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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 1938년
제 1권
누더기를 넣어 만든 이블 위에서 가쁜 숨을 쉬면서 이 세상과 저 세상 사이에서 방황했다. 그리고 저 세상으로 갈 가망성이 더 컸다.
아이를 보여 주세요. 그리고 나서 죽고 싶어요.
의사는 아이를 이 여인의 팔에 안겨 주었다. 여인은 핏기 없는 차가운 입술을 아이의 이마에 격렬하게 갖다 대더니 양 손으로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고 거친 눈초리로 주위를 살피며 볼을 부르르 떨고 나서 축 늘어졌다.
길거리에 쓰러져 있었다고 했어요. 구두가 헤어져 너덜너덜한 것을 보니 아주 먼 곳에서 걸어온 것 같아요.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려고 했는지 아무도 몰라요.
결혼반지를 끼고 있지 않구먼, 그렇군!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구빈원 출신의 고아 -교구의 신세를 지는 아이
그 아이들을 어머니 대신 감독하는 여인은 꽤 나이든 여인으로 , 매주 1인당 7펜스 반씩 지급받을 것을 목표로 이 위반 유아들을 맡고 있었다.
때로는 잠자리를 정리할 때 아이가 아직 자고 있는 것을 잊고 이불을 개어 질식시키기도 하고
이런걸. 말씀드려 화내시면 곤란하지만 맨 부인이 황홀할 만큼 애교 있게 말했다.
교구 서기는 가죽 지갑에서 종이쪽지를 꺼내면서 말했다.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이름의 아이가 오늘로 만 아홉 살이 돼요. 어머, 가엾게도! 맨 부인이 그렇게 말하더니 앞치마 끝으로 왼쪽 눈을 비벼 빨갛게 만들었다.
맨 부인은 그를 수없이 포옹해 주고 나서 버터를 바른 빵을 한 조각 주었다. 구빈원에 도착했을 때 너무 배고프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번블은 멍청해 있는 그를 정신 차리게 하기 위해 지팡이로 머리를 때리고 나서 다시 등을 한 대 갈기더니 올리버 더러 따라오라고 하고 나서 그를 희 벽의 큰 방으로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일 아침 6시부터 방수용 삼 오라기를 만드는 일을 시작하는 거야.
그때의 눈초리는 솥이 걸려 있는 화덕의 벽돌까지도 마구 먹어 버릴 것 같았다. 그리고는 죽물이라도 붙어 있을까 해서 손으로 하나하나 열심히 핥았다.
부탁입니다 . 저 좀 더 주셨으면 합니다. 올리버가 대답했다. 원장은 국자로 올리버의 머리를 일격에 가하고 나서 양손을 그의 겨드랑이 밑으로 넣어 목덜미를 조르면서 날카로운 목소리로 교구 서기를 불렀다.
올리버는 즉시 구금 처분을 받았으며, 다음날 아침에는 문 밖에 올리버 트위스트를 구빈원에서 데려갈 사람에게는 5파운드의 사례금을 준다는 쪽지가 나붙었다. 즉 어떤 직업도 좋으니까 고용인으로 아이가 필요한 남녀에게 5파운드와 올리버 트위스트를 준다는 이야기였다. 내 생애에 이렇게 확신을 갖고 말한 적은 없어. 다음날 아침, 희 조끼의 신사가 문을 두드리며 나붙은 쪽지를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강조하며 말했다. 내 생애를 통해 이처럼 확신을 갖고 말한 적이 없는데, 그놈은 틀림없이 커서 교수형을 당할 거야.
어느 날 아침 굴뚝 청소부인 컴필드는 거리를 건들건들 걸으면서 , 방세가 많이 밀려 주인 여자가 귀찮게 굴기 시작했으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 호주머니를 아무리 낙관적으로 계산해 봐도 5파운드 이상이나 모자라기 때문에 일종의 수학적 절망 상태에 이른 그는 자기 머리와 끌고 가던 당나귀를 번갈아 때리면서 구빈원 앞을 지날 때 문에 붙어 있는 벽보를 보았다.
번블은 삼각 모자를 벗더니 그 속에서 손수건을 꺼내 지나친 화 때문에 이마에 난 땀을 훔친 뒤 다시 모자를 썼다.
그날 밤 올리버가 그 선생님들 앞에 이끌려가서. 오늘 밤부터 장의사와 잡역 심부름꾼이 되는 거야. 만약 그 일에 불평을 하거나 구빈원으로 도망쳐 되돌아오는 일이 있으면 구멍 난 배에 태워 물에 빠져 죽게 하거나 머리가 부서지게 할 테니까.
눈물이 야위어 뼈만 남은 손가락 사이로 넘쳐흘렀다.
사워베리 부인이 가게 안쪽의 작은 방에서 나왔다. 작고 야윈 여자로 앙칼진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곳은 컴컴하고 습기 찬 석조 지하실이었다. 석탄광 옆의 부엌이라고 불리는 방에는 몹시 낡은 떨어진 파란색의 양말에다 뒤꿈치가 닳아 없어진 구두를 신은, 단정하지 못한 모습의 소녀가 앉아 있었다. ‘샤로트’ 올리버의 뒤를 따라 들어온 사워베리 부인이 말했다.
내가 노어 클레이폴 씨야, 네놈은 내 조수란 말이다. 빨리 덧문을 올려 이 농땡이 놈아.
1개월간의 가채용 기간을 끝내고 올리버는 정식으로 고용살이를 하게 되었다.
음식 때문입니다. 부인 음식 때문이요. 번블은 힘 있고 엄격한 투로 말했다. 부인은 저 아이에게 음식을 너무 많이 주었어요. 저런 신분의 놈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혼과 정신을 길러 버린 것 입니다. 부인, 실학 정신이 풍부한 위원회로서 말씀드립니다만 구빈원의 신세를 지고 있는 패들에게 혼이나 정신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 패들에게는 살아있는 몸집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도 충분합니다. 부인 저 아이에게 죽만 먹였던들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요.
그는 다시 가만히 문을 닫았다. 꺼지려는 불빛으로 자기의 얼마 되지 않는 옷가지를 보자기에 싸 들고 벤치위에 앉아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잘 가. 몸 성히! 하나님, 올리버를 지켜 주세요!
런던 큰 도시! 그곳이라면 누구든, 번블 씨라도 찾을 수 없을 거다!
올리버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대답했다. 아주 먼데서 7일 동안이나 걸어 왔어요. 7일 동안이나 계속해서 걸었어요.
그때 유태인이 요리용 포크로 친절하고 정중하게 아이들의 머리나 어깨를 사정없이 때렸다.
올리버가 오랜 숙면에서 깨어난 것은 다음날 아침 몹시 늦어서였다. 방 안에 서 있는 사람은 유태인뿐이었고 그는 소스 냄비로 아침 식사용 커피를 끓이고 있는데, 쇠 스푼으로 휘저으면서 혼자 가만히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사형이란 참 고마운 거야. 죽은 사람은 후회도 않으며, 불리한 예기를 폭로하지도 않는다. 이 장사에는 사형도 가지가지야. 다섯이 한꺼번에 교수되면 뒤에 남아 배신하거나 겁쟁이처럼 부는 놈도 없으니까.
