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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신앙의 족보(Ⅰ) (마 1;1-17)
족보를 보면 그 나라와 가문의 지나간 역사를 알 수 있습니다.
족보가 없다는 것은 그 나라와 가문의 지나간 역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역사가 없다는 것은 그 나라와 그 가문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어떻게 지나왔는지, 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국제사회가 다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한민족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야 될 처지가 되었습니다.
국제결혼이 많아지면서 다문화가정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국국적을 취득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일정 기간 동안 한국에 살고, 귀화시험을 봐서 합격하면 귀화하여 한국국적을 얻게 됩니다.
한국국적을 지니게 되면 한국인으로서의 모든 특권과 권한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아울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모든 의무도 이행해야 합니다.
우리는 간혹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귀화하는 것을 봅니다.
유명한 방송인으로 알려져 있는 하일씨는 국제변호사로서 미국 이름이 “로버트 할리”씨인데 우리나라에 귀화하였는데 부산 영도 하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이 셋이 있는데 그래서 영도 하씨는 4명이 되었습니다.
방송인 이한우씨로 알려져 있는 이참씨는 독일 사람인데 독일이름은 “베른하르트 크반트”입니다. 그런데 귀화하여 독일 이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여성 방송인 중에 프랑스 사람인 이다도시가 있습니다. 이 사람도 귀화하여 도시성씨를 지닌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여인이기 때문에 더 이상 도시씨가 번창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도시씨의 시조가 되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축구선수로 귀화한 러시아 사람인 샤리체프는 귀화하여 신의손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구리신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족보의 대수가 적기 때문에 뿌리가 없거나 약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족보를 아주 중요하게 여기는 문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족보를 중요하게 여기는 민족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족보에 대하여 많이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족보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아주 생생하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우주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족보는 예수님이 태어난 뿌리가 분명하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신 신성을 지닌 분이지만 분명히 인간이라는 인성도 지니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모습은 족보를 통해서 분명한 출생 신분, 뿌리가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에 대하여 기록하면서 족보를 가장 먼저 기록하는 것입니다.
오늘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족보에 대하여 분석하면서 우리들도 신령한 신앙의 족보를 세워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분석해 보면
1.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의 족보에는 데라의 이름이 기록됩니다.
하지만 마태복음에는 데라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데라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데라가 구원받지 못한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구약시대의 구원은 신약시대의 구원의 개념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는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자신이 살던 우상의 지역을 떠나는 것. 그 자체가 구원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데라는 우상의 지역인 갈대아 우르 출신입니다.
분명히 데라는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갈대아 우르를 떠났음을 창세기11;31절을 통하여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11;31절에 보면 데라는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이 죽자 아브람과 손자 롯과 딸이자 며느리인 사래를 데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고 합니다.
성경이 아닌 유대의 전승에 의하면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가 만들어 파는 우상을 깨뜨려버렸다고도 합니다.
그랬던 데라가 우상의 땅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가나안을 향하여 갔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먼저 간 것이 아니라 아버지 데라가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를 데리고 가나안을 향하여 떠났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까지는 가지 못하고 중간에 하란이라는 곳에 머물다가 죽었다고 합니다.
데라가 갈대아 우르를 떠난 자체가 구원을 받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좀 더 가서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까지 갔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란에 머물다가 죽은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구원을 받은 것은 맞습니다.
이것이 데라와 아브라함의 차이입니다.
분명히 데라도 구원을 받았지만 하나님은 신앙의 족보를 그의 아들인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이요 변치 않을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수없이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맺으면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 성민으로 구별하시겠다고 안약을 맺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부터 시작하여 신앙의 족보가 기록되어지는 것입니다.
2.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완벽한 족보, 결점이 없는 족보, 신화와 같은 족보가 아니라 결점이 많은 족보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왕에 대한 족보는 반드시 신화같은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곰이 여자가 되어 태어났다고 하는 고조선을 세운 단군신화, 하늘의 신인 해모수에게서 태어났다고 하는 고구려를 세운 주몽신화, 개구리에서 태어났다는 부여의 금와신화, 알에서 태어났다는 신라의 박혁거세의 신화, 가야신화 등등 신화들이 등장합니다.
