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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 면류관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막 15:16-20) 가시 면류관은, 빌라도의 재판이 끝난 후 로마 군인들에 의해서 예수님의 머리에 씌어졌던 가시로 엮은 면류관으로 마태, 마가, 요한 복음에 의해 증거되고 있다(마 27:29, 막 15:17, 요 19:5). 이것은 단순히 예수께 고난만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의 왕이라는 조롱을 하기 위해 씌여진 면류관이다. 이 가시관은 가시나무로 만들어졌으며 로마 병정들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는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 로마 황제의 관을 흉내내어 가시로 관을 만들어 씌웠다. 아담에게 내린 벌이 가시로 상징되듯(창 3:18) 예수님의 가시관은 인류의 죄를 그분이 친히 담당하셨다는 것을 상징한다. "땅은 너에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다. 너는 들에서 자라는 푸성귀를 먹을 것이다." (창 3:18)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 그리스도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초자연적 능력을 일신의 안위를 위해 사용치 않으셨다. 예수님은 눈썹 한 번 치켜 올리시면 가시 면류관을 엮는 군병의 손을 마비시킬 수 있으셨지만 그러지 않으셨다. 놀랍다. 하지만 이것이 그분이 오셔서 행하신 사건 중에 가장 놀라운 부분일까? 별들로 구슬치기를 하시던 분이 자신의 무한성을 포기하신 것도 놀랍지만 그 보다 더 놀라운 사실이 있다. 성육신의 가장 멋있는 부분을 알고 싶은가? 예수님과 가장 가깝다는 친구들이 그분을 배반하고 달아날 때도 그분이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으셨다는 사실? 아니다. 아담 이후의 모든 남녀 죄인들의 온갖 죄를 대신 뒤집어 쓰시면서도 주님은 자기 변호를 거부하셨다. 그러나 그것도 가장 놀랄 만한 사실은 아니다. 천국의 법정에 무수한 유죄 판결이 울려 퍼지고 빛의 창조자가 죄인들이 가득한 밤의 냉기 속에 버려졌을 때도 여전히 침묵을 지키셨다. 그러나 이것 역시 아니다. 예수님은 어두운 무덤에서 사흘을 보내신 후 환한 웃음으로 부활의 아침 햇살 속으로 당당히 걸어 나오시며, 초라한 루시퍼에게 “그것이 제일 센 주먹이더냐?”라고 물으셨다. 그러나 심지어 그 부분도 아니다. 이러한 것들도 멋있다. 말할 수 없이 멋있다. 그러나 천국의 면류관을 버리고 가시 면류관을 쓰신 그분의 가장 멋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싶은가? 그것은 바로 당신을 위해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이다. 바로 당신을 위해. (예수가 선택한 십자가 / 맥스 루케이도)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그는 굴욕을 당하고 고문을 당하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마치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암양처럼, 끌려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사야 53:3-7, 새번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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