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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중국바로알기 | |||
국명 |
중화인민공화국 |
국기,화폐 |
오성홍기, 元:위엔화(1元:220원) |
수도 인구 |
북경 13억(무적자 포함 15억 추산) |
면적 |
960Km
남한의100배 |
정부형태 |
공산당 1당 독재 (형식적 소수당 몇 개 있다) |
언어 |
普通話(푸통화), |
의회 |
단원제(전국인민대표회의) |
정치제제 |
인민민주독재의 사회주의 국가 |
인구정책 |
1가구1자녀정책 (무적아이들이 많다) |
지도자 |
후진타오 (국가주석,당총서기,구사주석) |
강 |
양쯔강-6,300Km(장강), 황하강-5,500Km |
기후 |
국토가 넓어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
민족 |
한족94%,장족,화족,묘족,만주 등 55개 소수민족이 있으며 조선족은 200만명 정도이다. | ||
지형 |
서고동저형, 산-33%, 고원지대26%, 분지-19%, 평야12%, 언덕-10% (식량자급자족국가) | ||
행정구역 |
4개직할시-북경,천진,상해,중경, 2개 특별자치구-홍콩,마카오 22개성, 5개 자치구-,내몽구, 신강위구루, 서장,광서장족, 영화회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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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개성은 6개구에 배속된다,(화북구,서북구,동북구,화동구,중남구,서남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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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구-하남성,호북성,호남성,광동성,해남성 등이다. |
6, 河南省(하남성)의 개요. | |||
위치 |
중국 화북지구 남부 |
경위도 |
동경 113도 : 북위33도 |
성도 |
정주(북경에서 600Km 거리) |
날씨 |
서울과 비슷하고 황사가 많음 |
면적 |
166.499 9㎢(남북한 면적220.000)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중원이라 함 | ||
인구 |
94.497.776명(약1억 명) 세계14위, 중국 1위 | ||
인물 |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 노자, 당나라 시대의 시인- 두보, 인도를 다녀온- 현장법사 | ||
행정구분 |
17개 지급시(地級市)와 21개 현급시(县級市), 89개 현 | ||
특징 |
황하문명의 발상지 |
주민 |
한족(92%)과 41개 소수민족으로구성 |
古都 |
개봉, 낙양 |
치안 |
비교적 안전 |
버스 |
교통정체가 심하다(요금1~2원) (09년) |
철도 |
광주,심천,상해,북경,소림사등 연결 |
경제 |
중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내륙지역 일수록 가난하다) |
정주시인구 |
730만 명 |
지형 |
서고동저형 |
볼 것 |
박물관,황하유람구,운대산,낙양,개봉,용문석굴,숭산,소림사관림 |
시차 |
한국보다 1시간 느리다 |
전압 |
220V,50Hz (한국전기제품 사용할 수 있다) |
통화 |
인민폐1元(위엔) 우리돈 약220원 (09년2월 21일현재) |
전화 |
70% 비싸므로 수신자부담 이용 |
음식 |
궁중요리인 변경(卞京)요리는 고급 요리로 인정을 받고 있다. 정주시의 회족 야시장에는 돼지고기 빼고 각양각색의 먹을거리가 많다. 개봉 야시장의 작은 소쿠리 왕만두. 중국식 김치는 무절인 것이라고 함. 향로를 많이 사용해서 냄새와 맛이 특이하다. 음료로 중국차와 허브를 끓여 먹는데, 맛이 독특해서 커피를 타서 마시는 것이 좋다. 김, 깻잎, 멸치볶음 등을 준비하면 좋다. 주빈에게 생선의 머리가 오도록 놓는다.(생선을 먹을 땐 뒤집어 먹지 않는다) 주빈이 먼저 술을 맛본 후에 건배를 제의하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식사 에 요리와 함께 술을 마신다. 술잔에 술이 조금만 줄어들면 계속하여 따라준다 (중국인들은 가득 찬 상태를 좋아한다.) 중국의 음식은 불의 강약과 시간조절, 色, 香, 味,에 의해 좌우된다. “요리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말이 있고, 말 속에 마음이 있고, 마음속 에 정이 있다.” 맛을 낼 때는 불로장수의 사상에 따라 五味 즉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 맛을 조화롭게 사용하는데 이 五味가 인간의 오장(간장, 심장, 폐, 비장, 위장 )을 보양한다고 여긴다. 一物全體食 즉 한가지 음식을 남김없이 전부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생선은 머리부터 꼬리까지, 야채는 잎부터 뿌리까지 전부 먹는 것이 좋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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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볼 것들
7-1, 하남성 박물관(여행-1일)
하남성 정주공항에 도착한 시간이 13시경 착하게 생겼지만 체구는 조금 작은 듯한 여행 안내자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는 가운데 하남성에서의 4박5일이 시작되는 것 같다.
공항에서 5분거리에 있는 식당에서 이국의 정취를 흠뻑느끼며 점심을 마친 일행이 처음으로 들린 곳이 하남성 박물관이다. 사각뿔 모양의 박물관 건물은 보기에도 특이해 보였는데 전시물 또한 쉽게 접할 수 없어 보이는 황하문명의 정수를 모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유물이라는 것이 원래 토기, 돌, 벽돌 또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그릇 등이 주류라서 문외한인 난 금방 실증이 나는데 일행들은 가이드의 설명에 짠한 감동들이 오는 것처럼 보인다.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된 중국의 800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중국 최초의 왕조라 불리어지는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의 유물을 관람하려면 하남성 박물관이 중국내 최고이며 특히 한자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갑골문자 진본이 전시되어 있기도 하다. 여러 가지 전시물 중에 가장 으뜸인 것은 청명상하도라 하는데 속물이라 그런지 내 눈에는 끝내 보이지를 않는다.