고려를 세운 왕건에 대한 신화도 그렇습니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에 대한 신화, 전설도 그렇습니다.
신적인 존재, 하늘이 내려준 존재라는 개념을 등장합니다.
이런 건국신화 또는 각 가문을 형성하는 족보의 신화는 신적인 존재를 등장하여 완벽해야 합니다. 한 점의 오차도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를 보면 순수한 히브리 민족, 이스라엘 민족의 혈통을 고수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하는 여인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등장하는 여인이 유다의 며느리인 다말입니다.
다말은 가나안 여인으로 유다의 며느리가 되었습니다.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혼인하여 세 아들 엘, 오난, 셀라를 낳앗습니다.
그리고 장자인 엘을 위한 아내, 곧 며느리를 얻었는데 그녀가 다말입니다.
역시 가나안 사람의 딸입니다.
그런데 엘이 하나님 앞에서 죄악을 범함으로 하나님께서 죽입니다.
형이 결혼했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하여 형의 후손을 이어가야 된다는 계대법에 의해서 다말은 오난과 다시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야 되는데 오난이 생각하기를 아들을 낳은다해도 자신의 자식이 되지 못하고 형의 자식이 된다고 생각하고는 다시 죄악을 범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오난을 죽입니다.
계대법에 의해서 유다는 어린 아들 셀라를 다말에게 주어야 하는데 셀라 마저 죽을까봐 두려워서 며느리인 다말에게 셀라가 자랄 때까지 친정으로 돌아가 있으라고 합니다.
셀라가 장성하게 자랐는데도 유다는 며느리에게 셀라를 신랑으로 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때 마침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었습니다.
아내를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친구와 더불어 여행을 갔는데 그 곳이 며느리 다말이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시아버지가 온다는 말을 들은 다말은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인 유다와 관계를 맺어서 베레스와 세라를 임신하여 낳았습니다.
이 베레스가 다윗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등장하는 여인이 라합입니다.
이 라합은 여호수아서에 보면 여리고성의 기생, 곧 창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사실은 기생도, 창녀도 아닙니다.
애굽은 태양신인 “라”신을 섬기는 족속이고, 여리고성은 달신을 섬기는 족속입니다. 태양신은 남자가 제사장이지만 달신은 여자가 제사장입니다. 그래서 라합은 달신을 섬기면서 제사를 주관하는 여자제사장이었습니다.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여호수아 장군에게 보고하면서 여리고성의 상황을 보고 합니다.
그럴 때 누구에게서 그 정복을 얻었느냐고 물었을 때
“예, 장군님. 여리고성의 창녀에게서 그 정보를 얻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면
여호수아가 그 정보를 받아들였겠습니까?
뺨이나 얻어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리고성의 달신을 섬기는 여자 제사장에게서 그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 여자 제사장이 이런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 자신들과 가족들을 살려달라고, 구원해 달라고 간청하면서 우리들을 숨겨주면서 도와주었습니다.”라고 보고했을 때 여호수아 장군이 “그래 알았다.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역사해 주실 것이야.”라고 하면서 요단강을 건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달신을 섬기는 제사장을 제사장이라는 표현할 수가 없어서 기생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라합은 달신을 섬기는 제사장이었는데 상천하지의 유일한 하나님께서 그 당시에 가장 강한 신이라고 알려져 있는 애굽의 태양신인 “라”와의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히브리민족을 이끌어내었습니다.
두 개의 큰 용으로 형성되어진 “티아맛”이라고 하는 바다의 신이 버티고 있는 홍해도 심판하여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었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고, 만나를 내려주시면서 굶주림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면서 목마름의 문제를 해결해 주었고, 수많은 적군들과의 싸움에서도 승리케 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 여호와라는 신이 이끌고 있는 이스라엘이 곧 요단강을 건너서 여리고성으로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하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분이 하신 행적을 보면 자신이 섬기는 달신을 정복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쉽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이스라엘의 정탐꾼이 자신의 집으로 찾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라합은 이 정탐꾼을 잘 붙들어야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살릴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겨서 정탐꾼을 숨겨주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히브리서에서는 크게 칭찬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11;31절에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와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에 정탐꾼과의 약속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정탐꾼 중에 한 사람이 살몬이었고, 그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은 것입니다.
