당하는 내년 2001년부터 2010년까지를 ‘평화의 문화와 세계아동을 위한 비폭력의 해 10년’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전쟁의 문화’에서 ‘평화의 문화’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국제사회가 단결하여 행동을 개시할 절호의 기회라고 저는 강하게 호소하는 바입니다.
유니세프(국제아동기금)의 <2000년 세계아동현황보고서>에서도 한 세대 동안에구조적 폭력에서 벗어나겠다는 결의로 도전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작년, 미국SGI 청년부는 ‘폭력의 극복’을 위한 운동<주1>으로 일어섰습니다. 어려운 현실에 절망하거나 자신에게 위험이 미치지 않는다고 하여 수수방관하면 안 됩니다.
설령 작은 한 걸음이라도 사회의 악(惡)을 간과하지 않고 행동을 일으키는 데서 모든 것은 시작되는 법입니다.
세계로부터 비참(悲慘)이라는
두 글자를 없앤다
이 세상 ‘어디에도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된다’ ‘세계로부터 비참이라는 두 글자를 없애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우리들은 함께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끊임없는 도전 속에 21세기를 단순한 ‘20세기의 연장선인 시대’로 끝내지 않고 새로운 ‘평화와 희망의 세기’의 궤도를 만드는 열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류가 도전해야 할 과제는 단순히 전쟁이 없다는 소극적 평화의 실현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사회구조를 근본부터 변혁하는 적극적 평화의 실현입니다.
따라서 국제협력과 법제도의 정비도 필요하겠습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기반이 되는 ‘평화의 문화’입니다.
1975년 1월 26일, 세계 51개국·지역의 대표가 모여 괌에서 실질적인 출범을 한 SGI는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의 불법(佛法)을 기조로 한 ‘인간주의’의 깃발을 내걸면서 ‘평화’ ‘문화’ ‘교육’을 통한 민중의 연대를 세계 148개국·지역으로 넓혀 왔습니다.
그것은 ‘전쟁과 폭력의 세기’에서 ‘평화와 희망의 세기’로 ― 불행과 비참으로 가득했던 인류사(人類史)의 전환을 목표로 한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평화운동’입니다.
‘평화의 문화’를 구축하고자 도전을 거듭해 온 SGI에서는 작년에도 헤이그와 서울에서 개최된 NGO(비정부기구) 회의에서 각각 심포지엄을 주최하고 토의를 실시했습니다.
또한 평화연구기관인 ‘보스턴21세기센터’에서도 작년 봄, 세 차례에 걸쳐 ‘평화의 문화’를 구축하는 방도를 모색해 왔습니다.
모든 회의에서 초점으로 부각된 것은 비극을 낳는 ‘증오와 대립의 토양’을 어떻게 ‘평화와 공존의 토양’으로 바꾸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인도주의에 서서 난민구제를 지원
일단 무력분쟁이 일어나면 살육과 파괴가 되풀이될 뿐만 아니라, 폭력과 공포에서 도피하려고 정든 고향을 떠나 난민생활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게 됩니다.
SGI에서는 불법의 이념에 기반을 둔 인도주의 입장에서 이러한 난민들을 구제하는 UNHCR의 활동을 지원해 왔습니다.
특히 일본 청년부를 중심으로 한 난민구제 캠페인은 1973년 베트남과 서아프리카에서 시행된 이래 20회를 헤아리며, 1980년에 시작된 난민캠프 시찰과 조사단 파견은 14회에 이르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유고슬라비아의 코소보 자치주와 탄자니아에 있는 르완다, 부룬디, 콩고의 난민캠프에 시찰단을 파견했습니다.
앞으로도 불법을 기조로 한 이러한 평화 문화 교육의 운동을 착실하게 다각적인 면에서 전개해 가고자 합니다. 그것이 불법자(佛法者)의 인간적, 사회적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평화의 문화’라고 한 마디로 표현은 해도, 거기서 어떤 실질적인 이미지를 환기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분명 ‘무(武)’에 대치(對置)되는 ‘문(文)’이라는 말이 비교적 부드럽고 온화한 평화적 뉘앙스를 띠고 있다고는 하나, 그렇다 하여 평화적으로 문화가 교류되고 전파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서로 다른 문화와 접촉한다는 것은 역사가 토인비 박사가 “외국문화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고통인 동시에 아주 큰 위험을 동반하는 것”(《세계와 서구》)이라 했듯이, 종종 헐레이션(광선에 의한 사진의 흐림―역주)을 낳고, 불꽃을 튀기며, 때로는 ‘신(神)들의 전쟁’이 되어 피로 피를 씻는 과정을 드러냈다는 것은 굳이 역사에서 찾아볼 필요가 없습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현대세계의 분쟁은 인류사가 그 과정과 인연을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문화의 본질에 뿌리를 내린 것인가, 혹은 인위적 왜곡인가는 매우 미묘한 문제입니다만, 여하튼 문화에는 글자의 뜻 그대로 인간의 내면을 일구어 정신성을 높이는 측면이 있는 동시에, 민족간에 마찰을 일으키고 자신들의 예의범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침략적 측면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평화의 문화’가 아닌 ‘전쟁의 문화’인 것입니다.
‘문화제국주의(文化帝國主義)’의
폐해를 극복
문화가 가진 그러한 침략주의적 측면이 흉포한, 그렇지만 노골적인 무단주의(武斷主義)에 문화적인 겉치레를 교묘하게 하면서 그 세련됨을 더한 것이 유럽 근대의 식민지주의(植民地主義)가 깊이 있게 체현한 ‘문화제국주의’였습니다.
문화제국주의라는 말 자체는 전후(戰後)의 탈식민지화(脫植民地化) 흐름 속에서 특히 유럽 근대의 정통적 가치관에 히피 등의 대항문화(counterculture), 혹은 하위문화(subculture)라는 형태로 이의신청(異議申請)을 한 1960년대에 시민권을 얻은 말입니다.
그러나 문화제국주의의 실태는 대항해 시대(大航海時代) 이후 근대에 이르기까지 5백 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지속된 식민지주의 ― 자기 이외의 문화를 ‘야만’이나 ‘미개’로 일방적으로 정의내리고, 그것으로 타민족에 대한 지배나 수탈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 였습니다.
거기서의 문화란 평화와 거리가 멀어 어느 때는 식민지 침략이라는 폭력·전쟁의 선도자(先導者)를 연기하고, 어느 때는 그것을 뒷받침하면서 드러나는 에고이즘을 흡사 사명(mission)인 것처럼 꾸며 왔던 것입니다.
대부분의 식민지 국가들이 종주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현대에는 이러한 겉치레가 벗겨진 것처럼 보입니다만, 세계 각지에서 음으로 양으로 분출하는 인종간의 분쟁 등을 보고 있으면 모두 다 불식(佛拭)되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작년부터 ‘쿠바의 사도(使徒)’로 불리는 호세 마르티를 둘러싸고 그 방면의 석학(碩學) 신티오 빈티에르 박사(호세마르티연구소 소장)와 대담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 대담을 통하여 마르티가 지적했던 것처럼, 그 지역의 사람들이 지금도 미국에 대한 불신(不信)과 경계의 마음을 강하게 갖고 있으며, 그것을 결코 기우(杞憂)라고 일축할 수 없다는 것을 통감했습니다.
근대의 부(負)의 유산(遺産)
팔레스티나 출신의 문명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 씨(컬럼비아대학교 교수)는 ‘탈식민지주의 비평의 바이블’로 불리는 《문화제국주의》에서 “제국주의 시대라는 과거의 의미는 그 시대와 함께 완전히 소멸된 것이 아니라, 몇 억이나 되는 사람들의 현실에 녹아들고 공유된 기억이라는 형태로, 또 문화와 이데올로기와 정책을 연루시키는 의견충돌의 장(場)으로 지금도 여전히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박인방증(博引旁證:널리 예를 인용하고 두루 증거를 보여 논함―역주)이라 할 수밖에 없는 사이드 씨의 검증을 살펴보면, 그가 “점잖은 신분의 남녀”라고 부른 제국주의(帝國主義) 국가들의 교양있는 사람들 속에서 문화제국주의가 얼마나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이드 씨의 분석은 콘래드의 《어둠의 한가운데》, 오스틴의 《맨스필드 공원》, 키플링의 《킴》 등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대체로 근대 일본이 오로지 배워야 할 대상으로 군림한 ‘점잖은 신분의 남녀’ ― A. 토크빌이나 J.S. 밀, 헤겔이나 마르크스라고 하는 사람들이 의식, 무의식 중에 천진스러울 정도로 죄의식도 없이 문화제국주의와 공모해 왔다는 사실, 《예수의 생애》의 저자인 E. 르낭과 같은 철학자가 나치 비슷한 인종이론의 창도자(唱道者)였다는 사실 등은 후발(後發) 제국주의였던 일본에서는 간과되기 쉬운 면모입니다.
여기서 잘 알려진 A. 슈바이처<주2>의 말을 하나 들겠습니다.
“흑인은 어린아이다. 모든 어린아이에게는 권위를 갖고 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갖춘 나의 권위가 드러나도록 교제의 형식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흑인에게 ‘나는 너희들의 형제다. 그러나 너희들의 형’이라는 말을 가르쳤다.”
