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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6:1-8) 미션! 하나님의 영광을 구조하라.
오늘 함께 읽은 이사야 6장1-8절 말씀중심으로 <미션! 하나님의 영광을 구조하라.> 라는 제목의 하나님말씀 증거 합니다.
‘미션! 하나님의 영광을 구조하라’
얼마 전에 상영되었던 영화 중에 천만 명이 보았다고 하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해운대"라는 영화입니다. 부산 앞바다에 쓰나미가 들이닥치면서 일어나게 되는 등장인물들의 인간관계의 애환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많은 인기를 끈 영화입니다. 뒤늦게 이 영화를 보는 가운데 오늘 말씀과 연상이 되는 장면이 있어서 소개를 합니다.
그 눈이 크고 입이 특이하게 생긴 배우 이민기씨가 헬리곱터로 바다에 빠진 두 남녀를 구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황색 옷을 입은 119구조대원으로 헬기를 타고 폭풍우가 불고 파도가 넘실거리고 있는 그 위험한 상황에서 구조하는 광경이 나옵니다. 결국 여자를 구조하고 남자를 구조하는 중에 그 구조의 줄이 끊어지려는 위기의 상황에서 자기는 헬리곱터와 연결된 줄을 칼로 끊고 남자는 살리고 자기는 바다에 빠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구조대원이 구조하는 이 장면에서 바로 이사야가 소명 받을 때 보았던 환상을 해석할 수 있는 키가 들어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조대원이 바다에 빠진 자를 구조하는 그러한 장면 속에 이사야의 소명이야기와 소명기사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키가 들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그 구조장면을 연상하시면서 보시면 아주 잘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먼저 이사야가 소명을 받게 되는 장소가 어디입니까?
'소명(召命)'이라는 것은 '보내진다'는 것입니다. 미션을 받고 보내집니다.
'미션'이라는 말자체가 라틴어의 '미시오'라고 하는 단어에서 나왔는데, 선교사님이나 선교도 미션이라는 말을 써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라틴어의 '미시오'라고 하는 말이 바로 '보낸다'는 뜻입니다.
'보낸다'고 하는 뜻의 소명은 하나님께서 불러서 미션을 주고 그 미션을 완수하라고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어디로부터 보내집니까?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보내지고 있습니다. 환상을 본 것이지만 그 환상 속에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이사야의 소명기사를 통해서 우리가 좀 비약을 해보면, 루터나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이 말하는 직업의식, 소명관을 연결을 시키면 어디로 보내지는 겁니까? 우리 일상의 삶으로 보내지는 겁니다.
종교개혁 이전의 구교가 ‘소명은 사제나 수도사에게만 관계되는 것이다.’라고 하지만 루터가 말합니다. ‘사기다. 아니다. 가죽으로 구두를 깁는 자도 소명을 받은 것이고, 가정주부도 소명을 받은 것이고’라고 하고 심지어는 이렇게 까지 말합니다. ‘지푸라기 하나 뽑는 것 까지도 소명에 속할 수 있다.’라고 합니다.
모든 일이 다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사람의 의식이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보냄을 받아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마음에 확신할 수 있다면 모든 게 다 소명이라고 말했습니다. 칼빈도 루터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막스 베버도 '칼빈의 소명의식이 자본주의를 이루는 기초를 형성했다'고 까지 말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어디로 보내집니까? 현실로 보내집니다. 자식을 기른다는 것은 자식에게 보내진 것이고, 남편을 내조한다는 것은 남편에게 보내진 자로서 사는 것이고, 또 아내를 만나서 대화한다는 것은 아내에게 보내진 자로서 사는 겁니다. 이게 바로 신앙인입니다.
그런데 보내졌는데 미션이 있다는 겁니다. 오늘 '스랍'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천사'라고도 하고 '천사와는 다른 별개의 존재'라고도 하고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스랍이라는 존재의 의미는 천사다. 아니면 어떤 다른 존재라는 것을 따지기보다는 성경에서 스랍이라는 얘기가 나온 것은, 날개가 여섯 개 달린 스랍 얘기는 그것을 따지는 게 아니라, 보좌에 가까이 갈 수 있고, 보좌 옆에 있을 수 있고, 그리고 보좌에서 보내지려면 우리들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내용입니다.
지금 보좌 옆에서 날개 여섯을 가지고 두 날개로는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발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날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향하여 영광의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까?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이게 바로 이 땅에서 보냄 받은 자로서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을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이 스랍의 모습이.