하남성 박물관은 정저우시의 진수이루[金水路]와 런민루[人民路]가 만나는 곳에 있다.
1998년 5월 1일 지금의 허난박물관[河南博物院]으로 개관하였다.
부지면적 10만㎡, 건축면적 7만 8000㎡, 전시관 면적 1만㎡이다. 중앙에 주전시관이 있고 동서 양쪽에 배청(配廳)과 수장고가 있다. 전시관은 7개의 기본전시관을 비롯하여 테마전시관과 임시전람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장품은 상고시대부터 근현대에 걸친 13만여 점으로 대부분 허난성 각지에서 나온 것들이다. 고대 문물은 청동기·동경(銅鏡)·철기·금 은기 등 27종류로 분류되어 있고, 근현대 문물은 출판물·화폐·복식·생활용기 등 10종류로 분류되어 있다. 선사시대 유물과 상(商)·주(周) 시대의 청동기, 중국 역대 왕조에 걸쳐 제작된 도자기와 옥기(玉器) 등 1급·2급 유물이 약 5000점에 달한다.
중국 4대 박물관 중에 속한다는 하남성 박물관을 둘러본 우리는 저물어가는 겨울날씨 속에 석양을 뒤로 한채 항하유람구로 향한다. (2009,2,17)
7-2, 황하 유람구 (여행-1일)
하남성 박물관을 출발한지 1시간 30분 일행을 태운 버스는 5시경 2번째 관광코스인 황하를 둘러볼 수 있는 망산 황하 유람구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이곳은 망산의 끝자락, 즉 황토고원과 평원의 갈림길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에서부터 황하의 하류가 시작된다고 한다. 중국 정부는 황하를 관광 상품화하고 하남성의 발전을 위해 많은 관심을 가졌고, 그 결과 많은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 가운데 하나이다.
버스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고 허허벌판이다. 하지만 황하 왼쪽 언덕 위로 한 눈에 보기에도 시멘트 냄새가 풍기는 두 개의 거대한 인물상이 보인다. “염제”와 “황제”의 인물상이라고 하는데 2007년 10월에 준공을 하였다고 한다. 커다란 두 개의 석상은 안은 비어 있으며 겉은 돌과 시멘트로 2007년에 만든 인공구조물이라고 한다. 또한 석상의 맞은편에는 3정이라 불리는 솥이 있는데 가보니 청동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플라스틱 비슷한 재질로 만들어 졌다. 최근에 만들어졌지만 관광객을 위하여 거대한 볼거리를 만든 중국 정부의 노력은 가상하다 할 것이다.
작으면 그냥 지나쳤겠지만 워낙 커다란 석상이기에 일행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 찍기에 바쁘다.
우리도 황제와 염제를 배경으로 많은 사진을 찍은 뒤 유람선을 타기 위하여 유람구로 향하는데 황하유람선은 한강에서 볼 수 있는 깨끗한 일반 유람선이 아니라 공기부양 정으로 관광객을 황하의 사구까지 태워다주는 것인데 20여 분간 이라도 황하에서 노닐었다는 추억을 만들기에는 그런대로 괜찮았다고 본다.
사구에 도착하니 말을 탈 수 있도록 되어있는데 보기에 깨끗해 보이지 않아서인지 말을 타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여기서도 황하의 매서운 바람을 가슴에 안은 채 많은 사진을 찍었고 말로만 듣던 황하와의 짧은 만남을 뒤로한 채 일행은 정주의 홍산 호텔로 향한다.
홍산 호텔은 정주시내의 중심인 정주역 앞에 있는데 4성급이라고 하기엔 시설이 열악해 보이지만 시내에 있기 때문에 시민들의 생활상을 보거나 야간관광, 편의점을 다닐 수 있는 편리함이 따른다.
(2009,2,17)
7-3, 황하(黃河 : Hung H, Yellow River)(여행-1일)
길이 - 5,463 Km 중국에서 양자강(장강) 다음으로 긴 강이다.
수원의 높이 - 4,500 m
특징 - 퇴적물로 인하여 강의 하상이 주위 지형보다 높아져서 강물이 둑을 넘어 범람하는 경우가
많고 큰 재앙이 뒤 따른다.
황하 문명 - 중국 황하 강 중류, 하류 지역에서 발생한 문명이다
황하 강 유역은 대륙성 기후로 건조한데다가 황하의 범람으로 주변의 농토가 비옥한 황토지대를
형성하게 되어서 농사가 쉬웠을 뿐 아니라 황하를 이용한 문물의 이동이 용이해서 문명의 발생지
로 적합한 조건을 갖추었다 할 것이다. (2009,2,17)
7-4, 운대산(雲臺山)-세계 지질공원 (여행-2일)
오전 6시 호텔에서의 이른 아침을 뷔페식으로 해결하고 로비에 나오니 체구는 작지만 다부지게 생긴 가이드가 반갑게 맞는다. 조선족 자치구인 흑룡강성 출신이라고 하는 한씨 성을(한명호?) 가진 가이드는 아직 한국말이 서툴러서 더듬거리기는 하지만 똑똑하고 기억력이 좋아서 차중에서 내내 지치지 않고 많은 말을 하는데 꽤 재미있고 위트도 있어서 앞에 앉은 분당 아주머니들과 우리 쪽 여자들은 하나라도 놓칠세라 입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 같다.
가이드는 팩케이지 여행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데 이번 여행은 솔직하고 마음씨 순박한 총각 가이드를 만나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7시경에 버스를 타니 좌석이 좁긴하지만 넓은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리니 불편함을 모르겠다. 언덕하나 없이 끝없이 이어지는 하남평야를 2시간 정도 달리니 운대산주차장에 이르는데 관광객은 우리뿐이다. 아마도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경제난의 영향이 이곳에 까지 미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든다.