노신사는 별안간 걸음을 멈추더니 하늘을 우러러 보며 외쳤다. 혹시나 전에 어디서 그 아이를 닮은 얼굴을 본 적이 있었는데 어디였을까?
마차는 올리버가 도저와 함께 런던으로 올 때 지난 곳과 거의 같은 지대를 지나, 이즈런튼의 엠젤 관까지 와서 다른 방향으로 향해 펜튼빌 근처의 나무들이 많은 조용한 거리에 있는, 작지만 깨끗한 집 앞에서 마침내 멎었다. 즉시 잠자리가 준비되고, 브라운로의 지시대로 소년은 조심스럽게 눕혀지고, 한없는 친절과 인정어린 간호를 받았다.
굳은 쇠를 구석구석까지 부식시키는 산酸 과 같은 파괴력을 지닌 열병의 불꽃은 구더기가 시체를 죄다 파먹는 것처럼 조금씩 산 육체 속으로 파고들었다.
이 아이의 얼굴이 자기가 알고 있는 누군가와 아주 닮았다고 생각했던 지난번의 일이 또 다시 생각났기 때문에 얼른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이 아이는 그림을 꼭 닮았다. 눈도, 머리도, 입도, 얼굴 모습 하나하나가 같으며, 순간의 표정이 완전히 같아서, 자잘한 윤곽의 어느 것도 정말 기분 나쁠 정도로 정확히 그림을 옮긴 것 같았다.
그는 가두에서 피리를 불고 있었다고 해서 붙잡혀 사회에 대한 죄가 분명히 입증되었기 때문에 팡 판사에 의해 1개월 구류라는 매우 지당한 선고를 받았다. 팡 판사는 말하기를, 이렇게 호흡이 남아돈다면 악기에 사용하느니보다 물레방아 밟기(형벌의 하나)에 사용하는 것이 몸에 좋을 것이다.
깜깜한 밤이었다. 축축한 안개가 강과 주변의 늪지에서 떠올라 황량한 들판위로 퍼지고 있었다. 그곳은 뼛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은 추위와 더불어 아주 깜깜하고 음산했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도 없었다.
가는 나뭇가지가 기분 나쁘게 앞뒤로 흔들리고 있는 것을 보니 마치 그것이 쓸쓸한 풍경을 보고 터무니없이 좋아하는 괴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비는 올리버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교회에서 할머니들의 호주머니를 노리기에는 안성맞춤인 꼬마군! 이 얼굴은 대단한 재산이야.
오늘 치마에 가득 석탄을 주면 모레에는 또 달라고 합니다, 그 뻔뻔함이란 마치 타일 바닥 같습니다.
빌이 등에 업고 바람처럼 달리다가 다시 발을 멈추고 둘이 양쪽에서 안으려고 했는데 머리를 축 늘어뜨리고 몸은 차가워져 있었어. 쫓는 놈들이 다가오고…….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 목숨이 아까웠거든! 우리는 제각기 달아나려고 꼬마를 도랑 속에 버리고 갔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그 다음 일은 나도 몰라.
제 2권
저희가 하는 일은 성질상 목이 자주 컬컬해 지거든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마치 내주어 속이 시원하다는 듯 새끼 염소의 가죽으로 만든 작은 주머니 하나를 탁자위에 선 듯 던져 버렸다. 그 주머니는 프랑스 제 작은 회중시계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먼스크는 그것을 뺏듯이 집어 들자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열었다. 그 속에서는 머리카락 두 묶음이 들어 있는 작은 금제 로켓과 생선묵 모양을 닮은 금제 결혼반지가 나왔다. 안쪽에 어그네스 라고 쓰여 있죠? 번블 부인이 말했다. -p 130-
그러나 이런 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번블의 마음은 난공불락의 요새 같았다. 그의 염통에는 방수장치를 한지 이미 오래인지라 비버의 가죽모자가 비를 맞으면 맞을수록 보기 좋아지듯 그의 신경도 눈물의 폭포수를 뒤집어쓰자 더욱 단단해졌다.
그는 자못 흡족한 듯 가냘픈 여편네를 흘긋 바라보고 실컷 울어라, 의사 선생이 실컷 우는 것은 건강에 좋다고 하더라 하며 심정을 돋구었다. 허파가 넓어지고 얼굴이 맑아지며 눈 운동도 되고 기분도 후련해진다더라. 하고 번블은 말했다. 그러니 실컷 우는 게 좋겠지.
셀리 노파가 죽던 날 밤은 바로 그가 그녀에게 결혼을 신청했던 밤이었으므로 당연히 잊지 않고 있을 밖에. 마누라는 그녀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아직 남편에게도 털어놓지 않았지만 그 비밀이 노파가 올리버 트위스트의 젊은 생모를 구빈원에서 돌본 일이 있는 일과 관계가 있는 것쯤은 그도 대충 들어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명성에 흠이 될 만한 비밀을 꼭 지킨단 말이지, 때문에 여자는 교수형에 처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비밀을 누설하는 일은 없는 법이니까. 이건 정말이야! 알았나?
그것은 전당표였어요. ~~~ 세끼 염소의 가죽으로 만든 작은 주머니 하나를 탁자 위에 선뜻 던져 버렸다. 그 주머니는 프랑스 제 작은 회중시계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먼스크는 그것을 뺏듯이 집어 들자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열었다. 그 속에서는 머리카락 두 묶음이 들어 있는 작은 금제 로켓과 생선묵 모양을 닮은 금제 결혼반지가 나왔다. 안쪽에 어그네스 라고 새겨져 있죠? 번블 부인이 말했다. 성은 빠져있고 날짜가 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어린아이의 출생일로부터 거슬러 올라가 1년 이내의 날짜예요.
마루 위에 놓여 있던 활차의 일부인 납으로 된 추를 주머니에 단단히 달아매어 탁류 속에 던져 버렸다.
어떤 젊은 여인이 메일리 아가씨와 단둘이서 만나고 싶어 한다고 하면 돼요. 이 말 한마디를 들으시면 용건을 묻든지 아니면 사기꾼이라고 내쫓든지 어느 쪽이 좋을지 바로 알게 되겠죠.
그녀(낸시)는 지금까지 런던의 뒷골목에서 부끄럽고 더러운 매춘을 하거나 도둑들의 속루에 기거하면서 그들의 시중을 들며 살아왔다.
자존심이야말로 신분이 높은 사람이든 이 사회에서 가장 하층에 속하는 천민이든 똑같이 버릴 수도 꺾을 수도 없는 감정이다. 도적과 무뢰한 일단, 미천한 자들의 속루에 뒹구는 부랑자, 언제나 교수대의 그림자에 떨어야 하고 감옥이나 죄인 운반선에 갇혀 있는 사회의 찌꺼기 같은 무리와 어울려 살고 있는 타락한 막된 여자도 자존심 때문에 순진한 여자다움을 드러내는 것조차 지나친 연약함이라 단정하고 숨기려 하는 것이었다.