그러므로 미션을 받고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 예를 들어서 자식에게로 간다면 자식과 대할 때 바로 이 스랍의 모양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찮아요. 거듭남은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위로부터 오는 겁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의 말을 붙여 봅니다.
“나는 날마다 죽는다.”라고 합니다. 날마다 죽습니다. 아래에 대해서, 이 땅에 대해서 죽습니다. 그리고 위로부터 태어나서 이 땅으로 보내집니다. 그러므로 아침에 오늘의 번제를 통해서 죽고, 내가 아이를 학교보내기 위해서 밥을 지어주고 준비물들을 챙겨주는 것은 보내진 자로서 해야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죽어서 보내진 자로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보내진 자는 구조대원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스랍의 모양이 바로 구조대원으로 비유될 수 있는 모습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스랍의 모습으로 이 땅을 살아가야 보내진 자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으로 드리는 오늘의 번제를 통해서 바라는 바가 뭡니까? 말씀을 듣는 가운데 이 세상에 대해서 죽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대해서 죽으므로 하나님과 만나서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가기를 원하고 그 보좌로부터 다시 이 땅으로 보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대해 제로 된 자만이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갑니다. 마음이 아직도 이 땅에 매어있고 이 땅을 사랑하고 이 땅을 염려하고 있으면 하나님보좌 앞으로 못 갑니다. 보좌 앞으로 간 사람만이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오늘 지금의 현실인 현장으로 보내집니다. 그 보내진 사람의 형태가 스랍의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이제 스랍의 모양을 한 번 봅니다.
두 날개로 얼굴을 가렸다고 합니다. 해운대 영화에서 나오는 구조장면으로 가보세요. 쉽게 말하면 지금 별 볼일 없는 상태에 잠겨 있는 나를, 만인이 볼 수 있는 자리로 더 높은 곳으로 가는 것이 성공인데 이 일을 하지 않는 겁니다. 지금 별 볼일 없는 상태에 빠져있는 나를 구제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게 뭡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어떻게 구조합니까? 내가 아이를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아이를 잘 키워내는 게 내 미션이 아니라 잘 키워내는 것은 이 세상에서 아이가 성공하도록 키워내는 겁니다. 지금 가능성에 잠겨있는 아이를 끄집어내서 아주 탁월한 위치에 세우려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미션이 아닙니다. 지금 뭐가 빠져 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물에 빠져서 소멸되고 있는데 무슨 뜻일 까요? 하나님의 영광이 뭡니까?
그 아이의 마음속에 아직 어린 아이의 마음속에 하나님에 대한 조명이 없고 하나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깜깜하게 하나님에 대해서 아무런 지식이 없던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보이기 시작하는 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에게 보내어 졌다는 것은, 그 아이의 마음속에서 빠져가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조하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하나님에 대해서 전혀 모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 아이로부터 그 아이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보이도록 해주는 것이 이게 바로 미션입니다.
아이에게 세상 철학을 가리키는 것, 인생경험을 가리키는 것, 그리고 잘 살아가는 방법을 지도하는 것, 그리고 성적 올릴 수 있도록 학원비를 대 주는 것, 이런 게 미션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아이의 마음속에서 조명을 받아서 그 아이의 마음이 하나님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구조하는 것이 미션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만날 때 누구를 만나든지 아내나 남편 가족뿐 아니라 직장에 가서도 우리가 직장에 보내진 이유는, 지금 직원들 마음속에는 하나님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를 통해서 그들이 마음속에 하나님을 기억해내고 하나님을 보게 되고 물에 빠져가는 하나님의 영광을 끄집어내도록 나를 보내신 것입니다. 내가 그 직장에서 승진하기 위해 그 직장에 간 것이 아니라는 이 의식을 가질 때 내가 직장에서 하는 모든 일들 자체는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실 것입니다.
내가 미션을 받아 보내졌을 때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모든 자금과 자원과 무기 같은 것들은 다 제공되는 것 아닙니까? 구조대원으로 임명해 놓은 다음에 그 다음에 맨 몸으로 보내는 경우는 없잖아요. 구조하기 위해서 헬기가 필요한데 돈 벌어서 네가 사라고 하는 구조대원은 없습니다.
