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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공프로젝트
"모두가 이웃" 헌신적 봉사 광주형 노블레스 오블리주
10. 이주민과의 동행
2017 공ㆍ프 광주이주민건강센터 사람들
의료 사각지대 이주민 위해
2005년 6월 진료활동 시작
입력 : 2017. 10.10(화) 최동환 기자
https://www.youtube.com/watch?v=O2-hoaIBaf0&t=238s
지난달 24일 오후 1시 광주 광산구 우산생활건강지원센터 3층 30여㎡ 공간에는 외국인 노동자 등 50여명이 비좁게 앉아 접수를 기다리고 있었다.
쉬지 않고 일하고 피로가 겹쳐 허리가 아프다는 몽골 노동자, 이가 아픈데 치과에 갈 시간이 없어 고통받는 아프리카 노동자, 간이 아프다는 다문화 가족, 감기약이 필요하다며 찾아온 유학생 등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의학과와 한의학과, 치과, 약학과, 진료상담실 등을 갖춘 이곳에는 매주 일요일 전국에서 찾아온 외국인들로 북적인다. 진료는 오후 2시부터 시작되지만 치료의 손길이 절실한 이주민들은 2, 3시간 전부터 와서 기다린다.
국적과 인종을 뛰어넘어 인도주의를 실천하는 민간 비영리 의료봉사단체인 광주이주민건강센터다. 고향을 떠나 한국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이곳은 오아시스다.
의료 사각지대에서 펼치는 인술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200만명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4%에 달하는 수치다.
광주의 경우 이주민 수는 2015년 1월 기준 2만6536명으로 광주시 전체 인구의 8.5%에 달한다. 불법 체류자와 단기 체류자까지 포함하면 3만여명의 외국인이 광주에 머무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적 분포는 중국, 베트남, 필리핀, 캄보디아 등 아시아 국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들이 한국과 광주를 찾는 이유는 일자리 때문이다. 1960~70년대 대한민국의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독일에 파견돼 산업역군으로 조국 근대화의 밑거름이 됐던 광부와 간호사들처럼 이들도 각자 고향땅에서 '코리안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왔다.
이주노동자들은 내국인이 꺼리는 위험한 일자리를 메우며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구성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건강을 돌볼 수 조차 없는 이주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심각한 사회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센터가 문을 열게 된 이유다.
지역 의료인들은 이주노동자, 이주여성, 새터민 등 의료 사각지대 소외계층이 늘어나자 지난 2005년 6월 26일 광주 광산구 산정동 허름한 상가 2층(60㎡)에 '광주외국인노동자건강센터'를 만들었다. 당시 광주기독병원, 광주한의사협회. 광주가정의학과의사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광주전남지부,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광주전남지부 소속 의료인들이 참여했다. 선교단체, 이주민단체, 시민단체 회원들도 건립에 힘을 보탰다.
비좁은 진료소에 환자들이 넘쳐나자 2008년 광주 광산구 우산동의 한 상가로 진료소를 옮겼지만 상가 임차료 문제로 어려움을 겪다 지난해 11월 광주 광산구 우산생활건강지원센터 3층에 진료상담실까지 갖춘 안정적인 터전을 마련했다. 이 때 명칭도 광주이주민건강센터로 변경됐다.
센터는 주로 일요일(오후 2~6시)에 문을 연다. 6시에 일이 끝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평일에는 병원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부터는 목요일 야간(오후 6~8시)에도 진료를 시작했다. 환자들의 시간 선택의 폭을 넓혀주기 위해서다. 아직은 시작단계지만 이주민들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12년간 35개국 3만여명 진료
센터가 12년 동안 남긴 족적은 크다. 취재진이 찾은 이날 광주이주민건강센터의 일요진료는 610회째였다. 설날이나 추석 명절을 제외하고 매주 일요일 오후 4시간 진료가 중단된 적이 없었다. 센터가 매주 일요일 문을 활짝 열고 이주노동자들을 무료 진료한다는 사실이 전국에 알려지면서 서울과 경기, 충청지역 이주노동자들까지 '원정 진료'를 받으러 온다.
센터가 이날까지 진료한 이주민 환자는 중국, 베트남, 네팔, 몽골, 러시아 등 35개국 3만2954명. 올해 시작한 28차례의 평일진료에 찾은 환자 116명까지 합치면 3만3070명에 이른다. 약을 무료로 제공한 것도 1만5000여건에 달한다.