과연 이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원시림에서 병원을 운영한 지 수십 년, ‘밀림의 성자(聖者)’로서 견줄 이가 없던 이 사람의 명성이 식민지 제국의 민족의식이 높아지면서 급속하게 바랜 것도 다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슈바이처의 말이 선의(善意)일수록 더욱더 엘리트 냄새, 차별감정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20세기의 지적 유산인 ‘문화상대주의(文化相對主義)’는 서구문화에 달라붙어 있는 이러한 제국주의적 오만함에 대한 서구의 문화인류학자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의 자기 반성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외적인 차이’의 절대화가 낳은 20세기의 비극
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인간의 얼굴’을 한 문화교류
‘문화민제주의(文化民際主義)’를 21세기의 조류(潮流)로
스스로를 상대화(相對化)하고, 지금까지 ‘야만’이나 ‘미개’로 똑같이 폄하해 온 이문화(異文化)의 독자적인 가치를 인정하려는 성실한 지적(知的) 영위(營爲)는 그 나름대로 평가받고 있으며, 문화제국주의를 둘러싼 악취와 독을 희석시키는 커다란 효과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현대의 급속한 지구일체화(globalization)에 따른 문화와 문명에 대한 전망이 열렸는가 하면, 아마도 이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붙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커다란 대가를 치르고 손에 넣은 문화상대주의입니다만, 그것이 단순히 ‘서로의 문화를 인정하는’ 개념적인 틀 안에 머물러 있는 이상 문화의 부(負)의 측면 ― 사이드 씨의 말을 빌리자면 “아폴론적인 귀족성을 띤 정밀한 영역이기는커녕, 주의주장이 각광을 받으려고 넉살 좋게 앞장서서 상대를 밀어젖히면서 나가는 싸움터”로 변하기 쉬운, 문화가 내포하고 있는 배제(排除)의 논리, 적시(敵視)의 논리를 억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평화학의 태두(泰斗) 갈퉁 박사도 저와의 대담 《평화의 선택》에서 이러한 문화상대주의의 약점을 “타문화에서 적극적으로 배우려 하지 않고 소극적 관용(寬容)이라는 형태를 취하는 경향”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인권(人權)의 보편화를 둘러싼 서구의 여러 국가들(주로 미국)과 제3세계 국가들의 대립도 인권사상의 모체(母體)가 되는 서구 정치문화의 이러한 상대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3세계 국가들이 국내 소수의견을 억압하는 것에 서구 여러 국가들이 인권의 입장에서 제동을 걸면, 그 나라들로부터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내정간섭(內政干涉)’이라는 반발이 되돌아옵니다.
정치문화의 차이, 식민지 지배·피지배라는 과거의 경위(經緯), 그에 따르는 빈부의 격차 등을 제쳐 두고 인권의 보편성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선진국의 자기식 에고이즘이며, 대국주의(大國主義)는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보통수단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이러한 대립과 차이에 ‘소극적 관용’이라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대처한다면 제대로 손도 쓰지 못하고 해결의 실마리도 쉽게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물며 제3의 천년을 멀리 조망해 가는 ‘평화의 문화’의 옥야(沃野), 지구일체화에 호응하는 ‘지구문명’의 지평(地平) 등은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평화란 전쟁과 전쟁 사이의 무위(無爲)의 ‘막간(幕間)’이 아니라, 우리들이 의지적, 능동적으로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활성화(活性化)된 생활공간 즉 “정신의 힘에서 생기는 덕(德)”(스피노자)이 연출하는 ‘활극(活劇)’의 장(場)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극적 관용에서 적극적 공존으로
고압적인 문화제국주의 수법은 물론이고, 그렇다 하여 엉거주춤한 문화상대주의적 수법도 아닌, ‘평화의 문화’는 이문화간(異文化間)의 적극적인 공존, 나아가 그것들이 서로 촉발하면서 나아가는 세계문화와 지구문명에 대한 방향을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요즈음의 지구일체화의 흐름에 역행할 뿐만 아니라, 가장 위험한 냉소주의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 때문이라도 저는 지금까지 ‘문화국제주의(文化國際主義)’라는 이름으로 불려 왔던 것이 거듭 쌓아온 귀중한 실적(實績)의 수맥(水脈)을 이어 가면서, 한 걸음 더 나아간 ‘문화민제주의(文化民際主義:민제란 국가간이 아닌, 일상적인 생활감정으로 외국인과의 사이에 공통성이 자각되어 정착하는 일―역주)’라고 할 접근이 불가결하다는 호소를 하고자 합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이리에 아키라 교수는자신의 저서 《정치권력을 넘어서》에서 이 문화국제주의를 19세기 후반에 그 싹이 보여 여러 국가에 항상적(恒常的)인 전쟁준비 상태를 강요한 대립관계를 극복하고자 ‘문화’라는 기초에 서서 국경을 초월한 협조관계를 모색해 온 사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정보의 교환, 도량형(度量衡)의 통일, 과학자와 의사의 국제적 연대라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문화와 교육교류를 통한 평화의 구축을 요구한 그 사상은 두 차례 세계대전의 와중에서도 끊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전후(戰後)에 그 중요성을 더욱 인식하여 유네스코헌장이나 세계인권선언을 통해 그 정신이 결실을 맺어 왔던 것입니다.
최근에 특히 그 주체가 되어 활약의 무대를 넓혀 온 것은 NGO였습니다.
저는 이러한 조류에 착안하여 보다 적극적인 개념으로서의 ‘문화민제주의’를 제창하고자 합니다.
오바시 료스케 씨(《내재하는 이국(異國), 외재하는 일본》)에 의하면, 최근의 유럽 언론계에서는 ‘인터내셔널(international)’이라는 말이 완전히 그림자를 감추고 ‘인터컬처(interculture:이문화간<異文化間>)’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수의 지역문화라는 수직축과 보편성을 요구하는 테크놀러지의 수평축’이 서로 교차하는 현대세계의 문화적 상황을 파악하려면, ‘내셔널(national)’이라는 정치 주도의 표층 차원에서 ‘컬처(culture)’라는 자기 정체성이 뿌리내린 인간의 심층(深層) 차원으로 눈을 돌릴 필요성이 있다는 암묵적(暗默的)인 약속이 되어 있다고 생각됩니다.
일본에서는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습니다만, 이는 매우 흥미 있은 동향입니다.
분명히 ‘내셔널’이라는 차원이나 틀에 지나치게 얽매이면 국가 형편에 맞추어 아마도 다분히 인위적으로 형성되어 온 근대 내셔널리즘의 허구성(虛構性)을 간파하지 못하고, 그것을 실체화(實體化), 영속화(永續化)시킬 위험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의 해독제 역할을 하던 문화상대주의의 ‘정(正:빛, 플러스)’의 유산도 버리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원래 ‘내셔널’이라는 틀이 지금 당장 소멸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겠지만, 가까운 미래에 그것이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밀레니엄의 분기점에 있는 요즈음의 세계적인 자기정체성(自己正體性)의 동요, 깊어지는 위기의식은 정치 차원으로는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물밑의 완만한 움직임”(토인비 박사)에 노를 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의 흐름은 ‘인터컬처’적 관점으로 패러다임(사고틀)을 전환할 필요성을 요구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호소하고 있는 문화민제주의도 그러한 배경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문화국제주의가 어느 쪽인가 하면 국가가 주도하는 부분이 많았던 것에 대해, 문화민제주의의 주역은 민중이며, NGO나 NPO(민간비영리기구)에 속하는 크고 작은 방대한 수의 다양한 민간 자원봉사단체입니다.
다양성이 꽃피는 그 본무대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획일적인 ‘국가의 얼굴’이 아니라 다채로운 ‘민중의 얼굴’ ‘인간의 얼굴’인 것입니다.
따라서 국가 차원, 정치 차원으로 접근하면서 이러한 민제주의적 움직임이 몇 겹이고 교차하여 서로의 입장과 역할을 인정하면서 보완해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무엇이 행선지에 기다리는지 예측할 수 없는 ‘인터컬처의 세계’의 동향(動向)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컴퓨터나 인터넷이 아무리 세력을 떨친다 해도 종국적(終局的)으로 문화의 질(質)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이고 인간의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문화민제주의의 추진이 ‘평화의 문화’의 꽃으로 피어나는 활동으로 나아가는가 아닌가의 생명선(生命線)은, 그것이 대화에 의해 ‘내적인 차이(差異)의 초극(超克)’이라는 테제(명제)를 관철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닐까요.
각 회로(回路)를 통하여 이 난문제(難問題:aporia)를 극복할 수 있다면, 폭력과 유혈로 뒤덮인 20세기와 단호히 이별하고 희망과 공생(共生)의 21세기로 양양(洋洋)하게 출발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자신과의 대결에서 개혁의 성패가
생각하면 20세기는 정의(正義)와 정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가 서로 충돌하여 소리 높이 패권을 다툰 소란스러운 시대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인종, 민족, 풍속, 습관 등등 ‘외적인 차이’야말로 인간의 행·불행, 선악(善惡)을 결정하는 최대의 요인으로 그 차이를 제거해야 모든 사회악이나 모순을 해결하는 결정타가 된다는 착각, 이데올로기적 미망(迷妄)이 20세기의 하늘을 어둡게 덮었던 것입니다.
20세기 중반,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한 직후인 1945년 6월, C. G. 융은 독일 내의 ‘아직은 건강한 사람들’에게 조용히 호소했습니다.
“죄가 크면 은총도 더욱 큰 것이다. 이러한 체험이야말로 내면의 변화를 가져다 주며, 이는 정치개혁이나 사회개혁 등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중요한 것이다. 어떠한 외부개혁도 자기 자신과 올바르게 대결하지 않는 인간의 손에 의한 것이라면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 법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이것을 잊어버린다.”
