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 처럼(2024.9.22.)
아가 4:1-5
할렐루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임재하셔서 우리 예배를 받으십니다. 오늘도 주의 전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라도 삶의 현장에서 상처와 상한 마음을 가지고 오셨으면 말씀 듣다가 위로와 치유함을 받으시고 질병과 싸우는 중이라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만나서 치료받는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삶이 힘들고 지쳐서 오셨다면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새 힘을 얻으시기를 축복합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기도중에 있는 것이 있다면 응답받는 은혜가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삶이 해결되고 성령이 충만하여 기쁨과 감사와 웃음이 넘쳐나는 유쾌한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헬라어로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가페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아가페 사랑은 가치에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게 가치를 창조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동참할 때 숨겨져 있고 가려진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사랑은 현재를 비추는 영원한 미래의 불빛이다. 따라서 사랑은 전혀 모양을 바꿀 필요가 없다’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미완료 시제입니다. 마치 꽉 채워 넣어야 하는 그림에서 한 칸이 비어있는 듯한 우리 인생을 주님이 오셔서 채우실 하나님의 거룩한 미완료 시제입니다.
왕상11:3절은 솔로몬 왕은 700명의 아내와 300명의 첩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대부분 절세미인들입니다. 그런데 그는 시골 여인, 술람미가 가장 아름답다고 하였습니다. 아름다움이 현실로 이어지려면 우리 신체 자체가 지속적으로 아름다울만한 조건을 내놓아야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아름다움이란 처음에는 있었던 것을 아실 것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유일하게 한 때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 아름다움을 계속 누리지 못하고 추방 당했습니다. 이때로부터 인간들이 아름다움을 논하는 것은 모두 거짓말입니다. 오히려 아름답지도 못하는 우리 자신을 기어이 아름답게 붙잡으려고 그 모습 자체가 더욱 징그럽습니다. 이처럼 육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존재인양 우리에게는 아름다움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가 없습니다.
고전15장에 현재 우리가 지니고 있는 육신은 썩고 약하고 욕된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모두가 땅의 저주를 벗어나지 못해서 얻어진 속성입니다. 땅에 속한 자는 썩어질 몸만을 간직하며 일생을 마쳐야 합니다. 아름다움이란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요?
예를 들면 이런겁니다. 석양이 지닌 들녘에 멀리 서 있으면 황금빛 노을을 그 사람을 덮쳐서 그 사람은 간데없고 온통 황금빛 투성이가 되는 겁니다. 어깨에, 등에 황금빛을 가득 짊어지게 됩니다. 이럴 경우, 그 사람의 자질이나 크기나 덩치 같은 것은 구분은 무의미합니다. 그냥 황금빛 덩어리가 되어 나타날 뿐입니다.
계21장에 보면, 빛의 궁전이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온 천지가 다이아몬드 및 11보석으로 각종 색채를 만들어낸 만들어진 성입니다. 이 성 안에서는 빛만이 운동합니다. 빛들만 설칩니다. 온통 빛이 비추고, 되비추고 연이어 지속적으로 반사되어 춤추는 빛의 파티장입니다. 이런 예루살렘 성 안에서는 인간에 내뿜는 빛은 의미가 없습니다. 태양빛도 소용없고 달빛도 소용없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 자체가 빛의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개별적인 성과는 통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주어진 세계입니다.
여자아이들 중에서 어렸을 때는 아주 예뻤는데, 크면서 좀 못생겨지는 아이가 있는 가하면, 어떤 여자아이는 어렸을 때는 못생겼는데, 크면서 아주 멋있게 변하는 아이도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특히 대학 1학년에 입학 했을 때는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해서 촌티가 나던 학생들이 3,4년이 되어 멋을 부리면서 더 예뻐지기도 합니다. 여성분들은 자신을 돌아보면 맞을 것입니다. 한참 멋부리고 다닙니다. 거기다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는 더 당당하고, 자신감이 생기면서 풍성하게 아름다워질 때가 많습니다. 여러분이 다 겪었던 일일 것입니다. 그러니 상주감리교회에서 자란 아이들이 그렇다라고 한다면 뭐라고 하지말고 ‘저게 애인이 생겼구나’하면 됩니다.
