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cafe.daum.net/packgungsun/V9yv/96?svc=cafeapi완-- 엄마를 살릴 시간 여행
판타지 동화
엄마를 살릴 시간 여행
박경선
1. <이름은 모두 향기가 있을까?>
나는 무서웠다. 뇌척수 검사를 하고 병실로 온 엄마가 구역질하며 ‘머리가 아프구나.’ 하더니 계속 눈을 감고 있어서 다시는 눈을 안 뜰까 봐 무서웠다.
“오빠, 무섭지?”
“별로!”
오빠는 내 말에 허리를 쫘악 펴더니 일부러 똥배를 내밀어 보였다. 쳇! 오빠도 엄마 걱정 많이 하면서 내 앞에서만 아닌 체했다. 오빠한테, 엄마 담당 정화수 샘께 가보자고 졸랐다. 오빠 목이 거북목으로 변하면서 겁쟁이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 정화수 샘이 삼촌 친구라고 우리를 새치기 순서로 봐주지는 않을걸?”
이럴 때 내가 세상에서 제일 보기 싫은 꼴이 오빠의 저 거북목이다. 나는 화가 나서 벌떡 일어났다. 나 혼자서라도 진료실로 쳐들어가 이 위급 상황을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나서자, 오빠가 비실비실 따라왔다. 정화수 선생님 진료실 앞 알림판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 이름이 잔뜩 적혀 있었다. 나는 서서 틈새를 엿보았다. 간호사가 맨 위에 적힌 환자 이름을 부르며 찾는 동안 우리는 얼른 진료실로 들어갔다.
“샘, 엄마가 자꾸 자고 있어요.”
“걱정 마, 검사가 힘들어서 쉬고 계시는 거야. 12시 점심시간에 와. 점심 같이 먹으면서 이야기 해줄게.”
진료실을 나올 때 오빠는 또 똥배를 쑤욱 내밀었다. ‘그것 봐. 괜찮잖아.’ 하는 꼴! 엄마는 병원 점심밥이 들어왔는데도 생각이 없다며 누워있어서, 우리끼리 정화수 샘을 찾아갔다. 샘은 우리 손을 잡고 병원 내 식당으로 데려가며 물었다.
“아린이 이름이 참 예쁜데 무슨 뜻으로 누가 지어줬어?”
“겨울을 지내는 꽃잎 비늘이 예뻐서, 저도 예쁘게 자라라고 아빠가 지어줬데요.”
“아빠가 꽃나무를 좋아하셨나? 아린이 이름 속에 아빠 향기가 스며있구나.”
“향기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식당까지 왔다. 의자에 앉자마자 샘이 엄마 이야기를 해주셨다.
“많이 걱정되지? 문제는 시간이야. 조금만 더 일찍 알았어도 백혈구 수치가 이렇게까지 떨 어지지는 않았을 텐데….”
‘시간이 문제라니!’ 나는 그 말에 몸을 떨었다. 강변으로 나들이 가던 그날, 오빠와 나는 싱싱이를 타고 가고 아빠는 지쿠(전동 킥보드)를 타고 따라오고 있었다. 눈 온 뒤 세상은 아름다웠다. 그런데 갑자기 노란 차가 나타나더니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내 앞으로 왔다. 아빠가 빛의 속도로 나를 옆으로 밀쳐내는 순간에 노란 차가 아빠를 덮쳤다. 1초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병원 구급차가 왔을 때 아빠는 피를 흘리며 구급차 가운데 눕고 오빠와 나는 옆에 앉아 가며 훌쩍거렸다.
“아빠. 뭐야 이게. 1초 순간에 다쳤잖아. 바보같이! 잉잉잉.”
“다행이잖아. 1초 순간에 아린이를 구했으니. 감사한 일이지.”
“뭘, 아빠가 나 대신 다쳤잖아. 잉잉잉!”
“가족이면 그렇게 해야지. 가족은 소중한 거야.”
나는 알았다. 1초가 얼마나 무서운 일을 하는지 처음 알았다. 오빠도 ‘시간이 문제’라는 샘의 말에 그 사건이 떠오르는지, 아빠가 돌아가시고부터 엄마가 우울증 약을 먹는다고 했다. 나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말하지 않아서 오빠가 고마웠다.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어깨에 둘러멘 손가방에서 아빠의 손목시계를 꺼내었다. 사고 그날, 내가 하도 울어서 아빠가 나를 달래려고 건네준 시계였다.