이것은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습니다만, 오늘날의 눈에서 본다면 놀라울 정도의 깊이와 인류사적 척도로 시대의 병리(病理)를 도려낸 현자(賢者)의 말이었습니다.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말은 지나친 표현이겠습니다만, 스탈린을 비롯한 크고 작은 권력자 군상(群像)을 보게 되면 자신을 문제시하지 않는 정치개혁, 사회개혁이 역(逆)유토피아가 되어 사회와 인간에 흉포한 어금니를 어떻게 드러냈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거꾸로 말하면, 설령 유혈(流血)을 강요했다 해도 중국혁명이나 쿠바혁명과 같이 민중의 뿌리 깊은 지지를 받고 있는 사회개혁의 과정에는 반드시 ‘자기 자신과 올바르게 대결한’ 사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며, 또 어딘가에 구원해 주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혁명의 정통성은 주은래(周恩來)와 같은 인격 없이는 생각할 수 없으며, 또한 앞서 언급한 비티에르 박사와의 대담에서는 쿠바혁명의 정신적 원류(源流)로서 호세 마르티라는 인물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가를 다시금 통감할 수 있었습니다.
20세기가 인류사상 일찍이 없었던 대살육(大殺戮)의 시대였던 것도 있어 아무래도 부정적 이미지만을 상기하게 됩니다만, ‘외적인 차이의 초극(超克)’이란 점에서 긍정적 이미지가 그려 내는 대표적 사례로 1960년대 미국의 인종정책을 들 수 있습니다.
1964년의 획기적인 공민권법(公民權法) 제정을 비롯한 일련의 차별철폐조치<주3>는 안타깝게도 여러 연구결과와 조사결과가 보여 주듯이, 반드시 인종문제의 해결로는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법률적, 제도적 대처는 물론이고, 역시 이러한 노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간정신의 변혁 즉 ‘내적인 차이의 초극’에 의한 보편적 인격형성이라는 ‘화룡점정(畵龍點睛)’을 빼놓는다면 신통한 성과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요.
보편적 인격 ― 이 말에서 저는 공민권법이 제정되기 전년에 킹 박사가 행한 너무나도 유명한 연설 한 구절을 상기하게 됩니다.
“나는 나의 네 아이들이 언젠가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의 깊이로 평가받는 나라에 살게 될 것이라는 꿈을 갖고 있다.”
이 고귀한 인격주의는 분명 “태생에 의해 바라문이 되는 것이 아니다. 행위에 의해 바라문이 되는 것”이라는 석존의 정신성의 의발(衣鉢:스승으로부터 전하는 불교의 참뜻 ―역주)을 이어 받은 것이며, 그것은 또한 ‘조국(祖國)’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면서 “인류야말로 나의 조국” “인종간의 증오는 없다. 인종이란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드높이 외친 호세 마르티의 인격의 보편성과 깊게 그리고 강하게 서로 울려 퍼지고 있는 것입니다.
법률이라 하고 제도라 해도, 그것은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운용(運用)하는 것입니다.
만약 내적인 인격의 연마를 소홀히 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시스템이라 해도 원활하게 기능(機能)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말에 의한 지배·주문(呪文)’을 타파하는 불법의 선악무기론(善惡無記論)
미국의 양식(良識) 킹 박사와 쿠바의 양식 마르티가 짙게 체현한 보편적 인격의 형성 ― 여기에 모든 인종문제를 해결하는 열쇠가 있으며, 그 애로점을 피해 가다가는 오히려 멀리 우회하게 된다는 것을 저는 우려하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의 두 번째 강연 <21세기 문명과 대승불교(大乘佛敎)>(1993년 9월)에서 석존의 “나는 사람의 마음에 보기 어려운 한 대의 화살이 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하면서 ‘보기 어려운 한 대의 화살’이란 ‘차이에 대한 집착’이며, 그 화살을 뽑는 것 즉 ‘집착’을 극복하는 것이 평화를 창출하는 최대 포인트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외적 대응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는 이러한 인종문제가 직면한 애로점을 의식하여 한 말입니다.
그리고 이 일점에 대한 반향은 상상을 크게 웃돌았습니다.
또 융은 이렇게도 호소했습니다.
“온갖 대립과 분열에서 생기는 장벽은 사람의 마음에 있다는 일반적인 자각이 성립된다면 실제로 어디서부터 손을 대면 좋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앞책)
― 외면에만 눈을 돌려 분열하고 대립하는 한쪽을 선(善), 다른 쪽을 악(惡)으로 정해서는 안 된다.
인간이든 사회든 간에 외면적인 선악은 상대적(相對的), 가변적(可變的)인 것으로 그것을 절대적, 고정적으로 간주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며, 마음이 말의 주문(呪文)에 걸려 있는 것이다.
주문에 걸려들면 선은 내부에서 악을 포함하고 악도 내부에서 선을 포함한다는 선악의 상대성, 그러므로 악도 대응하기에 따라 선으로 바뀔 수 있다는 가변성이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런 것이 아니라 선악의 대립이라 해도 말이나 상징을 매개로 하여 우주대(宇宙大)로 확대되는 인간의 마음이라는 의미론적(意味論的) 결합의 한 분절(分節)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대립과 분열 모두 종국에는 서로 연결되는 하나의 표출현상인 것이다.
외면에만 사로잡히지 말라. 말에 이용당하고 말의 노예가 되지 말라.
대량숙청과 대학살(holocaust) 그리고 요즈음의 민족정화(民族淨化:ethnic cleansing) ― 그 악몽들의 온상(溫床)이야말로 말에 의한 ‘외적인 차이의 절대화, 고정화’인 것이다 ―.
저의 독백(monologue)은 불교에서 설하는 ‘선악무기론(善惡無記論)’을 뒷받침으로 하고 있습니다.
생성유동(生成流動)하는 현실에 대한 눈길
거기서의 생명의 실상(實相)은 ‘선악무기(善惡無記)’로서 어느 때에는 선의 가치를, 어느 때에는 악의 가치를 낳는 작용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선이라 하고 악이라 해도 어떤 개별적인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 예를 들어 ‘노여움’을 말한다면,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것에 대한 노여움은 ‘선’, 에고만으로 움직이는 노여움은 ‘악’이라 하듯이, 환경과 자신의 일념(一念)의 ‘관계’ 속에서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선과 악을 외면적으로 고정화시키는 ‘말에 의한 지배·주문’을 풀고, 생성유동해 마지않는 현실과 맞설 것을 촉구하는 사상인 것입니다.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은 선과 악의 상관성을 명백하게 이렇게 논하고 있습니다.
“선(善)에 배반함을 악(惡)이라 하고, 악에 배반함을 선이라고 한다. 고로 심외(心外)에 선이 없고 악이 없으며, 이 선과 악에서 떨어짐을 무기(無記)라고 하느니라. 선악무기(善惡無記)·이 외에는 마음이 없고 마음 외에는 법(法)이 없는…”(어서 563쪽)
여기서 지적하는 것은 첫 번째로 선과 악이라는 개념이 원래 가지고 있는 상대성이며, 두 번째는 선이나 악도 결국은 인간이 만든 개념으로, 모든 것은 마음이 그려 낸 것이라는 점입니다.
‘무기(無記)’가 ‘선’과 ‘악’과 나란히 삼성(三性:존재의 세 가지 방식)인 것에서도 분명하듯이, ‘무기’라 하고 ‘마음’이라 해도 결코 ‘무(無)’나 ‘공백(空白)’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대성인이 “겁화(劫火)에도 타지 않고, 수재(水災)에도 썩지 않으며, 검도(劍刀)에도 잘리지 않고, 궁전(弓箭)에도 맞지 않고, 개자(芥子) 속에 들어가도 개자도 넓어지지 않고, 심법(心法)도 줄어들지 않고, 허공(虛空) 속에 꽉 차도 허공도 넓지 않고, 심법도 좁지 않으며”(같은 쪽)라고 말씀하시듯이,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금강(金剛)이며 불괴(不壞)인 지극히 맑은 대경애(大境涯)인 것입니다.
‘무’나 ‘공백’이기는커녕 창조적 에너지로 가득한 우주생명(宇宙生命)의 내적인 작용 그 자체인 것입니다.
내적인 차이를 극복하여 자타 함께 선(善)의 가치를 실현
‘대화’야말로 지구문명을 구축하는 황금률
SGI는 ‘문명간 대화’ ‘종교간 대화’를 솔선하여 실천
그러한 ‘무기’라는 사고를 보여 주는 ‘내적인 차이의 초극’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서의 실감(實感)에 입각한 문맥으로 말하자면 앞서 석존의 ‘보기 어려운 한 대의 화살’ 부분에서 언급했듯이, 차이에 대한 ‘집착이 없어지는’, 차이가 ‘신경 쓰이지 않게 된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 관하여 전후 얼마 안 되어 은사 도다 조세이(戶田城聖) 선생(창가학회 제2대회장)이 잊을 수 없는 유언(留言)을 남기고 있습니다. 은사는 니치렌 대성인의 인과관(因果觀)을 근저로 한 숙명전환(宿命轉換)을 언급한 다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귀의(歸依)하여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것이 보다 좋은 운명으로 전환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으로 도중(途中)의 인과(因果)가 모두 사라지고, 구원(久遠)의 범부(凡夫)가 출현하는 것입니다.”
실로 신앙을 발판으로 한 ‘내적인 차이의 초극’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도중의 인과’란, 경애면, 육체면, 정신면에서 자신이 현재 짊어진 온갖 차이를 생기게 한 원인이며 결과입니다.
국적, 피부색, 가계(家系), 학력, 직업, 성격, 성별 등등 십인십색(十人十色)의 온갖 차이는 자신이 행한 과거의 인(因)에 의하여 가져온 현재의 과(果)다 ― 이것은 통도(通途:불교에서 일반적으로 공통되는 교의―역주)의 불교에서 설하는 잘 알려진 인과율입니다.
이러한 ‘도중의 인과’가 ‘사라진다’는 것은 없어진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인간의 사회인 이상, 인상(人相) 하나만을 보아도 모두 차이가 있는 존재며, 그것을 꿰뚫는 인과율도 삼세(三世)에 걸쳐 엄연하게 계속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사라진다’는 것은 차이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고, 차이를 ‘신경 쓰지’ 않게 된다. 그것이 ‘내적인 차이의 초극’이라는 것입니다.
