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아줌마
ㅡ 사장님을 위한 변명
식당 아줌마는 가족이 아니다. 그렇다고 남도 아니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음식점을 차려 이십 여 년의 경력을 자랑해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다.
음식점을 운영하다 보면 일하는 아줌마 구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보통 마트 창문에 '가족처럼 일할 분모십니다'라고 붙여 놓으면 연락이 오는데 십중팔구는 월급이 얼마요 묻고는 전화 끊기가 십상이다. 더러는 직접 방문을 하여 이것저것 묻고는 생각해 보겠노라며 간다. 이런 사람은 일할 마음이 없는 경우다. 좀 얼굴이 반반하고 똑 소리 난다 싶으면 보수가 작다고 흥정을 하려 하는데 처음부터 되지도 않을 실랑이를 애먼 목에다 화풀이 하는 식이 된다. 우여 곡절 끝에 같이 일하기로 결정을 해도 첫 출근 날 빠지지 않고 나와야 비로소 한 식구가 된다. 아줌마들은 들어 올 때 누구나 사장님이 나가라고 할 때가지 안 나간다고 철썩 같이 다짐을 한다. 하지만 그건 그 사람 말이고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없는 노릇이라 마지막 관문인 한 달을 기다려 봐야 한다. 사람 겉모습 보고 모른다고 내가 관상을 제대로 볼 줄 아는 것도 아닐 테고 그 사람 속에 들어갈 수는 더더욱 없지 않은가. 그래서 한 달이 서로 사겨볼 기회를 갖는 시간이다.
처음부터 일을 못하거나 요령을 피우려 하면 한달 치 월급을 주고 어쩔 수 없이 정리를 한다. 일은 좀 하는데 이것저것 참견을 하고 오버를 한다 싶은 부류는 나중에 내 머리 꼭대기에 설 사람이니 결정이 빠를수록 좋다. 그러나 의욕이 넘치는 경우는 해고 시 마찰이 심하여 다소간 상처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본인 스스로 가게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작 내가 원하는 일은 소홀히 하며 엉뚱한 일을 잔뜩 벌려 놓고도 말이다. 또 어떤 부류는 일하는 동료에게 갖은 아양을 떨며 환심을 사려하는데 이들은 일하는 동료 이간질 시킬 가능성이 많다. 그렇게 한 식구가 되어 몇 달이 흐르면 밥도 같이 먹고 가정사도 어느 정도 알게 된다. 그렇다고 눈과 귀를 닫으면 낯선 곳에서 고초를 격을 수 있다. 사소한 부침이 어느새 황소바람 되어 식당 문을 열고 동네 입방아 간식거리로 오르내리게 된다. 사장이랍시고 배 내밀고 거들먹거리는 시대는 고려장되어 버려진지 오래다. 이젠 종업원 눈치 보며 상전 아닌 머슴노릇도 마다하지 않을 수 없다.
식당 사장으로 갖추어야 될 덕목이 여러 가지 있다. 그 덕목이 시대에 따라 변해간다. 가령 아줌마 입이 댓 발 나와 손님에게 웃음 대신 짜증을 팔고 있으면 그 이유를 빨리 알아야 한다. 집에서 남편과 싸움이라도 했는지 애들이 속 썩여 그러는지. 그래도 이정도 문제라면 간단히 해결 될 수 있다. 제 풀에 지쳐 넋두리를 늘어놓게 되어 시간이 지나면 자연 치유가 된다. 그러나 악성 종양 같이 험한 놈이 있으니 바로 홀과 주방 영역 다툼이나 저 들끼리 트러블이다. 치료가 어렵고 제 때 시기를 놓치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난처함에 빠질 수 도 있다. 자칫 둘 다 놓치게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식당 사장은 평소에 점수를 따 나야 큰일 치를 때 수월하다. 예를 들어 길을 가다 먹을거리가 있으면 검은 봉지 들기를 귀찮아하면 안 되고 보따리를 풀 때는 최대한 부풀려 허세라는 낯 뜨거움도 부릴 줄 알아야 한다. 가끔은 술자리도 마련하여 수다 떨기에 팔 걷어붙이기도 해야 한다.
식당은 비교적 늦게 끝난다. 뒤풀이까지 하면 자정을 넘기게 된다. 시간이 많이 늦었어도 일단 시작 했으면 뿌리까지 뽑는다는 심정으로 끝까지 망가 트려야 한다. 멋있고 단호한 표정으로 “이차 노래방 쏩니다.” 화끈하게 내지르면 박수부대 꼭 있기 마련이고 폼 한번 제대로 잡아 보는 거다. 노래방 가선 처음엔 빼야한다. 점잖은 척 의자 깊숙이 엉덩이 찔러 넣고 노래책만 이리 저리 뒤척인다. 그런다고 그 시간이 십 분을 못 넘긴다. 노래방하면 사족을 못 쓰는 아줌마는 어디가나 한 명은 있기 마련이다. 손에 이끌려 마지못해 일어선다. 일단 무대에 오르면 바로 돌변해 한 맺힌 춤꾼이라도 된 양 사정없이 팔이며 어깨 엉덩이까지 마구 흔들어야한다. 손을 잡고 돌려주는 센스는 기본이요 뽕짝을 목이 터져라 불러 제 끼며 노래방이 떠날듯, 이 밤이 까무라쳐 내일이 없는 듯, 말 그대로 발광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식당을 위한 몸 보시는 날이 환해지려 할 때 끝이 난다. 다음날 덜 깬 술에 화장이 떠 푸석거리는 얼굴에도 웃음꽃이 필 것이다. 냉큼 가서 해장국 사와 속이라도 풀어 주면 그럭저럭 한 동안 군말 없이 흘러간다.
황소바람이/ 산등성에 울리면/ 손에 들린/ 열린 문틈의 웃음꽃
식당 아줌마의 노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그들이 없으면 장사를 할 수가 없다. 다 같이 서민이다. 하루 벌어먹고 사는 대 다수의 보통사람이다. 서로 의지하고 이해하며 힘겨운 세상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 식당 아줌마는 가족이다. 같이 먹은 밥 그릇 수만큼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여간다. 오늘도 길가 노점상들이 삶을 늘어놓았다. 어느새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있다. 식당 아줌마 속으로 아니 가족들 품으로 들어간다. 그날도 웃음꽃이 만발했다.
첫댓글 김기수님의 애로사항을 간접 체험하게 되네요 ,,,내일 오후에 일동 갑니다 ~~커피 한잔 할 시간 될까요? ~~^^*
원산지서 커피 주문해 놓을께요.
100%동감 가끔은 저녁에 파란종이(돈)ㅋㅋ 셀때를 생각하면 식당을 다시 하고픈 생각 있지만 고충 또한 많죠^^
인생살이가 만만치 않다는것 잘 아시죠^^ 그러면서 성숙해 지고 단단해 지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