“아빠가 준 건데 타임머신 기능도 돼요.”
그 말에 오빠가 설명을 덧붙였다.
“아빠가 소방관의 날 훈장 받으면서 부상으로 받았던 시계라서 과거와 미래로 순간 이동도 할 수 있어요.”
하면서 뒤편으로 돌려 보였다. ‘특별 공로상’이라는 글씨가 한가운데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자랑스러운 아빠의 유품이구나. 이 시계가 과거와 미래로 순간 이동한다니 너희들 판타지 동화 즐겨 읽니?”
물었다.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샘은 ‘우리 집 녀석도 그래.’ 하더니 ‘이 시계가 미래로 가서 백혈병 신약을 구해오면 엄마 병이 빨리 낫겠지?’ 하며 우리 마음을 읽어주었다. ‘이것도 먹어 봐.’ 하며 반찬도 이것저것 챙겨주었다. 엄마하고도 과거 즐거웠던 추억 이야기를 많이 나누라고 했다. 우리는 힘이 났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병실로 올라오며 ‘정화수’ 샘의 향기를 생각해 봤다.
“오빠, 이름은 모두 향기가 있을까? 정화수 샘 이름 향기는 뭘까?”
“정화수는 물 떠 놓고 정성으로 비는 거니까, 정성과 기도가 가득 찬 향기일 거야.”
2. <우리가 미래로 갈 수 있을까?>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우리는 학교 마치면 싱싱이를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서 손목시계에 타임머신을 작동시키면, 우리 모두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 할머니랑 갔던 여행 말이야. 유리다리 밑의 협곡이 훤하게 다 보여서 발도 제대로 못 딛고 몸이 후들후들 떨렸어!”
내 말에 엄마가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
“아빠는 너와 할머니를 잡고 앞서는데, 나는 밑도 못 보고 사린이 손을 잡고 끌려가듯이 했지. 후후! 실은 엄마도 겁이 많아. 가이드님이 집라인 체험이 관광 상품에 들어가 있지 않지만, 공짜로 태워주겠다고 해서 용기를 내어보았지.”
“맞아요. 아린이도 엄마처럼 억지로 용기를 내어 집라인 줄을 양손으로 꽉 잡고 타던걸요? 아빠는 나비가 날갯짓하듯 양옆으로 손을 펄럭이며 타던데….”
오빠가 집라인 타던 우리 가족 모습을 동영상 보듯 자세히 표현하자 엄마가 ‘깔깔깔’ 웃으며 인정했다.
“인정, 인정! 집라인 타고 내릴 때 내가 반성했어. 경험해 보지 않고 무작정 무서워했던 내가 너희들까지 겁쟁이로 키우는구나 싶어서….”
오빠가 그때 배를 쑥 내밀더니 뚱딴지같은 말을 꺼내었다.
“7,500m의 거리를, 케이블카를 타고 사람들이 사는 지붕 위를 가로지를 때 제가 무슨 생각 했는지 아세요?”
“그야, 오빠도 떨어질까 봐 걱정했겠지?”
내 말에 오빠가 두 검지를 엇걸어 보이며 말했다.
“참 신기했어요. 길 없는 곳에 길을 낸 첫 번째 사람의 연구가 우리를 편하게 다니게 하는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도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더라고….”
“뭐? 그렇게까지나….”
나도 놀랐지만, 엄마도 놀란 표정이었다. 이럴 때 오빠의 똥배가 또 쑤욱 나왔다. 잘난 체할 때마다 나오는 버릇인 걸 어떡해.
“아빠가 우리에게 남겨주고 간 시간은 엄마한테 효도해야 할 시간 같아요.”
‘와! 오빠가 똥배도 안 내밀고 이런 말을 하다니….’ 내 몫까지 엄마께 효도하겠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는 오빠! 내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래서 정화수 샘도 미래로 가서 백혈병 신약을 구해오라고 했나? 우리가 그런 미래로 갈 수 있을까?