진실한 불법에 귀의함으로써 ‘구원의 범부’가 스스로의 생명 속에서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구원(久遠)이란 작용(作用)하지 않고 꾸며 갖추지 않고 본래 있는 그대로라는 의(義)이니라”(어서 759쪽)는 의미이기 때문에 일체의 작위적(作爲的)인 것을 떨쳐 버린, 절묘하게 방사(放射)하는 그 위광세력(威光勢力)을 비추면 ‘집착하는’ 마음, ‘신경 쓰이는’ 마음 등은 꿈 속의 일처럼 희미해져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사소한 일로 변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비유하여 말한다면 ‘도중의 인과’는 밤 하늘을 수놓는 달이나 별, ‘구원의 범부’는 태양에 해당됩니다.
밤 하늘의 달이나 별은 그 빛으로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습니다만, 날이 밝아 태양이 동쪽 하늘에서 얼굴을 내밀면 곧바로 시계(視界)에서 사라집니다.
결코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혁혁한 햇빛을 앞에 두고서는 그 빛의 강도가 너무도 희미하여 그 존재마저 분명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진실한 신앙이란 이처럼 위대한 생명력을 용현(涌現)시키는 것입니다.
앞서 ‘금강이고 불괴인 지극히 맑은 대경애’, ‘창조적 에너지로 가득한 우주생명의 내적인 작용’이라 한 것도 은사의 불마(不磨:닳아 없어지지 않는―역주)의 유언을 상기하면서 한 말이었습니다.
원래 차이 속에는 그 인(因)이 자신에게만 있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으며, 나쁜 차이 즉 차별이나 편견을 낳는 사회구조의 모순이 그 책임을 져야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거기서 눈을 감고 모든 것이 자신에게 인(因)이 있다 한다면 사회악을 용인하고 간과하는 지나친 숙명론이 됩니다.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고 마비시키는 이른바 ‘종교아편설(宗敎阿片說)’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회악에 의한 것을 설령 모두 제거했다 해도 차이는 남게 됩니다.
오히려 ‘세간(世間)’이라는 말이 불교용어에서 ‘격별(隔別)’ ‘간격(間隔)’을 의미하듯이, 깊이 있게 말한다면 세상이란 모두 차이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차별을 뛰어넘어 다양성의 개화(開花)를
‘평화의 문화’를 지향하는 문화민제주의의 성패는, 그러한 차이의 다양성을 충분히 꽃피게 하면서 나쁜 차이=차별이라는 독초를 어떻게 제거하는가에 달려 있다 할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라도 저는 ‘내적인 차이의 초극’을 제일의(第一義)로 해야 한다고 거듭 호소하고 싶습니다.
이상의 논의에서 밝혀졌듯이, ‘선악무기’의 안목(眼目)은 ‘말의 허구(虛構)’라는 베일을 벗겨 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것으로 사람들을 결코 말의 주문에 걸리게 하지 않는 자유자재로운 말의 사용, 대화의 달인이 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실로 대화야말로 불교운동을 기반으로 하여 지구문명을 구축하는 우리들이 추진하는 문화민제주의의 ‘황금률’이라 해도 좋습니다.
대성인의 불법에 “이 마음이 선악의 연(緣)을 만나 선악의 법(法:이 ‘법’은 ‘언어’란 말과 거의 동의어입니다)을 만들어 내느니라”(어서 564쪽)는 말씀이 있듯이, 대화를 종횡으로 전개하면서 선의 가치를 어떻게 창조하고, 악을 선으로 전환해 가는가 하는 능동적인 변혁, 실천의 철리(哲理)인 것입니다.
그 점에서 키르기스스탄 공화국 출신의 세계적 문호(文豪) 아이트마토프 씨는 저와의 대담 《위대한 혼(魂)의 시(詩)》를 개시할 때, “나는 오랜 기간 마음 속으로 이와 같은 대담을 동경하며 좋은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며, 너무도 뛰어난 문학가답게 말에 관한 통찰(洞察)을 하고 있었습니다.
“집 없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모두 말의 집이며, 말의 지배자다. 사람이 신(神)의 목소리를 듣고자 남몰래 신에게 향할 때조차도 그가 듣는 것은 자기 말 가운데의 자기다. 말은 우리들 속에 살아 있고, 우리들을 떠나서는 우리들에게로 되돌아오며, 말은 말하자면 우리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들에게 한결같이 봉사한다. 말은 혼(魂)의 세계와 장대한 우주를 짊어지고 있다.”
아이트마토프 씨가 책의 ‘머릿말’ 첫머리에서 왜 그와 같은 말의 작용에 관한 고찰을 했는가,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트마토프 씨가 인생 대부분을 보낸 구소련연방 시대는 ‘인간이 말의 지배자’이기는커녕 전형적인 ‘말이 인간의 지배자’였던 시대였으며, ‘태어났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봉사했던’ 것은 말이 아니라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문학가에 한정되지 않고 예민한 감성의 소유자일수록 이 문제, 본말전도(本末轉倒)에 신음해 왔다는 것은 수많은 증언을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공산주의는 무계급사회(無階級社會)라는 말의 주문에 걸려 ‘외적인 차이의 초극’을 목표로 해 왔습니다.
말에 의한 주문, 말에 의한 지배는 인간의 내적인 것을 폄하하고, 내적인 변혁을 이의적(二義的), 삼의적(三義的)인 것으로 경시(輕視)하기 때문에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쉽게 외적인 힘 즉 폭력에 호소합니다.
폭력을 시인한다기보다 오히려 장려(奬勵) ― 그러한 언어문화, 이데올로기의 무서움이 뼛속 깊숙이 스며들었던 만큼 아이트마토프 씨는 불교를 기반으로 하여 우리들이 추진하고 있는 인간주의 운동 ― 그 근간을 이루는 철저한 대화 중시, 폭력의 부정이라는 관점에 유달리 이끌리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화를, 협력을
저 자신, 그 구체적인 실천으로 지구상의 모든 대륙의 사람들과 문명간의 대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또 기독교와 이슬람교, 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적 배경을 가진 세계의 식자와 몇 차례이고 대화를 나누어 많은 대담집도 냈습니다.
그러한 오랜 기간의 경험에서도 ‘열린 대화’가 가지는 가능성과, 그것이 사회에 주는 중요성을 깊이 실감할 수 있습니다.
SGI로서도 “불법의 관용(寬容)의 정신을 근본으로 다른 종교를 존중하며 인류의 기본적 문제에 대해 대화하고 그 해결을 위해 협력해 간다”는 SGI헌장에 기초한 각 지역에서 평화사회의 건설을 위한 활동을 추진하는 외에, 유럽과학예술아카데미 등의 여러 기관과 심포지엄 등을 통한 종교간 대화를 추진해 왔습니다.
또한 작년 남아프리카에서 열린 세계종교회의에도 대표가 출석했으며, 올해 8월의 종교지도자들에 의한 밀레니엄세계평화서밋에도 대표가 참가할 예정입니다.
보스턴21세기센터에서는 세계의 8개 전통종교의 평화사상과 대립을 극복하는 방도에 대해 각 종교를 대표하는 학자와 식자들이 논의한 《증오의 극복》을 발간하였습니다.
더욱이 동양철학연구소에서도 여러 면에서 종교간 대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도다기념국제평화연구소에서는 올해 2월 오키나와에서 <문명간의 대화― 제3의 천년을 위한 새로운 평화의 도전>이라는 제목으로 세계의 각 종교에 기반을 둔 주요문명에 정통한 식자들이 모인 국제회의가 열릴 예정입니다.
‘유엔 문명간 대화의 해’이며 ‘세계 인종주의, 인종차별, 외국인혐오, 불관용(不寬容) 반대 운동의 해’에 해당하는 내년 2001년 7월에는 남아프리카에서 세계회의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20세기의 쓰디쓴 교훈을 근거로 평화와 공존의 사회를 어떻게 구축하는가 하는 과제에 인류가 진지한 마음으로 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현대세계의 인권전’이나 ‘용기의 증언― 안네 프랑크와 홀로코스트전’ 등 의식계발 운동을 세계 각지에서 전개하고, 유엔이 추진하는 ‘인권교육의 10개년’을 지원해 온 SGI로서도 회의(會議)의 성공을 위해 적극적으로 협력해 가고 자 합니다.
또 현재 ‘세계 평화의 문화의 해’를 주도하는 유네스코(유엔교육과학문화기관)를 중심으로 세계적 규모의 의식계발 운동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선언2000(정식명칭은 평화의 문화와 비폭력을 위한 선언2000 ―역주)’이라고 이름한 운동으로, 유엔의 ‘밀레니엄총회’를 향하여 1억 명의 서명을 제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유네스코에 협력하여 ‘세계문해(世界文解) 캠페인’이나 ‘평화의 문화’에 대한 의식을 키우는 ‘세계소년소녀회화전’의 해외순회를 해 온 SGI로서는 ‘선언2000’의 이념에 찬동하여 홍보면의 협력을 포함한 다각적인 지원을 해 가고자 합니다.
민중에 의한 엠파워먼트로
‘평화의 문화’를 전 지구로 개화(開花)
이에 덧붙여 말한다면, ‘평화의 문화’에 활약하는 여성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고 자 합니다.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전쟁과 폭력, 압정(壓政)과 인권억압, 역병과 기근 등 사회가 혼란과 불안에 빠졌을 때 가장 많은 괴로움을 당해 온 것은 여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사회의 발걸음을 끊임없이 ‘선(善)’한 방향으로, ‘희망’의 방향으로, ‘평화’의 방향으로 끈질기게 걸어오게 한 것도 여성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가 “만약 ‘힘’이 정신의 힘을 의미한다면, 여성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남성보다도 뛰어나다” “만약 비폭력이 우리들 인간의 법칙이라면 미래는 여성들의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처럼, 희망의 미래를 여는 열쇠는 여성이 쥐고 있는 것입니다.