아가씨, 아가씨(로즈)는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어렸을 적부터 맡아 길러 주시는 사람들을 잘 만나 북을 누리고 계시니까 말이 예요. 굶주림과 추위에 떠는 것 , 싸움패와 술주정꾼……. 그리고 그보다 더 무서운 일들도 모르고 지내셨으니 말이 예요. 요람이라 했지만 제게는 더러운 골목이나 시궁창 속이 바로 요람이었어요. 그리고 아마 그곳에서 죽겠지요.
그렇게 해서 그 녀석의 출생과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증거물은 강바닥에 가라앉았고, 그 증거물을 생모한테서 받은 노파는 관 속에서 썩어가고 있으니 이제는 안심이야.
먼스크는 이것으로 녀석이 받을 유산은 내 차지가 되기는 했지만, 할 수만 있다면 다른 방법으로 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별 수 없으니 그 방법으로 해치워야지. 그 녀석을 도둑으로 만들어 런던의 감옥에 몇 번이고 끌려가게 하다가, 페이킹, 자네 같으면 능히 해낼 수 있을 테니 뭔가 중죄인으로 만들어 사형을 받도록 해주게나. 그렇게만 되면 그 녀석의 아비, 즉 바로 내 아버지가 유언으로 자랑스럽게 남긴 것들은 완전히 끝장이 나는 거야. 어때 유쾌한 일이 아닌가? 라고 말의예요.
동생이라고요? 네, 그렇게 말했어요. 여기까지 말한 낸시는 불안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무리 중에서 가장 사납고, 목숨이 아까운 줄을 모르는 사람이지만- 도저히 헤어질 수 없는 사람이 있어요. 안됩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었어요, 너무 늦었어요.
사랑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저지를 수 있을 거예요. 아가씨처럼 가정과 친구에 부족함이 없으며,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고, 무엇 하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없는 분들도 그런데 하물며 저같이 자신의 몸을 비바람에서 보호해 줄 물건이라곤 관 뚜껑밖에 없으며 병들어 사경을 헤매고 이웃이란 구빈원의 구호병원밖에 없는 그런 신세의 여자가 일단 어떤 남자에ㅅ게 사랑을 느꼈을 때, 옛날에는 양친과 가정 , 그리고 친구들의 추억으로 따뜻했던 가슴이 오랫동안의 가난과 고생으로 모두 달아나 쓸쓸해진 가슴에 그 사람의 사랑으로 다시 불이 켜지려 할 때 누가 그 여인을 제 정신을 차리도록 끌어 올수가 있을까요? 아가씨.
돈은 받지 않겠어요. 낸시는 로즈의 손을 뿌리치면서 말했다.
올리버의 출생과 성장 과정을 싸고도는 수수께끼를 풀어보고 싶은 충동은 크고 강했으나.
다음날도 갖가지 궁리에 궁리를 거듭한 끝에 결국 할리(로즈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함)에게 구원을 청하기로 마음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조개처럼 입을 굳게 다물고 말 겁니다.
낸시가 사이크스를 잠들게 하고 자진해서 로즈 메일리를 급히 방문했던 바로 그날 밤, 런던을 향해 북쪽 국도를 걷고 있는 두 인물이 있었다.
얼른 보기에 어렸을 적에는 조숙한 어른처럼 보였고, 어른이 되자 너무 자란 아이같이 보였다. -노어 클레이풀과 부인 샤로트-
옆에 얌전히 약에 쓰려고 해도 모자랄 만큼 적음 분량을 덜어 주었을 뿐 자기는 먹고 싶은 대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저 늙은이가 넘어져 목이라도 부러지면 그 녀석 교수형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실망할 거란 말이야.
잘 보이나? 유태인이 확인했다. 천명 속에 섞여 있더라도 알아낼 수 있을 정도요.
혼잡한 대도시는 한밤중이 되었다. 왕궁, 지하의 값싼 술집, 감옥, 정신병원, 탄생과 사망, 건강과 질병 등이 교차하는 방에도, 그리고 죽은 자의 말 없는 얼굴, 편한 잠에 잠긴 어린아이의 얼굴 등등에도 한밤중이 찾아온 것이다.
[사내는 한 손이 자유로워지자 권총을 꺼냈다. 하지만 분노에 미쳐 지금 총소리를 내면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자신의 얼굴에 거의 닿을 듯 한 가까운 거리에서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 여인의 얼굴을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권총으로 두 번 힘껏 내리쳤다. 여인은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그리고 이마에 난 깊은 상처에서 흐르는 피로 눈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데도, 간신히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고 품속에서 하얀 손수건- 로즈 메일리에게서 받은- 을 꺼내 마주잡은 두 손으로 그것을 높이, 점점 약해져 가는 힘을 있는 대로 짜내어 높이 쳐들고, 한마디 기도의 말을 중얼거렸다. “오오, 신이여, 자비를…….” 눈을 가리지 않을 수 없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사내는 비틀비틀 벽 쪽으로 뒷걸음질 치더니,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한 손으로는 무거운 곤봉을 치켜들어 여인을 향해 내리쳤다.
밤의 장막이 런던 시가를 빈틈없이 덮으면 그 야음을 이용해 넓은 런던 시내에서는 갖가지 악행이 저질러졌지만 그래도 이보다 더 흉악한 악행은 없을 것이다. 날이 밝아 온 세상이 아침의 맑은 공기를 숨쉬기 시작하면서 악취를 내뿜으며 발생하는 공포를 느끼게 하는 사건도 많겠지만 역시 이보다 더 무섭고 잔인한 것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태양- 밝은 빛뿐 아니라 새로운 생명과 희망과 상쾌한 기분을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저 빛나는 태양- 이 밝고 맑은 빛을 가득 싣고 당당하게 집과 사람들이 꽉 들어찬 대도시 머리 위에 솟아올랐다. 호화로운 스테인 글라스의 창에도 , 찢어진 구멍을 몇 번이고 고쳐 바른 초라한 집들의 창에도, 대사원의 원형 지붕에도 그리고 썩어가는 구멍이 수없이 많은 오두막 지붕에도 태양은 평등하게 고루 그 빛을 던져 주었다. 살해당한 여인의 시체가 누워 있는 방에도 태양 빛은 밝음을 가져다주었다. 그렇다. 다른 어느 곳과도 다름없이 밝게 비추었다. 사내는 밝은 빛을 가리려고 갖가지 수를 써 보았으나 그 빛은 그런 것에 아랑곳없이 여전히 스며들어왔다. 새벽의 희미한 빛으로도 그토록 참혹한 광경이었으니 지금의 이 밝은 빛으로 비춘 광경은 도대체 어떤 모습일까! 사내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움직이는 것이 두려웠다. 신음 소리가 나고 손이 가늘게 떨렸다. 증오심에 공포까지 합세해서 사내는 곤봉을 치켜들어 몇 번이고 내리쳤다. 그는 시체 위에 홑이불을 덮어 씌워 보았으나 도리어 더 무서웠다. 흥건히 괴인 피바다에 햇빛이 반사해서 천장에 피가 그림자가 춤을 추었다. 그는 여인의 눈이 똑바로 자기를 향해 달려드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무서웠다. 사내는 홑이불을 걷어치웠다. 거기에 나타난 것은 시체, 이제는 살과 피에 불과하지만 이다지도 처참한 살과 피가 또 있을까! 사내는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그 속에 곤봉을 집어던졌다. 공봉 끈에는 머리카락이 엉켜 있었으나, 불이 붙자 머리카락은 지글거리며 오므라들더니 재가 되어 바람을 타고 굴뚝을 따라 위로 날아 올라가 버렸다. 건장한 사내인대도 , 그는 이 광경을 보자 또 한 번 깜짝 올랐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을 억제하고 곤봉이 불타 없어질 때까지 불 위에 들고 있다가 석탄 위에 내려놓고 완전히 재를 만들어 버렸다. 