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클레티아누스 (Dioclctianus) 宮殿의 복원 상상도.
네모나게 지은 궁전을 南北 으로 나누어 남쪽은 황제가 사용하고 북쪽은 신하와 군인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열주랑 광장(列柱廊 廣場)과 열주궁전(列柱宮殿)
열주랑 광장(列柱廊 廣場)은 크고 웅장한 16개의 기둥으로 둘러 싸인 열주궁전(列柱宮殿)앞의 광장을 말한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 좌우에 있는 사자상은 옛날 궁전입구에 있던 것이라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Dioclctianus) 皇帝는 원래 이곳 "스플릿" 出身이라고 한다.
皇帝가 된 후 295년부터 여기에서 餘生을 보내려고 宮殿을 지었다.
이 宮殿에 많은 愛情을 가지고 그리스에서 건축자재를, 에집트에서 스핑크스를 직접 가져올 정도였다고 한다.
宮殿이 완성된 305년에 스스로 退位를 했단다.
로마 皇帝 中 살아서 스스로 皇帝자리에서 물러난 유일한 皇帝였다고 한다.
로마제국에서 使臣을 보내 다시와서 그곳의 政治的인 問題를 해결해 달라는 요구를 받자.
自身이 가꾼 庭園을 보여주며 이곳을 절대 떠날 수 없다고 했다고 한다.
宮殿 앞 左右에 있는 이 石物은 에집트에서 직접 가져온 스핑크스라고 한다.
원래 12개의 스핑크스를 가져왔는데 이 둘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훼손되었다고 한다.
입구 천정에 조각된 것은 옛날 황제가 궁전을 지을 때의 만들은 것이라고 한다.
풍요를 기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사냥하는 장면을 그린 것인지,,,,,,
聖堂 바로 앞 문 위에는 聖堂임을 표시하는 紋章이 있다.
廣場에서 우리가 들어 온 남쪽 지하 통로 위를 보면 "황제의 아파트"(Vestibule)라고 불리우는 건물이 보인다.
"디오클레티아누스" 皇帝가 거주하던 곳으로 황제의 부엌과 식당, 그리고 황제 알현 대기실이 있단다.
황제 알현 대기실.
지금은 돔의 천정이 붕괴되어 뚫려 있는 상태인데, 이곳의 울림이 좋아 "아카펠라" 합창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곳에서 노래를하며 그들의 노래를 취입한 CD를 팔고 있었다.
건물 일부는 지진으로 인해 아직도 영향을 받고있다. 외벽에 붕괴방지용 철봉을 댄 곳이 많다.
그곳을 지나 좌측으로 가면 바다로 접한 성벽의 안쪽이 된다.
옛날 문에 자동문을 설치한 특이한 모습도 보인다.
이런 모습으로 인해 고풍스러운 맛은 없고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바다로 접한 성벽의 안쪽 모습.
외측 성벽과 내측 성벽사이의 통로.
사람들이 살고있는 주거지 사이에는 방치된 옛 유적들이 있었다.
鐘塔 右側의 8각모양의 大 聖堂.
옛날 皇帝의 무덤이 있던 자리라고 한다.
옛 건축물 사이 사이에 나중에 지은 건축물이 보인다.
이곳은 로마의 쇄락과 함께 버려진 도시가 됐다가 바바리아인의 침략으로
사람들이 궁전 안으로 들어와 살면서 옛 건축물 사이에 집을 짓기 시작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였다고 한다.
사람들이 살고있는 집근처에도 옛 유물들이 장식물처럼 많이 있었다.
황제의 무덤이 있던 곳.(지금은 大聖堂이다.)
옛 건축물을 바탕으로 다시 지은 모습.
건물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뭐가 뭔지 알 수가 없다.
좌측의 종탑은 우측에 있는 옛날의 궁전건물에 엇대어 지은 것을 알수가 있다.
아직도 복구되지 않아 옛 모습을 지닌 궁전의 벽.
"디오클레티아누스" 皇帝는 기독교를 심하게 탄압한 皇帝였다고 한다.
皇帝가 死亡하고 170년 후에 기독교 인들이 이곳에 들어와 황제의 무덤을 없애고 그자리를 성당으로 만들었단다.
지금도 황제의 시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이 聖堂의 이름은 "聖 도미니우스 大聖堂" ( Katedrala Sv. Dujma)이다.
"聖 도미니우스"는 "디오클레티아누스" 皇帝에게 죽임을 당한 聖人이라고 한다.
聖堂 안에는 聖人의 무덤이 있다.
특이한 형태의 빗물 배수구.
악마가 염소를 움켜쥐고 있는 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