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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의 소와 같은 목사(1630.2014.9.14.보건주일설교)
삼상6:10-16
요즘 날씨가 한낮에는 더운데 아침저녁에는 시원한 날씨가 되었습니다. 추석명절은 잘 보내시고 오셨지요. 지난 8일은 맑은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白露)입니다. 옛부터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이 한낮에는 따끈따끈하고 아침저녁에는 시원한 날씨가 되어야 출수(出穗=벼이삭이 나오는 것)도 잘되고 곡식들이 여물이 잘 든다고 하여왔습니다. 요즘 날씨가 바로 그런 날씨가 되었습니다. 금년에도 조심스럽게 풍년을 기대해 봅니다.
1. 오늘 교역자 보건 주일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교역자 보건주일입니다. 기독교대한 감리회가 교역자들의 건강이 교회의 건강에 지대하기 때문에 정한 주일입니다. 교역자의 건강과 영혼이 늘 맑아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고, 성도의 영혼을 보살피는데 활력이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해마다 건강진단을 하게하고 온 성도들로 하여금 기도와 순종과 협력을 하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평소에도 저와 사모님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특히 오늘은 1년에 한 주간을 정해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평상시 기도하지 못하던 분들도 이날만은 담임 목사와 사모님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또 헌금도 해서 담임목사의 건강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정성을 모으는 주일입니다. 헌금하는데 기준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담임목사님을 사랑하는 것만큼만 하시면 됩니다. 내가 목사님께 고기 한 근 사다 대접한다고 생각하면 가장 쉬운 방법이 될 것 갔습니다.
일년동안 목사님의 말씀을 먹고 자란 성도들이 목사님 사모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건주일 헌금을 해주시면 그것을 가지고 병원가서 건강검진을 받고, 맛있는 것도 사 잡수고 하는 것인데 여러분이 지난 일년동안 받은 은혜대로, 목사님을 많이 부려먹은 사람은 많이, 적게 부려 먹은 사람은 적게라도 목사님 사모님을 섬겨보는 기회를 드려 보겠습니다. 혹시 받은바 은혜가 커서 식사라도 대접하시고 싶은 분은 다른 분은 초청하지 말고 목회자 부부만 초청해서 맛있는 것을 대접하는 기회도 드리겠습니다. 삐둘어진 마음을 갖고 목사가 받아먹는 것 좋아서 그런다라고 오해하지 말고,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하고 인도해주는 목사 교역자보건주일을 맞이해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역자 보건 주일은 교회가 교역자의 건강을 보살피고 교역자를 이해하고 위로하기 위해 제정된 주일입니다. 교우들 중에 만나면 ‘목사님 건강하셔야 합니다’,‘무리하지 마세요’,‘이제 운동도 하셔야합니다’라고 부탁하는 분도 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교역자, 특히 담임목사의 건강 문제는 교회의 발전 문제와 직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도자에 따라 그 단체가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교회는 더 한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래서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물론 건강은 자신이 지켜야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건강을 주셔야 건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건강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행복한 마음으로 살면 건강할 수 있습니다. 교역자만 그런게 아니라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안에서 행복하게 사는게 가장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단순하던 목회가 현대의 목회는 점점 다양화되고 다원화되어지고 있습니다. 과거 1960년대의 통계에 의하면 목사의 하는 일이 104가지로 나와 있는데 현대의 목사가 하는 일은 234가지로 배 이상 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다방면에 팔방미인으로 뛰어야 하니까 인간의 체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건강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그 많은 일들을 감당 할 수가 없습니다.
목사는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의 지식과 수준이 향상되고 현대의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서 반대로 목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현대 목회자들의 70%가 신경성 위장병을 비롯하여 성인병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스트레스는 각종 성인병과 정신 질환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여러분이 잘 아는 사실입니다.