내가 직장에 갔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빠져가고 있습니다. 사장님이나 부장님, 전무님 마음속에 하나님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런데 내 삶을 통해서 나와 함께 있는 동안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의 마음속에서 구조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공급해 주십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 요셉이 만지는 것마다 잘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감옥에 들어갑니다. 감옥에서도 만지는 것마다 잘 되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 모습은, 내가 잘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보냄을 받아서 이제는 하나님의 영광을 끄집어내려고 합니다. 두 번째는 발을 가린다고 합니다. 이 소명을 받을 때마다 발의 문제가 계속 나옵니다. 모세에게도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곳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에게도 소명을 주실 때 "젊었을 때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네 마음대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너의 용무, 너의 계획을 따라서 네 마음대로 네 삶을 영위했지만 이제 네가 원치 않는 곳으로 끌려갈 것이라고 하십니다. 소명을 받을 때마다 이것이 문제가 됩니다.
왜 지금 움직이고 있습니까?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내 계획을 따라 갑니다. 내 계획이 뭡니까? 내 얼굴을 빛내기 위해서. 모세가 소명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에서 40년을 헤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네 마음대로 이끌어가라고 했으면 모세는 적어도 한 달 안에는 끌고 갔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의 걸음으로 2주면 도달하니까. 출애굽에서부터 가나안 땅까지. 한 달이면 갔겠지요. 가축과 노약자들이 다 포함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바람에 40년이 걸린 것이 아닙니까? 그 광야에서. 40년 다닐 때가 어디 있어요? 완전히 구절양장, 그 양의 창자처럼 구불구불 갔던 곳에 또 가고 해서 40년을 견디지요. 안 그랬으면 어떻게 40년을 견디겠습니까? 그러나 발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가는 것인데 발을 가린 겁니다. 이제 내 마음대로 다니는 것 끝난 것입니다. 기다립니다. 인내합니다. 인도해주시고 열어주시는 대로 갑니다.
왜 갑니까? 내가 성공하기 위해서 내가 돈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빠져가는 것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구조대원이 가서 상태를 파악한 뒤에 나부터 먼저 올라가야 되겠다고 하는 구조대원은 없어요. 먼저 빠진 사람을 구조합니다. 그러면 이것이 어떤 효과가 있는 줄 아십니까?
사장님 마음속에 하나님이 전혀 보이질 않았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모신 사람으로서 그 직장생활을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합니다. ‘이런 일은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습니까? 이런 사태에 대해서는 우리 회사가 어떻게 반응하면 좋겠습니까?’라고 해서 들리고 깨달은 대로 요셉이 꿈 꾼 것처럼 자기의 의견을 얘기하고 말합니다. 그러면 사장님이 내 속에 점점 더 내 속에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봅니다. 마치 요셉이 꿈을 해몽할 때 '너처럼 신에게 총명을 받은 자가 어디 있느냐?'라고 깜짝 놀란 것처럼. 그 사장이 하나님을 점점 보게 된다면 나는 사장님의 마음속에 빠져 들어가 죽어가고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조했을 뿐인데, 그 사장님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보여서 하나님이 영광을 받게 되면 누가 삽니까? 그 사장님이 삽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그 사람의 마음속에 깜깜하게 하나님의 영광이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는 상태인 것을 내가 하나님을 보이도록 하는 역할을 감당할 때, 그 사람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보이면 하나님의 영광만 구조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도 사는 것입니다. 오직 그것을 위해 살아가 보는 것입니다.
자식을 볼 때도 어떻게 하든지 기회를 호시탐탐 보아서 기도하는 겁니다. 아무 때나 하지 마시고 아이가 짜증내지 않도록. ‘하나님!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적절한 분위기를 주시고 때를 주세요.’라고 기도해서 아이가 하나님을 보도록 하는 겁니다. 아이가 아프면 ‘너 그거 아픈 것 하나님께 가지 않으면 큰일 나는 거야.’라고 하나님을 알립니다. 하나님의 영광만 구조되는 게 아니라 그 아이도 구원받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를 기르는데 '내가 앞으로 이 아이를 초등학교 6년은 어떻게 기르고, 중학교 때 어떻게 기르고, 대학교 때 어떻게 기르고, 결혼은 어떻게 시켜야지.’라고 계획할 것 없는 겁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내가 아이에게 보내진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구조하기 위해 보내진 것이라는 의식만 분명히 갖고 있으면, 그 아이를 이끌어 가시는데 하나님의 영광이 구조될 수 있는 길로 그 아이를 이끌어 가시기 때문에 때로는 대학을 떨어드릴 수도 있고, 결혼이 안 될 수도 있고, 애인에게 거절당해서 실연당해서 엉엉 울고 인생의 좌절을 느끼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걸어가는 겁니다. 나는 단지 그 옆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이 하라는 말씀을 하면 되는 것이니 내가 마음대로 계획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스랍의 모습 중에 두 날개로 날고 있습니다. 이게 뭘 말하는 겁니까?