평화를 추구하는 여성의 역할에 대해서는 저도 해마다 강조해 온 점이며, 라틴아메리카의 인권운동가인 에스키벨 박사와 현재 준비 중인 대담집에서 중점적으로 대화할 예정입니다.
SGI로서도 여성들의 손에 의한 반전출판(反戰出版) 활동이나 의식계발을 위한 전시, 강연회 등의 활동에 의욕적으로 임해 왔습니다.
작년 10월에는 서울에서의 NGO세계대회에서 ‘여성이야말로 평화 문화의 담당자’라는 테마로 심포지엄도 열었습니다.
또한 여성의 관점에서 인류가 껴안고 있는 여러 과제를 되묻고 《여성들이 본 지구헌장》 등을 출판한 보스턴21세기센터에서는 올해 ‘평화에 대한 여성의 역할’을 생각하는 심포지엄을 개최하면서 ‘평화를 생각하는 여성강연시리즈’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여성이야말로 ‘평화 문화’의 담당자
유엔에서도 6월에 ‘여성2000년회의’가 열려 SGI도 참가할 예정입니다만, 여기서 논의가 깊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나날의 생활 속에서 ‘평화의 문화’를 구체적으로 창조해 가는 도전일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날이 끈기 있게 평화의 행동을 지속하는 과정 속에서 ‘평화의 문화’가 존재한다”고 평화학자 엘리제 볼딩 박사는 특히 이 면에서의 여성의 역할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평화라 해도 멀리 있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을 소중히 하는 마음을 키우고, 스스로의 행동을 통하여 지역 속에서 우정과 신뢰의 연대를 하나하나 쟁취해 가는 가운데 세계는 평화로 일보일보 전진하는 것입니다.
나날의 행동 그리고 착실한 대화를 통하여 ‘생명의 존엄’ ‘인간의 존엄’에 대한 서로의 마음을 높여 가는 가운데 ‘평화의 문화’의 토양이 풍부해져 새로운 지구문명은 꽃피는 것입니다.
여성으로 한정되지 않고, 인간이 각자 자각하고 일어서는 것이야말로 사회가 ‘전쟁의 문화’로 폭주(暴走)하지 않게 하는 브레이크(제동장치)가 되어 평화의 세기를 구축하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SGI에서는 자타 함께 행복을 지향하는 불법의 이념을 바탕으로 ‘인간혁명(人間革命)’이라는 이름의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엠파워먼트 운동’을 추진해 왔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엠파워먼트란 인간 누구나 본래 가지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힘을 최대로 끄집어 내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것을 위하여 사람들과 적극적인 관계를 맺고, 생명과 생명의 촉발작업을 되풀이하는 가운데 자타 함께 평화와 행복을 실현한다면 세계평화의 초석(礎石)은 더욱 강고(强固)해진다고 우리들은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계 각지에서 SGI멤버가 괴로워하는 벗을 격려하고 살아가는 용기와 희망을 끄집어 내는 엠파워먼트의 실천에 착실하게 힘쓰는 한편, 좋은 시민으로서 평화·문화·교육의 운동을 통하여 ‘민중의 연대’를 구축해 왔다는 것에 저는 크나큰 기쁨과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인간과 인간의 연대’ ‘마음과 마음의 연대’의 확대야말로 다름 아닌 ‘평화의 문화’의 실천임을 다시금 확인하고자 합니다.
평화가 인간 각자의 마음 속에 뿌리내려야 ‘평화의 문화’를 지구적 규모로 넓힐 수 있고, 영속(永續)시킬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인류익(人類益)’의 실현을 위하여 유엔을 강화
전쟁을 억제하는 분쟁예방위원회 설치를
빈곤퇴치를 위한 ‘글로벌 마셜플랜’을
이어서 구체적으로 ‘평화와 공생(共生)의 21세기’를 건설하는 방도를 고찰하고자 합니다.
우리들 인류는 ‘전쟁과 분단의 시대’와 결별하고 만년의 미래를 응시하면서 21세기에는 ‘세계부전(世界不戰)의 시대’가 시작되도록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고 제도(制度)로서의 전쟁을 없애는 도전을 개시해야 할 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구일체화의 진행에 따르는 형태로 환경파괴와 빈곤문제, 난민의 급증과 역병의 만연이라는 국경을 초월한 문제군(問題群)이 현재화(顯在化)되고 있으며, 또한 그에 대응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오랫동안 주권국가 체제의 틀 속에서 위기라 하면 영토를 둘러싼 위기로 여겨 많은 나라들이 군사력 확충에 주력했습니다만, 지구적 문제군으로 불리는 일련의 위기는 종래의 수법으로는 대처할 수 없다고 할 것입니다.
오히려 이 문제들이 방치되었기 때문에 내전(內戰)과 충돌을 일으키는 지역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한 시대적 변화를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 전 수상은 ‘적(敵)투성이의 세계’에서 ‘위험(危險)투성이의 세계’로 이행(移行)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중동평화의 진전에 공헌한 페레스 씨가 유럽의 예를 인용하여, “상호의존에 기초한 발전을 추구할 수 있다면 힘의 균형에 기초한 정치도 패권다툼도 필요 없게 된다”고 시사했듯이, 지구적 위기가 심각해지는 현대에는 자국의 이익과 안전에만 급급하는 ‘국익지상주의(國益至上主義)’가 아니라, 공통의 과제에 맞서는 ‘인류익(人類益)’의 사상이 요구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공공재(地球公共財)’를
실현하기 위하여
이 점에 대해 국가 중심의 안전보장관(安全保障觀)을 대신하는 ‘인간의 안전보장’의 개념을 제기한 UNDP(유엔개발계획)가 《지구공공재》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작년에 발표하여 21세기 국제협력의 방안을 고찰하고 있습니다.
지구공공재란 모든 국가, 모든 사람들, 모든 세대에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을 말합니다. 어느 국가도 어느 사회층도 어떠한 사람도 배제하지 않고 미래의 세대도 해치지 않는, 전혀 새로운 국제사회의 방향성을 가리킨 것입니다.
보고서에서는 지구공공재를 실현하는 세 가지 과제 ― ‘권한(權限)의 갭(gap)’ ‘참가(參加)의 갭’ ‘동기(動機)의 갭’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권한의 갭’이란 지구 차원의 정책문제 범위와 국가 차원의 정책책정 범위의 모순을, ‘참가의 갭’은 세계에 다양한 행위주체가 존재하는 가운데 국제협력의 결정이 주로 정부간 교섭으로 한정되어 있다는 모순을 말합니다.
그리고 ‘동기의 갭’이란 도의적(道義的) 이유만으로는 관계국의 정책을 변경할 수 있는 설득력이 성립되지 않으며, 협력관계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모순을 말합니다.
저는 이 세 가지 갭을 해소하고 ‘인류익’의 관점에 선 공투(共鬪) 체제를 구축하는 초석(礎石)이 되는 기관은 유엔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새 천년의 입구에 선 우리들은 지금이야말로 지구시대(地球時代)의 도래에 걸맞은 장대한 설계도를 그리며 행동을 개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를 위해서라도 인류공투(人類共鬪)의 기축인 유엔을 더욱 강화시켜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입니다.
이 논의를 깊게 한다는 차원에서 올해는 절호의 기회라 할 것입니다.
유엔에서는 9월부터 시작되는 제55회 총회를 ‘밀레니엄(새 천년)총회’로 자리매김하고, ‘새 시대의 유엔을 활성화하는 비전을 명시(明示), 확인’하고, ‘21세기의 도전에 응할 수 있도록 유엔의 역할을 강화하는 기회’로 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또 이와 더불어 세계 수뇌급이 한자리에 모이는 ‘밀레니엄서밋’이 개최되어 ‘21세기의 유엔’이라는 테마 아래 (1)군축(軍縮)을 포함한 평화와 안전보장, (2)빈곤퇴치를 포함한 개발문제, (3)인권, (4)유엔의 강화가 토의될 예정입니다.
거기서 저도 이 의제(議題)에 부합된 형태로 몇 가지 제안을 구체적으로 해 보고 자 합니다.
우선 평화와 안전보장에 대해서입니다만, 이것은 아난 사무총장이 작년의 연차보고에서 제창했듯이 ‘대응’에서 ‘예방’으로 접근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방적 접근이란 문제가 일어나고 나서 사후(事後)에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미연에 방지하고 피해를 최소한으로 그치게 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유엔에서는 현재 인도문제조정사무소(人道問題調整事務所)가 내전과 국제분쟁, 기아와 지진, 홍수 등의 자연재해에 의한 긴급사태에 대해 인도원조(人道援助)를 제안, 조정, 촉진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사후(事後) 대응에서 예방 중시로 전환
이 사무소는 다른 국제기관과 NGO와의 긴밀한 협력 아래 분쟁이 격화된 코소보나 르완다, 재해로 괴로워하는 방글라데시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 수많은 지역에서 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심각해진 뒤 대응하게 되면 해결할 범위와 수단이 한정될 뿐만 아니라,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듭니다.
유엔이 인도원조에서 해 온 역할도 물론 크지만, 인도원조를 필요로 하는 사태가 끊이지 않는 상황 자체를 개선하는 것이 선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저는 특히 분쟁의 예방을 위하여 유엔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분쟁의 해결은 유엔헌장에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듯이 유엔의 주요임무 중의 하나입니다만, 냉전 후의 경향으로 증가하는 내전에 대한 대응은 더욱 곤란해지고 있습니다.