엄청난 광장에 수많은 버스들이 주차해 있다. 효율과 비효율을 따지는 우리네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남이야 전보 상대로 이빨을 쑤시던 내 알바 아니라 가이드가 건네는 입장권을 손에 들고 풍경구에 이른다.
운대성 풍경구는 하남성 초작시 수무현에 위치하며 성도인 정주 시로부터 98Km 떨어져있다.
2007년에는 지구의 역사를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여겨 유네스코지질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많은 폭포와 긴 협곡, 곳곳의 기암 괴봉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정주에서 약 2시간 거리이며 붉은색 돌의 홍석 협과 100m의 장대한 폭포가 장관이다.
중국에선 신선에 비유되곤 하는 줄림칠현이 노닐던 곳으로 그 신비함을 더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운대산은 3걸음마다 샘이 있고, 5걸음마다 폭포가 있으며, 10걸음마다 못이 있다는 묘사로도 유명한 산이다.
담폭협, 천폭협, 홍석협, 천룡협, 만선사, 수유봉이 주요 관광코스이며 중국최대의 폭포로 꼽히는 운대천 폭포는 낙차가 전체 314m에 이른다. (2009. 2. 18)
[홍석협 紅石峽 -중국의 그랜드 캐년] (여행-2일)
오전 10시경 운대산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운전 면허증이 있으면 1명은 입장료를 내지 않아 가이드가 좋아 함) 입구를 나서니 공원내를 운행하는 버스들이 줄지어 서있다. 가이드의 지시에 따라 차에 오르니 이내 출발하는데 오르는 왼쪽은 천야만야 낭떠러지다. 비교적 잘 포장된 도로를 20여분 달리다 멈추는데 이곳이 홍석협이란다.
아름답고 웅장하다.
가슴이 벅차고 감동이 물결치는 천하제일경이다.
황하제일 기협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에 걸맞게 경치는 수려하고 유려하며 웅장함을 한 몸에 지녔다. 깨끗한 샘, 폭포, 계곡으로 이뤄져 있어서 작은 그랜드 캐년 이라 불리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아기자기 오밀조밀 아슬아슬 하다.
밖이 넓고 안이 우아하며 기이한 풍경이 깊게 숨겨져 있는 곳이다.
협곡 양안의 산과 돌이 수려하여 마치 신이 조각해낸 하나의 커다란 분재원 같기도 하고 또한 명산대천의 아름다움을 한 곳에 담았기에 대자연의 산수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계곡과 폭포, 기암괴석을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기도 하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난간 없는 다리를 건널 땐 가슴을 졸이기도 하고, 하나라도 놓칠세라 사진촬영에 시간가는줄 몰랐는데 가이드의 내려가자는 독촉에 아쉬움을 달래며 돌아서는데, 조금가다 아쉬워 다시보면 또 새로운 모습으로 눈속에 아롱진다.
호남성에서는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하여 절벽의 중간에 통로를 놓아서 관광객들이 쉽게 홍석협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고 투자한 만큼 관광 수입도 올리는 것으로 여겨진다.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미국의 그랜드 캐년에 버금갈 정도로 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곳으로 유네스코에서 자연유산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중국처럼 좋은 산수를 개발하여 노약자나 아녀자들 까지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도록 할 것인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여 후대에 물려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여본다.
홍석협관광을 마친 일행은 수유봉에 오르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려 했으나 오늘은 비가 와서 버스의 운행이 불가능하단다. 눈도 아닌 비가 그것도 우리가 보기엔 많은 양도 아닌 이슬비처럼 내리는 비에 버스운행이 불가하다니 야속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안개 낀 이러한 날씨에 수유봉에 올라봤자 운대산 일대를 조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 또다시 가이드의 뒤에 서서 졸졸졸 따라가는 나를 발견한다. (2009,2,18)
[담폭협 潭瀑峽] (여행-2일)
수유봉을 포기한 가이드는 우리를 담폭협으로 안내를 하는데 왕복에 90분 정도 소요된다고 하니 나이드신 아주머니 5분이 오르기를 포기한다.
다소 미안하기는 하지만 우리끼리 담폭협의 긴 계곡을 오르기 시작하는데 이곳도 여느 곳에 못지않은 좋은 곳 이기는 하지만 홍석협의 감흥이 아직 가시지 않아서인지 이곳의 긴 협곡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르는 중에 연인폭포도 만나고 나비석도 만나며 광천수로 이름난 불로수 등도 보지만 가슴에 와 닿는 절경은 아니다.
이곳에서는 오직 계곡의 마지막에 있는 용봉벽 만이 볼만하다. 할 것이다. 높은 봉우리도 볼만하지만 절벽의 중간에서 지하수가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는데 지하수가 그 지점에서 갈 길을 잊은 것으로 보인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경이로움은 논리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저 눈으로 보는 것이 즐거움을 더 한다는 생각을 하며 일행들이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내려오다 박사장이 호텔에서 챙겨온 삶은 달걀을 둘이서 몰래 먹는데 어찌나 맛이 있던지 지금도 입가엔 노란 자위의 고소한 내음이 풍기는 것 같다.
오늘은 옛 도시 낙양에서 1박을 하는데 호텔 난방에 문제가 있어서인지 무지하게 춥다. 난방을 최대로 틀고 양말을 신고 추리닝 상하의를 입은 채로 잤다.
(2009,2,18)
[수유봉 茱萸奉]
수유봉은 역대 문장가, 시인 스님들이 수행하던 곳이라 한다,
이곳에는 희귀식물이 많다는데 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홍도삼나무, 오각단풍나무, 태행 꽃 등이 자생한다고 한다.
천여 개의 계단을 통하여 오를 수 있도록 하였는데 오르면 산맥과 연결된 능선을 볼 수 있고 많은 문인들이 남긴 문구들을 볼 수 있다고 한다..