그는 몸을 씻고 옷을 닦았으나 아무리 해도 지워지지 않는 피의 얼룩이 남았다. 그는 그 부분을 찢어 방 안 벽에는 빈틈없이 핏방울이 튀겨 있었다. 개의 발까지 피투성이였다. 이렇게 서두르면서도 그는 한 번도 시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사실 한 순간도 떼지 않았다. 뒤처리가 끝나자 그는 뒷걸음으로 문까지 갔다. 혹 개가 이 범죄의 증거를 들고 나갈 것을 염려한 그는 개를 방 안에서 끌어내고,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닫자 열쇠를 들고 집을 나섰다. 길 건너편으로 가서 창문 쪽을 힐끗 바라보니 휘장은 늘어진 채였다. 언제나 여인은 그 휘장을 걷고 햇빛을 받아들이려했으나 이제 다시는 그 햇빛을 구경할 수 없게 되었다. 여인은 그 휘장 근처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그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태양은 그 장소에 햇빛을 아낌없이 쏟고 있으니 이건 기묘한 일이 아닌가! 그가 창문을 힐끔 바라본 것은 거의 일순간의 일이었다. 방을 빠져나온 그는 인도의 숨을 돌리고 휘파람을 불어 개를 부르고는 총총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즈린튼 을 빠져나와 우리텐튼 기념탑이 서 있는 하이케이트의 언덕을 올라가 정처 없이 마구 걷기 시작했다. 다시 하이케이트 언덕 쪽으로 내려가 오른쪽으로 구부러져 들을 가로지르는 오솔길을 지나 켄우드 근처를 거쳐 함스테트 쪽으로 빠져나왔다. 밸리오브 헬스를 지나 움푹 패인 곳을 건너 반대쪽의 비스듬한 언덕을 거슬러 올라가 함즈테트와 하이케이트 두 마을을 잇는 강을 가로질렀다. 그는 히스가 무성하게 자란 들판 끝까지 걸어 노스앤드의 들까지 오자, 생나무 울타리 맡을 찾아 벌떡 누워 잠을 자기 시작했다. 배가 고프고 목도 말랐으나,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 않을 곳을 찾으려면 도대체 어느 곳에 가야 한단 말인가? 헨턴이 좋겠다. 그곳이라면 안전하겠지. 그리 멀지도 않고 큰길에서 떨어져 있고……. 그는 그곳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때로는 달리 기도 했고 , 때로는 묘하게 토라진 척 천천히 걷기도 하고, 우뚝 멈추어 서기도 했으며, 아무 생각 없이 막대로 생나무 울타리를 두들겨 부수기도 했다. 그러나 헨턴에 도착해보니 그와 엇갈리는 행인 모두- 심지어 문 앞에 서 있는 아이들까지- 가 그를 수상쩍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는 온종일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으면서도 감히 음식을 구하고 들어갈 용기를 잃고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가 어디로 간다는 목적도 없이 히스가 우거진 들판을 헤매기 시작했다. 그는 몇 마일이고 헤맸으나 다시 처음 장소로 되돌아왔다. 아침 그리고 낮, 해가 질 때까지 그는 오던 길을 갔다가 돌아오고, 같은 장소를 맴돌기도 하고 같은 장소에서 우물거리기도 하다가 겨우 그 장소를 떠나 하트필드로 향했다. 밤 9시, 피곤에 지친 사내와 익숙하지 못한 운동에 절름거리는 개는 고요한 마을의 교회 옆을 지나 좁은 길을 터벅터벅 걸어 희미한 불빛을 따라 작은 선술집으로 들어섰다. 술집안의 난로에는 불이 훈훈하게 타고 있고 그 앞에는 마을 농부들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낮선 객이 들어서자 자리를 비켜주었으나 , 그는 구석진 곳에 홀로 앉아, 아니 개와 둘이 마주 앉아 이따금 개에게도 먹을 것을 던져주면서 마시고 먹고 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화제는 대게 근처의 토지나 농부에 관한 것이었으나 이런 이야기가 바닥나자 얼마 전에 매장한 노인 이야기로 옮겨갔다. 젊은이들은 노인이라고 했고, 노인들은 아직 젊다고 했다. 백방의 노인이 말했다. ‘나보다 젊었으니 , 잘 양보하고 몸조심했더라면 적어도 10년이나 15년은 더 살았을 게야. “ 사이크스는 이런 이야기에 특별히 관심을 가질 것도 없었고 경계할 것도 없었기에 값을 치르고 구석에 앉아 묵묵히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끄는 일도 없이 시간을 보냈다. 엄습하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꾸벅거리고 있는데 새 손님 한 명이 떠들썩하게 들어왔으므로 잠이 반쯤 깨었다. 그 손님은 몹시 재미있는 사내로, 반 행상에 반은 흥행사를 겸한 사람이어서 숫돌, 면도칼 가는 가죽, 비누, 마구(馬具)를 윤내는 가루약, 개와 말의 치료약, 값싼 향수, 화장품 등을 넣은 상자를 짊어지고 시골의 이 마을 저 마을을 찾아 팔고 다니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이 사내가 들어온 것을 계기로 이 고장 농부들 사이에 시골티 나는 농담과 재담이 오고 갔으며 , 그것은 그가 저녁을 마치고 보물 상자를 열어 빈틈없는 농담을 섞어가며 장사를 시작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할리, 그건 뭐야? 먹는 거냐?” 한 농부가 상자 구석에 있던 비눗덩어리 같은 것을 가리키고 능글거리며 말했다. “이거 말인가?” 상인은 하나를 끄집어내면서 말했다. “이건 말이죠, 명주, 린네르, 모시, 삼배, 무명, 그라프트, 모직물, 융단, 메리노, 모슬린 반바지, 그밖에 모든 직물의 쇠녹, 얼룩, 곰팡이, 좀이 슬은 자국, 기타 모든 더러운 것을 빼는 효력 만점인, 값을 정할 수 없을 만큼 값진 약용비누로 술, 과일즙, 맥주, 물, 페인트, 콜타르 등의 얼룩까지도 지울 수 있답니다. 정말 희귀한 것이지요. 이 약용 비누로 무엇이든 한 번만 문지르면 모두 뺄 수 있답니다. 부인의 명예에 얼룩이 졌을 때는 이 비누 한 조각만 먹이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요. 즉각 명예회복이 되지요. 그리고 이것은 독약의 역할도 하므로 혹 남편께서 부인 앞에서 결백을 증명하시려면 이 네모진 것을 한입 삼키기만 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이렇게 하면 두말할 것도 없이 끝장이 납니다. 왜냐하면 이건 권총탄환처럼 효과는 만점, 그 위에 맛도 몹시 고약하니 이것을 삼키는 것은 더욱 납자다움을 증명하는 게 된답니다. 한 개에 값은 1페니, 이렇게 멋진 효험이 있는데도 값은 불과 1페니!” 즉각 사겠다고 나선 사람이 두 명 있었으나 청중들은 대부분 주저 하는 것 같았다. 이 눈치를 재빠르게 간파한 상인은 더욱 멋진 말솜씨를 발휘하여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만드는 즉시 팔려 버리는 물건이란 말이요 . 수력으로 움직이는 기계가 열네 대, 증기 기관이 여섯 대, 축전지로 가동하는 기계가 한 대, 이상을 연중무휴로 가동 시키고 있지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할 형편이오. 직공들이 과로로 사망해 버리면 미망인에게 바로 연금이 붙고 어린이 하나에 부양비가 연액 20파운드, 쌍둥이에게는 50파운드의 덤이 붙기도 합니다. 그런 비누가 한 개에 단 1페니! 하지만 반 페니짜리 동전 두 장도 좋소. 파징(1/4페니 동전) 네 개도 환영합니다. 한 개에 얼룩이건 피 얼룩이건 뭐든지 빠지지 않는 얼룩은 없답니다. 여기 누군가의 모자에 얼룩이 졌군요. 모자 주인께서 맥주 한잔 마실 동안 내가 이 얼룩을 빼 보이겠소.” “여봐!” 사이크스가 깜짝 놀란 듯 소리쳤다. “ 그 모자 이리 줘!” “ 저 손님께서 이곳까지 모자를 가지러 오실 동안에 이 얼룩을 빼 보이겠소.” 