얼마전 국민 일보에 이런 기사가 났습니다. ‘왜 술도 안 먹고 담배도 안 피우는 목사가 각종 암과 성인병을 앓고 있는가’그 원인은 바로 스트레스라고 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 건강하게 오래오래 목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는 육체적인 노동자가 아니고 정신적인 노동자입니다. 항상 긴장해야합니다. 잠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습니다. 교인 100명이면 100명이 모두 긴장의 대상입니다. 쉬운 말로 표현하면 모두가 시어머니입니다. 교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를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전의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 교회의 사모님은 큰 꿈을 가지고 신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 신학교에서 뜻 맞는 전도사님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첫 목회를 나왔는데 아주 가난한 교회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는 교인이 열 명도 되지 않았는데 그 교인 중에 속장 한사람이 교회만 오면 교회와 주택을 삿삿이 뒤지고 다니면서 잔소리를 해 댑니다. 어찌나 사사건건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지 그 사모님은 어린 나이에 주일날이 돌아오는 것이 겁이 났고 수요일이 돌아오는 것이 겁이 났습니다. 교인들 만나는 것도 겁이 났습니다. 교인들만 보면 반가운 것이 아니라 가슴이 뛰고 겁부터 납니다. 급기야는 정신 병원에 입원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감리교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기독교 세계’가 있습니다. 그 잡지에는 매월 별세하신 목사님들의 사진이 실립니다. 내용을 보면 40대 50대 목사님들이 지병으로 앓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삼남연회 에서는 교역자가 돌아가시면 전 교역자가 10,000원씩 상조비를 거두어 돕고 있는데 많은 목회자들이 일찍 소천하고 있습니다. 물론 건강하게 오래오래 목회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목사는 각종 질병에 항상 노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감염의 위험이 항상 뒤따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병원 입원실에 가보면 어린아이들은 절대로 병실에 출입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왜냐 하면 감염의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사는 아무리 성인이라고 하여도 교인들의 아프다면 무슨 병이라도 찾아갑니다. 그 병이 전염성이 있든지 없든지를 막론하고 심방을 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꺼리는 병이라도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좀 죄송한 말입니다만 교인들 중에 초상이 나면 수세를 거두는 일이라든가 염습을 하는 일 등 이런 일도 해야 합니다. 요즘에는 장례식장이 많이 활성화 되어서 초상이 나도 거의 장례식장으로 가기 때문에 그런 염려는 이제 없어 졌습니다.
목사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암의 발생 원인은 스트레스입니다. 목회자는 24시간 대기중입니다. 그러므로 긴장과 스트레스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밤늦은 시간이나 아침 일찍 전화가 걸려오면 교인들에게 또 무슨 일이 생겼나 하고 깜짝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목회자의 일상생활은 ‘스트레스 제조 공장’ 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느 때에 어떤 경우에 목회자가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가 살펴보겠습니다. 목회자가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은 성도들이 목사의 마음을 몰라줄 때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누구보다도 성도들이 목사의 마음을 알고 그리고 목사가 인도하는 대로 또 지도하는 대로 순종하면서 따라주어야 하는데 이와 같은 목사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고 성도들이 각각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고 엉뚱한 발언을 할 때 목사는 참으로 괴로운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성도들이 자기의 고집만을 부리면서 목회자에게 도전해 올 때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목사는 교인들보다 세상 적인 지식이나 또는 세상사는 지혜는 부족할지 몰라도 그러나 목회 즉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일에는 그 어떤 교인들보다 월등합니다. 목회자는 목회에 대해서는 전문직입니다. 마치 목사가 돈 버는 일에 대하여 기업가를 따를 수 없고, 의술에 대하여는 의사를 따를 수 없고, 법에 대해서는 법관을 따를 수 없는 것처럼 교회를 위한 일에는 목사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한 번 무슨 안건을 임원회에 내 놓을 때는 충분히 기도하고 또 가능성이 있을 때에 제안을 합니다.
그런데도 교인들은 안 된다느니, 어렵다느니, 내 생각에는 안 될 것 같다느니, 좀 더 두고 생각해 보자느니, 등등 매사에 브레이크를 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공공연하게 목회자에게 도전하고, 목회자를 업신여기고, 싸우려고 달려드는 사람도 간혹 있습니다. 또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험담이나 하고, 불신자들에게까지 목회자의 흉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럴 때 같이 멱살 잡고 싸울 수가 있습니까? 어쩌다 해명하느라고 말 한마디만 해도 또 그것을 트집을 잡습니다. 이러니 목사가 스트레스가 안 생길 리가 없지요.