작년에 초점이 되었던 코소보 분쟁에서도 유엔이 사태의 악화를 예방하는 대응을 충분히 할 수 없었기 때문에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를 거치지 않고 ‘인도적 개입’이라는 이유로 공중폭격한다는 형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후, 유엔의 승인 아래 코소보에 민간행정기구를 설치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정전안(停戰案)이 쾰른서밋 자리에서 토의되어 최종국면에서 안보리결의의 채택으로 분쟁처리가 유엔에 기탁되었습니다만, ‘유엔의 수탁(受託) 없는 군사력 행사’나 ‘인도적 개입의 기준’ 등의 과제를 남긴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위도 있어 쾰른서밋의 G8선언에서는 “위기를 예방하는 데 유엔의 중요한 역할을 인식하고 이 분야에서의 능력 강화에 힘쓸 것”이라는 문구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저도 유엔헌장이 군사력 행사를 어디까지나 최종수단으로 하는 것을 명기(銘記)한 다음, 유엔이 소프트파워를 기축으로 한 예방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관해 현재 총회에 ‘분쟁예방위원회’와 같은 하부기관을 설치하는 안이 제창되고 있습니다만, 저는 이 구상(構想)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위원회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해 가야 한다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사태의 악화를 막기 위하여 우선 중요한 것은 ‘조기경보(早期警報)’의 기능일 것입니다.
분쟁이 발생할 잠재적 가능성이나 대립이 격화될 징조를 신속하게 찰지(察知)하는 체제 없이는 효과적으로 대응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또 지속적인 모니터링(감시)을 통하여 축적된 정보와 분석을 널리 공개하는 제도 만들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더 많은 나라들과 NGO가 관심을 갖고 해결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가 화평(和平)을 촉진하는 아이디어를 서로 내놓기 위해서는 정보의 공유를 전제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원회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역할로, 분쟁의 피해를 최소한으로 그치게 하기 위하여 일반시민을 철저하게 보호하는 조치를 강구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현행 국제법상의 틀에서는 전쟁이 없는 평화시에는 국제인권법(國際人權法)이, 전쟁상태에는 국제인도법(國際人道法) <주4>이 상호 보완하는 관계를 맺으면서 인권을 보장하는 제도가 확립되었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분쟁은 집단살육과 난민의 대량발생 등 일반시민을 표적으로 하는 데 특징이 있어, 전쟁의 영향이라기보다는 전쟁의 목적으로 인도법을 위반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분쟁, 각파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또 내전과 같이 사회적 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언제 전쟁상태에 들어갔는지 인정하기 어려워 인권법과 인도법 모두 무시되는 ‘공백상태’가 생기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그 결과, 평화시와 전쟁시에 관계 없이 보장되어야 할 인권이 공공연히 침해당하여 많은 시민희생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분쟁지역이 ‘무법상태(無法狀態)’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인권법에 의한 보호에서 인도법(人道法)에 의한 보호로 이행되는 일이 지연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일반시민이 인권침해를 당하지 않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서 분쟁예방위원회가 해당지역이 인도법을 적용해야 하는 전쟁상태에 들어갔는지를 인정하고, 철저하게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위원회에 권한을 주어 임무를 수행하는 조사단의 파견이나 분쟁피해자에 의한 개인통보권 제도, 나아가 분쟁 각 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는 공청회를 개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공청회입니다.
분쟁이 일어났을 경우, 설령 대화할 여지가 남아 있어도 일단 무력충돌이 격화되면 당사자가 같은 테이블에 앉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서로가 의견을 주고받는 ‘대화의 장’을 유엔이 마련해 주는 의의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형태로 당사자의 의견이나 주장을 국제사회에 표명한다면 그 후의 행동이 서로 억제되는 효과도 생길 것입니다.
SGI로서도 앞으로 도다평화연구소나 다른 NGO와 협력하여 분쟁예방위원회와 같은 기관의 취지를 논의하는 국제회의를 문제가 심각한 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 현실적으로 분쟁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개최해 가면 어떨까 합니다.
총회의 자문기능을 가진
지구민중평의회(地球民衆評議會)를 창설
이어서 ‘개발’과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유엔개혁의 방향성을 제안해 보고자 합니다.
밀레니엄서밋의 의제(議題) 중에 특별히 한 항목으로 포함되었듯이, ‘빈곤퇴치’는 조급하게 대처해야 할 인도적 과제입니다.
현재 지구일체화가 진행되면서 그 부(負)의 측면으로서 지구적 규모의 빈부격차가 더욱 확대되고 있습니다.
지구사회의 모순 해소가 급선무
일부의 나라가 많은 자원을 소비하여 풍부한 생활을 구가하는 한편, 세계 총인구의 4분의 1이나 되는 사람들이 극빈상태(極貧狀態)에 놓여 있어 인간의 존엄성이 일상적으로 위협받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구사회의 이러한 ‘모순’을 시정한다는 것은 21세기의 인류가 피해 갈 수 없는 과제입니다.
그러나 이 과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UNDP의 시산(試算:시험적인 계산―역주)에 의하면, 빈곤퇴치 대책에 드는 경비는 전 세계 국가의 국민소득을 합친 것의 약 1% ― 최빈국(最貧國)을 제외한 국가들의 국민소득 총계로는 2∼3% 정도에 불과합니다.
각국이 군사지출을 삭감하고, 그것의 잉여자금(剩餘資金)을 빈곤완화와 인간개발을 위한 대책으로 돌리기만 해도 문제의 상당부분이 해소되는 환경을 갖출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쟁 요인 중의 하나는 사회를 불안정하게 하는 빈곤이라는 존재에 있습니다.
빈곤이 분쟁을 불러일으키고 분쟁으로 인하여 더욱 빈곤해진다는 악순환을 끊어 낸다는 것은 전쟁의 원인을 없애는 동시에 지구사회의 ‘모순’을 해소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또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전쟁과 빈곤의 원인을 제거한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인권의 개선으로도 연결될 것입니다.
작년의 서밋에서 과다채무빈국(過多債務貧國)에 대한 탕감조치를 강화하는 ‘쾰른채무방안’이 합의되고, 탕감으로 이용 가능해진 자금이 빈곤완화와 교육·보건·의료 등의 사회개발에 충당될 수 있게 된 것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진전이었습니다.
새 시대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의욕적이고 대담한 발상이 요구됩니다.
저는 ‘새 천년’의 출발에 즈음하여 서밋의 합의를 진전시키고 더욱 크게 발을 앞으로 내딛는다는 형태로 전 인류적인 관점에 선 지구공생사회를 위한 플랜 ―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유럽부흥에 도움을 준 마셜플랜<주5>과 같은 것을 유엔이 선도자가 되어 추진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이어서 ‘인간개발’을 지구적 규모로 추진하기 위한 제안을 해 둡니다.
거기서 제가 착안한 것은 각국에서 활동하는 유엔기관을 통괄하는 거점으로서의 ‘유엔하우스’이며 그 기능의 확충입니다.
‘유엔하우스’의 구상은 개발 등을 담당하는 유엔 여러 기관의 협력을 얻기 위하여 유엔에서 제창된 것으로, 나라마다 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각 기관을 ‘유엔하우스’라 불리는 공통의 건물에 모이게 하여 유엔이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 공동으로 활동하게 하는 플랜입니다.
저는 그 역할을 한 걸음 넓혀 각국의 ‘유엔 대사관’ ― 현지의 유엔활동의 추진과 홍보거점으로 종합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확충하면 어떤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빈곤퇴치나 그 해소를 위한 인간개발을 추진하는 데 지역적 특성이나 문제의 소재를 충분히 파악한 다음에 하는 계획이 요구됩니다. 덧붙여 정부와 교섭을 도모하는 창구를 하나로 상설(常設)하면 원만하게 실시되지 않을까요.
민중의 소리가 닿는 유엔 개혁을
마지막의 유엔강화에 대해서는 유엔의 민주화, 요컨대 민중의 소리를 얼마나 유엔에 반영시키는가 하는 점에서 제안하고자 합니다.
저는 앞서 언급한 지구공공재를 실현하는 세 가지 과제 ― ‘권한의 갭’ ‘참가의 갭’ ‘동기의 갭’을 극복하는 원동력이야말로 유엔을 지원하는 민중 차원에서의 연대이고, 광범위하고 다양한 분야에 걸친 NGO의 활동이라 생각합니다.
NGO가 주권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사회의 틀 속에서 간과되기 쉬운 테마를 다루면서, 문제해결을 위해 선구적으로 노력한 공적은 참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저는 거기서 국가로는 메울 수 없던 갭을 민중의 힘으로 극복하는 희망의 싹을 보는 것입니다.
특히 1992년의 ‘지구서밋’ 이래 일련의 세계회의를 통하여 NGO의 역할이 부각되었습니다.
부트로스 갈리 박사(당시 유엔사무총장)가 “오늘날 NGO는 국제사회의 전면적인 참가자로 간주되고 있다” “NGO의 참가는 국제기관의 정치적 정당성을 보증한다”고 평가한 것처럼, NGO를 인식하는 시대적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NGO(비정부기구)라는 소극적인 호칭이 아니라 CSO(시민사회기구)로 불리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지구사회의 담당자’라는 적극적인 의의가 담겨져 있는 듯합니다.
이처럼 존재가치를 높이고 있는 NGO입니다만, 현재 유엔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경제사회이사회의 NGO협의제도 정도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민중의 소리가 닿는 유엔’ ‘민중의 소리를 살리는 유엔’이야말로 유엔개혁의 골격이 된다는 신념 아래, 시민사회 대표로 구성된 ‘유엔민중총회’의 설치를 구상하는 등 갖가지 제안을 해 왔습니다.