센터가 이룬 또 다른 성과는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 개선이다. 이주민들은 병원으로, 쉼터로, 만남의 장소로, 인간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느끼는 공간으로 이곳을 찾는다. 센터에서 치료를 받은 이주민들은 고국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한국에 남기도 하지만 이들은 센터와 자원봉사들의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
센터 도움으로 일상생활에 복귀한 베트남 출신 30대 여성 A씨는 '한국 예찬가'를 부를 정도다. 2년 전 한국에 입국해 미등록 이주민 신세로 일을 하던 A씨는 임신을 하게 됐고, 아이를 위해 300만원을 모았지만 몸에 문제가 있어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만 했다. 불법체류 신세인 그는 600여만원의 병원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센터를 찾았다. 다행히 센터의 도움으로 아이가 태어났지만 한 달 만에 출혈이 심해져 자궁적출 수술을 받아야 했다. 이번에도 센터가 광산구와 사회복지기관 등을 연계해 신생아를 돌보게 하고 의료자금 지원 등을 받았다. 부녀회 등에서도 분유 등의 지원이 들어왔다. 현재 A씨는 퇴원해 고국으로 돌아가 아이를 기르고 있다.
박성옥 광주이주민건강센터 사무국장은 "가끔씩 A씨로부터 연락이 온다. 아이도 잘 기르고 있고 한국에서의 따뜻한 온정이 그립다고 한다. A씨가 사는 마을에선 한국이, 특히 광주가 천사의 도시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센터는 초기에 이주노동자들의 응급 질병치료를 했지만 점차 질병상담, 치료병원 연계, 심리상담 등으로 업무를 넓히고 있다. 일부 외국인 근로자가 진료 도중 심각한 질환을 앓고 있는 것이 확인되면서 광주시와 전남대병원 등 51개 기관을 통해 도움을 주고 있다. 최근에는 이주민의 특이 질환과 전염병에 대한 사례 관리도 시작했다.
자원봉사자 참여와 후원이 버팀목
센터는 자원봉사자의 헌신적인 활동으로 운영된다. 의학과, 한의학과, 치과, 간호과, 약학과, 행정, 통역, 상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약 2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전문의, 전문대학원생, 대학생, 약사, 간호사, 치위생사, 일반 직장인, 이주결혼여성, 고려인 3세 등 다양하다. 후원금 상당 금액은 자원봉사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이홍주 센터 이사장은 "광주시와 광산구에서 일부 지원을 받고 있지만 대부분은 자원봉사자의 참여와 후원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자원봉사는 센터의 가장 큰 버팀목이자 저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 이들을 가족처럼 포근하게 감싸주기 때문이다.
정성국 센터장은 "센터를 찾는 외국인 근로자 중 일부는 농촌의 하우스, 축사에서 일하는 일용직이라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근무시간에 병원을 가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결혼이주여성이지만 남편이 동의하지 않아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며 "가장 열악한 상황에 놓인 이주노동자들에게 가족처럼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게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이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청소년 봉사자의 참여가 늘면서 센터가 초ㆍ중ㆍ고교생들의 봉사활동 공간이자 미래 직업을 체험하는 자리가 되고 있다. 청소년들은 자원봉사를 통해 인류애와 인도주의를 배우고 있다.
센터 도움을 받은 이주민들이 자원봉사에 나서는 사례들도 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통역 자원봉사로 나선 우즈베키스탄 출신 엄밀라나 양은 "지난해 말 몸이 아파 센터를 찾았는데 다른 이주민들이 한국어가 서툴어 아픈 곳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걸 보고 안타까워 통역 봉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센터에서 받은 나눔을 실천하는 이주민들도 있다. 지난해 여름 말기 암 확진 판정을 받은 60대 베트남 남성은 센터로 진료를 받으러 올 때마다 일하던 농장에서 키우던 호박과 상추 등을 검정 비닐봉투에 담아오기도 했다. 진료에 대한 작은 고마움의 표시였다.
하남산단에서 일하는 자스카란싱 등 4명의 인도 노동자들은 지난해 근골격계와 피부병 등 이상증세를 느껴 센터를 찾아 지속적인 치료를 받은 후 같은 처지의 이주민들을 돕기 위해 모임을 결성, 1년에 두 차례 정도 음료수 300개 가량을 사와 나눠주고 간다.
이주민 종합건강지원센터로 발돋움
센터는 이제 더 큰 꿈을 꾸고 있다.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종합건강지원센터로의 발돋움이다. 이주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1차 의료기관으로서 역할은 물론 이주민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주거, 작업환경, 생활습관, 의료제도, 인권문제 등 전문적인 '어젠다' 개발까지 꿈꾼다. 단순한 봉사단체의 위상을 넘어 전문적인 NGO 단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게 많다. 지난해 11월 신축 건물로 이사 왔지만 여전히 환자들로 꽉 찬다. 다행히 이달부터 옥상에 증축하기로 했다. 통역봉사 인력도 필요하다.