절대로 보내어진 이 현장에서 머물고 오래오래 잘 살겠다고 마음먹지 않는 겁니다. 항상 이 땅에서 떠 있는 겁니다. 영화에서 구조대원이 물속에 빠졌습니다. 물속에 빠져보니까 시원해요. 그래서 ‘내가 이 폭풍우속에 오래 머물러 있어야지.’라고 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조해 냅니다. 그러나 이 땅의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붙이지 않습니다. 내 자식은 구조현장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조해내야 하는 현장입니다. 내 아내나 남편도 애인도 구조현장일 뿐입니다. 거기에 마음을 붙이는 게 아닙니다.
내 마음을 어디에 붙입니까? 하나님 보좌에 붙입니다. 그래서 구조대원들을 보면 여유가 있습니다. 자, 구조대원도 사람이고 물에 빠진 두 남녀도 똑같은 사람이고 부산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물에 빠진 자들은 죽겠다고 난리고 공포에 휩싸여 있습니다. 그런데 구조대원들은 헬리곱터에 몸이 매어져 마음에 여유가 있고 의연한 의지가 있습니다. 내가 저들을 구조하리라는 사명에 투철한 의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아무리 풍랑이 일어도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지 않는데 보냄 받은 자들의 특징입니다. 이 땅에서 자리 깔고 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땅에서 풍랑이 일어난다고 해도 거기에 두려움이 없고 걱정이 없고 원망이 없습니다.
나는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지금 날개 달고 있는 이 스랍모양처럼, 헬리곱터 타고 내려온 것처럼 나는 헬리곱터 타고 올라갈 자입니다. 내가 지금 위에 속해 있는 거예요. 그러나 현장에 빠져 있는 자들은 두려워 떱니다. 돈이 없어서 풍랑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이 땅의 삶에 보내어진 자입니다. 이 땅에서 자리 잡고 살 자가 아니에요. 그러므로 돈이 없다고 두려울 게 없고 단지 미션을 행하기 위해서 온 것뿐입니다. 사업이 안 되고 문제가 생기고 인간관계가 풍랑이 일어납니다만 그러나 나는 보내어진 자입니다. 이 땅에서 그 사람들하고 마음 붙이고 영원히 살 자가 아니에요. 나는 그냥 하나님께 내 마음이 있는 자로 보내어진 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조하라’
이게 인생의 미션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영광을 구조하라는 미션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예수님 믿고 세례 받은 즉시로 죽어야 합니다. 경제적 원리로 계산을 하더라도 죽는 게 최고로 좋은 겁니다.
어젯밤에 잠자리에서 아이가 그런 말을 합니다. 아이가 눈병이 났어요. 그러니까 안경을 써야 될지도 모르겠다는 의사의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엄마가 수술을 해도 된다는 말을 한 것 같아요. 수술이 어떤 것이냐고 물어보기에 제가 그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기회다 싶어서, 수술이라는 것은 뭐든지 의사선생님의 손에 달려있는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 의사선생님의 손을 붙들어 주지 않으면 수술 받다가 다 죽는다. 그러니까 아이가 깜짝 놀라는 겁니다. 이게 공갈협박 아니지요.
선배 목사님 한 분은 수요일 예배마치고 건강검진 받으러 갔다가 건강검진 받는 중에 바이러스가 침투되어서 금요일에 돌아가신 분이 계시거든요. 그런 얘기까지 들려주면서 사람의 목숨이 절대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그랬더니, 수술 받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제가 부모가 너를 지켜주는 게 한계가 있고, 너 역시 혼자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고 네가 결혼을 해도 마찬가지고, 언제 어디를 가나 하나님만이 너를 지켜주실 수 있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한 너는 끝장이라고 했더니 아이가 '엄마, 나 잠을 못자겠어요. 무서워서 죽겠어요.' 이러고 난리가 난 겁니다. 제가 너무 말을 심하게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여러분! 왜 지금 아이를 낳고 기르도록 기회를 주십니까? 제게 제일 좋은 것은 그 아이를 잘 키워서 그 아이가 영광스럽게 대통령이 되더라도 별로 좋을 게 없어요. 뭐에 비하면 좋을 게 없습니까? 예수 믿고 세례 받은 즉시로 주님의 품에 안기는 것보다 더 좋을 수는 없어요. 그러면 왜 살려 둡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구조하라고. 아이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빠져 들어갑니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 영광을 드러내라고. 그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이 뭡니까? 오늘 스랍들이 어떻게 노래합니까?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온 땅에 만군의 주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거룩하다.’라는 말의 뜻이 뭡니까? '다르다'는 것입니다. 구별된다.