해발이 1300m에 이르기 때문에 산맥과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며 아름답고 장엄한 운대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는데 천폭협을 포기한 우리일행은 버스를 타고 출발하려는 순간 일기가 순식간에 변하여 버스의 운행이 정지되고 수유봉을 바라보며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2009, 2,18)
[천폭협 泉爆峽]
천폭협은 산세가 거대하고 물이 세차게 흐르며 협곡을 따라 올라가면 다공천, 사어천, 요탄,음용탄 등 경치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위에 댐을 막아서 갈수기에는 물이 말라 좋은 경치를 감상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일행도 천폭협에 물이 없다는 안내원의 말에 천폭협은 설명으로 대신하였다.)
7-5, 용문석굴 龍門石窟(룽먼석굴), (Longmen Grottoes) (여행-3일)
옛 고도 낙양 (落陽 Lo-yang, 뤄양)
삼국지나 무협지에 나오는 낙양에서 1박을 하고나니 이곳의 사람들이 삼국지에서 볼 수 있는 조조나 유비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시현상일까?
가이드는 어제보다는 조금 느긋하게 일정을 잡는 것이 오늘은 시내에서 가까운 용문석굴을 첫 볼거리로 잡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하며 기다리는 버스에 오른다.
30여분을 달린 버스는 이내 이하를 끼고있는 주차장에 우리를 내려놓는데 오전 8시가 조금 넘었디.
용문은 뤄양(洛陽) 남쪽 약 14km 지점에 위치한 석굴사원이다. 중국의 불교문화뿐 아니라 빼어난 건축, 조각 예술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불상들을 통해 서역의 간다라미술이 어떻게 중국에 전래되었으며, 또 그것이 신라의 석굴암으로 어떻게 체현되었는지를 알게 하는 문명 교류사의 귀중한 세계 문화유산인 것이다.
야트막한 향산(香山)과 용문산 사이에 이하가 흐르고 있는데, 양안(兩岸)의 암벽을 조각하여 만든 것이 바로 용문석굴이다. 입구는 여느 관광지와 다르지 않게 기념품, 수석 등을 파는 상가들이 조성되어 있다. 정교하게 조각한 배추 모양의 조각품이 눈길을 끈다. ‘소심(小心)’이라고 쓰여 있다. 아마도 조심하라는 듯인 것 같다.
석굴은 약 1.5km에 걸쳐 조성되어 있다. 북위 시대인 5세기 말부터 당나라 때인 9세기까지 2300여 개의 석굴과 벽감(壁龕)이 조성되었고, 내부에 총 10만 점이 넘는 불상, 2800여 개의 명문, 40여 개의 탑이 조각되어 있다. 다퉁(大同)의 윈강석굴(雲崗石窟)과 둔황(敦煌)의 모가오굴(莫高窟)와 더불어 중국의 3대 석굴로 꼽히는 이곳은 특히 예술성이 높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조각으로 유명하다.
암벽을 따라 벌집처럼 늘어선 크고 작은 굴 안에 불상이나 불탑이 모셔져 있는데, 불상은 높이가10여 미터가 넘는 것부터 수 센티미터에 불과한 작은 것까지 실로 다양한 모습이다. 10만여 점이 넘는 불상 하나하나가 제각기 다른 표정에 뛰어난 솜씨와 멋을 자랑하고 있으니 옛 장인의 솜씨가 경이롭다 할 것이다. 다만 오랜 세월 방치되면서 훼손된 부분이 많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불상머리를 소장하면 복이 온다는 미신 때문에 머리가 떨어져나간 불상이 특히 많고, 도굴 단에 의한 불법반출,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에 의한 파손 등으로 현재는 불상의 상부는 온전한 것이 별로 없을 정도로 오랜 역사의 상처가 너무나도 커 보인다.
부처님의 대자대비(大慈大悲)한 마음이 우리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중생들은 오늘도 여기저기에서 셔터 누르기에 여념이 없다.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란 화두를 가슴속에 새기며 구파일방 중에 으뜸인 소림사로 향한다.
오늘이 지나면 나도 득도할 것 같은 쓸데없는 망상을 하며...... (2009, 2, 19)
7-6, 백거이의 묘 백원(白園)
백거이(白居易)는 중국 중 당기(中唐期)의 시인으로서 자는 낙천(樂天)이며,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과 향산거사(香山居士)이다.
정주(鄭州) 부근의 신정(新鄭)에서 출생하였다고 하는데 바로 정주 신정국제공항이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의 이름인 ‘거이(居易)’는 '중용(中庸)'에 나오는 "군자는 편안한 위치에 서서 천명을 기다린다(君子居易以俟命)"에서 취한 것이고, 그의 자 ‘낙천(樂天)’은 '역(易)·계사(繫辭)'에 등장하는 "천명을 즐기고 알기 때문에 근심하지 않는다(樂天知命故不憂)"는 말에서 얻는 것으로 “천명에 순응하고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 행한다(順天與素位而行)”는 유가의 처세사상이 그대로 그의 이름자 속에 비친 것이다.
이백(李白)이 죽은 지 10년, 두보(杜甫)가 죽은 지 2년 후에 태어났으며, 같은 시대의 한유(韓愈)와 더불어 ‘이두한백(李杜韓白)’으로 병칭된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5세 때부터 시 짓는 법을 배웠으며,15세가 지나자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는 시재(詩才)를 보였다. 대대로 가난한 관리 집안에 태어났으나, 800년 29세로 진사(進士)에 급제하였고 32세에 황제의 친시(親試)에 합격하였으며, 그 무렵에 지은 '장한가(長恨歌)'는 유명하다.
그 시인이 잠든 묘소를 오늘 둘러보게 된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뜻 깊은 일이다.
사실 백거이는 지식인에게 사랑받았던 이백, 두보의 시와 달리 서민들에게 사랑받았다고 한다.