3. <우리가 푸른 뱀을 통과할 수 있을까?>
저녁에는 엄마 혼자 병원에 두고 우리끼리 집으로 왔다. 오늘도 라면을 끓여 먹고 나니 우리끼리 있기가 무서웠다. 우리는 거실 소파에서 자기로 했다. 나는 아빠 베개를, 오빠는 엄마 베개를 안고 나왔다.
“오빠, 아빠 손목시계가 신약을 가져올 초능력 시계이면 좋겠다. 그치?”
“쮸쮸(쮸쮸는 우리 가족이 나를 부르는 애칭이다.), 여기에 특별공로상이라고 새겨진 글씨가 초능력을 증명해 준다는 표시일 거야.”
우리는 자랑스러운 아빠 손목시계를 만지다가 깜빡 순간에 미래 세계로 가는 타임머신을 탔다. 벽에 걸린 간판 글씨를 보려고 다가가니, 각국 사람들을 감지하고 그 나라 말로 글씨를 읽어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스릴 있고 재미있는 눈썰매장’이라는 간판이었다.
“오빠, 미래 세계 글씨가 우리말을 하네. 참 신기하지?”
“신기? 별로야, 책 읽어주는 오디오 북 기능과 비슷할 뿐이지.”
“그래도 신기하지. 지금 여기 오디오 북도 없는데….”
하면서 다가가 ‘눈썰매장 사용법’ 글씨를 보며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 듣고 오빠를 불렀다.
“오빠, 정말 신기해. 엉덩이랑 다리에 앞치마를 두르고, 장갑 끼고 덧신을 신으면, 꼬불꼬불한 이 미끄럼틀을 쉽게 내려갈 수 있다네. 단, 앞사람과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하라네. 내 생각엔 부딪치려 할 때 발을 브레이크처럼 살짝 들었다 내려가면, 회전목마보다 더 재미있겠어!”
그러자 오빠가 못마땅해하는 얼굴로 불렀다.
“빨리 와! 지금 엄마 신약 구하러 가면서, 눈썰매 타고 놀 시간이 어디 있냐? 이제부터 내가 대장이야. 나만 따라와.”
오빠 뒤를 따라가면서 생각하니 나도 내가 한심했다. 오빠가 의젓해 보일수록 오빠는 대장 같고 나는 똘마니 같아서 자존심도 상했다. 오빠가 돌아봐도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쮸쮸! 이것 봐. 손목시계의 내비게이션 구름 앱이 정동 쪽을 가르쳐주네.”
그 말에 나도 한번 잘난 체하고 싶어서 한껏 생각해서 말했다.
“구름 앱이 정동 쪽을 가리키면 확실한 거겠지. 그런데 거기에 신약 개발 연구소가 있다는 사실은 확실해?”
오빠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아빠랑 정동진에 왔을 때 아빠가 하던 말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빠가 그랬잖아. 새해에 정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면 그해 소원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 같다고, 우리 소원이 엄마 신약 구하는 거니까 정 동쪽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그 말에 나는 놀랐다. 아빠와의 추억을 들먹이는 걸 보면 오빠도 아빠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 ‘내가 죽었어도 오빠는 나를 그리워하겠지!’ 생각하니 우리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다. 무거운 걸음으로 오빠를 따라가니 세상에서 제일 큰 시계탑이 나타났다. 시계탑 꼭대기는 구름 계단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오빠가 앞장서자 나도 무서움을 꾹 참고 구름 계단 끝점까지 따라갔다. ‘미래 세계로 가는 흰 구름 동굴’이라는 화살표가 보였다. 붕 떠서 흰 구름 동굴 문 앞까지 갔다. 차갑고 신비한 기운이 느껴졌다. 푸른 뱀이 흰 구름문을 몽실몽실 감고 있었다. 흰 구름 기차를 열 량 넘게 이어 단 길이보다 더 길어 보였다.
“스웩 스웩, 왜 여기를 찾아왔느냐?”
입에서 흰 구름을 뱉어내듯 말하는 푸른 뱀이 문지기 같았다. 나는 흰 구름 뭉치를 두 팔로 휘저으며 헥헥거렸고 오빠는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했다.
“우리 엄마 백혈병 고칠 신약을 구하러 왔어요.”