사내는 일동에게 윙크를 해 보이며 말했다. “ 자 만장하신 여러분! 이 어른 모자의 얼룩을 한번 잘 보십시오. 크기는 1실링 은화만큼 보이지만 반 크라운 은화 두께 보다 더 깊이 얼룩졌소. 과연 이제 술 얼룩이든, 과일즙 얼룩이든, 맥주 얼룩이든, 콜타르 얼룩이든, 시궁창 얼룩이든, 피 얼룩이든…….” 상인은 그 이상 더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사이크스가 무서운 욕설과 함께 탁자를 뒤엎고 , 모자를 빼앗자 굴집을 뛰어나갔기 때문이었다. 그날 온종일 머릿속에 완고히 눌어붙은 채 떨어지지 않는 두려움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불안 속에 있기는 했지만, 아무도 자기 위를 쫓는 자가 없다는 것이 판명되자 , 아마 자신을 성미 급하고 화가 나려는 술주정꾼 정도로, 생각하겠지 라고 생각한 그는 다시 그 마을로 되돌아왔다. . 그가 큰 길 우체국 옆에 서 있는 역마차의 밝은 불빛을 피해 지나가서 살펴보니 그 마차는 런던에서 온 우편 마차였다. 어떤 수작이 오갈 것인가 대게 짐작할 수 잇었으므로 그는 길을 건너 마차에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차장이 문 옆에 서서 우체국에서 우편물 보따리를 가지고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때마침 사냥터지기 같은 차림의 사내가 다가오자 차장은 인도 위에 내려놓은 바구니를 건네주었다. ‘이게 자네가 있는 저택 앞으로 온 우편물일세.’ 라고 차장이 말했다. 그리고 우체국 쪽을 향해, “여보시오, 서둘러 줘요, 이건 너무 한데요. 그저께부터 무엇을 했기에 아직 우편물 행낭 준비도 하지 않았단 말이오. 너무하지 않소!” 볼멘소리로 말했다. “벤, 재미있는 런던 소식 없나?” 사냥터지기 차림의 사내는 마차의 명마를 자세히 관찰하려는 듯 마차의 덧창문 쪽으로 뒷걸음질 치면서 물었다. “별다른 것은 없네.” 차장은 장갑을 끼면서, “곡식 값이 좀 뛰었고, 스피틀필즈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는데 확실하지 않네.” 라고 말했다. “그건 정말이에요.” 마차에 타고 있던 손님 한명이 창문에서 얼굴을 내밀고 말했다. “잔인하기 그지없는 살인 사건이랍니다.” “그래요?” 차장은 모자에 손을 대며 물었다. “죽은 건 납자 아니면 여자?” “여자였지.” 마차의 손님이 대답했다. “듣기에는…….” 마부가 초조한 듯 고함쳤다. “우리 행낭은 아직 멀었나?” 차장이 말했다. “여봐요! 우체국 나리들, 혹 잠들어 버린 게 아니오?” “곧 끝나네.” 우체국장이 뛰어나오면서 말했다. “곧 끝나다니?” 차장이 화난 얼굴로 받았다. “첫머리 글자가 ‘호’ 라 붙은 부잣집 처녀가 언제나 내게 그렇게 말하거든, 곧 끝난다고 말일세. 그렇지만 그놈의 곧이 언제 곧인지…….쯧쯧쯧, 자 빨리 싣게. 출발!” 나팔을 기운차게 울린 우편마차는 떠나 버렸다. 뒤에 남은 사이크스는 방금 엿들은 뉴스에 놀란 빛을 보이지 않았다. 마음의 동요가 있었다면 어디를 향해 갈 것인가에 고민하고 잇을 정도라고나 할까. 그는 오던 길을 되돌아가, 하트필드에서 센트올번즈로 통하는 큰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걷고 또 걸었다. 마을을 빠져나와 인기척이 없는 캄캄한 큰길로 나오자 왈칵 치미는 공포에 아침에 본 그녀의 시체가 바로 뒤를 쫓아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암흑 속에 그 모습이 그림자처럼 떠올라, 그 처참한 모습이 세세한 곳까지 분명히 보였으며, 그것이 꿈틀거리며 걸어오는 무거운 발걸음 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나뭇잎이 살랑거리는 소리는 바로 그 여인의 옷자락 스치는 소리로 들렸고, 바람이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그 여인의 단말마의 비명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사내가 발을 멈추면 여인의 그린자도 우뚝 섰으며, 사내가 달리기 시작하면 역시 달려 쫓아오는 것 같았다. 차라리 쫓아오는 편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았으나,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걷는 흉내만 낼 수 있는 시체처럼 끊임없이 흔들흔들 바람을 타고 천천히 따라왔다. 때때로 , 차라리 그녀의 무서운 눈총을 받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유령을 쫓아야겠다고 자포자기한 결의를 굳히고 뒤돌아 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유령도 날쌔게 그의 등 쪽으로 서고, 피도 얼어 붇는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해왔다. 아침에는 아무리 떨쳐 버리려 해도 눈앞에서 춤을 추듯 보이던 것이 지금은 등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길가에 벌떡 누워 버렸다. 이렇게 했더니 이제는 머리맡에 서 있었다. 묵묵히 꼼짝하지 않고 꼿꼿이 서 있었다. 피로 비문을 새긴 묘비처럼. 살인자가 정의의 손을 벗어나, 신의 노여움을 피할 수 있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살인자가 맛보는 공포는 1분 동안 죽은 자의 수백 배의 고통과 맞먹는다. 도중에 들판에 오두막이 있었으므로 그곳을 하룻밤의 잠자리로 삼기로 했다. 바로 문 앞에는 세 그루의 포플러 나무가 서 있었으며 그로 인해 집 안은 칠흑같이 깜깜했다. 바람이 신음 같은 소리를 지르며 나무 사이를 빠져나갔다. 날이 밝기 전에는 도저히 더 걸을 용기가 나지 않아 오두막의 벽에 몸을 바싹 붙이고 잠을 청했다. 그러니 이것은 새로운 공포를 초래했을 뿐이었다. 조금 전에 떨쳐버리고 온 악귀의 그림자보다 더 무서운 환상이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눈앞에 어른거렸기 때문이다. 무섭게 부릅뜬 눈이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눈 자체는 밝게 보였으나 그 둘레는 깜깜했다. 이러한 것들은 현실로 보는 것 보다 머릿속에 끊임없이 따라붙는 것이 더 괴로웠다. 눈은 둘 뿐인데도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방에 있었다.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으니 그 방이 보였다. 낯익은 가구는 평소 그대로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여 있고 일부러 생각해내려 해도 생각나지 않을 것 같은 자잘한 것까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모두 변함없이 놓여 있는데 , 시체도 제대로 그 자리에 그가 방을 빠져나올 때 본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는 견딜 수 없어 다시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랬더니 무서운 그림자가 또 뒤를 쫓아왔다. 다시 오두막으로 들어와 웅크리고 앉았더니 벌써 그 눈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사자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공포에 손발이 떨리고 온몸의 털구멍에서는 식은땀이 비 오듯 솟고 있는데 , 갑자기 먼 곳에서 바람을 타고 놀라움과 공포가 뒤섞인 부르짖음이 들려왔다. 이런 쓸쓸한 장소에서 설령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무서운 공포의 부르짖음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소리가 들려온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그는 자신의 신변에 위험이 절박했음을 직감하자 용기와 함께 힘이 솟아났다. 