술람미 여인은 어렸을 때, 대표적으로 못생긴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하나님을 좋아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신앙적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고,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로 연단을 주시는 바람에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외모는 더 초라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술람미 여인이 신앙적으로 성숙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너무나도 아름답게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가치를 되찾게 된 술람미 여인을 솔로몬이 보았을 때,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보석을 보게 되는 것처럼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즉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의 모습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목사님이 이번에 감독선거운동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자랑도 했기 때문에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이 신앙생활 멋지게 아름답게 하셔서 연회나 지방에 나가면 사람들이 상주감리교회 성도라고 하면 무조건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어떤 여인은 부분적으로는 아름답지만, 전체적으로는 별로 아름답지 못한데, 술람미 여인은 부분적으로도 아름다웠기에 도무지 흠잡을데가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은 오늘날 예수 믿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보여 주는 모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게 되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보기에는 광신적인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하나님께서 연단과 경제적 어려움까지 주셨을 때는 침체되어 정말 볼품없는 모습을 하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 세상에는 돈을 많이 벌어야 멋을 낼 수 있는데, 돈을 벌지 못하니까 몸치장도 하지 못하고, 옷도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우울증이나 비만과 같은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했을 때, 다른 사람들 보기에 추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신앙을 인정해 주셔서 현실적 축복의 열매로 나타나게 될 때, 한순간에 영혼과 육체 전체가 최고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햇빛처럼 빛나게 됩니다.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아가서를 읽으면서 가장 민망하게 생각하는 것이 곧 오늘 본문처럼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의 얼굴이나 신체적인 모습 하나하나를 뜯어보면서 예찬하는 부분입니다. 특히 동양적 사고방식으로는 요즘 같은 현대 남성이 아닌 이상, 여성의 얼굴이나 외모를 부분적으로 하나씩 뜯어가면서 칭찬하는 것은 대단히 점잖지 못한 일에 속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의 얼굴이나 외모를 찬찬히 뜯어보면서 칭찬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의 아름다움에 대해 차근차근 확인하듯이 표현하는 이유는, 그녀의 신앙에 이끌려 이성적으로만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아름다웠다는 것을 확인하는 절차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관찰하는 부분은 그녀의 얼굴과 상반신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중동 지방 여인들은 남자를 만날 때, 항상 머리에 검은 수건을 쓰기 때문에 솔로몬이 볼 수 있었던 것은 술람미 여인의 수건을 쓴 모습이었습니다. 여기서는 상반신만 노래하는 것을 보면, 아마 가까운 곳에서 의자에 앉아 자세하게 얼굴을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솔로몬이 여인의 신체 전체를 노래하는데, 그때는 술람미 여인이 춤을 출 그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배경을 알고 본문을 살펴보면 결코 외설스럽거나 점잖지 못한 내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왜 그토록 한 여인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한 찬사가 터져나오는 겁니까? 그것은 여인이 나름대로 아름다운 기준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여인을 아름답게 보는 남자의 이목이 아름다운 겁니다. 일방적인 예찬입니다. 남편이 가진 영광에 자신의 여인을 초대하고자 하는 겁니다. 보통 인간들은 차가운 죽음의 기운이 당기고 있지만 우리 상주감리교회 성도에게는 부활의 따뜻한 기운이 우리로 하여금 부활의 세계로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이 당김이 사랑입니다. 우리를 두고 쏟아내는 예수님의 찬사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아름다움을 얻어내고자 따로 조건을 만들지 마세요. 그것은 소용없는 처사입니다. 우리의 몸은 흙에 속한 저주받은 양상입니다.