세 번째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무리 말씀으로 가르치고 깨우쳐도 나 몰라라 하고 전혀 변화가 없을 때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목사는 설교 한편을 준비하는데도 밤을 새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가정주부가 항상 반찬 걱정하는 것처럼 목사는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설교에 대한 중압감을 벗을 수가 없습니다. 자려고 누웠다가도 무슨 영감이 떠오르면 뻘떡 일어나서 한 줄이라도 써놓아야 합니다. 운전을 하고 다니면서 보이는 모든 경관이나 또는 사건 사고, 모든 것이 설교의 소재가 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온 정성을 다하여 준비한 설교를 강단에서 선포할 때 교인들이 은혜를 받고 아멘 소리가 나와야 하는데 병든 병아리들처럼 꼬박 꼬박 졸고 있기나 하고, 입이 찢어져라 하품이나 하고, 딴청이나 부리고 하면 정말로 스트레스 받습니다. 요즘 말로 열 받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변화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여야 하는데 제멋대로 합니다. 아무리 깨우치고 가르쳐도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어 아무리 외쳐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마23:37절‘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탄식하셨습니다. 아무리 말씀으로 가르쳐도 깨달음이 없고 돌이킴이 없는 것은 하나님을 배신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종으로 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케 한 교역자를 멸시하는 죄악입니다.
그럴 때 어떡합니까? 목사야 무슨 일만 있으면 강대상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뿐인데 그래도 목사도 인간인지라 감정의 치유가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와 같은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면 협심증이나, 동맥경화, 또는 고혈압, 만성 위장병, 신경성 두통, 등이 발생을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도 질병이 있었습니다. 바울 자신은 그것을 찌르는 가시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세 번 기도하니 하나님의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목회자는 목자의 심장으로 성도들을 사랑하고 성도들은 목회자를 이해하고 협조하고 도와야 합니다.
2. 목사는 한 마리의 소와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김으로 나라가 부패하고 죄악이 관영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레셋 나라를 불러 이스라엘 나라를 침략케 하여 이스라엘 나라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게 되었고 당시 제사장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쟁에 나가 전사를 하였고 엘리 제사장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전쟁에서 패하여 범궤를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고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불레셋 나라는 이스라엘 나라의 법궤를 빼앗아가서 승전가를 부르며 좋아했는데 하나님은 불레셋 나라를 온역으로 치셔서 하룻밤 새에 수천 명씩 죽는 재앙이 임하였습니다. 이에 당황한 불레셋 나라의 방백들은 이스라엘 나라에서 빼앗아온 법궤를 돌려보내기로 하고 새 수레에 법궤를 싣고 두 마리의 암소를 택하여 수레를 메워 이스라엘 나라로 몰아 보냈습니다. 이 때 수레를 끌고 이스라엘 나라까지 온 소들은 집에다가 젖 먹는 새끼를 떼어놓고 한 번도 끌어보지 않은 수레를 끌고 머나먼 길을 쉬지도 않고 좌우로 치우치지도 않고 걸어서 이스라엘 나라까지 왔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나라까지 왔지만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은 소를 잡아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소가 바로 오늘의 우리 성도들의 모습이며 또한 목회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오늘 목회자 보건 주일을 맞이하여 이 소를 통하여 목회자의 고충과 애로 사항들을 다 같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기 있는 김영윤목사는 목사는 모세와 같이 하나님이 택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종입니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목사는 사람의 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인들의 종이 아닙니다. 돈 많은 장로의 종도 아니고, 속 썩이는 권사의 종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야 합니다. 사람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대로 행하고 그 말씀에 따라서 죽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은 사람이 판단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을 사람이 판단하게 되면 반드시 상응하는 하나님의 벌이 있습니다. 민12:1절 이하의 말씀에 보면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다가 문둥병이 들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목사는 성도들을 영원한 가나안 천국까지 인도하는 인도자요 성도들을 푸른 초장으로 맑은 시냇가로 인도하는 목자입니다. 요10:15절 말씀에 보면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목회를 하는 것은 사실 목숨 걸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목자의 음성을 듣지 않으면 딴 길로 가게 됩니다. 목사는 생활의 제약을 많이 받습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참으로 생활의 제약이 많이 있습니다.