벌떡 일어난 그는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왔다. 하늘이 온통 불타고 있는 것 같았다. 화염이 여러 겹으로 퍼져 불똥을 비 오듯 뿌리면서 하늘 가득히 솟아올라 수마일 사방을 대낮같이 밝게 하고 , 서 있는 쪽으로도 뭉게뭉게 연기를 보내고 있었다. 고함치는 사람의 수효가 늘어감에 따라 부르짖음은 더욱 요란해지고 , 불이야 라는 외마디 소리에 섞여 개 짖는 소리 , 무거운 것이 털썩 쓰러지는 소리 , 화염이 새로운 방해꾼에 감겨들며 새 힘을 얻은 듯 불기둥을 치솟게 할 때 나는 툭툭 튕기는 소리들이 뒤섞여 이곳까지 들려왔다. 소동은 점점 커져갔다. 몰려드는 인파, 남자, 여자, 대낮같은 밝은 불 빛 사람들의 웅성거림 등은 그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준 것 같았다. 그는 달리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 겁 없이 달리고 또 달렸다. 가시덩굴과 , 양치류의 숲을 헤치고 , 인가의 대문, 생나무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그보다 앞장서서 달려가는 개처럼 정신 나간 사람같이 달렸다. 현장에 다다르자 잠결에 뛰어나와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한 군중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겁먹은 말을 마구간에서 끌어내려는 사람도 있었고, 중정이나 창고에서 가축을 몰아내는 사람도 보였다. 불타고 있는 집 안에서 짐을 잔뜩 짊어지고 , 소나기처럼 빨리 대들보 밑을 빠져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한 시간 전만 해도 창문이었던 구멍의 저쪽에는 미쳐 날뛰는 화염이 보이고, 불탄 벽들이 흔들흔들하다가는 화염 속으로 쓰러졌다. 녹아버린 납과 철이 백열을 뿜으며 지상으로 비 오듯 흘렀다. 아녀자들은 비명을 지르고, 남자들은 서로 고함을 치거나 격려하며 힘을 모으고 있었다. 증기 펌프가 물을 뿜는 소리, 불붙은 재목에 물이 뿌려져 내는 칙칙 거리는 소리가 더해져 소동은 더욱 더 커졌다. 사이크스도 그 무리에 섞여 목이 터져라고 고함을 지르며 , 그를 쫓는 공포의 기억에서 벗어나려고 , 가장 혼잡한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다. 밤새 그는 좌우로 정신없이 날뛰었다. 펌프의 작업을 돕기도 하고 , 화염과 연기 속을 누비고 다니기도 했으나, 가장 혼잡하고 소음이 요란한 곳만 찾아가 뛰어들었다. 사다리를 뛰어 오르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하고, 지붕에 올라가기도 하고 무게로 무너져가는 마룻당을 뛰어 넘기도 하고, 무너져 쏟아지는 벽돌들과 돌 밑을 빠져나오기도 하는 등 그의 모습은 화재 현장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몸은 마치 신의 보호라도 받고 있는 양 가벼운 상처나 타박상 하나 없었으며 피로도 모르고 고민과 공포에 잠길 틈도 없었다. 이럭저럭 밤이 지나자,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은 오직 연기와 새까맣게 불탄 자리뿐이었다. 광기 같은 흥분이 가시자 또다시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두려움이 전보다 열배 이상의 큰 힘으로 엄습했다. 그는 둘레에 삼삼오오 짝을 짓고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자 수상쩍은 눈으로 살펴보았다. 혹 자신이 그들의 화제에 오르고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니 몸이 떨렸다. 그가 손짓을 하자 개가 얌전히 따라왔으므로 그는 슬쩍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소방관이 앉아 있는 펌프 옆을 지나가자 요기라도 하고 가라고 말을 걸어 왔으므로 빵과 고기를 얻어먹었다. 맥주를 마시고 잇을 때 런던에서 출동해온 소방관이 살인 사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들려왔다. “범인은 버밍컴 쪽으로 달아났다고 하던데…….” 하고 그중 한 사람이 말했다. “곧 체포되겠지, 추적대가 출동했고, 내일 중으로 곳곳에 몽타주와 수배 장을 돌릴 거라고 하니 곧 잡히고말고.” 그는 깜짝 놀라 그 자리를 피해 또 걷기 시작했으나 끝내는 지친 나머지 쓰러질 것 같았다. 그는 샛길에서 뒹굴어 그대로 잠들어 버렸으나 , 얼마간 자고나니 사소한 소리에도 깜짝깜짝 놀라며 잠이 깨는 통에 영영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일어나 또 정처 없이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오늘도 무서운 밤을 홀로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갑자기 자포 자기한 심정이 되어 런던으로 되돌아가려고 결심했다. ‘런던에 가면 적어도 말동무라도 있지 않은가. ‘ 사이코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은신처도 있다. 이렇게 시골길에 지나온 자국을 남겼으니 설마 내가 런던에 숨어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다. 일주일쯤 숨어 있다가 페이킹에게서 돈을 뜯어내어 , 프랑스로 튀어버리면 그것으로 안전하겠지. 되든 안 되든 한번 부딪쳐 볼 수밖에.’ 생각이 떠오른 즉시 결심을 굳힌 그는 왕래가 적은 길을 찾아 그곳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하고 걷기 시작했다. 런던 근교에서 잠시 은신했다가 어두워지면 어둠을 이용해 사잇길을 돌아 런던시가로 숨어들어 ,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리라 결심했다. 그런데 개가 문제였다. 만일 자신의 몽타주가 돌려졌을 경우 그의 개가 현장에 없는 것을 발견한 당국이 그와 동행한 것으로 수배했다면 거리를 지날 때 이 개로 인해 체포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는 개를 저수지에 처박아 죽이기로 결심하고 저수지를 찾으며 계속 걸었다. 도중에 무거운 돌을 주워 손수건에 단단히 묶었다. 이런 준비를 갖추고 있는 사이 개는 줄곧 주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엇인가 수상쩍은 예감이 드는지 개는 그의 뒤를 살금살금 따라왔으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더니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주인이 저수지에 서서 뒤돌아보며 개를 부르자 개는 그 자리에 우뚝 서 버티고 말았다. “부르는데 들리지 않나? 어서 와!” 사이크스는 휘파람을 불고 나서 이렇게 소리쳤다. 개는 습관대로 가까이 왔으나 , 사이크스가 쪼그리고 앉아 목에 손수건을 매달려고 하자 으르렁거리며 뒤로 달아났다. “어서 오지 못해. “ 사내는 발을 구르며 고함쳤다. 개는 꼬리를 쳤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사이크스는 다시 손수건으로 둥근 테를 만들고 또 개를 불렀다. 개는 조금 앞으로 나올 듯 하다가 다시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잠깐 멈춘 듯 하더니 휙 뒤로 돌자 전속력으로 도망쳐버렸다. 사내는 몇 번이나 뒤풀이해 휘파람을 불다가 그 자리에 앉아서 개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방 안에는 브라운로와 먼크스 단둘만이 남았다.