글을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그의 시를 외웠고, 그의 시를 베껴 배나 절의 기둥 벽에 붙였다. 심지어 그의 새로운 시가 나오면 사람들이 시를 베껴 쓰기 위해 종이를 사가는 바람에 장안에 종이가 바닥나는 사태가 벌어질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백거이 묘를 꼭 보고자 하였으나 내가 까페에 올릴 사진을 찍는 사이에 일행들과 가이드가 안 가기로 합의를 하였단다. 씁쓸하지만 어쩔 수 있겠는가?
백거이 묘를 못보는 대신 백거이의 시 한 수를 올리니 위로 받기를 바랍니다.
비파행(琵琶行)
심양강 나루에서 밤에 손님을 보낼 제에 深陽江頭夜送客 심양강두야송객
단풍잎, 갈대꽃에 가을바람 쓸쓸하다 楓葉荻花秋瑟瑟 풍엽적화추슬슬
주인은 말 내리고 손님은 배에 타고 主人下馬客在船 주인하마객재선
술을 들어 마시려니 음악이 없구나. 擧酒欲飮無管絃 거주욕음무관현
취해도 즐거움 없는 이별을 하려하니 醉不成歡慘將別 취불성환참장별
망망한 이별의 강에 달빛만 젖어 있네. 別時茫茫江浸月 별시망망강침월
그때 홀연 물 위로 비파 소리 들려오니 忽聞水上琵琶聲 홀문수상비파성
주인도, 손님도 자리를 뜨지 못하네. 主人忘歸客不發 주인망귀객불발
소리 찾아 조용히 누구인지 물으니 尋聲暗問彈者誰 심성암문탄자수
비파소리 그치고 대답이 없구나. 琵琶聲停欲語遲 비파성정욕어지
배를 옮겨 가까이가 자리를 청하며 移船相近邀相見 이선상근요상견
술 따르고, 등 밝혀 자리를 잡아 앉네. 添酒回燈重開宴 첨주회등중개연
부르고, 또 청해 겨우 나타났는데 千呼萬喚始出來 천호만환시출래
비파 안고 얼굴을 반쯤 가리었네. 猶抱琵琶半遮面 유포비파반차면
꼭지를 틀고 현을 골라 두세 번 소리 내니 轉軸撥絃三兩聲 전축발현삼양성
곡조도 이루기 전에 정이 먼저 흐르네. 未成曲調先有情 미성곡조선유정
줄 감싸 쥐어 손끝으로 누르니 소리 처량하고 絃絃掩抑聲聲思 현현엄억성성사
평생에 못 다한 마음 속 한을 호소하듯 似訴平生不得志 사소평생부득지
눈썹을 내리깔고 손에 맡겨 비파 타니 低眉信手續續彈 저미신수속속탄
마음 속 숱한 사연 모두 털어 놓는 듯 說盡心中無限事 설진심중무한사
가벼이 누르고 비벼 뜯고 다시 퉁기니 輕攏慢撚撥復挑 경롱만연발부조
처음은 예상곡, 뒤에는 육요로구나. 初爲霓裳後六么 초위예상후육요
큰 줄은 소란스런 소나기 같고 大絃嘈嘈如急雨 대현조조여급우
작은 줄은 가냘픈 속삭임 같이 小絃切切如私語 소현절절여사어
소란함과 가냘픔 섞어서 타니 嘈嘈切切錯雜彈 조조절절착찹탄
큰 구슬 작은 구슬 옥쟁반에 떨어지듯 大珠小珠落玉盤 대주소주락옥반
때로는 꾀꼬리 소리 꽃가지 사이 흐르듯 間關鶯語花底滑 간관앵어화저활
샘물이 얼음 밑을 흐느끼며 흐르는 듯 幽咽泉流氷下灘 유열천류빙하탄
찬물이 얼어붙듯 줄을 잠시 멈추니 氷泉冷澁絃凝絶 빙천냉삽현응절
멈추는 그대로 소리 또한 멎었네. 凝絶不通聲漸歇 응절불통성잠흘
그러자 깊은 근심 남모르는 원한 일어 別有幽愁暗恨生 별유유수암한생
소리 없음이 있음보다 애절하네. 此時無聲勝有聲 차시무성승유성
갑자기 은병 깨져 술이 쏟아져 나오듯 銀甁乍破水漿迸 은병사파수장병
철기가 돌진하여 칼과 창이 부딪쳐 울듯 鐵騎突出刀槍鳴 철기돌출도창명
곡이 끝나 비파 안고 한번 그으니 曲終收撥當心畵 곡종수발당심화
화장하면 미인들이 질투를 하였다 하네. 粧成每被秋娘妬 장성매피추랑투
오릉의 젊은이들 다투어 선물을 주어 五陵年少爭纏頭 오릉소년쟁전두
한 곡에 붉은 비단 수없이 받았었고 一曲紅綃不知數 일곡홍초부지수
자개 박은 은빗을 박자 맞추다 깨뜨리고 鈿頭銀蓖擊節碎 전두은비격절쇄
붉은 비단치마 술로 얼룩졌었다 하네. 血色羅裙飜酒汚 혈색나군번주오
웃고 즐기며 한 해 한 해 보내느라 今年歡笑復明年 금년환소부명년
세월 가는 줄을 모르고 지냈는데 秋月春風等閑度 추월춘풍등한도
동생은 군대 가고 양어머니마저 죽고 弟走從軍阿姨死 제도종군아이사
어느덧 나이 들어 얼굴빛이 변하니 暮去朝來顔色故 모거조래안색개
문 앞은 쓸쓸하고 찾는 손도 드물어 門前冷落車馬稀 문전냉락안마희
늙어서 어쩔 수 없이 상인의 아내 되니 老大嫁作商人婦 노대가작상인부
상인은 이익보다 이별을 가벼이 여겨 商人重利輕別離 상인중리경별리
지난달 부량으로 차를 사러 갔다 하네. 前月浮梁買茶去 전월부량매다거
강어귀에 왔다 갔다 빈 배만 지키자니 去來江구守空船 거래강구수공선
배 비추는 밝은 달에 강물만 차가와 繞船月明江水寒 요선월명강수한
밤이 깊어 문득 어린 시절 꿈을 꾸면 夜深忽夢少年事 야심홀몽소년사
꿈도 울어 화장 눈물 얼굴을 적신다 하네. 夢啼粧淚紅闌干 몽제장루홍난간
비파 소리 듣고 이미 탄식 했는데 我聞琵琶已嘆息 아문비파이탄식
여인의 말 듣고 나니 다시 한숨이 나네. 又聞此語重唧唧 아문차어중즉즉
우리는 같은 천애의 불행한 신세 同是天涯淪落人 동시천애윤락인