아름다움이란 우리 몫이 아닙니다. 이미 물 건너 간 처지입니다. 예수님의 아름다움이란 하나님 앞에서도 소멸되지 않는 아름다움입니다. 우리의 그 어떤 조건도 묻지 아니하시고 자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의 아름다움으로 전환시켰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석구석 속속들이 아름다움이 누락됨이 없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목사님도 솔로몬왕과 같은 마음으로 성도들을 바라봅니다. 솔로몬은 왕은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 술라미여인의 신체를 하나 뜯어보면서 자신이 던지는 아름다움을 덧붙일 만반의 준비를 해두고 있습니다. 눈부터 시작해서 유방까지 이어집니다. 이 세상에서 비공격적이고 순하디 짝이 없는 동물을 동원해서 모두 여자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재료로 사용되었습니다.
아가서는 솔로몬이 노래한 것으로서 아가는 시중에 시라. 이 아가서를 솔로몬왕이 술람미 여인을 사랑하는 것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솔로몬왕이 주님에 대한 사랑을 기록하기 위해서 술람미 여인과의 관계로 표시한 것입니다. 아가서는 세상 경험이 많고 세상에 대해서 가장 지혜를 가진 솔로몬에게 술람미 여인에 대해서 어떻게 대접을 했으면 좋겠다는 하는 것을 솔로몬에게 상상하게 해서 주님이 상주감리교회에서 예배드리는 성도에 대해서 무엇을 요구하는가 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도의 여덟 가지 신앙 인격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신랑되신 예수님, 신부인 성도, 예수님의 피로 구속 받은 성도가 단장해야 아름답게 보시는지를 본문에 말씀을 하셨습니다.‘내 사랑은 어여쁘고 어여쁘다’최상급 지고의 사랑을 말합니다. 성도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하는 것을 말씀해 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듣고 배움으로 여덟 가지 성도의 아름다운 신앙의 인격을 단장함으로 ‘내 사랑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어여쁘고 어여쁘다’하는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너울 속에 있는 네 눈이 비둘기 같고’
사람들을 처음 볼 때에 어디를 쳐다봅니까? 눈을 쳐다보고 말을 합니다. 눈을 안쳐다보고 말하게 되는 것은 싫다는 의미도 담겨져 있습니다. 눈을 보고 말하면 진실인지 아닌지를 대충은 알 수가 있습니다. 이번에 감독선거운동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날때마다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악수하며 인사를 하면 눈동자가 흔들리거나 쳐다보지 않는 사람들은 아니다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눈을 맞주치고 웃으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은 내편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눈을 쳐다보고 말하면 대충 그 사람의 태도를 알 수 있습니다. 눈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솔로몬은 너울을 쓰고 있는 술람미 여인의 눈이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어여쁘다’라고 칭찬했습니다. 사실 그녀에게는 이런 칭찬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지금까지 연단만 받느라고 이런 소리를 들어 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눈은 마음을 말씀합니다. 생각이나, 사상, 정신을 말합니다. 비둘기 같다는 것은 지조가 있다. 정절이 있다. 깨끗하다. 성결을 말씀합니다. 너울 속의 네 눈이 비둘기 같다는 말은 성도는 예수님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사죄, 칭의, 화친을 받았으니 어떤 고난, 환난이 닥쳐와도 예수님의 대속을 받은 자로서의 생각, 사상, 정신이 요동치 않고 변동치 아니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 한 분만 바라보는 것으로 전부를 삼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죄를 지을 수 없고, 의를 양보 할 수 없고, 하나님을 배반 할 수 없는 자로 살겠다. 순종하는 자로 살겠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살겠다 하는 마음, 이 생각, 이 사상, 이 주의, 이 정신을 어떤 환난 핍박이 와도 요동치 않고 주님 한 분으로 전부를 삼고 살겠다는 신앙의 지조, 절개, 이 신앙의 정절이 변동치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인들 보면 조금만 되도 신앙의 성결을 빼앗깁니다. 기분만 나빠도 신앙의 정절을 양보하고, 우리는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입었으니 어떤 형편 환경이 와도 주님의 구속을 입은 자로서의 성결을 빼앗기지 말시기 바랍니다. 상주감리교회에서 저랑 같이 신앙생활 하는 성도여러분은 신앙의 절개를 지켜야 합니다.