마치 아버지의 옛 친구에게 환대를 받고 있는 것 같군요. 먼크스는 모자와, 소매 없는 외투를 내던지면서 말했다. 자네의 아버지의 옛 친구이기에 이 정도의 대접을 하는 거야. 자네 아버지와 한 핏줄을 이어받은 젊고 아름다운 부인, 일찍이 신의 부르심을 받아, 나를 이 지상에 외롭게 남겨 놓은 그분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행복했던 청춘시절이 희망과 소원이 있기에 지네를 이만큼이나마 대접하는 거야. 자네 아버지가 소년 시절, 그의 단 한 분뿐인 누나는 내 신부가 되기로 했지.
네 아버지는 젊었을 때 마음에도 없는 비참한 결혼을 강요당한 결과 아비를 닮지 않은 쓸모없는 자식을 낳았어. 그게 바로 자네지.
[줄거리: 그러나 둘(먼크스의 양친)은 헤어지고 영국에서 하릴없이 세월을 보내다가 퇴역 해군장교를 만났다. 퇴역장교는 부인을 잃고 그에게는 열아홉 살과 겨우 두실 된 딸이 있었다. 장교는 그의 딸이 먼크스의 아버지와 사랑하는 것을 알고 먼크스의 아버지에게 재산 상속권을 주었고 두 사람은 결혼서약을 했다. 그 후 퇴역장교는 로마에 휴양 차 갔다가 사망하고 먼크스의 아버지는 사후처리를 위해 로마에 갔다가 역시 병에 걸리고 죽는 바람에 장교의 유산은 먼크스와 그의 어머니에게 돌아갔다. 먼크스의 아버지가 로마로 가기 전 브라운로를 찾아와서 여인의 초상화를 맡기면서 상속하게 될 유산의 일부를 그 여인에게 물려주고 자기는 이 나라를 떠나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결심을 털어놓았다. 그 후 브라운로가 올리버 트위스트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얼굴이 초상화의 여인과 너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먼크스의 아버지는 유언장을 남겼는데 먼크스의 어머니가 파기해 버리고 모든 유산을 먼크스에게 남겨 주었다. 유언장에는 앞으로 태어날 자식(장교의 부인과의 사이에서)에게도 유산을 물려준다는 한 줄의 메모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알게 된 먼크스는 그 흔적을 없애려고 애를 쓴 것이다.]
크래킷은 현관까지 내려가서 한 사나이를 데리고 돌아왔다. 얼굴의 반은 손수건으로 가렸으며 모자밑 머리 둘레도 역시 손수건으로 둘렀다. 그는 천천히 손수건을 풀었다. 핏기 없는 얼굴, 움푹 들어간 눈, 홀쭉해진 볼, 사흘 동안 손질하지 못한 수염, 메마르고 가는 몸집, 거친 호홉, 이것은 사이크스의 망령 바로 그것처럼 보였다.
창밖에는 불이 여기저기 보이고, 큰소리로, 그러나 정신을 가다듬어 조심스럽게 주고받는 고함소리가 들렸다. 가까운 목교를 바삐 건너는 발소리, 이 소리는 끝없이 계속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군중 속에는 말을 탄자가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울퉁불퉁한 포석 위를 달리는 말굽소리로 짐작될 수 있었다. 횃불의 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가고, 발소리는 더욱 커져 끊일 줄 모르고 계속되었다. 이윽고 문을 세차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인간이 들을 수 있는 무서운 부르짖음은 허다하지만 , 군중이 격노해 부르짖는 소리보다 더 무서운 것을 없을 것이다. 어떤 자는 옆집에 불을 지르라고 고함치고, 어떤 자는 경찰관을 향해 사살해 버리라고 소리쳤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기세를 보인 것은 말 탄 사나이로, 그는 그 말에서 뛰어내리자 물을 가르듯 군중을 헤치고 창문 밑으로 다가와 한층 잘 들리는 목소리로 고함쳤다. “누구든 사다리를 가지고 오는 자에게 20기니를 주겠다!”
밑의 어둠 속을 메운 군중은 마치 성난 폭풍에 나부끼는 보리밭처럼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하다간, 때때로 소리를 맞추어 무서운 노호를 발했다.
살인자는 가장 길고 튼튼한 밧줄을 골라잡자 바로 지붕 위로 올라갔다.
군중들은 집의 앞쪽에서 뒤쪽으로 줄을 지어 밀려들었다. 뒤에 뒤를 잇고 분노에 불타는 얼굴의 행렬이 줄을 이어 대낮 같이 밝은 횃불이 분노와 흥분의 소용돌이를 비추었다. 스로 건너편에 줄지어선 집들에도 군중들이 들어차, 창을 열거나 창문을 송두리째 뜯어 버려 창문이란 창문에는 얼굴이 주렁주렁 열렸다. 또한 지붕이란 지붕에도 군중이 눌어붙어 있었다.
