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스님의 도반 요석 공주

원효 스님의 도반 요석 공주 동봉큰스님(월간불광 240호)     무열왕 김춘추는 열 명의 아들과 세 명의 딸을 두었는데 요석은 무열왕의 맏딸이거나 둘째 딸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김춘추에게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다. 첫째 부인은 문명부인이었는데 김유신의 누이동생으로 문희라 했다. 이 문명부인에게서 일곱 명의 아들이 태어났으니 그들은 법민, 인문, 문왕, 노단, 인태, 지경, 개원이었다. 그리고 둘째 부인은 이름을 알 수가 없는데 이 부인에게서 세 명의 아들과 세 명의 딸이 태났다. 즉 개지몬, 차득공, 마득이 아들이고 고타소랑, 요석, 지소는 딸이었다. 지소는 분명 김춘추의 셋째 딸로 무열왕 2년에 김유신에게 시집보냈으며 나중에 지소부인이라 일컬어졌다. 고타소랑은 대량주의 군주인 품석의 아내였는데 선덕여왕 11년 전사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요석은 김춘추의 맏딸 아니면 둘째 딸이 분명하다. 신라인들의 결혼에 있어서는 이해돼지 않는 부분들이 많은데 그것은 당시의 골품제도 때문이다. 우선 김춘추와 김유신의 인척관계만 놓고 보더라도 아주 재미있는 일이 발견된다. 즉 김유신이 김춘추에게 있어서는 손위 처남이자 사위며 김춘추는 김유신에게 있어서 매부이자 장이니 되기 때문이다.   요즘 우리들의 의식 구조에서는 당시 그와 같은 완전 콩가루 집안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세상에 어떻게 손위처남이 사위가 될 수가 있으며 매부가 장인이 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계급사회에서는 철저히 왕족과 왕족끼리 무사는 무사끼리 서민은 서민끼리만 결혼이 허락되었다. 서민은 그 수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복잡한 관계를 떠나서도 얼마든지 결혼이 가능했지만 왕족이란 그 수가 한정되어 있어서 서로 얽키고 설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진골이니 성골이나 하는 뼈대이야기는 요즘 우리들로는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면서도 또 그것을 이해해야만 당시의 복잡한 문제를 풀어갈 수있다는 얘기다. 태종 무열왕 김춘추가 원효를 요석궁에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낸 것을 본다면 원효도 무열왕과 같은 귀족계급이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다면 원효와 요석은 어떻게 만났을까.『삼국유사』에서는 원효와 요석의 만남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어느날이었다. 성사는 평범한 사문의 예에서 벗어나 거리에서 노래를 불렀다. “…누가 자루 빠진 도끼를 나에게 빌려주겠는가. 그렇다면 나는 하늘을 받칠 기둥을 찍을 수 있으련만….”   사람들은 아무도 원효성사의 이 노랫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태종 무열왕이 이 노래를 듣고 혼자 중얼거렸다.   ‘아아! 저 스님이 외로움을 타고 있구나. 귀인을 얻어 훌륭한 아들을 낳고픈게야. 나라에 큰 인물이 있다면 그보다 더 이로운 일이 없겠지. 그렇다면….“   당시 요석궁에는 공주가 머물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한 번 결혼에 실패한 적이 있는 과부였다. 왕은 궁리를 시켜 원효성사를 찾아 요석궁으로 맞아드리게 했다. 궁리는 왕의 칙명을 받고 원효성사를 찾아나섰다. 문천교 지점을 지날 때 였다. 마침 원효성사는 남산에서 내려와 문천교를 건너다 말고 궁리를 보자 발을 헛디디는 척 하며 일부러 개울에 빠져 옷을 적시고 말았다. 궁리는 원효성사를 요석궁으로 인도하여 옷을 말리게 하니 그곳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잇은 뒤 얼마후 공주에게 태기가 잇게 되고 마침내 아이를 낳으니 설총(薛聰)이었다. 원효성사의 속성이 설 씨였던 것이다. 설총은 태어나면서부터 총명하고 민첩하였으며 경서와 역사서에 두루 통달했다. 그는 신라 십현 중의 한 사람이다. 우리말로써 중국과 변방지역의 각 풍속과 사물 또는 이름 등에 통달하고 육경문학을 훈해하였다. 지금까지 우리날아에서 경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전수하여 끊이지 않는다. -『三國遺事』권 4 「원효불기조」   하지만 내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설총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설총의 어머니이자 원효의 아내였던 요석과 원효 스님과의 이야기다. 