눈은 마음을 말합니다. 비둘기 같다는 것은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어떤 것으로 인해서 변동이 없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예수님의 대속 안에서 구원 받는 사상, 성결 마음을 변동치 말고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에게 나아가는 신앙의 인격으로 단장하시기 바랍니다. 그 미를 우리가 갖추어야 합니다.
2.‘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너울 밖으로 흘러나온 술람미 여인의 머리털은 아주 새카만 색이었습니다. 머리털의 아름다움입니다. 무리 염소 같구나 길르앗 산은 땅이 무성하고, 그곳의 염소는 검고 살이 쪄서 정답게 누워 있는 것을 말합니다. 건강미가 넘치는 자연 미(美)인이었다는 뜻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요즘 여성들 중에서 미인(美人)이라고 하면, 지나치게 마른 체형이고, 실제로는 골다공증이나 위장병이나 속은 곪아 있거나 얼굴은 수술해서 뜯어고친 사람이 많은데, 술람미 여인은 전혀 손을 대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미인(美人)이었습니다. 이것은 술람미 여인이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는데도 저절로 느껴지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사욕주의, 이기주의였지만 불목이 있었지만 가는 곳마다 자기를 희생의 제물로 바쳐서 화평을 옹호 하는 일을 합니다. 자기를 희생하지 않는 화목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해 화목 제물이 되셨습니다. 엡2:15-18절‘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했습니다.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평화를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화를 전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는 항상 십자가를 지고 화평의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고후5:18절‘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상주감리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성도는 화목을 가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화평은 ‘화’는 하나 되는 것이요, ‘평’은 동등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올바른 이치를 가지고 단합하게 하는 것입니다. 올바른 이치를 가지고 서로 상호 협력하면 생명과 평강이 되는 것입니다. 불목을 가지면 멸망이 되는 것입니다.
히12:14절‘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나와 가깝고 친근한 사람은 화평이 잘 되요, 나와 거리가 먼 사람은 화평은 잘 못 이룹니다. 교회도 보면 끼리끼리가 있어요. 화평이 안 됩니다. 나와 먼 사람, 원수까지도 우리는 그 사람과 화평을 이루어 가는 것이 성도의 아름다움입니다. 마5:23-24 ‘그러므로...드리라’ 형제와 불목 해 놓고 하나님 앞에 예배 드리면 안 받습니다. 형제와 화목하고 예물을 드려야 하나님이 받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은 다 믿음의 형제들 아닙니까? 그런데 불목을 만들어 놓고, 미워하고 예물을 드릴 때 하나님이 받겠습니까?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 믿는 성도는 가는 곳마다 화평을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00 교회에 어느 여 집사는 성경퀴즈는 왕이고, 집에 가서 시어머니와 싸움도 왕이라. 너 교회 나오지 말라. 나로 인해서 화평한 직장, 교회,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 주관 자기 중심을 다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화평을 이루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가지런한 무리 염소, 잘 정리 정돈된 화평의 정돈, 대속의 사랑으로 화평을 단장해야 합니다. 이것을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합니다. 모든 성도들로 더불어 화평을 이루는 아름다운 덕을 단장하시기 바랍니다. 돈 많이 가진 것 아름다움 아닙니다. 그런데 술람미 여인의 입이 움직여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솔로몬이 하는 말을 듣고 웃는다고 이빨을 살짝 보였든지, 아니면 솔로몬이 하는 말에 대답한다고 입술을 움직였던 것 같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을 때도 차분하고, 매력적이었는데, 입을 움직이니까 더욱 매력적이었습니다.