그때 살인자는 지붕위에서 뒤돌아보자마자 두 손을 번쩍 들고 공포의 비명을 질렀다. “또 저 눈이! “ 그는 이 세상에 저런 소리가 있을까 싶을 만큼 무서운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비틀거리던 그의 몸이 평형을 잃고 벽에서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목둘레에 걸려 있던 밧줄의 둥근 테는 몸무게로 인해 죄어졌다. 그것은 마치 활시위처럼 팽팽히 그리고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순식간에 목을 죄었다. 35피트 밑까지 떨어지자, 돌연 덜컥 하며 떨어지는 것을 멈추더니, 손과 발이 무섭게 경련을 일으켰다. 굳어진 손에는 날이 드러난 칼을 쥔 채 그는 공중에 매달리고 말았다. 낡은 굴뚝은 이 충격으로 곧 무너질 듯 흔들렸으나 용케도 견뎠다. 살인자는 숨이 끊어진 채 담에 흔들흔들 매달려 있었다.
그때까지 모습을 감추고 있던 개가 기분 나쁘게 짖어 대며 벽 위를 오락가락 미친 듯 날뛰다가 일순 우뚝 서더니 죽은 자의 어깨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목표물에서 빗나간 개는 거꾸로 곧장 수로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곳의 돌이 머리를 부딪쳐 두 개골이 깨지고, 튕겨 나온 골은 사방에 흩어졌다.
정장의 사건이 있고 이틀 후 오후 3시, 올리버 트위스트는 마차에 몸을 싣고 자신의 출생지를 향해 급히 달려갔다.
책상위에 남겨진 서류들 중에 두통의 편지(어그네스에게 보내는 편지와 유언장)가 있었습니다.
어그네스에게 보내는 편지의 내용은? 하고 브라운로가 물었다.
유태인은 전부터 이 사내와 한통속이어서 모든 사정을 잘 알고 있었으며, 올리버를 악의 소굴로 끌어들여, 못된 짓과 범죄를 저지르게 만들어 준다는 조건으로 막대한 돈을 받았다는 사실.
그래도 난 절대로 이모라고 부르지 않겠어요. 올리버는 로즈의 목에 두 팔을 힘차게 감으면서 부르짖었다. 그래도 난 절대로 이모라고는 부르지 않겠어요. 누나! 누나! 다정한 내 누나! 어쩐지 처음부터 정이 끌리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난 그렇게 누나가 좋았던가 봐요! 로즈, 로즈, 누나! “ [로즈는 올리버 생모의 동생]
[줄거리: 할리는 로즈를 사랑하는 마음에 자신의 신분에 어울리는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목사가 되고 로즈와 결혼한다. 결국 유태인은 사형 선고를 받고, 정신착란을 일으켰다.]
사형수는 침대에 앉아서 몸을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그 얼굴은 인간의 것이라기보다는 덫에 걸린 야수의 얼굴 바로 그것이었다.
[줄거리 맺음: 올리버의 이복형 먼스크에게 도 올리버의 동의 얻어 유산의 절반을 물려주었으나 그는 허랑방탕하다가 죽고, 번블 부처는 구빈원의 공직에서 박탈되고 노후에는 구빈원의 신세를 지게 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올리버는 도움을 준 브라운로의 양자가 되어 행복한 삶을 살아갔다.]
[Book review] 올리버 트위스트 찰스 디킨스 (1812~1870)
찰스 디킨스의 초기 작품으로 1838년 발표된 이 책은 대중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작가의 위치가 확고해졌다. 작가만이 지닌 독특한 해학과 휴머니즘이 풍성하게 어우러진 이 작품은 현실 묘사가 뛰어나기 때문에 연속된 풍경화를 보듯 독자를 빠져들게 한다.
영국 런던의 가난한 구빈원에서 출생한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소년이 도시의 뒷골목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고 있다. 결혼반지를 끼고 있지도 않은 불행한 여인은 구빈원 사람들의 도움으로 올리버 트위스트를 출생하고 바로 숨을 거두었다. 곧바로 고아원으로 보내진 올리버는 관리들의 부정과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런던으로 도망쳐 부랑배들의 꾐에 빠져 도둑들의 소굴로 들어갔다.
부랑배들에게 도둑질을 가르치고 그들이 도둑질해 온 물건을 착취하는 간악한 유태인과 아무런 죄의식도 느끼지 못하고 못된 질을 일삼는 무리 속에서 올리버도 동화되어갔다. 드디어 동료들이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는 브라운로의 손수건을 소매치기하는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다가 경찰에 붙잡히고 말았다. 그러나 피해 당사자인 브라운로의 친절로 혐의를 벗은 올리버는 그의 따듯한 보살핌을 받고, 일순 인생의 전환을 갖게 될 기회를 얻었으나 다시 부랑배들에게 납치되고 말았다.
악당들의 두목격인 페긴은 이번에는 반드시 그를 범죄자로 만들어야 한다며 악랄한 계략을 꾸민다. 올리버는 잔인한 사이크스의 강요로 또 다시 부잣집을 터는 일에 가담, 총을 맞고 도망치다가 들판에 버려지고 말았다. 그러나 얼마 후 기적적으로 의식을 되찾은 올리버는 공교롭게도 침입했던 집 현관 앞에 쓰러지고, 집 주인인 메일리 부인과 로즈, 의사 로스번의 도움을 받는다. 그들은 고통으로 얼룩진 올리버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동정하여 그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불량자들 중에는 낸시라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도둑들의 속루에 기거하면서 더러운 매춘과, 그들의 심부름이나 시중을 들며 살아간다. 어느 날 우연히 페긴이 멍크스라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을 엿듣는다. 후에 밝혀지지만 멍크스는 올리버의 이복형으로, 부친이 죽을 때 작성한 유서를 무효로 만들어 막대한 재산을 독차지하고자 페긴에게 올리버를 도둑으로 만들어 교수형에 처해지도록 사주한 사람이다. 낸시는 올리버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질 단서가 된 그들의 대화 내용을 듣게 되고, 그 소식을 올리버를 보호하고 있는 로즈에게 전하고, 다시 브라운로우에게 알려지고, 그들은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가녀린 낸시는 로즈에게 출생의 비밀을 알리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부격인 사이크스에 의해 의심을 받고, 이를 피하기 위해 사이크스에게 아편을 먹여 잠을 자게 한일이 들통 난다. 사이크스는 심한 분노와 배신감에 권총자루와 몽둥이로 그녀를 처참하게 살해한 후 경찰의 눈을 피해 다니며 심한 죄책감과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소설의 후반부를 장식하는 잔혹한 살인과 죄악에 쫓기는 인간의 두려움과 죽음의 종말을 묘사하는 부분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그녀는 로즈로부터 악의 소굴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주겠다는 호의를 순전히 사랑과 의리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하고 결국 죽음에 이른 희생양이다.
소설의 내용은 철저한 인과응보의 정신이다.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의 물결 속에서 신분의 변화도 함께 일어났다. 인간이 어떤 길을 선택하여야 하는 것이 옳은가를 소설 속에서 보여준다. 결국 브라운로우는 멍크스를 붙잡아 모든 사실을 자백 받고, 그 자신이 올리버 아버지의 오랜 친구이며, 로즈는 올리버 어머니의 친동생임이 밝혀진다. 올리버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고, 브라운로우의 양자가 되어 본래의 착한 성품을 간직한 채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한다. 유태인은 사형언도를 받고, 페긴도 잡혀 교수대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구빈원 원장이었던 번블부부는 모든 직위를 박탈당하고 말년에는 그가 그토록 거만스럽게 굴던 구빈원의 신세를 지는 것으로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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