‘민중총회’를 실현하기가 쉽지 않다 해도 어떠한 형태로든 유엔에 민중의 의사(意思)가 반영되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제가 제안하는 것은 총회의 자문기관으로서 기능하는 ‘지구민중평의회(地球民衆評議會)’의 창설입니다.
이 평의회는 인류 공통의 이익이나 공통의 위협이라는 ‘지구공공재’의 관점에 서서 총회에서 심의(審議)하는 테마를 자문하거나 위험성에 따라 주의를 환기시키는 권한을 가지는 것입니다.
또 NGO가 전문으로 하는 정보수집 능력이나 활동현장의 경험을 살려 사전에 논의를 거듭하여 총회의 심의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유엔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회의 개최가 줄어들고 과거에 열던 회의도 5년이나 10년 단위로 열리는 현상을 생각해 본다면, 평의회가 과거에 합의된 상황을 항상 고려하면서 새로운 테마를 총회에 앞서 의제로 설정해 가는 의의는 크다고 생각합니다.
또 새로운 국제협력을 확립하는데 평의회가 NGO나 가맹국과의 연대망을 구축하는 핵이 되어 항시적(恒時的)인 논의의 장(場)으로 그 기능을 다한다면 상황의 개선에 크게 공헌할 수 있을 것입니다. NGO가 연대하여 여론을 폭넓게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국제사회를 움직이는 힘이 나온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고 있습니다.
NGO 주도의 ‘새로운 외교’에서 핵폐기의 체제 구축을
패권경쟁에서 ‘신뢰를 쟁취하는’ 인도적 경쟁으로
소프트파워를 기축(基軸)으로 국가관을 전환
유엔의 밀레니엄총회에 앞서 5월에 개최되는 ‘밀레니엄NGO포럼’에서는 의제의 하나로 ‘유엔과 여러 국제기관의 강화와 민주화’가 거론되고 있습니다만, 민중의 관점에서 결실 있는 유엔의 강화·개혁안이 검토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 NGO의 역할과 관련하여 최근에 ‘새로운 외교(New Diplomacy)’라는 개념이 국제사회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개혁에 의욕적인 정부와 시민사회가 공동보조를 취하여 실현시킨 ‘대인지뢰금지조약(對人地雷禁止條約)으로 상징되는 새로운 국제협조·국제협력의 시도입니다.
그 정신은 작년 5월에 열린 헤이그평화시민회의에서 채택된 헤이그아젠다의 기본10원칙 가운데에서도 “정부, 국제기관 그리고 시민사회의 협력에 의한 ‘새로운 외교’를 도입하는 것”을 선언하여 21세기 지구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제출되었습니다.
회의에서는 새롭게 소형무기에 관한 국제행동연대망(International Action Network on Small Arms)이나 국제형사재판소 조약비준을 위한 국제캠페인 등의 운동이 일어나는 이외, 소년병의 종군저지운동 참가 등도 호소되었습니다만, 모두 제가 지금까지의 제언에서 호소해 온 것들이며 SGI로서도 적극적인 지원과 협력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특히 소년병의 금지는 ‘전쟁의 문화’를 단절하기 위해서는 중요한 것으로, 18세 미만의 전투참가나 강제적 징병을 금하는 ‘어린이의 권리조약’의 선택의정서안(選擇議定書案)이 이번 달에 드디어 정리된 것은 큰 전진으로 환영할 만합니다. 이들 운동에 덧붙여 ‘새로운 외교’의 틀에서 다루는 과제로서 제가 호소하는 것은 핵군축의 추진입니다.
거기서 우선 제안하고 싶은 것이 CTBT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의 비준촉진을 도모하는 캠페인 운동입니다.
CTBT 발효에 비준촉진 운동을
CTBT는 NPT(핵확산금지조약)를 보완하고 핵무기의 수평확산(水平擴散:핵보유국의 증가)과 수직확산(垂直擴散:핵무기의 성능향상)을 방지하는 조약으로 1996년 9월에 유엔총회에서 압도적 다수로 채결되었습니다만, 아직도 발효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핵보유국과 핵개발의 잠재적 능력을 갖춘 44개 국의 비준이 요건인데도 26개 국밖에 비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엔 안보리상임이사국인 핵보유국 5개국 가운데 비준을 끝낸 나라는 영국과 프랑스뿐이며, 1998년에 핵실험을 강행한 인도나 파키스탄, 핵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북한 3개 국은 서명도 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특히 CTBT 발효의 앞길에 충격을 준 것은 작년 10월의 미국상원의 비준안 부결이었습니다.
앞으로 그 영향으로 다른 미비준국, 미서명국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CTBT는 ‘재고품’ 상태로 남게 됩니다. 작년의 유엔총회에서 비준을 촉구하는 결의가 채택되었습니다만, 이를 지원하는 국제여론이 높아지지 않는 이상 사태를 타결하기는 곤란하다 할 것입니다. 거기서 저는 ‘CTBT 비준촉진을 위한 국제연대망(가칭)’을 NGO가 중심이 되어 일어설 것을 제안합니다. CTBT 비준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나라들과 연휴·협력하는 ‘새로운 외교’ 방식으로 미비준국을 끈질기게 설득하는 운동을 일으켜 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 운동에 있어서는 비준을 호소하는 것뿐만 아니라 CTBT의 실효성을 높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각국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사찰검증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예산의 부담입니다. CTBT가 미국상원에서 부결된 논거의 하나는 사찰검증이 불충분하다는 우려였습니다.
현재 CTBT의 잠정기술사무국(暫定技術事務局)에서는 사찰검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만, 예산을 확보하고 그 능력을 높이는 것은 보유국뿐만 아니라 가맹국 전체의 공통된 이익이 된다는 것을 호소해 가야 할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CTBT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미임계실험(未臨界實驗:핵폭발을 동반하지 않고 핵탄두의 안정성 등을 점검하는 실험―역주)에 대해 조약의 목표와 목적에 저촉 여부를 확인하는 매커니즘을 도입하는 합의 도출입니다.
미임계실험의 실시에 대해서는 많은 비보유국이 불만을 느끼는 만큼, 이것을 해소하는 제도를 보완한다면 CTBT의 존재의의는 높아진다고 생각됩니다. 지금까지 핵군축을 추진하는 운동을 일관해 온 SGI로서도 ‘CTBT비준촉진을 위한 국제연대망’의 운동에 다른 NGO, 비준에 적극적인 나라들과 연휴하면서 노력하고자 합니다.
최근에 핵군축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나라들의 그룹 ‘NAC(신아젠다연합)’나 NGO의 연합체인 ‘MPI(중견국가구상)’가 제창하는 ‘핵무기금지조약’ 제정의 노력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모두 1998년에 발족한 것으로 NAC의선구적인 형태로 활동을 시작한 MPI는 핵폐기를 위한 NGO의 지구적 연대망 ‘애볼리션2000(핵폐기 운동)’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NAC는 당초 8개 국에서 서서히 찬동국가를 늘리고 있으며, 작년 12월에 유엔총회에서 제출한 결의안에는 60개 국이 서명하는 등 핵군축을 촉진하는 ‘새로운 극(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NAC는 우선 NPT의 틀 안에서 핵군축에 대해 압력을 강화시킬 방침입니다만, 올해의 재검토회의에서 성과를 얻지 못한다면 별도의 새로운 틀에서 ‘핵무기금지조약’ 제정을 요구할 것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NAC 운동을 더욱 가속화하려면 우선 보유국과 동맹관계에 있는 나라들이 핵무기 의존체제에서 일보 더 전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핵군축은 결국 억지론적(抑止論的) 사고에서 탈피하지 않는 이상, 커다란 진전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986년에 이미 고르바초프 씨(당시 소련서기장)가 “언제까지나 보복에 대한 공포 즉 ‘억지’ 혹은 ‘위협’의 논리로 안전을 구축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듯이, 억지론에 발상을 둔 안전보장은 그 존립기반이 불신인 만큼 과잉군비확산이 통상적인 일로 되어 그만큼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핵우산’에 의지하는 나라들 중에서도 핵무기 폐기에 노력하라는 시민의 소리가 다수를 차지한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애볼리션2000’에 참가한 각국의 NGO가 전문기관을 통하여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입니다만, 거기서는 핵보유국인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핵폐기를 요구하는 소리가 과반수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보유국은 핵보유를 정당화하는 이유의 하나로 국민의 지지를 듭니다만, 조사결과는 이 전제를 무너뜨리는 내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핵보유국이나 새롭게 보유하려는 나라들은 자국의 안전보장이라는 목적 외에, 국가의 위신을 확보한다는 목적이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국가관과 위신의 원천이 되는 권력관(權力觀)을 근본부터 되묻는 것이 핵무기를 둘러싼 상황을 바꾸는 하나의 출발점이라 할 것입니다.
핵무기금지조약의 제정을 목표로
그런 의미에서도 NAC나 MPI가 하려는 노력은 실로 소프트파워의 특성을 살린 시대적 요청에 따른 것이며, 이러한 움직임이 더욱 광범위한 민중운동에 의해 뒷받침되어 간다면 억지나 위협을 원천으로 하는 핵무기 의존의 수퍼파워를 대신하여 신뢰와 연대의 ‘새로운 수퍼파워’를 탄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창가학회 마키구치 초대회장은 20세기 초에 발간한 《인생지리학(人生地理學)》에서 국가의 최종목적은 인도(人道)의 완성에 있다고 하면서 ‘(무력이나 권력이 아니라) 무형(無形)의 세력으로 자연스럽게 훈화(薰化:훈도하여 좋은 길로 인도―역주)하는’ 영향력의 확장을 다투어야 한다는 방향성을 수립했습니다.