보아스가 다윗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세 번째 등장하는 여인이 모압 여인 룻입니다.
룻은 모압 여인인데 베들레헴에 큰 가뭄이 들어서 모압으로 이주한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첫째 아들인 말론의 아내가 된 여인입니다.
다윗의 고향이기도 하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기도 한 베들레헴 지역은 이스라엘의 남부지방에 해당됩니다.
이스라엘의 남부지방은 1년 강수량이 200mm에서 최고 300mm에서 350mm 정도 되는 지역입니다.
이번 장마비로 인하여 우리나라 남부지방에는 하루에 300mm가 넘게 온 지역도 있는데 이스라엘의 남부지방에는 1년 동안 내리는 비가 우리나라 하루에 내리는 비와 같은 량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가 잘 오지 않는 지역입니다.
그래서 가뭄이 자주 생기는 곳입니다.
그런데 모압 땅은 똑 같은 남부지방인데도 가뭄이 들지 않는 곳입니다.
왜냐하면 갈릴리 북부 지방에 헐몬산에서 겨울 동안 눈이 와서 꽁꽁 얼어있었던 산이 봄이 되면서 녹기 시작하여 갈릴리 바다, 게네사렛 호수로 물이 흘러가게 됩니다.
그 물이 다시 갈릴리 바다에서 요단강을 건너서 사해바다에 들어가게 됩니다.
사해바다는 지중해 바다 보다 해수면이 낮은 바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수로작업을 잘 한다 해도 사해바닷물을 밖으로 끌어낼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해바다에서 더 이상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이게 됩니다.
뜨거운 햇살로 인하여 사해바닷물은 증발하여 수증기가 형성되고 사해바다는 아주 짠 바다가 됩니다.
사해바다 근처는 소금 투성이입니다.
사해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는 지중해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서 모압 땅에 뿌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모압 땅은 항상 수분이 충분하고 농사가 아주 잘 되는 비옥한 땅입니다.
그런데 비가 잘 오지 않는 베들레헴에 사는 엘리멜렉 가족은 3-4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가뭄 때문에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항상 수분이 충분하여 농사가 잘 되는 모압 땅으로 이주하여 살려고 한 것입니다.
모압 땅으로 이주하여 약 10년 동안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모압 땅에서 한 일이라곤 두 아들을 모압 여인에게 장가보낸 것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엘리멜렉도, 두 아들도 모압 땅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세 과부 나오미와 두 며느리만 남았습니다.
나오미는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두 자부를 데리고 길을 나섰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다가 국경을 넘기 전에 두 자부에게 “너희들은 고국과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간청합니다.
시어머니의 간청으로 둘째 며느리인 오르바는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나오미는 첫째 며느리인 룻에게도 돌아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룻은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하면서 죽어도 어머니와 함께 죽고, 살아도 어머니와 함께 살겠다고 하면서 끝까지 나오미를 따라서 베들레헴에 까지 왔습니다.
마침 이들이 돌아온 시기가 보리를 추수하는 계절이었습니다.
룻은 보아스의 밭에서 보리와 밀 이삭을 주우면서 연로하고 홀로된 시어머니를 극진하게 모시기 위하여 이삭을 주우러 간 밭이 우연하게도 보아스의 밭이었습니다.
보아스는 유력한 사람이기도 하고, 나오미와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형제나 친족의 재산이 팔려서 없어졌을 때 희년이 되기 전에 가까운 형제나 친족이 대신 물어주고 회복시켜주는 고엘법에 의해서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자의 자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습니다.
이 오벳이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는 사람입니다.
네 번째 등장하는 여인이 밧세바입니다.
밧세바는 다윗군대의 충실한 장교인 헷 사람 우리아 장군의 부인이었습니다.
다윗은 전쟁하러 가야 되는 사람이었었는데 전장에 나가지 않고 요압장군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는 왕궁에 머물렀습니다.
하루는 왕궁을 거니면서 산책하고 있었습니다.
왕궁에서 밑을 바라보니까 벗은 몸으로 목욕하고 있는 아리따운 여인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저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오라고 명령합니다.
전쟁터에 나가 있는 우리아 장군의 부인이라고 합니다.
