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자 파수꾼의 나팔소리2424-세대주의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에 칼을 대다.
☎ 010-7793-0153
듣기 ☞ http://file.ssenhosting.com/data1/bbh3004/lsj20240611.mp3
안녕하십니까? 십계명회복선교교회 이소자입니다. 오늘 말씀 제목은 「파수꾼의 나팔소리, 세대주의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에 칼을 대다」입니다.
저는 ‘역사(歷史)’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없지만 역사를 살피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종종 인터넷으로 역사와 관련된 기사를 찾는데 이런 푯말이 보였습니다.
“史者(사자), 何也(하야)? 史者(사자), 師也(사야)!”라는 푯말인데 그 의미는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란 스승이다!’는 뜻입니다.
‘역사는 곧 스승이다’는 것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역사가(歷史家)’들이 있고 ‘역사는 역사가들에 의해 해석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역사를 두고 대중이 설왕설래할 때 역사가들의 말을 듣습니다.
저는 오늘 거창(?)하게 역사론을 말하려는 것 아닙니다. 기독교의 큰 폐단 중에 하나인 ‘세대주의’를 말하려고 합니다.
세대주의는 『‘성경’과 ‘교회’의 역사를 시대별로 나누어 하나님의 통치 원리=경륜이 각 시대마다 다르고 구원의 방법도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세대주의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경륜을 ‘일곱 세대(시대)’로 나누어 ‘아담이 범죄하기 전의 무죄시대부터 양심시대, 인류통치시대, 약속시대, 율법시대, 은혜시대, 왕국시대’로 구분하여 각 시대는 관련성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세대주의의 극단적 폐단은 구약시대는 ‘율법시대로’ 신약시대는 ‘은혜시대’로 단절하는 세계관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세대주의의 이러한 세계관은 이만희 신천지교의 ‘노정세계관’과 비슷한 성격을 하고 있습니다.
이만희교 ‘노정세계관’은 ‘배도, 멸망, 구원의 노정(路程)’이 결정(예정)되어 있고, 노정대로 역사가 반복되다가 기독교는 배도로 망하고 이만희교 신천지 시대가 되었다는 세계관입니다.
‘세대주의 세계관’과 ‘이만희교 노정 세계관’의 다른 점은 이만희교는 ‘배도, 멸망, 구원의 노정’이 반복되는 역사 끝에 ‘이만희교로 신천신지의 세계가 된다(되었다)’는 것이고, ‘기독교의 세대주의 세계관’은 일곱 세대가 반복이 아니고, 전(前) 세대 뒤의 후(後) 세대 끝에 천년왕국 시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만희교는 ‘이만희’가 자칭 ‘보혜사’라 하고, 그 교인들이 이만희를 ‘새 요한’이라 신봉하여 ‘성경이 증거하는 세계관’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애초부터 하나님과 무관한, 그래서 교회를 어지럽히는 회(會)이기 때문에 논외로 하고, 구약시대를 율법시대, 신약시대를 은혜시대로 단절하여 말하는 세대주의에 대하여 성경으로 말하려고 합니다.
세대주의 자들과 그 교회들은 다음 말씀에 답해야 합니다.
『[롬3: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세대주의’ 교회들과 ‘율법폐기론’을 주장하는 칼뱅주의 교회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다.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운다”는 사도 바울의 간증이자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이 말씀에 답해야 합니다. 어떻게 답할 것입니까?
또 하나 묻습니다. 온 교회들이 ‘아멘’하는 ‘이신칭의’로 묻습니다. 역시 롬3장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결론적으로 말하면 ‘하나님 앞에 의(義)로 선다’는 것인데 하나님께서 ‘하나님 앞에 의로 설 수 있는’ 두 방편을 세우셨습니다.
그 하나는 ‘율법’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율법으로 하나님 앞에 의’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롬3:31로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고 증언한 사도 바울이 3:20로 증언하였습니다.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으로 죄를 깨닫는다’는 것은 ‘율법이 완전하여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있는 자 없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율법 외에’ 다른 방편을 세우셨는데 ‘율법 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한 의=이신칭의’입니다. 롬3:20을 이어서 하신 말씀입니다.
『[롬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이신칭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라 합니다. ‘율법 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입니다.
그런데 ‘무엇의 증거를 받은 것이라’ 합니까?
‘율법과 선지자들에게’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인자로 이 땅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율법과 선지자로 자기에 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눅24:27] 이에 ‘모세와(율법과)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그래서 그리스도의 증인인 사도들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서(행1:8)’ 이방인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로 예수에 관하여’ 전하였던 것입니다.