3.‘네 이는 목욕장에서 나오는 털 깎인 암양같구나’
어떤 여자는 입을 다물고 있을 때는 예쁜데, 한번 웃을 때는 소리를 내어 천박스럽게 괴성을 지르면서 웃거나, 입을 열어 말하면, 할 소리 못할 소리를 마구 지껄이는 바람에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술람미 여인은 자기 통제가 잘 훈련되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웃을 때도 조용하게 웃는데, 그 이빨의 모습이 얼마나 가지런한지, 모두 쌍태를 낳은 염소가 아니라, 미쳐 날뛰는 멧돼지 같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여자의 미소는 차가운 미소나 남을 경멸하는 냉소적 미소가 아니었습니다.
이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습니다. ‘네 이는 목욕탕에서 나온 ---같구나’이는 음식을 씹어 먹는 지체인데 신앙인격의 양식을 부지런히 먹는 것을 아름답게 보십니다. 이는 새끼를 위해서 쉴새 없이 부지런히 먹어야 하고, 목욕장에서 나오니 부지런히 먹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양이 목욕한 것처럼 내 자신이 내 믿음의 성결케 하기 위해서 성도의 신앙 인격의 양식을 열심히 먹어야 합니다. 읽고 배우고 그 말씀대로 부지런히 행합니다. 털을 깎아 주인을 부요케 하여 만족케 하기 위하여 배운 것을 부지런히 실행을 합니다. 쌍태 새끼 낳아---자기 신앙의 후배의 양식을 주기 위해서 성경을 공부하고, 실행하는 것이 성도의 아름다움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항상 자신의 성결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믿음의 자녀를 위해서 영감과 진리를 명상하고 실행을 하도록 합시다. 항상 성경을 가지고 다니고 시시 때때로 읽습니다.
4.‘네 입술은 홍색 실같고’
웃는 입술은 홍색실 같이 붉었고, 너울 속의 뺨은 석류같이 붉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는 부끄러워하며,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고, 열정이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아름다움이 회복될 때는 차갑게 식어있는 냉소주의가 치료될 것입니다. 냉소적인 사람은 웃어도 얼굴이 석류같이 빨갛게 되지 않습니다. 언제나 푸르죽죽하게 식어 있는 모습으로 다른 사람에게 냉소적인 웃음을 보일 뿐입니다. 술람미 여인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아름다운 감정이 살아난 것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그러면서도 술람미 여인은 당당했습니다.
네 입술은 홍색 실같고, 홍색 실같이 붉다는 것은 성도의 충성을 말합니다. 입술의 아름다움입니다. 네 입술은 홍색 실같고, 홍색 실같이 붉다는 것은 성도의 충성을 말합니다. 주님이 어떤 직무를 주셔서 충성으로 감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이 말씀하는대로 순종하면 언제나 강건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의 힘, 대속의 힘으로 단장하여 인애로 대속하는 것이 성도의 아름다움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가정에서도 자기 맡은 일에 충성으로 잘 감당해야 합니다. 직장, 교회. 입술이 파란 사람은 너 병들었나 합니다. 죽은 사람의 입술은 시퍼렇다고 합니다. 혈액 순환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들의 입술은 붉습니다. 건강하다. 신부가 결혼 할 때 루즈를 어떤 것을 바르지요. 평소에는 이상 한 것을 바르나 결혼할 때는 빨간 것을 바릅니다. 건강하다는 표현입니다.