공기관이 의료사각지대를 더욱 책임 있게 돌봐주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광주시가 위탁운영을 맡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법적 근거는 마련됐다. 지난해 '광주광역시 외국인 주민의 건강증진에 관한 조례'가 제정됐기 때문이다. 지역에 거주하는 외국인의 건강권 확보와 의료 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 만든 조례다.
센터 사람들이 이같은 큰 꿈을 꾸는 건 한국 경제에 중요한 동력이 되는 이주민들도 지역사회를 함께 이끌어가는 동행자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최동환 기자 dhchoi@jnilbo.com
광주이주민건강센터 자원봉사자들 "나에게 이주민은" ?
나에게 이주민은 '함께 행복하게 살아야 할 이웃들'이다. 문화와 사상, 종교가 다를지라도 자주 만나게 되고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기쁨을 나누며 몸이 아프거나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면 함께 돕고 위로할 수 있는 이웃이다. 지난 1991년부터 광주기독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국내외 각종 의료봉사 활동을 통해 이주민 건강권에 관심을 갖게 됐다. 타문화권 이주민을 이해할 수 있게 됐고, 한 사람 한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이들에 대한 섬김과 봉사를 통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어서 감사함을 느낀다.
나에게 이주민은 '또 다른 나'다. 나도 외국에 나가면 약간 이질감을 느낀다. 이주민은 단지 좀 먼 곳에서 온 사람일 뿐이다. 다소 어색하고 언어나 문화, 피부색 때문에 이질감이 느껴질수 있으나 똑같은 사랑의 감정을 지닌 우리의 벗이자 나 자신이다. 한국 경제에 중요한 동력이 되는 이주민들도 지역사회를 함께 이끌어가는 동행자로 바라봐야 한다. 그들이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작은 손을 내밀어 주는 분위기를 조성하면 우리 모두 행복한 지역 공동체를 만들수 있다. 봉사활동은 최소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싶은 마음으로 하고 있다.
나에게 이주민은 '현재는 이웃사촌, 언젠가는 친구'다. 이웃사촌은 말 그대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로 사회공동체의 한 일원이다. 하지만 이주민들이 한국에서 노동자로 산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장시간 근무, 모호한 공사 구분, 권위적인 위계질서 등 한국인에게조차 고달픈 노동문화인데, 한국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이주 노동자에게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는 내가 이주민들을 위해 봉사활동하고 도움을 주고 있는 이웃사촌에 머물고 있지만 앞으로는 이주민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공유하는 친구가 되고 싶다.
나에게 이주민은 '이웃사람'이다. 이미 이주민과 다문화가정은 이방인이 아니라 동네 골목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웃이고 친구다. 낯선 타국에서의 삶이 녹록치 않다는 것은 우리가 해외여행을 하다보면 쉽게 느낄 수 있다. 언어와 문화 차이로 많은 불편함을 느끼는데 특히 몸이 아팠을 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면 타국살이의 서러움은 더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정착한 이주민도 마찬가지다. 건강보험 때문에 아파도 참으면서 생활하는 이주민들이 많다. 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담은 약 한 봉지가 위안이 된다면 그게 나의 기쁨이고 행복이다.
나에게 이주민은 '한걸음'이다. 다문화가정 상담을 하다보니 사회 적응을 힘들어하는 부모와 학교생활을 힘들게 보내는 자녀들을 많이 보게 됐다. 다양한 국가에서 온 이주민들의 공통점은 한국 사회에 잘 적응하기 위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딱 한걸음만 행동하는 것이다. 실생활에 필요한 한국문화를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운전면허나 의료보험 등 생활 법률적인 정보들을 제공하는 일이다. 센터에서 이주민들의 건강 지킴이와 일상생활 적응 도우미로 일하면서 '사람은 참 아름답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나에게 이주민은 '일상'이다. 지난해 9월부터 센터에서 상근을 하다보니 매일 이주민들을 만나게 된다. 매주 일요일 진료가 있는 날 뿐 아니라 평일에도 이주민들이 이 곳을 찾아 진료 관련 문의를 한다. 처음엔 이주민이 낯설고 부정적으로 느껴졌는데, 지금은 나랑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사람이란 걸 느끼게 됐다. 특별히 잘난 것도 모자랄 것도 없는 평범한 삶을 살고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이웃으로 다가왔다. 나도 이들에겐 이주민일 뿐이다. 이주민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를 버리고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게 되면 밝은 사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
나에게 이주민은 '나와 같은 사람'이다. 나도 우즈베키스탄에서 와서 현재 한국에 정착해 살고 있다. 광주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이나 다른 나라 이주민들은 한국어가 서툴러 생활하면서 불편한 것들을 많이 겪는다. 특히 병원이나 약국 등 의료시설을 찾아가도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아픈지 설명하기 어려워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통역 자원봉사를 통해 도움을 주고 싶었다. 센터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낀다. 센터가 없었다면 이주민들이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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