『[행28:23]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을 ‘하나님의 복음이라 편지하였습니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래서 위대한 신앙개혁자 마틴 루터는 ‘하나님의 이 복음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르러’ 신앙을 개혁한 것입니다. 롬1:1, 2을 이어서 17절 말씀입니다.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의 복음' '모세와 선지자로 말씀하신 하나님의 복음을 믿음으로 그 복음이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세대주의 교회들은 대답해야 합니다. ‘구약시대를 율법시대’로 단절하고 ‘신약시대를 은혜시대’라고 하는데 사도 바울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씀’을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경이 미리 약속하신 복음’이라 합니다. ‘율법’과 ‘은혜’를 단절한 교회들은 답하십시오! 무엇이라 할 것입니까?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이신칭의’가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합니다. ‘구약시대를 단절하고 신약시대의 은혜를 말하는 것’ 성경적입니까? ‘세대주의 세계관’과 이만희교의 ‘노정세계관’이 무엇이 다릅니까?
세대주의 교회들의 ‘세대를 갈라치기하는 사상이 낳은 폐단’은 여러 가지이지만 ‘신약시대 교회의 선지자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의 선지자’를 말하는데도 무시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고린도교회에 이렇게 편지하였습니다.
『[고전12: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성도는 ‘받은 은사’가 서로 다르고, ‘직임’이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을 행하는 자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말하는 것이라』
그러면서...
『[29] 다 사도이겠느냐 다 선지자이겠느냐 다 교사이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이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이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는 것은 방언을 ‘하는 자’가 있고, ‘하지 못하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사도운동’을 하는 교회들이 있는데 ‘신사도 운동’의 ‘신=새로울 신(新)’이 의미하는 것처럼 세대주의의 관념이 낳은 사상이 신사도운동입니다.
‘신사도 운동’은 ‘은사주의자들’로 시작되어 ‘은사주의 교회들’이 적극적인데 은사주의 교회들은 ‘방언’을 하는 것으로 ‘성령 침례(세례)’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런 교회 교인들은 ‘방언’을 받으려고 애를 쓰고, 시험에 들기도 합니다. 심지어 ‘방언 전수자’도 있습니다. 좋게 말해서 ‘방언 전수’이지 ‘방언 기술’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다 방언을 말하는 자이겠느냐?”라고 합니다. 아니다는 것입니다.
‘방언을 성령 침례(세례)의 증거’라고 하면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 방언을 못하면 그가 받은 ‘병 고치는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아닌 것이 됩니다. ‘통역의 은사’도 마찬가지이고, 교회의 ‘교사와 설교자’도 방언을 못하면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교사, 설교자가 아닌 것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다 선지자이겠느냐?’라고 합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주의하여 이 의미를 살펴야 합니다.
‘다 선지자이겠느냐?’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교회 시대’ 교회를 위하여 ‘선지자를 세우신다’는 것을 전제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교회들은, 특히 세대주의 교회들은 “신약시대에 무슨 선지자냐?”며 신약시대 선지자를 말하면 비웃고, 심하게는 이단이라고 정죄까지 합니다.
이런 교회들은 사도의 증언에 답해야 합니다.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
‘둘째는 선지자요’ 신약시대 교회를 위하는 ‘선지자’가 있다는 것입니까? 없다는 것입니까?
‘있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시대 시대마다’ 선지자를 세우신 것처럼 신약시대 교회에도 ‘시대에 맞는 선지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성경의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이 세상을 구원하시는 계시와 예언’이 다 밝혀졌기 때문에 성경에 더하지 않을 뿐 신약시대에 교회를 위한 선지자가 있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를 단절하는 세대주의 교회들과 ‘신약시대는 선지자가 없다’고 말하는 교회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의 편지 로마서로 ‘진리의 빛(하나님의 복음)’을 깨달은 신앙개혁자 마틴 루터의 신앙고백을 고전12:28로 말씀하신 ‘둘째는 선지자요’라고 한 ‘선지자’의 신앙고백이라고 한다면 아니라고 할 것입니까?
인간 사회에 있어서 고약한 폐단(弊端)은 ‘시대를 망하게 폐단’인데 ‘후대의 사람들’이 ‘선대의 역사’를 자기들의 사상으로 재단(裁斷)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대표적인 폐단자들이 ‘세대주의를 말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세대주의 폐단을 ‘한 가지 더’ 언급하는 질문으로 말씀을 마칩니다.
시대마다 선지자들로 말씀의 빛을 비추시고, 또 비추시는 하나님께 ‘역사의 마지막 시대 때, 환란의 때에 성도의 인내를 북돋우는 선지자로 말씀하신다’고 한다면 거부할 것입니까?
『[빌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왜 입니까? 하나님이 비추시는 빛은 다른 누군가를 통하여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4]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다른 사람들에게 선지자적 사명으로 빛을 비추라는 것입니다.)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겸손하여 성경을 상고해보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권하면 말씀을 마칩니다. 아멘!
- - - - - - - - -
공감하시면 후원해 주십시오! 후원은 기독교 개혁선교에 큰 힘이 됩니다.
☎ 010-7793-0153
국민은행
008601-04-158786
십계명회복선교교회
농협
301-0314-1264-31
십계명회복선교교회
이소자 목사 글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