활동이 부자연스럽습니다. 목사는 대우를 받지 못하는 직업입니다. 엄격히 말해서 목사라는 직분은 직업이 아니고 사명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한 방편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직업이란 말을 종종 쓰게 됩니다. 세상에 수천수만 가지의 직업 중에 목사라는 직업은 그리 대우받지 못합니다. 한 가지 예로써 우리가 신앙적으로 생각하면 목회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귀한 직분인데도 목회자가 되는 것에 대하여는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목회자를 제외한 일반 기독교인의 대부분이 자기의 자녀들 중에 목회자를 만들겠다고 하는 일에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배척을 당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믿었던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여 당시 노예 한 명을 살 수 있는 가격인 은30냥에 팔렸습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믿었던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을 당하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는 끝까지 함께 기도해 줄 것을 믿고 기도하라고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저들은 잠만 잤습니다. 오늘날에도 목사가 믿고 기대하였던 교인들에게 배척을 당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자신들의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금식하며 열심히 기도해주고 모든 일이 잘 되어 가는데 배신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담임목사 만큼 기도해주는 분들이 있습니까? 솔직히 한국에 많은 교회 목사님들이 계시지만 진정으로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해주는 분은 담임목사 밖에 없습니다. 기도해준다고 해도 한두번으로 끝나고 말지만 담임목사는 그 문제가 해결될 때 까지 기도해주지 않습니까? 신학을 나왔다고 다 목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고 싶다고 해서 목사가 다 되는 것도 아니고, 하기 싫다고 해서 안 할 수도 없는 것이 목사입니다. 오르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사람만이 감당 할 수 있는 직분입니다.
왜 목사가 소와 같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을 잘 보면 바로 오늘의 목사가 소와 같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레를 끌고 간 소는 많은 소들 중에서 특별한 사명을 띠고 선택받은 소들입니다. 불레셋 나라에 어찌 소가 이 두 마리뿐이겠습니까? 수많은 소들 중에서 이 소들은 수레를 끌고 갈 사명을 받고 선택을 받은 것처럼 오늘날 목사도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별하여 세운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 소들은 오르지 한 가지 목적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앞으로 가야만 합니다. 소들은 젓 먹이는 새끼까지 떼어놓고 수레를 끌고 길가 좌우에는 먹을 것이 많았음에도 좌우로 치우치지도 않고 벧세메스를 향해서 갔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종이 된 목사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부귀와 명예와 권세도 모든 것을 복음을 위하여 배설물같이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빌3:7-8절‘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으려 함이라’그리고 사명만을 위하여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소는 제물용입니다. 재미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난 어렸을 때 겨울이면 새를 많아 잡아서 구워먹곤 하였습니다. 눈이 오면 새 덥치기도 만들고 또 밤에 초가지붕 추녀 끝에 있는 새 굴에 손을 넣어서 잡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먹던 새고기 한 첨이 참 맛이 있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어느 날 산새 한 마리가 소잔등에 앉아서 ‘네고기 열 첨보다 내고기 한 첨이 더 맛있다’ 그러니까 소가 하는 말이 ‘난 제사상에 올라가도 넌 제사상에 못 올라간다’ 그러더랍니다.
이와 같이 머나먼 길을 달려온 소를 이스라엘 사람들은 잡아서 번제로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이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목사도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관제와 같이 부음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딤후4:6-8절‘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성도 여러분! 나는 바울과 같이 이 몸을 하나님께 순교의 제물로 바치고 싶었는데 요즘에는 순교를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한 몸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 받아 일평생 쓰임 받다가 수가 다하여 하나님이 부르신 뒤에 이 육체는 땅에 묻혀 썩으면 무엇하며 또 화장을 하면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그래서 조금이라도 남에게 공헌할 수 있는 것을 생각다가 의학 발전을 위하고, 또한 안구를 이식하여 실명한 사람들에게 광명을 주기 위해서 시신을 의과대학에 기증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직 정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우리 아버지도 연세대 의과대학에 시신을 기증을 하여 연세대 의과학생들이 공부를 했습니다. 이것도 자녀들이 허락을 해야 가능하다고 해서 제 마음은 아버지처럼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는 한번 코뚜레를 하면 죽을 때까지 면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이야 소로 농사를 짓지 않고 기계로 하고 또 소를 먹여도 대부분 육용으로 사육하기 때문에 코뚜레를 하지 않습니다. 송아지가 성장하면 코를 뚫어서 코뚜레를 하고 코뺑이를 맵니다. 그러면 그 소는 일평생 그것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무리 큰 소라도 코뺑이만 당기면 끌려옵니다. 아이들이 당겨도 끌려옵니다. 목사는 한번 목사의 굴레를 쓰게 되면 일평생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가장 힘없는 존재가 됩니다. 그래서 집사가 당겨도 끌려가고, 권사가 당겨도 끌려가고, 장로가 당겨도 끌려가고, 심지어는 교회학교 학생들이 당겨도 끌려갑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불신자들이 끌어도 끌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 목사입니다. 한번 목사는 목회를 안해도 목사라고 부릅니다. 목사라고 하는 것을 떼어낼 수가 없습니다.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다니다가 직분을 받았는데 지금은 교회를 안다녀도 만나면 000집사님, 권사님, 장로님 하고 부릅니다. 한번 받으면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소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매를 맞고 욕을 먹습니다. 저는 중3학년 때까지 시골에서 농사일을 배우면서 소로 논갈이 밭갈이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때 소는 자구만 코뺑이로 때리기도 하며 쉬지 않고 야단을 쳐야 합니다. 조금만 게으름을 부리면 여지없이 욕을 먹고 매를 맞습니다. 가만이 잘 가고 잇는 것 같은데도..이랴..하면서 매를 댑니다. 그런데 말도 못하는 소가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묵묵이 매를 맺으면서 주인이 시키는대로 하는 것을 볼 수있습니다. 목사는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오히려 좋은 소리는커녕 ‘목사가 뭐가 어떻고 어떻다’ 고 욕을 먹고 흉을 잡히고 때로는 매를 맞는 일도 있습니다.