상봉이 어찌 아는 사이만의 일이랴 相逢何必曾相識 상봉하필증상식
나는 지난해에 서울을 떠나 我從去年辭帝京 아종거년사제경
심양성에 귀양와 병들어 누웠다네. 謫居臥病潯陽城 적거와병심양성
심양 땅은 외지고 음악도 없어 潯陽地僻無音樂 심양지벽무음악
한해가 다가도록 악기 소리 못 듣고 終歲不聞絲竹聲 종세불문사죽성
분강 가까이 살아, 땅이 낮고 또 습해 住近盆江地低濕 주근분강지저습
갈대와 대숲만 집을 둘러 무성타네. 黃蘆苦竹繞宅生 황려고죽요택생
그간 아침저녁 들은 소리라고는 其間旦暮聞何物 기간단모문하물
피맺힌 두견새와 원숭이의 슬픈 소리 杜鵑啼血猿哀鳴 두견제혈원애명
봄 강의 아침 꽃과 가을 밤 달빛 아래 春江花朝秋月夜 춘강화조추월야
가끔 술을 얻어 홀로 잔을 기울이고 往往取酒還獨傾 왕왕취주환독경
어찌 산 노래와 초동의 피리 없으랴 만은 豈無山歌與村笛 기무산가여촌적
조잡하고 시끄러워 들어주기 어렵다네. 嘔啞嘲哳難爲聽 구아조절난위청
오늘 밤 그대의 비파 소리 들으니 今夜聞君琵琶聲 금야문군비파성
신선 음악 들은 듯 귀 잠시 맑았네. 如聽仙樂耳暫明 여청선악이잠명
사양 말고 다시 앉아 한 곡 들려주오. 莫辭更坐彈一曲 막사갱좌탄일곡
내 그대 위해 비파행을 지으리니 爲君飜作琵琶行 위군번작비파행
나의 말에 느꼈는지 한 동안 서 있더니 感我此言良久立 감아차언양구립
물러앉아 줄 울리니 곡조는 점점 급해져 卻坐促絃絃轉急 객좌촉현현전급
슬프기 그지없어 앞의 곡과 다르니 凄凄不似向前聲 처처불사향전성
듣는 모든 사람 소리 죽여 흐느끼네. 滿座重聞皆掩泣 만좌중문개엄읍
그 중 누가 눈물을 가장 많이 흘렸는가. 座中泣下誰最多 좌중읍하수최다
강주사마의 푸른 적삼 흠뻑 젖어 있구나. 江州司馬靑衫濕 강주사마청삼습
7-7, 소림사(少林寺) (여행-3일)
용문석굴을 벗어난 우리일행은 2시간 정도 버스가 해주는 천연 마시지를 받으며 오후 3시경에 소림사에 도착하여 이번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소림사 관광에 들어간다. 3시에 시작한다는 소림사 무술 쇼를 보기 위하여 매표소부터 뛰다시피 공연장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공연장을 메우고 있었으며 우리도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으니 이내 쇼는 시작되고 도처에서 탄성과 박수 소리가 어우러진다.
무협지나 이소룡, 성룡 등이 출연하는 무술영화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소림권법을 30여분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가지니 이 또한 이번 여행이 주는 즐거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림사의 무술쇼를 관람한 우리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탑림에 도착하는데 이곳은 말 그대로 탑의 숲이다.
큰 탑과 작은 탑이 있는가 하면 사각형 탑과 둥근 탑이 있다. 그 모양과 크기가 전부 다른데 이는 생전에 사찰에서의 지위, 도의 경지 등을 감안하여 후세인들이 수 100여 년에 걸쳐 조성하여 지금은 하남성뿐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제일가는 탑의 군락지라고 하며 역사적 가치 또한 큰 곳 이라고 한다.
탑림에서 다시 15분 정도를 오르면 숭산에 오르는 곤돌라를 탈 수 있는데 설치한지 오래 되었는지 속도는 느리고 바닥의 틈은 벌어져서 발 아래로 숭산의 경치를 즐길 수 있으니 절로 오금이 저려온다.
25분정도 걸리는 곤돌라에서 내리니 숭산 아래에 펼쳐지는 경치가 또한 장관이다. 그 옛날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들어와 왜 이곳에 사찰을 세웠는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일행의 대부분은 곤돌라 주변에서 사진 찍고, 조망하고 내려가는데 우리는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절벽으로 난 길을 통하여 1Km 정도를 더 가보기로 하였다.
이곳의 경치는 홍석협의 그것과는 또 다른 감흥을 주는데 수 백m의 화이트 대리석이 수직으로 서 있고 그 절벽의 중간에 콘크리트로 다리를 놓아 관광객들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공사의 난해하였음은 차지하고라도 눈 위와 아래에 펼쳐지는 장관이 평생에 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이다.