뭐가 다르다는 겁니까? 우리가 노력하는 게 뭡니까? 지금보다 더 다르게 나아진 상황을 원하는 게 아닙니까? 그러므로 거룩하다는 것은 이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지금보다 다르고 달라요. 어느 방면으로 달라요. 감옥에 들어가서 다른 게 아니라, 좋은 방면으로 다르고, 다르고 달라서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로 최고로 좋은 게 거룩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 거룩, 거룩, 거룩, 강조용법입니다. 최상급표현입니다.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지금과도 다르고, 다르고, 다르고, 좋게 다르고, 좋게 다르고, 달라서 가장 좋은 것이 하나님 옆에 있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분위기 깨는 자들이 바로 보내짐을 받은 자들입니다. 보내짐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방법이 뭡니까? 돈, 돈하고 있는 현장에 딱 뛰어들어서 하는 말이 ‘하나님이 최고다. 돈 벌지 말고 하나님을 벌어라.’라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최고'라는 사실을 표정으로 행동으로 마음으로 삶으로 드러내 보여 주는 겁니다. 별 볼일 없는 환경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하나님이 최고라는 그 하나님을 갖고 있는 바람에, 모시고 있는 바람에 그 사람 얼굴에서 웃음이 나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겁니다. 구조대원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구조해 내는 겁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보내진 자의 의식을 갖고 살아갈 때 진정한 자유와 행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이루어진 게 뭡니까? 십자가사건입니다. 십자가 붙잡고 기도할 때에 내가 더 이상 이 땅에서 내 얼굴을 드러내기 위해서 마음들이 죽어가는 겁니다. 얼굴을 가리는 겁니다. 보내진 자로서 갖추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내가 이 땅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라고 할 때 이 땅에서 내 인생의 성공을 위해 내 발로 계획하고 걸어 다니고 기획하려는 내 본능이 죽어버립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올 수 있는 자가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을 때 이 땅에서 마음 붙이고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자리 잡고 안정됨을 구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안정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에서 안정돼 있으니까. 하늘에서 매여서 이 땅에 내려온 자가 되면 되는 거니까. 십자가가 그것을 해주십니다.
십자가 붙잡고 기도함을 통해서 스랍의 모양대로, 내 얼굴을 가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끄집어내고 구조하는 것에 내 마음이 다 가 있게 되고, 그 일을 위하여 내가 계획하고 내가 염려하고 불안해할 것 없이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가고 발을 가립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주어지는 상황이, 하나님이 돈을 많이 주실 수도 있어요. 백억, 이백 억을 주실 수도 있어요.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백억, 이백 억으로 이 땅에서 안정된 삶을 구축하지 않는 겁니다. 땅에서 떠 있는 겁니다. 땅에 마음을 붙이지 않는 겁니다. 땅을 살되 땅에 마음을 붙이지 않습니다. 땅에 손을 대지만 손으로 일을 하되 물구나무 선 자처럼.
스랍의 모양, 얼굴을 가리고 발을 가리고 땅에서 떠 있는 이 모습,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노래함을 통해- 거룩하심이 뭐라고요? 하나님이 최고로 좋다. 돈보다 좋고 출세보다 좋고 승진보다 좋고 결혼보다 좋고 애인보다 좋고 자식보다 좋고 남편보다 좋다는 것을 노래하는 자들로서 -이 땅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함을 통하여 하나님이 깜깜하게 보이지 않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보이도록 하며 살아갈 때 이 땅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자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미션! 하나님의 영광을 구조하라.’
모두가 다 구조대원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보냄 받은 자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식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보냄 받고 부모에게 보냄 받고 직장으로 보냄 받습니다. 미션의 내용은 빠져가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붙잡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고 온전히 보냄 받은 자의 마음이 되어서 보좌에 임하고 보좌로부터 내 허리가 묶인 채로 이 땅에 내려와 온전히 안정됨을 하늘에서만 찾는 구조대원이 되어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끊임없이 구조해 냄으로써 사람까지 함께 건져내는 참 구조대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