푸른 뱀의 눈이 번듯했다. 나는 너무 무서워 ‘오빠, 저 뱀이 우리를 휘감으면 어떻게 해?’하며 울었다.
“스웩, 날 보고 겁먹고 울다니, 아무리 뱀이라고 해도 겉모습만 보고 단정하니 서운하구만. 이래 봬도 속은 정 많은 할애비야. 너희가 엄마 병 고칠 신약을 구하러 왔다니 기특해 서 도와주고 싶네. 이 파파오를 양쪽 귀에 꽂아봐. 이곳, 말글을 번역해 줄 거야.”
‘파파고’가 아닌 ‘파파오’라니 미래 세계 신상품인 듯 신기해하며 칩을 귀에 꽂고 푸른 뱀 할아버지에게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손짓하는 위로 위로 올라갔다. 갑자기 컴컴한 먹구름이 나타나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4. <내가 호랑이 밥이 될 수 있을까?>
“짱그랑 짱!”
하늘에서 빛과 빛이 부딪치는 소리가 칼날과 칼날이 부딪치는 소리처럼 들리는 순간, 우리는 미래 세계로 들어가는 포털 문 앞에 와 있었다.
“아린아, 저 문으로 들어가면 신약 개발 박사들이 있는 게 아니라, 호랑이와 사자가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보는 거야. 알았지?”
내 이름을 부르는 걸 보면 장난이 아니었다. 무서워서 오빠 잠바 뒤쪽을 잡아당기며 따라갔다.
“무엄한지고. 누가 내 옷자락을 잡는공? 난 예수님도 아닌데…. ”
오빠는 성경에 나오는 병든 여인이 예수님 옷자락을 잡을 때 장면을 떠올리며 연극 대사하듯 말했다. 하지만 오빠도 떨고 있었다. 거북목을 보면 알지. 나는 이럴 때 엄마랑 아빠가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우리에게 남겨주고 간 시간은 엄마한테 효도해야 할 시간 같아요.’ 하던 오빠 말이 다시 생각나, 내 양심을 쿡 찔렀다. 그래서 나섰다.
“오빠, 호랑이가 나타나면, 내가 호랑이 밥이 될게. 그때 오빠는 달아나! 달아나서 엄마를 보살피러 가!”
내가 눈물을 찔끔거리며 떨리는 소리로 말하는데, 오빠는 내 진심을 일부러 장난으로 받아쳤다.
“쮸쮸, 웃기지 마! 네가 엄마 병 고칠 신약을 위해 호랑이 밥이 되면 엄마가 좋아하겠냐? 심청이가 인당수에 몸을 던졌을 때 심 봉사 아버지 마음이 좋았겠냐?”
‘그건 그래!’ 우리는 배를 내밀고 앞으로 걸어갔다. 기다란 흰 벽에 쓰인 글씨가 ‘1분을 아껴서 가치 있는 60초로 인류를 구하자’라는 소리를 내었다. 하얀 모자.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연구하는 미래 세계 신약 연구소였다. 우리는 말 걸기가 조심스러워 한참 그냥 서 있었다. 한 연구사가 우리 쪽으로 목을 돌리는 순간, 우리와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미끄러운 바닥을 스케이트 타듯 빠르게 미끄러져 가서 찾아온 이유를 또렷하게 말했다.
“알겠어. 십 년 정도, 심부름과 청소를 도와주면 백혈병 고칠 신약을 개발해 나눠주지.”
“십 년요? 엄마 병이 위급해서요. 신약을 가져다드리고 와서 일하면 안 될까요?”
“개발 중이야. 십 년 있다가 타임머신을 타고 빛의 속도보다 빠르게 돌아가면 너희가 사는 현재의 시간과 같은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걸?”
그때 ‘생체실험 연구팀장’이라는 명찰을 단 사람이 썰매 타듯 미끄러져 오더니 말했다.
”지구에서 왔구나. 우리가 개발하는 백혈병 신약이 지구 사람들에게 특효약이 될 수 있는지 실험해보려면 생체 실험이 필요해!“
나는 생체 실험이라는 말뜻을 몰라 눈만 껌뻑이는 데 오빠가 나섰다.