목사는 사생활이 없습니다. 목사에게는 오르지 교회 일과 하나님의 일밖에 없습니다. 개인의 일보다는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고 교회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명절 때가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고향을 찾고 부모 형제를 찾아가도 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슬픈 일을 당해도 표현을 못합니다. 겔24:15-24절 말씀에 에스겔 선지자는 그의 아내가 죽었어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곡하지를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목회자의 현실입니다. 목사는 자기 몸이 아파도 마음 놓고 앓을 수도 없습니다. 그 심정을 어찌 이 시간 말로 다 표현 할 수 있겠습니까?
3.목회자를 위하여 협력하는 방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목회자를 위하여 매일 매일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당부하기를 나를 위하여 기도하라 고 하였습니다. 엡6:18-19절‘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목사의 심정은 언제나 성도들을 만나고 싶고 또 여러분의 사정을 알고 싶습니다. 그러나 일일이 찾아갈 수가 없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때는 어떠한 사정이나 의논할 일이 있으면 시간에 구애 없이 찾아주시고 전화를 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가정에 무슨 애경사나 우환이나 어려운 일등 특별한 일이 있으므로 기도가 요청될 때 지체 없이 미리 연락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목사도 사람인지라 때로는 실수를 할 때도 있고 잘못을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때는 뒤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말하지 말고 직접 찾아오셔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의 문제를 비난이나 악평하는 말을 하지 말고 반드시 먼저 담임목사와 상담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목사를 돕는 것입니다.
수일간 출타를 해야 할 경우에는 꼭 알려주고 가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목사는 노심초사하게 됩니다.
목사는 평생 배우는 사람입니다. 목사가 많이 배울 수 있도록 협조를 해 주어야 합니다. 목사가 배워서 돈 모으고 땅 사는데 사용하지 않습니다. 어떻게든지 교회를 위해서 교인들을 위해서 더 좋은 설교와 더 좋은 말씀을 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심방을 받을 때에는 봉투가 2개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는 감사헌금에다가 기도제목도 써서 예배드리기 전에 상위에다 놓으셔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는 목사님 책 사보시라고 도서비를 조금 챙겨드리는 것이 돕는 일입니다. 좋은 책을 사서 읽고 공부하고 해서 좋은 설교를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그렇게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교회는 제가 직접 이렇게 가르쳐 드리니 감사한 마음으로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동안도 여러분들이 부족한 저를 위해서 항상 기도하여 주신 것을 잘 압니다. 그 기도 때문에 제가 오늘까지 목회 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목사가 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오늘‘교역자 보건 주일’을 맞이하여 앞으로 더욱 관심을 가지고 부족한 저를 위하여 기도로 도와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또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축복으로 갚아주실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갔을 때에 여러분이 받을 상급과 목사가 받을 상급은 다릅니다. 그런데 그 목사가 받을 상급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꼭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마10:41절‘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제가 대우 잘 받으려고 하는 말이 아님을 분명히 믿으시고, 오해 없으시기 바라며, 한 심령도 시험에 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1년 중 단 한번 지키는 ‘교역자 보건 주일’을 맞이하여 더욱 관심과 사랑으로 기도해 주시고 협력하는 성도가 되어서 이 부족한 종이 받을 상급을 여러분들도 모두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라며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이 합심하여, 하나님의 교회를 부흥시키고 성장시켜서,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상주감리교회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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