교회에서 맡겨 주신 주님의 일, 교회학교 교사가 가르치고, 전도하는 교사는 입술이 홍색 실같이 붉은 사람입니다. 속장이 자기 속회식구를 충성으로 기도하고, 심방하고 가르치는 사람은 홍색 실같이 붉은 사람입니다. 홍색 실은 가느다란 실입니다. 주님의 피로 구속 받은 성도의 신앙은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불의하니라.’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하게 됩니다. 나는 적은 물질이지만 주님의 구속 사역에 힘쓰겠다는 것입니다. 물질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기도로 충성하세요. 봉사하는데 충성하십시오. 그것이 성도의 아름다움입니다. 충성은 인내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이 구원이 주일 지키는 것이 석 달만 주일 잘 지키면 구원이 완성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 앞에 가는날 까지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의 아름다움 미입니다.
5.‘네 입은 어여쁘고’
입의 아름다움입니다. 입이 어여쁘다는 것은 자기의 말한 것과 행위가 일치되는 것과 자기가 맡은 것을 충성되게 감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도의 말은 진실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 구원하는 말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의 말이 거짓말이 되고, 외식하는 말이 되면 그 입이 어여쁘지 못한 입이 됩니다. 입 모양이 바르지 못합니다. 진실되다. 참되다. 예쁜 말을 해야 합니다.
11절에 ‘네 입 어여쁘고’ 그 말이 꿀방울의 말, 꿀과 젖의 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말, 진리와 영감의 말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보시기에 입의 아름다움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말을 합시다.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했습니다.
6.‘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뺨의 아름다움입니다. ‘너울 속에 석류 한 조각 같구나’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에 감격하여 의로운 행동을 말합니다. 석류는 겉으로는 울퉁불퉁하여 별 모양이 없으나 속에 가득차 있고, 열매와 열매 사이는 서로 연결되어서 속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남이 모르는 정신, 희생, 봉사가 들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 속에 마귀가 가득하고, 사람이 보기에는 선이라고 하는데 속에는 시기와 악이 가득 차 있다는 성도의 아름다움은 아닙니다. 우리 주님 보시기에 감추어져 있는 의로운 행위를 많이 가지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나는 사람의 마음과 뜻을 살피는 자니라. 숨은 의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7.‘네 목은 무기를 두려고 건축한 다윗의 망대 곧 방패 천 개, 용사의 모든 방패가 달린 망대 같고’
예루살렘에 있는 여인들 중에서 솔로몬을 사랑하는 여인도 많았 을 것입니다. 그런 여인들의 사랑은 무엇인가 당당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이 왕의 아들이고, 권력자이기 때문에 비굴하게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술람미 여인은 신기한 것이 솔로몬 앞에서 조금도 비굴하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했습니다. 얼마나 그 사랑의 모습이 당당한지, 일천 대의 방패를 달아 놓은 다윗의 망대와 같았던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구결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상대방을 사랑하는 목적이 나의 유익을 구하는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을 도와주고 싶은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구차하게 사랑을 구걸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즉‘내가 필요하지 않으면 얼마든지 나는 떠나주겠다’는 식으로 당당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술람미 여인의 사랑에는 솔로몬의 가슴을 짜릿하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목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거울을 보며 얼굴의 주름을 신경 쓰지만, 목주름 또한 우리의 외모와 분위기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랍니다.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서 경험하는 피부의 변화 중 하나는 목에 생기는 주름입니다. 이러한 주름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비수술적 시술 옵션을 택합니다. 필러와 보톡스등등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또 처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큰 병이 찾아옵니다. 주름살이 늘어가도 그것은 나이를 먹어감에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아름다움인 것입니다.
‘네 목은 망대 같구나’ 말씀을 했습니다. ‘망대 같구나’망대는 적군을 살피는 곳입니다. 용사가 있으니 원수가 이 망대를 넘지 못하고 여기서 절단이 납니다. 내 밖에 있는 모든 죄악과 불의가 목을 넘지 못한다. 눈으로 볼 때 죄가 들어온다. 귀로 들을 때 죄가 들어온다. 그런데 이 죄가 목을 넘어 가지 못한다. 또 이렇게 내 밖에서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내 속에서 꺾어지고 만다. 안할 말, 해서 상처를 주고, 성도들의 신앙의 믿음을 떨어뜨리는 일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내 밖에 있는 죄악의 침해로, 눈으로 귀로 어떤 사람으로 인해서 죄로 인해서 재앙을 받지 않는 것이 성도의 아름다움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예수님의 대속으로 무장된, 진리의 망대, 성령으로 구비하여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우리 주님은 아름답게 보십니다.
