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가양초등학교
가양동은 굉잇들 가에 괭이, 갱이라는 마을이 있어 가양동이라 하였다는 설과, 햇볕이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이 따뜻하다하여 가양(加陽)이라 불렸다가 후에 송시열에 의해 가양(佳陽)으로 바뀌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어요.
이 갱이 마을에는 화강암을 깎아 세운 장승 하나가 있는데, 처음 장승이 세워졌던 곳은 마을입구 논길 옆이었으나 이곳에 집이 들어서면서 1980년 현 위치로(현대아파트 북쪽 삼거리) 옮겨졌답니다.
옛날 마을에 질병과 우환이 잦아 이를 막기 위해 재앙이 들어오는 길목에 세웠다는 이 장승의 제작연대는 알 수 없지만 마을이 생기면서 세워진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요. 마을에서는 이 장승을 거북바위라고 부르네요.
이곳 가양동에는 우암 송시열과 관련된 많은 문화유적이 남아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는 남간정사, 기국정, 우암 사적공원 등이 있어요. 또한 이곳 남간정사 앞 동네 이름이 ‘더퍼리’인데 이는 송시열과 관련이 있어요. 송시열이 이곳 가양동에 살며, 마을에 덕을 많이 베풀었다하여 ‘덕포리’ 라고 했는데 변하여 ‘더퍼리’가 되었어요. 지금도 남간 정사 앞 길가에 ‘더퍼리 쌀집’이 있어 옛 ‘덕포리’를 기리고(?)있네요.^^
대전자양초등학교
이곳 자양동 또한 송시열과 관련이 있는 마을로 옛날 송시열이 궐리라 명명한 소제 땅과 연결하여 지은 지명으로 자양부자 즉 주자를 연상하여 이곳을 자양이라 하였다네요. 또한 1940년 대전부에 편입될 때의 명칭인 자양정을 그대로 따서 자양동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원동초등학교와 대전삼성초등학교
원동초등학교는 지금은 원도심 공동화로 인해 인구 감소로 없어졌지만 대전지역에서 최초로 개교한 학교였어요. 대전시 발생의 근원지에 있던 학교로 1906년 개교 당시 이름은 대전공립심상고등소학교로 일제 강점기 일본인 자녀들이 다니던 학교였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구도심 공동화 인구감소로 인한 학생 수 감소로 1980년에 폐교 되었어요. 만약 지금까지 남아 있다면 대전최고(最古)는 신탄진초등학교(1908년 개교)가 아니라 이곳 원동초등학교겠지요.
그런데 원동초등학교는 일본인들이 그들의 자녀와 소수의 조선학생만 입학을 허락하고 대부분의 조선 학생들의 입학을 불허했어요. 그래서 이에 많은 조선인들이 반발하자 조선인 자녀들이 다닐 수 있는 학교를 만들었는데 그게 삼성초등학교예요. 1911년에 대전제1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한 삼성초등학교는 대전직할시 당시 대전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 중의 하나였으나 대덕구와 유성구를 포함하여 대전광역시가 되면서 최고(最古)를 신탄진초등학교에 내주게 되었어요.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를 신탄진초등학교는 2008년에 삼성초등학교는 2011년에 했어요. 그래서 삼성초등학교에서는 이를 기념하여 학교 건물 옆면에 교표와 학교 이름을 붙여 놓고 그사이에 조그맣게 ‘1911’이라는 숫자도 함께 붙여 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