요석이 원효의 아내라 해놓고 보니까 아무래도 감이 안 좋다. 원효 스님은 결혼을 한 적이 없다. 그러니까 요석이 원효의 아내일 수는 없다. 결혼의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원효와 요석은 며칠간의 사랑으로 끝을 맺고 만다. 불혹의 고개에 올라선 원효 스님! 하지만 불혹이라는 의미와 달리 그는 흔들리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40대의 남성들에게 다가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함께 걷잡을 수 없는 외로움으로 몸부림쳐야 했다. 그는 그냥 보통의 남자였다. 아직은 깨달음을 이루기 전이었다. 원효 스님은 수행자이기 앞서 그가 한 사람의 남성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이처럼 방황하는 중년남성에게 다가온 여자! 그녀가 바로 청산과부 요석 공주였다.   원효가 요석궁에 들자 요석이 흐뭇함은 감추고 수줍음을 드러내며 물었다.   “원효 스님! 스님은 어찌하여 스님의 신분으로 소녀의 방을 찾으셨습니까? 소녀 비록 지아비를 잃고 홀로된 몸이오나 불법의 대강을 알고 있습니다. 하오니 스님께서는 소녀를 난처하게 마옵소서.”   원효가 태연하게 말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나는 다만 발을 헛디뎌 물에 빠져 그 옷을 말리기 위함일 뿐, 일부러 공주의 처소를 찾은 것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나저나 우선 갈아입을 옷이라도 있으신지요? 젖은 옷은 말려야 안되겠습니까?” “소녀 홀로 사는 궁내에 남자 옷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정 그러시면 옷이 마르는 대로 나가주소서. 소녀 일찍 잠자리에 들겠나이다. 스님 부디 건강하시고 소녀의 당돌함을 용서하소서. 그리고 스님께서 대도를 성취하시면 마침내 소녀를 제도하여 주시기 간절히 바라옵니다.”   요석은 원효에게 관심이 없는 체 자리를 떴다. 요석은 원효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시녀를 불러 욕조에 더운 물을 준비하라 일렀다. 그리고 서서히 옷을 벗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과 귀는 원효에게 달려가 있다. 목욕을 마치고 난 요석은 비칠 듯 말듯한 얇은 침의로 갈아입고 거실로 나왔다. 원효를 보며 짐짓 놀라는 체 물었다. “아니 스님! 아직 안 가셨군요. 아직 옷이 다 마르지 않았습니까? 제가 잠자리를 보아 드릴테니 거기서 편히 쉬시지요.”   요석은 시녀를 시켜 다른방에 원효를 위해 침대를 마련했다. 원효가 말했다.   “사람이 어찌 잠자는 것으로 한 생을 다 보낼 수야 있겠습니까. 공주님! 괜찮으시다면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습니다.” “이야기라면 좋습니다. 스님께서 이 미욱한 중생을 위해 가르침을 주셨으면 합니다. 스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소녀는 스님께 출가사문의 길을 가시기 전부터 스님을 사모해 왔습니다. 혼인을 한 뒤에도 제 마음은 늘 스님에게로 달려가곤 했습니다. 아마 그것이 크다란 업장이 되어 이렇게 젊은 나이에 홀로 된 것은 아닌가 합니다. 스님 이 불쌍한 중생을 제도해주옵소서….”   요석의 어깨는 이미 들먹이고 있었다. 원효는 요석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요석은 쓰러지는 듯 원효의 품안으로 안겨들었다. 그들은 밤새 얘기를 나누었다. 간간히 흐느낌과 신음도 흘러나왔다. 선른을 전후한 요석 공주! 그녀는 혼인한 뒤 첫날밤도 치르기 전 남편을 전쟁에 잃고 천장에 와 있었다. 아직까지 그녀는 여자가 되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던 그녀가 원효로 인해 비로소 어엿한 한 여인으로 다시 태어나고 잇었다.   “소녀는 스님으로 인해 비로소 한 여인이 되었습니다. 스님, 원효 스님! 소녀는 야수다리가 되겠어요. 만일 아이가 태어난다면 라훌라로서 잘 기르겠습니다. 스님께서 가시는 길에 작은 등불이 되어드리겠습니다. 결코 스님의 가시는 길을 막지는 않겠습니다.” “고맙소 공주! 당신 또한 나를 수행자이기 앞서 한 남자로 만들어주었소. 나는 공주가 내게 베풀어준 그 아름다운 배려를 평생 잊지 않을 것입니다. 요석 공주! 당신은 나의 가장 소중한 도반이오. 내 비록 앞으로 살면서 표현은 하지 않을지 모르나 우리,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가는 길벗이 됩시다.”   그렇게 사흘간의 밤과 낮을 엮고 헤어졌으나 요석의 마음에는 항상 원효가 큰스님으로 자리했고 원효의 마음에는 요석이 언제나 도반으로 자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