다윗은 그 여인을 자기의 침실로 모셔오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룻밤을 함께 지내면서 임신되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이미 여러 부인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의 부인 그것도 충직한 부하장군의 부인을 빼앗은 것입니다.
임신이 되었다는 전갈을 받고 전쟁터에 있는 우리아 장군을 급히 돌아오라고 하고서는 집에 돌아가서 편히 쉬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아 장군은 다른 장군들,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피 흘리면서 싸우고 있는데 자신만 편하게 지낼 수 없다고 하면서 거절합니다.
다윗은 요압장군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주면서 다시 전쟁터로 보냅니다.
그 편지에는 우리아 장군을 가장 최전방에 세워서 적군에 의해서 죽게 하라는 명령이 들어있었습니다.
우리아 장군은 그 전쟁터에서 죽게 됩니다.
우리아 장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다윗은 밧세바를 왕궁으로 데려와서 자기 부인으로 삼아버립니다.
세상적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절대 권력을 지닌 왕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이런 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을 자기 아내로 삼고 아들까지 낳았습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이런 다윗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여 밧세바가 낳은 아들을 죽게 만듭니다.
그 후에 다윗이 회개하면서 쓴 시가 유명한 시편51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밧세바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낳은 아들이 솔로몬입니다.
하나님은 이 솔로몬을 다윗 왕의 다음 왕으로 세워주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가 있는 네 여인을 보면 온전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유대인은 혈통주의를 강조하는 민족인데 혈통적으로 보나 무엇으로 보나 온전하지 않습니다.
다말이나 라합이나 룻은 이방여인입니다. 어쩌면 밧세바도 이방여인일 수 있습니다.
우리아가 헷 사람이라고 하였는데 헷 사람은 온전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고 가나안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에 흡수된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밧세바가 우리아의 부인이었기 때문에 밧세바도 헷 사람 곧 가나안 사람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라합은 이방신 곧 달신을 섬기는 여자제사장이었고, 밧세바는 욕망의 여인이었습니다.
이렇게 불온존하고, 불완전하고, 죄인들을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족보에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했을까요?
바로 예수님은 이렇게 불완전하고, 불온전한 죄인을 불러서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오신 분이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 자녀 삼으시기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완전한 사람, 온전한 사람, 거룩한 사람, 의인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불온전하고, 불완전하고 죄인을 불러서 하나님의 사명을 맡기시는 분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내세울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습니까?
권력이 있나요?
뛰어난 학문이 있나요?
좋은 가문 출신인가요?
뛰어난 미모를 지녀서 요즘 흔히 말하는 얼짱, 몸짱인가요?
그렇다고 돈이 많은가요?
우리는 권력도 없고, 돈도 없고, 학문도 없고, 좋은 가문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외모가 뛰어나서 얼짱, 몸짱도 아닙니다.
내세울 수 있는 조건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우리들을 불러서 예수님을 믿게 하시면서 하나님의 자녀, 백성 삼아주셨습니다.
미력하나마 하나님의 사명 감당하라고 사명을 주었습니다.
한없이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이 예수님을 잘 믿어서 신실한 신앙의 족보를 새롭게 새워가는 신앙의 제1세대가 되어야 합니다.
저가 목회하면서 느끼는 것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신앙의 1시대에서 목회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서 저의 주변에 있는 목사님을 보면 신앙을 지닌 분들의 가정에서 태어나서 신앙의 유산을 받고 자라서 목사님이 되신 분들의 목회는 아주 잘 되는 것을 봅니다.
그분들이 저보다 월등하게 설교를 잘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분의 설교나 내 설교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분들의 목회는 쉽고, 저는 어렵게 합니다.
그래서 한 편으로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아무리 부러워해도 내가 먹을 떡은 아닙니다.
하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잘 살면 우리 자식 대에, 손자 대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풍성하게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습니다.
신명기 7;9-10절의 말씀을 보면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며 신앙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1000대까지 인애를 주신다고 합니다.
우리는 1000대까지는 바라보지 말고, 적어도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자식 대, 손주 대까지만이라도 바라보자구요.
우리들이 믿음으로 살아서 우리 자식들, 후손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서 잘 사는 모습을 보자구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들은 신앙의 신실한 족보를 세워가는 신앙의 제1세대로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고 당당하게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