다시오기 힘든 이곳의 풍광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여기저기에서 셔터 누르는 소리가 나는데 그 소리조차 자연의 소리인양 아름답게 들려온다.
소림사관광을 마친 우리 일행은 다시 정주로 돌아와 홍산호텔에 여장을 푸니 밤 9시경이다 (2009, 2, 19)
소림사는 중화인민공화국 하남성 등봉 시에 있으며 중국의 오악 중 하나인 숭산에 있습니다.
중국 선종의 시조인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건너와 소림사를 창건했다고 합니다.
(禪宗은 우리나라 불교 1600년의 뿌리라 할 수 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달마 대사는 면벽 수행하는 승려들의 건강을 위해 소림오권 이라하는 동물의 모양을 따서 간단한 체조형식으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게 나중에 무술로 발전하게 된 거죠.
9파 1방이란 것은 대부분 무협지에 나오는 무사 집단이라기보다는 약간 거리가 먼 비밀결사나 도교 단체로, 일례로 유명한 무당파 같은 경우도 명 홍무제(주원장)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무협지에 등장하는 전진의 왕중양이나 구처기, 무당 조사인 장삼봉도 실존했던 인물로 무인이라기보다는 도사에 가깝습니다. 실제 구처기 같은 경우는 칭기즈칸과 만나 그와 불로장생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마교라고 나오는 명교도 실제 존재했던 비밀결사로 페르시아의 배화교(조로아스터교)의 지파입니다. 주원장도 명교의 지원으로 출세했지만 결국 종교 집단이 다 그렇듯 결집하면 무서우니까 원을 몰아낸 후 쓸어버렸죠.
소림사가 무학이 발달하게 된 것은 맹수로 부터 수도자를 보호하는 무술이 기원인 것으로 압니다.
소림사는 소림권법의 상업화가 지나쳐 선종불교의 발상지라는 본래의 의미는 퇴색해버리고 말았다고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최근 전하고 있다.
소림사권법 [少林寺拳法]이란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몸의 각 부분을 써서 상대를 공격하는 동시에 몸을 지키는 술법이다.
1982년 이연걸이 주연한 영화 <소림사>가 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조용했던 산사가 1년에 100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가는 북새통이 되고 말았다.
절 자체가 상품이 되자 홍콩과 미국의 사업가들은 소림사 `지점'을 홍콩과 로스앤젤레스에 건설하고, 승려들을 고용해 쿵후를 연습하는 장면 등을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또 이연걸의 `출세'에 자극받은 청소년과 부모들이 소림사로 몰려들어 소림사 앞에는 현재 40여개가 넘는 무술학교가 들어섰으며, 이곳에서 제2의 이연걸이나 성룡을 꿈꾸며 쿵후를 연마하는 학생이 1만5천명이 넘는다고 한다.
최근에는 무술학교들 사이에서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하고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바꾸는 등 외국인 학생 유치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소림사'가 승려들이 수행을 하는 '절'에서, 출세를 위하여 무술을 배우는 배움터로 자리매김 되는 것은 아닌지 쓸데없는 걱정을 하여보기도 한다.
탑림-소림사 관광의 정수라 할 만하다. 소림사에서 도보 10분
소림사 고승들의 흔적이 남겨져 있는, 탑림. 수많은 탑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 마치 숲과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탑림은 소림사 역대 고승들의 무덤으로 소림사에서 서쪽으로 400미터 정도 떨어진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많은 수의 탑이 있으며 규모 역시 가장 큰 고분군으로 벽돌로 만들어진 수, 당, 송나라 시대(1400년의 역사를 갖는다)의 묘탑이 240여개 정도 있으며 면적이 15000여 평방미터에 달한다.(그 중에 圓寂首座 金公 無用之 塔은 신라시대 고승의 탑이라는 설도 있음) 탑은 대부분이 7층으로 만들어 졌고 가장 높은 것이 15미터이며 형태는 정방형,장방형,육각형,원형,원주형,송곳형, 병 모양, 나팔 형 등이 있다. 불가의 법에 따라 단지 명승이나 고승의 원적 후에만 탑을 만들어 생전의 공적 등을 탑 돌에 새길 수 있었다고 한다.
탑의 형태나 층수 높이와 크기, 벽돌건축과 조각예술의 표현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에 따라 스님의 생전 불교계의 지위나 성과, 덕망의 높고 낮음을 가늠할 수 있다. 사리탑의 높이가 각 각 다른 이유는 고승의 몸에서 나온 사리 숫자에 따라 지어졌기 때문이다. 큰 탑일수록 사리가 많이 나왔다는 뜻이란다.
조성된 시기에 따라 건축양식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몇 달 씩 체류하면서 탑 연구에 매진하는 사람도 있다. 이곳 탑들의 형상과 구조는 매우 다양하고 쓰인 명문 내용도 풍부하여 불교사 및 중국 고대 벽돌건축, 필법, 조각 연구에 매우 귀한 자료가 되고 있다.
7-8, 철탑공원 (여행-4일)
오늘은 하남성에 도착한지 4일째가 되는 날로 이번 관광의 마지막 코스인 개봉시를 관광하는 날이다. 개봉시는 오래된 도시로 춘추전국시대 위(魏), 5대 10국의 양(梁), 진(晉), 한(漢), 주(周) 및 북송(北宋), 금(金) 등의 왕조가 이곳에 수도를 건립할 정도로 입지적인 조건이 매우 좋은 곳이라 한다.