“헌혈은 열여섯 살이 되어야 할 수 있죠? 제 동생은 아홉 살, 저는 열한 살이라….”
“아니, 헌혈이 아니고….”
하며 팀장은 쉽게 설명했지만 우리는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때, ‘가족이면 그렇게 해야지. 가족은 소중한 거야.’ 하던 아빠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가족을 위해 내가 나서야 할 때야!’ 그래서 팀장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생체 실험! 저만 하면 안 될까요? 우리 오빠는 병원에 가서 엄마를 돌봐야 하거든요.”
“뭐, 생체 실험이 특별한 것은 없어. 너희 머리에 ‘나노 와이어 헬멧’을 씌워 뇌신경 신호를 받은 자료로 백혈병 세포의 변이를 분석하며….”
팀장은 자세하게 설명했지만, 그럴수록 오빠도 내가 걱정되는지 ‘제 동생은 어려서요. 제 동생은 돌려보내고 제가 남아서 일하면 안 될까요?’ 하며 제안했다.
“절대 위험한 실험은 아니라니까. 세포 재생을 위해 실험실의 체온을 -50°C로 낮춰 세포 분열을 정지시키는 방법으로 너희 엄마 백혈병 유전자를 과거 상태로 되돌리는 실험 정도야. 그리고 신약이 다 개발되면 그때 가서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의 표본이 꼭 필요해!”
그러자 오빠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려 ‘생각 좀 해보자’며 말했다.
“아린아, 우리 둘이 도와야 신약이 개발된다니, 달나라 운석을 가져가 전시장에 두는 일보다 보람된 일이 아닐까?”
“오빠, 이제 알겠어. 우리가 도와 신약이 개발되면 ‘길 없는 곳에 길을 낸 첫 번째 사람이 되고 싶다던 오빠 꿈도 이루는 거고, 엄마 병도 나을 수 있잖아!”
우리는 이런저런 의논 끝에 ‘미래 세계 신약 연구소’에 머물러서 즐겁게 일하기로 했다.
5. <우리가 엄마를 살릴 수 있을까?>
환경은 좋지 않았다. 바닥을 걸어 다닐 때는 겨울 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화를 신고 미끄러지듯 다녀야 1초를 아낄 수 있었고, ‘시간 가속 구역‘이라 무거운 ’양자 중첩‘ 로봇으로 청소해야 했다. ‘초고속 회전 원심분리기’로 시간의 흐름을 조절하고, 생체 실험실 내부 시간을 외부보다 20배 빠르게 해서 생체 실험에도 참여했다. 결정체가 흐트러지면 실험 데이터가 사라져 버리므로 ’광학 센서 장갑‘을 끼고 정확하고 재빠르게 처리해야 실수가 적었다. 차차, 이런 일들이 신기하고 즐거워졌다. 가장 즐거운 일은 ’3D 홀로그램 정원‘에서 유전자 조작 식물에 물을 주며, 식물의 성장 속도를 관찰하는 일이었다. 이 식물들이 백혈병 세포를 공격하는 항체를 생성하는 데 쓰인다니, 엄마의 병이 빨리 나을 거라는 희망도 부풀어갔다.
“진심으로 함께 해줘서 고맙다. 백혈병 신약 개발이 삼 년 만에 완성 단계야. 곧 지구로 돌아갈 거야. 축하해!”
팀장님의 축하 말이 우리 몸을 따스하게 감싸더니 햇살 속에 엄마가 보였다. 정화수 샘은 냉동 포장지에 감싸인 신개발 혈청을 뜯어 주사기에 넣더니 주삿바늘을 엄마 팔에 꽂았다.
“하하, 애썼다. 너희들의 포기하지 않는 희망이 어머니를 살리는구나.”
샘의 말을 들으며 엄마를 보았다. 엄마의 웃는 눈 속에 오빠와 나의 모습이 가족이라는 온기로 담겨 있었다. 우리뿐 아니라 아빠까지 빛의 속도로 와서 사랑의 중력으로 엄마 눈 속에 들어앉아 있었다.
‘아빠, 사랑해요!’
나는 엄마 눈 속의 아빠에게도 인사를 했다. 돌아가시고 나서 참 오랜만에.
2025.1.19. (46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