8.‘네 두 유방은 백합화 가운데서 꼴을 먹는 쌍태 어린 사슴 같구나’
솔로몬의 눈이 술람미 여인의 가슴 부위를 본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그녀의 가슴은 조용하면서도 무엇인가 긴장하면서 살이 움직이는 즉 생명의 움직임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원래 사슴이라는 짐승은 잘 놀라는 습성이 있습니다. 당장이라도 어떤 큰 소리를 들으면, 놀라 달아나 버리고 말 것 같은 것이 사슴의 습성입니다. 지금까지는 평화롭게 백합화 가운데 꼴을 뜯어먹고 있는데, 조심스러우면서도 긴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긴장하고 있는데서 나타납니다. 이런 긴장이 우리를 신선하게 하고, 죄의 잠에 떨어지지 않도록 지켜줍니다.
두 유방의 아름다움을 말합니다. ‘쌍태 노루 새끼 같구나’노루의 쌍태는 그 모양이 꼭 같고 크기가 꼭 같습니다. 유방은 자녀를 기르는 것이 본질적 목적입니다. 신앙의 후배를 양육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와 영감, 우리가 하는 신앙의 행위로 믿음의 자녀를 양육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에게 있는 진리와 영감, 교훈 이 말씀의 행위가 없으면 쌍태 노루 새끼와 같은 두 유방은 아닙니다. 신앙의 행위가 없으면 가르쳐도 참 양육은 못합니다. 자녀에게 양식이 되지 못하고 교훈이 되지 못합니다. 신앙의 행위의 실행이라야 신앙의 후배를 신앙으로 양육할 수가 있습니다. 한쪽 유방은 영감과 진리를 교훈하는 양육을 말하고 한 쪽 유방은 행위를 말합니다. 이것이 어느 쪽이 크고 작은 것이 아니고 꼭 같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처녀의 유방에서 젖이 생깁니까? 안 나옵니다. 젖은 결혼을 해서 아기를 낳아야 나옵니다. 전도 안하는 사람은 전도하여 신앙의 후배가 생기면 젖이 생깁니다. 믿음의 자녀를 많이 둡시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이 아름다움을 가지고 싶지 않으세요. 안 가지고 싶어요. 주님은 우리의 신랑, 우리 성도는 주님의 신부, 처녀가 아기 놓습니까? 결혼해서 신랑으로 더불어 아기를 낳지요. 주님과 함께 믿음의 자녀를 잉태하고 낳고 먹이고 양육하는 것이 성도의 아름다움입니다. 주님과 함께 믿음이 자녀를 잉태하십시다. 한 아이, 두 아이, 세 아이, 자꾸 낳아서 교훈과 행위를 통하여 자꾸 양육합시다. 주님이 보시는 성도의 아름다움을 가지기를 소원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백합화 가운데, 이것은 성도 가운데, 교회에 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진리와 영감의 젖을 먹는 성도는 많지 못하다. 꿀을 먹는 성도를 주님이 아름답게 보십니다. 이 아름다움의 미로 단장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 주님이 보시는 성도의 아름다움의 모습을 말했습니다. 눈은 비둘기요, 머리털은 나란히 누운 염소 떼며, 이는 말끔하며, 입술은 가늘은 실 같다고 말합니다. 목은 당당하고 대범한 망대 같다고 했습니다. 젖가슴은 노루 새끼다고 말합니다. 어느 하나 아름다움에 누락될 요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조건이 문제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보는 이는 눈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로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며 신앙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