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진 솜옷 입고 가시나무길 걸어보았나
<33> 이참정이 질문한 편지
[본문] 제가 근래에 큰스님(籌室)께 법을 물어서 어리석고 꽉 막힌 마음을 격동시켜 분발하게 하심을 입어서 홀연히 깨달아 들어감이 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근기가 암둔하여 평생 동안 배워서 아는 것이 모두 정견(情見)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버리게 되는 것이 마치 다 떨어진 솜옷을 입고 가시나무 사이를 걸어가는 것과 같아서 저절로 얽히고 휘감기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금 한 번 웃으니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다 풀려버렸습니다.
이 기쁘고 다행함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대종장님의 자세하고 친절한 자비의 가르침이 아니었더라면 어찌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었겠습니까.
일체법 실상 확연히 깨닫고 나면
얽히고 설킨 허덕인 마음 비워져
[강설] 이 편지는 참정(參政)이라는 벼슬을 사는 사람이 대혜선사의 가르침을 입고 깨달음을 이룬 뒤에 감동과 감사의 내용을 적은 글이다. 이참정은 호가 탈공(脫空)이며 이름은 한노(漢老)다. 대혜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은 내용은 이렇다.
소흥 5년(1135) 을묘 정월에 이참정과 강급사(江給事)와 채랑중(蔡郞中) 등이 대혜선사를 찾아뵈었다. 그 때 선사가 묵조선을 애써 배척하는 이야기를 듣고 이참정은 의심과 분노가 상반이었다. 하루는 선사가 법문하였다.
“뜰 앞의 잣나무를 오늘 거듭 새롭게 들어보니 조주의 관문(趙州關)을 타파하고 특별히 현묘한 말씀을 찾았노라. 대중들에게 묻노라. 이미 조주의 관문을 타파하였다면 무엇 때문에 특별히 현묘한 말씀을 찾는가?”
잠깐 있다가 다시 말씀하였다. “처음에는 다만 띠 풀이 길고 짧은 것이 있는가를 의심하였는데 다 태우고 나니 땅이 본래 평탄하지 않은 것을 비로소 알았노라.(庭前栢樹子 今日重新擧 破打趙州關 特地尋玄話 敢問大衆 旣是打破趙州關 爲甚?特地尋玄話 良久云 當初只疑茅長短 燒了方知地不平)”
이참정이 이 말을 듣고 홀연히 깨달았다. 그리고 말하기를, “만약 뒤의 말씀이 없었더라면 저는 틀림없이 실수를 할 뻔 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편지의 이면에는 대혜선사와 이참정과의 사이에 이와 같은 사연이 있었다. 일체법의 실상을 확연히 깨닫고 나니 그동안 생사와 유무와 시비와 선악 등 모든 상반된 관계와 얽히고 설킨 관념 속에서 허덕이던 마음이 텅 비어 버렸다. 이 얼마나 통쾌하였겠는가.
[본문] 그 후 제가 사는 천주성(泉州城)에 이르러 옷을 입고 밥을 먹으며 자식을 안고 손자와 노는 일이 모든 것이 예전에 하던 그대로인데 얽매이고 막힌 정은 이미 없어졌습니다. 또한 기특하다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숙세의 습기나 오랜 업장도 점점 가벼워지고 있습니다. 스님과 이별할 때 간곡하게 일러주신 말씀은 감히 잊지를 못합니다. 거듭 생각해보니 비로소 문에 들어오긴 하였으나 큰 법을 아직 밝히지 못해서 기틀에 응하고 사람들을 제접하며 어떤 일에 당하였을 때는 아직은 걸림없이 자유롭지 못합니다.
다시 바랍니다. 이끌고 가르쳐 주사 마침내 지극한 곳에 이르게 하여 주신다면 스님의 법석에 허물이 없게 될 것입니다.
[강설] 이참정은 집으로 돌아온 뒤에 일상생활은 예나 다름없었지만 인정에 집착하는 끈적끈적한 감정은 다 사라졌으며 그렇다고 특별한 생각을 하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숙세에 익힌 습기와 업장도 점점 가벼워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점들이 곧 불교를 깨달은 효험이다.
이별할 때 간곡하게 일러줬다는 말은 “이치로는 단박에 깨달아서 그 깨달음에 의지하여 업장과 번뇌가 녹아가지만 사상적으로는 단박에 제거되지 않는다. 차츰 차츰 순서대로 없어진다(理則頓悟 乘悟?消 事非頓除 因次第盡)”라는 <능엄경>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여 잊지 않겠다는 말을 붙이고 다시 겸손한 자세로 큰 법을 더욱 밝히고 싶다고 하였다.
[출처 : 불교신문 201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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