오전 8시경 호텔을 나선 일행은 버스에 몸을 의지한 채 철탑공원으로 이동했다. 이 탑의 정식명칭은 개봉사탑(開封寺塔)이라고 한다. 이 탑은 북송 1049년에 건립된 13층 팔각형 탑이며, 높이는 55.58m에 이른다고 한다. 이 탑은 우리가 한국에서 자주 보던 석탑과는 달리, 벽돌을 구워서 만든 전탑인데. 탑의 표면은 멀리서 보면 갈홍 색 빛이 난다고 한다. 이 탑의 내부에는 계단이 있어 꼭대기까지 오를 수 있도록 만들어졌고, 꼭대기에서 개봉시의 모습을 둘러볼 수 있다고 한다. 만든지 1,000년의 세월을 견디며, 지금도 서 있는데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탑에 사용된 벽돌은 도자기처럼 높은 고열로 만들었기에 풍화작용에 강하고, 벽돌과 벽돌을 붙여주는 접착제로는 황토에 꿀을 섞어서 특수하게 만들었기에 1,000여년이 지난 오늘 날에도 탑의 원형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탑은 원래 16층으로 만들어 졌는데 보이는 부분이 13층이고 기저부의 3개 층은 황하의 범람 때 밀려온 토사에 묻혀 있다고 한다.
개봉시 또한 황하의 범람으로 묻혔는데 지금도 지하 6m에는 옛 개봉시가 그대로 묻혀있다고 합니다.
개봉사 탑을 구경하고 나오는 길에 이곳의 공중 화장실에 들렸는데 말로만 듣던 문이 없는 개방식 화장실이다. 다른 관광지의 화장실은 수세식으로 잘 지어져 있었으나 이곳은 아직 손이 미치지 못하였나 보다. 문이 없으니 큰 것을 보는 남자나 여자들은 서로 마주보면서 일을 처리해야한다. 한국인에게는 익숙치 않아서 조금은 민망한 일이라 여겨진다. 여자들은 왠지 화장실에 다녀와서는 서로 킥킥거리며 웃는다.
(2009, 2, 20)
7-9, 개봉부 (여행-4일)
춘추전국시대의 위나라, 5대10국 시대의 양, 진, 한, 주, 북송, 금나라의 수도였던 곳이다.
개봉은 북송이 금나라에 의해서 멸망될 때에 금나라 군대가 황하의 둑을 터뜨려 황하의 토사에 묻혔으며 현재의 개봉은 옛 개봉시의 6m 위에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
옛 유물을 보존하기 위하여 성도를 정주로 옮겼고 현재의 개봉시도 개발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고 하니 지하에 묻힌 개봉부의 유적들이 발굴 되어 거대한 개봉부의 옛 모습이 재현된다고 하면 중국은 또다시 선조들의 찬란했던 문화를 세계에 자랑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2009, 2, 20)
7-10, 청명상하원 (여행-4일)
오전에 개봉부 관광을 끝낸 우리일행은 점심식사 후에 국보급회화를 조각해 놓은 청명상하원을 찾았는데 이곳은 우리나라의 민속촌과 비슷한 곳이다.
곳곳에 송대의 문화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많은 공연장에서는 시간대별로 공연을 하고 있었다.
청명상하도는 송나라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인 개봉부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한 풍속화로 송나라시대의 화가 장택단이 그린 국보1호 회화작품이다
이곳에서는 "불쇼" "경극" "격구" "투계(닭싸움)" "소수민족 쇼" 등을 볼 수 있다.
늦은 밤에는 풍락원 호텔에서 온천욕을 하였고 숙소인 홍산 호텔에 도착하니 밤 10시 경이다.
관광도 체력이 있을 때 해야한다는 친구들의 말이 귓가를 때리는 가운데 4박5일간의 여행기를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다. (2009, 2, 20)
하남성 정주시에 도착하여 처음으로 점심식사를 한 호텔입니다.
하남성 박물관-중국의 4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데 갑골문자 진본이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지역에 살던 코끼리를 황하문명을 일으킨 원주민이 몰아내는 상직적인 상이라고 합니다.
하남성 박물관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황하유람구에 있는 염제와 황제의 상인데 2007년에 준공된 것이라 합니다.
황하의 모습인데 비도 오고 안개가 짙어서 선명하지 않지만 올려봅니다.
가장 넓은 곳은 20Km정도가 된다는 중국에서 2번째로 큰 강 입니다.
미국의 그랜드 캐년에 버금 갈 정도로 지질학적 가치가 크다는 홍석협의 모습입니다.
인위적으로 도로를 만들었는데 관광객을 유치하고자하는 중국 사람들의 정성이 보이는 듯합니다.
좋은 경치에 못지않게 금술도 좋아 보이는 친구내외 입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맑은 계류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멋진 경치입니다.
좁은 공간을 통과하면 웅장하고 영롱한 계류가 쏟아지는 넓은 공간이 나타납니다.
선경에서 속인들이 포즈를 취해봤습니다.
이런 곳이 선경이 아닐까?
한 장소에 선경은 여러군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다리 난간을 통해서 홍석협을 보았습니다.
담폭협 입구입니다.
담폭협의 멋진 전경입니다.
용봉벽인데 1곳만 트이고 3곳이 수백m의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용봉협의 멋진 장관입니다.
낙양에서 묵었던 호텔입니다.
첫댓글 중국 중부지역을 여행 하셨군요... 조목조목 정리가 잘 되어있어 공부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항상 건강 하세요 ... 사진 몇장 첨부하셨으면 더 좋았을텐데...
이제 거의 마무리 되었습니다.
쓰신글을 즐겁게 보고 갑니다! ㅎㅎㅎ
귀하신 분이 들려 주셨군요, 반갑습니다. 이글이 도화선이 되어 하남성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밀물처럼 들어가 좋은 경치와 후한 인심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
선경이라... 그리 어려운 문자를 쓰시면 저는 이해가 어렵고 사전을 뒤적여야 합니다 샘~ ...친구분과 부부동반 여행 참 멋지십니다.
쥔장 고생마낫습니다 마은공부 하고감니다..
여행은 항상 즐거운 것 같습니다. 다음엔 좀 더 재미있는 시간이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