초대회장이 선견지명을 가지고 호소하던 ‘무형의 세력으로 자연스럽게 훈화하는’ 인도적(人道的) 방법이야말로 다름 아닌 현대국가에 요청되는 ‘신뢰를 쟁취하는 능력’으로서의 소프트파워라 할 것입니다.
저는 핵무기 폐기라는 과제에는 단순한 군축면으로 그치지 않고, 20세기의 약육강식의 패권경쟁이 도달한 ‘최대의 부(負)의 유산’ ― 즉 불신(不信)과 증오, 인간성의 모독을 근본적으로 극복하고 새로운 국제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도전이라는 중대한 의의가 있다고 호소하고 싶습니다.
올해로 탄생 백주년을 맞이하는 은사 도다 제2대회장은 1957년 9월에 발표한 <원수폭금지선언(原水爆禁止宣言)>에서 모든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핵무기를 ‘절대악(絶大惡)’으로 지탄했습니다.
은사가 거기서 “그 오저에 숨어 있는 손톱을 뽑고 싶다”고 호소한 것도 다름 아닌 그 ‘보이지 않는 악마성(惡魔性)’을 깊은 생명의 차원에서 예리하게 감지(感知)하고 갈파(喝破)했기 때문입니다.
SGI가 동서냉전의 와중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핵의 위협전을 미국, 소련(현 러시아), 중국 등 핵보유국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순회, 전시하고 의식계발에 주력한 것도, 또 ‘애볼리션2000’의 취지에 찬동하여 1천3백만 명이 넘는 서명운동을 추진한 것도 ― 모든 것은 현실의 두터운 벽을 돌파하는 민중의 연대를 나라와 민족의 차이를 초월하여 만드는 외에 길은 없다는 확신에 서서 한 것입니다.
그것은 정신을 향해 소리 없이 다가오는 체념이나 무력감을 물리치고, 핵무기가 가진 힘에 인간이 절대로 굴하지 않는다는 단호한 의사표명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핵무기금지조약’ 제정이라는 하나의 골을 향하여 민중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거듭 호소하고 싶습니다.
동북아시아평화대학에서 청년교류를
최후로 저의 숙원(宿願) 가운데 하나인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에 대해 논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동북아시아의 동향은 단순한 한 지역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여러 의미에서 앞으로 세계가 나가야 할 방향을 좌우하는 무게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미국국방대학교 국가전략연구소의 패트릭 크로닌 부소장이 흥미 있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크로닌 씨는 동북아시아가 “21세기의 정치, 경제, 기술, 사회, 군사 각 분야의 활동중심지”가 된다는 전망을 밝힌 다음, 앞으로의 국제사회가 ‘협조’를 기조로 한 ‘세계융합의 시대’가 되는가, ‘충돌’을 기조로 한 ‘제2의 전간기(戰間期)’가 되는가는 전적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의 확립 여부에 달려 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이 지역의 미래성이라는 관점과 함께,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다대한 희생을 낸 역사적 반성을 하면서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진심으로 바라며, 특히 한반도의 평화라는 관점에서 몇 번이고 제안을 해 왔습니다.
남북수뇌회담(1985년에 제창), 상호불가침·부전(不戰)의 서약(1986년), 비무장지대의 평화적이용(1986년), 이산가족을 위한 재회교류센터의 개설(1994년), 철도와 도로 개설 등 사업추진에 의한 신뢰관계 구축(1995년) 등의 여러 제안을 거듭해 온 것입니다.
한국전쟁으로부터 50년
이러한 가운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한국과 북한의 관계개선이 추진되어 왔습니다만, 애석하게도 1953년 7월의 ‘휴전협정’ 체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군사분계선을 끼고 양국이 대치한다는 ‘전쟁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상황의 해소를 일관되게 호소해 왔습니다만, 한국전쟁 발발에서 50년이 지난 지금이야말로 냉전상태를 종결시키고 부전체제(不戰體制)를 구축하는 좋은 기회라 생각합니다. 그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주변 국가를 포함한 대화와 신뢰를 양성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런 관점에서 1997년의 제언에서 ‘동북아시아의 비핵지대’의 설치를 호소하였으며, 작년의 제언에서는 한국과 북한에 주변 국가가 참여하는 ‘동북아시아평화포럼’의 설치를 제안했습니다.
특히 후자는 지역간 협력의 공백지대 중의 하나인 동북아시아에서 대화를 촉진시키는 구상입니다.
이미 SGI로서도 이 포럼을 실현하고자작년 10월에 한국 서울에서 열린 NGO세계대회에서 국제심포지엄을 주최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토의의 장(場)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앞서 분쟁해결 부분에서 논했듯이, 당사자를 배제하지 않고 ‘대화의 장’을 항상 확보해 두는 것이 긴장강화로 군사충돌이 일어나는 것을 막는 데 불가결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의 NGO대회에서는 한국·일본·중국의 NGO에 의한 연합체 구성 등도 검토되었다고 합니다만, 정부 차원으로 그치지 않고 민간 차원에서도 ‘대화의 채널’을 확보한다는 의의는 크다 할 것입니다.
이러한 지역교류의 일환으로 저는 유럽평화대학과 같은 기관 ― ‘동북아시아평화대학’을 유엔대학 등의 협력을 얻어, 예를 들어 몽골에 설치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제가 몽골을 후보로 생각하는 것은 몽골이 1998년에 유엔에서 ‘비핵무기국의 지위’를 승인받은 평화를 지향하는 나라라는 것, 이 지역은 러시아와 중국 및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입니다.
설치장소는 어디가 되었든 간에, 평화대학을 민중교류와 평화를 건설하기 위한 인재육성의 장으로 ― 나아가서는 EU(유럽연합)가 추진하는 교육교류를 위한 ‘소크라테스계획’<주6>을 동북아시아에서도 장래 실현시키기 위한 초석이 된다면 장기적으로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역에서 적극적으로 교육교류를 추진해 온 실적이 있는 창가대학으로서도 교육교류나 청년교류 프로그램에 공헌해 가고자 합니다.
마침 올해 열리는 오키나와서밋에서는 아시아 지역의 평화가 하나의 의제로 다뤄질 예정입니다.
이번 기회를 살려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이 평화를 향하여 크게 전진할 수 있도록 폭넓은 관점에서 심도있는논의를 할 것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현실’을 만드는 도전을
많은 비극을 낳은 20세기가 ‘경고(警告)의 시대’였다면 ‘행동과 연대’야말로 21세기의 키워드입니다.
인류를 둘러싼 문제군은 너무도 복잡하여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쉽사리 방도를 찾을 수 없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올바르다고 믿는 방향을 향하여 행동을 개시하는 것입니다. 필요한 것은 현실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을 낳는 도전을 개시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정신은 어떠한 곤란한 상황도 타개하고 더욱 풍부하고 결실 있는 가치창조를 성취하는 힘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정신의 힘을 인간 각자가 종횡으로 개화하면서 변혁을 지향하는 연대의 기반을 강하게 하여 ‘평화의 문화’를 구축해 간다 ― 여기에 제가 ‘생명의 세기’로 이름한 21세기의 가장 중요한 최대의 도전이 있다는 것을 호소합니다.
그 주역이야말로 민중입니다.
우리들 SGI는 ‘민중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엠파워먼트 운동’을 더욱 힘차게 추진하여 뜻을 같이하는 전세계 사람들과 힘을 합하여 ‘새 천년’의 평화와 희망의 대도(大道)를 열어 가고자 합니다.
어구해설
주1 미국 청년부의 비폭력운동
미국 청년부에서는 1999년 7월부터 ‘빅토리 오버 바이올렌스(폭력을 물리치자)’를 테마로 비폭력 정신을 계발하는 대화·서명운동을 시작. 많은 인권단체와 교육기관의 지지를 받는 외에 그 활동이 높이 평가되어 현창도 받고 있다.
주2 A. 슈바이처
독일의 의사이며 철학자(1875∼1965). 아프리카 가봉에서 오랜 세월에 걸친 의료전도(醫療傳道) 활동을 계속하여 그 체험에서 독자적인 ‘생명의 외경(畏敬)’의 철학을 만들었다. 병원을 개업한 이후, 수만 명에 이르는 현지 아프리카인 환자가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주3 차별철폐조치(affirmative action)
1960년대 초에 미국에서 확립된 인종적 마이너리티(소수파)에 대한 직업이나 교육상의 기회나 처우에 대한 차별 취급을 시정하기 위한 특별조치를 말한다. 차별을 해소하는 데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기계적인 차별해소책은 오히려 기회균등을 방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주4 국제인도법(國際人道法)
1949년에 제정된 제네바4조약과, 1977년에 제정된 두 개의 추가의정서(追加議定書)를 중심으로 하는 무력분쟁시의 부상자(負傷者), 민간인, 포로 등의 인도적 취급을 정한 국제법규의 총칭. 1998년에는 그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국제형법재판소’의 설립조약이 채택되었다.
주5 마셜플랜
1947년 6월, 미국의 국무장관 마셜의 제안에 기초하여 1948년부터 실시된 것으로, 정식명칭은 ‘유럽부흥계획’. 서구제국과 터키 등을 대상으로 하여 유럽경제협력기구를 통하여 1951년 말까지 실시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피폐된 이 지역의 부흥에 큰 역할을 했다.
주6 소크라테스계획
EU에서 추진하는 교육분야의 행동계획을 총칭한다. 1987년에 시작된 ‘에라스무스계획(고등교육 부문의 교류)’ 등이 1995년 통합되어 현재의 명칭으로 되었다. 에라스무스계획에는 24개국, 1600개 대학, 20만 명의 학생이 참가하여 교류를 하고 있다.
정의를 위하여
열심히 투쟁하는
전 동지에게 감사!
명랑하게
완벽한 승리의 정상을 향해!
이상에 살아라! 사명에 살아라!
자기답게 살아라!
거기에 후회없는 인생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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